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17)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17화(17/524)
Episode 17
나는, 벌써 몇시간 째 침대에 누워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프레이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그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추궁하니, 갑자기 피를 토하고는 쓰러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프레이에게, 지병은 없었는데…’
열심히 기억을 되짚어 보지만, 전 회차에서 그가 이렇게 아팠던 적은 역시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회차에서 그는 왜 갑자기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어버린 걸까?
‘…혹시, 밤마다 나에게 하는 짓과 관계가 있는건가?’
흑마법 ‘숨겨진 시선’으로 지난 며칠간 그를 관찰한 결과, 그는 매일 밤마다 내 배에 손을 올린채 한참동안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지친 표정으로 내가 깃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다가 터덜터덜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간다.
하루종일 그와 붙어 지낼 수 있기에, 면밀히 그를 관찰해 봤지만 그것 이외의 수상한 행동은 딱히 보이지를 않았다.
그러니 기숙사의 침대 시트에 있던 피 범벅의 손자국과, 저번에 그가 날 덮쳤을때와 오늘 새벽에 토했던 피, 그리고 지금의 의식불명 상태는 아마 그가 밤마다 나에게 행하는 행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나에게 밤마다 행하는 행위는 뭘까?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것을 정체불명의 사술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이 시점부터 프레이가 마왕의 내통자였다면, 그가 내 몸에 있는 흑마력을 모종의 수법으로 뽑아가 사악한 일을 벌이거나 마왕에게 바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회차에 내 몸상태가 그렇게나 악화됐던 것은 그가 그런 짓을 옛날부터 몰래 해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는 내 몸 상태를 호전시키는 능력을 가진게 아니라 망가트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프레이는 그가 날 덮쳤을때 했던 말처럼 날 집사로도, 사용인으로도, 심지어 인간으로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도구따위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랬어야 하는데…’
이것이 지금까지의 내 추측이었다. 그런데,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그 추측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제 그는, 검은 로브와 가면을 쓴 채로 나타나서 악마로부터 날 구했다.
그저 흑마력을 뽑아갈 도구나 저장고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라기엔, 등이 칼로 꿰뚫리는 치명상까지 입어가면서 말이다.
그가 평소처럼 날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도구로 취급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게다가, 그 강함은 뭐였지?’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는 약하다. 전회차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스타라이트 가의 수치로 불렸었다.
왜냐하면, 스타라이트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별의 마나’는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무술 실력은 형편 없었으며, 마력은 0에 가까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차기 검성이라 불리는 이솔렛을 압도했다.
기절해있다 깨어났기에 이솔렛이 쓰러지는 장면밖에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그때 프레이는 검을 역날로 쥐고 있었다.
즉, 그는 사실 역날검으로 차기 검성을 쓰러트릴 만한 실력자였다는 것이다.
“……………..”
여전히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프레이를 쳐다보며, 나는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대체 왜 절 지켰던 거죠?”
“왜 강함을 숨겼던 거죠?”
“그리고, 대체 왜… 그렇게나 서럽게 울었던 거죠?”
돌아올리가 없는 질문을 던지며, 나는 이번엔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제 나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인형을 꽤 좋아하는 그가 혹시 방심을 하고 뭔가 단서를 남기지는 않을까 싶어, 껴안고 자던 고양이 인형을 책상에 남겨두었었다.
그가 내 배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하다가 또다시 토혈을 할때는, 역시 저건 사술이 아닌가 싶어 의심이 다시 자라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기에 속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고양아,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있었어.”
‘…좋아, 혼잣말을 시작했군.’
그런데 바닥에 토한 피를 닦던 프레이가 내가 깃든 인형을 들고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내 의도가 정확히 먹혀든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하다가는 밤이 샐것 같아서 다는 못말하겠고… 대충 죽을뻔한 고비를 최소한 3번은 넘긴 것 같아.”
‘…설마, 그 남자가 정말로 프레이였던 건가?’
그렇게, 어제의 일로 추측되는 이야기를 하는 그가 경매장의 가면남이라는 의심이 더더욱 커져갈 무렵…
“그리고…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편지도 봤어. 그때는 정말이지 울음을 터트릴 뻔 했는데… 꾹 참았어. 왜냐면, 난 용사니까.”
‘…용사?’
그가 난데없이 용사라는 말을 꺼냈다. 이해를 할 수 없는 그의 말에 잠시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던 그때, 그가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힘들어. 힘들어서 죽을것 같은데, 어쩌겠니? 내가 용산데. 열심히 할 수밖에.”
‘…….!’
그 말을 하는 프레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전회차에서도 본적 없었던 너무나도 서러운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해버린 나는 아차 싶었으나, 그는 그저 나를 부여잡고 서럽게 울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날 잡고 울던 그는 이윽고 터덜터덜 그의 침대로 돌아갔고, 덕분에 나는 밤새 고양이에 깃든채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모든것에 이유가 있던 겁니까?”
그리고 밤 시간 동안의 기나긴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었다는 새로운 가설이었다.
그가 자신을 용사라 칭하며 서럽게 울던 모습은, 그런 이유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을정도로 불쌍하고 외로워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아침 그에게 진실을 물어보려 했다.
매일 밤 나에게 무엇인가를 하는 이유가 뭔지, 강함을 숨긴 이유는 뭔지, 왜 허구한 날 피를 토하는 건지… 그리고, 왜 그렇게나 외롭고 슬퍼하면서 추악한 짓거리를 할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
‘…시간이 없는데.’
나는 내일부터 황녀, 그리고 성녀와 본격적으로 프레이를 몰락시키고 죽일 계획을 짜기로 결의했었다. 그러니, 더 늦기전에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의 진실에 대해서 알아내야 한다.
프레이를 계속 증오하며 죽음에 몰아넣을지, 아니면 그의 사정을 참작해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게 해줄지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슈우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대량의 검은색 기운을 아공간에서 소환해냈다.
이 검은색 기운은 회귀를 한 첫날에 그에게 선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저주’를 사용하기 위한 흑마력이다.
프레이가 내 흑마력을 뺏어가고 있다는 추측을 했을 때부터, 매일매일 내 몸에 쌓여있던 흑마력을 상당 부분 투자해 아공간에 밀어넣었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내 흑마력을 뺏어가는게 맞다면, 미리 이렇게 틈틈히 흑마력을 모아 빼돌려두지 않으면 저주를 사용할 흑마력조차 나중에는 남지 않을 거라 생각해 했던 행동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나는 지금부터 이 흑마력을 사용하여 프레이의 무의식으로 침투해 진실을 알아낼 생각이다.
꼴에 별의 용사의 직계 후손이랍시고, 전 회차부터 정신 조작 마법에 절대적인 내성을 가지고 있었던 프레이지만… 무의식 만큼은 지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공간은, 말 그대로 미지의 공간이므로… 그런 공간과 유사한 기운을 띠고 있는 흑마력을 공명시켜서 침투한다면 손쉽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제 아무리 정신 공격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프레이라 하더라도 대응하기는 커녕 침투당하는 것을 인지하지조차 못할것이다.
이 고등 흑마법은, 의식을 ‘공격’하는 정신 공격과는 다른 상대방의 무의식에 ‘방문’하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장점이 있기에 단점 또한 있다.
무의식 속에서, 내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무의식에 방문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흑마력’의 어두운 기운이므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추악함과 어두운 것들이 실체화되어 사방에서 튀어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관리자’는, 날 현혹시켜서 영원히 무의식에 동화시키려 할 것이다.
물론, 사람의 무의식에는 몇번 침투해봤으므로 마력을 사용해 관리자를 상대하거나 제약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절대 방심을 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 샤아아악…
그렇게 주의사항을 상기하며 흑마력을 의식 불명 상태인 프레이에게 밀어 넣던 나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걸 여기서 사용하면, 그에게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저주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데…’
이건, 최후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둔 내 보험이다. 이걸 전부 사용해서 그의 무의식에 침투한다면… 남은 내 목숨을 전부 사용해도 그 저주는 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동안 고민을 하던 나는, 결국 기운을 마저 밀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꼭 그 저주가 아니더라도, 복수할 방법은 많으니까.”
그렇게 나는 앞으로 몇개월간은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을만한 분량의 흑마력을 프레이에게 전부 흘려보낸 후에, 조용히 눈을 감으며 그의 무의식에 공명하기 시작했다.
‘흑마력이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내걸 내가 쓴거니 상관없지, 뭐.’
그렇게,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그의 무의식으로 빨려들어갔다.
.
뭔가가 잘못 됐다.
“…주변이 너무 밝잖아?”
사람의 무의식은, 어두침침하고 온갖 이상한 것들이 떠다녀야 한다. 헌데, 이 공간은 밝고 신성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설마, 마법이 실패…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매일매일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모아온 흑마력을 전부 밀어넣었다. 술식 또한 완벽했고, 내 흑마력이 공명하고 있는 걸 보면 이 곳은 무의식 속이 맞다.
그렇다면, 여긴 왜 이리도 밝은 걸까?
“…저, 저기.”
“……..!!!”
그런 생각을 하며 잔뜩 긴장을 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내 아래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식겁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너는?”
“아, 안녕하세요 누나아…”
그런데, 내 앞에는 웬 꼬마 아이가 있었다.
잠시 그 아이를 수상쩍게 바라보던 나는, 이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네가 무의식의 관리자니?”
“…네!”
그러자,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
“…가만히 있어.”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마력 사슬로 꼬맹이를 칭칭 묶었다.
“콜록! 콜록! 수, 숨막혀요…!”
“…………”
꼬마가… 아니, 어린 모습의 프레이가 꽤나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헐떡대지만, 무의식의 관리자 앞에서는 절대 방심을 해서는 안된다.
방심을 하다간, 관리자에게 당해 영원히 상대방의 무의식에 갇히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관리자의 십중 팔구가 그런 짓을 저지르려 했으니 말이다.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걸 금지. 나에게 거짓을 말하는 걸 금지. 내가 명령하는걸 반드시 따르도록.”
“네, 네에…”
그러므로, 무의식의 관리자를 상대하려면 날 공격할 수 없게 하는 제약과, 속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제약과, 유사시에 말 한마디로 제압할 수 있도록 명령에 따르게 하는 제약을 마력으로 걸어두는게 기본 수칙이다.
“…흐익!”
제약을 건 내가 마력 사슬을 풀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어린 프레이가 날 두렵게 쳐다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혀 불쌍하지 않다.
그는, 내가 처음 공작저에 들어갔을때 저 모습으로 날 핍박하고 학대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그저 가증스럽게 보일 뿐이다.
“지금부터 내 질문에 답변해라.”
“…네, 넷!”
“…어제 프레이는 왜 날 지킨거지?”
내가 질문을 던지자, 어린 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당신을 구하고 싶었으니까요.”
“어째서?”
“소중한 당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기에, 프레이는 당신을 구하려 했어요.”
“……?”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가 도대체 왜?
“…이해가 잘 되질 않는데.”
“…네?”
“프레이는, 날 도구로 사용하고… 이용하려 했어. 그런 그가 날 소중하게 생각할 리가 없지.”
“…아닌데요?”
내 말을 들은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변했다.
“…프레이는 당신을 도구로 생각하지도 않고, 이용한것도 아니에요.”
“…………”
“…오히려 사랑했죠.”
“……….!”
그 말을 들은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게 대체 어딜 봐서 사랑이란 건데?”
“어, 그게…”
“그가 날 사랑해서 한 행동이 있다면, 말해봐.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행동을.”
내가 분노에 빠져 말하자, 어린 그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차가운 미소를 지어주며 비아냥 거리기 시작했지만…
“그것 봐, 없지? 그는 단 한번도 날 잘 대해준적이 없어, 이 착한 척이나 하는 가증스러운 꼬맹아. 그러니, 이제 연기는 그만하고 본색을…”
“예를 들면… 전 회차에서도, 이번 회차에서도, 당신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나누어 준 일이 있는데요오…”
“…뭐라고?”
꼬맹이가 소심한 표정으로 답변을 하자,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거 말고도 좀 더 있는데, 계속 할까요오?”
“………!”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을 듣자,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잘못된 건, 사실 나였다는 것을.
.
“……………..”
“저, 저기… 괜찮나요?”
정신이 멍하다.
무의식의 관리자인 어린 모습의 프레이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충격적이었던, 프레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
그가 가진 용사로서의 숙명.
악행을 저질러야만 각성 시킬 수 있는 용사의 무구.
프레이가 세상을 한번 멸망시키고 회귀하지 않으면 마왕에게 멸망하는 세계.
프레이가 가진 위악자 시스템.
그리고…
“그렇게, 끝에는 용사의 무구를 깨운 프레이가 마왕과 함께 격돌하게 돼요.”
“…………”
“그 전투에서 프레이는 완전한 힘을 내게 된 용사의 무구를 사용해서 마왕을 쓰러트리지만, 완전해진 용사의 무구의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 얼마 안가서…”
“………그만.”
“…생명력이 전부 바닥나게 돼요. 예언서에 남겨진 전대 용사의 말에 따르면… 그 이후에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프레이를, 그제서야 모든 걸 눈치 챈 메인 히로인들이 붙잡고 울기 시작하고…”
“…..그만해.”
“…프레이는 그런 그녀들을 어느때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다가, 이내 태…”
“…….그만하라고!!!!!”
“하, 하지만…”
“미안해… 그 부분은 이제 그만 말해줘… 부탁이야…”
“……..”
내가 간곡히 부탁하자 어린 프레이는, 미리 걸어둔 마법의 제약에 의해 강제로 입을 다물게 됐다.
물론, 저 아이는 진실을 말한 죄밖에 없지만… 더 이상 들었다간 정신이 무너져, 무의식에 동화되버릴 것만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궁금한게 하나 있어.”
“………네.”
“전 회차에서 내가 그의 눈앞에서 자결했을때… 그는 무슨 반응을 보였었어…?”
“…살면서 다섯번째로 우셨어요.”
“…다섯번째로?”
다섯 번째로 울었다는 말에 설마 싶었던 내가 다른 상황들을 묻자, 어린 프레이는 차근차근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번째는 이솔렛이 아카데미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을때였어요.”
“…그렇구나.”
“처음으로 자신의 지인을 잃었던 프레이님은, 하마타면 그때 악행을 저지른다는 계획을 포기할뻔 했죠.”
“…두번째는?”
“두번째는 마왕군이 황성을 점령했을때, 황녀가 황성을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프레이의 약혼녀가 결사항전을 하다 마왕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였죠. 그때, 프레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초라하게 버려져있던 그녀의 시체를 땅에 묻는 것 밖에 없었어요.”
“세번…째는…?”
“세번째는, 이리나 필리어드가 마왕에게 치명상을 남기고 사방으로 찢겨져 죽었을 때였죠. 그때는, 시체조차 남지 않았기에… 그저 온통 피범벅이 된 곳에 주저 앉아 한참을 우셨어요.”
“…나머지는 알아서 말해줘.”
“네번째는 페를로체가 제국민들을 배에 태우고 자신은 육지에 남아 마왕군을 저지하다 죽었을때였고, 다섯번째는 당신, 그리고 여섯번째는 황녀를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제물로 바치면서였어요.”
“…하.”
그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 앞에서 감히 그를 역겹다고 칭하며 자결했던걸까?
“일곱 번째는… 마왕과 동귀어진을 하러 가기 전에 아버지와 한 최후의 만찬에서였죠.”
“………”
“그때 프레이는, 최대한 덜 고통스러운 독약을 아버지의 식사에 넣고는 조용히 식사를 하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더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자… 식탁에 엎어져 한동안 오열을 했었어요.”
“…그리고, 마왕과 동귀어진을 하고… 회귀를 했다고?”
“…네. 그리고 8번째 울음은 이미 보셨었죠?”
그렇게 어린 프레이의 말이 끝나고, 긴 정적이 흘렀다.
“…그럼, 나에게 너무 많은 생명력을 줘서, 지금 프레이가 의식 불명이 된거야?”
“……..”
“난 그가 의식을 잃어가면서까지 불어넣어준 생명력을… 내 본인의 것인 줄 알고 흑마력으로 치환해서 막 쓰고 다녔던거고?”
“그, 그게…”
“그랬으면서 내 생명력을 뺏어가는 줄 알고 그를 증오하며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니… 정말이지…”
“…그건 시스템 패널티인데요오.”
차갑게 웃으며 자조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린 모습의 프레이가 내 혼잣말에 끼어들었다.
“위악자임을 들키면, 수명과 생명력이 대폭 감소해요. 그렇게 되면… 클리어율도 대폭 감소…”
“우욱…!”
“…누나?”
그 말을 들은 나는, 구역질을 시작했다.
역겹다.
저주받은 마력을 가진 사악한 흑마법사 주제에, 그가 날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을 깎아가며 양도한 생명력을 마음껏 사용한 내가,
그런 그를 한껏 증오하고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내가,
그리고, 시스템 패널티를 발동시켜 그의 수명과 생명력을 대폭 감소시키고 이 세상이 구원받을 가능성 마저 낮춰버린 내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겹다.
“우웩… 우웨엑…”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바닥에 엎드려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마세요.”
그런데, 어린 모습을 한 프레이가 다가와 내 등을 어루만지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자신을 미워하지 마세요.”
“…뭐?”
“미움받는건, 저 하나로 충분하니까요.”
“…….!”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주변의 환하고 신성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별과 같이 빛나고 있다.
그런 그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더 이상 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누면 정신을 잃고 무의식의 세상에 동화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끝에는, 반드시 희망이 존재할거에요.”
그렇게 나는, 꿈결에서나 들려올만한 그의 몽환적인 소리를 들으며 다시 기숙사의 방으로 돌아왔다.
프레이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
“…으으.”
눈을 뜨니, 기숙사 천장이 보인다.
왜 기숙사 천장이 보이는걸까? 정신은 또 왜이리 몽롱한 걸까?
“…도련님.”
“카니아? 네가 왜… 아.”
잠시 헤롱헤롱 거리던 나는, 눈앞에 무표정으로 서있는 카니아를 발견하고는 이내 얼어붙었다.
‘…망했네, 이거.’
카니아에게 내 선행을 들켰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내가 얼마동안 이러고 있었지?”
“…하루종일 이러고 있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창밖을 바라보니, 새들이 아침 햇살을 맞으며 흥겹게 지저귀고 있었다.
애써 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
그리고, 카니아는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전부 설명해 주려 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녀가 모든 진실을 알게된다면, 아마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비록 의도한건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내 생명력을 쓴데다 시스템 패널티를 발동시켜 날 위험에 빠트렸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난 모든걸 홀로 안고 가기로 결심했었으니, 그런 사실을 알려 그녀를 고통에 빠지게 하진 않을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만약 메인 히로인들에게 선행이 들켰을때를 대비해 짜놓았던, 카니아가 최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만한 시나리오를 말할것이다.
고통받는건, 나 하나로 충분하니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겠지.”
“…………..”
“…그럼, 진실을 말해주마.”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카니아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난 널 이용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느껴지는걸 보니, 역시 난 미움받는게 어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