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94
“그러면 제가 제안을 좀 하고자 하는데요. 당신한테도 꽤 괜찮은 제안이에요. 들어보시겠어요?”
“네, 네. 말씀하세요.”
소야는 아주 고분고분하게 내 말을 따르고 있었다. 내가 생명의 은인이고, 이딴 자위기구를 만들고 있음에도 경멸하지 않았기에 그러는 듯 했다. 나는 소야를 우리 영지의 마법사로 쓸 생각이었다.
“실은 우리 페타 영지에는 마법사가 없거든요. 그래서 당신을 영지 마법사로 좀 쓰고자 하는데…..”
“그….. 영지 마법사가 되려면 마탑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딴 법률이 있었구나. 마탑의 승인을 받은 마법사만이 영지 마법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소야는 마탑에서 쫓겨난 상태이니 승인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용병으로 소야를 고용하자니 소야는 현재 용병 길드에서도 잘린 상태였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소야를 정식으로 고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페타 영지로 가주시겠어요? 대책은 거기서 다시 논의해보시죠. 그리고 그 선물은 제 아내가 진짜 좋아할수도 있으니까 한 번 보여줘보구요.”
이브랑 셀루가 배에서 맨날 딜도 가지고 놀았다는 거 생각해보면 의외로 괜찮은 선물이 될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취미가 딜도 수집일수도 있으니까. 소야는 그 말에 좀 당황한 기색이었다. 진짜로 보내라고 할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일단 소야가 이브한테 딜도를 보여주는게 나았다. 그래야 이브가 수령거부를 하더라도 나중에 마탑에서 딴 소리 못할테니까.
“지, 진짜로 이걸요? 진짜로?”
“네. 일단 겸사겸사 가져다주세요. 뭐 주기 싫으면 안주셔도 되구요. 일단 페타 영지로 편지를 보내둘텐데, 혹시 편지보다 먼저 도착하면 좀 기다리셔야 할거에요.”
“네. 알겠어요.”
소야가 다시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녀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 때 마다 가슴이 출렁거리는 게 너무 노골적이라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사제들은 허리를 더욱 더 뒤로 뺀 채 서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엘슨 사제에게 말했다.
“편지 한 통만 보내고 가죠. 엘슨 사제.”
“아, 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루시우스 사제장님.”
그렇게 나는 페타 영지로 편지 한 통을 보내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된 것이다. 마차 안에는 해가 비치면서도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엘슨 사제는 매우 어색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밖을 쳐다봤다.
남의 성생활을 알게된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이게 최선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실상 무지 신경쓰여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내 아내는 이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인어였다. 그 인어가 30cm 자만큼 거대한 딜도랑 씹질을 한다는 걸 남편 앞에서 상상하니 차마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것이다.
“엘슨 사제? 어디 불편하신가요?”
“네? 아, 아닙니다. 그냥, 그냥 좀 마차가 느리군요.”
“속도를 높이라고 말씀드리면 되지 않나요. 엘슨 사제?”
“그, 그렇지요. 그….. 방금 전 행보는….”
“제 아내 일을 그렇게 언급하는 건 아무리 저라도 좀 그렇네요. 엘슨 사제.”
구라니까 적당히 넘어가세요. 라고 말하기엔 이미 대천신교도 얽혀있고 소야 문제가 좀 강하게 엮여있었다. 나는 이브한테 살짝 미안했지만 이브를 위해 거대 딜도를 마법사한테 주문했다는 구라를 밀고가기로 작정했다.
그래도 용서해주겠지. 아마 별일 없을 것이다. 딜도 선물 정도야 할수도 있는 일이었고, 어쩌다보니 일이 꼬여 사람 죽게 생겨서 그렇게 됐다고 말하면 이브도 그렇게까지 화를 내진 않을게 분명했다.
이브도 나중에 상황 설명들으면 납득할 수 밖에 없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마차 안과 일행들의 공기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과 마차를 타고 이렇게 어색하진 않을게 분명했다. 엘슨 사제는 내가 뭐라고 말하든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어린 사제들은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으며 수레꾼들도 어딘지 선망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서로 자기 팔뚝이나 다리를 가리키며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는데, 말하는 중간중간 나를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엄지 손가락을 척, 올리는 걸 보니 썩 건전한 대화는 아닌 듯 했다.
나는 부러움과 경멸이 뒤섞인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다음 영지로 나아가고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이제 첫번째 영지를 돌았을 뿐이지만 뭔가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브는 나름대로 영지 대리인이 해야하는 임무에 익숙해졌다. 그녀 나름대로 세운 규칙 덕분이었다. 규칙 하나. 기사들의 업무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규칙 둘. 시에리와 아이라가 주관하는 회계 업무에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규칙 셋. 국가에서 보내는 공문들은 일단 진행하지 않고 뒤로 미뤄놓는다. 규칙 넷. 영주 부인다운 교양있는 이미지를 위해 되도록이면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모든 규칙을 지킨 결과 이브는 영지 대리인으로 있는 동안 평소보다 더 아무것도 안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아침에 엘시와 함께 운동하고, 점심 때 시에리가 결재 요청하는 일들을 결재해주며, 저녁에 날아온 공문들을 받아서 대충 집무실 책상에 모아놓는 것이었다.
물론 답변이 시급한 일들은 이브와 시에리 아이라, 그리고 셀루에 엘시, 거기다 로빈까지 전부 모여서 머리를 짜내 겨우겨우 답변하거나 진행했다.
그렇게 영지를 운영한 결과 이브가 다스리는 페타 영지는 매우 평화로웠으며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브는 루시우스와 다르게 처벌에 자비가 없었기 때문에 루시우스가 출장만 가면 범죄율이 뚝 떨어졌다. 루시우스는 잡범 정도는 대충 경고와 노역 후에 보내주지만 이브는 정말 법대로 손을 잘라버리거나 반 병신으로 만들어 내보내줬기 때문이었다.
“시에리.”
“네. 이브 씨.”
“이번엔 신랑은 언제 올까? 조사한다니까 꽤 오래걸리겠지?”
“영주님이 많이 보고싶으신가봐요. 이브씨.”
“너도 씨발 신랑이랑 똑같은 새끼야 진짜.”
그렇게 제법 시간이 지났다. 이브는 시에리와 함께 회계 서류를 검토하다가 문득 그런 말을 꺼냈다. 이제 이브에 대한 공포감이 옅어진 시에리가 농담을 던졌고, 이브는 그 농담에 아주 훌륭하게 반응해줬다. 의외로 시에리와 이브는 죽이 잘맞았다.
“실례합니다.”
아이라가 서류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서류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루시우스가 오면 시킬 생각으로 미뤄두었던 것들인데, 생각보다 늦게오는 바람에 이브가 처리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이브가 물었다.
“씨발 이걸 다 하라고?”
“다 해야돼요. 안그러면 나중에 우리 영주님이 고생하신다구요.”
“내 고생은 신경 안쓰냐?”
“근 2주 동안 쭉 노셨잖아요.”
“아니, 뭐 그건 그런데….”
이젠 아이라도 이브에게 마음놓고 말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브는 이 저택에서 자기 포지션이 이빨빠진 호랑이나 발톱 빠진 사자와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어쩐지 서글펐지만, 화를 낼 대상도 없기에 이브는 입맛만 다시며 서류를 훑어봤다. 창밖을 보면 엘시가 오늘도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호위 대상인 영주가 없으면 제일 편한건 엘시와 셀루였다. 이브는 따로 호위가 필요없다고 못박아놨기 때문에 엘시는 하루 종일 운동이나 휴식을 했고, 셀루는 영주가 있든 없든 수영장에서 몸을 푹 담근 채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씨발 존나 부럽네.”
이브는 밖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맨날 이런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었지만, 이브는 잠깐만 이런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래서 외근을 나가는 건가?
“실례합니다.”
서류를 뒤적이는 사이 또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빈이었다. 기사단장은 여자들로 가득한 방 안이 익숙하지 않은 지 흠칫하고 있었다. 이브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
“페타 부인을 뵙고 싶다고 하는 마법사가 있어서….”
“마법사? 씨발 마법사가 날 보고 싶다고?”
이브는 마법사를 싫어했다. 인어를 구입하는 제 1순위가 변태들이었고 제 2순위가 마법사들이었으니까. 마법사들은 인어의 피를 시약 재료로 쓰거나 인어 자체를 실험체로 쓰기도 했다. 물 속에 있는 인어는 인간보다 튼튼했으니까 인어를 물 속에 넣고 거기다 약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이브는 그래서 마법사란 족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빈이 이브의 이런 날선 반응의 원인을 알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 마법사가 페타 부인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씨발 반 인어는 어떻게 생겼나 보고싶나보지? 씨발 오늘 뒤진 줄 알아라 개 좆같은 년이.”
서류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찾아온 이브는 거침이 없었다. 마법사의 목적도 이름도 관심없었다. 이브는 일단 찾아왔다는 마법사의 팔 하나 잘라버리고 대화를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집무실 옆에 놔뒀던 곡도를 빼들고 이브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갑작스럽게 이브가 날아오자 엘시가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대련?”
“아니. 마법사 죽이러 갈건데. 같이 갈래?”
“간다. 마법사 죽는 거 구경거리다.”
엘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브에게 합류했다. 수인족도 마법사에 대해선 원한이 많았다. 병사들이 맨몸 싸움으론 수인족을 이기기 힘들었기 때문에 마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엘시 같은 수인족 전사에게 마법사는 불법 도핑을 지원하는 씹새끼들에 불과했다.
그렇게 살기등등한 얼굴의 2인조 연쇄살인범들이 저택 대문을 열어젖혔다. 이브가 칼을 허공에 휘두르며 외쳤다.
“씨발 나와!”
“히이이익!”
그 살기등등한 모습에 소야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바로 모가지를 쳐버리려던 이브는 이미 소야의 한쪽 다리가 불구인 걸 보고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암만 마법사라고 해도 다짜고짜 죽이는 건 좀 너무한게 아닐까, 하는 이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브는 숨을 고르고 소야에게 물었다.
“뭐야.”
“그, 그…. 페타 부인이신가요?”
“그런데?”
이브의 날이 선 반응에 소야는 더욱 더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다시 일어나서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 영주님이신 루시우스 사제장님께서, 그…. 서, 선물을 보내셨거든요.”
“선물?”
아직 이브에게 편지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브는 눈을 찌푸리며 소야를 훑어봤다. 분홍색 머리에 존나 큰 키. 그리고 볼링공을 하나씩 집어넣은 듯 빵빵한 가슴. 생긴 것만 보면 확실히 루시우스가 혹해서 잡아올만한 여자였다.
“선물을 보냈다고?”
“네, 네. 그…. 보시면 마음에 들거라고…..했어요.”
“뭔데.”
“네?”
“뭐냐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소야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색이 되어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 그…. 여기서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알려드리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