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201)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201화(201/524)
Episode 201
– 덜컹…!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굽신거리고 있던 마부에게 말을 걸었다.
“…마차가 왜 이리 흔들린 거지?”
“죄, 죄송합니다… 근처에 비탈길이 많았던지라…”
“흔들림 방지 마법같은것도 걸어두지 않았나?”
“제, 제가 아직 살림이 변변찮아서…”
“쯧.”
내 눈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마부를 바라보며 혀를 찬 나는.
“이, 이렇게 많이 주실 필요는 없…”
“여기 대기하고 있어. 언제 갈지 모르니까.”
“네, 네에…”
그렇게 말하며 금화를 몇개 그에게 던져주고는, 지팡이를 꺼내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새로 마부를 하나 뽑아야겠어.’
저택에 있는 거의 모든 사용인들이 그만 두는 바람에, 저택의 마차를 몰 마부또한 없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거리를 지나가는 마차를 잡아타는 편인데, 이게 영 불편하다.
방음 마법과 보호마법도 늘 걸어야 하고,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부 역시 위험해 질 수 있으니 말이다.
“주인님, 왜 저렇게 돈을 많이 주신거에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옆에 바짝 달라붙어 볼을 비비적 거리던 루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평민 놈들은 저런 푼돈을 줘도 좋아라하잖아? 난 그런 꼴을 보는게 재밌어.”
물론 가난한 마부에게 오늘 밤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라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거였지만, 루루에겐 여전히 날 나쁜 사람으로 인식 시켜야 한다.
“그렇군요.”
그러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루.
“앞으로는, 그렇게 주인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응?”
그러던 그녀가 문득 그렇게 물어오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니, 루루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며 답해온다.
“주인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요.”
“…흠.”
그 말에 괜히 헛기침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걷던 이리나가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애완동물은 그냥 예쁨만 받으면 되는건데…”
“……”
그 말이 끝나자 둘의 시선이 싸늘하게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히로인들 중에는 누가 가장 쎌까?’
그런 그녀들을 보니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다. 과연, 메인 히로인들과 서브 히로인들을 통틀어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굴까?
일단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건, 루트를 잘못타면 최종보스가 되어버리는 ‘카니아’, 게임내 공인 전투력 최강인 ‘이리나’, 두뇌로 모든걸 압살해버리는 ‘세레나’다.
그리고 1대1 한정 최강자인 페를로체나 검성으로 각성하면 나와 검술 실력이 거의 대등해지는 이솔렛, 그리고 최근 사기적인 능력을 개안한 루루도 있다.
“음…”
지금 당장은 우열을 가리지 못하겠지만, 일단 당장 생각나는 최강자 반열에 위치하는 사람들만 해도 이정도인데.
만일 이들이 서로 싸울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상상만 해도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그런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으르르…”
“마안 하나 가지고 날 이길 수 있겠어?”
…이미 늦은건 아니겠지?
– 똑똑똑
“…들어오세요.”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이솔렛이 거주하고 있는 저택의 입구를 두드리니,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그와 동시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스타라이트 저택을 떠난 사용인들중 일부가, 이솔렛의 저택 마당에 메이드 복을 입은채 서 있었다.
덕분에, 한동안 나와 그들의 사이에서는 무척이나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잘 지내나보네. 다행이야.’
저택을 떠난 사용인들은, 반은 황궁으로 갔고 반은 이솔렛의 저택으로 갔다고 들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당번을 정해서 아버지가 머물러 있는 병원에 가 간호를 한다고도 한다.
세간의 눈치가 보여서 아버지에게 찾아가지도, 좋은 간호인을 붙여주지도 못해서 슬펐는데, 하여간 참으로 고마운 녀석들이다.
“이솔렛 누나는 어딨지?”
“…저쪽에 계십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솔렛의 행방을 물었더니, 메이드 한명이 마당 끝쪽에 있는 수련장을 가리키며 답했다.
“그래.”
카니아가 내 편이 아닐때는, 저 메이드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거나 차를 따라주곤 했었다.
이야기도 어느정도 나누었었고, 기억하기로는 아마 약간의 친분 또한 있었을 터인데… 한번 말이나 붙여볼까?
“그나저나, 아리아는 어딨지? 한번 얼굴이라도…”
“전 모릅니다. 이솔렛 주인님에게 직접 물어봐주세요.”
그런 생각을 하며 왠일인지 보이지 않는 아리아의 행방을 물었더니,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돌아오는 싸늘한 답변.
“건방지군.”
“전 이제 당신의 소유가 아닌 이솔렛 님의 소유입니다. 처벌을 하시려면 이솔렛 님을 통해서…”
“하.”
그런 반응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흘깃 쳐다보고는, 이내 수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좋아, 평판은 제대로 깎이고 있네.’
뒤에서 서늘한 느낌이 느껴지는걸 보면, 역시나 내 평판이 송두리채 깎여나간 것 같다.
물론 그것 자체는 슬픈일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별 상관이 없다. 애초에 내가 항상 당하는 취급이기도 하고, 슬슬 ‘포인트’가 무지막지하게 필요해지는 구간이기도 하니 말이다.
– 끼이익…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수련장으로 통하는 문을 여니, 익숙한 광경이 들어온다.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이 드는, 흙먼지가 잔뜩 날리는 흙바닥.
“그, 그마안! 누나, 그만 해주세요!!”
“싫은데에?”
저기에서 이솔렛에게 제압당해 쓰러지면, 한참동안 간지럼 공격을 당했었다.
덕분에 울먹거리면, 누나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부모님한테 이르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젠 추억일 뿐이다.
“오호.”
안으로 한발자국 더 들어서니, 익숙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항상 칼자국으로 가득하던, 지금은 조금 더 깊숙히 베인 상처들이 가득한 짚인형들.
사방에 구비되어 있는 다채로운 종류의 칼과 검, 냉병기들.
그리고, 기초적인 치료마법 밖에 걸려 있지 않은 붕대의 심지들과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는 하급 포션병들까지.
일주일에 한번, 어쩔때는 사흘에 한번씩은 꼭 놀러오던 이솔렛의 집은, 아직도 내 기억 그대로였다.
“…뭐냐.”
그렇게 추억에 젖어 이솔렛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
“뭐지? 여긴 왜 온거냐, 프레이.”
“누나가 아프다는 편지를 받아서 말이지. 병문안을…”
그 목소리를 듣고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얼어붙어버렸다.
“누…나?”
어디서 훈련이라도 한건지 땀에 흠뻑 젖어있는 이솔렛이, 입에 머리끈을 물고는 찰랑거리는 머리를 묶고 있다.
“어, 음…”
거기까지였으면 그려려니 했지만, 그녀의 복장이 문제였다.
그녀는, 달랑 나시 하나와 속바지 하나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그것도, 땀에 흠뻑 젖은채로 말이다.
“날 누나라 부르지 마.”
“…그래, 근데 거기서 뭐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프다며?”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감이 안잡혀 애꿎은 허공에 시선을 둔채 물어보니, 그녀가 그리 답해온다.
“네가 온다는 소식을 들어, 방금 갑옷을 벗고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
“그런데, 날 왜 그런 눈빛으로 보지?”
“…아냐.”
사실대로 말했다간, 이솔렛에게 반으로 썰려 죽거나 뒤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소녀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줄 몰랐기에 적당히 얼버무리니.
“흠.”
어느새 머리를 다 묶은 이솔렛이, 검을 들고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두절미하고, 이왕 왔으니 직접 묻겠다.”
– 지이잉…!
“”……!””
이윽고 느껴지는, 명백한 살기.
“위험해.”
“주인님…!”
뒤에 서있던 소녀들이 다급하게 경고를 해왔지만,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손짓으로 제지한 뒤, 그저 자리에 가만히 서있던 나는.
– 파지이이잉…!
이내 이솔렛이 번개처럼 검을 빼 내 목에 휘두르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그리고 잠시 흐른 정적.
– 파르르…
그런 정적속에서 눈을 떠보니, 이솔렛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지.”
그리고 그 손에 쥐어진, 내 목에 아주 얇은 틈만을 남겨두고 멈춰선 그녀의 애검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왜 너를…”
이솔렛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자, 인상을 살짝 찌푸리기 시작했다.
“벨 수 없는 것이냐…”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마당에서 여전히 내게 칼을 겨누고 있던 이솔렛은, 그 말을 남기고는.
“……윽.”
눈을 스르르 감으며, 내게로 무너져내렸다.
“”………””
그리고, 긴 적막이 흘렀다.
.
“으음…”
화들짝 놀란 하인들이 이솔렛을 눕혀둔 그녀의 방에 따라 들어간 나는, 지금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이대로 가면, 큰일인데…”
원래는, 그녀의 앞에서 루루와 이리나를 성노예 취급하며 호감도를 깎아낼려고 했다.
워낙에 고지식한지라, 내 성적인 범죄를 끔찍히도 혐오하고 증오하는 이솔렛이니, 효과가 탁월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는 이솔렛을 보아하니 그런게 통할 것 같아 보이질 않는다.
이솔렛 아르함 바이워크 [호감도: 85%]
상세사항…..
그저 날 봤을 뿐인데, 호감도가 4퍼센트나 올라갔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내가 루루와 이리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먹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데, 그 방법이…
“으…”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이솔렛이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레…이…”
이윽고, 신음소리와 함께 섞여나오는 내 이름.
“……”
그걸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후우.”
별 뜻은 없었다. 그냥,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주고 싶었을 뿐.
“…에휴.”
사실 뜻이 있다. 그녀가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게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다.
그녀는 내 마음에 항상 나보다 강한 스승으로 각인되어 있고, 우직한 기사로 남아 있으며, 올곧은 인물로 기억되어 있다.
그런 사람이 시름시름 앓으며 내 이름이나 부르고 있다니, 억장이 다 무너질 것 같다.
“땀이나 흘리고 말이야…”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그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그녀보다 더 강해진 지금은, 내가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하고 싶어지는걸 드러내서는 안된다.
‘그래도, 땀정도는 닦아줄 수 있겠지.’
– 펄럭…!
그런 생각을 하며 이솔렛의 책상에서 찾은 임명문을 읽어내려가던 나는, 이내 깊은 생각에 잠긴다.
‘교단의 최연소 성기사라… 얘도 문제인데…’
2학년때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서브히로인들 중 한명인, 교단의 최연소 성기사.
분명히 스토리상 큰 축을 담당하는 그녀지만, 정말 놀랍게도 난 그녀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예언서에도 설명이 누락되어 있으며, 실제로 알려진것도 없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그녀의 정체를 알아내려 추적해봤지만, 알 수 있는건 없었다.
그나마 세번째 시련에서 실루엣을 보긴 했지만, 검과 방패, 그리고 성력을 쓴다는 걸 빼고는 알아낸게 없었다.
어째서인지 내 시점에서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정보는, 예언서에 나와 있는 그녀의 짤막한 설명이었다.
– 업데이트 예정: 교단의 최연소 성기사.
[과거에 이리나와 마탑주를 결별시켰던, 마탑주가 한때 눈이 멀어 탐닉했던 금지된 기술을 빼돌린 교단이 만들어낸 ‘만들어진 성녀’꼭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기에 세상의 규율을 어기고 인공적인 몸에 ‘영혼을 강림’ 시키는 방법을 개발하던 마탑주의 염원은, 슬프게도 마법을 빼돌린 교단이 마신의 명령에 의해 세상의 규칙과 천륜을 파괴하는 짓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그 극악무도한 행동이란…]
– 여기까지가 대강 업데이트 내용을 생각나는대로 써본건데, 아쉽게도 난 업데이트 전에 끌려왔어. 그래서 나도 얘에 대해서는 잘 몰라.
“흐음… 걔야말로 최대의 변수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익숙한 예언서의 내용을 회상해보며 고민을 하던 나는.
“…프레이?”
“…..!”
나에게 땀을 닦아지던 이솔렛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
그러자 시작된 어색한 정적.
[호감도: 86%] [호감도: 87%] [호감도: 88%]“아…아아.”
이윽고 시작된 무자비한 호감도의 증폭에, 패닉에 빠져버린 나는.
“으익…!”
“흐악!”
나도 모르게, 그녀의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누, 누나… 역시 예상했던대로 많이 아프네?”
“뭐, 뭐하는거냐!”
“그동안 참 오랫동안 참아왔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오다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잖아?”
“놔, 놔라!”
그러자 시작된 이솔렛의 발버둥.
하지만, 많이 아팠던 건지 그녀의 발버둥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몸이 그 상태인데, 나한테 저항 할 수 있을것 같아…?”
“으윽…”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잠시만 실례할게 누나.”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 나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호감도가 내려갈때까지만 버티자.’
아까 걱정했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시 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솔렛에게 직접 이러한 짓을 하면, 그녀는 평생 나를 미워할 것이니 말이다.
정말 슬픈 일이지만, 그녀의 목숨을… 그리고 그녀 앞에만 서면 나약해지는 내 각오를 끊으려면 어쩔수가 없다.
“………”
그런 생각을 하며 이솔렛의 두팔을 잡고 침대에 확 밀어붙이니, 그녀가 날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기 시작한다.
[호감도: 87%] [호감도: 86%] [호감도: 85%]그와 동시에 계속 내려가는 호감도.
그 광경에 슬픔과 동시에 기쁨을 느끼며 그녀의 몸에 손을 뻗는채로 입을 연 나는.
“한번만, 한번만 해달라니까? 비싼척 굴지 말고, 한번만.”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윗옷 단추를 벗기기 시작했으나.
“…알겠다.”
“그래, 그렇게 순순히 나와야… 뭐?”
이솔렛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얼어붙고 말았다.
“프레이, 부탁이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그녀.
“앞으로는 날 범하고, 제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거라.”
“어, 어?”
“몇번이고 범해도 좋으니…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이런 짓은 이제 나에게 한정해다오.”
“…누나?”
그런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널 그런 천하의 쓰레기이자 망나니로 만든건, 스승인 내 책임이다.”
“저기…”
“그런 너를 어떻게든지 죽이고 싶지만, 어째서인지 죽일수도 없고… 이렇게 굴욕적으로 제압까지 당했으니, 제안을 하는거다.”
이내 슬그머니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제압을 당했으니, 내가 패배한게 아니냐. 패배한 자는 승자의 소원을 들어주는게 기사의 도리일 터.”
“……..”
“…뭐하나, 빨리 범하지 않고.”
그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나는.
“…그런데, 뭘 어떻게 하는거지?”
이솔렛이 증오감과 혐오감, 미지의 행위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 그리고 알수없는 묘한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눈빛과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지자,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맞다, 이솔렛은 성지식이 거의 없지.’
훈련, 그리고 또 훈련만 한지라 그녀는 이리나와 아리안느보다도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가문에서도 여자로서의 사교술이나 교양 공부를 극구 거부해서 마찰을 빚은 그녀였기에, 성지식도 아예 없다.
‘아니, 설마 아예 없는건 아니겠지. 행위 자체는 이해하고 있으니.’
아무튼 이런 여자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일단 지금의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호감도: 85%]심지어 호감도도 내려가질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이상함을 눈치챌수도…
– 쾅!!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던 순간, 별안간 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당장 내려오세요.”
그리고 들려온, 청량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
“…..!”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본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교단의 신임받는 성기사이자, 이솔렛 님의 제자로서 경고합니다. 지금 당장 내려오시지 않으면, 공격하겠습니다.”
이윽고,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용케 뒷말은 듣고 슬금슬금 이솔렛에게서 내려온 나는.
– 콰광!!!
그 순간, 날 노려보고 있던 그녀가 날 덮쳤기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버렸다.
“명심하세요.”
그렇게 날 깔아뭉갠 그녀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품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보는 눈이 많아 넘어가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당신을 죽여드리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요.”
“케헥…”
“내가 그 꼴이 되기 전에, 그렇게 될 낌새만 보여도 바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던 그녀를 힘겹게 쳐다보던 나는.
“여신… 님?”
이내 그렇게 물었다.
“네?”
그러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비로운 외모를 가진 그녀.
“당신이 왜 여기에…?”
그런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니, 그녀가 차게 식은 표정을 지으며 말해온다.
“방금 만난 사람에게 여신이라니. 제가 들은게 전부 사실이었군요. 항상 그렇게 작업을 해오셨던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한번만 더 그딴 소리를 하면, 널 죽여버릴거야. 이 혐오스러운 새끼야.”
“……..”
그러다가 갑자기 욕지거리를 하며 다시 살기를 내뿜기 시작한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그럼, 마신이냐?”
“…..뭐?”
덩달아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그리고 시작된 잠깐의 정적.
“나는, 교단의 성기사. 오늘부로 이솔렛 님의 제자가 되기위해 이곳에 왔다.”
그 후 이어진 그녀의 답변을 들은 나는.
“…염병.”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탑주, 이 노망난 늙은이는 대체 무슨 실험을 했던거야?’
어째서인지 교단의 최연소 성기사는, 세번째 시련에서 봤던 여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한편 그 시각.
“…누가 내 욕을 하나?”
제국의 외곽에 우뚝 솟은 마탑에서, 마탑주는 간질거리는 귀를 파며 그리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하고 있구만? 누가 내 욕을하면 귀가 가려워지는 욕을 걸어놨으니.”
마법 스크롤을 만들어나가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한 마탑주는.
“다 늙어가는 늙은이를 욕할일이 뭐가 있다고… 에잉, 쯧쯔…”
안락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요즘은 삶이 참 편하구먼… 그 머리만 똑똑한 양아치 년도 조용하고… 지랄맞은 내 옛 제자도 남자나 만나고 있는 것 같고… 새로운 제자는 그래도 멀쩡하고.”
그렇게, 피곤에 젖은 눈을 스르르 감은 마탑주는.
“하긴, 그 빨간년은 성격이 지랄맞은 이유가 있긴 하지.”
이내 피식 웃으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지만.
“애초에 그년은…”
“스승님!!!”
“에구머니나!!”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들이닥치자, 화들짝 놀라 발버둥을 치다 뒤로 넘어가버렸다.
“에구… 에구구…”
“얍.”
– 스르릉…
그 상황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며칠전에 배운마법으로 의자를 다시 일으킨, 마탑주의 제자 글레어는.
“부탁하나만 해도 돼요?”
헤롱거리는 마탑주에게 쪼르르 달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질문을 던진다.
“그래, 해보거라. 하나밖에 없는 제자인데 내가 들어줘야지.”
그 모습에 심술이 난 마음이 스르르 사라진 마탑주는, 미소를 띤채 옆에 데워둔 홍차를 입으로 거져다 대며 그렇게 말했으나.
“선라이즈 아카데미는 아시죠…?”
“그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곳이다만… 학장도 그렇고, 모든게 다…”
“저, 거기에 입학시켜 주세요!!”
“푸흐읍….!”
이어진 글레어의 말을 듣고는, 홍차를 성대하게 뿜어내고 말았다.
“나, 나이가 미달이여도… 스승님 권력이면…”
“이, 이익… 이이익…!”
그렇게, 홍차를 뒤집어쓴채 멀뚱멀뚱히 그녀를 쳐다보다 해맑은 목소리로 억장을 뒤집는 말을 하는 글레어를 바라보던 마탑주는.
“내 제자들은 다 왜 이래!!!!”
이내, 화를 참지 못하고 빼액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헤헤.”
글레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이, 그녀의 옷을 말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