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92
나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내가 소야와 대화하는 사이 용병 길드 담당자가 용병들의 신원을 확인해준 다음, 내게 말했다.
“네. 당초 전달받은 내용과 같군요. 두 사람의 시체를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직접 인계해주러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내가 고개를 숙이고 떠날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확인 작업이 시간을 잡아먹어서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마법사 소야를 여기서 못따먹는 건 아쉬웠지만, 원작에서도 제법 긴 시간을 들여서 공략해야 하는 괴팍한 캐릭터였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한 번 만났다고 따먹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 커다란 가슴으로 파이즈리를 시키거나, 진공 펠라로 내 좆을 쭉쭉 빠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건 나중에 돌아가서 시에리한테 시켜야지.
내가 돌아갈 때도 소야는 계속해서 고민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그녀 역시 내게 별 관심이 없었는 지 내가 수레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동안에도 줄곧 용병 길드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돌아가는 동안에도 한가지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소야의 다리. 누가 소야의 다리를 저렇게 만들었는 지가 의문이었다. 팔키오스 퀘스트가 좋게 끝나지 않은 건가? 몬스터한테 당했으면 아예 죽었을테니까 그 쪽이 신빙성있었다. 사건의 배후가 되어야할 팔키오스가 어중간하게 마석을 훔치다가 마왕성으로 가버렸으니, 누명을 쓴 소야가 해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마탑과 엮여서 안좋은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거나 다리 하나가 아예 장애인이 된 걸 보니 혹독하게 고문이라도 당한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뭔가 누명을 벗을만한 증거가 발견되서 풀려난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소야가 살짝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억누르고 교회로 향했다.
“어서오십시오. 사제장님.”
엘슨 사제가 나를 환영했다. 마침 준비가 다 끝난 모양이었다. 원래 루시우스가 얼마나 많이 장례식에 참여했는 지 모르지만, 나는 전생 현생 통틀어서 장례식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엘슨 사제. 장례식 절차에 대해 다시 한 번 알려주시겠어요? 파견 사제들의 사망을 위로하는 장례식에서 제가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되네요.”
“제가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드릴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제장님.”
“역시 엘슨 사제가 있으니 많이 도움이 되네요.”
나는 씩 웃어주고 장례식 절차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엘슨 사제는 성심성의껏 내게 장례 절차를 안내해주고 있었다. 내 역할은 간단했다. 표정을 아주 엄숙하게 하고 관 옆에 서있다가 장례를 주관하는 엘슨 사제가 ‘사제장이 교황을 대신하여….’로 시작하는 문구를 발언하면 그 문구에 따라 행동하면 끝이었다.
내 걱정과 다르게 실제로 장례식은 실수할 여지가 없을 만큼 매우 쉬웠다. 기껏해야 교회에서 준비한 성수를 허공에 뿌리거나 시체들 옆에서 기도문을 읽는게 다였다. 하지만 행동 자체는 어렵지 않은 반면, 표정 관리는 무지 어려웠다. 장장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장례식 내내 나는 하품도 지루하다는 표정도 지어서는 안됐으니까.
내 가족이나 지인이 죽었다면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만, 이 장례식은 정말 생전 얼굴 한 번 본 적없는 타인의 장례식이었다. 나는 억지로 침통한 표정을 유지하느라 정말 애를 써야 했다. 하품이 나올 것 같으면, 고개를 푹 숙였고 표정관리가 안될 것 같으면 잠시 눈을 감고 다른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 사망한 사제들을 묘지로 옮기기 위해 수레꾼들이 관을 옮겼다.
나는 장례식을 치뤘던 교회 계단에 주저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제들의 관을 따라서 사람들이 곡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인기를 보아하니 이 지방에서 제법 인망있던 사제들인듯 했다.
아마 다른 사제들도 특별히 엄선한 후보군을 추려서 뽑은 것이니 분위기는 비슷할 듯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더 엄숙하고 진중한 표정을 유지하며 장례식을 해야한단 뜻이기도 했고.
나는 이 지랄을 도시를 몇군데 돌면서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탄할수 밖에 없었다. 내가 깊이 한숨을 내쉬자, 내 한숨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엘슨 사제가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죽고 사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루시우스 사제장.”
이렇게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내 연기가 제법 잘 먹힌 모양이었다 나는 엘슨 사제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쳤다.
“맞아요. 엘슨 사제. 너무 상심해있어서도 안되겠죠. 그럼 서두르도록 할까요? 여기 남은 사제들도 가족들의 품이 그리울 테니까.”
“네. 움직입시다. 사제장님.”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보단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내가 마차에 타자 엘슨 사제가 뒤이어서 마차에 올라탔다. 남은 시신들을 실은 수레가 앞장서서 출발하고, 우리가 탄 마차가 그 뒤꽁무니를 따랐다. 장례식이 끝난 영지의 분위기는 우중충하기 그지 없었다.
멀리 산기슭에서 사제들을 묻기 위해 무덤을 파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는 이 과정까지 우리가 전부 기켜보면서 참여해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들릴 곳이 많았다. 엘슨 사제는 아쉽다는 듯이 무덤파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빨리 다음 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군요.”
그런 나의 상념을 깨운 건 엘슨 사제의 한마디였다. 나는 고개를 들고 창 밖을 바라봤다. 정말 마탑의 마법사로 추정되는 무리들이 용병길드 앞에 서 있었다. 엘슨 사제가 덧붙였다.
“저들은 마탑의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인데,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 지…..”
마탑의 마법사들은 용병길드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들이 있었으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여인이 있었다. 나는 그 여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방랑 마법사 소야였다.
“잠깐, 엘슨 사제. 마차를 멈춰주세요.”
“네?”
엘슨 사제가 대답을 제대로 못하자 나는 내가 직접 마부에게 명령해서 마차를 멈추게했다. 그리고 마차에서 뛰어내려 용병길드로 달려갔다. 뭔 사태인진 몰라도 여기서 그냥 소야를 두고가면 왠지 그녀가 뒤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멀리 용병길드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밀밭을 가로질러서 그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용병길드를 둘러싼 마법사들은 아주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바닥에는 소야가 쓰러져서 일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특수한 마법으로 소야를 억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후미에 있던 마법사들이 나를 발견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마법사 중 몇몇이 뒤를 돌아서 내가 지팡이를 겨누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페타 영지의 영주이자 남부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입니다! 쏘지 마세요!”
내가 암만 힐이 있고 어쩌고 해도 마법에 맞으면 아팠다. 일단은 살아서 올라가야 됐기 때문에 나는 손을 흔들면서 최대한 나 자신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 서로 쑥덕거리면서 대화하더니 지팡이를 거두었다.
내가 소리를 지른 덕분에 소야를 둘러싸고 있던 마법사들도 내가 다가오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들도 서로 웅얼거리면서 대화하더니 가장 나이가 많은 마법사가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있었으며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꼰대의 기운이 넘쳐흘러서 나는 그와 대화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은 내가 밀밭에서 용병길드 대로변으로 올라올 때까지 인내심있게 기다려줬다. 나는 높은 턱을 한손으로 붙잡고 단숨에 뛰어올라 마법사 대장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나이든 마법사는 허리가 구부정해서 제법 덩치가 컸음에도 나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멀리서 엘슨 사제가 길을 빙 둘러서 달려오고 있었다. 늙은 마법사는 엘슨 사제가 달려오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 한숨을 쉬며 내게 물었다.
“페타 영지의 영주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무슨 일을 하는 지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야는 눈만 겨우 위로 치켜올려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소야 주변에는 푸른색 막이 펼쳐져 있었고 마법사들 몇몇이 어떤 특수한 마법을 이용해 소야와 그녀 주변의 땅을 억누르고 있었다. 소야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마치 그녀는 보이지않는 사슬에 묶여있는 듯 했다. 내가 소냐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자 늙은 마법사는 대답했다.
“마탑의 일입니다. 사제장께서 간섭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억울해요! 난 범인이 아니라구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야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살기어린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늙은 마법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범인이라고는 여기있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소니아 야이반! 네게 용병들 살해 ‘혐의’가 있으니 마탑에서 조사를 받는 것 뿐이다.”
“증거 있어요? 없잖아요! 증거도, 의심할 근거도 없잖아! 내가 왜 용병들을 죽였다는 거에요!”
늙은 마법사는 나를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더니 목소리를 크게했다. 이 자리에서 소야가 왜 끌려가야 하는 지를 공개적으로 밝힐 생각인듯 했다.
“마법사 소니아 야이반! 너에게는 카를린을 죽일만한 동기가 있다. 저번 마석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네가 지목되었을 때, 마석의 행방을 추적하는 추적 마법을 지원한 인물이 바로 카를린이었으니까!”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건가?
“알게뭐야! 누가 무슨 마법을 지원했는지 내가 어떻게알아요? 난 그 때 마탑 감옥에 갇혀있었잖아요! 변호할 기회도 안줬잖아! 내가 무슨 수로 마법을 누가 지원했는 지 알아내?”
“그러니 우리 처우에 불만을 품고 네가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더냐! 마탑의 마석을 훔친 혐의는 정확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아서 마탑에서 내쫓는 정도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소니아 야이반!”
“아니라고! 내가 왜 그런 범행을 저질러? 뭐가 아쉬워서? 애초에 난 마석도 훔치지 않았어! 난 죄가 없다고!”
내 예상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소야는 이를 갈며 늙은 마법사에게 독설을 퍼부어댔다. 존댓말도 그만두고 마구잡이로 따져물었다.
“당신이 훔친거 아니야? 당신이 훔쳤으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옭아매고, 범인 취급 하는 거 아니냐고! 내 다리를 병신 만든걸론 부족해? 말해봐. 그래서 내 집과 창고, 심지어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용병길드에서 빌린 내 숙소까지 다 뒤져서, 마석이 한톨이라도 나왔어? 한톨도 안나왔지? 그렇겠지! 진짜로 내가 마석을 훔쳤다는 증거가 있었으면 난 지금쯤 죽었을테니까!”
이 세계에서 소야는 따로 의심을 받으니 의심을 피하기 위해 수사한 게 아니라 정말 뜬금없이 누명을 쓰고 붙잡힌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실을 토해내라고 고문을 받았겠지. 다리가 작살난 건 그 고문 후유증인게 분명했다. 늙은 마법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사건의 진범이 드러나지 않은 이상, 너는 여전히 마석을 훔친 혐의를 의심받고 있다. 진범이 드러나면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여전히 진범은 오리무중이고, 우리에겐 범행을 의심받는 아주 수상쩍은 마법사 한 명만 있을 뿐이지.”
내가 물었다.
“그 사건은 제가 관여를 하고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범인은 엠버라는 여자 마법사인걸로 알고 있는데, 왜 이 여인을 체포하는 겁니까?”
“엠버는 조사결과 이미 한달도 전에 동부 평야지대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용병패가 없어서 시체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그저께 겨우 마탑에 도착했지요. 누군가 엠버를 사칭하고 용병 길드에 들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달 전? 대충 계산해봐도 내가 의뢰를 낸 시점에 이미 엠버는 죽었거나 죽음에 준하는 어떤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에반젤린은 아주 작정하고 이 일을 꾸민 것인가?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 여인은 살해할 동기도 있고, 원래부터 마석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로군요.”
“거기다 사건 당시 행적도 불분명 하지요. 소니아 야이반. 용병들이 마탑을 조사하는 그 때 뭘 하고 있었지?”
“그건…..”
소야가 말끝을 흐렸다. 대체 무슨 씹지랄을 하고 있었길래 말을 못하는 거지. 원작을 해본 나로서는 소야가 할만한 일들 리스트가 머리에 그려졌다. 그 중 절반 정도는 확실히 설명하기 좀 거시기 한 것들이었다. 그 모습에 이것 보라는 듯이 늙은 마법사가 더욱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이미 저번 마석 도난 건으로 인해 네 이름이 용병길드에서도 제명당했다는 건 파악하고 있다! 분명 변신 마법이나 특별한 속임수를 사용하여 엠버를 사칭한 뒤 자신을 제명한 용병 길드와 마탑에 전부 복수하려는 속셈이었겠지!”
늙은 마법사의 주장은 대충 듣기에 제법 그럴듯한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 소야는 마석을 훔쳤다는 혐의로 인해 마탑에서 임시 제명당했고, 마탑 소속 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에 용병 길드에서도 손절당했다.
주변 상황만 보자면 소야는 확실히 길드와 마탑에 전부 원한을 품을 만 했다. 그러므로 소야가 용병과 마법사들을 전부 죽였다는 게 아예 말도 안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진실이 아니다. 이 사건은 소야의 개인적인 복수극이 아니었으니까. 소야가 그럴만한 캐릭터도 아니고.
“하지만 용의자로 유력한 실루엣은 지팡이를 짚지 않고 있었습니다.”
“눈속임이었겠지요! 일시적인 위장은 마법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법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니 할말이 없었다. 나는 소야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아주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저런 눈빛을 보내지 않더라도 나는 소야를 구해줄 생각이었다. 이번에 끌려가면 죽을게 분명했으니까. 히로인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았다.
“당시 행적만 증명되면 되는 건가요?”
내 질문에 늙은 마법사가 나를 쳐다봤다. 그는 말없이 소야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