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3
“그럼 제가 아무르 영주를 때리거나 고문하는 소리를 들은 바 있습니까?”
“그…..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아무르 부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외쳤다.
“당신은 힐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지 않습니까! 독을 주입한 뒤에 상처를 치료하면….”
“굳이 독살을 할거라면 독을 먹이거나 주사하면 됩니다. 아무르 부인. 저는 아무르 영주가 꼼짝도 못하게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독 하나를 못먹여서 아무르 영주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습니까? 어차피 죽일 거였다면, 왜 굳이 독을 주입하고 상처를 치유해준 뒤 다시 위로 올려보내서 독살시킨단 말입니까?”
“조약을 맺게끔 하려는 거였겠지요! 조약을 맺게 하고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럴거면 그냥 때려죽이면 됩니다. 아무르 영지는 제가 아무르 영주를 때려죽인다고 해서 항의할 여력이 있습니까? 제가 때려죽이면 안될 명분이라도 있습니까?”
“그건…..”
굳이 따지자면 남부 사제장으로서 내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조약 상으로는 내가 영주를 죽여서 얻는 이득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감정적인 복수를 할거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없을테니까. 나는 다시 영주 부인에게 물었다.
“그리고 제가 수상한 걸 주사했다면 아무르 영주가 마부에게 한마디라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마부. 아무르 영주에게 그런 발언을 들었습니까?”
“……듣지 못했습니다.”
들었을리가 없다. 아무르 영주 본인도 독에 당한 건지 몰랐을 테니까. 아마 그냥 너무 무리해서 식은 땀이 나는 거라 생각했겠지. 그렇게 끙끙앓다가 어느 순간 뒤진 것이다. 마부가 몇 번 마차 안을 확인했으나, 정신적인 피로로 지쳐 잠든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영주 부인은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재판관도 찝찝한 표정이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영주 부인이 말했다.
“검! 검에 독을 발랐겠지요!”
“마부. 제가 지장을 찍을 때, 아무르 영주만 피로 지장을 찍었습니까?”
“아닙니다. 사제장님도 피로 지장을 찍었습니다.”
“사제장이 본인을 치료했는 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검에는 독이 검출되지 않았지요. 검사에서도 알아낼 수 없고, 당한 사람도 알 수 없으며 시체에 흔적도 남지 않는 극독을 제가 썼다고 주장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
영주 부인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내가 그딴 독을 썼다고 주장해봐야 개소리에 불과했으니까. 개연성이 없었다. 내가 아무르 영주를 그 고생을 해가며 죽일 개연성이.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죽은 루비콘 대공의 명예를 더럽히는 건 싫지만, 아무르 영주와 루비콘 대공이 닿은 건 제 칼만이 아닙니다.
“아!”
재판관이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뒤이어 얼굴색이 흙빛이 되며 고개를 저었다. 영주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결투 당일. 루비콘 대공의 칼이 산산 조각 나면서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그리고 그 파편을 가장 많이 맞은 건 아무르 영주와 루비콘 대공이었다.
“가장 많은 파편을 두들겨 맞았고, 노환인데다가 심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던 루비콘 대공은 얼마지나지 않아 사망했죠.”
“아, 아니야…..”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루비콘 대공 다음으로 많은 파편을 맞았던 아무르 영주가 루비콘 대공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우연일까요?”
재밌게도 많은 사람들이 파편에 맞았지만, 대부분 한 두군데 박힌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까이 있던 아무르 영주는 전신에 파편을 맞았고, 루비콘 대공은 얼굴에 집중적으로 파편을 얻어맞았다.
“지, 지금 루비콘 대공이 칼에 독을 발랐다는 겁니까?”
재판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직하고 정정당당하며 호탕한 성품으로 이름 높았던 그 루비콘 대공이다. 하지만 나를 정황만으로 의심할 수 있다면, 루비콘 대공도 마찬가지로 의심할 수 있었다.
“만일이 그렇다는 것이죠. 저도 그 루비콘 대공이 저를 이기기 위해 칼에 독을 발랐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때 결투를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저는 루비콘 대공을 찌른 적이 없습니다. 제 칼은 애초에 루비콘 대공에게 닿은 적이 없었죠.”
루비콘 대공의 손등을 긁은 건 정말 티나지 않게 저지른 일이었다. 당시 파편으로 난리난 현장에서 그걸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공식적인 결투 재판의 기록 상에서 루비콘 대공은 본인의 칼에 의해 부상을 입었고 마지막에 주먹으로 제압당했다.
“하지만 너무 기간이 차이나지 않소?”
루비콘 대공은 결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하지만 아무르 영주는 결투 때 독에 걸렸다고 친다면, 최소 이틀 내지 사흘은 지나서 사망한 셈이었다.
“아무르 영주가 더 젊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독도 개인차가 있고 계속해서 요양을 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루비콘 대공이 치명상으로 인해 지나치게 빨리 약효가 돈 것일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세계관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의 텀을 두고 약효가 도는 독들이 있었다. 암살용으로 개발된 것들. 게임 내에서는 암살 미수 사건 퀘스트에서 등장하며, 아주 위험한 독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재판관이 머리를 싸매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겠지.
나는 말했다.
“재판관님. 루비콘 대공과 아무르 영주가 똑같은 증상으로 죽은 건 우연일까요? 혹시, 루비콘 대공의 지난 결투 상대 중에 그렇게 끙끙앓다가 죽은 사람이 더 없었습니까?”
“…..있소.”
없을리가 없다. 결투를 존나게 많이 했던 인간인데 두세명 정도는 더 있을게 뻔했다. 결투에서 지고 쇠독이나 홧병으로 뒤지는 놈들은 꽤 있었으니까. 루비콘 대공의 칼을 조사해보려고 해도 이미 박살난 터라 녹여버린지 오래였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루비콘 대공의 명예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으나, 의심을 한다면, 만일 이 결투에 독살이라는 의심을 씌운다면 그 화살은 루비콘 대공에게 향해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외로, 루비콘 대공이 칼에 독을 발랐을 개연성은 충분했다. 나를 죽이고 싶어하고, 처음부터 재판장에 무기를 들고 들어왔으며, 먼저 결투 재판을 제안했고, 가장 많은 파편을 맞았던 두 사람이 다 똑같은 증세로 뒤졌으니까.
오히려 내가 독살할 개연성이 없었다. 난 당시 결투의 승자였다. 독살이 캥긴다면 그냥 루비콘 대공을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결투의 승자가 패자를 죽이는 것 가지고는 대천신교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독살했다는 게 성립하려면, 굳이 죽여도 아무 리스크 없는 결투석에서 죽이지 않고 30분 뒤 루비콘 대공이 독살당하게끔 만든 뒤, 아무르 영주도 굳이 나한테 썩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닌 조약을 맺게한 뒤 굳이 같은 독을 사용하여 독살해야했다. 전자와 후자. 둘 중 하나만 하지 않아도 내가 독살했다는 의혹은 제기될 수 없었다.
그러니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루비콘 대공이 얻는 이득은 아주 훤히 보였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일행을 죽였다는 명성. 그리고 곱게 죽이지 않겠다는 원한.
그리고 우연히도 루비콘 대공의 무기로 상처를 입은 두 사람.
논리적인 근거가 없는 죽음은 사람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의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재판관도 재판에 참석했던 이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와 함께, 나는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는 소리를 들었다. 쩌저적. 루비콘 대공 명예에 금가는 소리.
그렇게 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로서 나는 대천신교로 부터 아무르 영주를 죽였다고 질책당하는 일이 없었다.
재판은 언제나 공명정대한 법이다. 다행히 루비콘 대공이 독을 발랐다는 의혹은 의혹과 소문으로 일단 그친 듯 했다.
루비콘 대공도 하늘에서 자신이 누명을 쓰지 않았음에 안심하고 있겠지. 어쩐지 별이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무죄 방면된 나는 아주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옆 영지에서는 아무르 영주를 대신하여 아무르 부인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역시 영주와 영주 부인은 그 역량 차이가 확연했다. 사업들이 영 신통치 못하게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주 부인은 사람부리는 법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무르 영주가 기반 복구 사업은 다 깔아놔서 영지가 아주 피폐해지진 않았다는 점일까. 간간히 아무르 영지 측에서 난민들이 오고 있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대천신교 측에도 저번에 난민을 받은 이상 추가적으로 영지민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아무르 영지까지 박살이 난 뒤, 나는 아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나는 이 게임의 진정한 엔딩을 보기 위해선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내 기억상으로는 마왕을 잡으면 엔딩이었는데, 마왕을 잡았음에도 새로운 흑막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에반젤린.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캐릭터였다. 다시 게임 스토리를 되짚어보면서 그런 비슷한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있던가 생각을 해봤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사천왕 중에도 에반젤린이라는 이름은 없었고, 마왕을 잡고 파고들기 용으로 나타나는 이벤트 보스 중에도 에반젤린 같은 이름은 없었다.
대체 누구지? 에반젤린에 대해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 거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단서는 마왕의 사천왕들이었다. 저번에 죽여버린 흘러내리는 뭐시기를 제외하면 사천왕은 현재 3명이 남아있었다. 라미아 종족의 여왕인 나태한 르아, 서큐버스인 매달리는 러비안, 도플갱어인 메아리치는 커틀러스.
이 중 매달리는 러비안은 드래곤 산맥 퀘스트에서 만날 수 있었다. 드래곤 산맥에 존재하는 드래곤들을 자극해서 북부를 박살내는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루비콘 대공 레벨이 현재 30을 훌쩍 넘었다는 거나 러비안이 레벨 20 언저리에서 노는 약한 보스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이미 루비콘 대공이 죽여버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도움이 안되는 늙은이 새끼.
라미아 여왕 나태한 르아는 게임 상으로는 서부 해안지대를 습격하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저번에 루비콘 대공이 말한 소식이나 서부 해안가에서 인어들이 깽판을 친다는 소식을 생각해보자면, 이 새끼도 인어들한테 뒤진 모양이었다.
도플갱어인 메아리치는 커틀러스는 대천신교 본부에서 대천신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이 역할을 수행할 때 커틀러스가 대외적으로 흉내내는 인물인 본부 고위 사제장 메이헴이 따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걸로 봤을 때, 얘도 뭔가 문제가 생긴게 분명했다.
사천왕들은 마왕의 힘에 비례해서 강해진다. 힘의 근원인 마왕이 뒤진 이상 사천왕들 자체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악마 새끼들에 불과했다. 우리들은 꾸준히 뭔가를 사냥하고 단련하면서 레벨이 올라가지만 사천왕들은 오로지 마왕이 강해지는 만큼 강해진다. 그래서 원작에서는 마왕이 뒤진 순간 사천왕들도 전부 사라지기 때문에 사천왕 퀘스트를 나중에 깨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혹시 사천왕들이 우리가 마왕을 깨는 순간 전부 뒤졌거나 레벨이 안올라서 무리하게 계획 운용하다가 전부 객사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단서는 얘네들 밖에 없는 데 얘네들이 놀랍도록 활동을 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주님. 편지가 왔어요.”
“편지?”
아이라가 내게 편지를 전해줬다. 대체 누구의 편지인지 가늠이 안갔다. 루비콘 대공 장례식에라도 와달라는 편지일까? 나는 편지 겉면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편지의 주인공은 에이에이였다. 겉면에는 여전히 엘프 왕국 아힐데른으로 보내달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에리나 이 병신같은 년이 그렇게 잡소리를 다 떠들어대더니 또 에이에이한테 아헬데른으로 편지 보내는 법을 안알려준 모양이었다. 에리나가 그래도 근본이 공주다 보니 ‘아힐데른 아힐데른 에리나 앞’이나 ‘엘프 왕국 에리나 공주 앞’이라고 적는다고 해서 바로 그 쪽으로 보내주지 않는다. 그런식으로 보내는 편지가 존나 많기 때문에 애초에 우체국 선에서 그냥 다 폐기해버리기 때문이다.
겉면에 엘프어로 적혀있거나 영주급 인사 이상의 직인이 찍힌 편지만이 아힐데른 우체국을 통과할 수 있다. 엘프와 인간은 서로 교류하고 있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폐쇄적이었다. 인간은 엘프의 숲에서도 제한된 구역만 들어갈 수 있으며, ‘성지’로 불리우는 지역에는 접근 할 수 없다.
나는 이 편지를 에리나에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예전이라면 에이에이한테 그짓거리 했다가 걸리면 죽을 수도 있기에 일단 해줘야 했지만, 나에겐 성검이 있으니까. 에이에이가 에리나한테 편지를 안보내야 내가 주기적으로 에리나를 따먹기 좋았다.
벌써부터 머리에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편지가 오지 않으니 몸이 달아서 내 영지로 찾아오는 에리나. 그녀는 상심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섹스를 한다. 상상만 했는데도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용사님이네요. 무슨 편지를 보냈을까…..”
나는 편지를 열어보았다. 얘가 대체 어떤 모험을 하고 있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자지가 돋아나는 약을 찾으러 바다로 갔으니, 이번엔 서부 해안가로 갔나? 어쩌면 자지 이식 수술 같은 걸 받기 위해 드워프 왕국으로 갔을 수도 있었다.
– 안녕. 에리나. 나는 지금 북부 대공님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 드래곤 산맥에 와 있어. 마법의 달인인 드래곤들이라면 날 남자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이 편지는 최소한 한달 전에 보내온 것이니 그 때는 북부 대공이 살아있었을 터였다. 지금쯤이면 북부도 난리가 났을텐데 에이에이는 지금도 북부에 있으려나?
– 북부 대공 어르신은 참 친절한 분이야. 내 검 실력을 보고, 아주 훌륭한 솜씨라고 칭찬도 해주셨고, 내게 없는 실전 경험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자주 대련도 요구하셨지. 보좌관 아저씨도 북부 대공 어르신을 존경하더라고.
이거 무슨 NTR 비디오 같은건가. 편지의 첫 서두에 북부 대공 칭찬밖에 없었다. 나는 편지를 계속 읽어내려갔다.
– 수련도 마쳤고, 북부에서 대공 어르신에게 많은 신세를 졌어. 에리나. 혹시나 나중에 북부 대공 어르신을 만나게 된다면, 네가 나 대신 소정의 답례품을 좀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런 부탁이 실례인건 알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북부 대공 어르신에게 해드릴 게 없는 걸.
지금 에리나가 답례품을 보내봐야 조의금 용도로 밖에 안쓰일터였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 계속해서 글을 읽어내려갔다.
– 그러고보니까 에리나. 본격적으로 산맥을 탐험하기도 전에, 이상한 서큐버스 하나를 만날 수 있었어. 대공의 성에서 겨우 탈출했던 모양이야. 내 옆에서 산맥 지형을 알려주던 기사님이 너무 놀라면서 칼을 뽑았거든. 이름이 러비안? 이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