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76)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76화(376/524)
Episode 376
“루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프레이가, 몸에 힘을 주어 밧줄을 끊어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연다.
“루비, 대답해.’
“……….”
지금까지는 프레이의 말에 즉각 반응을 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의 루비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채 침묵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젠장.”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프레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대체 왜…”
루비의 영혼이 실시간으로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페를로체의 능력을 빌려 영혼을 인위적으로 산산낸 다음 빼돌린 자신의 경우가 아니였다.
그녀의 영혼이, 진짜로 무너져내리고 있다.
원래라면 잘 된 일이다.
박수를 치며 기뻐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용사인 그와 대립해오던,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역겨운 존재였던 절대악의 존재.
그 존재의 영혼이, 완전히 산산조각나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 주륵…
하지만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루비의 모습을 바라보는 프레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건 아닌데.”
네번째 시련을 이용해서 루비를 공격하겠다는 초기의 계획은, 보류된지 오래였다.
네번째 시련에 접어들기 며칠전에 떴던 퀘스트.
프레이는 그 퀘스트를 보고는 시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향후 그녀의 처분을 결정지으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쳐 ‘희생’을 해버릴 줄이야.
“……….”
이대로 가면, 루비는 마물화가 되거나 영혼이 사라진 껍데기가 될 것이다.
‘시스템’으로 예정되어 있는 최후의 결전이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
그 날이 오면, 껍데기가 된 그녀를 용사의 무구로 찔러 죽이면 된다.
그런다면 모든것이 끝나고, 그토록 원하던 ‘해피엔딩’이 찾아올 것이다.
[돌발퀘스트 – 루비 구원]상세사항: <돌발퀘스트 – 타락>을 선택하십시오.
[보상: 네번째 시련 버그 수정…….]하지만, 프레이가 선택을 보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진엔딩 루트 개방]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던 ‘진엔딩’.만약 존재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달해야 할, 진정한 엔딩.
퀘스트를 보자마자 즉시 수락했던 것도, 그 보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 샤아아…
눈 앞에 있는 루비의 영혼은, 이제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무너져 내린다면, ‘루비’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 스윽…
그렇기에,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서있던 프레이는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루비의 손가락에 조용히 끼운다.
프레이의 영혼이 망가졌을때 패닉에 빠졌던 루비가 멋모르고 전세계에서 구해온 물건.
그 물건들중에서, 예언서의 설정집에도 나와있던 이 반지는 실제로 영혼을 붙잡아주는 효과가 있는 희귀한 아이템이였다.
“으음.”
반지를 끼우니 무너지던 루비의 영혼이 살짝 안정화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프레이와 페를로체 처럼, 한계의 한계까지 리트라이를 한 루비의 영혼은, 반지 하나로 안정화 시키기에는 너무나 엉망진창이였다.
– 주륵…
그렇기에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프레이는, 이내 바닥에 굴러다니던 날카로운 돌을 잡고는 자신의 팔을 그어내렸다.
– 주륵…
영혼을 안정화 시킬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피의 맹세를 하기 위해서였다.
“…마셔, 루비.”
“으븝.”
인간이 인간에게 피의 맹세를 하는 것 조차 천년간 전례가 없던 일이다.
누군가에게 피의 맹세를 받은 사람이, 그 누군가에게 역으로 피의 맹세를 하는 경우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꿀꺽, 꿀꺽.”
늘 받기만 해오던 피의 맹세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그것도 마왕에게 행한 프레이가 아찔한 느낌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는다.
– 샤아아…
이중 계약의 부작용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영혼을 바쳤다는 모순 때문일까.
둘의 영혼이 찰나의 순간, 한데 뒤섞인다.
“으으…”
그와 동시에 프레이에게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루비의 기억들.
최근 며칠간 어렴풋이 떠올리던 장면들이, 눈앞에서 보는것처럼 생생하게 그의 눈앞에 재생되기 시작한다.
“…………”
그 장면들을 보던 프레이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뭔데…”
이윽고, 새파랗게 질린 그의 얼굴에서 튀어나온 목소리.
“대체 뭐냐고…..”
프레이의 팔에서 흘러나와 루비의 입으로 들어가는 피처럼,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프레이?”
죽은듯이 바닥에 쓰러져있던 루비가, 천천히 눈을 뜨며 프레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2 – 01] [프레이 기억 복구 (1/1)] [2단계 퀘스트를 클리어 하셨습니다!]“어라?”
그런 그녀의 눈앞에 떠오른, 클리어 메세지.
“…….역시 프레이야.”
그 메세지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루비가, 이내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또 네가 어떻게든 해준거구나…?”
그녀의 눈앞에 있는 프레이는,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의 맹세’를 한 부작용으로 영혼이 잠시 섞이는 바람에, 루비가 떠올린 소중한 기억들이 그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기억들은… 다 뭐야?”
덕분에 시스템이 이 상황을 ‘클리어’라 인정할 수 있었지만, 프레이에게 있어서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이게… 있었던 기억이라고? 거짓말. 그럴리가 없어.”
“프레이…”
“이런 회차는 없었다고!!”
프레이가 본것은, 시련에서의 1회차에서 그가 그렸던 그림들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장면들이었다.
어딘가 익숙해보이는 동굴에서 아직은 어려보이는 둘이 서로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거나.
선라이즈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 루비가, 다섯 메인히로인들과 함께 프레이와 대화를 나눈다거나.
아카데미 수학여행으로 온 서대륙의 사막지역에서, 루비가 챙겨온 통밀빵과 감자스프를 나눠먹는다거나.
연극을 보러간다거나, 옷을 산다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거나.
손을 맞잡고, 옥상에서 별하늘을 바라본다거나.
“이 기억들이… 전부 진짜라고…?”
그림뿐만 아니라 프레이가 루비를 파멸시킬 작정으로 행해온 거짓 애정행위들.
그리고 루비가 그에게 한 애정행위들도 섞여 있었다.
“말도 안돼.”
프레이가 패닉이 온것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무의식은… 무서운 법이지.”
그런 그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던 루비는, 당장에라도 영혼이 찢어질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마지막 퀘스트]‘마지막 퀘스트’가 자신의 앞에 떠오르자, 우뚝 걸음을 멈췄다.
“”………..””
그리고 흐르기 시작한 정적.
“아, 아하하하!!!”
몇분간이나 지속되던 그 정적을 깬 루비가, 갑자기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며 두 팔을 벌렸다.
“전부 내 계획대로군!”
“…계획?”
그리고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프레이에게 소리높여 소리치는 루비.
“내가 심어둔 거짓기억에 속아 넘어가 결국 영혼을 바치다니! 역시 넌 멍청하구나, 프레이.”
그 말을 들은 프레이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뭐냐. 설마 그게 진짜로 너와 나의 추억이라 생각한 것이었느냐? 생각보다 순진하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 루비의 공격이, 프레이에게 쇄도한다.
“멍청한 녀석! 내가 지금까지 한 행동은 전부 ‘기만’이였다!”
“기만… 이라고?”
“내가 지금까지 말한 배경은 전부 거짓말이었단 말이다. 넌 날 거의 이겼던 용사였고, 난 패배 직전이었던 마왕이었어. 난 그저 기억을 잃은 네가 내게 영혼을 바치도록 유도했을 뿐이다!”
“………”
“피의 맹세를 하는 방법을 설명한것도, 전부 노림수였다!”
그렇게 말한 루비가, 비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제 네놈은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없어. 오직 힘대 힘으로 붙을 뿐이다!”
미소를 짓고 있는 루비와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레이의 마기가 동시에 충돌한다.
그 여파로, 지하 은신처가 마구 흔들리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혹시라도 내게 영혼을 바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역시 도박에 성공……”
마치 예전의 마왕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도 한 것처럼 패도적인 기세로 마기의 방출량을 높여 프레이를 압박하던 루비.
“…..으헉.”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마기를 거두고 무릎을 꿇는다.
“쿨럭, 쿨럭… 으으… 이럴수가. 서, 설마… 영혼이 다 회복된게 아니었….”
그리고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루비.
“크으윽… 몸이, 몸이 안 움직여진다…”
그러던 그녀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프레이를 올려다본다.
“”…………..””
그리고 흐르기 시작한 정적.
– 스릉…
프레이가 조용히 검을 빼들자, 루비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젠장… 실패인가.”
“………”
“뭐하느냐. 어서 검을 밀어넣지 않고. 날 가지고 노는 것이냐?”
– 스륵…!
“이 육신은 포기해야겠군. 하지만 긴장하거라. 내 영혼은 곧 다른 몸을 찾아…..”
“루비.”
그런 그녀를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목에 칼을 겨누던 프레이.
“지랄하지마.”
“……뭐?”
그러던 그가, 창백하게 질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 연기를 하는거야?”
“무, 무슨 소릴 하는거냐.”
“설마… 일부러 나한테 죽으려고 이러는거야?”
그 말을 들은 루비의 눈빛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
“무무, 무슨 소릴하는거냐.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날 베거라.”
“너 지금 영혼이 산산조각나기 직전이잖아. 네가 알으켜준대로 성녀의 힘이 깃든 이 검으로 널 찌르면, 아무리 너라도 영혼이 소멸될걸.”
“그, 그럼 빨리 하거라. 왜 망설이고 있는 것이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루비가,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해온다.
“날 죽이면 모든게 끝날텐데. 설마 그럴 자신도 없어서 그런것이냐? 남자가 아니라 계집이였군, 프레이.”
“………..”
“쿨럭, 쿨럭… 뭐, 좋다. 날 공격하지 않을거라면… 내가 널……”
아무리봐도 연기다.
순간적으로 변한 그녀의 태도. 무수히 많은 회귀로 다져졌지만, 미세하게 느껴지는 거짓의 기미.
그리고, 결정적으로 촉촉해져 있는 그녀의 눈가.
“너랑 동굴에서 만난 기억, 아카데미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 같이 여행을 다니던 기억… 그거 다 진짜냐고.”
“마, 말했지 않느냐. 그건 가짜…..”
“그럼 지금 왜 나한테 억지로 죽으려 하는거지.”
그 말을 들은 루비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허공을 바라본다.
뭘 보는거지?
저런 행동은 보통 시스템을 확인할때 보이는 행동인데.
설마 새로운 퀘스트라도 받은건가?
“설마, 설마 진짜로… 잊혀진 회차가 있었던거야…?”
“너무 바보같군, 프레이.”
내가 멍한 표정으로 묻자, 잠시 움찔거리던 루비가 이내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며 입을 열었다.
“잊혀진 회차따위는 없다. 전부 내가 만든 거짓 기억이야.”
“………”
“사실 너, 지금 원래 기억 가지고 있잖아?”
가슴이 철렁한다.
그녀가 내가 원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니?
“내가, 네 함정을 눈치채지 못했을것 같느냐?”
“함정…?”
“날 과거에 인연이 있었던 것 처럼 속이고, ‘네번째 시련’에 빠트려 엿을 먹이려 한것 말이다.”
그렇게 말한 루비가, 분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마기를 내뿜는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작전을 쓴거다. 거짓 기억을 만들고, 네가 날 위해 희생하도록 유도한거지.”
“………”
“그런데 영혼을 부수는 강도를 잘못 조정해서 이꼴이구나. 빨리 죽여다오. 그래야 새 몸으로 갈아타지.”
머리가 복잡하다.
일단 이 말이 사실이라면, 대충 설명이 되긴 한다.
지금까지 내가 떠올린 정보들은, 모두 네번째 시련을 진행하는 도중 내 계략을 눈치챈 루비의 거짓 기억.
그녀는 그것을 이용하여 내가 피의 맹세를 하게 만들어 다시 대등한 입장에 서는것을 노렸고, 더 나아가 날 죽이려 했지만 실패해 이 모양이 되었다는 건가.
– 스릉…..
“빨리 죽여다오. 이 몸은 이제 지긋지긋하단 말이다.”
완벽한 설명이다.
이거라면 아무 죄책감 없이 루비를 죽일 수 있다.
– 주륵…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지만 않다면 말이다.
“빨리 죽이라고… 프레이.”
그녀를 지금 죽이면, 해피엔딩을 볼 수 있다.
다섯 메인 히로인들과 서브히로인들.
내 가족, 그리고 세상은 행복을 되찾을 것이다.
“죽여줘… 제발.”
마왕인 그녀는 마물화가 되거나, 영혼이 소멸해서 빈껍데기가 될테고 말이다.
“………..”
하지만, 그러면 진실은 영원히 묻히고 말 것이다.
루비의 진실, 그리고 해피엔딩이 아닌 ‘진엔딩’을 영원히 알 수 없다.
“프레이. 지금 날 안죽이면… 1분마다 한명씩 죽일거야.”
더 이상 내게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루비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네 동생부터. 잔인하고 끔찍하게 갈갈이 찢어 죽일거야.”
“……….”
“그 다음에는 1학년생들이야. 시스템의 제약이 사라진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해.”
루비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 다음에는 카니아. 그 다음에는 이리나. 그 다음에는 클라나, 세레나, 페를로체…”
“진실을 알려줘.”
“네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꼴을 보기 싫으면, 지금 날 죽여야 할거야.”
“진실을… 알려줘.”
“30초 남았어.”
어느새 그녀의 배에 맞닿아 있는 검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20초.”
이대로 그녀의 배를 꿰뚫으면, 해피엔딩이다.
“10초.”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비극이, 그대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5초.”
어쩌면 날 매몰시킬 수 있을 진실도, 영원히 묻히게 된다.
“4초, 3초…”
난 어떤 선택을 해야하지? 이런 상황에선 무슨 선택을 해야하지?
“2초.”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1초…”
“자, 잠깐….”
그렇게 초를 세던 루비가 저 멀리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손을 뻗고.
동시에 내 손에 힘이 들어가던 바로 그 순간.
– 파지지지지직…!!!
갑자기, 그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꺅!?”
“무, 무슨…!”
한동안 회귀의 리스폰 장소로 지정되어 있던 지하실이,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 파직, 파지직…! 파지지지직…!
이윽고 사방에서 솟아나기 시작한, 흉측한 촉수.
“뭐, 뭔데 이거…”
“으, 으으으…”
“…루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 징그러운 모습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던 그때, 단호한 표정으로 카운트를 세던 루비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왜 그러는…”
– 진실을 알고 싶느냐?
“까, 깜짝이야!”
그런 그녀에게 한걸음 걸어가려는 순간, 우리의 앞에 떠오른 거대한 무언가.
“…뭐야, 이거?”
그것은, 거대한 눈동자였다.
.
– 반갑군, 프레이.
“너는…”
– 오랜만이군.
난데없이 나타난 눈동자를 식겁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프레이는, 이내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질문을 던진다.
“…넌 누구지.”
–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은 하지 못할것 같군.
그 말에 인상을 잔뜩 지푸리며 뒷걸음질을 친 프레이.
그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힘이 눈동자에게서 피어나오고 있었다.
– 그나마 가장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라면… ‘마신의 뒤에 있던 자’ 쯤이 적합하겠지.
“…설마, 네가 흑막이냐?”
– 하찮은 것에게 존재를 규명당하는 것 만큼이나 불쾌한 일이 또 없거늘.
“여긴 무슨 일이지.”
본능적으로 눈앞의 눈동자가 이 모든일의 흑막임을 어렴풋이 눈치챈 프레이가,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 본체를 대신해 진실을 알려주려 왔다만.
“왜? 어째서?”
– 너희들을 위해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한 하이라이트인데, 진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버리면 아깝지 않나.
그러자,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하는 눈동자.
“프레이, 날 죽여.”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사색이 된 루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렇게 소리친다.
“지금 당장 날 죽여!!”
– 말리지는 않으마. 난 네 자유의지를 존중할테니.
“저 새끼 말 듣지 마! 그냥 날 죽이라고!!”
– 하지만, 내가 중얼거리는 말 정도는 들어줄 수 있겠지?
검을 든채 손을 움찔거리며 루비를 바라보던 프레이. 그런 그가, 알게 모르게 눈동자의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 원래는 호밀빵을 끔찍히도 싫어하던 네가, 호밀빵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
“그, 그건…! 내가 심은 가짜 기억… 크헉!?”
그런 눈동자의 말에 끼어들려다가, 촉수에 뺨을 맞고 바닥에 엎어진 루비.
“루, 루비…”
– 마왕이었던 그녀가, 타락을 선택한 너 덕분에 마왕의 직책을 벗자마자 성향이 ‘소녀’가 된 이유는 뭘까?
그런 그녀에게 손을 뻗던 프레이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 이솔렛 아르함 바이워크가, 6번째 메인 히로인에서 탈락한 이유는 뭐지?
“…….!”
이윽고 사나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다가, 그 말을 듣고 얼어붙는 프레이.
– 네 상점의 필살기가 ‘마인드 컨트롤’이고, 루비의 상점의 필살기가 ‘맹목적인 사랑’인 이유는?
“……….”
– 네 녀석이, 구원 퀘스트를 보자마자 수락한 이유는?
“…뭐.”
한참동안 얼어붙어있던 프레이가, 그 말을 듣고는 떨리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건… 진엔딩을 보기 위해…..”
– ‘루비의 구원’ 까지만 보고 바로 수락을 눌렀으면서? 반드시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을뿐, 그 이유조차 몰랐으면서?
“……어라.”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아는것 없이 ‘루비의 구원’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수락을 눌렀다는 것을 깨달은 프레이가, 떨리는 눈빛으로 품에 손을 넣는다.
– 그 펜던트는, 지금도 지니고 있겠지.
별의 신에게 받았던 이스터 에그인, 펜던트가 그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 샤아아…
어째서인지 지금 열면, 활짝 열릴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 그 안에, 진실이 기록되어 있다.
“…무슨 진실이 있는데.”
“프레이. 하지마. 안돼. 그냥 날 죽여. 그거 확인하지 마.”
“말해. 무슨 진실이 있는지.”
프레이가 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묻자, 눈을 가늘게 휘며 답하는 눈동자.
– 초기안.
“뭣……..”
그 말과 함께 프레이가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펜던트가 활짝 열렸고, 사방을 빛이 가득 매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 이를테면… 그래. 0회차라고 해야 되려나.
“…..!”
그 빛에 휩싸여 사라져가던 프레이의 시선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비와 여전히 눈을 가늘게 휘고 있던 눈동자에 닿는다.
– 정말 오랜 기다림이였어. 아주 기대가 되는군.
– 파즈즈즈즈…!!
그와 동시에, 빛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 프레이.
– 때로는, 진실이 거짓보다 가혹한 법이지.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는, 눈동자의 잔뜩 기대에 젖은 비아냥거림이었다.
.
“하아, 하아…?”
온몸이 찢어질듯한 느낌을 느끼며 허우적거리던 프레이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여긴…?”
그의 시야에, 익숙한 장면이 들어오고 있었다.
“마왕성인데…”
그가 있는 곳은, 다름아닌 마왕성의 최상층이었다.
“…..으음.”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프레이가, 이내 자신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쉰다.
“또 관전모드인가.”
자신의 몸이 투명해져 있었다.
2번째 시련, 그리고 3번째 시련에서 투명해진 상태로 세계를 관람하던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우선… 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확인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고는, 최상층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프레이.
– 쾅!!!
“…..!?”
그럴 필요는 곧 사라졌다.
“케흑… 켁…..”
“쓸모없는 년. 커갈수록 자질이 없어지는 군.”
최상층에 있던 마왕의 방의 문이 박살나며 안에서 튕겨져 나간 한 소녀가 이내 그 여파로 복도를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고, 그 문 틈 사이에 누군가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
문틈으로 보이는 창백하면서도 싸늘한 얼굴을 확인한 프레이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초대 마왕이잖아.”
예언서로 이미지를 봐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건 다름아닌 초대 마왕.
초대 용사 한별과 초대 용사파티에 의해 무참히 패배했다고 알려진 천년전의 마왕이었다.
“그럼 지금은… 천년전이라는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구르던 소녀에게 시선을 돌린 프레이.
“…..어.”
그러던 그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흐극, 흐으으…..”
“다음에도 도망칠 생각을 했다간, 낙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루루?”
핑크빛 머리. 순종적인, 그리고 죽어있는 눈빛.
그것은 누가봐도 어린 루루였다.
“…….이게 무슨.”
“루루.”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있던 프레이의 시선이, 몇분뒤 조용히 옆방에서 나온 누군가에게 향한다.
“괜찮니….?”
“………….”
루비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죽은 눈이 되어 자해를 하고 있던 루루를 감싸안고 있었다
“미친…”
누가봐도 그건 어린 루비였다.
“언니… 나… 더 이상 못버틸 것 같아…”
“으음…”
루비에게 감싸안아지고 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한 루루. 그런 그녀를 떨리는 목소리로 보던 어린 루비가, 이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귓가에 귓속말을 속삭인다.
“…루루, 우리 도망치자.”
“으, 으아?”
“쉿, 조용히 해.”
루비가 다급히 루루의 입에 손을 가져다대자, 조용해지는 그녀.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아빠랑 엄마가 알면… 우리 둘다 죽어.”
“괜찮아, 방법이 있어.”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며, 다시한번 조용히 속삭인 루비.
“그분들도 못찾을 미래로 가자.”
“…뭐?”
“천년 쯤 후로. 그 누구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는 곳으로 가는거야.”
“으, 우으…..”
그 말을 들은 어린 루루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그리고 그건, 프레이도 마찬가지였다.
“뭐냐고.”
그의 눈앞에, 지워졌던 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