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60
소야는 가방을 멘 채 있는 힘껏 포탈로 뛰어들었다. 소야까지 사라진 걸 확인한 내 동생은 선글라스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끼더니,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오빠. 그럼 우리도 갈까?”
“가자.”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준 다음 동시에 포탈로 뛰어들었다. 포탈 너머에서 뒤를 돌아보니, 희미하게 보이던 왕국의 모습이 사라졌다. 푸른색 입자들이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고 있었고 푸른 빛이 긴 선을 이루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해류에 떠밀리는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흘러서 눈부신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 역은 당산. 당산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그리고 익숙한 소리가 귀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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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에이와 카린이 눈을 감았다 뜨면, 그들은 어느 뒷골목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미리 에반젤린이 준비해뒀던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 데, 현대 기준으로 보기에도 어색함이 없는 옷차림이었다. 카린은 와이드 팬츠에 반팔 티셔츠를 겹쳐입은 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에이에이는 긴 원피스에 얇고 짧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에이에이는 너풀거리는 치마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카린에게 말했다.
“저, 저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주 잘 어울리시는군요. 한 달 전에 아이를 낳은 애 엄마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애 엄마로서가 아니라…….”
“아니라?”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이에이는 인제 와서 자신이 남자니 어쩌니 하는 건 너무 멀리 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이제 아무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이에이는 이제 여자 용사였고, 한 가정의 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원피스 자락을 훑으며 조심스럽게 골목을 나섰다.
골목을 나서면 복잡한 번화가가 눈에 들어왔다. 주말을 맞이한 도시 사람들은 젊은 혈기를 불태우기 위해 대낮부터 유흥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들어찬 사람들을 성냥갑같이 생긴 건물들이 꾸역 꾸역 집어삼키고 있었고, 복잡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간판들이 안내하고 있었다.
카린도 에이에이도 얼빠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다른 세상이라고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다를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건물들은 재질부터 달랐고, 뒷골목마저도 복잡한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카린은 에어컨 실외기를 손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여기서 뜨거운 바람이 나옵니다. 노숙자들이 얼어 죽지 말라고 만들어둔 복지일까요?”
“그런가 봐요.”
에이에이는 대충 대답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 언덕 방향에 교회가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아직도 실외기를 이리저리 건드려 보는 카린에게 말했다.
“카린 씨. 저기 보세요. 저기가 그 교회인가 봐요.”
카린은 실외기를 만지는 행동을 그만두고 몸을 일으켰다. 살짝 높은 지대에 있는 교회에는 붉은색 십자가가 영롱하게 달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회사 사장 같은 풍만한 외모의 사내 동상이 작게 서 있었다. 에이에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게 그 하느님일까요?”
“글쎄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군요.”
교회 아래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승천진리교회]“이름이 엄청 특이해요. 승천진리교회라니.”
“대천신교랑 비슷한 느낌 아니겠습니까. 대천신교도 이름만 뜯어놓고 보면 무슨 종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요.”
두 사람은 교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교회 건물은 마치 돔 구장을 연상시키는 동그란 모양 꼭대기에 마치 고래가 물을 뿜는 듯이 십자가를 박아놓은 형태였다. 교회 앞에는 넓은 운동장이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는 하얀색 신관 옷을 입은 사람 한 명이 나와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전부 그 건물을 피해가며 수군거리곤 했다.
교회 앞 현수막에는 [승천진리교회 20주년 기념행사]라고 적혀 있었다.
에이에이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 생각보다 짧네요. 20년이라니. 교회 건물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여동생 분 말을 들어보면, 역사가 꽤 깊은 종교 같았습니다. 그나저나 저 물건, 되게 쓸만해 보이는군요. 단체 고문을 할 때 저런 게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하하하…….”
마이크에 관심을 주는 카린을 보고 에이에이가 짧게 웃었다. 한참 동안 연설을 하던 사내는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단상에서 내려갔다. 그가 내려가자 이번에는 평범한 복장을 한 여인이 단상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열정만 넘치고 발음은 뭉개던 사내와 다르게, 또랑또랑하고 날카로운 발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간 교회로 몰렸다가 흩어졌다.
“여러분! 저는 승천진리교회를 만나고 나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고난에 시달렸던 저는, 부끄럽게도 부도덕한 삶을 살며 방황하다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에이에이가 카린에게 물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금 들어가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조금 기다리는 겸 점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교회 가보기 전에 근처에서 밥이라도 먹을까요? 점심 안 먹고 출발했잖아요.”
“좋은 생각 같습니다.”
카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에이는 일단 식당을 탐색하기로 했다. 근처에 보니 그녀가 익숙한 종류의 파스타 같은 음식을 파는 곳도 있었고, 중국집이나 한식 백반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식당들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노래방이나 당구장 같은 유흥가도 있었는데 유흥가의 골목 앞에는 복싱 글러브와 헬멧을 끼고 어슬렁대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 옆에 있는 입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5분 동안 마음껏 때리세요.만 원 주고 스트레스 풀기!]
“카린 씨 저기 보세요.”
“신기한 게 있군요.”
오는 사람이 없어서 장구만 차고 어슬렁대던 남자는 바닥에 침을 한 번 찍 뱉고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건들거리는 서식으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사내는 에이에이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헤이헤이, 두유 원트 플레이? 어……. 게임? 페이 텐 달러!”
“뭐하는 건데요?”
에이에이는 아직 마음껏 때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었다. 남자는 에이에이가 유창한 한국말로 되묻자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한국말 할 줄 아시는구나.”
그리고 하얀 치아가 보이도록 씩 웃으며 글러브를 주고 착용법을 알려주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돈을 주고 5분 동안 마음껏 자신을 때리면 된다. 5분이 지나면 끝. 에이에이는 자기 손에 쥐어진 글러브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이거……. 큰일 날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아 괜찮아요. 괜찮아. 제가 그 유명한 격투기 선수들이랑 스파링도 해봤던 사람이에요. 그, 그, 박성환 선수 아세요? 그 사람이 미국에서 잘나가는 프로 격투기 선수인데, 저 그 사람한테도 잘한다고 인정받았어요.”
남자는 당당하게 머리를 쳐들고 고개를 까딱였다. 카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에이에이는 만 원을 주고 글러브를 꼈다. 남자는 1만 원을 벌어서 기분이 좋았다.
“저기, 이거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죽을 수도 있어요.”
“아아이, 저 프로였다니까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자, 때려봐요.”
남자는 5분 타이머를 맞춘 다음 보호장구를 꼈다. 에이에이는 글러브만 끼고 있었다. 남자는 스텝을 밟으며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에이에이가 자세를 잡자 살짝 몸을 떨며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자세가 지나치게 잘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싱 같은 걸 배운 느낌은 아니었는데, 오랫동안 싸움을 해본 사람 특유의 각지고 매서운 느낌이 그녀에게 있었다.
“싸움 좀 하셨나 보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앞으로 쑥 나오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에이에이는 최대한 힘을 빼고 가볍게 펀치를 날렸다. 남자는 에이에이의 펀치를 한 대 톡 맞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괜찮아요. 더 강하게 하셔도 돼요. 강하게!”
카린은 남자의 자세를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에이에이 역시 남자의 발재간을 주의깊게 보고 있었다. 에이에이는 남자의 발재간을 조심스럽게 따라 하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에이에이가 자기 스텝을 따라 하는 걸 보고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귀여우시네.”
“세게 때려도 된다고요?”
에이에이는 어깨를 풀며 다시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에이는 여전히 못 미더운 얼굴로 조금 전보다는 더 세게 주먹을 날렸다.
“어이쿠!”
남자는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피해냈다. 그가 프로들과 스파링할 때 보다는 느린 주먹이었지만, 이상하게 에이에이의 주먹은 피하기 힘들었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읽고 주먹이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린은 말했다.
“용사님 왜 봐주고 계십니까?”
“…..죽을까 봐요. 그런데 생각보다 되게 잘 피하시네요.”
“용사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에이에이의 얼굴을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눈앞에 빨간 글러브가 와락 덮쳐들었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스텝을 밟으며 허리를 뒤로 뺐다. 고개를 다 뒤로 넘기기도 전에 묵직한 펀치가 사내의 안면을 후려갈겼다.
“억!”
남자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여자의 펀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했지만, 이 정도는 맞을 만했다. 남자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씩 웃었다. 에이에이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이 정도는 버티시는구나. 그러면…….”
에이에이가 말끝을 흐리고 허리를 약간 숙이자, 남자는 묘한 불안감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팡!
공기 터지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남자의 눈이 천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발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고 있었다. 옆구리가 비틀리고, 강한 충격을 받은 옷이 찢어졌다. 척추가 부러질 듯이 휘어지고, 본능적으로 추어올렸던 팔에서 글러브가 빠져나갔다.
아직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스톱을 외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팡!
그리고 후속타가 그의 얼굴에 적중했다. 말을 하기 위해 오므렸던 입술이 치아와 맞물리며 짓눌렸다. 부드러운 글러브에 닿은 이빨들이 마치 감자밭에서 캐는 감자들처럼 송송송 뽑혔다. 자랑하던 오뚝한 콧대가 주먹 모양대로 짓눌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눈앞에 덮쳐든 압력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고개가 뒤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