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8)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8화(38/524)
Episode 38
“푸하하하하핫!!!”
아수라장이 된 무도회를 잠재운것은, 선라이즈 제국 황제 라이칸의 폭소였다.
평소에 우중충하고 뚱한 표정만을 짓고 다녀 아예 그것이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린 황제였기에, 그런 그의 웃음은 충분히 무도회장에 있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했다.
“하하하… 거 참 웃기군…!”
그렇게 한참동안 짙은 침묵속에서 혼자 웃던 황제는, 너무 웃느라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지금 그 말 책임질수는 있는건가?”
“…글쎄요.”
그런 그에게,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물론 일반적인 황제였다면 경을 칠만큼 경솔하고 예의없는 발언이었지만, 내 눈앞에 있는 라이칸 황제에게는 올바른 답변이다.
“푸흡…푸흐흐…”
아니나다를까 내 말을 들은 황제가 다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는 다시 짙은 침묵속에서 한동안 혼자서 웃기 시작했다.
“프레이 공,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황제를 보며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음에 안심을 하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황후가 다급히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자네의 신청에 대해 황후와 의논을 해보도록 하겠네!”
하지만 황제가 호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다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 지금 이 일이…”
“거 참, 오랜만에 재밌는 일이 생겼는데 좀 어떻소?”
하지만 황제는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어느새 준비가 끝난 회담실로 향했고 결국 황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날 한번 째려보고는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성공이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계획이 성공한 것 같다.
물론 나는 이번 작전의 성공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운 감정은 들지 않는다.
황제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선라이즈 제국에서 황비가 위세를 부리고 있는 이유는, 황제의 무기력증 때문이다.
그 증세 때문에 황제는 무능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그렇기에 황후가 권력을 대신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황제기에, 그는 이렇게 자극적이고 짜릿한 일에 환장을 한다.
그렇기에 실로 오랜만에 일어난 이 사건에 직접 참여하여, 어떻게든 무기력증을 달래려고 할 것 쯤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건 아무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황제는 다시 무기력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황후와 황자, 황녀들이 친히 나설 것이고, 제국에서 그녀들의 위상에 대항할 수 있는건 스타라이트 공작가의 제 1남이자 임시당주인 나밖에 없다.
즉, 이번 작전은 그야말로 나만이 쓸 수 있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황제가 언짢아 할 가능성과 황후가 어떻게든 훼방을 놓을 가능성을 생각했기에 ‘맹약’을 운운하였다.
덕분에, 지금 황후와 그녀의 자식들은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출발하시죠.”
“…음?”
그런 생각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대기를 하고 있던 시종이 내 곁으로 오더니 에스코트를 하기 시작했다.
“3황녀님의 약혼자가 결정되면, 두분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으로 안내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프레이 님이 가시는게 맞을 것 같군요.”
“…그렇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나는, 그때까지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클라나를 뒤로 하고 시종과 함께 단상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단상에서 내려오자, 수많은 시선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시기하거나 질투어린 시선, 놀라거나 경악에 찬 시선, 탐욕스럽거나 기회를 노리는 시선, 혹은 그저 날 치기어린 꼬맹이로 보는 시선까지.
수많은 시선들이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부담스럽거나 숨이 막혀오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는 늘상 받아오던 시선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신.”
그렇게 수많은 인파들을 해치며 미리 준비되어 있는 방으로 향하던 그때, 누군가가 날 막아섰다.
“…..!”
그리고 날 막아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그때까지 유지하던 태연함을 무너트리고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인가요?”
앞으로의 내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사람이자, 지난 회차에서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날 포기하지 않았던, 절대 이런 타이밍에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내 약혼녀 세레나가 차가운 표정으로 날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또 실없는 장난을 하시는 건가요? 당신이 바람을 피는게 전부 진심이 아니라는건 이미 간파하고 있다고요.”
“…뭐?”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그녀의 입에서 전회차를 기억하고 있는지 떠보는 유도심문이 나오거나, 아니면 살인 예고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옛날에 많이 듣던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비록… 당신의 표정과 몸가짐을 살펴봤을때, 살짝 진심이… 아니, 많이 진심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 역시 연기죠? 계속 연기를 하시다보니 꽤 발전하셨네요? 네?”
“그게 무슨…”
“그러니 그만두세요. 이런 촌극은 그만두고… 제가 알아본 명소에…”
“손 치워.”
그녀가 떨리는 손을 나에게 뻗기에, 나도 모르게 옛날에 그녀를 대하던 버릇이 튀어나와 버렸다.
“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동공이 옅어지더니, 고분고분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재빨리 나에게서 땠다.
“…..?”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데, 어느새 동공이 원래대로 돌아온 그녀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명소에 가서 저와 차분히 이야기라도 좀 나누어 봐요. 대체, 뭐가 불만이시고 이런 행동은 왜 하신 건지…”
“조용히 해.”
혹시나 싶어 한번 더 그녀에게 명령을 내려보았는데, 동공이 다시 옅어진 그녀가 입을 꾹 다물기 시작했다.
“…입은 그만 다물고, 여기서 비켜.”
설마 아니겠지 싶어 상세하게 명령을 내려보니, 세레나가 입을 살짝 벌리더니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행동에 짚이는 점이 있었기에 정보탐색 스킬을 사용해봤더니, 꽤나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름: 세레나 루나 문라이트] [능력: 힘 7.8 / 마력 7.8 / 지능 10 / 정신력 9] [특이사항: 가문의 종속, 절대복종마법] [성향: 책략가] [선함 수치: 0]‘…절대복종마법이라고?’
그녀를 속박하고 있는 저주인 ‘가문의 종속’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지난 회차에서 날 상대하며 상당히 고통스러워 했으니 말이다.
그녀의 성향을 그 무엇보다 잘 나태내주는 단어인 ‘책략가’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 병든 병사들로 마왕의 군세를 몇년간이나 막아낸 전술의 천재에게 책략가라는 칭호가 붙여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마이너스 백과 플러스 백의 정확히 중간 단계에 있는 그녀의 선함수치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때에 따라서는 천사같이 선해질수도, 때에 따라서는 악마처럼 악해질수도 있는 중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복종마법은 대체 왜 걸려있는거야?’
절대복종마법은, 오직 하나의 대상에게 명목적으로 충성을 하게 고안된 마법으로… 충성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명령을 내리면 아무 의심없이 따르게 되는 최고 등급 마법이다.
그런데 왜 저런 마법이 그녀에게, 그것도 충성하는 대상이 나로 지정된 채 걸려있는 것일까?
“…프레이 님? 슬슬 가셔야 합니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보다못한 시종이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 미안. 가자.”
덕분에 정신을 차린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시종과 함께 미리 준비되어 있다던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세레나, 설마…’
물론, 방으로 가면서도 나는 세레나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고 또 거듭하고 있었다.
.
“…뭐야? 여긴?”
방에 도착한 나는, 무척이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약혼자와 제 3황녀님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미치겠네.”
방안이 온통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는데다가 여기저기 달려있는 아기자기한 하트무늬 장식들이, 상당히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대체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디자인 한거지?”
“황후님입니다.”
“다시보니 아기자기하고 예쁘군. 신혼 분위기도 나고 아주 좋아.”
혹여라도 책을 잡힐까봐 재빨리 말을 돌린 나는, 여러가지 과자와 디저트들이 잔뜩 쌓여져 있는 작은 원형 책상에 가 앉고는 과자들을 먹기 시작했다.
“…이것도 황후께서 직접 준비하신 건가?”
“여기에 있는 모든 간식들은 황후께서 직접 준비하신 겁니다.”
어렸을때 세레나가 단 간식을 이빨이 썩을 뻔할 정도로 많이주는 바람에 단 음식에 길들여진 나는, 그래도 황비가 디저트에 대한 안목은 조금 있다고 평가를 하며 과자를 집어먹다가 이내 시종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클라나는 언제 오는거야?”
“곧 오실때가 됐는데…”
– 끼이익…
말끝을 흐리는 시종을 살짝 째려보며 옆에 있던 칵테일에 손을 가져다 대던 그때, 문이 조용히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은 전부 나가주시죠.”
이윽고 방에 들어온 클라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내 옆에 있던 시종과 메이드들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가.”
그리고 그들은, 내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부리나케 방을 나섰다.
“…읏.”
그런 광경을 분하게 지켜보던 클라나는, 이내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 대체 무슨 속셈…”
“앉아.”
하지만 칵테일을 손에들고 흔들던 나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
“자리에 앉으라고.”
이윽고 내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맞은편에 있는 자리를 가리키자, 잠시 부르르 떨던 클라나는 천천히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대체, 무슨 속셈이신가요.”
이윽고 자리에 앉은 그녀는 다시 나를 맹렬하게 노려보며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손에 들고 있던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다.
“대답하세요, 프레이.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일단 그 태도부터 고쳐.”
“뭐라고요?”
“내 신부가 되어서 나에게 안기려면, 그 맹랑한 태도부터 고치라고.”
이윽고 내가 싸늘하게 말하자, 그녀는 입꼬리를 비틀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당신에게 안길 것 같나요?”
“나랑 결혼하면 싫어도 안겨야 될걸?”
“하, 그런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에요. 그러니…”
– 쾅!!
“…힉!”
내가 식탁을 강하게 내려치자 클라나는 움찔하며 하던 말을 멈추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상황파악이 잘 안되나본데… 너에겐 선택권이 없어.”
“……..”
“내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넌 어디 수도원이나 탑에 갇히게 될걸? 너도 알잖아?”
내가 다 안다는 듯이 말하자 클라나는 조용히 입을 악물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쐐기를 박았다.
“뭐, 내가 싫으면 그 머리는 벗겨지고 배가 불룩튀어나온 늙은이나 못생긴 주제에 여자는 더럽게 밝히는 망나니들, 아니면 성범죄자라는 선택지도 있는데… 어때?”
“으…으으…”
“그런 애들보다는, 어렸을때 친분이라도 있는 내가 낫지 않나?”
그렇게 말하며 심하게 떨리고 있는 클라나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안 그래? 클라나?”
이윽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클라나의 손에 힘을 싣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더니 손에 태양의 마나를 두르기 시작했다.
“…윽.”
덕분에 내 손에는 연기와 함께 깊은 화상이 생겼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손을 잠시 내려다보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향하기 시작했지만…
“안녕하신지요?”
그 순간 1황자와 1황녀가 방에 들이닥쳤기에 행동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긴 어쩐 일이신지.”
“긴밀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왔사옵니다.”
살짝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니, 1황녀가 대표로 앞으로 나서 내 말을 받았다.
“클라나? 너는 나가 있으렴.”
이윽고 1황녀는 클라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며 손짓을 했고, 그러자 클라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 다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프레이 씨는 꽤나 특이 취향이신가봐요?”
이윽고 그들은 시종들이 가져온 화려한 의자에 앉았고, 잠시후 1황녀가 다리를 살짝 꼬며 흥미로운 표정을 한채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이것저것 안 가리긴 합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래뵈도 공작가의 제 1남이었기에 어느정도 그녀와 친분이 있던 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1황녀 역시 눈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체하실걸요?”
“꼭꼭 씹어먹으면 되겠죠.”
“흐음…”
그렇게 잠시 날 떠보던 제 1황녀는, 식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다가 이내 손을 턱에 괴며 진지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목적이 무엇인가요?”
“간단합니다. 클라나를 제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어째서죠?”
그 말에 잠시 눈을 감고 칵테일을 들이마신 나는, 이내 교활한 눈빛으로 답했다.
“…망가트리고 싶어서요.”
그 말을 하며 다시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한 나는, 조용히 황자와 황녀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전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음… 이렇게 되면 뇌물은 필요 없으려나요?”
이윽고 내가 칵테일을 전부 비우자, 1황녀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시종에게 손짓을 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시종이 고풍스럽게 생긴 병을 들고 왔다.
“서대륙산 와인이에요. 130년 정도 묵었죠.”
이윽고 1황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시종이 와인을 따고는 비어있던 내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나도 한잔 따르게나.”
그러자 나만큼이나 술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있는 1황자 역시 시종에게 부탁해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고, 나와 1황자는 술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네, 어릴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 맹랑한 성격을… 한번 꺾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요.”
“…악취미긴 하나, 지금 우리에겐 꼭 필요한 악취미군.”
그렇게 한참동안 술을 마시고 1황자가 어느정도 취기가 올라오자, 나는 술김에 진심을 말하는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실컷 가지고 놀고, 망가트려서 결국 마음이 꺾이면… 버릴 생각입니다. 그런 결함품을 평생 가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황족인데, 못하는 말이 없구만?”
“다 아는 사람끼리 왜 이러십니까?”
이윽고 황자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날 타박하자,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솔직히, 황족의 자격도 없는 사람을 제 3황녀라고 일일히 칭해주는 것도 지겨우시지 않으십니까?”
그 말을 들은 황자는, 잔을 들으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잘 통하는 것 같구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건배를 한 우리는 술을 전부 비웠고,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1황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프레이 씨의 약혼녀인 세레나 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나는, 어느새 하늘에 보이기 시작한 달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버렸다가 나중에 다시 줍죠.”
“푸흡!”
그 무지막지한 발언에 황자가 폭소를 터트렸고, 황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자신 있으신가요?”
“솔직히, 황후님께는 조금 무례한 언사가 될 것 같지만… 고른 놈들이 하나같이 어중이떠중이 밖에 없더군요. 그런 놈팽이들 보다는, 전문가인 제가 나을겁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그렇게 한동안 황자와 황녀의 비위를 맞추고 있던 그때, 시종이 두루마리를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논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자와 황비는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조용히 와인을 마시며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의 청혼을 1년간 유보한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두루마리를 읽기 시작한 시종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황자와 황녀, 그리고 나는 전부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이는 세레나 루나 문라이트가 방금 황제에게 요청한 ‘맹약’과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가 요청한 ‘맹약’이 서로 위배되기에, 그 상충안으로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세레나’가 언급된 순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 대신,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에게 클라나의 약혼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권한을 1년간 주겠노라. 물론, 공식적인 약혼자는 여전히 ‘세레나 루나 문라이트’다.”
담담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읽어내려가던 시종은, 잠시 헛기침을 한 뒤에 마지막 부분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년 뒤에도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의 결심이 변함이 없다면, 클라나 솔라 선라이즈와의 혼약을 인정하겠다. 허나, 조금이라도 마음의 변화가 나온다면 혼약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한 시종은, 두루마리를 접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 내용은, 선라이즈 제국 황제이신 라이칸 솔라 선라이즈 폐하의 지엄한 권한에 의해 지금부터 실효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뭐, 약혼자의 권한은 받았으니… 저와 두분이 원하는건 충분히 할 수 있을겁니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둘을 위로하자, 황자와 황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린 슬슬 가봐야겠구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프레이 씨. 당신의 노고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금전적으로든, 비금전적으로든 앞으로 쭉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들은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이렇게나 좋은 와인을 받은지라… 저도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지금 당장 드릴 선물은 없으니 황자님께 조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자가 걸음을 멈추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브로치를 두드렸다.
– 못생겼잖아요.
– 뭐?
– 그런 추남한테 처음을 주는건… 뭐랄까… 여자로서 너무 슬프지 않나요?
그러자 황자와 약혼을 진행하고 있었던 이사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걸 들은 황자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 황자는 어쩌고?
– 음… 그분은 멍청하고 뚱뚱하니까 처음 한번만 춤을 추시면 헥헥거리면서 절 놔줄걸요? 저번에도 그랬는걸요.
하지만 내 브로치에서는 계속해서 그를 향한 이사벨의 모욕이 쏟아져 나왔고, 결국 황자가 분노에 잠겨 바들바들 떨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내를 잘못 만나면 평생 고생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황자는 조용히 이를 갈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조언 고맙네.”
그 말을 남긴 황자는, 얼어붙은 표정을 하고 있는 황녀와 함께 방을 나섰다.
“…남은 포도주는 내껀가?”
그렇게 방에 혼자 남게 된 나는, 조용히 포도주를 잔에 따르며 빙그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오히려 잘 됐네.”
세레나가 개입하는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되면 1년간 클라나를 약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다.
또한, 클라나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나에게 쥐여졌으므로… 황자와 황녀는 조만간 나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금전만 해도 다혈질인 황자가 애써 화를 참고 조언을 해줘 고맙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니… 이젠 세레나만 어떻게 해결하면…
“…당신은, 제가 알던 사람중에 가장 추악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입가에 와인잔을 가져다대고 있는데, 눈가에 잔뜩 눈물이 맺혀 있는 클라나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이 말을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겠죠. 하긴, 어렸을때의 약속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사람이 어떻게 기억하시겠어요.”
증오와 경멸에 차서 말하는 클라나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역시, 다 듣고있었구만.’
방 너머에서 미약하게나마 태양의 마나가 느껴지기에 클라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무능력한 황자와 황녀는 그조차도 알아채지 못한것 같지만 말이다.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오늘의 일이… 과거에 당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 잠시나마 기대했던 제가 참 바보같네요.”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 쨍그랑!!!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던 순간, 클라나가 황금빛 마나를 내 잔에 쏘아 깨트렸다.
덕분에 내 옷은 와인범벅이 되어버렸고, 그런 날 보던 클라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어디한번 1년 뒤에 절 안아보세요.”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선 클라나는, 짧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가능할 리가 없겠지만.”
이윽고 클라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빠져나갔고, 나는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깨진 와인잔을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비싼 와인인데.”
그렇게 한입에 수천골드를 호가하는 붉은색 물을 아쉽게 쳐다보던 나는, 문득 팔에서 이상한 느낌을 느끼고 눈길을 돌렸다.
“꾸우!!”
그러자 익숙하게 생긴 흰 올빼미가 내 팔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태양 넘어 달이네.”
아무래도, 내 약혼녀를 만나러 갈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