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16)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16화(16/524)
Episode 16
“…으윽.”
학교 기숙사에 도착한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붕대를 등에 감기 시작했다.
사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카니아가 언제 기숙사에 들이닥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응급 처치를 끝내야 한다.
‘…망할 시스템. 이렇게 굴릴거면, 치료에 관련된 아이템이나 좀 지원해 줄 것이지.’
치사한 시스템을 저주하며 처량하게 붕대로 응급처치를 하고 있으니, 갑자기 분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세계를 지키려고 이렇게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나에게 겨우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1분밖에 정체를 못 숨기는 가면이나 때려도 아프지 않는 채찍 따위나 주다니… 아무리 ‘위악’을 메인으로 한 시스템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최소한, 바르면 바로 상처가 낫는 연고나 마시면 즉시 생명력이 회복되는 물약 정도는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씩씩거리던 나는, 이윽고 다시 찾아오기 시작한 등의 통증에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솔직히, 이쯤 되면 아무리 정신력 수치가 9나 되는 나라 할지라도 멘탈이 흔들린다.
아무리 세상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 나라 할지라도, 내가 이런 짓을 안하면 세상이 멸망해버린다 할지라도, 다시 살아나 호의호식을 누리며 살아갈 기회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악행에 물드는건, 위악자로서의 나와 용사로서의 나를 철저히 구분함으로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히로인들에게, 주변사람들에게 구박받고 미움받는 것도 버틸 수 있다. 내가 그들에게 미움받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로운건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
단 한명의 이해자도 존재하지 않는 이 외로운 고행은, 아무리 용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가끔 흔들리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은 굳이 이렇게까지 강박적으로 위악을 저질러야 하나, 적당히 멋있고 포스있는 뒷세계 흑막으로 군림하며 안정적으로 포인트를 모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다.
나는 고상하고 고결한 어투를 사용하는, 멋진 흑막이 아니라 추악하고 찌질하며 유치한 삼류악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조님이 남기신 예언서에 따르면, ‘위악자 루트’를 탔을때 고를 수 있는 성향 중 가장 클리어율이 높은 성향이 바로 내가 따라하고 있는 ‘삼류악당’형이다.
그 이유는, 곧 있으면 시스템에 추가될 ‘누적 악명도 시스템’ 때문이다.
누적 악명도 시스템은 일주일에 한번, 세계에 퍼진 내 악명을 평가해 포인트로 환산해주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이야 말로, 포인트를 말 그대로 끌어 담을 수 있는 ‘위악자의 길’ 시스템의 핵심중의 핵심인데… 그 핵심 시스템이 가장 포인트를 후하게 쳐주는 성향이 바로 이 ‘삼류악당’ 성향이라고 한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긴 하다.
예를 들어, 당장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뒷세계의 거물로 악명이 자자한 유스티아노 백작을 아냐고 물어보면 십중 팔구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라이트 공작가의 제 1남인 망나니 공자 프레이를 아냐고 묻는다면 십중 팔구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러한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는 사람들만 아는, 뒷세계에서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군림하는 흑막보다는 제국 전체에 악명이 자자한 망나니가 세상에 더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포인트 벌이 면에서는 뛰어난 이점을 가진 ‘삼류 악당’ 성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선조님이 원래 계셨던 세계의 게임에서는 가장 선택 빈도가 낮은 성향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의 스토리가 너무 암울해지기 때문이다.
클리어율은 상당히 높지만 그 성향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기에, 재미를 위해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람들은 ‘삼류 악당’ 성향을 절대 선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만 한다면 나를 뺀 모두를 거의 확정적으로 살릴 수 있는 ‘삼류 악당형’을 선택했다.
내가 있는 이곳은, 재미와 유흥을 위한 게임인 ‘블랙테일 판타지 2’가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실제로 살아 숨쉬며 존재하고 있는 선라이즈 제국이기 때문이다.
“어디보자. 그래, 이 정도면 감쪽같…응?”
그렇게 미련을 버리며 마음을 다잡은 나는, 옷 속에 붕대를 매는걸 완료한 후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혹여라도 붕대를 맨것이 티가 나지는 않는지 점검을 하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 브로치가 어디갔지?”
뒷골목의 주인장에게 비밀리에 특별 주문을 해서 만들었던, 위급시 원격으로 카니아에게 생명력을 전달 할 수 있는 별모양 브로치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뒷골목에서 흘린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흘린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서큐버스 퀸과 전투를 할때 잊어버린 걸까? 경매장에서 히로인들에게 쫒겨다닐때 떨어트린 걸까? 아니면 인파들 사이에 끼어들었을때 어디로 굴러 떨어져 버린 걸까?
‘…아까워 죽겠네.’
브로치를 제작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외투를 걸치고 찾으러 나서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다.
지금 내 몸 상태는 당장에라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인데다가, 괜히 브로치를 찾겠다고 뒷골목을 설치고 다니다가 메인히로인들에게 발견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주인장은 어떻게 됐지?’
이솔렛에게 두들겨 맞고 기절했던 주인장은, 테러 발생이라는 위급사항 때문에 그녀에게 버림받은 채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아마 얼마 못가 다시 깨어나긴 했을테지만, 가게가 박살이 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 주인장에게 브로치의 제작을 다시 부탁하는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생명력 원격 전달 브로치’를 분실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예비품을 만들어 놓았었다는 점이다.
나는, 예비 브로치를 꺼내 가슴팍에 달기 위해 집에서 챙겨온 가방의 앞주머니에 마법으로 만들어둔 비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음?”
그런데, 브로치와 함께 웬 종이 쪼가리가 내 손아귀에 집혔다.
‘…난 종이를 여기 넣어둔 적이 없는데?’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구겨진 종이 안에 무슨 글자가 써져있는 걸 발견하고는 종이를 활짝 펼쳤다.
–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
그리고 첫 단락을 읽은 순간, 편지를 잡고 있던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전대 용사가 남긴 언어인 ‘한글’로 써져있는 편지의 첫 단락이, 전대 용사의 필체를 그대로 따라한 우리 아버지의 필체로 써져있었기 때문이다.
– 이 쪽지를 보고 놀랐느냐? 그래, 놀랄 수밖에 없겠지. 나도 방금 전에 꽤나 놀랐으니 말이다.
“…어, 어째서? 전회차에는 이런 쪽지가 없었는데?”
분명히 전회차에서는 가방의 비밀 공간에 이런 쪽지가 없었기에, 메인 히로인들의 기억 이외의 알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내용을 쭉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 결국 마왕과 동귀어진하고 회귀하는데 성공했나보구나? 내 눈앞에 [기억 조정 10분 전] 이라는 요상한 글귀가 떠오른 걸 보니 말이다.
“…아, 그런거였구나.”
다행히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나에게 해가 될 변수는 아니었기에 안심을 한 나는 편지의 내용을 마저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 그래서 나는 어떻게 죽였느냐? 독살? 교살? 참수? 수장?
그리고 쪽지의 다음 내용을 본 순간 나는 잠시 질끈 눈을 감았다가, 이내 다시 눈을 뜨고는 덜덜 떨리는 손을 제어할 생각도 못한채 다음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 설마 부자의 정이니 뭐니 하고 안 죽인건 아니겠지? 아니, 그럴리는 없겠지. ‘패륜’은 용사의 무구를 폭주시키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행위니 말이야.
쪽지의 내용이 맞다. 나는, 전회차에서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였다.
용사의 가문인 ‘스타라이트’ 가문의 직계혈통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용사의 무구’를 폭주시키려면, 그 직계혈통이 무시무시한 죄악들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죄악들 중에서도 필수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이벤트’가, 바로 패륜. 즉, 주인공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아버지를 죽이던 그 순간이 나의 최대 고비였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운명인가?
그렇기에, 회귀를 하고 나서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아버지지만… 나는 일부러 아버지를 만나는 걸 피했다. 아무리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해도 아버지의 얼굴을 볼때면… 그때의 장면이 생각나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아무튼, 지금 이 쪽지를 보고 있을 아들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줬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최대한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해내려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던 나는, 다음 대목을 읽고는 잠시 얼어붙었다.
– 이 아비가 미안하다.
“………….”
잠시 그 대목을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다음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나는, 그 누구보다도 착하고 순수했던 너에게 그런 책임을 떠넘겨 버린 내가 너무 밉단다.
“아버지…”
– 차라리, 내가 그 예언의 당사자였다면… 혹은 그 운명을 너 대신에 이어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너같은 착한 아이보단, 이 못난 늙은이가 악행을 하는 데에는 더 적합할테니 말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어느새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떨어지는걸 느끼며, 나는 나보다 착하면 착했지 나쁘지는 않으셨던 유쾌한 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 솔직히 너에게 사죄하고 싶은 것도 많고, 쓰고 싶은 내용도 많이 남았지만…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고생을 한건 넌데 내가 구구절절히 떠드는 것도 웃기기에 이쯤에서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할 것 같구나.
“………….”
그 말에 상당한 아쉬움을 느끼며 마지막 대목을 읽던 나는, 이내 눈을 휘둥그레 떴다.
– 제국 은행에 차명 계좌를 하나 만들어 놨단다. 원래는 똑똑한 너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복잡한 힌트를 남겨두려 했었는데, 이런 기회가 있으니 그건 없애놓아야겠어.
‘…차명계좌를?’
– 그곳에, 너의 2회차를 대비하여 모아왔던 돈을 넣어두었단다. 물론, 공작가의 재산이 아니라 개인 사업으로 번 돈이니… 기억이 조정되어도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거다.
이윽고 편지에 적혀있는 차명계좌의 비밀번호와 인증 방법을 잠시 살펴보던 나는, 추신사항에 적혀있는 내용을 읽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 ps. 사랑한단다, 아들아.
[아브라함 라온 스타라이트]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거리던 나는, 행여나 갑자기 카니아가 들어올까 걱정하여 눈물을 억지로 집어 삼키고는 편지를 비밀 공간에 밀어넣고 침대로 향했다.
“…..아윽.”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침대에 누운 나는, 이내 등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자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난, 용사야. 그러니…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어쩐지 누군가가 비아냥거리며 ‘정말로?’ 라고 내 귀에 속삭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에 들기 힘들 것 같다.
.
“…다녀왔습니다, 도련님.”
“………….”
“도련님, 늦은 밤이지만 시키실게 있다면…”
“…필요 없어.”
결국, 카니아가 올때까지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나는 위악을 떨 의욕도 잃은채 멍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도련님, 혹시 말입니다만….”
“…응?”
“…어디 아프십니까?”
그런데, 카니아가 나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져온다. 내 모습이 그렇게나 초라해 보이는 걸까?
“…신경꺼.”
“………”
내가 의욕없이 대답하자, 카니아는 가만히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품에서 검은 고양이 인형을 책상에 내려놓더니 간이침대로 향했다.
“도련님, 자기 전에 옷이라도 갈아 입으시지요.”
“…나한테 신경 끄래도.”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그렇게 불이 꺼지고 나서 몇시간동안 눈을 뜬 채 멍하니 누워있던 나는, 카니아가 잠에 완전히 빠진걸 확인하고 난 뒤에 퀭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항했다.
“…그럼, 오늘도 해볼까.”
그렇게 한동안 그녀의 배에 손을 올리고 생명력을 나누어주던 나는, 별안간 몰려온 구토감에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쿨럭!!! 뭐야, 대체 왜… 아, 나 오늘 무리했지…”
그녀에게 생명력을 주는게 습관이 되어 버린데다가, 몸을 너무 혹사시키는 바람에 머리가 잘 안돌아가 나 또한 생명력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그녀에게 생명력을 주다가 피를 토하고 말았다.
“…젠장,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
나는, 온 몸에서 탈력감을 느끼며 바닥을 닦다가 문득 책상에 올려져있던 고양이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계속 카니아의 품에 안겨있다가 오랜만에 책상으로 나온 고양이가 꽤나 반가웠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를 집어들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고양아,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있었어.”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하다가는 밤이 샐것 같아서 다는 못말하겠고… 대충 죽을뻔한 고비를 최소한 3번은 넘긴 것 같아.”
“…………”
“그리고…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편지도 봤어. 그때는 정말이지 울음을 터트릴 뻔 했는데… 꾹 참았어. 왜냐면, 난 용사니까.”
“…솔직히, 힘들어. 힘들어서 죽을것 같은데, 어쩌겠니? 내가 용산데. 열심히 할 수밖에.”
“…………..”
이런 말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기에, 고양이를 바라보며 속마음을 털어놓던 나는 어느새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렸다.
“…잠깐,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왠지 모르게 따듯한 기분이 느껴지는 고양이를 끌어안은 나는, 카니아가 깰세라 숨죽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리 용사라도… 힘든건 어쩔수가 없네…”
그렇게 한참동안 눈물을 흘린 나는, 이내 마음이 어느정도 후련해지자 고양이를 내려놓고는 침대로 향했다.
“…저거, 진짜 하나 사야겠어.”
그렇게 눈을 감고 잠든 나는, 검은색 고양이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꿈을 꾸며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
.
“…도련님, 일어나십시오.”
“……으음.”
거대한 검은 고양이의 배에 올라타서 뒹굴고 있는데, 카니아가 날 흔들어 깨웠다.
“…벌써 아침이네.”
창문을 보고 아침이 찾아왔음을 깨달은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내가 얼마만에 울은거지? 전회차에서도 몇번 안 울었었는데 말이야.’
이솔렛이 죽었을때, 히로인들이 죽었을때,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였을때를 제외하면 그다지 운 기억이 없는 나였는데, 아주 성대하게 울어버렸다.
아무래도, 히로인들의 기억이 돌아와 난이도가 전 회차보다 몇배는 더 올라가 버린 불합리한 상황에 처해서 쌓인게 많았나보다.
‘…그런데, 기분이 꽤 상쾌하네? 실컷 울어서 그런가?’
의아해 하며 정보창을 켜보니, 꽤 놀라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이름: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 [능력: 힘 ???/ 마력 ??? / 지능 ??? / 정신력 9.3] [특이사항: 별의 가호/탈진/생명력 부족] [성향: 용사]‘…정신력이 0.3이나 올라갔다고?’
예언서에 따르면, 스탯이 9 이상이면 어떠한 계기가 없으면 수치가 잘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설마 어제 고양이 인형을 안고 운게 수치가 올라간 계기였던 걸까?
‘…하긴, 가끔은 감정을 분출하는 날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아무래도, 어젯밤이 내 멘탈이 깨지느냐 안 깨지느냐의 고비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신력 수치가 거의 최상급이기에 그런 고비를 고양이 인형 하나의 도움으로도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뭐, 고양이 인형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니 조금 쪽팔리긴 하지만… 덕분에 정신력 스탯이 올라가는 행운이 찾아왔고 기분도 상쾌해졌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카니아, 멀뚱멀뚱히 서서 뭐해? 아침밥 좀 갖다 줘!”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평소처럼 카니아에게 신경질을 내며 아침밥을 가져올것을 명령했다.
“………”
“…뭐해?”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카니아가 내 명령을 듣지 않은 채 그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도련님, 제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뭐?”
그렇게 한동안 날 쳐다보던 카니아가 입에서 뚱단지 같은 말을 꺼내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침이나 가져오라 소리를 치려했지만…
“됐고! 아침이나…!”
“제가 어제 뒷골목에 있는 경매장에 갔는데 말입니다…”
“가져, 오…”
이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는 말을 흐리며 다급히 두뇌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뒷골목의 경매장이라, 흥미롭네. 계속 말해봐.”
“그런데, 그곳에서 가주님이 쓰던 검과 똑같은 검을 찬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그녀가 아버지의 검을 언급한 순간, 나는 불현듯 내 애검이 아버지가 준 선물이었다는 걸 떠올려냈다.
‘…워낙 깨끗하고 예리하기에 장인에게 새로 주문한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버지가 쓰시던 검이었어!?’
잠시 아버지의 구두쇠같은 면모를 한탄하던 나는, 이내 그게 다 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떠올리고 조용히 헛기침을 한 다음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냥 비슷한 걸 수도 있잖아? 아니면 그 사람이 바람을 쐬러 나온 아버지였나보지.”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시덥지 않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그만…”
“…아, 도련님. 브로치가 떨어졌습니다.”
“아? 으응…”
그렇게 그녀의 말을 착각이나 우연으로 일축시키며 아침식사를 가져오게 하려던 나는, 그녀가 허리를 숙이더니 내 브로치를 내밀기에 무의식적으로 브로치를 받아들고는 내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어?”
그런데, 내 가슴에는 이미 별모양 브로치가 떡하니 꽂혀 있었다.
“검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그 브로치를 흘리고 갔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브로치가 도련님이 늘 차고 다니시던 브로치와 똑같지 뭡니까?”
“……….”
“설마 그것조차 우연이라 하진 않으시겠죠?”
이윽고 카니아가 조용히 날 추궁하자, 나는 다급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이건 뒷골목의 마도구 상점에서 산 브로치다. 꽤 유명한 곳이었으니, 아마 그 녀석도 거기서 그 브로치를 샀겠지.”
“…그 가게는 어디에 있습니까?”
“망했어, 거기.”
“방금 유명한 곳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거기 주인장이 성질이 포악한 사람과 시비가 붙어서 말이야. 그래서 가게가 산산조각이 났어.”
“…그렇군요.”
“그래, 그러니까 헛소리는 그만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변명을 해낸 나는, 우선은 카니아를 내보내고 향후 대책을 생각해 보려 했으나…
“…앗, 도련님! 저기!”
“…..?”
그녀가 갑자기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가리키자, 어제의 일을 알아낸 마왕 간부가 쳐들어오기라도 한건가 싶어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 쿡!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녀가 세게 내 등을 눌렀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등을 부여잡은 채 침대에 엎어졌다.
“지, 지금 이게 뭐하는…”
“…어제 도련님이 제게 쓰셨던 수법 아닙니까?”
“…….!!!”
카니아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떡 벌린 나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어제, 왜 절 구해주신 겁니까? 도련님?”
“아…”
그리고, 그 순간…
[패널티 발생!]“…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서 그럽니다. 게다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도 당최 이해가 안 가고요. 그러니, 부디 절 납득시켜 주시길…..”
“…안돼에에에에에에!!!”
“…..!?”
절대 뜨질 않길 바랬던, 시스템 창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영구적 디버프: 위악자의 숙명] [사용자의 수명과 생명력이 대량으로 감소됩니다!] [스택:1]“도련님? 왜 그러시는…”
“커흐으윽!!!”
“…꺅!?”
그리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 시스템창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어느때보다도 많은 피를 토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그렇게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진 나는, 나에게 손을 뻗는 카니아를 감기기 시작한 눈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의식을 잃었다.
“………….도련님?”
한편 앞으로 쓰러지던 프레이를 손을 뻗어 붙잡은 카니아는, 정신을 잃은채 축 늘어진 프레이를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이 무색하게도, 그날 프레이는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