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21)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21화(21/524)
Episode 21
“…그럼, 다음 모임때 뵙죠.”
“…네!”
한참동안 성녀를 쓰다듬던 나는, 손에 뭉쳐있던 검은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뒤 그녀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자, 성녀는 해맑은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교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역시, 페를로체는 위험도가 낮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을 제외하면 안심해도 좋겠어.’
너무나 순수한 나머지 머리마저 순수한 페를로체는, 딱히 내가 무슨 술수를 부리지 않더라도 알아서 저렇게 헛다리를 짚어 나갈 것이다.
애초에 태양신 교단에서 흑마법사에 대한 위험성을 그녀에게 세뇌 수준으로 교육했을게 분명한데도 나에게 저렇게 친근하게 구는 걸 보면… 오히려 그녀가 엄한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할 판국이다.
‘…그리고 나머지 여자들은, 확실히 주의할 필요가 있겠지.’
우선 황녀의 경우에는 그 파괴적인 태양의 마나도 문제지만… 가지고 있는 권력이 너무 압도적이다.
이미, 몰래몰래 자신의 측근들을 모으기 시작한 그녀는 전회차보다 더 대담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황성의 권력 구조는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황녀가 권력을 잡게 되면, 그녀는 곧 도련님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태양신 교단과 공작가인 문라이트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황가의 영향력에도 어느정도 버티던 스타라이트가라 할지라도 조만간 한계가 찾아올 것이다.
‘이리나는, 현재 마나탈진이니까 당장은 위험하지 않겠지만… 미래가 문제네.’
미래의 대마법사 이리나 필리어드는 어째서인지 현재 마나탈진 상태다. 아마, 도련님에게 복잡한 저주를 걸려다가 실패해 부작용이 생긴것 같은데… 덕분에 지금 당장은 위험하진 않겠지만 미래에는 역시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레나님. 그분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무의식의 공간에서 알아낸 사실에 따르면, 전회차에서 공자님이 속이는데 제일 애를 먹었던 사람이 바로 세레나 님이라고 한다.
하긴, 그분은 ‘전 회차’에서 다 망해가던 제국을 몇년간 유지시킨 데다가, 병들고 지친 병사들을 몸소 이끌어 마왕군과 끝까지 혈전을 벌인 대륙 최고의 천재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니, 만약 그분이 여행에서 돌아오신다면 흑마법을 걸어 정신조작을 하는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련님이 위험해질테니 말이다.
“…후우.”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복도의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보니, 마침 도련님이 추종자들을 이끌고 뒤뜰에서 나오고 계셨다.
주변에서 도련님에게 쉴새없이 말을 거는 추종자들과, 약간 창백한 안색을 한채 그런 추종자들을 상대하는 도련님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이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역시 도련님의 주변에는… 거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전회차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봤을때, 도련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가 속에 다른 마음을 품고있다.
도련님의 곁에 붙어있는 사람들의 반은, 제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스타라이트가와 어떻게든 점접을 만들 생각밖에 없는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도련님의 수려한 외모를 보고 반하거나 탐하여 달라붙은 영애들이다.
도련님 자신은 자기혐오가 꽤 심한지라 모르시는 것 같지만, 사실 아카데미의 영애들에게 도련님의 위상은 꽤 대단하다.
도련님이 제국 최고의 망나니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쓰레기라 불림에도, 여자들이 자꾸 달라붙는 이유가 다 있다는 거다.
하지만 도련님은, 여자들이 자신에게 접근해 올때마다 그걸 자신의 권력을 탐하는 것이라 오해하시고 계신다. 그렇기에 아까의 일에서도 그런 반응을 보이셨을 것이다.
하긴 모두를 구하기 위하여 모두에게 미움받기 위해 강박적으로 위악을 저지르고 다니는 분이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염두에 두기 힘드실 거다.
그래도,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도련님의 집사이자 사용인으로서 앞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다.
“…?”
그렇게 생각하며 창가에서 떨어지려 하는데, 저 멀리 보이는 뒤뜰의 입구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리나?”
이리나가 펑펑 울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부축한 채 도련님을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다. 아무래도, 도련님이 또 뭔가 위악을 저지르셨나보다.
‘…도련님, 당신은 항상 저렇게 미움을 받으며 사셨군요.’
오늘 아침 몸이 약해진 그를 교실까지 부축해올때, 나는 표정 관리를 잘 할 수 없었다.
도련님이 기침을 하시거나 비틀거리실때, 심장이나 등에서 통증을 호소하실때마다… 그 죄책감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미움을 받아야 할 존재는, 저인데 말이죠.’
도련님의 어머니를 희생시켜 만들어진 저주 받은 마나를 가진 나를 한번 용서하신 도련님이, 이젠 자신의 생명력과 목숨까지 갉아먹어버린 나를 또한번 용서하셨다.
게다가, 날 위해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짓말을 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배려까지 해주시고… 날 바라보실 때마다 항상 죄책감과 후회로 가득찬 눈빛을 띠신다.
그럴때마다, 표정 관리를 하기가 참 힘들어진다. 도련님이 선택하신 길을, 심복으로서 따르려 했지만… 당장에라도 진실을 말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이미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미움 받아야 하는 사람은 오히려 나라고.
하지만, 그걸 말했다가는 더 이상 도련님과 나란히 서있을 자신이 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기에 비겁하더라도, 나는 도련님을 뒤에서 돕는 심복으로서 지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도련님과 나란히 서겠습니다.’
그렇게 다짐하며 애써 도련님에 대한 죄책감을 잠시 밀어둔 나는, 문득 떠오른 새로운 고민거리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도련님에게 생명력을 받고 나서 잠에 들었을 때, 나는 고양이 인형에 다시 한번 깃들었었다.
사실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매개로 설정해둔 것을 지우는 걸 까먹어서 그랬다.
아무튼, 이왕 인형에 들어온 김에 도련님을 한동안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도련님이 고통을 호소하시며 깨시는게 아닌가.
몽롱한 눈으로 알람시계를 확인하시던 도련님은, 이내 한숨을 내쉬시고는 인형에 깃들어 있는 나를 들어올리셨다.
처음에는, 움직여서 그의 손을 피할까 생각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간절해보여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도련님은 나를 잡고 푸념을 하시더니 배를 꾹꾹 누르기 시작하셨고, 오늘만큼은 고양이 소리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나는 도련님이 내 이야기를 시작하며 배를 더 세게 누르기 시작하자 어쩔수 없이 고양이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이, 거의 울먹거리시고 있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순간 도련님은 내 배를 연속으로 꾹꾹 누르기 시작하셨고… 그 바람에 큰 문제가 하나 발생해버렸다.
“…하읏.”
바로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바람이 스치거나 접촉이 있어도 반응이 올 정도로 배가 민감해져 버린 것이다.
아마 밤에 도련님이 직접 내 배에 손을 대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바람에 섞여 들어온 별의 마나가, 인형상태로 깃든 내 배를 도련님이 다시 한번 꾹꾹 누르는 바람에 섞여져서 생긴 일 같은데… 어떤 짓을 해도 이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덕분에, 새벽 내내 도련님이 살살 내 배를 만지거나 부축을 해드릴때 옷가지가 닿을때 상당히… 좀 그런 느낌이 든다.
‘고양이로 안 깃들면 도련님이 실망하실텐데…’
집사이자 심복으로서, 도련님의 스트레스를 풀어드리는 건 중요한 덕목중 하나다.
내가 고양이 흉내를 냄으로서 도련님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고양이 흉내를 내드릴 수 있다.
하지만 내 배가 이런 상태가 된 채로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건 역시 큰일이다.
게다가, 민감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스치는 건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다리의 힘이 풀릴 정도니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 도련님께 상담을 받아봐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수련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곧 있을 사건에 대비해 힘을 수련할 때다.
.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 그리고 이리나 필리어드. 너희 둘이 정말 상호 협의하에 대련 상대가 되기로 합의 한게 맞느냐?”
“그래.”
“…네.”
나는 지금 또다시 이솔렛에게 붙잡혀 교무실에 불려왔다.
그 이유는, 내가 방금 그녀에게 나와 이리나가 대련 상대가 됐음을 알렸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 어떤 협박이나 술수도 없었던게 맞느냐?”
아, 그렇다니깐? 사람을 뭘로 보는 건지.”
“…네, 그렇습니다.”
그녀의 추궁에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고, 이리나는 조용히 책상 아래로 주먹을 쥐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음의 맹세를 하길 잘했네.’
물론, 이리나의 자존심 높은 성격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이 일을 일러바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의 일이라는게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죽음의 맹세’를 사용했다.
죽음의 맹세의 당사자들은, 맹세를 목격한 사람 외에게는 사실을 발설하지 못한다.
즉, 내 옆에 앉아있는 이리나는 설령 이솔렛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흐음…”
우리 둘을 한참동안 수상하게 쳐다보던 이솔렛은,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대련을 중지할거다. 그렇게 알도록.”
“걱정도 많으셔. 그럼 난 이제 가봐도 되지?”
“…아니, 넌 남아라. 프레이.”
“…뭐?”
이솔렛이 갑자기 독대를 청하자 당황한 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이리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네게 말했다.
“그럼… 대련날 때 보죠, 프레이님.”
“…그래.”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교무실을 빠르게 나갔다. 아마, 그녀가 전성기 상태였다면 지금쯤 반경 50m 내의 모든것들이 녹아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위악포인트 500pt 획득! (거부할 수 없는 제안)]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 앞에 위악 포인트 획득 창이 떴다.
예상보다 많은 포인트 획득량에 잠시 벙쪄있는데, 이윽고 눈앞에 또 한번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상점 알림: 초급 스킬 2단계 해방 완료!] [누적 pt: 1200pt]‘…오.’
아무래도 위악 포인트를 다수 획득하면서, 새롭게 스킬 상점이 열린 것 같다.
호기심에 상점을 열려던 나는, 이내 눈앞의 이솔렛이 여전히 날 째려보며 입을 천천히 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금 나중에 상점을 확인하기로 결정하고 이솔렛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프레이, 괜찮니?”
“뭐가?”
“저번에… 그 경매장에서… 그 사건…”
아니나 다를까 이솔렛은 이리나가 교무실을 나감과 동시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저번에 시장에서 나에게 사적으로 대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나에게 편하게 말을 하고 있는 이솔렛을 가만히 쳐다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아, 뒷골목에서?”
“…프레이!”
내가 태연하게 뒷골목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솔렛이 움찔하며 나에게 소리를 쳤고, 그 바람에 주위에 있던 몇몇 교사들이 움찔하며 우리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때 우리가 했던 데이트는 모두에게 비밀로…”
“…교무실에서 내가 칼을 뽑게 하지 말거라. 프레이.”
“…미안.”
그렇게 고질병을 발동시켜 이솔렛을 다시 딱딱한 상태로 돌려놓은 나는, 태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갑자기 경매장에 이상한 기운같은게 퍼지길래, 별의 마나를 뿜어내면서 경매장을 빠져나왔었어.”
“…그래?”
“응, 아 설마 같이 안 나가서 화가 난거야? 나 꼴통인건 잘 알잖아? 별의 마나라고 해봤자 개미만한 양이라… 교수님을 지킬 여력은 없었어.”
“…그렇군.”
“그리고 애초에 교수님은 검사로서 어느정도 경지를 넘어서… 그 기운에서도 어느정도는 자력으로 버틸 수 있었잖아? 그러니, 너무 뭐라 하진 말아줄래?”
이솔렛에게 미움을 받기 위해 최대한 싸가지 없고 정이 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한 나는, 혹시라도 그녀의 감정상태가 변했을까 기대를 하며 독심술 스킬을 사용했지만… 이내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솔렛 아르함 바이워크의 현재 감정: 실망/걱정/의심/안타까움/측은함]‘화난 감정은 죄다 사라져있고… 걱정은 그대로네. 이러면 곤란한데…’
이렇게 가다간 이솔렛이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어떤 말을 해야 그녀가 나에게 정을 때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이내 감정들 사이에 떡하니 있던 단어 하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심?’
독심술 스킬에 의하면, 지금 이솔렛은 날 ‘의심’하고 있다. 대체,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교수님.”
“왜 그러지?”
“뭐, 나한테 묻고 싶은 거 있어?”
결국, 잠시 고민하던 나는 한번 그녀를 떠보기로 했다.
“…묻고 싶은 거야, 하나가 있긴 하다만.”
그러자, 이솔렛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날 노려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카니아와 너는 무슨 관계지?”
“…응?”
그리고, 살짝 긴장을 하고 있던 나는 이어진 그녀의 황당한 질문에 맥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무슨 관계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 불건전한 관계는 아카데미에서 금지야.”
“…그건 또 처음 알았네. 아카데미의 음지에서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면 아주 경악하시겠어.”
내가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이솔렛은 그런 나를 싸늘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프레이. 오늘 아침에 우연히 기숙사를 들릴 일이 있어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기숙사에서 너와 함께 나온 카니아가 배를 부여잡고 있더군.”
“…그랬어?”
“물론, 네가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때의 일이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춘 이솔렛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나, 남자와 여자가 같은 방에서 나왔는데… 여자가 아랫배를 부여잡고 있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역시 그것밖에 없지 않느냐…”
“…………”
“…내, 내말이 틀렸느냐?”
내가 잠시 어이없는 눈빛으로 이솔렛을 쳐다보자, 그녀는 시선을 살짝 돌리며 소심하게 질문을 던졌다.
“…카니아가 배탈이 났다는 가능성은 생각 안 해봤고?”
“그건… 그렇지만 그때 카페에서의 반응도 그렇고… 역시…”
“…욕구 불만이야? 교수님?”
더 이상 성에 무지한 그녀의 망상을 들어주기 힘들었기에 일부로 약간 소리를 높이며 신경질적으로 물으니, 이솔렛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불건전한 관계는 금지다. 다음에 내 눈앞에서 또 그런일이 발생한다면…”
“…난 갈게.”
“…그래, 잘 가거라.”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가치를 못느낀 나는, 머리에서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레이.”
“왜 또?”
그런데, 출구로 향하려던 순간 갑자기 이솔렛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하고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는데, 그녀는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사람을 베기 위한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옆에 있는 검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내게 있어선 꽤나 익숙한 말을 내뱉었다.
지금 내 검술의 모토로 삼고 있는 말이기에 잠시 자리에 멈추어서서 그 말을 음미하던 나는, 이내 짧게 물었다
“그래서 뭐?”
“…곧 있을 대련에서, 그녀를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말거라.”
“나 참, 난 또 뭐라고. 어차피 꼴통대 꼴통의 대결인데.”
피식 웃으며 대충 답변을 한 나는, 교무실 출구를 나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 누나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구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걷다가, 이리나에 대한 걸 떠올리고는 다시 풀이 죽은채 터덜터덜 교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술이라도 좀 마셔야 할 것 같다.
.
“흠…”
한편 교무실에 있는 자리에 앉아 프레이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던 이솔렛은, 이내 조용히 손을 턱에 괴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건, 환상이었나?”
생각보다, 여러곳에서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는 프레이였다.
.
“으으, 머리야…”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했기에 수업이 끝나고 몇몇 귀족 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온 나는, 텅 빈 기숙사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과음을 했나.”
지난 회차에서 망나니 짓을 하는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을 자주 마셨던 나인지라, 기분이 조금 울적해졌다고 옛날처럼 몸에 술을 들이붓고 말았다.
덕분에 생명력과 수명이 상당히 깎인대다가, 부상까지 입은 몸이 버티질 못하고 파업을 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높은 정신력 수치 때문에 이렇게 진탕 술을 마셔야 겨우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정도라 어쩔 수 없다.
물론, 세간에서는 반병만 마셔도 취하는 맥주병으로 알려져있지만 말이다.
“…새로 얻은 스킬이나 확인해볼까.”
지끈지끈 아파져오는 머리를 붙잡고, 새로 열린 스킬창을 여니 눈앞에 커다란 창이 하나 떠올랐다.
[상점 / 초급 스킬 2단계]– 생명력 회복속도 증가 1000pt
설명) 영구적으로 생명력 회복속도를 소폭 증가시킵니다. (총량은 늘어나지 않음)
– 위악자의 기만 Lv2 700pt
설명) 거짓말의 설득력을 영구적으로 조금 상승시킵니다.
– 정보 탐색 Lv3 1000pt
설명) 정보 탐색 스킬에 사람의 선함과 악함의 정도가 수치로 표시됩니다. (-100~100)
“…첫번째 스킬은 무조건 사야겠네.”
패널티를 단 한번밖에 받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골골거리니, 역시 첫번째 스킬은 최대한 빠르게 사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미 깎인 생명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카니아에게 밤에 생명력을 줬을때 하루종일 몸상태가 맛이 가버리는 지금, 생명력이 회복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건 역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나머지 스킬들은, 뭐 있으면 좋긴 하겠지.’
두번째 스킬과 세번째 스킬을 잠깐 흝어보고 쓸만하다는 평을 내린 나는, 카니아가 오기전까지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하려기 위해 눈을 감으려 했으나…
[알림! 중요한 변경사항이 있습니다!]“…응?”
이내 눈 앞에 알림창이 뜨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메인퀘스트: 히든 루트 발생!] [달성 방법: <수행평가> 시나리오에서 이리나와 일정 수치 이하의 호감도를 유지한 상태로 내기를 걸고 ‘죽음의 맹세’ 를 한다.] [내용: 이리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십시오!]“…아, 이거.”
그리고, 눈앞에 뜬 창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이내 흥미를 잃은 채 보상을 보지도 않고 시스템 창을 치워버렸다.
저 히든 퀘스트에 대한 건, 이미 게임의 고인물이었던 선조님이 예언서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예언서에 따르면, 저 히든퀘스트는 받으면 안된다. 보상 하나는 좋지만, 저 퀘스트를 받아버리면 내가 이리나에게 위악자임을 들킬 확률이 폭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마나셔틀이 되는게 백배는 낫다. 한번 더 패널티를 받았다가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 끼이익…
그런 생각을 하며 이번에야말로 눈을 감으려 했는데, 야속하게도 기숙사 문이 열렸다. 아무래도, 카니아가 들어온 것 같다.
‘…에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생명력 회복 속도 증가 스킬도 생겼으니 그 전까지는 몸으로 때워야겠다 생각한 나는, 카니아에게 생명력을 나누어주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으나…
“도, 도련님…”
“…카니아?”
어째서인지 카니아가 배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걸 발견하고, 다급하게 그녀에게 뛰어갔다.
“…갑자기 왜 그래? 카니아?”
“배, 배에… 별의 마나가… 부작용이…”
“…뭐라고?”
“하읏…! 마, 만지지 마세요…!”
그녀가 배에서 심각한 복통을 호소하기에, 배에 손을 가져다대보니 카니아가 경기를 일으키며 날 밀어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서… 가, 가만히 있어도… 배가… 흐윽…!”
“…카니아? 카니아!!”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이내 날 붙잡더니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염치없는 부탁인걸 알지만… 더 늦기 전에 부디 도움을…”
“…하아.”
이윽고 날 울먹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카니아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이끌고 침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좀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