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71)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71화(371/524)
Episode 371
“뭐, 뭔데… 이거?”
눈앞에 일어난 상황에 잠시 멍을 때리던 루비가,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을 친다.
“뭐냐고.”
지난 세월동안 매일같이 꿈으로만 나오던,
어떻게 해서라도 돌아가고 싶던 그 시점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꾸, 꿈인가…?”
한참동안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루비가 처음으로 생각한 가능성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방금전에 심장을 꿰뚫어 자살을 하고 난 뒤였다. 죽었으면 죽었지 꿈을 꾸고 있을리가 없었다.
“지옥? 여기가 지옥인가…? 아니면… 주마등?”
곧바로 다음 추측들이 뇌리에 떠오른다.
이곳은 사실 자신에게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는 지옥이나 연옥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환상이라도 보고 있는 걸까?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엔딩 999 – 용사타락]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그녀의 눈 앞에 간단한 디자인의 문구가 떠오르자 즉시 사그라 들 수 밖에 없었다.
“이거……”
자신의 앞에 떠오른 시스템창을 어루만지던 루비가, 창백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진짜잖아.”
가끔씩 심심할때마다 불러내어 튕기면서 놀아봐서 잘 안다. 이 질감, 이 반발력, 그리고 몸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무언가.
“…이거, 설마 현실인가?”
시스템이 정말로 떠오른것은, 곧 한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지금 루비가 경험하고 있는 이것이 지옥의 형벌도, 주마등도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것은.
“그, 그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루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 두근, 두근, 두근…
동시에 가슴은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서서, 설마…”
프레이가 자신을 대신해 타락을 선택했던 순간.
아니, 갱생 퀘스트를 수락하지 않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원해오던 단 하나의 소원.
하지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꿈에서만 그리던 그 간절한 소원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루어졌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위선자의 길 시스템을 종료합니다.]“이, 일단 확인부터 하자. 확인부터…”
미칠듯이 뛰는 심장을 붙잡은 루비가, 과거와 똑같은 시점에 떠오른 시스템창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얼마 가지 않고 멈추어 선 루비.
“요, 용사님?”
“괘, 괜찮으세요…?”
“얘, 얘들아……”
지난 몇년간 생사고락을 같이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용사파티의 얼굴들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용사님.”
“루비 씨…”
그리고, 베네르와 아리아까지.
그리웠던 얼굴을 본 루비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루비 씨, 아까 오빠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이 당시 루비에게 내동댕이를 쳐졌던 베네르와, 그런 베네르를 확인하러 갔던 아라아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온다.
“얘, 얘들아. 기억 안나…?”
“네?”
“그, 어… 저번에 있었던 일…”
“”………..?””
그런 그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던 루비는, 그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직감했다.
‘돌아왔어.’
그녀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로 돌아왔다.
‘오직 나만이. 나만이 기억을 가진채 과거로 돌아왔어.’
그녀의 가슴이 당장에라도 터질듯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정말로 그토록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심장따위는… 아니 그녀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다.
“도움말 시스템.”
그런 생각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 루비.
“질문이 하나 있어.”
프레이가 타락했던 날 이후로 그 어떤 방법을 써봐도 다시 열리지 않던 ‘도움말 시스템’.
아무리 힘을 모으고 또 모아도 열리지 않기에, 한동안 그 이유에 대해서 추측해본 적이 있었다.
꽤나 오랜 고찰끝에 루비가 내린 결론은, ‘도움말 시스템’을 열만한 ‘권능’이 ‘소녀’가 된 자신에겐 부족하다는 것이였다.
그 말은, 아직 마왕으로서의 권능이 전부 사라지기 전인 지금이라면 한번쯤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때도 한번 질문을 하긴 했으니 말이다.
> 말씀하십시오.
“나…… 혹시 ‘리트라이’ 라는게 생긴거야?”
루비의 예상대로 눈앞에 떠오른 ‘도움말 시스템’.
그 시스템에, 루비가 무지막지하게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진다.
“그, 그 회귀 있잖아. 과거로 돌아가는…”
>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는 혹시나 시스템이 알아듣지 못했을까봐 부연설명을 하던 그녀가, 간단명료한 답변을 듣고는 멍을 때리기 시작한다.
> 당신은 현재, 고유능력 ‘리트라이’를 소유한 상태입니다.
“아…….”
“루, 루비 님?”
그 문구와 함께 지직 거리며 사라진 도움말 시스템을 빤히 쳐다보다,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루비.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루비.
“흐, 흐극… 흐으으……”
“왜, 왜 갑자기 우세요…”
“흐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아……”
땅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미친듯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돌아 왔어어어어…..”
“네?”
“진짜로, 진짜로 돌아왔다고오오…”
기적이 일어났다.
프레이가 세계를, 아이들을, 그리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몇번이고 사용하던 고유능력 ‘리트라이’가 자신에게 들어왔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두번째 기회’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 찾아온 것이다.
“감사해요오…..”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마신의 장난일까?
그것도 아니면 ‘시스템’ 자체가 개입 한걸까?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흐으, 으…..”
“용사님이 이렇게 서럽게 우시는거 처음봐…”
“그동안 얼마나 험한 꼴을 당하셨으면…”
두번째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마모되어가던 감정이 되살아난 그녀에게는, 그런 것보다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했다.
“그, 그럼… 이제 무엇부터…”
그렇게, 한참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서러운 울음을 터트려대던 루비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중얼거릴 무렵.
– 터벅, 터벅…
그들의 앞쪽에서 갑자기 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루비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신지요.”
두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때문에 미처 깜빡 잊고 있었다.
“용사파티 여러분.”
“”………..?””
프레이는 이 시점에서, 이미 타락한 이후였다는 것을.
“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비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제국으로 복귀하는 선박 안.
“쿨럭, 쿨럭… 으으…”
“용사님, 괜찮으신가요?”
“아, 네…..”
침대에 주저앉아 조용히 피를 토하던 루비가, 옆에서 말을 걸어온 올리비아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쉬, 쉬세요. 그날 프레이를 붙잡다가 많이 다치셨잖아요.”
“그, 그랬죠. 하하…”
자신이 ‘용사’라고 불리는 것에 이젠 익숙하지 않던 루비가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야. 역시 이건 꿈이나 환상같은게 아니라… 현실이라고.’
자신이 회귀를 했음을 인지한 그녀는, 현재 용사파티와 함께 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프레이가 향할 곳인 ‘스타라이트 저택’에 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명심하자, 저번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프레이의 정신을 되찾게 해야해…’
이미 회귀를 한 첫날에, 눈물을 흘리며 프레이의 바짓가랑이에 메달렸던 루비였다.
전회차에서 타락한 프레이는, 분명히 몇백장에서 몇천장이나 자신을 그릴 정도로 기억을 되살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계속 프레이에게 붙어 있고 싶었으나, 우선은 용사파티의 안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아직 타락 초반이니까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왠지 모르게 자신이 마지막으로 봤던 프레이와는 아예 달라보였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반드시 프레이를 되돌리겠다 각오하는 루비였다.
“대체 왜 하루종일 프레이에게 일방적으로 붙어있으셨던 거에요? 덕분에 용사님이 거의 죽으실 뻔 했잖아요…”
“상관없어, 이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냐.”
“네?”
“그런게 있어.”
그렇게 말한 루비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눕는다.
“이게 용사님이 가지고 다니시는 물건이구나… 일기장에, 세면도구에, 샌드위치 바구니에… 으음? 은색이랑 루비색이 섞인 구슬이네… 예쁘다.”
그런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루비의 짐을 구경하며 헤실헤실 웃는 올리비아.
“후우.”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보던 루비가, 이내 시선을 위로 올린다.
[리트라이 퀘스트] [1 – 01]> ?? ?? ?? (0/6)
“이건… 뭘까.”
며칠전 한참동안 프레이에게 두들겨 맞으며 사랑을 속삭이다, 결국 잠시 포기하고 용사파티와 도주를 할때 그녀의 앞에 떠올랐던 시스템 창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무슨 퀘스트 같은 건가…”
‘위선자의 길’ 시스템의 사용자였기에, 퀘스트에는 이미 익숙한 그녀였다.
‘아무래도 리트라이의 부가 효과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눈을 지긋이 감은 루비가, 이내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번엔 반드시 구해줄게… 프레이.’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제국에도 프레이가 ‘마왕’이라는 사실이 퍼졌겠죠?”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미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은 상태였다.
전회차와 달리, 이번 회차에 그녀는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진실을 일찍 밝혔다가 저번 회차에 일어났던 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진실은, 프레이를 되돌리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을때 밝힐 셈이었다.
“그렇겠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는 모든게 끝나기 전까지 용사여야만 했다.
어차피 시간을 오래 끌 생각도 아니였으니 루비에게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녀는 배가 제국에 상륙하는 즉시 용사파티를 두고 홀로 저택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프레이와 만나면 몇년이고 함께 붙어지내며 천천히 그의 기억을 되살린다.
어찌보면 꽤나 위험천만한 계획이었지만, 루비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회귀자였고,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모든 변수들을 통제 가능…
– 끼이익…
“아리아?”
그런 생각을 하며 각오에 찬 눈빛을 짓던 루비의 다짐을 처음으로 흔들리게 만든건, 다름아닌 아리아였다.
“루루루, 루비……”
“왜, 왜 그래요?”
그녀에게 다가오는 아리아의 눈빛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나… 알아버렸어.”
“뭐, 뭐를요?”
그럼에도 설마설마하던 표정을 짓고 있던 루비였지만, 아리아가 다음 발언을 꺼내자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창백해지고 말았다.
“너….. 마왕이잖아.”
“…..어?”
루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아리아가 진실을 깨닫고 난 이후, 작은 헤프닝이 있었지만 상황은 어느정도 정리되는 듯 싶었다.
“저, 정말이지…? 이거 함정이지? 마왕군 측에서 준비해둔 저주 맞지이?”
“네, 그… 그렇습니다.”
기억을 되찾은 아리아는, 오랜 설득 끝에 겨우 회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그런 기억이…?”
“…….”
하지만 어떻게 기억을 되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묵묵 부답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로즈윈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하는데…
“뭐야… 대체.”
두번째 문제는 그곳에서 발생했다.
혹시나 로즈윈이 아리아가 기억을 되찾은 것과 관련이 있나 싶어 색적 마법을 걸어봤는데, 그녀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그녀는 지금쯤 프레이에게 갔어야 하건만,
지금은 아예 이 세상에서 지워진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두번째 문제까지는 어떻게 해볼만 했다.
첫번째 문제인 아리아는 혼신의 연기로 설득하면 그만이었고, 두번째 문제인 로즈윈은 애초에 전회차에도 사라진 상태였으니 말이다.
뭐가 어떻게 되든, 프레이만 되돌리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용사님… 정말 혼자가시는 건가요? 진짜로?”
“…제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용사님~! 용사님을 위한 성대한 파티가…”
“꺼져.”
“네, 네에?”
그렇기에 루비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용사파티와 프레이를 마왕으로 만들려던 2황녀를 뒤로하고 스타라이트 가 저택으로 향했다.
“프레이…?”
“왔군. 거슬리는 년.”
세번째 문제이자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건 바로 그 시점이었다.
“이, 이상하네? 왜 이리 빨리 온거야?? 네 여자들은…?”
“내 여자들이라니? 난 아무 기억이 없다. 그리고 여자에는 흥미도 없고.”
– 쿠과과과광!!!
“커, 커흑!?”
“내가 흥미가 있는건, 오로지 파괴뿐이니라.”
어째서인지 전회차와 달리, 프레이는 히로인들을 대동하지 않은 채 며칠이나 일찍 저택에 찾아왔다.
저택에 도착하기 직전에 ‘되도록이면 먼저 용사의 무구를 손에 넣어 그를 유인해볼까?’ 라는 작전을 떠올리고는 만족스러워 하던 루비에게는 크나큰 낭패였다.
“마, 마음 껏 때려. 난 너를 믿으니까…”
– 꽈드득, 꽈드드득…
“나, 나나 나는… 네가 고뇌하고 있는걸 잘 알아. 그러니…”
– 꽈드드드드득…
“이, 이쯤이면… 나에… 대해서… 떠올릴때도…..”
“거슬려.”
“꺄악!!!”
게다가 이상한 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일주일간 여기 눌러 앉아 있어도 되겠군. 기다려라, 금방 지하실의 결계를 해제해 줄테니.”
“이, 이럴리가 없는데…..”
회귀를 하고 마주하게 된 프레이는, 전회차의 그와 너무나 달랐다.
다른 누구도 기억 못하지만 유일하게 자신, 그리고 아리아만큼은 어렴풋이 기억해주고 파괴 행위를 멈췄던 그와는 달리.
이번 회차의 그는 오직 ‘파괴 행위’에만 목적을 든 기계 같았다.
“으극… 프, 프레이……”
“좋아, 드디어 이 빌어먹을 결계가 해제되는군.”
처음에는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면, 프레이가 뭔가 깨닫고 물러날 거라 생각했다.
이전 회차의 프레이가 죽던 마지막 순간에, 그는 분명히 옛날의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이게 용사의 무구인가? 한때는 용사의 적격자이던 나니, 착용을 할 수 있을수도…”
– 철컥…!
“정말 되는군. 아주 좋아.”
프레이는 뒤늦게 제국에서 파견된 제국군, 루비를 구하러 온 용사파티, 그외 그에게 찾아오던 모든 사람들을 루비의 눈 앞에서 가차없이 살육해버렸다.
지난 회차에서 언뜻 보이던 망설이던 눈빛도, 어딘가 생각하는 듯한 모습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피비린내가 진동하게 된 저택의 한복판에서, 프레이는 그저 기계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거나 지하실 결계 해체 작업에 집중할 뿐이었다.
“너… 누구야.”
그제야 루비는 깨달았다.
“누구야아아아!!! 너!!!”
“마왕이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프레이는, 자신이 되돌리고 싶던 프레이가 아니라 그저 마왕일 뿐이라는 것을.
“왜… 대체 왜…..”
그제야 루비의 머릿속에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놓친게 분명히 존재했다.
왠지 모르게 전회차에서는 했던 행동을 이번 회차에는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꽤나 예전의 일이기도 하고,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니, 애초에 빠트린게 맞긴 한건가?
그저 자신의 착각이나 자기합리화에 불과할 뿐인건 아닐까?
“잘 가거라, 전대 마왕.”
“자, 잠깐… 프레이…..”
– 푹…!
“크허억…”
그런 생각을 하던 루비는, 용사의 무구를 착용한 프레이의 검이 자신의 심장을 뀌뚫자 비통한 신음을 내며 눈물을 흘렸다.
반항은 할 수 없었다. 회귀 첫날에 너무나 데미지를 많이 입은 대다가, 홀로 그에게 찾아가 억지로 추억을 속삭이다가 그 배로 얻어맞은 상태였다.
‘난… 진짜 멍청이구나.’
“끈질기네, 제발 빨리좀 죽어. 이 잡초같은 년아.”
‘기껏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렇게 바보같이 실패해버리다니…’
프레이의 용사의 무구에 의해 심장이 쥐어짜지며 의식을 잃어가던 루비는, 떨리는 손을 프레이에게 뻗기 시작했다.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해보는 시도였다.
유난히도 자주 자신의 볼을 어루만지거나 볼을 볼로 비비던 프레이의 행동을 따라해, 그의 기억을 일깨워줄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설사 자신이 이곳에서 바보같이 죽는다 하더라도, 이걸로 자기 대신 타락을 선택한 프레이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역겹군.”
“아.”
하지만 지금의 프레이는 그저 자신의 손을 쳐내며 역겹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그래도… 영원히 사랑…….”
그런 프레이를 바라보며 회한에 찬 표정을 짓던 루비는, 결국 말을 다 끝마치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 파지이이잉…!
마지막으로 그녀가 느낀것은, 세상을 파멸시킬 힘을 손에 넣어 두려울게 없어진 프레이의 광오한 검격에 자신의 몸이 찢여발겨지는 느낌과
– 파지지지직…!
세상이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어.”
그 후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때는,
“영원히 사랑해, 루비.”
이제는 세번째 째인 장면이 그녀의 눈앞에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
죽자마자 다시 깨어나, 의자에 묶인채 타락을 수락한 프레이를 멍하니 쳐다보던 루비.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엔딩 999 – 용사 타락]“하, 하하…..”
마찬가지로 3번째로 보는 문구를 확인한 그녀가, 프레이의 앞에 엎어져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지금 막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리트라이: 2회차]“하하… 하……..”
리트라이는 기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앞으로 얼마나 회귀를 하게 될지, 얼마나 많은 비극을, 얼마나 많은 배드엔딩을 마주하게 될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덕분에 순간적으로 무너질 뻔 했던 마왕.
하지만 이내 맑아진 정신을 가다듬은 그녀는,
의자에 묶여있던 프레이를 끌어안은채 살짝 겁에 질린 눈초리로, 그러나 어느정도는 각오한 표정으로 덜덜 떨며 속삭였다.
“너도 이런 기분이었구나?”
“……….”
“그럼 너처럼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 보면… 언젠간, 네게 닿는 날이 오겠지?”
“으음…”
“사랑해, 프레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기 시작했다.
.
유난히도 날이 따스하던 어느날 아침, 한 여관.
– 끼이익…
“식당 이용객이신가요? 아니면 투숙객이신가요?”
로브를 뒤집어 쓴 한 여인이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여관 주인이 호쾌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둘 다입니다.”
“네! 객실 키는 여깄고요! 식사는 무엇으로?”
주인에게 키를 건내받은 손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한다.
“호밀빵과 감자스프로.”
“알겠습니다!”
흔쾌한 수락에 손님이 조용히 식당으로 향하자, 식사 준비를 하려던 주인장이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린다.
“근데… 메뉴도 그렇고 어디서 많이 뵌 것 같은데…”
“…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멈칫해 있다가, 주인장이 그렇게 말하고 부엌으로 들어가자 한숨을 내쉬는 손님.
“……..”
그 뒤로 감자스프와 호밀빵이 나오기 전까지, 손님은한참동안 고개를 푹 숙인채 식당의 구석에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
“실례지만 겸상 가능 할까요~?”
마찬가지로 로브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빈 자리도 많습니다만.”
“아, 저 그게…”
눈 앞의 사람을 잡상인이나 사기꾼으로 치부한 손님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자리를 피하려하자, 앞에 나타났던 사람이 다급히 손님의 팔을 붙잡는다.
“얼굴에 써져있길래요.”
“지금 이게 뭐하는…”
덕분에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 손아귀를 뿌리치려던 손님.
“이제야 막 10번 정도 회귀를 한 사람이라고요.”
“……!!!!!”
그러던 그녀가 그 말을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너어……”
“안녕하세요? 지금은 안 가식적인 루비씨?”
로브를 살짝 들어 얼굴을 드러낸 페를로체가 눈을 빛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루비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