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23)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23화(23/524)
Episode 23
“…일어나셨습니까, 도련님.”
상당히 긴 밤시간을 보낸 다음날, 눈을 떠보니 카니아가 이미 정장을 입은채 내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응.”
“그럼, 아침식사를 준비할까요?”
“아니, 괜찮아. 오늘은 영 입맛이 없네.”
이윽고 카니아가 아침식사를 차려준다기에 힘들어 할까봐 거절했는데,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식사를 거르시면 안됩니다, 도련님.”
“그런가…?”
“네, 특히 아침식사는 균형있는 식사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럼, 아주 간단한걸로 부탁해.”
“…네.”
그렇게 그녀의 엄한 눈빛에 못이겨 최대한 간단한 식사를 부탁한 나는, 방을 나서는 카니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왠지 모르게 카니아가 날 대하는 태도가 유해진 것 같은데 말이지.’
잘은 모르겠지만, 카니아가 생각보다 날 그렇게 혐오하고 있지 않는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전 회차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데 그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녀의 마음씨가 워낙에 착하다보니 어느정도는 이해가 간다.
원래 흑마법사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흑마력때문에 점점 마음이 사악함으로 물들어간다.
하지만 카니아는, 세상을 뒤엎을만한 흑마법사로 성장할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마음에 침식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것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지만 말이다.
그 이유는…
“…으윽.”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온다. 아무래도 어제 꽤나 무리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잠시 머리를 부여잡던 나는, 이내 무슨 이유에선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떠오르지가 않아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니아, 벌써 온거야?”
“…네, 식사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카니아는, 버터를 버무린 호밀빵과 커피를 내려놓더니 다시 기숙사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그럼, 맛있게 드시길.”
그 말을 마친 카니아는 사라졌고, 나는 말없이 호밀빵을 베어물며 중얼거렸다.
“…역시 수상해.”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하다.
버터를 버무린 호밀빵은 아주 어렸을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중 하나였다. 무려, 카니아가 집사로 들어오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크고 나서는 그다지 찾은 적이 없는데… 카니아가 어떻게 이걸 알고 나에게 만들어 준 걸까?
‘…우연인가?’
잠시 우연이 아닌가 생각해봤지만, 역시 그렇다고 치기에는 약간 이상한 점이 많다. 어젯밤 나에게 보인 그 태도에, 요즘들어 잦아지는 외출에, 오늘의 버터를 버무린 호밀빵까지…
아무래도 나중에 카니아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기, 프레이 공자님?”
그렇게 생각하며 기숙사를 나섰는데, 저 멀리서 기숙사 관리인이 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다가왔다.
“…뭐지?”
“정말 송구하옵니다만… 그것이… 어젯밤 민원이 수십건이나 들어온지라…”
“민원?”
“네, 그러니까… 어… 야밤에 사용인과의 애정행각은 조금 자제해주시는 것이…”
“………..”
아무래도, 조만간 기숙사에 방음 마법을 걸어둬야 할 것 같다.
.
“…흐읍!”
“이, 이리나! 너무 무리하지 마!”
나는 지금 훈련장에 몰래 숨어서 이리나의 훈련을 훔쳐보고 있다.
왜 이런 관음을 하고 있냐면, 곧 있을 수행평가 전투에서 그녀에게 어떻게 져줘야 할지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여전히 기초마법조차 부리기 힘든 상태라면 돌진을 하다 나자빠진다든가, 검을 휘두르다가 실수로 내가 찔린다든가 같은 바보 같은 짓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기초마법 정도는 부릴 수 있는 상태라면 조금의 연기를 섞어가며 적당히 패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세간에 나는 별의 마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활용을 못하는 얼간이, 1등급 재료를 가지고 길거리 음식을 만드는 삼류로 불리고 있다.
즉, 기초마법에 진다 하더라도 잠깐의 놀림감은 되겠지만 그렇게 큰 이슈는 되지 않을 것이다.
“…흐악!”
“이, 이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리나의 머리 위에 파이어볼 5개가 떠올랐다.
그걸 바라보던 나는, 어떻게 그녀에게 져야할지 고민하던걸 잠시 접고는 상당히 감명 깊은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 위에서 불타고 있는 파이어 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나탈진이라 해도, 역시 미래의 대마법사라는 건가?’
파이어볼은 기초 공격 마법중에서도 가장 최상위권의 마법임과 동시에,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전투 마법이다.
실제 전투에서나 전쟁에서도, 위력은 최상등급인 메테오나 어스 퀘이크 보다 실용적이고 영창 속도가 빠른 파이어볼이 더 많이 쓰이고 인명 피해를 쉽게 낸다.
게다가 여러가지 속성을 입히거나 강화를 하는등, 그야말로 전투마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저 파이어볼을 마나탈진 상태에서 5개나 소환해 낼 수 있다면… 아마 몇몇 얼간이 귀족들은 저 상태의 이리나에게도 질것이다.
‘…하지만 관건은 정확도와 위력이지.’
물론 마나탈진 상태에서 공격 마법의 근간이라 불리는 파이어볼을 5개나 소환해낸 건 꽤나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파이어볼은 한번 소환한다고 장땡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까지 날아가는데도 상당한 집중력과 마나가 소모되며, 적중한 다음 터지게 하는데도 세밀한 컨트롤이 중요시 된다.
그녀가 귀족들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할때 자기 방어를 하지 못한것도 마법의 컨트롤 과정에서 문제를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마나탈진 상태인 이리나에게는 매우 힘든 과제라는거다.
“이, 이리나! 역시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야? 역시 3개 정도로…”
“그… 씨발 새끼한테… 한방 먹여주려면… 이 정도는 해야해…”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새 내 욕을 하며 과녁을 노려보기 시작한 이리나를 떨리는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고… 그 다음 순간, 그녀의 머리위에 떠 있던 파이어볼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으익!”
파이어볼은 정확히 과녁의 한가운데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이렇게만 간다면 무난하게 이리나에게 패배하여 마나를 뜯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가 조용히 미소를 짓던 그 순간…
“흐, 흐아아…”
– 슈우우…
갑자기 이리나가 휘청거리며 쭉 뻗고 있던 팔을 내렸고, 그러자 맹렬하게 불타며 날아가던 파이어볼은 순식간에 허공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리나… 그것봐. 다섯개는 너무 무리라니까?”
“…젠장.”
그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이리나는 자신의 친구인 아리안느에게 안겨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러면…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자,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아리안느가 그녀에게 조용히 제안을 던졌다.
“이리나, 내가 몰래 도와줄까?”
“…뭐?”
“프레이는 바보니까 분명 시작하자마자 칼을 든채 똑바로 달려올꺼야.”
“…그래서?”
“그러니까, 내가 몰래 앞만 보고 달리는 프레이의 다리에 방어막을 설치해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거지. 그러고 나면 너는 넘어진 프레이에게 적당히 파이어볼 한두개나 썬더볼트를 날려서 기절시켜버리면 되는거야.”
“……….”
그 말을 들은 이리나가 침묵에 잠긴 한편, 나는 속으로 아리안느에게 박수를 치며 중얼거렸다.
‘…역시 나도 언젠간 저런 친구를 하나 만들어야겠어.’
방어 마법의 귀재인 아리안느의 투명 방어막이라면, 무능한 감독관들은 물론이고 어쩌면 이솔렛마저 속여넘길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부자연스럽게 넘어진다면 이솔렛이 눈치를 챌 확률이 매우 높겠지만… 저 계획을 들은 이상 발에 뭔가 걸렸을때 최대한 자연스럽게 발이 꼬인것처럼 넘어진다면, 이솔렛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것이다.
정 안되면, 방어막에 닿기 전에 알아서 넘어지는 방법도 있고 말이다.
물론 나도 달려가다 넘어지는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은게 아니지만… 이리나는 넘어진 사람에게 마법을 쓰지 않는 버릇이 있다.
예언서에 따르면 과거에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라는데… 그렇기에 ‘달려가다 넘어지기 작전’은 폐기처분 했었으나, 저렇게 아리안느가 제안해 준다면…
“…됐어, 넌 끼어들지 마. 아리안느.”
“이, 이리나. 하지만…”
“…미안. 하지만, 역시 그건 안돼.”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리나는 살짝 얼굴이 하얗게 질린채 아리안느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쉽게 지켜보던 나는, 이내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뭐,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는 어쩔 수 없지.”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는 역시 아이에게 꽤나 심각하게 적용하는 것 같다. 당장 나만 해도…
“…으윽!”
한창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또다시 깨질듯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성 편두통은 회귀를 하고 나서 사라졌었는데?’
나는, 아침에도 일어났던 원인 모를 두통에 아리송함을 느끼며 재빨리 수련장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거기 누구야!?”
내 신음 소리를 들은건지, 아리안느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내가 숨어있던 곳 주변에 보호막을 설치했다.
“…이거 왜 이러시나?”
“프레이… 당신…”
퇴로가 막혀버린 나는 어쩔 수 없이 양팔을 들어올린채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그녀들에게 모습을 드러냈고, 그러자 아리안느는 이를 갈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너, 너 때문에… 이리나가… 그런 터무니 없는 내기를…”
“분명히 상호가 동의한 내기였잖아? 뭐가 문제지?”
“주, 죽음의 맹세는 제국에서 금지한 흑마법이잖아…! 교단에서 그 사실을 알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무사하지 못해…!”
“………”
죽음의 맹세를 가장 애용하는 사람이 태양신 교단의 교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리안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갑자기 상당히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 적당히 위악이나 떨며 포인트나 벌고 가야겠다.
“…죽음의 맹세를 한 사실이 들키면 쌍방처벌인건 알아?”
“그, 그치만… 네가 일방적으로…!”
“교단이 언제 그런걸 참작해주는 걸 봤나?”
“으, 으으…!”
그 말을 들은 아리안느가 입을 악물었고, 난 그런 그녀에게 비웃는 표정을 지어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네가 나한테 함부로 대할 처지가 아닐텐데?”
“…뭐?”
“아직도 내 손짓 하나면, 저 멀리 우리 공작가에서 일하고 있는 네 언니의 목이 달아나거나 보직이 지하실로 이동될수가 있어.”
“……!”
그 말을 들은 아리안느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언니는 우리 아버지의 친 사용인 정책에 의해 추가수당까지 받아가며 만족스러운 근무를 하고 있지만, 아카데미에 있는 그녀는 당연히 그걸 알 리가 없을것이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새 눈이 충혈된 아리안느에게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까 나대지 말라고, 천한 년아.”
“…이익!”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리안느의 눈이 활활 타오르더니, 쭉 뻗고 있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뭐야… 지금 뭐하는… 푸헥!”
“개, 개자식… 이 개 자식이…!”
그러자 날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고, 나는 한순간에 쥐포가 되어 켁켁 거리게 되었다.
“아리안느… 그만해.”
“이리나, 내가 책임질게. 지금 여긴 아무도 없어. 그러니, 뼈를 살짝이라도 으스러트린다면 네가 이길 수…”
“아리안느!!!”
그렇게 질식사 하기 전에 허리춤에 있던 내 검을 뽑을지 말지 고민을 하던 그때,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리나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알겠어.”
“푸하…! 하아… 하아…”
그러자 아리안느가 천천히 팔을 내렸고, 겨우 압박감에서 벗어난 내가 힘겹게 숨을 몰아내쉬자 이리나가 그런 날 바라보며 싸늘하게 선언했다.
“…저 개새끼는 내가 죽일거야.”
그 말을 남기고 이리나는 수련장을 빠져 나갔고, 아리안느는 나를 잠시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뒤를 따라나갔다.
[위악포인트 100pt 획득! (싸구려 도발이 잘 먹히는 법)]“콜록… 콜록… 에휴…”
그렇게, 잠시 찌부가 된 후유증으로 한참을 콜록거리던 나는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잠시 쳐다보다가 벽을 짚고 일어선 후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겠지?’
지금 저 녀석들이 한 짓은, 최소한 퇴학감이다.
물론, 일반적인 아카데미 학생들끼리 일어난 일이었다면 가벼운 경고조치로 끝났겠지만… 하필이면 귀족이자 아카데미의 적폐인 날 건드려서 문제다.
만약 내가 지금 학장에게 달려가서 저 둘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보고하면, 그는 바로 저 둘을 쫒아낼 것이다. 이 아카데미에서 귀족과 평민의 대우는, 그렇게나 차이가 난다.
그러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날 상대로 저런 짓을 절대 하지 않겠지만… 저 둘은 전 회차에서 제국의 미친 개라고 불리던, 한번 눈이 돌아가면 무슨 짓이든지 하는 이리나와 아리안느다.
애초에 그녀들은 전회차에서도 귀족들을 건드렸다가 퇴학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때는, 뒤에서 몰래 막느라 정말이지 진땀을 뺐었다.
‘…제발 이번 회차에서는 나만 건드려야 할 텐데.’
나는, 이번 회차에서는 그녀들이 제발 나에게만 이런 짓을 해주길 간절히 빌면서 수련장을 나섰다.
.
“…오늘도 꽉꽉 찼네.”
교실에 도착하니, 내 서랍과 책상에 다양한 선물들이 놓여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내쉬어진다.
선물을 받으면 좋은게 아니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저것들은 그냥 선물이 아니라 무려 장문의 편지를 대동한 뇌물들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당연히 스타라이트 가와 좋은 인연을 맺고 싶다거나 나와 연인 관계가 되고 싶다는 속이 훤히 보이는것들 밖에 없다.
“…오늘은 자유수업일이니, 밀린 뇌물이나 까볼까?”
그렇지만, 뇌물은 항상 꼬박꼬박 챙겨두어야 한다.
왜냐면 편지들은 나중에 제국을 바로잡을때 증거로서 요긴하게 쓰일 것이고, 뇌물은 내 위악질의 자금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존경스러운 내 아버지가 남겨주신 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돈 덕분에 어느정도 자금이 넉넉해 지긴 했지만… 그래도 돈은 언제나 필요한 법이다.
물론 내 사비로 쓰진 않을 것이고, 모든게 끝난 이후에 빈민 구제와 자선 사업에 쓸 것이다.
검은 돈의 사용처로, 그것만큼 좋은 곳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음?”
아무튼, 일주일에 한번 자유롭게 수업을 듣거나 쉴 수 있는 자유 수업일을 맞이한 김에 밀린 뇌물을 전부 뜯어나가던 나는 서랍에서 꽤나 이상한 종이쪼가리를 발견했다.
‘…뭐야? 이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종이쪼가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문자들이 써져있는 종이가 무엇인가를 감싸고 있었다.
“…봉투?”
안에 다이아몬드나 초콜릿이라도 넣어놓았나 싶어 한번 펴보니, 웬 종이봉투가 힘없이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나는, 이윽고 봉투를 감싸고 있던 종이의 맨 위에 써져있던 단어를 발견하고는 잠시 얼어붙었다.
– 협박장
꽤나 알아보기 힘들게 써져있지만 최대한 진하고 날카롭게 써져있기에 쓴 사람의 의지만큼은 전해진 그 단어를 보며, 나는 심각한 얼굴로 종이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저가 당신에 정체를 알고 있슴미다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 님.
그리고 첫번째 단락을 읽은 나는,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설마, 성녀에게 들킨거야?’
가장 낮은 C반조차 웬만한 아카데미는 씹어먹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 선라이즈 아카데미에서 이런 파격적인 문법을 구사할 사람은, 성녀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성녀가 내 정체를 눈치 챌 수 있단 말인가?
성녀는 무려 한번 회귀를 했음에도, ‘정보탐색’으로 본 지능 수치가 ‘2’밖에 안된다.
그리고 솔직히 그것조차 전회차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였다면 무조건 ‘1’로 나왔을거다.
괜히 성녀가 1000년만에 나온 순백의 성녀라 떠받들여지며 교단에서 역대 최고의 위상을 자랑했음에도 결국 실권을 뺏긴게 아니다.
오죽하면 태양신이 성녀에게 힘을 내려주다가 실수로 그녀의 머리를 건드려서 백치가 됐다거나, 사실 성녀는 내 약혼녀인 세레나를 뛰어넘는 천재이자 흑막이며 모든건 그녀의 계획의 일부일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닐까.
그런 성녀에게 내 정체를 들켰다니, 말도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누구도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이 편지는 뭐란 말인가. 설마, 보다못한 태양신이 그녀에게 살짝 귀뜸이라도 해준걸까?
‘…괜찮아. 아직 패널티 창은 안 떴잖아. 그러니 일단, 계속 읽… 아니 해독해보자.’
잠시 패닉에 빠졌던 나는, 패널티창이 뜨지 않았음을 상기하고는 아직 성녀는 내가 위악자임을 의심하고 있을 뿐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편지를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 만약 저에 지시에 따르시지 않다면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당신에 비밀을 [포로/폭로] (<- 이거 중에 뭐가 맞나요?) 하겠슴미다
“…하아.”
한참을 종이를 들여다보며 겨우 내용을 해석해낸 나는, 마지막 내용을 읽고는 조용히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교실의 밖으로 나오며 중얼거렸다.
– 그러니 비밀이 발혀지고 싶지 안으면, 오늘 아카데미가 끋나는 즉시 태양신 교단의 성당으로 와주세오.
[페̶를̶ 아스텔레이드가]“…돌겠네, 진짜.”
.
급히 지나가던 마차를 잡아타 태양신 교단의 성당에 방문하니, 페를로체가 미소를 띠며 날 반기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프레이 씨.”
“……….”
성녀가 앉아있는 상석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이, 그녀를 비추어 신성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대체 그 편지는 무슨…”
“…조용히 하세요.”
나는 그런 그녀에게 편지에 대한 것을 물어보려 했으나,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당신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답니다. 프레이 씨.”
이윽고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내 머릿속에서 그녀의 평가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녀 흑막설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던건가?’
저 싸늘하면서도 확신에 찬 표정은, 의심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것이 아니다. 분명히, 페를로체 아스텔로이드는 나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건…
‘…잠깐, 그런데 왜 패널티창이 안 뜨는거지?’
어째서인지 패널티창이 뜨질 않는다.
솔직히 난, 성녀가 날 위악자로 의심하고 있기에 떠보려 부른 건 줄 알고 이곳에 오며 여러 대응 시나리오들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성녀는 지금 확신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왜 패널티 창이 뜨지 않는걸까?
“지금부터 당신에게 태양신의 이름으로 선고를 내리겠습니다…”
도무지 앞을 내려다 볼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세레나의 지능을 50퍼센트라도 빌려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거라 생각하며 조용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프레이 양.”
“…..?”
다음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쉿.”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지려던 내 말을 다시 한번 끊은 성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 앞에 던졌다.
“아니, 대체 이게 뭐하는…”
“앞으로 당신은…”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생각을 정지했다.
“…제 전속 메이드가 되어 죽기 전까지 봉사하도록 하세요.”
“…..!?”
그리고 그런 나의 발치에는 귀여운 프릴 장식이 달린 메이드 복이 놓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