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47)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47화(347/524)
Episode 347
“얼레.”
한동안 루비의 배를 실컷 패다가 지하로 내려오니, 익숙한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글이네.”
“으게엑… 하, 한글?”
“아무것도 아니야.”
한글이 여기 적혀있다는 것은, 이곳이 고대 유적이라는 소리겠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대 용사이자 나의 선조님의 영역이라는 소리일테고.
하여간 교단 놈들이 자신들에게 득이 될 것 같은 곳의 냄새를 잘 맡는건 알아줘야 한다.
설마하니 유적 위에 통째로 본거지를 세우다니.
방학때 파견되었던 서대륙 조사단이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그나저나, 허가받지 못한자는 들어올 수 없다고?’
닫혀있던 문을 열며 출입구 옆에 있던 글자를 읽어보니,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허가받지 못한자는 들어올 수 없다라.
아무리 봐도 초대 용사를 제외한 자는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같은데.
그치만 추기경과 제 1간부는 이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모종의 보안장치가 있었는데 교단측에서 해제를 한걸까?
그게 아니라면, 설마 해독을 못하고 안으로 들어섰다가 변을 당했나?
“흐음…”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교단과의 전면전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하니 말이다.
그래야 제때 네번째 시련에 돌입할 수 있고, 올해 안에 모든것을 끝낼 수 있다.
일단은 지금 당장 없어져도 상관없는 왼팔을 들이밀어 볼까.
– 스윽…
그런 생각을 하며 왼팔을 안쪽으로 들이밀어 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조님의 사념체가 ‘네 이놈’ 하며 튀어나와 참격을 날리는 정도는 아니여도, 최소한 경보음은 울릴 줄 알았는데.
아무튼 위험해 보이지는 않으니 진입을 해도 될 것 같긴 하다.
지금 동행하는 녀석이 하필 루비이기도 하니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
“그, 프레이.”
“왜?”
그런 생각을 하며 유적 안으로 들어서는데, 루비가 조용히 내 곁으로 붙어온다.
“파, 팔짱을 껴다오.”
그렇게 말한 루비가 내 팔을 조용히 휘감아 온다.
“드디어 솔직해 진거야?”
“지랄 좀 말거라. 널 두들겨 팰 정도의 사랑을 느낄때면 넌 끝이다.”
“그것참 기대되네.”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턱을 쓰다듬으니, 한참동안 배를 맞는 바람에 잠잠해졌던 루비의 가슴이 또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네놈… 어, 언제까지나 속아줄 거라 생각하지 말거라. 이딴 인위적인 공작에 넘어갈 것 같으냐.”
이번 또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루비가 알아서 가슴을 두근거렸을 뿐.
아무래도 교단 전복이 끝난뒤 아카데미로 복귀하기 전까지 서대륙에서 잠시 데이트를 하면 완전히 쐐기를 박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게 진짜 되네.
내가 짠 계획이지만, 솔직히 조금 신기하다.
“뭘 이미 소유물이라는 눈빛으로 보고 자빠졌느냐. 불경하다. 나를 뭐라 생각하는… 헤으.”
“내 여자친구로 생각하지.”
바락바락 대드는 루비의 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준 나는, 움찔움찔 떠는 그녀를 이끌고 유적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글레어: 그건 그렇고 왜 제 포인트가 초기화 된건가요! 사용 내역도 없던데?
> 글레어: 용사님, 낭비는 금물이에요!
> 글레어: 그나저나, 용사님! 제가 최근에 한 퀘스트들을 말해드릴게요!
눈앞에 떠오른 글레어의 채팅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이다.
> 글레어: 최근에는 서대륙에서…
녀석에게 채팅을 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텐데.
아쉽군.
.
그로부터 얼마 뒤.
“여, 여긴 어떻게 온거냐.”
“어떻게 오긴, 다 박살내고 왔지.”
유적 내부 깊은곳에 위치한 작은 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던 추기경과 제 1간부를 발견해 반갑게 인사를 하니, 녀석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났다.
난 그저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매우 섭섭한걸.
“협상을 하지 프레이. 우선…”
“협?상!”
다시 인사를 하려고 다가가는데 제 1간부가 불쑥 튀어나와 협상을 하자길래, 내가 아는 가장 효과 좋은 협상을 시전해 주었다.
– 쩌저저저저저정…!
“얼레.”
그런데 내가 뻗은 주먹… 아니, 협상이 도중에 막혔다.
“진정하게나, 프레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페를로체 보다도 더 아담한 크기의 추기경이 헛기침을 하며 한 손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내 협상을 막을 정도의 신성력 방패를 소환해 내다니.
역시 교단의 제 2인자라는 건가?
“지금 나와 이 친구, 그리고 자네가 싸우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네.”
내가 협상을 거두고 조용히 시선을 맞추자, 추기경이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도 우리 둘과 싸우는 건 무리일터.”
저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사실 황제도 내 필살기를 포인트로 구매해 어거지로 이긴것이었다. 거기에 녀석의 성격이 독특하기도 했고.
다른 간부들이나 기사단장이라면 어렵지 않게 처리가 가능했겠지만, 제 1간부와 추기경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제 1간부의 능력은 ‘가속화’.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시간이 느려질 정도라고 여겨지는 그 속도는, 단순히 스피드만 놓고 본다면 이길 사람이 없다.
그리고, 추기경의 타고난 재능인 영혼 조종 역시 까다로운건 매한가지다.
페를로체 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그녀와는 달리 자유자재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게 문제다.
영혼에 흠집이 많이 난 상태인 내게 있어서는, 가히 최악의 상성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지금 매우 화가 나있다네.”
녀석도 그걸 잘 아는지, 눈을 번뜩이며 내 앞으로 걸어온다.
“내 소중한 동생을 그따위로 다루다니. 당장에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고 싶어.”
그따위로 대한적 없다.
그저 배를 몇번 두들기거나.
루비에게 하는 짓이 다른 사람에게 통할지 실험하기 위해 심장에 별의 마나를 꽂아넣던가.
마나를 잘때마다 야금야금 먹여 자신도 모르게 배 안에 별의 마나가 꽉 차오르게 하던가…
생각해보니 그따위로 다루긴 했다.
그래도 자업자득이지 않은가.
내게 상냥하게 대해지고 싶었으면 아이들을 제물로 삼아 얻은 능력으로 아이들을 또다시 대량으로 납치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패 죽이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열받네.”
갑자기 열이 뻗쳐오른다.
내가 왜 이 애새끼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고 있어야 되는거지?
“하지만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유적에 손상이 갈수도 있으니, 오늘은 이만…”
“땅꼬마 새끼가 말이 많네.”
“뭐?”
“어른 말투를 한다고 어른이 된게 아니란다, 꼬맹아.”
더 이상 참지 못한 내가 그렇게 말하니,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추기경이 사나운 목소리로 말한다.
“난 이래봐도 너보다 나이가 10년은 더 많다! 헌데 어찌…”
“어, 그래?”
좋은 말을 들었다.
“그럼 애 아니네?”
이 애새끼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아서 제약을 없애주셨다.
“어른이네?”
“그렇지. 당연한 소리… 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추기경이, 이내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살기를 내뿜는거지?”
“……..”
“설마 싸우려는 건가? 그렇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필살기를 쓰지 않는다면 황제만큼 까다로운 놈들이긴 하지만.
싸우긴 싸울거다.
“루비야, 물어.”
“닥쳐라 네놈.”
물론 나는 아니고 루비가.
“흠…?”
내 손길에 이끌린 루비가 앞으로 나서자, 추기경이 눈을 가늘게 뜬다.
“프레이에게 죽도록 맞았다던 용사 나으리 아니신가.”
“어, 그거 루비의 역린인데.”
“설마 용사와 같이 싸운다고 뭐가 좀 나아질거라 생각했나? 그건…”
– 파지직…!
“큰 오산……!?”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입을 나불대던 추기경이, 앞에서 들려온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뭐, 뭐야.”
그가 만들어낸 신성력 방패에, 루비의 손가락이 파고들어 있었다.
“……쯧.”
황제고 용사고 뭐고 전부 손가락 하나로 박살낼 수 있는 최종보스가 말도 아까운지 혀를 차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나저나 의외다. 최소한 이 상황을 빌미로 날 협박은 해볼거라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다면 죽여 팼겠지만, 이렇게 순순히 도와준다고?
“착각하지 말거라 네놈.”
그런 내 생각을 읽은건지 내쪽을 힐끔 돌아본 루비가 서늘한 눈빛을 띤채 속삭였다.
“그저 장난감 관리를 하는 것일 뿐이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더 잘 풀리는 것 같다.
“어? 어어?”
“…….!?”
저 둘에겐 아니겠지만.
.
“꺼억, 끄어억…!”
무표정을 짓고 있는 루비가 제 1간부의 목을 붙잡은채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 파직, 파지직…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녀석이 다급히 가속화 능력을 사용해보려 하지만, 루비의 무시무시한 악력은 그의 탈출을 용인하지 않았다.
“저기, 루비.”
“뭐더냐.”
“걔 어떻게 잡은거야?”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날파리보다 몇백배는 더 빠르게 촐싹거리며 유적안을 노리던데, 그런 녀석을 어떻게 단번에 제압해버린걸까?
혹시, 빠른 속력의 적을 상대하는 그녀만의 비법이라도?
“동체 시력으로 녀석을 따라잡았다.”
“아.”
비법 따윈 없었다.
그냥 루비가 무지막지하게 강했을 뿐이었다.
“으음.”
나는 저런 무시무시한 존재를 배빵으로 물들이고 있었던 건가? 이제야 새삼스레 실감이 든다.
– 꽈드득…!
“끄윽.”
마지막 순간까지 날파리처럼 버둥거리던 제 1간부는, 결국 뼈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져버렸다.
“좋아, 그럼 이제…”
“으, 으으…”
녀석을 영혼 없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루비는, 이내 시선을 추기경에게 돌렸다.
“어, 어째서? 어째서 영혼에 간섭할 수 없는 것이냐?”
벽에 쳐박혀 피를 토하고 있던 추기경이 그렇게 묻자,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하는 루비.
“영혼을 다루는 능력 정도는 나 또한 있다. 애송이 녀석아.”
“마, 말도 안돼.”
루비가 지금 무슨 말을 한거지?
그녀에게도 영혼을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
“그게 진…”
인상을 찌푸리며 루비에게 질문을 던지려다, 이내 말을 삼켰다.
지금은 루비에 대해서는 뭐든지 알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걸 물어봤다간, 책을 잡힐수도 있다.
그나저나, 저 말은 사실일까?
‘아마 사실이겠지.’
페를로체가 태양신에게 기도를 드려 교신을 하듯이, 그녀 또한 마신과 연락을 할 것이다.
아마 연락수단의 방법으로 영혼 다루기를 택한게 아닐까?
역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위험한 놈이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잘 가거라.”
“자,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며 손가락을 치켜드는 루비를 보고 있는데, 피를 토하던 추기경이 다급히 손을 들어 올린다.
“유, 유적에서 발견한 정보가 있다!”
그러면서 손을 흔들기 시작한 그.
“정보?”
“천년이나 된 유적에 잠들어 있던,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만한 정보다!”
꽤나 혹할만한 정보였지만, 나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나는 세상을 구하는것에 관심이 있지 지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추기경 놈은 계략과 잔머리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다.
세레나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녀석과 말을 오래 섞는건 좋지 않다.
어느새 녀석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버리니 말이다.
추기경의 ‘이능력’인 ‘언변술’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
“호오.”
저것 봐라. 루비가 흥미어린 눈빛으로 그에게 손을 뻗고 있지 않은가.
“그럼 그걸 내놓고 죽어라.”
그래도 꼴에 마왕이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광신도나 추종자가 되지는 않은것 같다.
그저,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저 쪽지에 상당한 관심이 생겼을 뿐.
– 아그작…!
“하?”
하지만 루비의 손이 쪽지에 닿은 순간, 추기경이 잽싸게 쪽지를 자신의 입에 밀어넣고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이놈.”
– 오물오물… 꿀꺽!
그 덕분에, 쪽지의 반쪽 밖에 손에 넣지 못한 루비.
보아하니 꽤나 분해보이는 모습이다.
저 녀석이 원래 저렇게 감정적이었나?
“그, 그 다음 내용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날 죽이면 그 쪽지의 내용은 영원히…”
그런 그녀를 보며 다급히 말하던 추기경이, 이내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너… 용사 맞나? 왜 이런것에 흥미 있어 하지?”
“뭐라.”
“손속도 너무 과하고, 방금 그 기세는… 마치…”
– 콰직!!
추기경은 그 다음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루비가 재빨리 그의 머리를 쳐 기절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기절시킨게 맞겠지?’
그는 아직 죽이면 안된다.
써먹을 곳도 있고, 저 쪽지의 내용이 살짝 궁금하긴 하기 때문이다.
“야, 줘봐.”
“음…”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나는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 주면…”
“받아라.”
“음.”
안 주면 죽도록 팰려고 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넘겨받을 수 있었다.
벌써 훈련이 다 끝난걸까?
“알아먹지도 못할 내용가지고 허세는.”
그렇게 툴툴거리는 녀석의 말을 듣자하니, 아무래도 훈련이 다 끝난건 아닌것 같다.
혹시 쪽지가 한글로 써져있으려나?
초대 용사님의 영역이니 어쩌면 당연히…
“뭐야 이건.”
기대를 하고 윗쪽이 찢겨져나간 쪽지를 들여다봤지만, 그곳에는 내가 보기에도 의미를 알수 없는 문자가 적혀져 있었다.
~~~~~~~~~~~~~~~~~~
– Prey Raon Starlight
– Glare
—————————-
꼬부랑 거리는게 마치 뱀같은데.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챙겨둬야겠다.
혹시라도 세레나나 태양신에게 보여주면 뭔가를 알 수도 있을테니.
“이제 슬슬 가자.”
“어디로 말이냐.”
쪽지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그렇게 말한 나는, 루비의 물음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데이트 하러 가야지.”
“읏.”
아무래도 올라가기 전에 루비의 배에 노크를 좀 해둬야 할 것 같다.
.
“크에에… 네, 네놈. 왜 자꾸 배만 치는것이냐…..”
“더 맞고 싶다고?”
“그건 아니… 흐음?”
한 손으로는 추기경의 다리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루비와 팔짱을 낀채 녀석의 입에서 질질 흘러나오는 침을 닦아주며 걸음을 옮기던 나는, 그녀의 이상반응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무엇인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뭐라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지?
혹시나 싶어 아까부터 기척을 느껴보고 있는데, 이곳엔 우리말고 아무도 없다.
“꽤 많군. 5명? 7명? 아니, 8명 정도 되려나.”
하지만 루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길래, 나는 조용히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입구에 오기전에 봤던 경고 문구가 불현듯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오거라. 이미 눈치챘도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저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루비가 슬며시 앞으로 나서서 소리를 높였다.
지금 얘, 나를 뒤에 세운건가?
“나오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하아.”
힐끔힐끔 나를 돌아보던 루비가 한층 더 소리를 높여 그렇게 소리치자,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앞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감이 좋네.”
“뭐야뭐야? 어떻게 들킨거야?”
“조용히 좀 해보세요. 보통 사람들이 아닌것 같아요.”
이윽고 사방에서 솟아나와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한 불투명한 무언가들.
“사념체다.”
“뭐?”
조용히 검을 뽑아들며 뒤로 물러나고 있는데, 루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녀석들은 이 유적을 지키는 사념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반적인 사념체와는 달리 살짝 격이 높은 것 같은데…”
“……흐억.”
“뭐, 뭐냐.”
그러다가, 입을 떡 벌린채 굳어버린 나를 보고 덩달아 놀란 표정을 짓는 루비.
“무슨 일어더냐, 프레이. 혹시…”
“그 입좀 다물고 비켜봐.”
“…….”
그러던 그녀가 내 말에 입을 다물고 왠지 모르게 서운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다.
“뭐야, 꼬맹이들이잖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돼요. 항상 내면을 들여다봐야…”
“침입자는 배제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보통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긴 당신같은 꼬마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랍니다.”
맨 앞에 서있는 황금색 롤빵머리를 한, 자신감에 쩔어있는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
그녀는 다름아닌 선라이즈 제국의 초대 황제다.
“……..”
그 옆에서 소심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채 얼음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온몸에서 냉기를 내뿜고 있는 마법사.
그녀는 다름아닌 최초의 대마법사로서 마법의 궁극에 도달했다 알려진 얼음의 마녀다.
“안녕하세요~!”
그런가 하면 맨 왼쪽에서 방금 내게 인사를 건낸 건장한 체격의 흑발 소녀는, 다름아닌 제국의 초대 성녀고.
“…왠지 모르게 도련님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맨 오른쪽에서 메이드 복을 입은채 그렇게 중얼거린 백발의 소녀는, 역사상 단 한명밖에 없었다고 전해지는 ‘백마법사’다.
“뭐하나, 침입자는 배제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
“기다려 보세요. 말이 통할수도 있…”
한편 뒤쪽에서 사나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왼쪽 눈에 흉터가 있는 여자는 바이워크 가문의 시조이자 초대 검성.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신원을 밝히세요.”
왠지 알듯말듯한 모습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앞으로 걸어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어… 그게.”
머리색과 눈동자를 보면, 아니 그런걸 보지 않아도 이 소녀가 누군진 알 수 있다.
누가봐도 문라이트 가문의 초대 당주다.
그나저나 이건 뭐라고 대답해야되지?
“음.”
모를때는 솔직함이 답이다.
어머니가 늘상 하시던 말이니 믿어봐야지 뭐.
“…2대 용산데요.”
갑작스럽게 내 앞에 현현한 1대 용사파티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자, 기나긴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으음.”
그대로 굳어버린 뒤쪽의 사념체들을 뒤로하고, 내 주변을 둥둥 떠다니던 문라이트 가문의 시조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맹약의 비밀에 대해서 말해봐.”
“사실 스타라이트 가문은 맹약을 어겨도 상관없어요. 다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맹약을 어기지 않았을 뿐.”
“이 세계를 모티브로 한 게임의 이름.”
“블랙테일 판타지?”
“한별이는 어디에서 왔지?”
“한국이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검증의 시간에 잔뜩 긴장한채 그렇게 말하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손을 내밀며 속삭인다.
“별의 마나를 운용해봐.”
– 샤아아…
그 말대로 살며시 별의 마나를 손바닥에 발현시키니, 뒷쪽에 있던 사념체들이 헛숨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 핡짝.
한편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별의 마나를 살짝 훔치더니 혀로 핥았다.
“우물우물…”
그리고는 한참을 입안에서 굴리기 시작한 그녀.
“…진짜네.”
그러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렇게 말한 순간.
“우, 우와!!”
“그럼 얘가 2대 용사야??”
“귀엽다아!”
뒤에 있던 사념체들이 눈을 반짝거리더니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볼따구좀 봐, 볼따구. 쭉쭉 늘어나!”
“고양이 같이 생겼네.”
“으베에…”
미처 대비도 할 틈도 없이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데, 맨 뒤에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던 소녀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저, 저기…”
“으베?”
“제 후손은 잘 하고 있나요?”
그러더니, 기대에 가득찬 눈빛을 띤채 그런 질문을 던진 그녀.
“그… 실례지만 존함이?”
“빅토리아요!”
“어, 으음…”
그녀의 이름을 듣고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굴리던 나는.
“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실 수도 있겠구나.”
이어진 말을 듣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제 이름은 빅토리아 솔라 선셋. 선셋가문의 초대 가주이자, 한별님의 든든한 조력자랍니다.”
“아…..”
“그래서, 제 후손은 좀 어떤가요? 용사님께 힘이 되어주던가요?”
“………….”
뭐라 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