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45)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45화(345/524)
Episode 345
“자, 출구가 머지 않았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던 제 6간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를 바라본다.
“이 앞으로 나가면, 본거지가 보일거야. 거기서 잠시 대기하고 있으면 돼. 뒤로는 절대 가지 말고. 온갖 결계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앞으로 걸어가던 나와 루비는, 이내 조용히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내 옆에 선 것이냐.”
“그야, 네가 걱정돼서 그러지 루비.”
내가 부드럽게 속삭이자, 루비가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넌 왜 내 앞에 선건데?”
“……..”
“혹시,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 그녀에게 살짝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물어보니, 루비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흠.”
살짝 손가락을 흔들어 이미 뛰고 있던 그녀의 심장 박동을 살짝 올려주었다.
원래는 심장 자체를 조작해야 했지만 지금은 추진력만 넣어주면 되니 훨씬 더 편해진 것 같다.
그나저나 그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무엇 하느냐. 따라오지 않고.”
아마 모르겠지.
알았으면 저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심하면서도, 묘하게 신경쓰는 듯한 표정과 말투 말이다.
아무리 표정을 숨겨봐도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으휴, 드디어 밖… 어라?”
그렇게 부드러운 미소를 띤채 비밀 출구를 나오니, 맨 앞에서 앞장서가던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띄기 시작했다.
“뭐, 뭐뭐 뭐야?”
우리가 나온 곳 주변을 이미 교단의 기사들과 사제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아마 급하게 차출됐거나 시간벌이용이겠지.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우리의 칩입이 녀석들에게 ‘들켰다’ 라는 것이 중요하다.
마나의 흐름이 이상해지길래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였을 줄이야. 역시, 교단은 만만한 곳이 아니였다.
혼자 왔다면 이기긴 이겨도 꽤나 고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잡것들이 너무 기어오르는군.”
하지만, 지금 내 앞에는 비대칭 전력이 있다.
현 세계관 최강자라는, 압도적인 무기가 말이다.
비록 나에 의해 마력이 봉인된 상태고 손가락 하나밖에 쓰지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콰지지지지직…!
“끄어억!!”
“크엑!?”
루비가 무심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한번 휘젓자,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병력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어? 어어?”
“네년, 감히 이몸을 노예라 칭했겠다.”
“꺄악!?”
그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나던 소녀가, 루비에게 머리채를 잡혀 들어올려진다.
“쿠에엑!!”
그런 그녀를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전력을 다해 바닥에 내리꽂아버린 루비.
“너, 너어…? 어떻게…”
“설명하는 것 조차 귀찮다. 죽어라.”
그렇게 말하며 발을 들어올리는 루비의 눈빛은 서늘했다.
사람을 벌레로도, 아니 생명체로도 취급하지 않는 무심한 모습.
지금까지 내게 보이던 눈빛이 양반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다려.”
“…흠?”
그런 루비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말렸다.
기본적으로 교단의 간부들은 루비처럼 모두 쳐 죽여도 될만큼 갱생 불가한 쓰레기 녀석들이라 딱히 상관은 없지만, 저 녀석은 아직 필요하다.
“내가 왜 네 명령을 들어야…”
“착하지?”
“……….”
살짝 반항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하던 루비의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으니, 녀석이 말을 멈추고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볼에 살짝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 짝!!
“케흑.”
그런 그녀의 볼을 전력을 다해 내리치니, 부딪히기 직전에 눈을 지긋이 감은 루비가 땅에 주저앉아 볼을 부여잡은채 날 올려다본다.
“기다리라니까.”
“………”
“옳지, 잘했어.”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니 어째서인지 루루 생각이 나서 루루를 대하듯이 대해봤는데, 역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엿같은 놈이…”
그녀의 두근거리던 심장이 멈추고 눈매가 사나워진다. 애완동물 취급이 어지간히도 싫었나보다.
꼴에 자존심은 남아있나보지?
뭐, 좋다.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랑스러우신 마왕님의 취향에 맞추어줄 필요가 있으니.
“농담이야, 루비.”
머리에서 손을 거두고 루비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채 이마에 키스를 했다.
“늘 사랑해.”
– 두근, 두근…
그러자, 루비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마왕님은 순수하고 풋풋한 일방적인 사랑에 매우 약한것 같다.
받아본적도 없고 생각해본적도 없는, 잔뜩 뒤틀려 있는 그녀와는 상극인 행동이니 어찌보면 당연하려나?
“비, 비켜라.”
– 쪽…!
천천히 루비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목에 볼을 비비던 나는, 그녀의 목에 입맞춤을 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 놈.”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던 루비가, 이내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내 칭호가 미친놈에서 이상한 놈으로 바뀐건 기분 탓이려나?
“엥? 으엥?”
– 콰직…!
“끄에에…”
눈앞에서 벌어지던 장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소녀를 기절시킨 나는, 녀석을 들쳐업고 조용히 루비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스륵, 스르륵…
“좋아.”
아까부터 내 뒤를 따라오던 녀석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채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잠행? 은신? 그쪽 계열의 이능인것 같은데.
아무튼 상관없다. 오히려 호재니 말이다.
마왕의 마력 발현은 빈틈없이 막고 있다.
아무리 그녀라도 마력 없이는 나조차도 촘촘히 별의 마나를 깔아 겨우 기척을 잡아낸 녀석을 눈치채지 못할것이다.
“또 왜 멈추었느냐.”
“아냐, 아무것도.”
지금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침식을 해나가는 것보다는, 자극적인 일들을 쉴틈없이 몰아넣어 단기간에 승부를 볼 때이다.
시간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루비.”
아무래도 계획에 쐐기를 박을 만한,
꽤나 재밌는 사건을 연출할 수 있을것 같다.
.
그로부터 얼마뒤, 교단 본거지 내부.
“괴, 괴물!!”
“무슨 힘이 이리도!!”
“그런 말은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어보았도다. 조금 더 색다른 유언은 없느냐?”
꽤나 깊은 곳까지 침투했음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휘저어 나가던 루비는, 조용히 자신의 뒤를 뒤따라오고 있는 프레이를 힐끔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바보 같은 녀석들이로군. 나같으면 후방을 노릴텐데.’
전략적 판단을 못하는 녀석들이 틀림없었다.
후방이 이리도 비어있지 않는가.
만약 자신이 습격을 하는 입장이었다면 뒤를 쳤을것이다.
뒤는 언제나 취약한 법이니 말이다.
‘뭐 상관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루비는, 이내 흥미를 잃고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 만큼은 아니지만 두번째로 최강이라고는 말할 수 있는 프레이였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프레이가 어련히 잘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안위에 대해 생각을 하는것 부터가 매우 이상한 일이었지만.
루비는 그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깄다!!”
“잡아!!”
“쯧.”
그렇게 조용히 걸음을 옮기려던 루비는, 저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병사들을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기습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며 달려오는 병사들이라니.
저 녀석들이 마왕군이였다면 진작에 숙청이었다.
저런 녀석들에게도 악함을 들킬까봐 가차없이 공격을 해야 한다는게 참 같잖다.
왜 나는 이곳에서 이런 떨거지들을 처리하고 있어야 하는건가.
나는 마왕인데.
지금쯤 아카데미에서 계략을 짜고 있어야 하는데.
대체 왜…
– 파지지지지직…!
“같잖군.”
바퀴벌레처럼 밀려나오는 병사들의 무리에 참다참다 폭발한 마왕이, 손의 손톱을 바로세우고는 검을 휘두르듯이 힘차게 허공을 긁었다.
– 쿠과과과과과광!!!
“끄에엑!!”
“크억!!”
“흠.”
그러자, 굉음이 울려퍼지며 순식간에 정리되는 심층부의 병사들.
“주제를 모르니 그렇게 되는거다.”
개미때를 밟아 죽인것 이상의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루비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깔끔해진 앞으로 걸어나가려 했으나.
– 텁…!
그런 그녀의 어깨를, 미소를 짓고 있던 프레이가 붙잡았다.
“또 왜…”
– 짝!!!
그 직후, 옆으로 휙 돌아가는 루비의 뺨.
“……..”
프레이의 귀싸대귀가 다시한번 그녀에게 적중한 것이였다.
“아, 아파.”
“이곳이 무너지면 안되니 적당히 하라고 했을텐데. 이곳엔 인질과 납치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그리고, 꼭 그렇게 대량으로…”
“아프단 말이다!”
얼얼해진 뺨을 붙잡은채 벙찐 표정을 짓던 루비가, 이내 눈빛을 사납게 일그러트리며 프레이의 말을 끊는다.
“그깟 인질이 좀 죽는다 해서 무슨 상관이더냐!”
“……….”
“그건 그렇고 네놈, 날 정말로 사랑한다면 좀 적당히…”
– 스륵…
“…..흣.”
하지만, 그런 그녀의 허리를 팔로 휘감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기 시작한 프레이.
루비에게 있어서는 최근 며칠간 너무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 스윽…
“흐, 흐긋…”
프레이의 팔이 뒤로 길게 빼진다.
그 모습에, 알아서 경련을 해대며 충격에 대비하기 시작한 그녀의 아랫배.
그와 동시에 루비의 온 몸에 저릿저릿하고 오싹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샤락…
그렇게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던 그때, 프레이가 루비의 상의를 조용히 들추어 올린다.
“하, 흐아…”
루비의 뽀얀 뱃살이 수줍게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몸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루비의 몸은, 오직 이 다음에 일어날 일 하나에 집중하게 짜여져 있었다.
– 콰지지지지지직!!
“꺄아아아아아아악!?”
그로부터 몇초후, 프레이의 주먹이 그녀의 아랫배를 강타했다.
그 충격 때문에 루비의 몸이 지상을 벗어나 허공을 붕 뜨고, 허리는 인사를 하듯이 공손하게 꺾인다.
– 지지지지직…
“쿠에에에엑…”
그러한 충격 이후에 찾아온, 그녀의 뱃속에 들어있던 별의 마나의 스파크.
그 절묘한 조화에, 루비는 배를 부여잡은채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아 침과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이번에 프레이가 가한 폭력은, 그 어느때보다 더 매서웠다.
‘이, 이게 뭐더냐.’
그 덕분에 한참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루비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지금까지 맞을때는, 그저 배에 고통만을 느끼며 프레이를 원망할 뿐이었다.
– 오싹, 오싹…
그런데, 방금의 한방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린 그녀의 배에서 고통과는 다른 오싹오싹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은 어느새 가파르게 뛰고 있었다.
“으, 으으?”
아무리 생각해봐도 치욕스럽게 배를 맞고 무릎을 꿇은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마치, 자신이 이렇게 성대하게 얻어맞은 것에 만족이라도 하고 있는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이, 이게 뭐야.’
다급히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루비가, 식은땀을 흘리며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역시 배에 들어있는 별의 마나와 심장에 있는 별의 마나가 이런 짓을 한걸까?
하지만, 그의 마나는 정밀 조작을 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을텐데?
그렇다면 뭐지?
설마, 정말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감정을?
‘아, 아냐.’
그럴리가 없다. 모든 생명체를 깔보며 위에서 내려다 봐야 할 존재인 자신이, 그렇게나 하찮은 짓거리를 할리가 없지 않은가.
‘이건 아냐.’
그래, 솔직해지자.
솔직히 몇번 정도는 프레이를 보고 두근거린 적이 있다.
물론 그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는 것은 아니고.
프레이는 꽤나 잘생긴 편이기도 했고, 자신 또한 그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망가트리고 싶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쨋든 자신도 여자가 아닌가.
일생을 걸고서라도 망가트리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든 남자가 계속 사랑한다 속삭인다면, 몇번 정도는 가슴이 두근거릴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배를 맞고 가슴을 두근거리는 꼴이라니?
그건 이해 범위를 한참 벗어난 일이다.
역시, 뭔가가 이상…
‘잠깐.’
필사적으로 이유를 찾아 해매던 루비의 눈이, 이내 동그랗게 변한다.
‘녀석, 지금 혹시 일부러…?’
생각해보니, 프레이는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릴때마다 항상 이러한 폭력을 가해왔다.
그렇다면 설마.
지금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일종의 반사 작용 때문이라는 건가?
프레이는, 자신을 알게 모르게 그렇게 조련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 이이익…”
루비가 분노에 찬 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개와 다를게 없지 않은가.
마왕인 자신에게 절대는 일어나선 안될 엿같은 일이였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 짓을 막아야…
“…….하?”
분노에 가득차 순간적으로 고개를 휙 들어올린 루비의 동공이 커진다.
‘방금 그건…?’
찰나의 순간, 프레이가 짓고 있던 표정과 눈빛이 똑똑히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슬픔. 죄책감. 괴로움.
그리고 묘하게 서려있는 희망과 그리움까지.
그 모든것들이 한데 합쳐져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은, 그녀가 지금껏 보아오던 광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네, 네놈… 이것도 애정행각이더냐.”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루비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다시 원래의 광기어린 눈빛을 마주하며 질문을 던졌다.
“이것도 날 위해서 하는 것이더냐? 이 끔찍한 폭력이? 전부 이유가 있다고 말할 셈이냐?”
“물론이지.”
그러자, 그런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따듯하게 속삭이는 프레이.
“처음부터 그저 순수한 애정표현이었을 뿐이야. 그러니 시스템이 막지 않는거지.”
“……..”
“전부 널 위해서 하는 애정 행각이고, 앞으로도 계속 할거야.”
그렇게 말한 그가, 이내 조용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넌, 이해 못하겠지만.”
프레이의 말을 무시하는 척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루비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이제 여기만 지나면, 본거지의 지하에 위치해 있는 유적으로 갈수 있을것 같은데?”
“……..”
“아마 교황이나 추기경은 거기에 있겠지. 녀석들만 잡으면 게임은 끝이야.”
한참동안 말 없이 앞서나가던 루비가, 뒤에서 들려온 그 말을 듣고는 조용히 자리에 멈추어선다.
“음.”
프레이의 말대로 그녀의 앞에 거대한 문이 있었다.
복잡한 마법이 걸려있었지만, 루비 입장에서는 그저 문을 잠궈보겠답시고 덕지적지 붙여둔 싸구려 테이프로 보일 뿐이었다.
– 찌이이이익…!
그러한 감상이 어울리게 손가락으로 결계와 문을 한꺼번에 찢어버린 루비가, 무심한 표정으로 문을 걷어차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써 여기까지 도달한건가? 3번째 녀석의 말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긴 하는구만.”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나타난, 교단의 제 2간부.
“하지만, 그렇다고 유적을 너희에게 내줄수는 없지.”
지하로 향하는 입구를 막아선 그를 같잖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루비가, 조용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뒤를 조심했어야지.”
“이런 떨거지나 상대하고 있어야 하다니.”
그러던 그녀에게 간부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루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뒤에는 프레이가 있는데, 제깟놈들이 기습을 해봤자 뭘 하겠느냐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파즈즈즈…!
“허?”
하지만, 그녀의 바로 등 뒤에서 무엇인가가 잽싸게 솟아오르자 루비역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는 건가.”
이능력이 뭔진 모르겠지만, 상당히 귀찮은 능력이다 싶었다.
‘프레이 녀석, 이따위 것도 안막고 대체 뭘하는게냐.’
하지만 역시나 긴장은 되지 않았다.
습격은 허용했지만 위기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위험해!!”
그렇게, 그녀가 뒤의 습격자를 상대하려 몸을 돌린 순간.
– 와락!!
“…하?”
프레이가 다급히 몸을 날려, 그녀를 껴안았다.
“무슨…?”
어째서인지 완전히 창백해져 있는, 절박한 모습의 프레이를 멍하니 쳐다보며 그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던 루비는.
– 우드득…!
“쿨럭!!”
“…..어?”
무엇인가가 파고드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프레이가 입에서 피를 토해내자, 얼빠진 단말마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하하하하하!! 그러길래 실력을 자만하지 말았어야지!! 우리의 이능은 합쳐지면 무적이란 말이다!!”
“헤헤… 헤… 쿨럭…”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에 안겨 피를 토하던 프레이를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루비.
‘이번엔… 막았네.’
“뭐…”
그러던 그녀는, 그때까지 심어두었던 전음을 통해 프레이가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 머릿속에 전해져 들어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표정을 굳혔다.
‘정말 다행…’
이윽고 프레이가 눈을 스르르 감자, 조용히 시선을 간부들에게 돌린 루비.
“그럼, 이제 용사만 남은건가?”
“그래, 어서 처리하자고.”
“……….”
그 말을 들은 루비의 얼굴에서, 핏기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
한편 그 시각, 지하 유적.
“정말로 이곳에 상황을 역전시킬 만한 해답이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교단이 괜히 천년간 이곳을 서대륙의 본거지로 삼았던게 아니야.”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제 1간부가 질문을 던지자, 옷을 길게 늘어트린채 계단을 내려가던 추기경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대체 뭐가 어떻길래…?”
“프레이와 루비를 이기는건 물론이고, 제국을 정복하고 신성 교국을 세울 정도지.”
“그,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그러니 제발 진정좀 하게.”
추기경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출입문을 열자, 가면을 쓰고 있다는것도 까먹고 바쁘게 식은땀을 훔치던 제 1간부가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그러던 그가 입구의 바로 옆에 큼지막하게 써져있던 문구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고대 문자라네.”
“무슨 내용이죠?”
“알게 뭔가.”
그 명쾌한 대답에, 제 1간부는 머리를 긁적이며 추기경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경고!] [이 공간은 용사 김한별의 영역입니다.]“막 저주 같은걸 받고 그러는건 아니겠죠?”
“헛소리.”
그 말과 함께, 유적의 문이 닫히며 어둠이 찾아왔다.
[허가받지 못한자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그럼에도 입구 근처에 적혀있던 은색 글자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