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19)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19화(19/524)
Episode 19
“도련님,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응.”
저녁이 되자, 카니아가 음식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
“오늘 음식은 뭐야?”
“도련님이 좋아하시는 샌드위치와 커피 입니다.”
“그래?”
카니아에게 내가 위악자임을 들킨 후에 좋아진 게 하나 있다면 그녀가 차려주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카니아는 요리를 무척이나 잘한다.
어렸을때부터 요리를 잘했던 그녀는 까다로운 척을 하던 내 입맛에 맞추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요리를 연구했었고, 그 때문에 웬만한 셰프들은 저리갈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혹시 맛이 없진 않으십니까?”
“아니, 너무 맛있어.”
“그렇습니까?”
무의식적으로 칭찬을 한 내가 아차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카니아는 그런 대접이 이상한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니아, 넌 어렸을때부터 요리를 잘했어.”
“제가요?”
“응, 그래서 솔직히 악행을 하기 위해 음식을 남길때마다 아쉬웠었지.”
“…제 요리를 남겼던게 음식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던 겁니까?”
이왕 칭찬을 해버린 김에 그냥 계속 칭찬을 이어 하자, 내 말을 들은 카니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트릴뻔한 나는, 앞의 접시에 담겨있는 샌드위치를 집어들며 말했다.
“몰랐던거야? 직접 맛을 보면 내가 억지를 부리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직접 먹어 봤지만 도련님께서 계속 맛이 없다고 하시기에 저 또한 제가 만드는 음식은 맛이 없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먹여본적은 없고?”
“요리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기에, 도련님이 음식을 차려오라 명령하실때 빼고는 음식을 만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랬구나…”
기가 죽은채 조리실에서 음식을 만들었을 카니아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앞에 있는 커피를 집었다.
“…음.”
“쓰지 않으십니까?”
“넌 커피도 잘 타, 카니아.”
“정말요?”
카니아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기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해주었다.
“너에게 했던 심한 말들은 전부 거짓말이었어. 그렇게 알아둬.”
“…그렇다면, 제 음식이 맛있다고 해주던 동생의 말은 위로가 아닌 진실이었던 것이였군요.”
“그래, 맞아.”
나는 지금이라도 그녀가 자존감을 되찾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샌드위치를 계속 먹다가, 문득 첫번째로 회귀를 했던 날이 떠올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저번에 내가 샌드위치를 엎었던 날 있지?”
“네…”
“그때도 거짓말이었어. 정말 미안하, 아.”
그녀에게 미안하다 말할려던 나는, 이내 말을 멈추었다. 내가 그녀에게 설명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나는 그녀에게 사과할 자격조차 없으니 말이다.
“미안하다고요?”
내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카니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나는 결국 처음에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던 뻔뻔한 태도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푹 숙인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번에 약속했듯이, 내가 너에게 한 짓이 있으니까 앞으로 너에게 용서를 구하진 않을거야.”
“……”
“대신, 앞으로 너에겐 최선을 다해 잘해줄게.”
“…제게요?”
“그래,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너에게 매몰차게 대할 수밖에 없겠지만… 너와 단둘이 있을때만큼은 네가 원하는 걸 뭐든지 해줄게.”
“…뭐든지 말입니까.”
“그래, 뭐든지.”
내가 진심을 담아 말하자, 그녀가 조용히 날 쳐다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너에게 하는 속죄라고 생각하면 돼.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하는 거니까 받아줄 필요는 없고, 불쾌하다면 거부해도 돼.”
그렇게 말한 후에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니, 카니아가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알겠어, 카니아.”
전혀 내키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한 걸 보니, 마지못해 알겠다고 한게 분명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그녀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물론 다른 ‘메인 히로인’들에게도 잘해주고 싶지만, 가장 나 때문에 고생을 제일 많이 했던 사람이 바로 나와 항상 붙어다니던 카니아었기 때문이다.
죽을때조차도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그것도 내 앞에서 날 저주하며 죽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는가.
그러니, 이런 방식으로라도 잘해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카니아, 그런데 넌 안 먹어?”
그렇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이어하려던 나는 문득 카니아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련님의 식사만 준비해 왔습니다.”
“그럼, 넌 언제 식사를 하는데?”
그래서 그녀에게 식사를 언제 하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카니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도련님의 식사 준비를 할때 이것저것 챙겨먹었습니다.”
“…뭐?”
“도련님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요리를 해줄게.”
“…네?”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냥 칼로 재료들을 썰고 적당히 소금을 뿌리면… 윽!”
하지만 호기롭게 밖으로 나서려던 나는 온 몸에서 통증을 느끼고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곧 회복될거야.”
“그런것 치고는 회복속도가 너무 느린 것 같습니다만.”
“푹 쉬면 나을꺼야.”
내가 자리에 앉아 힘없이 대답하자, 카니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그녀가 책상에 놓여져 있던 고양이 인형을 들어올리는걸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카니아.”
“네?”
“저기 책상에 있는 검은 고양이 인형 말인데, 혹시 나도 하나 구할 수는 없을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사실 고양이를 좋아해서 말이지.”
그러자 카니아가 뚫어지게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긴, 며칠전까지 재수없다고 하던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아쉽게도, 이 고양이 인형은 동생이 수제로 만든거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카니아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정 그러시다면 도련님께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전 동생에게 하나 더 만들어 달라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카니아는 무표정으로 고양이 인형을 나에게 건냈다.
“…고마워.”
웬만하면 거절하려 했으나, 무려 내 정신력 수치를 0.3이나 올려준 고마운 인형이었기에 나는 고민 끝에 인형을 받아들었다.
“응? 왜 소리가 안나지?”
“네?”
“원래 이 인형, 배를 꾹꾹 누르면 귀여운 소리가 났었는데 말이야…”
“……”
내 말을 들은 카니아가 갑자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왜 그러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거길 왜 만지는겁니까?”
“응?”
“아니, 그게 아니라… 언제 인형을 만지셨던겁니까?”
“…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인형을 만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의 안색을 살펴보니, 그녀는 좋아하는 인형이 나에게 만져졌다는 사실을 알고 잔뜩 화가 난건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어… 네 허락도 없이 만져서 미안해. 하지만 너무 말랑말랑 해서…”
“……..”
“그리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귀엽다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말꼬리를 흐리기 시작한 나를 여전히 얼굴을 붉힌채 쳐다보던 그녀는, 이윽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인형은 제 흑마법 실험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흑마법 실험용으로?”
“네, 한번 매개로 설정하면 별다른 힘을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을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런 흑마법도 있었구나.”
“처음 흑마법을 사용해 인형을 매개로 만들때만 흑마력이 소모되고, 평상시에는 제 주변의 흑마력과 자동으로 감응해서 제가 깃… 아니, 마력의 소모 없이 움직이는 형태입니다.”
“잠깐, 그건 대단한 거 아니야?”
“물론 실험단계인지라 자주 고장이 납니다. 원래는 자기 혼자 움직이기도 하는데… 지금은 아마 고장 상태인가 보군요.”
“그렇구나.”
고양이 인형이 고장났다는 말에 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배를 꾹꾹 누르자, 카니아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제 흑마력이 강해지는 밤이라면 고쳐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그럼, 밤에 뵙겠습니다. 도련님.”
그 말을 하고 카니아는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아까도 일이 있다면서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잠시 그녀를 걱정하던 나는, 곧 그녀가 진실을 알고 내 꼴을 보기가 싫어진 나머지 자주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거라 추측하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양이를 안고 침대에 누웠다.
“…맞다, 오늘 밤에 카니아한테 생명력도 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다음주에 우리 집에 가면, 다른 일은 전부 제쳐두고 카니아의 동생에게 물약부터 먹여야 할 것 같다.
.
시간이 흘러 밤이 깊었다.
“크윽…”
“…괜찮으십니까?”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거리자, 자신의 상의를 들추어 배를 드러내고 있던 카니아가 굳은 표정으로 묻는다.
“아직, 아직은…”
“…정말 괜찮으신게 맞습니까?”
카니아가 왜 그러고 있냐면, 내가 지금 그녀의 배에 손을 올리고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을 양도할때는, 사람의 배, 심장 같은 중요 부위에 직접적으로 접촉해 불어넣을때가 가장 효율이 좋다.
그래서 생명력이 많이 깎여버린 지금, 나는 양도의 효율을 극대화 하기 위해 카니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의 속살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슴같은 민망한 부위에 손을 댈 수는 없으므로, 그나마 덜 부끄러운 자리인 배에 손을 대고 있다.
“………….”
슬쩍 카니아의 안색을 살피니, 그녀는 표정을 계속 굳힌 채 상당히 기분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꼴보기도 싫은 사람이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치가 떨리는게 당연할 것이다.
“…도련님, 이제 그만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쿨럭! 쿨럭! 하아… 그런 것 같네.”
하지만 이 짓을 하지 않으면 카니아가 죽기에 이를 악물고 계속 생명력을 전달하려 했지만, 1분만에 한계가 와 버렸다.
원래 5분 정도는 천천히 부드럽게 생명력을 넘겨줄 시 별 탈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새삼 패널티의 무시무시함이 느껴진다.
“입에 피가 흐르십니다.”
“원래 용사의 힘으로 흑마력을 치유할때 가끔 이래. 치료할때만 이러는거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네.”
“…그럼 잘 자, 카니아.”
“도련님도 안녕히 주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어느새 입에서 새어나온 피를 대충 닦은 나는, 카니아와 안부인사를 하고 침대로 향했다.
‘…아직도 안 움직이네.’
잠시 내 옆에 있던 고양이 인형을 아쉽게 바라보던 나는, 제발 내일 아침에는 어느정도 몸이 회복되길 빌면서 잠을 청했다.
.
“…콜록! 콜록!”
아무래도 회복이 되긴 커녕, 몸상태가 더더욱 안좋아져 가는 것만 같다.
잠을 자다 말고 기침과 함께 온몸에서 고통을 느끼며 깨버렸으니 말이다.
“으으…”
몽롱한 눈으로 알람시계를 확인해보니, 아직 새벽이다. 헌데, 몸이 이리도 쑤셔오는걸 보니 아무래도 오늘 잠은 다 잔것 같다.
“고양아… 나 힘들어어…”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옆에 두었던 고양이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시스템이든… 태양신이든… 다 졸렬한 놈들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아직도 고장나 있는거야?”
조심스럽게 인형에게 질문을 던져봤지만, 반응이 돌아오질 않는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고양이 인형을 들어올리고는, 배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너까지 조용하면, 말을 나눌 상대가 없단 말이야…”
“………”
“그냥 카니아에게 사실을 털어둘걸… 그러면 신세한탄이라도 할 수 있었을… 아니, 그건 아니지. 그랬다가 그 불쌍한 애가 죄책감이라도 느끼면…”
“…야옹.”
“…고양아?”
고양이 인형의 배를 계속 누르며 애처롭게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양이 인형이 작게 소리를 냈다.
“너, 고쳐진거야?”
“야옹?”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고양이 인형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울음소리를 냈고, 나는 그 다음 순간 격렬하게 고양이 인형의 배를 꾹꾹 눌러대며 환호했다.
“고양아아아아!”
“이, 이익… 익! 이야옹!”
“이제 고장나지 마아아!”
“야옹! 야, 하윽…!”
“…응?”
그런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가녀린 신음이 들려왔다.
당황한 내가 고양이의 배를 꾹 누른채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고양이 인형이 아둥바둥 거리기 시작했다.
“까, 깜짝이야!”
놀란 내가 인형을 떨어트리자, 내 배에 떨어진 고양이 인형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날 사납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 원래는 자동으로 움직인다고 했었지?”
아까전에 카니아가 한 말을 기억해낸 나는, 어느새 날 보며 하악질을 시작한 고양이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내가 배를 만져서 그러는거야?”
그러자, 날 사납게 노려보던 인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미안, 정말 미안해.”
배가 만져지는 인형의 기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사과를 던지자, 고양이 인형이 고개를 휙 돌리며 입을 삐쭉거렸다.
‘…한번 매개로 설정하는걸로 이런 정교한 모습을 구현해 내다니. 역시 흑마법은 신기하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카니아에게 흑마법이나 배워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나는, 이내 흑마법과 별의 마나는 상극이기에 목숨이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생각을 접고 고양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고양아, 그럼 앞으로 배 안 만지게 해줄거야?”
그러자 고양이 인형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채로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많이 삐졌나보다.
“…살살 만지면 안 될까?”
“……”
“세게 안 누르고 살살 문지를테니까… 제발 만지게 해줘… 응?”
“…야옹.”
결국 나는 고양이 인형에게 비굴하게 빈 다음에야 배를 만질수 있는 권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약간 패배감이 느껴지지만, 내 멘탈을 챙겨준 고마운 고양이 인형에게는 몇번이고 패배해 줄 수 있다.
“야옹…”
“헤헤… 부드럽다…”
그렇게 한참동안 고양이 인형의 배를 쓰다듬던 나는, 어느새 고통이 멎고 눈이 다시 감겨오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 인형을 꼭 껴안고 잠에 들었다.
그날, 나는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이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
“…도련님, 조심하십시오.”
“…응.”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양이와 놀면서 멘탈을 치유한 보람이 있었는지 정신상태는 상당히 맑아져 있었다.
그러나, 몸상태는 여전히 말이 아니었고 결국 난 그녀에게 부축을 받으면서 교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흐읏.”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카니아가 내가 비틀거리거나 내 손이 그녀의 배에 스칠때마다 자꾸 움찔거리며 신음을 내고 있다.
“카니아, 아까부터 왜 그래?”
“도, 동기화가 오류가 나서 감도가…”
“응?”
“아, 아니… 배탈이 나서 그렇습니다.”
“…저런.”
잠시 그녀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나는, 이내 그녀에게서 떨어지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게.”
“예?”
“배탈이 났는데 무리를 시킬 수는 없지.”
“그렇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잘해준다고 했잖아. 난 괜찮으니까 먼저 가도록 해.”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갑자기 입술을 꽉 깨물더니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왜 그래? 카니아?”
“별로 안 괜찮아 보이십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가만히 서있는데도 후들거리는 내 다리를 가리켰다.
“…이정도는 괜찮아. 난, 용사니깐.”
“용사니까, 괜찮다고요?”
그러자 카니아가 주먹을 꽉 쥐며 되물었다.
“당신은, 평소에도 그런 멍청한 생각으로 모든 일을 해오셨던 겁니까?”
“쉿, 누가 들을라.”
“…먼저 가겠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먼저 가겠다 말하고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좀 슬프네.’
아무래도 나는 위악자임을 들켜도, 들키지 않아도 결국 카니아에게 미움받을 운명인듯 싶다.
하지만, 마음을 굳세게 먹어야 한다. 나는 이제부터 시나리오를 뒤집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항인 메인퀘스트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구매 안한 스킬이 하나 있었지?’
오늘부터 본격적인 메인 퀘스트에 접어드므로,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스킬 상점을 열어 마지막으로 남은 스킬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 위악자의 기만 Lv1 250pt
설명) 거짓말의 설득력을 영구적으로 조금 상승시킵니다.
‘…이건 당연히 필요하겠지?’
전 회차의 경험 때문에 사람을 속이거나 연기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도가 텄지만, 영구적 버프인데다 거짓말의 설득력을 상승 시켜준다는 효과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앞으로는 눈치 빠른 황녀 클라나와 대륙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약혼녀 세레나를 상대해야 하므로, 역시 무조건 사는게 이득일 것 같다.
“…사실 나는 여자야.”
그렇게 잠재력의 물약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남겨둔 채 ‘위악자의 기만’ 스킬을 구매한 나는, 스킬의 효과를 실험해보기 위해 거짓말을 해보았다.
“…그다지 실감은 안나네.”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는지 딱히 체감되는건 없었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나는 이내 더 늦기 전에 교실로 향하려고 했으나…
“…헉.”
“…..!”
이내 성녀 페를로체가 입을 떡 벌리고 내 앞에 서있던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서, 성당 안 간다고!”
다급하게 그리 외쳤으나 성녀는 어김없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그렇게 오늘도 어이없이 ‘위악자의 직감’이 발동되나 싶었는데… 왠일인지 시스템 창이 뜨질 않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다, 다다 당신…”
“…..?”
“…여자였어요?”
“…..뭐!?”
어리둥절해 하고 있던 나는 이어진 페를로체의 멍청한 발언을 듣고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지려 했으나, 그녀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서더니 뛰어가버렸다.
그녀를 쫒아가기는 커녕 멈추라고 소리를 지를 기력조차 없었던 나는, 다시 교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중얼거렸다.
“…효과가 있는거야? 없는거야?”
스킬의 효력이 좋은건지, 성녀가 멍청한건지 모르겠다.
.
“오늘은, 공지사항이 하나 있다.”
교실에 들어선 후 자리에 앉아 귀족 학생들을 적당히 상대해주고 있으니, 이솔렛이 들어와 모두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수행평가가 하나 있을거다.”
그 말에 학생들이 웅성 거리기 시작하자, 이솔렛이 칠판을 텅텅 두드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최근, 제국 각지에서 정체불명의 마물들의 출현 빈도가 급증했다. 그렇기에, 황실에서는 아카데미의 전투 교육 비중을 늘린다는 칙령을 발표했지.”
그녀의 말을 듣던 나는, 드디어 마왕이 본격적으로 제국에 힘을 떨치기 시작했음을 깨닫고 침을 꿀꺽 삼켰다.
한편, 이솔렛은 아이들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볼 수행평가는, 학생들간의 1:1 대련으로 하겠다.”
그 말이 끝나자 교실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대련을 할 상대방은, 서로의 합의하에 정하도록 해라. 만약 짝을 구하지 못한다면, 내가 임의로 배정하겠다.”
이윽고 그녀가 대련자 선정 방식을 정하자 아이들은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빙 둘러보다가 내 옆쪽에 앉아있던 이리나와 그녀의 친구 아리안느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이리나, 나랑 같이 대련하자. 내가 적당히 힘을 빼서…”
“아리안느, 동정은 필요없다고 했잖아.”
“그러다가 성적을 바닥치면 어쩌려고? 그럼 하위 반으로 쫒겨날테고, 장학금도…”
“글쎄, 필요 없다니깐!?”
“이리나…”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이리나와 아리안느의 사이에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한편,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시비를 걸어야 이리나가 눈이 돌아갈까?’
메인퀘스트 ‘평민 기숙사 습격 사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내가 이리나 필리어드와 수행평가에서 맞붙어야 한다.
왜 클리어가 아니라 ‘시작’이냐면, 그녀와 맞붙는게 퀘스트 성립의 최소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싸움에서 마나 탈진이 오는 바람에 기초 마법도 잘 부리지 못하게 되어버린, 고작 힘 능력치가 3밖에 되지 않는 이리나에게…
반드시 패배해야 한다.
그것도, 그럴싸하게 말이다.
역시 개좆망겜 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