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145)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145화(145/524)
Episode 145
지친 몸을 이끌고 아카데미의 기숙사에 들어서니, 익숙한 광경이 나를 반긴다.
“후우…”
카니아가 잘 개어둔 침대와, 그녀가 내게 선물해주었던 검은색 고양이 인형.
이리나가 가져다두었던, 어느새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강아지 사랑 나무 묘목.
그리고 내 소중한 아이템들이 들어있는 가방이라던가, 겉만 화려해 보이게 만들어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만들어진 장식품들.
유사시에 대비하여 준비해둔, 밝혀지면 제국을 한달동안은 발칵 뒤집어 놓을 스캔들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문서들과 곧 자선재단의 자금이 될 뇌물들까지.
늘상 보는 것들이지만, 유난히도 힘들었던 오늘은 왠지 모르게 반가워 보인다.
“…많이도 쌓였네.”
그렇게 찬찬히 방의 광경을 눈에 담고 있는데, 시야에 어느새 꽉찬 편지함이 들어왔다.
“프, 프레이. 잠깐만.”
“…응?”
오늘은 또 어떤 신박한 청탁들이 들어왔을지에 대한 쓸데없는 호기심에 물든채 편지함으로 걸어가는데, 이리나가 날 막아섰다.
“왜 그래? 이리나?”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니, 이리나가 편지함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됐어. 이제 봐도 괜찮아.”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난후.
핑크색 계열과 하트무늬가 그려져 있는 편지를 골라낸 이리나는, 태연한 표정을 한 채로 편지함을 가리킨다.
“………”
“프레이?”
처음에는 이리나가 들고있는 편지가 신경이 쓰였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신경이 절로 다른곳으로 쏠린다.
“왜, 왜 그래?”
비밀당주와 싸우느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녀의 옷과 몸으로.
“앉아봐.”
“…으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리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힌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있으면 어떡해.”
이윽고 침대맡에 있던 치료약과 붕대를 집어들며 말했더니, 이리나가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쓸모없는 나에게 잘해줄 필요 없어.”
“뭐?”
그리고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리나가 쓸모 없다니? 제국 마법사들이 저 말을 들었다면 기함을 하고 쓰러졌을만큼 놀라운 발언이다.
“죽음의 저주를 걸다가 마나나 바닥내고, 너 대신 패널티도 못받아주고, 비밀당주도 못잡고…”
“아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무능… 흐익!”
고개를 숙인채 우울한 소리를 해대는 이리나의 옆구리를 콕 찌르니,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상처가 심각하네, 치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상은 되겠는걸.”
“괘, 괜찮아. 그 정도 상처쯤은 전쟁터에서 입었던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으힉!”
계속 괜찮다고만 하는 이리나의 옆구리를 한번 더 찌른 나는, 파르르 떠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상처좀 확인할게.”
“괘, 괜찮…!”
“확인 안하면 대충 붕대만 매고 넘길거잖아. 내가 널 모를것 같아?”
전쟁터에서 워낙 오랜 세월을 보낸 이리나라 그런지, 그녀는 상처에 매우 둔감하다.
웬만한 큰 부상도, 그냥 붕대를 몇번 감고 넘길정도니 말이다.
“…하.”
그렇기에 살짝 억지를 부리며 그녀의 옷을 들추었는데, 생각보다 상처가 심각하다.
아니, 심각한 정도가 아니다.
이리나의 옆구리가,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 졌으니.
비밀 당주가 그 정도로 강했던걸까? 아니, 오로지 마법스크롤만 들고 악착같이 싸운 이리나가 대단하다고 봐야한다.
저번의 습격때, 가히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하던 비밀당주였으니 말이다.
“프, 프레이. 치료를 받을테니까, 일단 내 옷좀…”
“기다려봐.”
“…흐익!”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상처에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원래 내 상처에 바르려고 준비한 최고급 회복 물약이니,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전에 고통 정도는 덜어줄 것이다.
– 슈우우…
그리고 살짝 내 생명력까지 섞어서 준다면, 훨씬 더 도움이 되겠지.
“아으으으으으!”
“어이쿠.”
그런데, 이리나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긴, 이정도 상처면 최고급 물약이라고 해도 당연히 쓰라림이 발생할 것이다.
“조금만 참아, 이리나. 이것만 치료하면…”
그렇지만 상처를 그냥 내버려둘수도 없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타이르려던 나는.
“…이런.”
옆구리에 난 상처만큼 심각한 상처들이, 그녀의 몸 군데군데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리나, 대체 어떻게 고통을 참고 있던거야?”
“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한참동안 멍하니 그녀의 몸을 바라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니,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답한다.
“아니, 프레이. 부끄러워서 그런데 일단 옷은…”
“어쩔수 없네.”
이렇게나 상처가 심각한데 그저 핑계만 대고 있다니, 이리나도 참 답답하다.
전쟁터에서 몇십년씩이나 지내며 이런일에 무뎌진 그녀다.
당연히 이런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텐데, 내가 그런것도 모를줄 아는건가?
– 스윽…
“프…레이? 이건…”
“잠시 푹 자고 있어. 금방 끝낼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카니아가 준비해뒀던 수면초를 집어들어 그녀의 코에 들이밀었다.
불면증이 생긴 나도 냄새를 맡다보면 금방 잠드니, 아마 이리나도 얼마 안가 골아떨어질 것이다.
카니아는 대체 이런 강력한 수면초를 어디서 구해온 걸까?
“으, 으음…”
옷이 풀어 헤쳐진 이리나가, 몽롱한 눈빛을 띤채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 옷은… 입혀주라니까…”
“그럼 물약을 옷에 바르라는 소리야? 이대로 방치하면 더더욱 심각해져. 이 늦은 시간에 문을 연 치료소도 없고.”
“그, 그치마안…”
이리나가 계속 버티길래 수면초를 한웅큼 집어 그녀의 코에 들이미니, 드디어 그녀의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나… 난 몰라…”
“이리나.”
그렇게 잠에 빠져드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싸워줘서 정말로 고마웠어.”
그 말과 함께, 이리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내 말을 들었으려나?
“…흠.”
눈을 감은 그녀가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걸 보니, 다행히도 들었나보다.
– 스윽…
“…흐으.”
그런데 그녀의 몸에 손을 올리니, 그녀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기분 탓인가?
.
“…후우.”
이리나의 몸에 구석구석 약을 발라주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끝나가는 시간이 되었다.
“하읏, 으으…”
“괜찮으려나?”
마지막으로 그녀의 몸에 남아있던 상처에 물약을 바르기 시작하니, 이리나가 옅은 신음소리를 흘린다.
“볼도 뜨겁고, 몸도 파르르 떨고… 가관이네.”
분명히 깊은 잠에 빠졌을텐데도 저러니, 그녀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히 상상이 간다.
– 스윽, 슥.
그런 생각을 하며 더욱 부드럽고, 정성스럽게 상처에 약을 바르던 나는,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갑자기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니아는 분명히 오늘 늦는다고 했었고.
세레나는 내게 이상한 명령을 부탁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질문에도 대답해주지 않고 간걸 보니 꽤나 급한 일이었던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아무튼 페를로체는 교단 사람들과 함께 교단으로 복귀했었고, 클라나 또한 자신의 기숙사에 있을텐데… 왜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까?
“야옹.”
“…아하.”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이리나의 옆으로 고양이 인형이 다가와 웅크린다.
“너였어?”
혹시나 자객이 나타난건가 싶어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고양이 인형이라니 정말 다행…
– 푸드덕!
“…..?”
창문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드니, 절로 한숨이 나오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얘네들은 또 뭐야…”
세레나의 흰 올빼미에, 페를로체의 비둘기에, 클라나의 카나리아 까지.
비록 카나리아는 눈치를 보며 두 새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세 마리의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창문의 틀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카나리아는 클라나가 깃들어 있지 않던가? 아니, 저번에 내가 한번 파괴했으니… 아마 결속이 풀렸을거다.
“…여긴 동물농장이 아닌데.”
그래도 찝찝한건 어쩔 수 없다.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날 감시하고 있으니, 마치 도청을 당하는 느낌이다.
비록 내가 동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좀 과한게 아닐까?
지금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이리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훠이, 저리가. 지금은 못 놀아줘.”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휘휘 손을 내저었는데, 녀석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어째선지 카나리아는 살짝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다 휘청거렸지만 말이다.
“…..에휴.”
새의 주인들에게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려버린 나는.
“하으으…”
침대에 있던 고양이 인형을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놓고는 이리나의 상처에 마저 물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후우…”
그렇게 남은 물약을 모두 써가며 이리나의 몸에 나있던 상처를 치료한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에 드리누웠다.
“이제, 한동안 널널하겠네.”
세번째 메인 퀘스트도 끝났으니, 2학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꽤나 여유로운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난이도가 한층 더 괴랄해지는 2학년을 맞이하기 위한 폭풍전야일 뿐이지만, 그래도 쉴 시간이 넘쳐난다는건 아주 좋은 일이다.
잠깐 휴양을 떠나볼까? 아니면 기만의 로브를 쓰고 착한 일이나 좀 하면서 다닐까?
물론 2학년에 일어날 굵직한 사건들도 열심히 대비를 해야 하고, 서대륙도 한번 방문해 봐야겠지만.
그래도, 재충전의 시간 또한 필요한 법이다.
오래달리기 경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다간 중간도 못가서 지쳐버릴테니 말이다.
“그럼, 한숨 잘까…”
그러니, 지금은 한숨 자야 할것 같다.
노예시장의 후속처리도 해야하고, 세레나가 겪은 기이한 일과 비밀당주에 대한 일도 처리해야 하니.
약간 늦은감이 있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눈을 붙여놔야…
[안내사항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뭐지? 갑자기 무슨 일…
아.
[시스템의 세번째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좆같은 마신새끼.
.
“으음…”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이리나가 조용히 눈을 뜬다.
“프레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리나는, 자신의 옆에 죽은듯이 잠들어있는 프레이를 보며 말한다.
“자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잠들어 있는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기까지 했지만, 잠들어있는 프레이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는 깊이 잠들어 버린듯 했다.
“하아…”
그런 프레이를 내려다보며, 이리나는 중얼거린다.
“난, 수면초가 듣지 않는단 말이야.”
어렸을때부터 여러가지 약초를 가지고 물약을 만들던 이리나에게, 수면초는 그저 쓴맛이 나는 풀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프레이의 엄한 표정에 자기도 모르게. 아니, 사실은 약간의 사심을 담아 잠에 든 척을 한 이리나는.
“이 바보야.”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만지는, 부드러운 프레이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보.”
덕분에 콩닥거리는 심장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떨리는 눈빛으로 프레이를 바라보던 이리나는.
“나같은 애한테, 왜 그리 잘해주는데…”
이내, 조심스럽게 그에게 손을 뻗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은혜를 갚으라고.”
이윽고 침대에 누운채 프레이의 손에 깍지를 낀 이리나는, 지긋이 눈을 감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 슈우우…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깍지를 낀 그들의 손아귀 안에 구슬이 나타나자, 이리나는 조심스럽게 구슬을 집어들고는 살피기 시작했다.
“…으득.”
구슬은, 상당히 혼탁했다.
프레이의 은색과 자신의 붉은색만이 있어야 할 구슬에, 다른 색들이 침범되어 있었다.
“왜 나만…”
처음에는 한명정도가 먼저 계약을 한줄 알았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니 자신보다 먼저 그에게 영혼을 바친 사람은 한명이 아니었다.
게다가 분명히 처음 구슬을 뽑아낼때는 없었던 검은 색까지 섞여있는걸 보면, 카니아가 자신의 몸안에 남아있던 프레이의 영혼을 그에게 불어넣을때 무슨 짓을 한것 같다.
“나만 항상 늦는거지…?”
피의 맹세 정도면, 충분하진 않아도 최소한 진심 정도는 보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정도는 다들 기본으로 프레이에게 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대로라면, 프레이에게 속죄는커녕 은혜조차 갚을 수 없어진다.
비록 한개의 패널티를 꼼수로 넘겼다지만, 여전히 그의 수명은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안에, 어떻게 해야 은혜라도 갚을 수 있을까?
대체, 어떻게 해야…
“……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이리나의 뇌리에, 별안간 한가지 정답이 떠올랐다.
‘피의 맹세’를 완전히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
완전히 지쳐버린 그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아, 아직 프레이에게 순결을 바친 사람은 없잖아…?”
결정적으로, 아직 아무도 프레이에게 하지 않은 것.
“…읏.”
프레이와 깍지를 끼고 있던 이리나의 손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