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96
아무르 영지 끝에서 우리 영지까지는 금방 갈 수 있었다. 영지의 경계라는 게 서로 딱 붙어있는 게 아니라 경계를 설정하는 초소가 서로 다소 떨어져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경비병들이 서로 잡담을 나누는 게 보였다. 내가 보이자 경비병들은 금방 경계 태세에 들어가서 창을 내밀며 외쳤다.
“정,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찌른다!”
더듬는 거 보니까 신입인가. 나는 멈춰섰다. 초소 경비대장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나와 신입 병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수하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해야한다. 원래 나같이 높은 사람이 오면 프리 패스였지만, 나중에 무슨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내가 바꿨다.
“써, 썬더!”
“암구호 미숙지.”
내가 몇주 동안 영지를 비웠는 데 암구호를 알리가 있나. 신입은 당황한 표정으로 경비대장을 쳐다봤다. 경비대장이 작은 목소리로 합구호라고 중얼거렸다. 합구호는 숫자 두개를 합쳐서 특정 숫자를 만들면 되는 암구호였다. 예를 들어 합구호가 10이라고 쳤을 때 경비병이 7! 이라고 외치면 내가 3! 이라고 외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영지의 합구호는 10이었다. 신입이 외쳤다.
“합구호!”
경비 대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신입을 보면서 씩 웃었다. 신입은 그 웃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 지 나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외쳤다.
“합구호!”
귀엽네. 새끼. 한 번 더 합구호를 외친 신입은 잠시 기다리다가 외쳤다.
“합구호를 외치지 않으면 찌르겠다!”
뭐지? 병신인가? 지금 나보고 합구호! 이 지랄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문어를 말하라는 건가? 합구호 문어면 내가 그냥 1 외치면 끝나는 거 아닌가? 웃다말고 내가 멍한 표정으로 신입을 쳐다보고 있으니, 경비대장은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저 놈 잘못이 아니다. 신입이 병신일 뿐. 나는 작은 목소리로 신입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자, 신입. 합구호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래요?”
“네? 아, 아! 13!”
합구호가 10인데 왜 13이 나오는 것이지? 벌써 우리 경비대들은 한차원 높은 영역의 수학을 하는 것인가? 이미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시체가 되어버린 경비대장의 표정을 보자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불호령을 내릴까, 개판을 칠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빼기 3.”
“누구냐!”
“페타 루시우스. 페타 영지의 영주.”
“목적은?”
“귀가.”
“신원확인을 위해 3보 앞으로!”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신입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수하가 종료됐다. 나는 초소를 지나면서 호달달 떨고있는 경비대장과 눈을 마주쳤다. 신입은 그 옆에서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경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경비대장에게 말했다.
“경비대장. 요즘 지내기 편한가봐요? 경계면에 몬스터도 없고, 힘든 일 있으면 기사들이 다 해주잖아요. 그렇죠?”
“아닙니다!”
“기사단들이랑 같이 훈련 한 번 받아보시겠어요? 요즘 훈련 커리큘럼이 잘 짜여있어서 한 번 갔다오면 다들 눈빛부터 달라지더라구요.”
“아닙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입 교육 잘해야 겠죠?”
“네 그렇습니다!”
“귀빈이라도 오셨는데 또 실수하면 어쩌겠어요.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신입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내 반응이 본인 예상과는 달라서 그렇겠지. 본인 생각에는 되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반응이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초소를 통과했다. 뒤에서 경비대장의 열받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내가 수하 그따위로 하라고 가르쳤냐?”
“아닙니다!”
“너 병신이야? 내가 씨발 합구호 외칠 때 합구호! 이러기만 하라고 지랄했어?”
“아닙니다!”
경비대장의 분노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오랜만에 군대 시절이 생각나는 목소리였다. 이래서 나 군대에 있을 때 사단장, 대대장 급 인사들이 초소를 돌아다녔구나. 그 새끼들은 초소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에 점검을 나오는 게 아니었다. 처음 경계를 서는 뉴비들의 야한 냄새를 맡기위해 올라오는 것 뿐이었다.
경계면을 통과하니까 공기마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놀라며 서로 수군거리고 앞으로 나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여, 영주님! 오셨습니까?”
“네. 그동안 별 일 없으셨나요?”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영지민들이 나와 눈도 못마주치고 서로 허공을 보면서 말을 건네고 있었다. 뭐지? 대체 영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브가 저택 대문 앞에서 스트립 쇼라도 했나? 영지 전체에 껄끄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내가 인어박이라고 소문났을 때도 이 지경으로 마을 분위기가 씹창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수인한테도 박는다는 소문이 난게 분명했다.
나는 마차 창문을 열고 영지민 한 명을 불렀다. 영지민이 움찔움찔 몸을 움츠리면서 다가왔다. 내가 따먹기라도 할까봐 무서워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괜히 겁에 질린 그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다.
“영지에 무슨 일 있나요?”
“아, 아무 일도 없습니다.”
“분명히 이상한 소문이 난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 아, 아닙니다! 아무 소문도 나지 않았습니다!”
매우 좆같은 소문이 났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영지민들이 차마 내 얼굴을 똑바로 못 볼 정도의 괴소문. 나는 암만 생각해도 이런 소문이 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소야야 편지가 갔을테니까. 알아서 조용히 이브한테 물건을 보여줬을거고. 이브는 저번에 북부대공 배를 갈라버린 거 말고는 영지에서 아주 조용히 생활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나는 영지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내가 도착하는 것에 맞춰서 로빈이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나는 빨리 이브를 만나야 했다. 이 좆같은 분위기는 80퍼센트 정도는 이브가 원인일거고 20 퍼센트 정도는 이브가 아닐 경우 그 때 부터 찾아봐야 했으니까.
복도를 지나갈 때도 이 이상한 분위기는 가득했다. 하인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고, 기사단원들도 헛기침을 하며 지나갔다. 나는 집무실의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이브 사랑하는 네 신…”
“이 씨발놈아!”
화분이 날아왔다.
이게 무슨 일일까. 화분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벽에 부딪힌 화분은 산산조각이 나며 폭탄 터지는 소리를 냈다. 이브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씩씩대고 있었고, 옆에 있던 시에리는 멍한 표정으로 나와 이브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방금 전 머리가 터질뻔 했단 사실에 살짝 쫄아서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일이에요 이브?”
“너, 너, 너 씨발 그 딜도 왜 보낸거야! 나 엿먹이려고? 어?”
“아, 그거. 편지 안왔어요? 선물 보낸다고, 좀 야리꾸리한거니까 안에서 확인하라고 편지 보냈는데.”
“편지?”
이브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도착 못한 모양이었다. 영지 우체국 씨발놈들. 급한 편지니까 빨리 보내라고 그렇게 닦달을 했는데 편지를 안보냈다고? 미친 새끼들인가? 나는 물었다.
“그래서 그 선물 때문에 뭔 일이 일어났는데요.”
“그…. 내가 어디 수상한 놈이 보낸 건줄 알고, 그…. 대문에서 까보라 그랬거든?”
“……씨발.”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광경이 대충 상상이 갔기 때문이었다. 소야가 트월킹 댄스 머신 앞에서 딜도의 성능을 설명하고 이브가 소리를 질러댔겠지.이브도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시에리가 어색하게 내게 다가워서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괘, 괜찮을 거에요. 어떻게 수습 됐으니까요?”
수습되지 않았다. 내가 들어오는 동안 영지민들이 아주 꺼림칙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안그래도 씹창난 이미지에 정점을 찍은 게 틀림 없었다. 나는 힘이 풀린 다리를 주무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그 딜도는 어떻게 했어요?”
“엄마 줬어. 좋아하던데? 근데 너무 커서 못쓰겠다더라.”
셀루가 덩치가 큰 편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집무실 창 밖을 바라봤다. 셀루는 여전히 수영장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수영장 모서리에는 그 딜도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제장 저택 마당에 저런게 굴러다녀도 되는 걸까? 나는 그런 고민에 빠졌다가 고개를 저었다. 엘시도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 데 소야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딜도 가져왔다고 죽여버렸나? 나는 소야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소야는요?”
“뭔데 그게.”
“여기 왔던 마법사요.”
“아, 1층 응접실에 있어.”
“살아있죠?”
“응. 죽일까 했는데. 신랑이 데려온 애 같아서 일단 살려놨어.”
“잘했어요.”
“뭐, 뭐야?”
내가 꼭 끌어안자 이브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어색하게 나를 마주 껴안았다. 나는 이브의 등을 토닥여주고 시에리를 쳐다봤다. 시에리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뭔가 바라고 있길래 시에리도 한 번 껴안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