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13)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13화(13/524)
Episode 13
“프레이, 왜 식은땀을…”
“…지금부터 날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줘.”
“…..뭐?”
다급하게 이솔렛의 말을 끊은 나는,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세명 다 지금 시점에서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이 맺힌게 너무 많았나?’
지금 내가 확보하려는 아이템은, 미래에 마왕이 쓰는 아이템중 하나인 ‘지배의 석’이다.
사용 대상을 억누르고 지배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그 아티펙트는, 잠시 뒤 시작되는 경매장에서 ‘싸구려 장식품’으로 취급되어 단 1골드에 나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경매장에 나오는 유용한 아이템들을 하나씩 사다가 지배의 석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하고… 그 순간 경매장에 들이닥친 마왕의 군단을 이솔렛에게 맡긴 뒤 유유히 빠져나갈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메인히로인들이 전부 이 경매장에 모여버렸다.
아마, 저 지배의 석으로 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본데… 나는 ‘별의 가호’가 있는 한 웬만한 정신 지배 능력에는 당하지 않는다. 즉, 메인 히로인들은 완전히 헛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얘네들이 지금 저걸 살 돈은 있나?’
카니아는, 돈이 없다.
공작가의 집사긴 하지만 대부분의 돈을 자신의 동생에게 보내고 있기에, 평소에 비상금으로 동화나 은화 몇닢밖에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성녀 페를로체와 황녀 클라나도 마찬가지다.
페를로체는 교단에서 명목상으로는 교황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긴 하지만, 그 순수한 성격때문에 지도자들에게 이용당해 왔다.
그 때문에, 당연히 그녀의 개인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재산은 주교들과 교황의 손아귀로 돌아갔고, 그녀 자신의 순수한 성격때문에 재산이 생기는 족족 기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교단에 부탁해 돈을 챙겨왔을 가능성이 있긴 하겠지만, 비록 전 회차를 경험했다고 해도 성격은 그대로인 성녀가 주교들이나 교황에게서 돈을 얻어냈을 가능성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황녀 클라나 역시 돈이 없다.
황녀가 돈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승 서열 최하위인 그녀에게는 전혀 말이 안되는 소리가 아니다.
그녀의 형제자매들이, 타고난 외모와 총기를 가지고 있는 그녀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동시에 위로 치고 올라올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녀는 무려 5명의 형제자매들에게 견제를 받아, 황녀임에도 불구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왔다.
아무튼 결론은, 그녀들은 지금 자금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란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될텐데?’
오늘은 카니아가 한달에 한번 동생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동생은 만나러 가던 그녀였기에 살짝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뒷통수를 맞았다.
그리고, 성녀는 오늘 교단에서 신성한 의식을 해야 한다. 무려 1년에 한번만 열리는 필수적인 의식이기에, 지금쯤 교단은 난리가 났을거다.
황녀의 경우에는, 오늘 그녀의 약혼상대를 정하는 중대한 행사가 있다. 세력을 키워야 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그런 자리에 무단 불참하는건 굉장히 큰 리스크다.
즉, 나 하나를 지배 하기 위해 돈이 한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세명의 메인히로인들이 자신들에게 있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에 참석하는 걸 포기한 채 이곳에 온 것이다.
정말이지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나마 이리나는 안와서 다행이네.’
이리나는 오고 싶어도 신분이 안되어 통행증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시점에선 평민 아카데미 학생에 불과하니 말이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퍼특 정신을 차렸다.
오늘 이 곳에서 반드시 구매해야 할 아이템은 ‘지배의 석’ 하나지만, 나는 앞으로 유용하게 쓸만한 아이템들도 몇개 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메인 히로인들의 난입으로 그 계획이 불투명해져버렸다. 아무래도, 최대한 쓸만하고 싼걸 제외하면 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럼, 첫번째 물건입니다! 새하얀 색과 정밀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 장식용 상자! 1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첫번째로 나온 물건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앞에 있던 패널에 가격을 적으며 입찰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내 씀씀이가 헤픈 건 아니다. 저 상자, 사실 게임의 히든 요소다.
예언서에 따르면, 위악자 루트를 탔을때 경매장 이벤트가 발생하면 위악자 활동에 도움이 되는 키트가 담겨있는 장식용 상자가 경매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선조님 말로는 세계의 창조신 비스무리한 존재인 ‘개발자’의 ‘이스터에그’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조님의 말씀이니 저건 확실히 살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필수적인 아이템은 아니지만, 가지고 있으면 위악자로서 행동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에 사두면 좋다고 선조님이 조언했었으니 말이다.
“…네! 5골드 나왔습니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실 분은 없나요?”
내가 5골드를 제시하자, 패널을 들어올리려던 몇몇 사람들이 날 슬쩍 보더니 이내 조용히 패널을 내려놨다.
아마 2골드에서 3골드를 썼다가, 내가 5골드를 제시해버리자 벌써부터 힘을 빼기가 싫었는지 포기해버린 것 같다.
“3…2…1…낙찰! 낙찰됐습니다! 장식용 상자, 5골드에 낙찰입니다!”
이윽고 사회자가 낙찰을 선언하자, 스태프들이 조심스럽게 상자를 천으로 감싸 나에게 건내주었다.
“…원래 낙찰이 끝나면 이렇게 바로바로 물건을 받는 건가?”
“…그래도 불법은 불법이잖아. 안전하게 집으로 배송해주는 합법적인 경매랑은 많이 다르지.”
“…그런것 치고는 별로 위험한 물건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만.”
이솔렛이 다음 경매품으로 나온 루비 목걸이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당장 이 장식용 상자만 해도, 장인 로시난테가 도둑맞은 물건이라는 설정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솔렛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루비 목걸이는, 착용한지 3일이 지나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저주가 걸려있다.
이 경매장은, 그런 불법적인 경로로 획득된 물건이나 저주가 걸린 물건들이 거래되는 곳이다.
“뭐, 뒷골목에 있는 것부터가 불법이니까.”
물론 그 사실을 말해줬다간 정의감이 투철한 이솔렛이 ‘지배의 석’이 나오기도 전에 깽판을 칠 가능성이 높았기에 적당히 말을 둘러대고 있는데, 사회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이번 물건은, 최근까지 나온 물건중에서도 상당히 귀한 물건입니다! 오늘 경매의 대미를 장식할 비장의 무기가 아니였다면, 마지막 순서에 나왔을지도 모르는 물건이죠!”
“대체 뭐길래 저렇게 양념을 치는 거야?”
“아마 저것도 별거 아닐걸? 경매장 입장에서는 최대한 가격을 높여야 수수료가 늘어나니까, 금칠은 필수…”
“바로, 바이워크 가의 소실된 검술 비급서입니다!”
“…….!!!”
사회자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나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을 받으며 말을 멈췄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건가?”
“…어, 그러니까… 아마 그런 것 같…”
“이 고결한 검술 비급서는, 450년전에 바이워크 가와 문라이트가의 충돌이 있었을때 소실되었다고 전해져왔지만… 최근에 저희가 완전한 형태로 다시 손에 넣은 물건입니다!”
“…넌 조용히 이곳을 빠져나가라. 잠시 소란이 있을거다.”
“잠깐,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신이난 목소리로 말하는 사회자를 노려보던 이솔렛이, 조용히 손을 검에 가져다 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길래, 나는 다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여기서 깽판을 칠려고? 제국 요주의 인물들이 모여있는데?”
“…놔라.”
“테러리스트들도 못잡고 배후도 못 밝혀낼텐데도?”
“……….”
“그리고 교수님을 데려온게 나라서, 교수님이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경매장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거든? 그러니깐…”
“…패널을 내놓거라.”
“…..응?”
식은땀을 흘리며 내가 그녀를 말리고 있는데, 이솔렛이 내 패널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우선 비급서부터 확보하고 테러를 막은 후에 경매장을 박살내겠다.”
“아니, 그러니까 제국 요주의 인물들이…”
“…패널을 내놔.”
“………”
살기어린 그녀의 말에 어쩔수 없이 패널을 건네자,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패널에 글자를 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작가는 1000골드 입니다!”
하지만, 사회자의 말을 들은 그녀는 이내 입을 쩍 벌리고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기 시작했다.
“…왜? 비급서부터 확보한다며?”
“처, 천골드는… 너무 가격이 높잖아…?”
“…저 정도면 적당한데?”
갸우뚱 거리며 묻는 나를 혼란스럽게 쳐다보던 이솔렛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처, 천골드면… 내 교사 연봉을 몇년간 모아도…”
“…네! 오천골드 나왔습니다! 시작부터 쎄네요!”
“히익!”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 자신의 가문의 비급을 애타게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힐끔힐끔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도, 도… 도와…”
“…응?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으, 으읏…”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이솔렛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이내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도와…줘…”
“네! 25000골드로 낙찰! 오늘의 최고가네요!”
“…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비급서가 그녀의 관점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낙찰되어 버렸고,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그녀는 짧게 탄식을 한 후 고개를 푹 숙였다.
“………..”
“…오, 딱 맞는 주인을 찾아간것 같은데?”
“…닥쳐.”
이윽고 이어진 내 얄미운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비급서를 받고있는 사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진짜 주인한테 찾아간거 맞는데.’
물론 나는 정보 탐색으로 비급서를 가져간 사람이 바이워크 가문의 당주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말한 것이지만, 이솔렛에게는 아마 놀리는 것 처럼 들렸나보다.
[위악 포인트 1pt 획득! (의도치 않은 위악)]의도치 않게 이솔렛을 놀린 대가로 자잘한 위악포인트가 들어오던 걸 확인한 나는, 씩씩 거리는 이솔렛을 진정시키며 경매가 진행되는걸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번 품목은, ‘초인의 물약’입니다! 500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문라이트 가의 가보중 하나였던 이 ‘달의 찻잔’에 차를 우려 마시면, 처졌던 피부가…”
“놀라지 마십쇼! 뭐든지 불태우는 ‘맹화검’입니다! 전대 검성이 썼던 애검이죠!”
꽤나 유용한 물건들이 많이 지나갔지만, ‘지배의 석’을 노리고 있는 메인히로인들 때문에 돈을 아껴야 했으므로 입맛만 다시고 있으니 어느새 경매의 마지막 순서가 찾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경매의 하이라이트자 대미를 장식할 물건을 소개합니다!”
사회자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단상에 올라온 물건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바로, 용사의 무구입니다!”
그 말에 주변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1000년전에 세계를 집어삼키기 직전까지 갔던 마왕을 격퇴한, 별의 용사 ‘한별 라온 스타라이트’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무구죠! 이걸 여러분께 선보이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
사회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마치자, 이솔렛이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저, 저게 사실…”
“…내 알바 아니야. 나한테 묻지마.”
“그래도…”
“글쎄, 난 모른다니깐?”
내가 신경질적으로 답변하자,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다물더니 불안한 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용사의 무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모조품 치고는 꽤 그럴싸하네.’
하지만, 용사의 무구가 공작가 지하실에 있는 비밀의 방에 봉인된 채 고히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는 그저 시큰둥하게 모조품의 완성도를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각성하기 전까진 빛나지도 않고, 손목 장식 부분 무늬는 완전히 다르고, 흠집도 하나 안 나있네. 뭐, 모조품의 한계이려나?’
그렇게 틀린그림 찾기를 하면서 놀고 있는데, 사회자가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오만골드! 오만골드가 나왔습니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실 분은… 아, 오만 오천골드! 오만 오천 골드가… 오, 이런! 칠만 오천 골드가 나왔네요!”
용사의 무구라는 말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가짜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대다수가 부패한 사람들이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한 내 말을 믿지도 않을테니 냅두기로 했다.
“…15만! 15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비록 경매장이 생긴지 얼마되지 않긴 했지만, 역대 최고가가 나왔네요!”
그렇게 한참동안 이어지던 광기는, 역대 최고가가 나오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3…2…1…낙찰! 낙찰입니다! 용사의 무구가 15만 골드에 낙찰됐습니다!!”
이윽고 용사의 무구가 15만골드에 낙찰되고, 비단에 감싸져 구매자에게 건내지자 주위사람들이 전부 그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쯧쯧, 호구 자식.’
물론 나는 그 사람을 한심한 눈빛으로 살짝 흘겨보고는, 곧 일어날 이벤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네! 그러면, 오늘은 이걸로 경매를 마치겠…음?”
한편, 역대 최고 수익을 내서 그런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경매를 마치려던 사회자는, 갑자기 스태프가 자신의 옆에 다가와 귓속말을 하기 시작하자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흠, 큼큼, 여러분! 죄송합니다! 경매 물품 중에 누락된 물건이 있었다는군요! 경매 진행에 차질을 빚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
“그럼, 여러분께 ‘미지의 돌’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감정을 해보니 미지의 힘이 내포되어 있다는 결과가 나온 신기한 녀석이죠!”
사회자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외쳤지만, 하필이면 그 전에 낙찰된 품목이 역대 최고가를 갱신한용사의 무구였기에 흥이 다 식은 사람들은 그 볼품없게 생긴 돌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 음… 그럼, 10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사람들의 눈치를 보던 사회자는, 이미 엄청난 수익을 내서 그런지 별 미련없이 ‘미지의 돌’을 헐값에 내놓았다.
‘…좋아, 지금부터 시작이야.’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은 저 ‘미지의 돌’ 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인 ‘지배의 석’이다. 저걸, 난 무슨 수를 써서든 확보해야 한다.
“네, 15골드 나왔습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메인히로인들의 눈치를 보며 패널을 들자, 사회자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외쳤다.
“…물론 그 이상을 제시하실 분은 없으시겠죠? 그럼, 카운트를 세겠습니다! 3…2…”
이윽고 사회자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하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제발 메인히로인들이 오래 지속된 경매에 지쳐 졸고 있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지만…
“1…아, 백 골드! 백 골드 나왔습니다!”
이내 황녀가 패널을 들며 입찰에 끼어들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백 골드 이상으론 없으시겠죠? 그럼… 카운트를, 잠깐만요! 처, 천골드가 나왔습니다!”
이윽고 성녀까지 패널을 들며 입찰을 시작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나는 묵묵히 패널에 천 백골드를 써넣으며 전쟁을 시작했다.
.
“마, 만 천 골드!! 만 천골드가 나왔습니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신경전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 내가 가격을 확 올려버리자 끝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만 천 오백십 골드! 아, 만 천 오백 십일 골드! 만 천 오백 십이 골드!”
성녀와 황녀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올리는 금액을 적게 적기 시작하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패널을 들었다.
‘…공작가의 재력을 무시하면 쓰나.’
“아! 만 오천 골드가 나왔습니다!”
“”……..!””
그 말에 움찔 거린 황녀와 성녀는, 날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패널에 가격을 적기 시작했으나…
“…이제부터 가격 인상은 백골드 이상으로 받겠습니다!”
사회자의 선고를 듣자 힘없이 패널을 떨어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제시하실 분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카운트를 세겠습니다! 3…2…”
‘…그나저나, 쟤네들은 자기가 써낸 수치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긴 했으려나? 있다면 대체 어디서 구한거지?’
나는, 승리했음을 직감하고 속으로 그녀들이 어디서 돈을 구했는지 추측하기 시작했으나…
“사, 삼만!! 삼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
이내 갑자기 누군가가 두배가 오른 가격을 제시하자 화들짝 놀라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흠.”
‘…아까 용사의 무구를 15만 골드에 샀던 괴짜 수집가잖아?’
잠시 식은땀을 흘리던 나는, 이내 눈을 질끈 감고 패널을 올려들었다.
“사만 골드! 사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
이제 기용할 수 있는 골드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승부수를 던져보았는데, 다행히 그게 먹힌건지그는 패널을 내리고는 고민을 시작했다.
‘…저 녀석은 아까 치열했던 입찰에서 15만 골드나 썼으니, 분명히 자금이 모자랄거야. 만약, 여기서 저 녀석이 오만 골드 이하로 가격을 부르면… 가망이 있어.’
“네! 사만 오천 골드!”
‘…좋았어.’
패널로 가격을 다시 제시하기 전에 슬쩍 옆을 쳐다보니, 괴짜 수집가가 조용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 그를 잠시 째려보다가 이내 패널을 들어올렸다.
“…사만 육천 골드 나왔습니다! 아, 사만 칠천 골드! 사만 팔천 골드!”
그렇게 계속 접전을 이어가던 나와 괴짜 수집가는, 결국 기나긴 전쟁의 종점에 도달했다.
“사만 구천 사십 구 골드가 나왔습니다! 수치가 일단위까지 쓰여진 걸 보니,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그대로 적으신 것 같군요!”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제시한 나는, 씨익 웃으며 괴짜 수집가 녀석을 쳐다봤다.
“………..”
그는, 팔짱을 낀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됐다, 아슬아슬 했지만… 이겼어.”
“카운트를 세겠습니다! 3…2…1…”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지만…
“…하.”
“…..!!!”
녀석이 코웃음 소리를 내며 마지막 순간에 패널을 들어 올리자 이내 경악하고 말았다.
“오만 오십 골드! 오만 오십 골드가 나왔습니다! 결국 오만을 넘네요!!”
“…애송이가.”
중후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린 그를 쳐다보던 나는,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 선물로 150골드를 받을걸.’
돌발 퀘스트의 2번째 클리어 보상으로 나왔던 백 오십 골드만 있었다면 쐐기를 박을 수 있었는데, 이러다가 지배의 돌을 웬 괴짜 수집가에게 뺐기게 생겼다.
“카운트를 세겠습니다! 3…2…1…”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지배의 석을 받는 즉시 경매장에서 벗어나려 했던 나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좌절하며 머리를 부여잡았으나…
“오만 백 오십 골드! 오만 백 오십골드가 나왔습니다! 이거 원, 전혀 기대치도 않았던 물건이 뭐가 이리 잘 나간답니까?”
갑자기 옆에서 조용히 우리의 경쟁을 지켜보고 있던 이솔렛이 오만 백 오십 골드를 패널에 써서 들어올리자,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지금 뭐하는거야?”
“백 골드, 빌려줄게.”
“…어째서?”
내가 당황해서 묻자, 그녀는 바이워크 비급서를 소중하게 품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답했다.
“…뒷수습 비용.”
“아니, 잠깐만. 저 사람은…”
“카운트를 세겠습니다! 3…2…1…”
이솔렛이 폐륜을 저지르는걸 말리려던 나는, 사회자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하자 조심스럽게 괴짜 수집가를 쳐다봤다.
“………….”
괴짜 수집가는, 주먹을 꽉 쥐고 조용히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애송이 자식.”
“…….!”
그런 그에게 그가 했던 말을 똑같이 돌려준 순간, 사회자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낙찰! 낙찰입니다! ‘미지의 돌’이 오만 백 오십골드에 낙찰됐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솔렛이 내 팔을 잡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미지의 돌로 향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저걸 받고, 넌 바로 나가거라. 난 볼일이 있으니.”
“아니… 그러니까…”
“…테러를 막으면서 겸사겸사 비급서도 되찾을테니, 넌 공작가의 권력으로 뒷수습을 부탁한다.”
“미치겠네, 내가 무슨 뒷세계에서 군림하는 멋들어진 흑막인줄 알아? 난 그냥 내 잘난 맛에 사는 공작가 제 1남…응?”
나를 손가락만 튕기면 심복들을 부려서 웬만한 일은 해결 할 수 있는 흑막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이솔렛을 어떻게든 설득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니아?’
자리에서 일어난 카니아가 ‘지배의 석’을 노려보며 오른쪽 손에서 검은 기운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문득 떠오른 추측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급히 ‘지배의 석’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카니아는 경합 자체에 참석하질 않았잖아? 그럼 설마, 처음부터 지배의 석을 훔칠 생각으로…!’
– 딱!
‘…시발.’
지배의 석으로 다급히 달려가던 나는, 카니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몸에서 튀어나온 검은 기운이 경매장을 뒤덮기 시작한 걸 보고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라고 생명력을 잔뜩 불어 넣어준게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카니아의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검은 기운이 경매장에 완전히 퍼지자, 어리둥절해 하던 사람들이 한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상황속에서 태양의 마나로 몸을 보호한 황녀와 성력으로 몸을 감싼 성녀, 그리고 입에 피를 머금은 채 잠시 비틀거리던 카니아가 일제히 ‘지배의 석’으로 달리기 시작한 걸 목격하고는,
“선조님… 당신은 대체 어떤 싸움을 하셨던 겁니까…”
이내 죽은 눈빛을 한채 품에 가지고 있던 장식용 상자를 꺼내들어 그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
“…이것 참 재밌는 일이군.”
한편 그러한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괴짜 수집가는,
“그렇지 않습니까? 마왕님?”
그 광경을 조용히 눈에 담으며 어디론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