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28)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28화(28/524)
Episode 28
“…어쩌지?”
산을 넘어 산이라 했던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산을 넘지도 못했는데 산이 생겨버린거니 그리 정확한 표현은 아닌것 같다.
승부의 승패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시나리오의 중후반부에나 와야하는 마굴인 ‘잿빛의 숲’의 한복판에 이리나와 단둘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위악 포인트 500pt 획득! (삼류 악당의 전투)]“으으…”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에 뜬 위악 포인트 획득창을 밀어낸 순간, 이리나가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얼마 안가서 의식을 되찾을 것 같다.
“………..”
덕분에 잠시 뇌정지가 왔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겉잡을 수 없게 되어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머리를 주먹으로 쳐가며 억지로 두뇌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변장을 할까?’
변장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지금 내 품에는 유사시를 대비해 항상 가지고 다니던 기만의 가면과 검은 로브가 있다.
기만의 가면은 비록 은신효과의 쿨타임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최소한 내 얼굴은 가려 줄 것이고, 검은 로브는 내 체형과 머리카락을 숨겨줄 것이다.
즉, 그 두개를 착용하고 그녀를 지키며 숲을 빠져나간다면 당장은 이리나를 속인 채 이 마굴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야, 역시 들킬 확률이 너무 높아.’
나와 이리나는 지금 동시에 공간 전이 마법에 휩쓸린 상태다. 그리고 그 모습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간 뒤 이리나가 자초지종을 알게되면, 당연히 무쌍을 찍은 가면남을 나로 의심할 것이다.
‘…그럼, 차라리 대놓고 힘을 쓸까?’
대놓고 힘을 쓴다면 편하긴 할 것이다.
물론, 이 숲에서 빠져나갈 때 쯤에는 빈사상태가 되겠지만… 안전하게는 빠져나갈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당연히 이리나가 날 의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리나는 지금 날 마왕의 힘을 받은 하수인으로 오해하고 있기에 힘의 출처 정도는 어떻게 속일 수 있겠지만, 이 마굴을 벗어나려면 최대한 그녀를 보호하며 빠져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보호한다면 아무리 날 증오하는 이리나라도 의심을 하기 시작할것이다.
“…젠장, 무쌍을 찍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도 하나 주지. 망할 시스템.”
만약 무쌍을 찍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여긴 마왕군의 전투 간부진들과 버금과는 실력을 가진 상급에서 최상급의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마굴이다.
게다가 개별 개체의 강함은 둘째치고, 그 압도적인 물량 덕분에 꽤나 골치가 아프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 상태 역시 지금 말이 아니다.
생명력과 체력이 대폭 깎이기 전이였다면 어떻게 버티는게 가능했겠지만 패널티를 받아서 체력과 전투력이 대폭 깎인 상태고, 심지어 이리나의 파이어볼을 연속으로 6발이나 맞은 상태니 말이다.
‘가지고 있는 무기는 대련용 칼이랑 위악자의 채찍이 다인데… 어쩌면 좋지…’
그런 절망적인 몸상태를 가지고, 연습용 칼과 데미지가 1도 안들어가는 채찍으로 무쌍을 찍으라니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품에서 채찍을 꺼내들고 이리나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 나는, 이리나를 납치한 납치범이다.
.
“이리나…”
“아리, 아리안느…?”
익숙한 장면이 보인다.
내가 전회차에서 경험했던, 미칠듯이 잊어버리고 싶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그 장면이 말이다.
“도, 도망가… 여긴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
내 품에 안긴 아리안느가, 꺼져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다.
“…산파극은 그만 찍고, 어서 덤비거라. 더 이상 떨거지들과 놀아주는 것도 지쳤느니라.”
한편, 마왕은 저 멀리서 하품을 하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날 도발하고 있다.
“죽여, 죽여버릴꺼야… 죽여버릴꺼야!!”
“…호오?”
그런 마왕을 지켜보던 나는, 내 모든 마법적 지식과 모든 마나, 그리고… 모든 분노를 한데 담아 궁극의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저 무적의 마왕이라도… 이 궁극의 마법에는 분명히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것이다.
“아, 안돼 이리나… 너, 너는 살아야…”
내가 쓰려는 마법이 무슨 마법인지 눈치 챈 아리안느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내 팔을 붙잡고 날 말리려 했지만…
“살아야 하는…….”
그녀는, 결국 미처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내 품에서 축 늘어졌다.
– 파지지지지지직!!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난 1000년간 그 누구도 재현해내지 못했던 대마법이 내 손안에 구현됐다.
“…재밌구나, 그거라면 이 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
하지만, 마왕은 그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마법진을 분석할 뿐이었다.
1000년 전의 전설에서, 용사와 함께했던 대마법사가 썼다는 궁극의 마법조차 그녀에겐 유흥거리에 불과하다는 걸까.
“…닥쳐.”
하지만, 비록 그녀에겐 유흥거리에 불과할지라도… 보잘 것 없는 상처밖에 남기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이 마법을 마왕에게 먹여주기로 결심했다.
“………..”
저기 싸늘하게 식어가는 내 소꿉친구의 가족들이, 제국민들이, 그리고 희망이 아직 내 뒤에 남아있기에.
“흐아아아아아아압!!!”
“그렇지만 말이야…”
내가 마법진을 발동시키자, 마왕이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에 마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그걸 그냥 맞아줄 리가 없지 않느냐?”
– 지이잉!!
그리고, 다음 순간 칠흑같이 어두운 광선이 날 향해 날아들었다.
수많은 기사와 영웅들이 저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졌었다.
그리고, 그건 나라고 다르지 않을것이다.
– 쩌어엉…!
“…흠?”
그러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내 소꿉친구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생명을 쏟아부어 만든,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완벽한 방어막이 내 앞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이런.”
마법진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마왕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1000년전의 마왕을 빈사상태에 빠지게 했던 대마법도, 그녀에게는 겨우 곤란한 수준인가 보다.
“이거나 쳐먹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법을 거두지 않았다.
이 마법이 마왕의 진군을 조금이라도 늦추기를, 그래서 한명의 제국민들이라도 더 살기를, 그리고… 그리하여 제국의 희망이 살아남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 콰과과과광!!!
그런 의지로 내가 발동시킨 대마법은 발동된지 몇초도 안되어 주변 일대를 박살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여파가 나와 마왕을 삼키기 직전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썩어빠지고 부패한 귀족들과는 다른 줄 알았던, 하지만 결국 그들보다 더한 존재가 되어 제국을 망쳐버린 그를 떠올리며 말이다.
“…그때 그 새낄 도와주질 말걸.”
그 허탈한 중얼거림이 끝나자, 암흑이 찾아왔다.
멍하니 그 암흑속에 서 있던 나는, 이내 이 모든것이 전회차의 마지막 순간이 그대로 재현된 나의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씨발.”
왠지 모르게 어렸을때의 그를 구하다 난 흉터가 욱씬거리는 것 같았기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부릅떴다.
이 좆같은 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라?”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어째서인지, 꿈이 깨지를 않는다.
보통은, 이렇게 눈을 부릅뜨면 꿈에서 깨어났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
게다가 어쩐 일인지 몸도 움직이질 않는다. 열심히 발버둥을 쳐봐도 몸이 꼼짝도 하질 않는다.
“읍, 으읍…!”
그리고 이내 내 입에서 소리가 나오질 않음을 눈치챘을때, 그제야 난 지금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 설마… 납치…?’
나는, 납치를 당했다는 것을.
.
“으븝…! 읍…!”
“…깼나보네.”
이리나가 움찔거리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신이 든 것 같다.
“으브브븝!! 으븝!!”
온몸이 채찍으로 꽁꽁 묶여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 있으며, 눈은 내 옷을 찢어만든 간이 안대로 가려져 있는 이리나를 보니… 왠지 모르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미어진다.
“크르르르…”
하지만, 지금은 잠시 그런 죄책감을 밀어둘때다.
“…젠장.”
잿빛 펜릴 무리가 입맛을 다시며 우릴 포위중이기 때문이다.
저 녀석들, 이 마굴에서도 꽤나 상위권에 드는 마물이다.
“으븝…!?”
소름이 끼치는 펜릴의 울음소리를 들은 이리나가, 발버둥을 멈추고 움츠러들었다.
“아우우우우…!”
그러자,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잿빛 펜릴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흐앗!!”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대련용 칼을 뽑아들고, 크게 휘둘렀다.
“…깨깽!”
그러자 그녀의 코앞까지 도달했던 펜릴 무리가,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튕겨져 나갔다.
“크윽…”
하지만, 동시에 내 몸에 무리가 찾아왔다.
아무래도, 패널티와 이리나에게 맞은 파이어볼의 영향이 꽤나 쎘나보다.
“…앗!”
그렇게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내쉬고 있는데, 풀숲에 숨어있던 펜릴 한마리가 갑자기 이리나의 뒤에서 튀어나오더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크앙!”
“윽…!”
다급히 달려가 그녀를 안아들어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그 덕분에 내 어깻죽지는 펜릴에게 사정없이 물어뜯기기 시작했다.
“흐압!!”
다급히 별의마나를 주먹에 모아 펜릴에게 어퍼컷을 날린 나는, 더 늦기 전에 전회차에서 꽤나 자주 써먹던 작전을 실행했다.
“크아아앙…!”
“크르르르르…!”
‘…사람 피맛을 한번 본 놈들인가? 죽어라 쫒아오네.’
바로, 줄행랑이었다.
.
“헉… 헉…”
한동안 펜릴 무리의 추격을 받으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닌 결과, 숨기에 적합한 동굴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재빨리 동굴로 뛰어들고는 입구를 꼼꼼히 막고 숨을 죽이고 있으니, 펜릴 무리들은 잠시 동굴 주변을 맴돌다가 이내 기척을 감추었다.
그 덕분에 이리나는 무사할 수 있었으나, 펜릴 무리에게 쫒겨다니가 강한 마물들을 많이 마주치는 바람에 내 몸의 상처는 꽤 많이 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도망치다가 곧 아카데미를 습격할 마물들과 마주친적이 있다.
미리 죽여 후환을 없애볼까 생각도 했지만 시나리오가 어긋날까 걱정도 됐고 애초에 쫒기는 몸이었기에 관뒀다.
“으읍…! 으으으으읍…!!!”
그렇게,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힘겨운 숨을 몰아내쉬고 있는데 갑자기 이리나가 내 품 안에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하긴, 온몸이 묶인 채 낯선 사람에게 안겨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으븝… 으브븝…”
“…시끄럽군.”
“푸하아아…! 하아… 하아…”
그런 이리나를 조심스럽게 동굴 바닥에 내려준 나는,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을 떼주었다.
“다, 당신… 당신 누구야…! 여긴 또 어디고…!”
“……..”
그러자 이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왔다.
“제가 누구냐고요…?”
나는, 비록 그녀의 눈을 가려두었지만 혹시나 그녀가 발버둥을 치다 안대가 벗겨질 걸 염려해 가면과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쓰고는 별의 마나로 목소리를 변조해 말하기 시작했다.
“…글쎄요, 한번 맞춰보시죠.”
그러자 이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네가 날 납치한 납치범이라는 건 잘 알겠어.”
“네, 그렇습니다.”
“혹시 마왕의 사주를… 아니지, 지금 그년이 날 알 리가 없잖아…”
그렇게 질문을 하다 말고 잠시 혼자서 중얼거리던 이리나는, 이내 표정을 사납게 일그러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역시 프레이의 짓이구나.”
“……..”
그런 그녀를 쳐다보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번일은 아리안느가 저지른 일일꺼야. 물론,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의식을 잃기전에 아리안느가 ‘회복 스크롤’에 대한 걸 중얼거린 걸 봐서는, 그녀가 찢은 마법 스크롤이 이 사건의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회복 스크롤이 공간 전이 스크롤로 대체되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공간 전이 사건의 배후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내 정체도 숨길 수 있고 위악포인트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그 분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마시지요.”
“지랄.”
내가 화난 어조로 이야기하자, 이리나가 몸을 비틀며 욕지거리를 했다.
“프레이… 이 개새끼가… 커흑…!”
“…함부로 그분의 이름을 입을 담지 마시라니까요.”
나는 그런 이리나의 목을 움켜쥐고는, 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스타라이트 가의 어두운 일을 전담하고 있는 그림자 하인이라고 합니다.”
“그림자… 하인…?”
“네, 도련님의 소유가 된 당신을 이 비밀 아지트에 데려오고, 당신을 교육시키는 역할을 맡았죠. 아, 참고로 이 비밀 아지트는 꽤나 오지에 있는 곳이라 마물들이 득실거리니, 괜히 탈출할 생각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게… 무슨…”
“도련님께 몸도 마음도 바칠려면… 교육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당신은 그런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가 부드럽게 그녀의 볼을 쓰다듬자, 그녀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차, 차라리 아카데미를 그만 두겠어…! 나와 그가 한 맹세는…”
“…당신이 아카데미를 그만두면, 당신의 귀여운 친구와 언니의 안전을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너… 누군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죽일거야… 반드시…”
“역시, 도련님이 말씀하신 대로 굉장히 사나우신 분이군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이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한번 속삭였다.
“저와 우리 도련님은… 사실 그런 사람을 굴복시키는걸 제일 좋아한답니다.”
내 소름끼치는 변조된 목소리를 들은 이리나는 이내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별안간 고개를 돌렸다.
“흐윽… 흐으윽…”
동굴 안쪽에서 왠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벌어진 돌발 상황에 얼어붙은채 동굴 안쪽을 쳐다보고 있는데, 신음소리가 이내 비명소리를 바뀌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소리는…?”
그러자 이리나 역시 그 소리를 듣고 당황하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이리나를 뒤로 한채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도착한 동굴의 내부는…
“…시발.”
그야말로, 마경이었다.
“크룩?”
“끼에엑?”
방대하게 펼쳐진 동굴의 내부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의 해골로 가득 차 있었고, 고블린과 거미 마수, 검은 슬라임 등등… 여러가지 몬스터들과 마물들이 한데 모여 사람의 뼈와 살조각들을 파먹고 있었다.
“저기…”
“…..!”
그리고 그런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발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식겁을 해 뒤로 물러났다.
“저…”
“…이런.”
“저 좀…”
하지만, 이내 그 목소리를 낸 사람이 반쯤 죽어가는 여인임을 깨닫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끄룩?”
“끼엑?”
여인의 몸에는, 수많은 곤충형 마물들과 고블린이 달라붙어 그녀의 살을 파먹고 있었다.
다급히 그 몬스터들을 때어낸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죽어가기 시작한 그녀에게 생명력을 전달해주려 손을 뻗다가 이내 행동을 멈췄다.
“저좀 죽여주세요…”
“……….”
그녀가 자신을 죽여달라 간절히 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가 응급조치를 한다면…”
“제가 살던 마을은 불탔고… 친구도… 남편과 아이들도… 그리고 이웃 사람들도… 전부 죽었어요…”
“………”
“그러니… 그냥 죽여주세요… 모험가님…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내려다 보던 나는, 나지막히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살아난다면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을겁니다. 그래도…”
하지만, 이내 나는 말을 멈추고 말았다.
지금은 제국 전역이 이런 상태다.
그나마 수도나 방비가 잘되는 몇몇 지역은 버틸만 하지만… 낙후된 시골이나 오지는 이렇게 마물들에게 약탈당하고 전멸당하는게 일상이라는거다.
귀족들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기에 일어난, 마왕을 죽이기 전까진 절때 끝나지 않을 끔찍한 상황이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이어가라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왕을 쓰러트리고 난 다음이라면… 내가 본격적으로 제국을 개혁하기 시작할때라면… 어쩌면…
“모험가님도… 많이 다치신것 같으니… 절 도와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저 저에게 편안한 죽음을…”
“…윽.”
그런 생각을 하며 여인에게 다시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내 몸상태를 지적하며 다시한번 손길을 거부했다.
그제야 나는 이 여인에게 줄 생명력은 커녕, 이곳을 빠져나갈 생명력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조용히 칼을 바로잡았다.
“감사… 합니다…”
내 표정이 바뀐 걸 본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인사를 하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인을 바로 베지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저 마물들이 당신의 남편과 아이, 그리고 이웃들을 죽이고 당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겁니까?”
“………”
그러자 여인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읍.”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 파지이이이잉!!
이윽고 내가 칼을 힘차게 휘두르자, 여인은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자 여인은 바들바들 떨며 눈을 조심스럽게 떴고, 이내 할말을 잃은 채 눈앞에 벌어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크으으…”
“크륵… 큭…”
동굴 내부를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마물들과 몬스터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참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여인은 이내 글썽글썽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마물들과 달리, 당신은 편하게 보내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여인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목을 내밀었고, 몇초 후 그녀의 몸뚱아리는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후우.”
잠시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쿨럭.”
어느새 입으로 삐져나온 피를 닦으며 말이다.
.
“바, 방금… 그 목소리는…”
“…아, 그거 말입니까?”
일을 마치고 이리나에게 돌아오자, 그녀는 나에게 다급히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자의 비명소리였어… 대체… 무슨 일…”
“이곳에는 당신만 있는게 아닙니다. 도련님께 품어지기 위해 교육받고 있는 여자들이 꽤 많죠.”
“미친… 미친 새끼…”
그 말을 듣자 잠시 경멸어린 표정을 짓던 이리나는, 이내 표정을 굳히며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잠깐… 근데 이건 피비린내잖아…”
“…용케도 알아차리셨군요.”
“너, 너 설마…”
“이곳에서 도망친다는건… 도련님을 배신할 가능성이 높다는거죠. 그렇기에 제 선에서 처리한겁니다만.”
“죽어!! 죽어버려!!! 이 쓰레기 새끼야!!!”
“하아…”
나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 이리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하세요. 도련님이 당신은 어떻게든 죽이지 말고 교육을 끝내라 하셨으니.”
“닥쳐! 프레이나 너나…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거야!!”
“교육은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여전히 바둥거리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의 귓가에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기세가 언제까지 이어지나 보죠.”
그 말을 마친 나는, 그녀의 입에 다시 재갈을 물리고 조용히 동굴의 구석으로 가서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젠, 그녀를 이곳에서 탈출시킬 차례이다.
.
‘죽일거야… 반드시 죽여버릴 거라고… 반드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바깥의 풍경이라도 보면 대충 낮인지 밤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눈이 가려져 있기에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으읍!”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써 수차례나 마나를 모으려 노력해봤지만, 대련장에서 너무 무리를 해서인지 마나가 모이질 않는다.
“크어어엉!!”
“아우우우우우…!”
“키룩… 키룩…”
‘…젠장.’
게다가 설사 마나를 모으는데 성공해서 이 속박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그 쓰레기같은 프레이의 하인을, 그리고 아마 밖에 있을 수많은 마물을 상대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절대 포기 못해…’
하지만 나는 그런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마나를 모으고, 또 모았다.
그 하인과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마물들에게 물어 뜯기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곳에서 빠져나가 프레이를 죽여버려야 했기에.
그럼으로서 제국을, 제국민들을, 그리고 아리안느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푸핫?”
그렇게 온 몸에서 고통을 느끼며 힘겹게 마나를 모으고 있는데, 별안간 입의 재갈이 벗겨졌다.
“무, 무슨…”
“쉿…..!”
그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입을 막았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해요…!”
이윽고 갸날픈 목소리로 내게 다급히 말을 한 정체 불명의 사람은, 날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엉겹결에 끌려가던 나는, 이내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회귀까지 했는데 여기서 죽을 순 없지.’
아무래도 태양신이 날 돕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