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29)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29화(29/524)
Episode 29
“저, 저기…”
“…지금 떠들 시간이 없어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아 해요!”
이리나의 다리에 꽁꽁 묶어놨던 채찍을 푼 나는, 그녀의 팔을 잡고 동굴 바깥으로 뛰기 시작했다.
“자, 잠깐… 흐악…!”
그러자 엉겹결에 나와 같이 달리기 시작한 이리나는, 이내 비틀거리더니 고꾸라지고 말았다.
“빠, 빨리 일어나세요! 어서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는 그런 그녀를 일으켜세우며 다급히 재촉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 이 안대랑 팔의 밧줄을 벗겨줘야 제대로 도망을 치든지 말든지 할거 아냐!!”
“…아.”
이내 이리나의 말을 듣고는 납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안대와 팔의 채찍을 풀었다.
“…여, 여긴?”
그러자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이리나는,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프레이의 비밀 아지트가 있는 곳이에요. 평소에는 마물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곳이죠.”
“……….”
그런 그녀에게 짧게 설명을 하고 다시 갈 길을 가려는데, 갑자기 이리나가 날 날카롭게 노려보며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구야?”
“……..”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스타라이트 가문의 그림자 부대에 속해있는 이름없는 하녀에요.”
그렇게 말하는 나는 흰 가면과 검은 로브로 내 모습을 꼼꼼히 숨기고 있었으며, 목소리는 별의 마나를 사용해 최대한 가냘프게 만들어 남자로서의 느낌을 최대한 지우고 있었다.
그래도 노련한 이리나에게 내 정체를 들킬 가능성이 있었기에 숨을 죽이고 있는데, 이리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 네가, 왜 날 도와주는데?”
그걸 보면 이리나는 날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역시 사방이 칠흑같은 어둠에 잠길 때까지 기다리길 잘했다.
물론 시야 확보가 안되어 약간 위험해지긴 하겠지만,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검은 로브의 효율을 극대화 시켜 이리나를 속일려면 밤에 움직이는게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그게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미리 만들어뒀던 시나리오를 이리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 또한 피해자에요.”
“피해자…?”
“네… 전 그림자 부대의 일원인 동시에… 이 비밀 아지트에서 그 가증스러운 프레이에게 매일 밤 봉사를 하고 있어요…”
“그, 그말은… 프레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소리야…?”
그녀가 경악을 한 표정으로 묻기에, 나는 힘 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네… 프레이는 얼마전에 있었던 대련 시합에서 당신을 납치할 계획을 짜고, 그림자 부대를 이용해 당신을 도우려던 아리안느의 회복 스크롤을 공간이동 스크롤로 바꿔치기 했었어요.”
“뭐, 뭐라고…?”
“그것도 모르고 아리안느는 쓰러진 당신을 도우려고 스크롤을 찢었고… 그 덕분에 프레이와 당신이 이 곳에 도달하게 된거에요.”
“그럼 아리안느는…!”
“네… 함정에 빠진 아리안느 씨는 큰 처벌을 받겠죠. 물론 당신과 같이 이곳에 왔을 프레이는 안전하게 그의 비밀 아지트에 들어가 마법 역추적으로 위치를 알아낸 수색조가 도착하기 전까지 저와 당신을 품기만을 기대하고 있을 테고요.”
그 말을 들은 이리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여, 역겨워… 어떻게 사람이 그럴수가 있는거야…?”
“네… 당신의 말이 맞아요… 저도 처음 이곳에 잡혀왔을때는…”
그런 그녀의 말에 공감을 해주다가 말끝을 흐리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니, 이리나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당신… 그럼 날 돕는 이유가…?”
“네… 오늘 도망치던 여자가 죽임을 당하는 걸 보고 결심했어요…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겠다고…”
“아…”
“그래서 빠져나가려는데, 마침 당신이 동굴 입구에 있기에 같이 데려나온 거랍니다. 이왕이면 다른 분들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죄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지라…”
내가 계속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입술을 꽉 깨물던 이리나는 내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정말로. 이 은혜는 죽어서도…”
“흐, 흐앗…!”
이윽고 그녀가 나를 안으려 하기에, 나는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시, 싫어!!”
“아…”
그리고 잠시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죄, 죄송해요… 제가 트라우마가 있어서…”
“……..”
이리나에게 안겼다가는 내 체형을 들킬수도 있었기에 나는 즉석으로 떠올려낸 설정으로 변명을 시작했고, 그 변명을 들은 이리나는 이내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안.”
“아뇨, 괜찮아요. 그럼 이제 슬슬 숲을 빠져나가… 음?”
그렇게 담담한 표정으로 이리나의 사과를 받아준 나는, 슬슬 숲을 빠져나갈 채비를 하다가 갑자기 뒤에서 기척을 느끼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키룩…! 키루룩…!”
“그에에…”
뒤를 돌아본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입맛을 다시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던 마기에 침식된 고블린 무리였다.
“조, 조심해…!”
그 광경을 본 이리나가 다급히 내 앞을 막아서며 마나를 손에서 불을 피워냈지만, 그 불은 3초도 되지 않아 힘없이 사그러들고 말았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동굴 내부의 해골 더미에서 찾은 쓸만한 칼을 바로잡았고, 한편 이리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여긴 내가 맡을테니까… 일단 너는…”
– 파징!
“…어라?”
하지만 어느새 앞으로 뛰쳐나간 내가 일합만에 무리의 앞에 있던 대장 고블린의 목을 베어내자, 그녀는 입을 떡 걸리고 날 바라보았다.
“끄에에에엑!!”
“끼, 끼루욱…!”
한편 대장 고블린을 잃자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기 시작한 고블린 무리를 바라보던 나는, 뒤에서 여전히 날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이리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서 가요, 아지트에는 저보다 몇배는 더 강한 요원들이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어… 응…”
그렇게 나와 이리나의 험난한 모험이 시작됐다.
.
“하아… 하아…”
“저, 저기… 괜찮아…?”
한동안은 약한 마물들만 나왔기에 어느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동굴을 빠져나온지 몇시간 만에 꽤 강력한 마물인 드레이크 무리를 만나고 말았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사방에서 달려드는 드레이크 무리를 전부 상대하는 동시에 이리나를 지킬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내 몸에는 한계가 찾아오고 말았다.
패널티만 없었어도… 어떻게든 버텼을텐데, 참 아쉽다.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잠깐 쉬었다 가야 할 것 같군요…”
그나마 다행인점은 이리나에게 마나를 잔뜩 넘겨줄 심산으로 최고급 마나 생성 물약을 잔뜩 마셨었기에, 별의 마나는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평소와는 달리 이렇게 장시간 동안 별의 마나로 목소리를 변조해도 딱히 무리가 오진 않았다.
“그, 그래… 조금 쉬었다 가자… 너,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날 가리켰다.
왜 그러나 싶어 내 몸을 내려다보니,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아까 펜릴에게 뜯긴 어깨는 푸르딩딩하게 변해 있었고, 온 몸에는 베이거나 할퀴어진 상처가 있었으며, 너무 피를 많이 토한 나머지 가면 사이로는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비밀 아지트에서 당했던 끔찍한 일보다는 백배 더 나으니까요.”
나는 애써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느나, 이리나는 그런 날 보고 바들바들 떨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든 죽여버릴거야… 프레이… 반드시…”
‘…이거, 내가 내 무덤을 판건가?’
덕분에 약간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어차피 곧 저게 다 내 위악포인트가 될거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으윽…!”
그런데, 바닥에 주저 앉자마자 갑자기 온몸에서 쓰라린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서 그런건지, 아니면 자세를 바꿔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고통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덕분에 한동안 바들바들 몸을 떨고있는데, 갑자기 이리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 저기 괜찮으면… 치유마법을 걸어줄게… 마나가 잘 안모이긴 하지만 살에 직접 손이 닿으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지도…”
“나, 날 만지지 마!”
나에게 치유 마법을 걸려는 이리나에게서 다급하게 떨어지니, 그녀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대체… 얼마나 끔찍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너 처럼 강한 아이가 그렇게 바들바들 떠는거야…?”
“……….”
“…만약 네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런 끔찍한 짓을 당했겠지?”
잠시 혼자서 중얼거리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고 나에게 슬픈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저기… 이름이 뭐야?”
“…리아나 입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내가 뇌리에 떠오른 가명을 대자, 이리나는 각오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아나… 여기서 탈출하면… 잠시만 숨어있어.”
“…네?”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들려올거야. 그러니, 그때가 되면 안심을 하고 살아가도록 해.”
“설마… 프레이를 죽이실건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응… 어떻게든 그 개자식을 죽여버릴거야. 설사 그의 가랑이 밑에서 기며 놀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아카데미로 돌아가실 건가요?”
“응… 솔직히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내 소꿉친구와 그녀의 언니가 위험해져.”
“…그렇군요.”
“그래, 그러니 일단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프레이에게 개처럼 길거야. 가랑이 아래를 기어가라면 기어갈거고, 자해를 하라면 자해를 할거고, 밤 시중을 들라 하면… 밤 시중을 들어야겠지.”
“……….”
“그렇게 이번 일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그에게 완전히 굴복한 척을 하다가… 기회가 찾아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그 새끼를 내 손으로 쳐 죽여버릴거야. 그러니, 그 전까진 어떤 수모를 당해도 참아야겠지.”
나를 죽일 계획을 내 앞에서 독기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이리나를 보니 기분이 편치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마음이 아직 부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기, 그런데 궁금한게 있는데 말이야…”
“…네?”
“그 가면은 왜 쓰고 있는거야?”
“……..”
하지만 그 미소는, 이리나가 내 가면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하자 쏙 들어가고 말았다.
사실 이 가면은 옛날에 행운의 반지를 선물했던 꼬맹이, 지금은 연옥에서 고통받고 있을 서큐버스 퀸을 제외하면 본 사람이 없다.
물론 클라나와 페를로체가 가면을 쓴 내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사방이 칠흑같은 어둠에 잠겨져 있었으며 가면 또한 경매장에서 나누어준 무도회 가면이었으니 아마 안전 범위 일 것이다.
하지만, 이리나가 내 가면 자체를 이상하게 여긴다면 그건 약간 곤란하다.
“죄송해요, 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왜?”
“…너무 많이 맞아서, 퉁퉁 부어있거든요.”
“………”
결국 나는 다시 내 악명을 팔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이리나는 납득한 표정을 짓더니 애써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어느 정도는 의심을 할 줄 알았는데 내 악명이 어지간히도 강했나보다.
“그럼, 여기서 잠깐 눈을 좀 붙히고…”
– 꼬르륵…
“…앗.”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누우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읏.”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가우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이내 이리나가 얼굴을 붉히며 배를 부여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고프세요?”
“아, 아니… 딱히…”
– 꼬르륵…
“”……….””
자신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던 이리나는, 다시 한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푹 숙였다.
‘…하긴, 배고플만도 하지.’
지금 시점의 이리나는, 상당히 가난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카데미에 있는 평민용 식당에서 싼값으로 하루의 식사를 해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런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마나를 잔뜩 쓰고, 게다가 식사마저 못했으니… 배가 고픈건 당연…
– 꼬르륵…
“미, 미안…!”
다시 한번 꼬르륵 소리가 나자 이리나가 나에게 다급히 사과를 건네왔다. 하지만, 이번에 들린 소리는 그녀의 배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꽤 고생을 했었지?’
아무래도, 최근에 너무 구르다보니 이런 상황에 너무 둔감해져버린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주린 배를 좀 채워야 할 것 같다.
바닥난 생명력을 회복시키는데는, 잘 먹고 잘 쉬는게 최고니 말이다.
“…먹을 걸 좀 구해올게요.”
“나, 나도 도울게…! 이래봐도 전쟁터… 아니, 어쨋든 생존에는 꽤 자신이 있으니깐…!”
“그럼, 너무 멀리나가지 마시고… 이 근처에서 찾아보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소리를 지르시고요.”
“…알겠어.”
그렇게, 한밤중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먹거리 찾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
“너, 너… 그거 어떻게 잡았어…?”
품에 나무열매를 가득 품은채 약속한 장소에 나타난 이리나가, 내가 잡은 자이언트 보어를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칼로요.”
“아니 그게… 휴, 됐다.”
그래서 담담하게 답을 해주었더니, 뭐라 말을 하려던 이리나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나무열매를 땅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너 엄청 강하구나?”
“…네.”
“그런데… 왜 프레이에게 꼼짝도 못하고 있던거야?”
“…아지트에는 저보다 몇배는 더 쎈 강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으니까요.”
이리나가 다시 의심을 시작했기에 태연하게 답변을 하니, 그녀가 아까 내가 연기를 했던 남자를 떠올렸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전까진 동생들이 인질로 잡혀있었어요.”
“…인질로?”
“네, 프레이가 항상 써먹는 더러운 술책이잖아요.”
“맞아, 그 새끼는 그렇게 더러운 술책을 전문으로 쓰는 녀석이니까.”
이윽고 이어진 내 보충 설명에 격하게 공감하던 이리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전까지 ‘라는 소리는…”
그렇게 잠시 혼잣말을 하던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의 날 보더니 이내 질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왜 이리 실수를 많이하지…”
물론, 그녀가 실수를 한게 아니라 내가 연기를 하는거다. 그러니, 이리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나저나, 내가 너무 쓰레기가 되어가는데? 괜찮으려나?’
그렇게 죄책감에 빠진 이리나를 뒤로하고 자이언트 보어를 바라보며 칼을 잡아들던 나는, 문득 내가 너무 쓰레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 들기 시작했으나… 생각해보니 원래 퍼져있던 악명과 다를 것도 없기에 걱정을 떨쳐내고 자이언트 보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 타닥… 타닥…
그리고 잠시뒤, 모닥불 안에서 내가 손질한 자이언트 보어의 고기가 익어가자 이리나가 날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리나 씨도 먹으셔도 돼요.”
“저, 정말?”
“애초에 같이 나눠먹으려고 잡아온건데요, 뭐…”
“하, 하지만… 난 겨우 나무열매를…”
“아, 이건 제가 좋아하는 빙룡 열매네요? 어렸을때 참 좋아했는데…”
“…뭐?”
그런 이리나가 눈치를 보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게 그녀가 따온 나무열매를 집어들고 한입 베어물었는데, 갑자기 이리나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으음… 맛있어… 역시 이 산뜻한 맛이 최고라니까…”
“…………”
그렇게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면 밑으로 나무 열매를 밀어넣기 시작했고, 그런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이리나 역시 조용히 모닥불 속에 있던 고기를 집어들고 베어물었다.
그렇게, 한동안 숲에는 쩝쩝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그렇게 식사를 마친 둘은, 서로 1시간씩 눈을 붙이기로 결의했다.
“그럼… 저 먼저 잘게요…?”
“…응, 알겠어.”
이윽고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리아나가 먼저 잠에 들었고, 이리나는 그런 그녀의 옆에서 1시간동안 조용히 불침번을 섰다.
“……….”
헌데, 약속한 1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리나는 자신을 ‘리아나’로 소개한 여자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드르렁… 쿨… 음냐… 음냐…”
“좋아…”
그렇게 한참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리아나가 코를 골기 시작하자 이리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역시,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어.”
이윽고 그녀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이리나는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에 손을 뻗기 시작했고… 그렇게, 꼭꼭 숨겨오던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려는 순간…
“…흐아아아암!”
“…히익!”
리아나가 크게 하품을 하더니 기지개를 피며 벌떡 일어났고, 그 바람에 이리나는 뒤로 발랑 넘어지고 말았다.
“…음? 이리나 씨? 왜 그러시고 계신가요?”
“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러고보니, 교대할 시간이 됐네요. 오늘 하루동안 고생 많으셨을텐데… 잠시 눈을 붙이세요.”
“…응.”
이윽고 리아나가 교대를 제안하자, 이리나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자리에 눕고는 이내 눈을 감았다.
“……….”
그리고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리아나… 아니, 프레이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큰일날뻔 했네.”
그렇게, 프레이는 속으로 1시간동안 잠을 자지 않고 실눈으로 지내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이리나의 옆에서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음냐.”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은 대가로 꾸벅꾸벅 졸며 말이다.
.
이리나를 조금이라도 더 쉬게 해주고 싶었기에 넉넉히 1시간 30분 정도를 그녀의 옆에서 불침번을 서준 나는, 잠에서 스스로 깬 그녀와 함께 다시 숲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숲을 나아가다 보니 슬슬 아침이 찾아오기 시작했지만 잿빛의 숲은 그 이름답게 정오가 되기 전까진 칠흑같은 어둠을 유지하는 곳이었고, 덕분에 나는 출구에 도달할 때까지 이리나에게 내 모습을 효율적으로 숨길 수 있었다.
“이리나씨, 저길 봐요! 숲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정말이네. 다행이야.”
그렇게 아침해가 밝아올 무렵, 우리는 드디어 숲의 출구에 도달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일대에 몬스터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행운이 따랐기에 예상보다 몇시간은 더 일찍 출구에 도착한 우리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럼… 슬슬 헤어질 때인가요?”
“그래… 난 프레이에게 개처럼 목숨을 구걸하러 갈테니… 넌 어딘가에 숨어있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날 지켜준건 절대 잊지 않을거야. 그러니, 나중에 생활이 궁핍해지면 제국 마법사 ‘이리나 필리어드’를 찾아와 줘.”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을 외우기 귀찮으면, 그냥 제국에서 가장 쎈 대마법사를 찾으면 될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각오에 찬 눈빛을 띤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준 나는, 귀에 별의 마나를 집중해서 뒤에서 중얼거리기 시작한 이리나의 말을 훔쳐듣기 시작했다.
“…역시 지금이라도 기습을 해서 가면을 벗겨볼까?”
그리고 이내 그녀가 여전히 날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재빨리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으나…
– 크오오오오오오오!!!
“…….!”
갑자기 출구쪽에서 거대한 무엇인가가 솟아나오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렸다.
“저, 저건…!”
그리고 그건 전 회차를 경험한 이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냐면 저건…
“…씨발, 일대의 마물이 싹 사라진 이유가 저거었구나.”
한참 나중에 일어날 ‘아카데미 마물 침공 사건’의 최종보스인 다크 골렘이었기 때문이다.
– 대상 인식… 목표 설정…
그렇게 땅에서 순식간에 솟아나온 거대한 크기의 골렘은, 조용히 우릴 노려보더니 지지직 거리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제거 시작…
그리고, 그 목소리가 끝난 순간 검은색 광선이 우릴 향해 날아왔다.
아무래도, 우린 좆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