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16
“아카데미.”
“아, 너네 딸이 지금 저기 장학생으로 들어갔다고 그랬지?”
“그래 임마. 너도 이 여자 저 여자 껄떡대지 말고 자리 잡고 살아라.”
“야, 야. 껄떡댄다니 임마. 나는 우리 분대장님 말고는 쳐다보지도 않아.”
“지랄한다 진짜.”
웃음소리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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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아카데미 회장에서 역사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지루한 이야기가 경전처럼 흘러나올 때는, 제아무리 뛰어난 장학생이라도 눈꺼풀을 까뒤집고 책상에 머리를 박을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교수가 고리타분한 옛 시대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학생들은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오늘 점심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하기 일쑤였다.
한창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는 전공 서적을 이리저리 펴들며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피곤하지요?”
“네에.”
여기저기서 네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교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에 주변을 슥 둘러보고 말했다. 그는 고등부 교수로서 고등부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뭔가, 좀 재밌는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색정왕 페타 루시우스 이야기 해주세요!”
누군가 손을 들고 꺼낸 이야기에 아이들이 전부 키득거렸다. 수줍어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웃음기가 만발했다. 교수 역시 허허 웃으며 난색을 보였다. 그는 빙그레 웃는 얼굴로 제 턱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색정왕 페타 루시우스 이야기.”
“네!”
조금 전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할 때보다 더욱 더 활기찬 대답이 돌아왔다. 교수는 그들의 활기 어린 대답을 듣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스크린에 손을 휘젓자 조금 전까지 적어 내려간 내용이 옆으로 사라지고 텅 빈 곳이 나타났다. 교수는 그곳 맨 상단에 [페타 루시우스]라는 이름을 적었다.
“색정왕 페타 루시우스. 대략 4천 년 전에 집권하여 왕국의 국호를 페타 왕국으로 바꾸셨던 분이지요. 다른 왕들에 비해서 음란하고 난잡한 소문이 많고, 부인을 여러 명 둔 것으로도 유명한데, 어디 당시에 떠돌던 그 소문들에 대해 좀 아는 사람?”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외쳤다.
“나체로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여자를 겁탈했다고 들었어요.”
“자기 부인을 동굴에 가두고 동물 내장 찌꺼기만 주면서 연명하게 했다고 들었어요.”
“시골 마을을 순찰하면서 마음에 드는 어린 여자애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자기 후궁으로 삼았다고 들었어요.”
교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학생들이 말했던 소문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침묵 속에서 교수의 필기 실력을 감상했다. 교수는 ‘후궁으로 삼았다.’고 자신의 필기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네. 다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색정왕 페타 루시우스는 이처럼 나라를 새로 건국하고 기존의 제도를 정비했으며, 지금의 다인종 왕국의 기반을 마련한 위대한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행으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평가절하되는 감이 있지요. 하지만 그는 이런 소문과 달리 자기 부인들에게는 매우 잘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디 여기서 페타 루시우스의 부인들에 대해 아는 사람?”
“용사 페타 에이에이!”
“네. 용사 페타 에이에이가 있죠. 여러분. 여러분은 그런데, 용사 페타 에이에이가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네?”
아이들이 모두 웅성거렸다. 페타 에이에이가 여자라는 건 당연한 상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는 아이들의 반응을 즐기며 화면을 전환했다. 스크린 너머에는 낡은 그림이 하나 있었는 데, 비열하게 서 있는 페타 루시우스와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검을 든 남성의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뭐야 저게?”
“자, 여러분. 이건 최근에 왕실 지하에 있는 보물창고를 정리하던 도중에 나온 그림입니다. 그림 뒷면에는 마왕을 물리친 [용사 에이에이와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의 모험]이라고 적혀 있었지요.”
아이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여렸다. 교수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어째서 당시 궁정 화가는 페타 에이에이의 모습을 이런 근육질 남자로 그렸을까요? 사실 기존의 페타 에이에이의 부인에 대한 표현은 모순점이 많았습니다. 당시 엘프 왕국이던 아힐데른의 공주 아힐데른 에리나와 약혼 관계였다는 사실, ‘마을의 으뜸 신랑이었다’라는 당시 에이에이 고향 마을의 기록.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에이에이는 사실 남자였다는 가설이 나오곤 했습니다만, 물질적 증거가 없어서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출토된 이 그림으로 인해, 학계에서는 에이에이가 사실 남자가 아니었느냐는 주장이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세상에…….”
아이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교수는 말했다.
“아직 확정난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너무 충격을 받은 것 같자, 교수는 재빨리 정정했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페타 루시우스는 얼굴이 반반하거나 몸매만 좋다면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따먹고 다니는 미친놈으로 각인되고 있었다.
“와, 진짜 최악이다.”
“아무리 나라만 잘 다스리면 된다지만, 좀 엽기적이네.”
“혹시, 당시에 페타 루시우스에 대해서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나요?”
다른 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페타 루시우스는 워낙에 일신의 무력이 출중하여서 아무도 함부로 덤비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페타 루시우스의 완력을 보여주는 일화 중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페타 루시우스가 마을을 행차하고 있을 때, 그의 엽색 행각에 불만을 품은 대천신교 열혈신도가 칼과 횃불을 들고 마차를 막아섰다. 호위병들이 앞으로 나서기도 전에 페타 루시우스가 “갈!” 이라고 소리치자, 대천신교의 열혈신도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사망했다.] [‘페타 루시우스는 엽색가에 호로 자식이다’라고 비난하던 사이비 광신도가 체포되어 그 앞에 섰다. 페타 루시우스는 사이비 광신도를 살아있는 상태로 짓이겨서 공 모양으로 만든 다음 들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이 모든 행위가 끝날 때까지 광신도는 살아있었으며, 이 때 보여준, 사람을 공으로 만드는 방법은 왕실 기사단의 비전으로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에이.”
“당시 역사가들이 기록한 내용이니만큼, 그 내용에 있어서 매우 신뢰도가 높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페타 루시우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엽기적인 왕의 ‘진짜’ 모습을 목도하게 되니 마음이 복잡했다. 교수는 분위기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했다.
“자, 그럼 다른 이야기. 여러분. 페타 루시우스의 첫째 부인. 페타 이브의 모습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아니요.”
“없어요.”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어머니는 셀루의 모습은, 현재 아카데미 중앙에 동상으로 장식도 되어 있고, 심지어 왕국의 식당에도 동상이 남아있어서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으나, 페타 이브의 모습은 유독 왕국에 조각되어 있지 않지요.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페타 이브는 자신의 비늘 덮인 다리를 콤플렉스로 여겨서 조각을 만드는 등의 행위를 매우 꺼렸다고 합니다.”
요즘 같이 인어들에 대한 인권 존중이 잘 이루어지는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늘을 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조금 숙연해졌다. 교수는 잠깐 침묵을 마주한 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 왕실 보물창고를 정리하면서, 저희는 오래된 영상 하나를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페타 이브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영상자료지요. 이미 학회에서는 기록에 남아있는 외양과 똑같은 모습과 비늘 다리 등을 토대로 영상 속 주인공이 페타 이브라고 확정한 상황입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스크린으로 향했다. 교수는 평소 수업시간 때 이 집중도의 절반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는 영상으로 화면을 옮기며 말했다.
“자, 그럼 보시죠. 일부만 복원했지만, 페타 이브의 모습입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붉은 머리 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외모를 보고 ‘와’하는 감탄사를 흘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녀는 사탕을 문 채 어느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씩 웃는 얼굴로 화면 건너편을 바라보던 여인이 외쳤다.
“우효오오오오옷! 청순 가련 유부녀 겟또다제!!!”
아침을 맞이한 동굴은 종유석에 머금은 이슬에 햇빛을 반사했다. 바닥에 비친 물 그림자가 프리즘처럼 여러 갈래로 빛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다곤이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그녀의 촉수가 내 손목을 팔찌처럼 휘감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촉수를 조심스레 풀고 밖으로 나왔다.
동굴 복도는 오래된 왕국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복도 가운데에는 큰 그림이 놓여 있었는 데, 우리 모두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그림을 훑어보았다. 가운데에 내가 앉아있었고, 내 옆에 이브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이런 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던 이브는 이때만큼은 조신한 귀부인처럼 행동했다.
내 머리 위에는 셀루가 있었다. 그녀는 이날도 꼬리를 파닥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그 오른편에는 에이에이가, 그리고 또 왼편에는 카린이. 내 발밑에는 엘시와 라이카가 각각 의자에 앉아서 어색하게 브이자를 그리고 있었다. 시에리는 내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마치 내가 어디론가 날아갈까 봐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늘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소야가 있었다. 그녀는 이 그림을 그릴 때도 키가 나보다 커서, 맨 뒤에 시오테르와 함께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다 그려졌다.
아티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루스와 서 있었다. 인간으로 변한 아루스는 자신이 용이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지, 꼬리만큼은 용 꼬리를 달고 있었다.
마틸다는 이브의 손을 꼭 잡고 움츠러든 채 서 있었다. 그런 마틸다의 뒤에는 내 동생이 따뜻하게 그녀를 안아주고 있었다. 마틸다는 한 손으로는 이브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동생의 손등을 감싼 채 입술을 우물거렸다.
다곤은 시오테르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아이라와 에밀리아가 서 있었다. 공간이 모자라서 들어가기 힘들었던 이 여인들은 다곤이 직접 촉수를 사용해서 우리보다 높이 들어주었다.
애쉬는 엘시 옆에 앉아있었다. 에리나는 에이에이 옆에 있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녀를 라이카 옆에 있게 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에리나가 에이에이의 발을 만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
이 그림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때 그림에 그려진 여인들을 뺀다면, 나는 결혼한 적이 없었다. 여자를 늘리는 건 지금 있는 여자들과 행복을 나누는 것보다 벅찬 일이었다. 나는 복도를 지나서 비어있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한때 이브가 방으로 쓰던 곳이었다. 지금은 텅 빈 책상 하나만 남아있었다. 이브는 이 방이 볕이 잘 들어와서 좋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상을 항상 창문 쪽에 두곤 했었다. 해풍에 의해 쉽게 부서지는 책상에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책상 서랍을 열면 유서가 한 장 있었다. 이브가 자신이 죽을 걸 생각하고 썼던 유서. 그녀는 언제부턴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었다. 언제였더라. 아마 로빈이 늙어 죽을 때쯤이었을 거다. 훌륭한 기사인 로빈은 모두의 축복 속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었다.
나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로빈을 아는 모든 부인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이브는 유독 로빈의 죽음에 대해서 서럽게 울었었다. 나는 그녀를 꼭 달래주면서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브. 왜 그렇게 울어? 응?”
그러면 이브는 내 허리를 꼭 감싸 안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신랑. 내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 그다음엔 뭐가 어떻게 될까? 나 신랑이랑 있는 게 너무 행복한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죽는 게 너무 무서워졌어. 죽고 나면 신랑을 만질 수 없다는 게, 기껏해야 사령 마법으로 불러내는 허깨비가 된다는 게 너무 싫어.”
나는 그때 별말 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를 꼭 쓰다듬어주었다. 이 유서는 그때 심란했던 이브의 마음이 담겨있는 문서였다. 오늘같이 아침부터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는, 나는 이 책상에 앉아서 글을 다시 읽곤 했다.
그러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을 이브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봉투를 열고 유서의 첫 문장을 읽으려고 했다.
“신랑. 뭐해?”
“어? 일어났어?”
잠에서 깬 이브가 눈을 비비며 문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는 유서를 황급히 주머니에 집어넣었지만, 이브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어! 신랑! 지금 또 그거 꺼내서 읽었지?”
“아니, 그냥 오랜만에 감성에 좀 젖어보고 싶어서…….”
나는 당황해서 대충 얼버무렸지만, 이브는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와서 팔을 흔들며 편지를 빼앗으려고 했다. 나는 유서를 뒤로 숨기며 폴짝폴짝 뛰었고, 이브는 나에게서 뺏지 못하는 걸 알고 앙탈을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