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8
수인들은 단순해서 이런 점에서 믿을 만 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성격이 매우 평화롭다고 알려진 인어 중 최고의 싸이코 둘을 만난 이후로 이런 종족적 편견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아모리가 살아있다면 언제든지 엘시를 떠나게 만들 수 있으며 나를 귀찮게 할수도 있다. 하지만 아모리가 무덤에 있다면 엘시는 무덤을 지키느라 영지를 떠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아모리가 어떻게 죽었는 지는 나 밖에 모르니까. 내가 엘시를 잘 보살펴주면 하늘에 있는 아모리도 나를 굽어 살펴주지 않을까?
“다 왔네요.”
멀리 우리 영지로 향하는 경계 사무소가 보였다. 경비병은 내가 수인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나는 놀라는 경비병에게 인사를 한 번 해주고 다시 마차를 몰게끔 했다. 저택에 닿을 때까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수인들을 보고 놀라는 기색이 만연했다.
이 지역에서 수인은 보통 노예로만 만날 수 있는데 내가 사제장이다 보니 우리 영지에는 노예가 없었다. 노예가 없다보니 노예들 중에서도 보기 힘든 수인을 볼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웅성대는 군중들 저 편에서 이브와 시에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브는 다리를 살짝 비틀거리면서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택에서 이제 영주 대리의 역할을 나름대로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던 이브는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저택에서 뛰어내린 듯 했다. 왜냐면 옆에서 시에리가 이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이브 씨. 아무리 그래도, 저택 2층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리시면 안돼요. 그러다 다치시면…..”
“아니….뭐….난 안다치는데……”
이브도 시에리에게 욕을 박을 순 없었는 지 뻘쭘한 표정으로 시선만 돌리고 있었다. 나는 마차 창문 너머로 그런 둘의 만담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셀루가 수영장 너머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 나를 쳐다본 뒤 손을 흔들었다.
“뭐지. 여기.”
엘시가 창문 너머로 저택 풍경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내게 물었다. 인어랑 인간이 같이 다니고 있으니 저택의 풍경이 묘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저택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
“엄마의 무덤은 어딨나.”
“안내해드리세요. 로빈.”
나는 마침 나를 맞이하러 나온 로빈에게 엘시와 로이를 맡겼다. 아모리의 무덤은 저택 바깥에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은 사람 무덤을 저택 안에 놓는 건 좀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귀신이라도 붙으면 무섭잖아.
로빈은 마차 안에서 수인족이 튀어나오자 매우 신기한 모양이었다. 내가 노예를 안데리고 다니는 대천신교 사제장이다 보니 이 영지에서 이종족 보기란 아주 힘든 일이었다.
로빈은 어색한 얼굴로 엘시와 로이를 안내하기 위해 데리고 사라졌고, 수인족 둘이 사라지자마자 이브가 내게 물었다.
“뭐야 저것들? 뭐 수인 딸을 데려온다고 하더니, 하나는 네가 그….뭐 한다고 치고. 나머지 남정네 하나는 뭐냐? 씨발 너 그딴 취향도 있었냐?”
“씨발 뭐?”
이브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도 이브를 질색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셀루가 물었다.
“저번에 데려왔던 그 수인이랑 관계있어?”
“네. 그 수인 딸이에요.”
“헤흐…. 재밌네.”
셀루는 머리가 잘돌아가는 편이었다. 엘시 앞에서 아모리로 빨래를 했다던가 내가 아모리를 죽였다던가 같은 귀찮은 이야기를 할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따로 이 점에 대해 당부하지 않았다.
시에리는 수인까지 저택에 데려오자 좀 당황한 듯 했다. 인어로 끝이라고 생각한게 분명한 듯 입을 우물거리며 할말을 찾고 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충 넘어갔다. 앞으로 몇명이나 더 데려오냐는 등의 귀찮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한신이 유방에게 말했듯 이런 문제는 다다익선이니까.
엘시의 거처는 무덤 근처에 있는 빈 집으로 정해졌다. 애초에 엘시를 그곳에 넣을 생각으로 무덤을 그쪽에 둔 것이었다. 로이는 엘시와 같이 살고 싶다고 했지만, 엘시는 언제부터 우리가 같이 사는 식구였냐고 매몰차게 거절했다.
생각보다 존나 철벽이었다. 게임에서 용사에겐 나름대로 오픈 마인드였던 것 같았는데 다른 남자에게 가차없었다. 거처가 정해진 뒤 엘시와 로이는 다시 내 저택으로 돌아왔다. 엘시는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셀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수영하고 싶으세요?”
“아니. 저 인어는 노예인가?”
“자유민입니다. 이야기는 좀 복잡하니 다음에 해드릴게요.”
해적섬에서 부터 사면받고 재판받은 이야기까지 다 하자면 끝이 없었다. 엘시는 내가 셀루를 자유민이라고 하자 살짝 감탄한 눈치였다. 알게모르게 그녀의 호감도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헛기침을 해서 화제를 끊고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엘시 당신과. 로이. 두 사람의 일을 배분해드리겠어요. 로이. 당신은 농사 지어본 적 있나요?”
“농사? 지어본 적 없다.”
이름: 로이
종족: 마림바 부족 고양이 수인
레벨: 13
스텟
힘: 18
민첩 : 43
지능: 2
행운: 0
인간이라면 평균 기준 높은 스텟이었지만, 수인치고는 매우 병신같은 스텟이었다. 병사로 쓴다면 우리 병사중에 에이스가 되겠지만, 부관이나 기사로 쓰기엔 모자랐다. 인간은 기본적인 평균치가 낮은 대신, 수련을 마친 기사나 네임드들의 스텟은 정말 끝도없이 올라갔으니까.
이 수인이 기사나 경비대장의 통제에 잘 따라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농사나 시키기로 했다.
“당신에게 농사일을 좀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싫다!”
로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엘시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엘시 앞에서 농사나 지으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어떤 일을 원하나요?”
“전사! 싸우는 일을 원한다! 성직자. 나한테 전사같은 일을 준다!”
“당신에게 기사같은 직급을 달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렇다!”
개소리다. 수인을 기사로 삼은 전례도 없었고, 내 영지 기사들의 반발이 이만저만 아닐터였다. 애초에 로이는 기사가 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나는 로빈을 불렀다.
“로빈!”
로빈이 한쪽에서 기사들과 잡담을 하고 있다가 내 부름에 달려왔다. 로빈은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완전 무장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로이는 이미 로빈을 한 번 만나본 상태라 기죽거나 낯설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당신이 로빈을 이긴다면, 일단 병사 생활부터 시작하는 걸 고려해보죠.”
“병사? 나는 바로 전사가 될 자격이 있다!”
“로빈. 상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로빈이 허리를 피고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로이가 그 모습을 보고 따졌다.
“인간 전사. 왜 무기를 뽑지 않는다?”
“뽑으면 네가 죽기 때문이란다.”
로빈은 아주 친절한 어투로 그렇게 말한 뒤 온 몸에 힘을 주었다. 그냥 월급 받아먹는 것에 만족하는 무기력한 샐러리맨 같은 얼굴에 짐승같은 안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축 늘어져있던 전신에 힘이 빡 들어가더니 근육이 갑옷을 터뜨릴듯이 부풀어 올랐다.
로빈이 눈을 빛내며 기합성을 내질렀다.
“으랴아아아!”
“으, 아아…”
로이가 그 모습에 위축되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에 엘시가 호통을 쳤다.
“로이! 전사가 되고싶다면서 왜 도망가나!”
“이, 이익….으….!”
로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로빈을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려고 했다. 로이가 한 눈을 판 사이, 로빈은 어느새 로이의 시야 사각으로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로이는 로빈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하지만 로이가 로빈을 찾는 것보다, 로빈의 주먹이 로이의 배에 한 방 먹이는 것이 더 빨랐다.
팡!
공기터지는 소리와 함께 로이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커흑!”
로이는 허공으로 날아서 몇바퀴 구르고 바닥에 널부러졌다. 엘시는 그런 로이를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엘시가 로이에게 말했다.
“너는 아직 전사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지켜준다.”
“흐흑…..흑…..”
로이가 그 말을 듣고 흐느끼는 것인지 신음을 흘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로빈은 손을 털며 내게 말했다.
“기사나 병사로 쓸만한 재목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고생했어요.”
역시 우리 로빈. 기사단장은 노름으로 딴게 아니었다. 로빈은 다시 칼을 집어들고 기사들에게로 돌아갔다. 기사들이 로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로빈이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엘시를 쳐다봤다. 엘시가 물었다.
“나는 저런 시험을 보지 않나?”
“시험, 보시겠어요? 그럼 다시 로빈을…..”
“아니.”
엘시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시험 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