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67)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67화(367/524)
Episode 367
“하아, 하아…”
“가, 같이 가요.”
한참동안 뜀박질을 하던 아리아를 따라잡은 루비가,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를 붙잡는다.
“안돼!! 시간이 없어!!!”
그런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비틀거리며 발을 한발자국 앞으로 옮긴 아리아.
“흐, 흐앗.”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뛰었던 탓인지, 다리가 풀려버린 그녀는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아, 아파…”
“………”
무릎이 까져 피가 철철 나는 아리아를 물끄러미 내려보던 루비가, 입술을 깨물며 과거를 회상한다.
“내 동생 말이야. 진짜 귀엽다고.”
“…관심없도다.”
“진짜라니까? 어릴때 맨날 내 뒤를 졸졸 쫒아다니던게 어찌나 귀엽던지.”
“흐아암… 크헥!”
하품을 하다가 프레이에게 한대 얻어맞은 뒤에, 분명 녀석이 그렇게 말했었지.
“그리고 칠칠맞기도 해. 멀리서 나만 보고 달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니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어쩌긴 어째, 상처를 손으로 덮어줬지. 감염이라도 되면 큰일이니까.”
“아니, 아까부터 대체 무슨… 히극. 그, 그래. 네 동생 참 귀엽구나.”
두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던 루비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아리아에게 다가선다.
– 스륵…
그리고는, 조심스레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덮어주는 루비.
– 샤아아아아…
잠시 후, 빛과 함께 치료마법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가요.”
“으, 으아.”
루비의 손이 연기를 피워내며 문드러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리아가, 자신이 번쩍 위로 들려올려지자 눈을 동그랗게 뜬다.
“…헤헤, 고마워.”
“……….”
“빨리 오빠 보고 싶다. 오랜만에 저택에서 같이 저녁도 먹고, 산책도 하고…”
이윽고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품에서 그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한 아리아.
“……….하아.”
루비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떨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차분해지고 있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걸까.”
“응?”
“…아니에요.”
아리아의 무서울정도로 순진한 목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루비는, 이내 마른침을 삼키며 앞으로 향했다.
어느새, 스타라이트 가문의 저택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어.”
그런데, 저택을 지켜보던 아리아의 눈빛이 동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
그것은, 아리아를 안아든채 용사파티의 맨 앞에서 걸음을 옮기던 루비도 마찬가지였다.
– 화르르르륵…..
스타라이트 저택이 매섭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1000년의 역사가,
스타라이트 영지의 중심이.
화마속에 갇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아, 으아아…”
“자, 잠깐.”
그 참담한 모습에 눈을 끔뻑거리다가, 다급히 루비의 품에서 빠져나와 저택쪽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한 아리아.
“저택이… 안돼… 안…”
그러던 그녀가, 중얼거림도 멈춘채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본다.
“…어라.”
익숙하게 생긴 물체가, 보라색과 은색이 섞인 마기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이게 왜 여깄지? 이상하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아리아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채 그곳으로 기어간다.
“루비가… 오, 오빠가 아직 지니고 있다고 그랬는데? 이럴리가 없는데? 이상한데?”
그리고는 횡설수설을 시작한 그녀.
– 화르르르륵…
“이이, 이… 이상한데에에….”
애처롭게 중얼거리는 아리아의 앞에서, 1년전쯤에 그녀가 프레이에게 선물했던 손수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가운데에 그려져 있던 은색 고양이 일부만 남은 채 말이다.
“흐, 흘린건가? 그래, 흘린걸거야. 그러니 어서 빨리 불을…”
“기어이 왔군.”
다급히 마법으로 손수건에 붙은 불을 끄려던 아리아.
“어…..”
“죽고 싶다는 의미로 이해하마.”
그런 그녀의 앞에 불길을 뚫고 나타난 프레이가, 손수건을 발로 짓밟은채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 오빠.”
그런 그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내 다급히 바짓가랑이를 붙잡은채 달라붙은 아리아.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지금까지 오빠 마음도 모르고 싸가지 없게 군거, 건방지게 군거 전부 사과할테니까… 우리 잠시만, 아주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면 안될까?”
그런 그녀의 눈빛이, 미약한 희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침 우리가 살던 저택도 있으니까, 잠깐만 들어가서…”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프레이의 뒷편에서, 불타오르고 있던 저택을 시야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이 가문에서 추방당해 ‘저택’에 들어갈 수 없다더군.”
“아.”
“나조차도 풀기 꽤나 귀찮은 결계라 말이지. 언령에다가 5중첩 마법에다 주술에다가… 하여간 귀찮은 고대마법들이 너무 많지 뭐니.”
“자, 잘못…”
그 말을 들은 아리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다.
문득 아리아의 뇌리에 그녀가 처음 잘못을 저질렀던 날이 떠오른다.
실수로 어머니가 아끼던 항아리를 깨트리고 혼날까봐 그것을 몰래 숨겼다가 들켰던 그날.
“자, 잘못했어요… 흐이잉…”
“아리아. 잘못은 할 수 있어. 하지만 숨기는건 해서는 안될 일이란다.”
“네, 네에…”
“스타라이트 가문의 구성원은 엄격한 예절을 지켜야 한단다. 그건 너도, 오빠도 예외가 아니지. 예를 들어 한번 가문에서 쫒겨나면…”
스타라이트 가의 인물이 가문에서 제명당하면 저택에 다시는 발을 들일 수 없다고 겁을 주던, 어머니의 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
그때는 정말로 무서웠지만, 어느정도 크고 나서는 그저 어머니가 겁을 주려고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문득 어머니의 옆에서 같이 그녀를 다그치는 척을 하다가, 몰래 손을 잡아주며 윙크를 하던 프레이가 뇌리에 떠오른다.
“잘못했어… 오빠…..”
그제야 오빠를 가문에서 추방시킨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아리아가, 새파랗게 질린채 프레이의 다리를 꼭 끌어안는다.
“내내 내가 이렇게 빌게. 이렇게 빌테니까 제발…”
“뭐, 그래서 ‘저택’ 자체를 없애버렸지. 그런데 이번에는 지하실의 결계가 말썽이로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프레이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다리를 껴안고 있는 아리아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지하실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고 싶은데. 혹시 아는거 있니?”
“오, 오빠아…”
“아는거 있냐고.”
“제바알… 제발 원래대로 돌아와줘어……”
“하아.”
그녀의 눈물이 자신의 발밑에 뚝뚝 떨어지자, 기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발을 치운 프레이.
“이걸 마법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면 며칠이 걸리지.”
“……일주일이요.”
그런 그가 자신의 뒷편에 무표정으로 서있던 세레나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수준이 그정도 밖에 안되는건가.”
“죄송합니다.”
“뭐, 어차피 상관없어.”
“흐익?”
그러다가, 눈을 은색으로 빛내며 아리아를 들어올린 프레이.
“이 녀석만 죽이면 굳이 용사의 무구를 손에 넣을 필요도 없어지니까.”
“오, 오빠.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잘 가렴.”
“잘못했어!! 오빠!! 오빠아아아아!!!”
그렇게 말한 프레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급히 애원하기 시작한 아리아의 목을 비트려던 그 순간.
– 꽈드드드득…!
전방에 쏘아진 붉은색 마기가, 프레이의 팔을 막아냈다.
“……..흐음?”
잠시 고개를 기우뚱 하던 프레이가, 자신의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오기 시작한 루비를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재밌네.”
“미안해, 프레이.”
그런 프레이를 보며, 눈을 질끈 감은채 입을 연 루비.
“이젠 진심으로 할게.”
그 말이 끝나자, 늘 오른쪽 검지 손가락만 펴져있던 그녀의 주먹이 완전히 펴진다.
“루비…..?”
“기회를 보다가 용사파티와 같이 지하실로 들어가.”
“그치만…”
“지금의 너라면 자격이 있을거야.”
“아직 오빠를….”
“어서!!”
그렇게 소리친 루비가, 아리아를 뒷쪽의 용사파티 쪽으로 던진뒤 두 눈을 루비색으로 빛내며 달려들기 시작한다.
“네 진짜 실력을 한번 좀 볼까.”
그런 루비를 끈덕지게도 쳐다보다, 뒷편에 서있던 히로인들쪽으로 향하며 그렇게 속삭인 프레이.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도련… 님.”
“”………..””
잠시 후, 사방에 굉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 샤아아아아…
카니아의 거대한 흑마력이 루비를 덮친다.
“으음.”
덕분에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었지만,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강행돌파를 시도하기 시작한 루비.
루비색으로 빛나는 안광이 길다란 선을 남기며 어둠을 빛낸다.
‘아직 미숙하네. 아니면 흑마법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착해서 그런걸지도.’
루비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손속을 봐준 공격이었다.
세계 최강자인 그녀였기에 버틸 수 있던 것이지, 카니아의 흑마력에는 그 누구도 무시할수 없는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각성이 아직 덜 된걸까.’
하지만, 미숙하기는 확실히 미숙한 상태였다.
아직 그녀의 각성이 완벽히 끝나지 않은 듯 싶었다.
어찌됐든 루비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 꽈드드드득…!
루비가 버릇대로 손가락을 휘두르자, 공간 자체가 통째로 밀려나가며 흑마력을 밀어낸다.
그녀만이 행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대 흑마법 해결책이었다.
“”흐아압!!””
허나 어둠이 걷히자 마자, 클라나와 이리나가 양옆에서 튀어나온다.
– 쩌저정…!
하지만 오직 앞만을 보며 양 손을 옆으로 뻗은 루비.
“역시 전 마왕… 강해…”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클라나의 공격과 그녀가 내뿜고 있는 아우라는, 루비에게도 꽤나 위협적이었다.
아마, 정통으로 맞는다면 무시할 수 없는 데미지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나는 이제 막 각성한 듯 싶었다.
그녀가 아직 이 넘치는 힘과 아우라를 제대로 다루는 요령을 몰라서 참 다행이였다.
“…각성만 끝났더라면.”
하지만 각성조차 아직 끝나지 않은, 저 마법사 놀이를 하고 있는 이리나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 까드득… 까드드득…
루비가 만들어낸 방어막에 금이 가고 있었다.
잠시 벽에 가로막힌 지금이 저 정도인데, 저 소녀가 자신의 진짜 정체를 깨달으면 어떻게 될지 꽤나 섬칫해지는 순간이었다.
– 퍼버벙…!
그런 생각을 하며 방어막을 쏘아내 두 소녀를 멀리 날려버린 루비가, 이번에는 재빨리 몸을 비튼다.
– 파지지지지징…!
“주인을 노리는 자는 벤다.”
그와 동시에, 루비를 덮쳐오는 이솔렛의 검격.
“…그대로 멈춰.”
“음.”
미리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한 루비가 다급히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번에는 루루의 언령이 그녀를 덮쳐온다.
“하앗!!”
– 까드득…! 까드드드드득…..!!!
언령을 무시하고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 위력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덕분에 잠시 눈썹을 찌푸리던 루비는, 이내 재빨리 오른손을 뻗어 자신에게 쇄도하는 이솔렛의 검과 힘싸움을 시작했다.
‘이미 검성으로 각성한건가.’
이솔렛은 검으로는 이미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할 경지에 오른게 확실했다.
– 주르륵…
점점 그녀의 검날이 파고들기 시작한 루비의 손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계속 멈춰서 있어.”
덕운에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던 루비는, 뒷편에서 다시 한번 들린 루루의 언령에 인상을 찌푸린다.
‘녀석.’
지금은 사적인 일을 떠올릴 때가 아니었다.
과거사를 지금 떠올렸다간 분명히 전투에 지장이 갈게 뻔했다.
“크헉!?”
“꺅…”
아예 자신의 오른손을 포기하고 이솔렛의 검을 붙잡아버린 루비가, 그녀를 땅에 내동댕이 치는 동시에 루루를 마주본다.
“으아아아아아…”
루루의 언령에 전력으로 저항한 결과, 다음 공격이 날아들기 직전에 겨우 경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위협적이야.’
한명은 방금 막 각성을 완료했고, 다른 한명은 당연히도 각성이 막혔을텐데, 그럼에도 이렇게나 상처를 입었다.
– 츠즈즈즈즈…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런 상태에서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세레나와 페를로체를 상대하기 시작한 루비.
‘대체 뭐지?’
총평은 이러했다.
‘……장난하자는건가?’
이 둘, 전혀 진심을 내고 있지 않았다.
둘 모두 서로만의 꿍꿍이가 있는 듯 싶었다.
– 파지지지지직…!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 루비의 목적은 하나였으니.
“드디어 진심으로 싸우시는군.”
“프레이.”
세레나와 페를로체를 적당히 리타이어 시킨 그녀가, 온 몸에서 루비색 기운을 뿜어내며 프레이의 앞에 도달한다.
“그럼 나도 기꺼이 상대해줘야지.”
그러자, 온몸을 은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한 프레이.
“프레이, 진짜 기억 안나?”
“…….?”
그런 그를 쳐다보던 루비가, 애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우리의 추억. 기억들. 그런거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거야?”
“왜 갑자기 헛소리지.”
“…네가 지금까지 날 보며 느낀 기분이 바로 이랬었구나. 역시 넌,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어.”
전혀 모르겠다는 프레이의 표정에, 지금까지 그가 회귀를 하며 느꼈을 심정을 이해한 루비가 울먹거리며 입을 연다.
“프레이, 나… 너랑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그거 아니, 프레이?”
루비의 주먹과 프레이의 검이 충돌하기 직전, 그녀가 눈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나도 널 영원히 사랑해.”
그 다음 순간.
– 쿠과과과과과과과광!!!
거대한 섬광이 스타라이트 공작령을 뒤덮었고,
별빛과 루비색이 섞인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 파즈즈즈즈즈…
그 아름다운 빛의 기둥은, 제국민들 전부가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했다고 한다.
.
“하아, 하아…”
얼마 뒤, 스타라이트 공작령.
“흐음…”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채 거친 숨을 몰아내쉬던 루비를 바라보던 프레이가, 서늘한 눈빛을 띤채 중얼거린다.
“힘은 어느정도 있네.”
“프레이…”
“나 또한 용사의 무구가 없으면 널 죽일 수 없고. 이거 곤란하게 됐는걸.”
그러던 그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질것 같지는 않네.”
그렇게 말한 프레이가 마기를 쏘아내자, 루비의 옆구리에 상처가 생긴다.
“네 힘은 이제 유한하지만, 내 힘은 무한하지. 그게 결정적인 차이야.”
“………”
“그러니, 이제 그만 포기하지 그러니.”
“프레이, 넌 지금 왜 이런 짓을 하는거야?”
우쭐거리며 말하던 프레이를 우울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루비가 그러한 질문을 던지자, 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재밌잖아?”
“………”
“세상이 불타는거, 진짜 재밌지 않아? 전대 마왕인 너라면 이해할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들은 루비가, 마음이 깨질듯한 느낌에 입술을 꽉 깨문다.
‘똑같아…’
예전의, 아니 불과 몇주전의 자신과 똑같았다.
자신이 마왕이랍시고 설치고 다닐때도 저랬을까.
프레이도 그런 나를 보며, 이렇게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까.
“프레이, 어쩔까요.”
“흐음.”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루비는, 프레이의 옆쪽에서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 세레나를 조용히 응시한다.
“용사파티가 지하실에 진입한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그러니 잠시 후퇴하시는건 어떨까요?”
“후퇴?”
“지금은 시간을 너무 끌었어요. 이러다 용사의 무구를 손에 넣은 저들에게 역공을 당할 수 있어요. 용사의 무구 말고 다른 강화 아이템을 손에 넣어, 대비를 하시는게…”
“그러지 뭐.”
세레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프레이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루비에게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럼, 나중에 보자.”
“……….”
“그런데 정말로 내 수하가 될 생각은 없는거야? 너라면 꽤나 좋은 조건으로…”
“으으.”
자신과 똑같은 말을 하는 프레이를 더 이상 보기 싫었던 루비는, 그대로 귀를 틀어막고 걸음을 옮겼다.
– 터벅, 터벅…
“하아, 하…”
공작령 전체가 폐허가 될 정도로, 그리고 제국민 모두가 그 여파를 목격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싸움이었다.
그런 무지막지한 규모의 전투를 거치면서, 루비는 이미 머릿속에서 한가지 결론을 낸 상태였다.
– 끼이익…
“누, 누구…”
굳게 다짐한 표정을 지으며 지하실에 들어선 루비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공격 태세를 취한 아이들의 사이로 걸음을 옮긴다.
“노, 노예의 흔적은… 정말로 없어?”
“…없다고 했잖아요. 베네르 교수님. 1년전에도, 10년전에도, 아니 100년전에도 없었어요.”
“그럼… 사, 사용인들의 폭로는?”
“돈을 받고 거짓말을 친거겠죠…”
“그런…..”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지으며, 지하실을 분석하고 있는 아이들의 사이에서 점차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베네르.
– 고오오오오…
어째서인지 구석에서 조용히 죽은 눈으로 흑마력을 내뿜고 있는 유렐리아.
“……..”
마찬가지의 눈빛으로 모두를 조용히 둘러보고 있는 아이시를 지나친 루비.
“아리아.”
그런 그녀가, 지하실의 한복판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리아의 옆에 선다.
“루, 루비.”
그녀의 품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용사의 무구가 들려져 있었다.
원래는 그녀의 오빠가 입었어야 할.
하지만 이제는 그녀만이 입을 수 있게된 무구가.
“내, 내가 들어오니까… 이게 가운데에서 솟아나더라? 이, 이상하지?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아리아 씨, 잘 들으세요.”
“서서 설마 이걸로 오빠랑 싸우라는건 아니지? 나, 난 못해. 오빠는 잠시 타락했을 뿐이야. 비, 비록 아까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반드시…!”
“프레이는, 이미 죽었어요.”
그 무구를 들고는 새파랗게 질린채 부르르 떨던 아리아가, 루비의 그 말을 듣고는 정색을 하며 그녀를 노려본다.
“그, 그 입 닥쳐.”
“………”
“하, 함부로 말하지마. 우리 오빠는 아직…”
“정확히 말하면, 인격과 정신이 소멸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이미 결심을 한 루비는 눈을 질끈 감은채 말을 이어나간다.
“자신이 타락해서 모든 짐을 짊어지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에, 프레이는 이미 죽었다고요.”
“아, 아니야.”
“저건 프레이가 아니에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렴풋이 인지했지만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던 사실을 루비가 입에 담자, 아리아가 무구를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던, 세상과 우리를 사랑하던 프레이는… 이제 없어…”
“아냐!!! 아니라고오오!!! 오빠아아아!!!”
“그렇기에, 우리의 손으로… 끝을 내야 해.”
“오빠아…….”
그러던 그녀가, 비명을 멈추고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질끈 깨문 루비를 멍하니 바라본다.
“유일하게 그와 맞설수 있는 나, 그리고…”
“시, 시러. 못해. 나 못해애.”
“유일하게 그를 죽일 수 있는 너. 이렇게 둘이 하, 함께… 프레이를 죽여야 한다고…”
“못해애애애애……”
그 말이 끝나고, 동시에 무너져내리며 서로를 껴안은 두 소녀.
“그게, 프레이가 원하던… 죽기 직전에 나한테 남긴 부탁이란 말야…”
“흐아아아아아아앙…..”
“운다고 변하는건 없어… 우리 둘이 프레이를 죽여야 해….”
아리아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포도주와 치즈로 가득찬 깨끗한 지하실에 울려퍼진다.
“으, 으극…”
“이,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오…”
“이, 이런걸 원한게 아니었는데. 우린…”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나둘씩 패닉에 빠지기 시작한 용사파티.
“………..”
그리고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은 서브히로인들과, 그제야 상황파악을 완료하고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베네르.
“오빠아아아아아…….”
아리아의 울음소리는, 그 뒤로 한참 동안 지하실에 울려퍼졌다.
.
한편 그 시각.
“……..으음.”
히로인들과 함께 폐허가 된 공작령을 벗어나던 프레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에 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츠즈즈…
자신이 불태워 거의 사라져 있던 손수건의,
은색 고양이가 그려져있던 파편이었다.
“왜 그 루비색 소녀랑만 싸우면 속이 매스껍지. 먹은것도 없을…..”
이윽고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파편을 바람에 휘날리는 프레이.
“이상한 년, 그때 나한테 뭘 먹인거야?”
“도련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냐.”
어느새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가 그렇게 답하고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