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80)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80화(380/524)
Episode 380
지난 몇달간 스타라이트 저택에서 지내며, 나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봐 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내 인간에 대한 가치관을 가차없이 깨주었다.
스타라이트 가문의 가주이자 프레이의 어머니인 공작 부인.
데릴사위이자 그녀의 남편인 아브라함과 프레이의 동생인 아리아.
그리고, 친절한 사용인들까지.
몇몇 사용인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프레이에 버금갈 만큼 착한 인물들이 득시글거렸다.
사실 인간들은 착한게 아닐까 오해를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 오해는, 우연히 프레이와 거리에 놀러 나갔다가 본 귀족들의 참상을 보고는 금세 풀렸다.
그 녀석들, 더 곤죽을 냈어야 하는데.
그래도 그 일로 프레이가 인간중에서는 최상위 계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들의 황제도 녀석의 가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지?
아무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내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녀석들이 있다.
그건 바로, 프레이 녀석의 친구들이다.
공교롭게도 전부 ‘여자’인 친구들 말이다.
“도, 도련님. 아침식사입니다.”
“고마워!”
“더, 더 시키실 일이 있다면…”
“괜찮아. 카니아가 내 곁에 있는걸로 만족하고 있으니까.”
검은색 머리와 정장이 특징인 가문의 집사 카니아.
그녀는 살짝 음습한 면이 있는 맹랑한 암코양이다.
“…그래도, 시켜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으응?”
내가 프레이가 자신의 생명력을 그녀에게 나누어주고 있다고 귀뜸해준 날 뒤로부터는,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과한 봉사를 하려고 하고 있다.
뭐, 자신을 용서해준 은인이기도 하고 생명까지 살려주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
지금이야 아직 어리니 귀여운 수준이지만, 나중에 가서는 집착 수준이 될게 뻔하다. 하여튼 음습한 암컷이다.
프레이와 함께하고 있는 생명유지 연구를 확 중단해 버릴까?
“프레이 씨! 오늘은… 어라.”
“…사,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요!”
아무튼 역대 최강의 흑마법사를 친구이자 집사로 두고 있는것도 신기했는데, 더한 존재들 또한 나타났다.
“실례야! 루비씨는 내 은인인걸!”
“”……….””
제국의 3황녀 클라나, 그리고 2대 성녀 페를로체.
천년전에 아버지를 줄기차게 괴롭히던 두 소녀와 너무나도 똑같이 생긴 그녀들 역시, 프레이에게 깊은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프레이… 여긴 부담스러운데. 비밀 아지트에 가서 물고기나 잡…..”
“이리나! 인사해! 내 은인 루비씨야!”
“…….흐익.”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이였던건, 프레이가 어느날 소꿉친구랍시고 저택에 대려온 이리나 라는 꼬마 마법사였다.
“마, 마마마마… 마족….. 그것도… 수, 순혈……”
– 꼬맹아, 조용히 하거라.
“흐, 흐극.”
설마, 이런 존재까지 친구로 삼고 있다니.
프레이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
– 내 정체를 누설한다면, 네 정체도 누설해 주마. 꼬맹아.
“……..!”
– 처신 잘하거라.
사용인들 앞에서 내 정체를 누설하려고 하기에 전음 마법으로 입을 틀어막아 줬다.
– 너, 마왕의 후손이지?
“흐음.”
내 전음 마법을 바로 배끼는걸 보니,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하여간 까다로운 족속들이라니까.
“루빙…! 나 커서 루비랑 결혼할래!”
“으음…”
아무튼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는 이리나가 가장 의외의 인물이였지만, 가장 까다로운 인물은 따로 있었다.
“허, 헛소리좀 하지…”
“당신…..?”
그것은 다름아닌.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세레나? 오늘도 놀러온거야?”
며칠전에 내게 붙어있는 그를 목격한 이후, 나와 그를 틈틈히 감시하기 시작한 세레나였다.
.
“제가 잘못들은게 아니라면 분명히……”
“커서 루비랑 결혼한다고 했어!”
“…….!”
음침한 표정으로 프레이를 압박하던 그녀가, 해맑은 프레이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는다.
세레나라는 소녀의 타입은 처음 볼때부터 파악했다.
전형적인 흑막, 그리고 책략가 스타일.
제국의 선한 사람들이 전부 모인것 같은 스타라이트 저택에서 그나마 내가 잘 알것 같은 유형의 인물이었다.
“그, 그러면 안돼요!”
“잉? 왜애?”
“저, 저랑 결혼해야죠!”
그리고 그런 속이 시커먼 소녀가 순수한 새끼 고양이에게 휘둘리는 모습은 참으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제, 제가 싫으세요?”
“아니! 세레나도 좋아!”
“당신의 약혼자는 누구죠?”
“세레나야!”
“그러니까 당신은, 저랑 결혼해야 하는거랍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그건 비겁한 짓이에요?”
“…헉.”
여느때처럼 내 품에 안겨 몸을 부비적 거리던 프레이가, 그 말을 듣고 입을 떡 벌린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부모가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나 보다. 그게 아니면 정치적인 입장이 개입된 약혼이여서 그런걸까?
아무튼 약혼을 하기에도, 이해하기에도 너무 어린 나이인건 분명하다.
“그리고 루비 씨도 당신의 그러한 행동을 싫어하잖아요.”
“시, 싫어해?”
하지만, 그건 프레이의 입장이었나보다.
그렇게 말하며 부채로 얼굴로 가린채 날 노려보던 세레나는, 약혼이 뭔지 이해도 확실히 하고 있었고 마음도 진심인것 같았으니.
여자복이 많은 놈 같으니라고.
“네에! 며칠전부터 계속 감시… 아니, 관찰해봤는데. 루비씨는 계속 싫다고만 하시던데요?”
“우, 우으…”
그나저나 뭘까. 저 속이 보이는 말에 살짝 열이 받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프레이를 조,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나랑은 하등 상관없는 일일텐데…
“싫어하는 사람에게 애정행각을 하는건 나쁜짓이에요. 그러니 어서 사과하세요.”
“…미, 미안! 루비. 모, 몰랐어.”
세레나의 다그침에 프레이가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으, 으음.”
왠지 모르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아,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 그, 그러니까 떠나지 마아? 알겠지?”
워, 원래는 이게 맞다. 나는 인간을 증오하니까.
계속 녀석에게 정을 주다간 원래 계획에 해가 갈 수도 있다.
“자아, 그럼 이제 제게 오세요. 저에게는 얼마든지 해도 된답니다? 전 프레이씨를 좋아하니까요.”
“…응!”
그러니 이게 맞을 텐데…
– 스윽, 스으윽…
“후후후.”
왜 프레이가 저 맹랑한 꼬맹이에게 달라붙어 볼을 비비는 꼴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미는 걸까.
마치, 길들여둔 길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절대 질투는 아니고, 딱 그정도의 감정.
– 내가 프레이를 데리고 도망가면, 막을수는 있고?
하지만, 홧김에 전음으로 그러한 도발을 날릴 정도의 감정이기도 했다.
“당신…..”
“…………”
– 삐비빅! 삐빅!
“…..흐극.”
그렇게 감히 내 고양이를 뺏어간 소녀와 참으로 유치한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의 품속에서 통신 수정구가 울리기 시작했다.
“으, 으으…”
“세레나?”
그러자 창백한 표정이 되어 당황하기 시작한 세레나. 그리고 한참을 그녀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프레이.
“프, 프레이.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네, 네에. 급한일이 생겨서…”
그렇게 말하는 세레나는, 어딘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그, 금방 다시 올게요. 그러니까…..”
– 삐비비비빅!
“이, 이따 봐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다가, 품에서 통신 수정구가 세게 울리자 다급히 방을 뛰쳐나간 세레나.
“아윽, 으으으……”
귀를 기울여보니, 그녀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사이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저주에 당한걸까.
“있잖아, 루비. 부탁 하나만 하면 안될까?”
“흐음?”
쌤통이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데, 세레나가 나가자마자 표정을 싸늘하게 바꾼 프레이가 내게 조용히 속삭여 오기 시작한다.
“나, 세레나를 구하고 싶어.”
“………”
이윽고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을 띠며 한다는 말이 또 호구짓인가.
“뭐든 들어줄테니까, 한번만 힘을 빌려주면 안될까…?”
“싫다.”
이번에는 정말로 엮이기 싫었다.
“나, 나중에 나 죽이게 해줄게! 아빠랑 술 먹을 때까지만…”
“싫다고 했다.”
그때의 일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행한 일이고.
내가 증오하는 인간을 도와줄리가 없지 않은가.
“루비이… 제발.”
“꺼져.”
그리고 애초에 난 세상을 불태울 마왕이다.
어차피 내 손에 다 죽을텐데, 조금 일찍 죽는게 대수…
“이, 이런것도 싫어하는구나…”
“….흠.”
“미, 미안… 루비. 헤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프레이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 오늘밤은 세레나 집에 다녀올게.”
“하아?”
“내, 내일 아침까지 갈거야. 엄마 아빠한테 잘 말해줘? 루비?”
그러더니, 그 말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버린 그.
“………….”
왠지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은데.
사단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으흠, 흠.”
오랜만에 산책이나 할까.
.
“…..하.”
잠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문라이트 가의 저택으로 들어서는 프레이를 발견해 따라가보니, 정말이지 가관이 펼쳐져 있었다.
“프, 프레이! 왜 그랬어요…!!”
“헤헤, 들켰네… 역시 세레나는 너무 똑똑해.”
프레이 녀석, 문라이트 가의 당주와 함께 세레나에게 ‘종속의 저주’를 새길때만 해도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설마 자신의 수명 ’90년’을 태워 종속의 저주를 거의 무력화 시킬 줄이야.
저 행동이 아니었다면 세레나라는 소녀는 오늘부로 영혼없는 꼭두각시가 되었겠지.
“으음… 졸리네……”
“안돼!! 프레이!!!”
그 결과로 프레이는, 수명이 채 10년도 남지않은 시한부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음.
기분이 나쁜걸.
기껏 살려놓은 새끼 고양이가 마차에 치여서 사경을 해매고 있잖아.
“…으득.”
마차를 박살내 줘야겠는걸.
“누, 누구냐!”
그런 생각을 하며 문라이트 가문의 당주실로 텔레포트를 한 나는, 추잡하게 생긴 당주 녀석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네, 네놈은… 프레이의 전담 메이드…”
– 파지직!
“끄아아아악!!”
간단하게 사지를 절단해버린 나는, 녀석의 얼굴을 짓밟은채 싸늘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왜 이런 짓을 한거지?”
“사, 살려줘! 날 살려주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도와주……”
– 꽈드드드득!!
“끄아아아악!!!”
너 때문에 내 새끼고양이가 다쳤잖아.
묻는 말에만 대답하란 말야.
“세세세, 세상을… 지배하려고…….”
“……..”
그런 말을 전음으로 전했더니, 돌아온 어이없는 답.
이 녀석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다.
자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심지어 도구로 쓰려한 녀석.
– 꽈드드드드득!!!
“끄에에에에에엑!!!”
역겹다.
토가 쏠린다.
제국 최고의 귀족중 하나라는 놈이 이 꼬라지라니. 다른 녀석들 역시 안봐도 뻔하다.
세레나라는 녀석도 이런 녀석의 자식인데.
어린 지금은 몰라도 크면 똑같아지겠지.
역시, 인간은 전부 멸해야 하는 걸까.
“……..”
“하아.”
그런 생각을 하며 녀석의 얼굴을 아주 천천히 박살내 죽인 나는, 손가락을 휘둘러 모든 증거를 말소하고 밖으로 나섰다.
– 인간을… 죽여……
“…….”
– 세상을 불태우거라…..
최근에 꿈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기분나쁜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당장 내일부터 침략을 행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흑, 흐극… 우으…..”
그런 내 발걸음을 붙잡은건, 싸늘하게 식어가는 프레이를 붙잡고 펑펑 눈물을 흘리던 세레나였다.
“왜 그랬어어……”
“비켜라.”
“흐앗?”
어째서일까.
나는 어느새 세레나를 밀치고는 녀석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다.
– 샤아아……
90년의 수명 정도야 마족에겐 눈 한번 깜짝이는 찰나에 불과하지.
천년의 세월을 봉인되어 있었는데, 90년 쯤이야.
“쿨럭!!”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입에서 피가 튀어나온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으, 으으…”
머릿속이 새햐얗게 변한다.
생각해보니 지금 내 몸, 수명이 일반적인 인간과 똑같은 예비용 분신이였지.
지금 이 분신이 죽으면 본신도 죽어버리는데.
설마 이렇게 어이없고 멍청하게 죽는건가?
안돼, 그건 싫어…
“………”
그래도 며칠전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목소리에 휘둘리는 것보단, 지금 이 녀석에게 죽는게……
– 덥썩…!
“…하아?”
몽롱한 정신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하아, 하아…”
세레나였다.
녀석이 내 팔을 잡고, 자신의 수명을 프레이에게 보내고 있었다.
뭐지? 미친건가?
“놔라, 인간. 네 수명이 이 소년에게 빨려들어갈 것이다.”
“알아요.”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는데, 세레나가 오히려 손아귀를 더욱 거세게 쥔다.
“프레이가 살려준 목숨이에요.”
그렇게 말한 세레나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저도 부담하게 해주세요.”
순간적으로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악마보다, 심지어 그때 그 흑마법사들보다 못한 쓰레기의 자식인데.
그 자식이 이런 말을 한다고?
– 샤아아…
“흐극.”
내 몸에서 수명이 빠져나가던 것이 멈추고, 세레나의 수명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걸 깨닫고 살짝 겁에 질린 표정을 짓던 그녀였지만, 끝까지 내 팔을 놓지는 않았다.
– 샤아아아아….
그렇게 프레이의 수명은 반은 나의 수명으로, 반은 세레나의 수명으로 차게 되었다.
“인간은… 이상해.”
무리해서 최상급 마법을 펼친 대가로 의식을 잃기 직전, 내가 생각한 것은 그것이였다.
“부모는 사악한데… 자식은 착하지 않나… 쓰레기가 사랑을 알지를 않나……..”
“다, 당신?”
“…….역시 더 관찰해봐야겠어.”
그 다음에 눈을 떴을때는, 스타라이트 저택에서 프레이와 세레나가 나를 멀뚱멀뚱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그날 이후로, 세레나와 나는 친구가 됐다.
서로 반반씩 프레이를 채운 사이니, 그것을 참작해 인정해주겠다나 뭐라나.
“그, 그치만… 제가 정실 부인이에요! 그건 명심하세요!”
“마음대로.”
“그, 그렇게 무심한 척 하는 거… 전략인거 알아요. 전 못속인다고요!”
“………”
하지만 사소한 다툼도 있었다.
“내, 내기를 해요!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거에요?”
“…에휴.”
“첫번째 내기는 누가 프레이의 첫사랑이냐에요! 후후, 어때요? 하시겠나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첫번째 내기는 무승부로 돌아갔다.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한건 세레나였지만.
사랑한다고 먼저 고백받은건 나였으니.
“흐흥…”
“이, 이건 무승부에요!! 제, 제가 이긴거나 다름없지만… 특별히 무승부로 해드릴게요!”
사실 누가 이긴건지는 뻔히 보이는데,
세레나가 하도 울먹거리길래 비긴걸로 쳐줬다.
어차피 나는 녀석을 좋아하는것도 아니였기에 별 상관이 없었으니 말이다.
“지, 진짜야? 다시 볼 비벼도 돼? 헤헤, 고마워! 루빙!”
“이, 이익…”
물론 프레이 녀석에게 접촉을 허용한건, 그저 잘난체 하는 세레나 녀석을 골탕먹이고 싶어서였다.
아마도.
그나저나 본신은 언제쯤 움직일 수 있게 되는거지?
처음으로 생긴 자칭 친구 녀석의 수명을 마저 채워줘야 하는데.
“오늘의 내기는! 요리 대결이에요!”
“우, 우리 모두 요리는 더 연습해오는걸로 하고. 오늘의 내기는 바느질이에요!”
“오늘의 내기는…..”
그 뒤로, 시간은 꽤나 빠르게 지나갔다.
맹랑한 세레나 녀석과 하는 ‘내기’라는 것에 그저 ‘호기심’이 동해 적당히 어울려 주기도 하고.
“다, 당신은… 대체 뭡니까?”
“루비 짱쎄다! 이솔렛 누나도 졌어!”
“아, 아니다. 난 아직… 커흑?”
이솔렛이라는 눈빛이 수상한 여기사와 대련을 빙자한 견제, 아니… 오랜만에 수련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프레이의 옆집 누나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눈빛이 수상하다. 관찰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 당신은… 누구…?”
“그저 흥미가 생겨서 그런거다. 오랜만에 찾아낸 착한 부모인지라.”
그밖에도 프레이의 친구인 클라나의 어머니를 재미삼아 구해주거나, 자꾸 내 기운을 감지하고 어슬렁거리는 교단을 적당히 혼쭐내는등 적당히 소일거리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루빙! 이거 진짜진짜 맛있다!”
“통밀빵을 좋아하는 놈이, 그건 맛있어 하는군.”
“치, 루비는 호밀빵 좋아하면서.”
프레이 녀석과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저것봐 루빙! 마왕과 용사의 러브 스토리래!”
“……….”
“저거 보러갈까?’
“으, 으응. 그래. 그러자꾸나.”
극장에 가거나.
“꼼짝마! 가진거 다 내놔!”
“…그렇단다.”
“뭐, 뭐야? 프레이…?”
이리나의 비밀 아지트에 쳐들어가거나.
“성녀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그그, 그게 누누 누군가요? 제게만 귀뜸…”
– 쫑긋, 쫑긋…
“…뻥인데!”
“아, 진짜. 선넘네.”
‘…요망한 녀석.’
페를로체의 고해성사실에 침입한 프레이의 말에 괜히 귀를 기울이거나.
“루비, 우리 만난지 벌써 1년이네…”
“관심없다.”
“늘 고마워, 루비. 우리 엄마도 이제 다 나았고, 세레나도, 클라나도 요즘은 얼굴이 환해. 다 네덕분이야.”
“…이 손이나 놓거라.”
“네가 진짜 진짜 좋아, 루비.”
“…으읏.”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놀아준 거니까. 딱히 추억같은건 아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또 보내다보니 어느새 찾아온,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
“그러게, 루비.”
“애송이가 많이도 컸군.”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내 뒤를 허구한날 졸졸 따라다니던 프레이는, 어느새 선라이즈 아카데미라는 교육 기관에 갈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봤자, 마족인 내 눈에는 옛날과 다름없는 귀여운 새끼고양이였지만.
‘떠날때가 됐군.’
하지만 그건 시간 변화가 무딘 마족인 내 입장이였고, 인간의 시점으로는 시간이 많이 지났음이 자명했다.
그렇다, 나도 이제 떠날때가 온 것이다.
새끼 고양이가 약간은 친해졌을지도 모르는 세레나,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아카데미로 떠나면, 더 이상 저택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세상을… 불태우….
“쯧.”
그리고, 최근 그 목소리가 더 심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역시 나는 이 녀석의 곁을 떠나는게 맞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곳을 떠나면 뭘 하지?
음, 일단…
“프레이, 할말이…”
“루비, 할말이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작별의 인사를 건내려 했는데, 프레이가 먼저 내 말을 가로챘다.
괘씸한 놈. 감히 인간주제에 이 몸의 말을…
“같이 아카데미에 가자.”
“…하?”
평소처럼 화를 내려던 나는, 녀석이 오랜만에 짓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잡으며 그렇게 말하자 인상을 잔뜩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싫다.”
“루비가 없으면 나 아카데미 안 갈 건데?”
“그러던지 말던지, 난 떠날거야.”
“넌 내 메이든데, 누구 맘대로?”
“…하, 신분도 없는 날 입학시킬 방법은 있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데, 불쌍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프레이가 자신의 볼을 내 볼에 마주대고 비비며 속삭이기 시작한다.
“나 아직도 너 좋아해, 루비.”
“……….!”
그 말을 들은 순간, 크게 확장된 내 동공.
“그러니까, 내 사용인이 되어줘.”
– 두근, 두근…!
그와 동시에, 미친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이건 병이야.’
이건 병임에 틀림없다. 나는 심장 박동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마족이거늘.
어째서 심장이 제멋대로 두근거린단 말인가.
이거, 설마……..?
‘아냐, 나는 마족이라고. 그따위 감정을 느낄리가…’
“떠나면, 사람 풀어서 추적할거야. 나도 이제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가, 감히. 인간주제에…”
녀석의 장난스러운 속삭임이 계속해서 내 귀에 파고든다.
평소처럼 윽박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건 왜일까.
“아카데미에서도, 사이좋게 지내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언제부터 새끼고양이가, 늑대로 변한거지?
“응?”
“……….”
이러다가 잡아먹히게 생겼다.
.
그로부터 몇분 뒤, 자신의 방에 혼자 남게된 루비.
“까아악! 까악!”
“……..왔느냐. 왔으면 사람말로 하거라.”
자신의 방 창틀에 내려앉은 까마귀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하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루비가 천천히 입을 연다.
“마왕님, 이별 통보는 했습니까? 이제 그만 마왕군에 합류하셔야죠.”
“………”
“다들 목빠져라 마왕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왕님만 오신다면 당장에라도 세상을…….”
“…아카데미에 가야겠다.”
“네에!?”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어 대다가,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을 하는 까마귀.
“아니, 대체 왜요? 마왕군의 불만이 점점더 심해지고 있는데…”
“흥, 그러니까 너희들이 안되는거다. 이건 전부 내 사악한 계획이거늘.”
그 말에 살짝 움찔거리던 루비가, 이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미 난 제국 최고의 삼 공작가 중 두 가문을 손에 넣은거나 다름없어. 그리고 성녀와 3황녀, 그리고 그 마법사 꼬맹이와도 친분이 있지.”
“……..”
“그런 상태에서 아카데미에 가 인맥을 더 넓힌다면? 싸우지도 않고 내 손에 제국의 절반이 들어오는거다! 그야말로…”
“마왕님은 제국이고 뭐고 손가락 하나로 다 이기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 입을 다물어버린 루비.
“솔직히 말하시죠. 역시 그 소년에게 관심이…”
“무엄하도다!”
“아니, 아무리 봐도… 그 정실 내기인가 뭔가도 그렇고… 본인은 아니라지만 누가봐도 몇년간 이를 악물고 하셔서 동점을 유지해 놓으시고는….”
“아니래도!”
그렇게 소리친 루비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지금 뭐하십니까?”
“짐 싼다. 프레이 옷을 챙겨야 한다.”
“왜요?”
“내가 사용인이라지 않느냐.”
“에휴, 진짜.”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다가 밖으로 날아가버린 까마귀.
“칫솔도 챙기고. 녀석은 흰색과 은색 옷을 좋아하니 여분의 옷은 필수지. 그리고 속옷은… 으, 으음.”
그런 까마귀를 아랑곳 하지 않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프레이의 짐을 꾸리기 시작한 루비였다.
“………..루비.”
그리고 지금까지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던 현실의 프레이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은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절대로, 절대 잊어서는 안될 기억이었는데… 대체 왜…..”
– 호, 호밀빵은 그냥 챙기지 말까?
“내가, 내가 대체 이걸 왜 잊고 있었던거지…….?”
– 그래도 요즘은 자주 먹던데…..
“미안해… 루비…..”
방금 전 방을 나선 자신과는 달리, 그의 손은 그저 루비를 통과해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