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27)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27화(27/524)
Episode 27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린 나는, 그때까지 날 위로해주고 있던 카니아를 먼저 교실로 떠나보냈다.
사실 아직 몸 상태가 성치 않은지라 그녀가 부축을 해준다면 참 좋겠지만, 그랬다간 카나아가 사람들에게 의심을 살 수 있다.
그러니, 약간 힘들지라도 그녀를 먼저 보내 우리의 관계를 숨기는게 앞으로의 계획에 이로울 것이다.
“…후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스킬 상점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꼭 필요한 스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생명력 회복속도 증가 1000pt
설명) 영구적으로 생명력 회복속도를 소폭 증가시킵니다. (총량은 늘어나지 않음)
“…아무래도 지금 사야겠어.”
오늘은 대망의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다.
그러니, 이리나에게 두들겨 맞으려면 역시 이 스킬을 사야 할 것 같다.
“…오.”
그렇게 생각하며 스킬을 눌러 구매하니, 왠지 모르게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소폭 증가라 그렇게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지만, 역시 1000pt나 잡아먹는 스킬인지라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는 것 같다.
“…이리나가 파이어 볼을 부디 나에게 적중시켜야 할텐데.”
그렇게 온몸에 활력이 차오르는 걸 잠시 눈을 감고 느끼던 나는, 이내 이리나를 걱정하며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좋아, 이거면 되겠지.”
이윽고, 어제 성당에서 기숙사로 돌아올때 잠시 들렀던 뒷골목에서 구매한 최상급 마나포션 3개를 꺼내 든 나는 미련없이 뚜껑을 연 다음 그것들을 한꺼번에 들이키기 시작했다.
“…우욱.”
최상급 포션이라 맛있을 줄 알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맛이 없었다.
덕분에 구역질이 올라올 뻔 했지만, 토했다가는 수만골드가 날아가는 판국이었기에 억지로 먹으니 배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잠시 눈을 감고 뱃속에 있던 마나를 느끼던 나는, 적당량이 모였음을 알아차리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마 이 정도의 별의 마나라면, 이리나에게 넘겨줬을때 그녀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이리나는 내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나를 나눠주지 않는다면 그녀의 성적은 바닥을 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나리오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
최대한 변수가 생기지 않게 노력하고 있는데도 벌써 비틀린게 많은데, 이리나가 하급반으로 내려가거나 아카데미에서 쫒겨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예언서에 써진 대로 일을 진행해야…
‘…예언서에 써진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교실로 향할 채비를 하던 나는, 예언서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하아.”
심란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잠재우며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예언서의 내용이 벌써 2개나 어긋났는데… 그대로 따라야 할까?’
회귀를 할 시 패널티로 인해 메인 히로인들의 기억이 전부 돌아온다는 내용은 분명히 예언서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 때문에 상당히 이상함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선조님도 예상치 못한 어떤 변수가 작용했을거라고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페를로체의 설정마저 틀린점이 발견되었다.
예언서에 나와 있는 설정과 내 기억에 따르면, 페를로체는 옛날부터 그저 순수하고 멍청할 뿐인 인간이었다.
어렸을때의 내가 건내준 포션을 아무 의심도 없이 마셨었으며, 성당에 가라 했을때도 아무 의심없이 헤실헤실 웃으며 성당으로 향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꾼 꿈 속에서 그녀는, 당당한 목소리로 어린 나에게 만행을 ‘폭로’하겠다고 소리쳤었다.
‘포로’와 ‘폭로’를 구분을 못해 나에게 보내는 협박장에 문법 질문을 써놓았던 그 페를로체가 말이다.
물론 내가 오늘 꾼 꿈이 그냥 개꿈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내 애검의 색이 하루만에 바랜걸 보면, 보검에 깃들어 있다 했던 그 사념체인가 뭔가가 개입한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만약 그 꿈이 정말로 진실이라면, 모든걸 다 안다고 생각했던 선조님이 틀렸다면, 그렇기에 예언서를 따르는게 잘못됐다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예언서를, 시스템을, 그리고 내 기억을 따르는게 맞는걸까?
“………….”
그렇게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고민을 해봤지만, 결국 나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왜냐면, 예언서와 시스템을 부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걸 부정한다면 더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을 것 같았기에… 결국 나는 더 명확한 증거가 나올때까지 잠시 이 고민을 접어두기로 했다.
‘…아직까진 통제 범위야. 아직까진, 내가 해결할 수 있어.’
그렇게 애써 자기합리화를 마친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기숙사를 나섰다.
.
“모두 주목, 지금부터 수행평가의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겠다.”
A반 학생들 전원이 실습장에 모였다.
“”……….””
그리고, 곧이어 어마어마한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클라나와 페를로체, 그리고 이리나가 날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클라나와 이리나는 그렇다 치고, 저 순수한 성녀가 저렇게나 살의가 담긴 눈빛으로 날 노려볼줄은 몰랐다.
“…집중! 거기 너희들, 전부 집중해라!”
그렇게 한동안 날 노려보던 그녀들은, 이솔렛의 호통이 들리자 나에게서 눈을 떼고 이솔렛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나마 숨통을 트게 해준 이솔렛에게 속으로 감사를 보내며,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어떻게든 이리나에게 져야한다.
그녀에게 패배한 다음에는, 죽음의 맹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마나를 천한 평민에게 넘기는 에고만 높은 망나니를 연기한다.
물론, 마나를 넘길때는 그녀가 1년동안 낙제를 하지 않을 수준의 마나만 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사망률이 급격히 올라갈테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최근 전국에서 의문의 마물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솔렛이 확성 마도구로 실습실 전역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어 보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기사단이 어느정도 막고 있지만, 지금의 증가 추세가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사는 수도도 위험해지겠지.”
저 말은 사실이다.
지금쯤 제국 전역에서 마왕이 각성한 여파로 마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을거다.
그리고 그 마물들은, 안 그래도 대기근이라 삭막해진 땅을 해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제국민들은 반은 굶어 죽고, 반은 마물에게 짓밟히거나 잡아 먹힐 것이다.
물론 영주들은 그런 제국민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데 급급하겠지만 말이다. 역시, 참 답이 없는 세계답다.
“그러니 난 바뀐 제국의 정책대로, 너희들을 제국을 수호하는 방패로 키울것이다. 그리고 그 첫번째 걸음이 바로 이 수행평가인 것이다.”
그렇게 썩어빠진 제국을 조용히 까고 있으니, 이솔렛이 모두를 싸늘하게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니, 수행평가는 ‘완전 실전’ 형태로 진행한다.”
그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솔렛이 짧게 덧붙였다.
“…서로를 죽일 각오로 임하라는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이솔렛은 주의사항의 전달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고, 주변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럼… 첫번째 조인 클라나 솔라 선라이즈와 페를로체 아스텔레이드는 앞으로 나오도록.”
그렇게 잔뜩 무거워 진 분위기 속에서, 이솔렛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행평가의 시작을 알렸다.
“페를로체 씨. 다시 말하지만, 이건 놀이가 아니라…”
“…알아요.”
“네?”
“…더 이상, 멍청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거에요.”
그러자, 표정을 굳힌채 나온 둘이 대련장에 서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평소같으면 클라나와 페를로체의 귀엽고 웃긴 만담을 들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페를로체는 그저 싸늘한 표정으로 손에 성력을 모으고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윽.”
그런 그녀를 보니, 그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를 저렇게 만들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오늘 꿈에서 봤던 그녀의 끔찍한 모습, 그리고 내 기억과 전혀 다른 그녀의 과거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 삐이익!!
애써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치워내니 이솔렛의 호각소리가 들렸고, 그 다음 순간 황녀와 성녀가 격돌했다.
순간 태양신의 가호를 쓰는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지만, 자세히보니 황녀의 태양의 마나를 실은 공격이 흰 방패에 막혀있었다.
– 슈우우…
그러자 클라나는 민첩하게 뒤로 물러나 손가락에 태양의 마나를 일점 집중시키기 시작했고, 페를로체는 손에 성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단판 승부로 가려는건가?’
그 양이 너무나도 방대했기에 단판승부라도 하려는건가 싶던 그때, 둘의 공격이 일제히 허공에서 충돌했다.
‘…아, 이걸 노렸구만.’
그리고 그 순간 허공에서 충돌한 방대한 에너지 파편들이 나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마, 저걸 직격으로 맞으면 전치 10주는 나올것이다.
“…..!”
놀란 카니아가 조용히 손에 흑마력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어 그녀를 제지했다.
– 쩌저정!
왜냐하면 파편이 나에게 닿기 일보직전에, 이솔렛의 검기가 날아들어 파편들을 지워버릴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돌발 상황은 얼마든지 내가 통제할 수 있으니, 안심하고 큰 기술들을 써도 좋다. 그럼, 계속 진행하도록.”
이솔렛의 담담한 발언이 끝나자, 아쉬운 표정을 짓던 그녀들은 다시 싸움에 임하기 시작했다.
아마,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식으로 짠 작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위협적이었다.
‘…그나저나,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어. 그걸 보면, 역시 카니아의 말이 맞는 것 같네.’
카니아가 말한 ‘히로인 연합’의 1차적인 목적은 날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세상을 한번 파멸시켰던 날 그냥 죽이는건 너무 관대한 처사라 판단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눈물나게도 고맙다.
“…꺅!!”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전투를 지켜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나의 태양의 마나를 담은 정권이 페를로체에게 명중하며 생각보다 싱겁게 승부가 나버렸다.
아픈걸 끔찍히도 싫어하는 원래의 페를로체 였다면 절대 정통으로 맞는걸 허용하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페를로체는 무리해서 클라나에게 파고들다가 치명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끄으윽.”
그렇게 한참을 배를 부여잡은채 바들바들 떨던 페를로체는, 이내 이를 악물더니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 애를 쓰기 시작했다.
“당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나, 나는…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을…”
“……..”
하지만 역시 일격의 충격을 정신력만으로 버틸 수는 없었는지, 얼마 못가 그녀는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순수하던 그녀를 저런 꼴로 만들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애써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클라나 솔라 선라이즈의 승리다. 그럼, 다음 조.”
이윽고 이솔렛의 담담한 소리가 들려왔고, 축 늘어진 페를로체는 조교들에게 들려 실려나갔다.
“도련님, 무슨 문제라도…”
“…쉿.”
내 옆에 있던 카니아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애써 그녀를 옆에서 때어내고 표정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카니아가 입술을 깨물고 있는걸 보면 내 표정이 가관이었나보다.
.
그 뒤로 여러 조들이 서로 맞붙었으나, 대부분은 단판 승부로 끝났다.
귀족들의 경우에는 너무 무능했고, 평민들의 경우에는 너무 유능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도 카니아와 아리안느의 대결은 좀 볼만 했다.
비록 승자는 카니아를 보호막으로 완전히 가두는데 성공한 아리안느에게 돌아갔지만, 만약 카니아가 흑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승패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세레나가 없는게 참 아쉽다. 그녀가 있었다면 상대방의 공격루트를 전부 예측해서 손가락 하나로 제압하는 묘기를 다시 볼 수 있었을텐데…
‘…아냐, 아쉽기는 무슨.’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황에 세레나까지 있었다면 난 진작에 명을 달리 했을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걸 아쉬워하긴 커녕 기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세레나가 학교에 돌아올 때가 됐다. 그러니… 그녀를 상대할 대비책을 어떻게든 구상해 놓아야 할 것 같다.
“…다음 조,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와 이리나 필리어드는 앞으로 나오도록.”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어느새 나와 이리나의 차례가 찾아왔다.
“…내 노예가 될 각오는 했지?”
“………”
껄렁껄렁 거리며 이리나의 옆에 다가가 비아냥거리니, 그녀가 매섭게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런 이리나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주던 나는, 이내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아 참, 다음엔 네 친구를 좀 안아보려 하는데 말이야… 나중에 조언좀 해줄래?”
– 으득…!
그러자 이리나가 입술을 짓씹기 시작했다.
“…그럼, 잘 부탁해?”
나는 그런 그녀를 가소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피를 손으로 닦아주고는, 이내 대련장으로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면 충분 하겠지?’
이리나 필리어드는 분노를 할수록 더 강해진다.
그냥 비유가 아니라, 무려 ‘공식 설정’이다.
인외의 존재인 마왕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그 대마법도, 친구인 아리안느를 잃은 슬픔과 분노로 만들어진 마법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러니 비록 마나 탈진상태라도, 저렇게나 화나있으면 파이어볼 정도는 나에게 적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삐이익!!
그렇게 생각을 마치니 어느새 이리나가 대련장 안에 들어와 날 노려보고 있었고, 다음 순간 이솔렛의 호각이 들려왔다.
“…흐아압!”
그리고, 호각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이리나의 머리 위에 파이어볼 7개가 나타났다.
“자, 잠깐… 이, 일곱개?”
“뭐야… 저 낙제생이 어떻게…”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리나는 날 증오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비록… 힘이 부족해서 널 죽이진 못하겠지만…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어주겠어…”
“저기… 일곱개는 좀…”
“죽이는건 1년 뒤 힘을 되찾을 때야. 그때까지, 고통에 몸부릴 칠 만한 화상을 남겨줄게.”
“아니, 어차피 그거 다 못… 에휴.”
마나탈진 상태에서 파이어볼을 일곱개나 만들어내다니, 마탑에 보고된다면 마법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연구할 것이다.
그 만큼 대단한 업적을 세운 이리나지만,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내 심정은 초조하기만 하다.
왜냐면, 지금 그녀의 상태로 7개의 파이어볼을 조종하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으윽!”
아니나다를까, 파이어볼을 움직이려던 이리나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시, 시발… 쿨럭…”
‘아니, 그냥 적당히 몇개만 쏴도 알아서 져줄텐데… 왜 삽질을 하는거야?’
그런 그녀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나는, 이솔렛과 클라나가 계속해서 제자리에만 있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한걸 눈치채고는 이를 악물고 이리나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꺄악!!”
“…하, 그럴줄 알았지. 네까짓 년이 파이어볼은 무슨.”
이내 그녀의 앞에 도착한 나는, 그녀를 발로 차 흙바닥에 넘어지게 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절대 변하지 않는게 있는 법이야… 이리나.”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 이 개새끼야…”
“개새끼는 곧 내 펫이 될 너겠지… 천한 것아.”
“으극!!”
이윽고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나는,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중얼거리던 이리나를 흙바닥에 쳐박았다.
“으븝!”
“잘 봐, 너한테 어울리는 더러운 흙바닥이야.”
“으브븝…”
“왜 그래? 앞으로는 더한 것도 삼키게 될텐데.”
이윽고 혹시 몰라 소매에 넣어뒀던 정제 마나를 담은 플라스크를 열어 아무도 모르게 흙바닥에 쏟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나를 잔뜩 품은 흙바닥에 문지르며 도발을 하기 시작했다.
“으그극…”
“왜? 흙바닥에 문질러지니까 기분이 나빠?”
“쿨럭 쿨럭…”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보다 이 흙바닥이 더 기분 나쁠것 같은데 말이지…”
“…뭐?”
“아무리 온갖 벌레와 오물 천지인 흙바닥이라 할지라도… 너 같이 천한게 문질러지면 기분이 나쁠게 당연하잖아?”
그 말을 마친 나는, 여전히 켁켁거리고 있는 그녀를 뒤로한 채 대련장의 출구로 향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한발이라도 명중시켜줘.’
그녀가 부디 무사히 파이어볼을 만들어 나에게 적중시켜주길 간절히 빌며 걸어가던 나는,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일어나기 시작한걸 느끼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 퍼어엉!!
그리고, 그 순간 첫번째 파이어볼이 나에게 적중했다.
“크하악…!”
파이어볼에 정통으로 맞은 나는, 이리나에게 질 수 있다는 안도감과 생각보다도 더 심한 고통에 의한 당혹감을 동시에 느끼며 뒤로 나자빠졌다.
‘…왜 이리 아프지?’
파이어볼이 위협적인 마법이긴 하지만, 개별로서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편이다.
개별로서 상당한 위력을 자랑하는 메테오와는 달리, 파이어볼은 속사와 물량으로 승부하는 마법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파이어볼이 아니라 준 메테오 같다. 역시, 미래의 대마법사는 마나탈진이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 같다.
“아, 아프잖아아아!!”
그런 생각을 하며 흙바닥에서 뒹굴던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일어났고, 그 순간 2발의 파이어볼이 내 눈앞에 날아들었다.
“크학! 뜨, 뜨거워어!!”
그 파이어볼들을 기쁘게 맞은 나는, 다시 흙바닥에서 뒹굴며 미리 구상해놨던 삼류 악당의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가, 감히… 더럽고 천한 네년이… 날…!”
말하는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들 것 같지만, 이런 대사가 효과 하나는 직빵이다. 당장 내가 이 대사를 치자 평민 학생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럽고 천한 평민에게 얻어 맞아서 흙바닥을 구르는 소감은 좀 어때?”
“쿨럭… 쿨럭…”
“…일어나, 아직 남았어.”
“으으… 뭐…?”
그렇게 다시 한참동안 흙바닥을 구르며 유치한 대사를 치던 나는, 이리나의 말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잠시 얼어붙었다.
– 퍼버버버버벙!
“캬학!!”
이번엔, 파이어볼이 3발이나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덕분에 고통에 몸부림 치던 나는, 비록 내 도움이 있긴 했어도 마나탈진 상태에서 파이어볼을 3개나 동시에 조작해낸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며 의식을 잃은 척을 하려 했으나…
“일어…나… 아직… 한발… 남았어…”
증오가 서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쓴웃음을 짓고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일어섰다.
꼴에 용사라, 수명과 생명력이 왕창 깎여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저 한발쯤은 어떻게 맞아 줄 수 있을것 같다.
물론, 저것까지 맞으면 정말로 의식을 잃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이리나에게 저질러온 위악… 아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악의로 가득찬 악행이 있으니 그녀가 원한다면 맞아주는것이 합당할 것이다.
“아, 아직 안 끝났어… 저 천한년쯤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추한 대사를 치며 힘겹게 일어선 나는, 그녀가 쏘는 마지막 파이어볼을 기다리며 이를 악물었으나…
“이, 이거나… 처먹고… 뒈져버…”
“내가 단칼에…”
– 풀썩
“…어라?”
마지막 파이어볼을 나에게 날려보내려던 이리나가 비틀거리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그리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10초를 세겠다. 10, 9, 8…”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이윽고 이솔렛이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고, 당황한 나는 이내 울며 겨자먹기로 내 가슴팍에 있던 카니아 전용 생명력 전달 브로치를 사용해 그녀를 깨우려 했으나…
– 파지지지지지직!!
갑자기 나와 이리나가 있던 대련장의 바닥에 거대한 의문의 마법 술식이 그려지더니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이상 현상에 얼굴을 찌푸리며 칼을 바로잡았다.
“…뭐야?”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마법 술식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나와 이리나를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내, 내가 산건 회복 스크롤이었는데…!?”
그 환한 빛속에서 당황한 아리안느의 외침을 듣던 나는, 이내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으윽…”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살짝 떠보니, 웬 나무들이 내 눈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
대련장에서 날 지켜보던 학생들과 감독관이 아닌 나무들이 보인다는 사실에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니, 잿빛 나무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이런 미친.”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이내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이 예언서에 나와있는 시나리오대로라면 ‘게임’의 중후반부에나 와야 하는, 온갖 마물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마굴인 ‘잿빛의 숲’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발에 뭔가가 걸리자 식겁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그러자, 정신을 잃은 채 가쁜 숨을 몰아내쉬고 있는 이리나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아무래도 나는, 아카데미에서 몇백 킬로미터는 떨어져있는 이 마굴에 기절한 이리나와 함께 떨어져버린 것 같다.
이쯤되면 슬슬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