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383)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383화(383/524)
Episode 383
용사 프레이와 마왕 루비의 최종결전이 시작된지 벌써 하루째.
– 파지지지직…..!!!
– 샤아아아아아…!
루비의 마기와 프레이의 별의 마나가 무서울 정도로 거세게 충돌하고 있다.
“하아, 하아…”
“……….”
소년과 소녀 모두 성한곳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황이다.
– 고오오오오…
마왕성 주변은 이미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내렸다.
역대 최강의 무력을 가진 루비와, 용사의 무구를 착용한 프레이의 무용은 그 정도로 강했다.
“저게 무슨…..”
“눈으로 봐도 믿기지가 않네요…”
어떻게든 루비를 도우려 결전 장소에 칩입하려는 마왕군을 막아서던 용사파티가 넋을 잃을 정도로 말이다.
결전 장소에서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그저 전투의 편린을 봤을 뿐이지만, 이미 마왕군과 용사 파티는 그 신화적인 전투에 압도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것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아무리 비등비등한 둘의 대결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이어질리는 없었다.
“흐아압!”
“커흑…!”
결정타는 순간적으로 빈틈을 보인 루비를 파고든 프레이의 혼신의 힘을 담은 검격이었다.
둘 중 누가 먼저 마지막 공격을 허용하느냐의 싸움. 그 싸움에서 승리한 자는 프레이였다.
“으으…”
– 콰직…!
루비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휘청인다. 그런 그녀를 잡고 땅에 내리찍은 프레이.
“”………..””
그렇게, 둘은 실로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루비.”
“…아쉽군,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었는데.”
프레이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을 끊은 루비가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뭐하나, 빨리 끝내지 않고.”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
“같잖은 놈. 그럴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왜 일부러 져준거야?”
그 말을 들은 루비가 말을 멈추고 침묵에 잠긴다.
“방금 공격, 충분히 피할 수 있었잖아? 아니… 애초에 빈틈을 보인것 자체가 이상해.”
“……….”
“너와 전투를 치루며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어. 왜 그런 위화감이 드는걸까, 루비?”
루비가 묵묵부답으로 응답하자, 프레이가 조용히 손을 그녀의 볼에 뻗는다.
“역시, 너 일부러 타락한거지.”
“무슨…”
“우리 둘중 하나는 죽어야 하니까, 네가 모든걸 짊어지고 죽으려고 하는거잖아. 그렇지?”
“………”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루비의 침묵이 길어진다.
그 침묵을 묵묵히 기다리던 프레이가, 조용히 루비의 볼을 쓰다듬는다.
“있잖아, 루비. 나 아직도 너 좋아해.”
“놈…”
“내 어머니를 살려준게 누군데. 세레나와 내 생명력을 채워준게 누군데. 그 많은 아이들을 구원해준게 누군데.”
그렇게 말한 프레이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벼댄다.
“사랑해, 루비.”
“난 잘 모르겠군.”
하지만 억지로 그런 프레이를 외면하며 밀쳐낸 루비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날 죽이거라.”
“루비…”
“빨리 죽여, 프레이.”
이윽고 그 싸늘한 표정이, 울먹이는 표정으로 바뀐다.
“내가 아직 널 기억할 수 있을때까지.”
그 말을 들은 프레이가, 눈을 질끈 감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들어올린다.
– 파르르…
검을 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어서.”
그런 그를 단호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재촉하는 루비.
“넌 내 기나긴 인생중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도다.”
그러던 그녀는, 프레이의 손의 떨림이 멈추자 끝을 직감하고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그렇게 속삭였다.
– 콰직…!
그 다음순간, 전력으로 내리찍어진 프레이의 검.
“……….?”
모든게 끝났다는 생각을 하며, 연옥은 얼마나 끔찍한 곳일까 추측해보던 루비. 그러던 그녀가 이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뜬다.
“뭐야…..?”
프레이의 검은, 그녀의 심장을 꿰뚫는 대신 바닥에 박혀있었다.
“이런, 손이 미끄러졌네.”
“네놈, 지금 이게 뭐하는…..”
“루비, 난 너 못죽여.”
그 장면을 멍하니 보던 루비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그런 그녀의 손을 잡은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프레이.
“널 죽이느니, 차라리 용사 그만둘래.”
“어리광 피우지 말거라! 지금 이건 장난이 아닌…!”
– 파즈즈…!
“…어?”
그런 그를 보며 언성을 높이던 루비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프레이?”
“헤헤.”
그의 몸이, 어느새 새까맣게 물들어있었다.
“이제야 효력이 좀 나타나내.”
“너, 너… 지금 뭘…?”
“나 자신을 마물화 했어, 루비.”
“뭐야!?”
당황한 표정으로 썩어들어가던 프레이의 몸을 어루만지던 루비가,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친다.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로 널 미워하지 않음과 동시에, 타락을 선택했고.”
“미쳤느냐? 왜 그런 짓을…”
“용사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거야.”
“…….?”
“널 죽여야만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와 함께 마물화가 되는 마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어. 물론 처음엔 다들 말렸지만… 결국 성공했네.”
그렇게 말한 프레이의 입에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자자, 잠깐… 잠깐만…..”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 나타난, 정체 불명의 사악한 존재인 마물. 신체가 그런 마물로 영락해 버린데다 마음마저 검게 물든 나를, 세상이 용사로 인정할리가 없겠지.”
프레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 샤아아아아…
프레이의 능력인 ‘별의 가호’, 그리고 ‘용사의 힘’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정답이었나보네.”
“이, 이런 미친놈!!”
그 모습을 보던 루비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평생을 마물화가 끝나지 않게 관리를 받으며 살아야 할 거다!! 평생을 고통스럽고 끔찍한 순간을 보내게 될거란 말이다!!”
“널 죽이고…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사는것 보단… 그게 더 나은것 같은데 말이지…”
“멍청한 녀석! 바보같은 녀석!!”
“나도… 영원히 사랑해… 루비…..”
“안돼….!!”
자신의 위에 올라탄채 점점 더 검게 물들어가는 프레이를 바라보던 루비가, 이내 이를 악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내가, 내가 먼저 마왕의 운명에서 벗어나면 돼.’
“으으…”
‘마왕의 운명에서 내가 더 빠르게 벗어나면, 프레이의 용사의 운명이 남을 수도 있어. 그러면 마물화에 어느정도 저항 가능할거야.’
간단하면서도 맹점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빠르게 마왕의 운명에서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무슨 수로?
프레이가 한것처럼 별의 마나를 몸에 이식해?
아니면 그 처럼 정신조종을?
“………….”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위에서 신음을 흘리던 프레이의 목소리가 툭 끊킨다.
– 풀썩…!
그리고는, 자신에게 엎어지더니 그 어느때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 프레이.
“루비 누나아…”
“프레이…”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부탁이 하나 있어.”
그 말을 들은 루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프레이의 말대로 그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마물화의 부작용이 예상외로 심했다. 그의 몸이 마물화를 전부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편지에 썼던거… 지금 나한테 소리내어 말해줘.”
“………”
“응? 부탁이야 누나…”
어릴때처럼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한 프레이가, 눈에 눈물이 고인채 말을 이어나간다.
“지금까지 한번도 안 말했잖아…”
“으극, 으…”
“꼭 한번은, 누나 입으로 듣고 싶던 건데…..”
그렇게 말하던 프레이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스르르 감자, 루비가 그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사랑해…”
“………”
“영원히, 영원히 사랑해….. 프레이.”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인정한 루비가, 그 말을 마치고는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그러니까아… 부디 떠나지 말아줘어…”
“헤헤…”
“이제야 깨달아버렸단 말이야… 나도 널 좋아한다는걸…”
그날은 단 한번도 ‘사랑’이란 것을 해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던 종족인 마족이, 처음으로 사랑을 이해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샤르르…..
그리고 바로 그 역사적인 순간이, 눈앞에 기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 파지지지직…
“어, 어어?”
인간을 증오하고 모든것을 파괴하는것에 열중되어 있던 그녀의 정신이, 이내 맑아지기 시작한다.
– 지직, 지지직…
그녀의 몸에 있는 ‘마기’가, 말끔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루비…?”
“이, 이게 어떻게 된거지…?”
그 초유의 사태에, 동시에 당황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루비와 프레이.
– 파즈즈…
죽이 잘 맞는 그들답게, 서로의 운명이 사라져가는 속도가 비슷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놀라울정도로 딱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다.
– 파밧…!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앗.”
“으으…”
약간의 어지럼증에 동시에 휘청이기 시작한 프레이와 루비.
“”…………?””
그렇다.
용사와 마왕의 운명이, 한낱 한시에 일제히 소멸된 것이었다.
“…어라?”
“이, 이게 뭐지?”
용사와 마왕이라는 거대한 짐을 벗어던지게된, 평범한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마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 샤아아…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
“드디어… 모든게 끝났네요.”
“그러게.”
그로부터 몇시간 뒤, 어딘지 모를 공간.
“설마 이런 결말일줄은 몰랐어요. 제 피조물들이 서로의 운명을 벗어던지다니.”
그 공간에서, 서로 손을 꼭 맞잡은채 볼을 맞대고 바닥에 주저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소년과 소녀를 지켜보던 태양신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그래서 싫어?”
“무슨 소리에요.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결말이에요.”
자신의 동생인 달의 신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급히 고개를 저은 태양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원래 제가 원한 세계가, 저런 행복함이 넘치는 세계였어요. 마치 미연시나 로맨스 소설처럼.”
“또 그 푸른별 문물 이야기야? 질리지도 않니.”
“그, 그곳의 서브컬쳐를 무시하지 마세요! 푸른별은 정상성을 유지하는 차원인 대신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중립 구역으로…”
“됐다, 됐어. 세계마저 게임처럼 창조한 니트 언니랑 말을 섞어봤자 나만 손해지. 별의 신이 갑자기 실종되지만 않았어도, 언니가 주신을 맡는 일은 없었을텐데.”
“흐잉…”
간단하게 태양신의 말을 짤라버린 달의 신이, 이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 프, 프레이… 뭔진 모르겠지만… 잘된것 같지?
– 으, 으응. 그그 그렇네…
프레이의 마물화는 두 여신의 온 힘을 다한 합작으로 성공적으로 멈춘 상태이며, 루비의 상처 역시 치유된 상태이다.
그런 상태에서 새빨갛게 볼을 붉히고 있던 프레이와 루비가, 서로에게 착 달라붙은채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 루비 누나, 편지에 쓴거 기억해? 누나가 내 보석이라고 한거.
– 그그, 그걸 왜 지금 말하는거냐. 그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 그럼 난 누나의 별 할래. 어때?
– 제발 그만 좀 하거라… 손발이 오그라들것 같단 말이다…
달의 여신 루나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띄워진다.
달의 여신임과 동시에 ‘밤’의 여신이기도 한 그녀에게 있어, 풋풋한 연인은 언제나 보기 좋은 볼거리였다.
그러한 연인의 밤이야 말로, 그녀에게 있어서는 특식이나 다름없었다.
– 서, 선물이다. 프레이. 원래는 그때 줄려고 했던건데…
– 이건… 펜던트?
– 안에 소중한 보물을 간직할 수 있는 전설의 아티펙트다. 보물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 그 누구도 열지 못하지. 마왕성의 보물창고에서 가져온거야.
– 우, 우와…
소년과 소녀를 지켜보던 루나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얘네, 그렇고 그런건 언제하지?
– 하읍…
– 으음…
그런 생각을 한지 얼마나 됐다고, 둘의 혀가 벌써부터 엉켜있다.
저 정도 속도면 오늘 내로 확실히 기력 보충을 할 수 있을것 같았다.
– 루비님!!!
– 프레이이이이!!!
– 오빠아아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그들에게 달려오기 시작한 로즈윈과 세레나. 그리고 아리아와 용사파티들.
– 이건 기록에 남겨야 겠어요! 내 촬영 마도구가 어디갔더라…
– 그, 저기… 루비. 내기는…
“…뭐,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처음에는 무드가 깨져 인상을 찌푸리던 루나였지만, 이내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 모두 여기로 모이세요! 기념 사진을 찍을거에요!!
– 자, 잠깐…
– 미, 밀지마!
한편, 순식간에 어수선해진 분위기.
그런 분위기는, 프레이와 루비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자 금새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좋네…”
촬영 마도구가 가동되고, 마침 별똥별이 빛을 내며 하늘을 수놓는다.
만약 이것이 소설이거나 게임이었다면, 아마도 ‘엔딩’을 장식했을 장면.
아마도 그 창작물에서 남주인공이었을 프레이와 여주인공이었을 루비의 해맑은 미소는 보는 사람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러한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루나는, 이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우리 막내는 대체 왜 반란을 일으키신걸까.”
그러던 그녀가, 이내 싸늘한 표정을 짓는다.
“어째서…? 대체 왜…? 말도 안돼… 필멸자가 신이 내려준 운명을 거부하다니?”
“이클립스. 왜 평화로워야 했던 세상에 흑마법사와 마물, 그리고 마왕을 만들어가며 반란을 일으킨거지.”
“요, 용사가 죽든 마왕이 죽든 상관 없었는데… 둘중 한명만 죽으면 됐는데…”
“이클립스!!!”
운명을 거부한 둘에게 예상치도 못한 일격을 당한 마신이, 두 여신에게 제압되어 무릎을 꿇은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너 때문에 용사에게 막중한 책임을 입힐 수밖에 없었잖아? 대체 왜 이딴 짓을 저지른거니?”
“죄, 죄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이클립스?”
“용서해주세요.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그런 그녀를 매섭게 추궁하던 루나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야? 얘…”
마신의 상태가 이상했다.
이 일의 원흉일것이 분명한 그녀가, 어째서인지 겁에 질린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네가 보여준다는 즐거움이 이런거였나, 이클립스.
“아, 아아 아니에요.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발……”
– 수많은 차원을 먹어치운 나였지만, 이렇게나 거대하고 생동감 넘치는 차원에 온건 처음이었다.
그런 마신의 머릿속에 조곤조곤 속삭이기 시작한 의문의 존재.
– 누군가와 대등하게 싸운것도 처음이었지. 별의 신이라는 차원의 창조신이 설마 그렇게나 강할 줄이야. 자신도 통제력을 잃는대신, 차원에 침입한 내 본체를 잠재우는데 성공했으니.
“그, 그그 그런가요오?”
– 처음에는 내게 수치를 안겨준 이 차원을 적당히 망가트리고 떠날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마신의 손에 생겨진 눈동자가, 조용히 프레이와 루비, 그리고 용사파티를 주시한다.
– 이 차원에는, 잠든 내 본체의 힘을 전부 끌어다 쓸 가치가 있다.
“그, 그 말은…”
– 어떻게든 이 아름다운 차원을 먹어치워야겠어.
그 속삭임이 끝난 순간.
– 파지직…! 파지지지직…!!!
“꺄악!?”
“커흑!!”
마신의 손에서 검은색 촉수들이 튀어나오더니, 태양신과 달의신을 옭아맨다.
“다, 당신… 뭔가요…!”
“세, 세상에. 무슨 힘이…!”
깜짝 놀라 저항을 하려던 태양신과 달의신이, 이내 본체의 힘을 끌어다 쓰기 시작한 눈동자의 힘을 깨닫고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저, 저기… 그런데… 이미 모, 모든게 끝났잖아요.”
– 흐음?
“저, 저희 차원은 신조차 함부로 현실에 개입할 수 없어요. 그랬다간 신격을 잃…”
– 꽈드득…! 꽈드드드드득…!!!
“…..헉.”
눈치를 보며 말하던 마신의 눈동자가 커진다.
– 어, 어라…?
– 뭐, 뭔가요. 저건.
현실 세상의 전 대륙에, 눈동자의 촉수가 뻗어나기 시작한다.
– 고고고고고고…
잠시후 지금까지 밝게 빛나고 있던 태양이, 아니 태양인줄 알았던 그 무언가가 조용히 눈을 뜬다.
– 루비…
– 프레이…
그 기이하고도 공포스러운 모습에, 서로의 손을 잡은채 자리에서 일어난 루비와 프레이.
‘…내가, 대체 어떤 존재를 끌어들인거지.’
“그, 그래봤자 소용없어요… 그건 시각적인 효과일뿐, 그것 말고는 그 어떤 간섭도 못하잖아요?”
“프레이가… 그리고 루비가… 널 없앨거야. 우리 신격을 전부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에게 힘을…”
그 모습을 보던 태양신과 달의 신이, 이를 악물며 눈동자를 노려본다.
– 무슨 소릴 하는거지. 이제 저 세상엔 용사도, 마왕도 없거늘.
“”…….!””
하지만 그 말을 듣자, 급격히 창백해지기 시작한 두 여신의 얼굴.
– 그리고 말이지… 아무래도 간섭할 수단이 생긴것 같군.
“뭐, 뭐어?”
– 하필 타락하는 수단으로, ‘마물화’를 택한 녀석 때문에 말이지.
그렇게 말한 눈동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폭소를 터트린다.
– 마물은 내 공허의 영역이 기원이다.
“설마…”
– 프레이 녀석 자체가, 내 ‘백도어’가 되어줄 줄이야.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얼어붙는다.
– 이제 그 녀석은, 내것이다.
“…………..뭐?”
태양신, 달의신, 그리고 마신.
– 진짜 ‘타락’이 뭔지 똑똑히 보여주마.
그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울려퍼진 눈동자의 목소리를 들은 용사파티와 루비, 그리고 프레이도 말이다.
.
그로부터 몇년 후, 스타라이트 저택.
“……..프레이.”
“하아, 하아…”
세상 모든것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던 루비가, 완전히 생기를 잃은채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프레이의 옆에 고개를 파묻은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줘… 내, 내가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루비…”
“세, 세레나와 이리나의 연구가 최근 진척이 있었어. 페를로체도 미친듯이 치료능력을 연마하고 있고. 카니아는 흑마법 쪽을, 클라나는 최근 새로히 발굴된 유적을 뒤지고 있어. 그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프레이가 자신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제발이 저린 루비가 다급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뱉어낸다.
“우리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 응?”
“………..”
“운명도 거스른 우리잖아? 그러니 이런 시련쯤은…”
“부탁이… 있어…”
“뭐, 뭔데? 말해봐! 강아지사랑 열매가 먹고 싶은거야? 아니면 오랜만에 아이스크림? 그것도 아니면…”
“오늘이 가기 전에… 날 끝내줘…”
프레이의 손을 잡은채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루비가, 그 말을 듣고 자리에 굳어버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알고 있어. 오늘이 한계라는걸.”
“아니, 아니야. 그런 소리하지 마. 왜 약한 소리를 하는거야?”
“애써 거짓말은 안해줘도 돼, 루비.”
그렇게 말한 프레이가, 루비의 손을 붙잡고는 자신의 볼에 비비기 시작한다.
“오늘 밤을 넘기면… 더 이상 나 자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니야. 아니라고…”
“미안해 루비. 잘난척은 그렇게 해두고, 결국 민폐를 끼쳐버렸네…”
“아니야!!”
프레이의 마지막 인사를 차마 들을 수 없었던 루비가, 빼액 소리를 지른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어… 그 불안이 현실이 되기전에,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기 전에 날 끝내줘…”
“나, 난 못해. 너도 날 못죽였잖아? 그런데 왜 너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원하면 다른 사람을 불러도 돼. 그저, 오늘이 가기전에 날 끝내기만 하면…”
“못한다고!!!”
다시한번 소리를 지르고는, 프레이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한 루비.
“흐아아아아아아앙……”
“내 보석… 루비 누나…”
그런 그녀의 손을 계속해서 볼에 비비던 프레이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이제 끝이 찾아온것 같네. 그냥 우리, 조금 일찍 헤어지는걸로 치자.”
“프레이이이이이……”
“나 없어도, 행복해야 해? 아리아도 좀 챙겨주고. 어머니랑 아버지에게 가끔 말도 걸어주고. 아, 그리고 세레나랑 로즈윈은 엇나가지 않게……”
“시러어어어… 너없이 못살아아아…….”
“헤헤.”
이제는 볼을 비빌 기력조차 없어진 프레이가, 더듬더듬 말을 마쳐간다.
“그동안… 진짜진짜… 행복했어…..”
“흐극, 우으… 우으으으…”
“있지, 다음 생이란게 있으면… 꼭 누나랑 결혼하고 싶…”
그 말을 미처 맺지 못하고, 의식을 잃은 프레이.
“……………….”
그 뒤로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나만 아니었어도… 내가 마왕을 선택하지만 않았어도… 네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텐데……”
질끈 감은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프레이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던 루비.
“병신같이 몇년간 감정을 속이지만 않았다면… 그냥 사랑한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됐었는데…….”
그러던 그녀가, 회한이 가득찬 표정으로 가슴을 치며 중얼거린다.
“그날, 그날 장난으로라도 고백을 했다면…”
이미 지나가버린,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루비의 머릿속에 마구 떠오른다.
그러한 순간순간들이,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신은 프레이와 별 관계가 아니라 중얼거리던 기억이 그녀를 점점 더 미치게 만들었다.
“흐으으… 으으…..”
그렇게, 그녀의 후회섞인 눈물이 프레이의 가슴팍을 적셔갈 무렵.
– 샤르륵…!
– 그래서, 생각은 좀 해보았느냐.
“……..!”
그녀의 앞에, 검은색 눈동자가 나타나 나지막한 어조로 말을 걸어온다.
“너, 너는…”
– 그날 제안했던 조건. 설마 잊고있던건 아니겠지.
“……..”
그 속삭임을 듣자마자 생각난, 프레이가 인질이 된 날의 밤에 자신의 방에 찾아왔던 이 모든일의 원흉의 제안.
–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뭐?”
– 모든걸 되돌리고, 프레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거다.
그동안 잊고 있던 제안을 곱씹던 루비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간다.
“내, 내가 그걸 믿을것…”
– 별의 신의 참관 하에 정당한 내기를 하도록 하지. 애초에 지금의 난, 본체가 없어서 신격이 없는거나 다름없으니.
그 말에 꽤나 흔들리던 루비에게, 눈동자는 낄낄 웃으며 잔인한 조건을 속삭였었다.
– 단, 너는 프레이 대신 타락해야 한다. 이번 회차는 삭제될 것이며,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거야. 넌 말 그대로 절대악이 되는거지.
“절대악…”
–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회차에서, 그와 그의 소녀들은 너를 죽이려 할거다.
그렇게 말한 눈동자는, 비웃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었다.
– 너에게 타락이 옮겨지는 순간, 내기는 시작이야.
“…….”
– 한 남자를 위해 세상 모든것을 적대하며, 영원히 죽을 수 있나?
그리고, 이제는 그 답변을 내려야 할 때다.
“……..내가 뭘 하면 되는거지.”
프레이의 손을 잡고 있던 루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눈동자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당장 진행해. 더 늦기전에.”
– 사상 최고의 식사를 할 수 있겠군.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리던 루비의 눈이, 외신의 눈동자와 조용히 교차하고 있었다.
“안녕, 내 반짝이는 별.”
그로부터 몇분 뒤.
“영원히 사랑해.”
조용히 프레이의 입술에 키스를 한 루비가, 천천히 방의 출구로 향한다.
“루비… 미안. 이번에도 실패…”
“오, 오빠는? 오빠는 괜찮아?”
“루비 씨… 그러다 루비씨도 망가져요.”
이윽고 방문을 열고 눈에 눈물을 머금은채 방을 나서려던 루비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인물들을 보고는 울컥 눈물을 터트린다.
“루비?”
“왜, 왜그래?”
“루비 씨… 조금 쉬세요. 프레이 님은 제가 대신 돌볼테니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신뢰할 수 밖에 없게 된 최고의 절친, 세레나.
프레이의 동생이자 마찬가지로 친한 친구인 아리아.
그리고, 자신을 늘 졸졸 따라다니던 로즈윈까지.
“도련님은… 차도가 좀 있을까요?”
심지어 한동안 만날 겨를이 없던 베네르까지 보인다.
자신과 땔래야 땔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소중한 추억을 지닌 자들.
“안녕, 얘들아…”
“”………..?””
“나같은건, 절대 기억하지 말아줘.”
그런 그들을 보며 눈에서 눈물을 흘리던 루비가, 눈을 질끈 감고 문지방을 나선다.
“루비……..”
“오늘따라 이상…”
그러자 메아리치는 세레나와 로즈윈의 목소리를 끝으로, 천천히 뒤집히기 시작한 세상.
– 파지직, 파지지지직…!
“꺄아아아아아아악!!”
그런 세상을 멍하니 보던 루비에게, 갑작스럽게 그 순간이 찾아왔다.
“아, 아파…!”
프레이를 몇년간 감싸고 있던 사이한 기운이, 한꺼번에 그녀에게 파고들어온다.
‘기억이… 내 기억이… 사라지고 있어.’
그와 동시에, 녹아내리듯 무너지기 시작한 그녀의 기억들.
잘난체하던 세레나, 강아지 같던 로즈윈, 귀여운 아리아, 충성스러운 베네르의 모습이 점차 그녀의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
‘그렇네… 내기는 진짜였구나…..’
용사파티의 모습이, 하하호호 웃고 떠들던 1학년생들의 모습이, 점점 기억을 되찾아가며 부쩍 애교가 늘었던 루루에 대한 정보가, 그동안 친해져온 모두의 기억이 지워져나간다.
‘다행이야… 속은건 아니였어…..’
자신이 손을 뻗으면 도도도 달려와 마구 볼을 비벼대던 학생 프레이.
저택에서 자신에게 바짝 달라붙어있던 도련님 프레이.
용사의 힘을 처음 각성하고 숲에서 싸우던 프레이가 지워져 나간다.
펜던트를 받고 좋아라하던 프레이가, 루루를 구원해주던 프레이가 사라져간다.
극장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고,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손을 맞잡은채 같이 올려다보던 꼬마가 지워져나간다.
그리고 결국.
죽어가던 자신에게 음식을 씹어서 먹여주던 그와의 첫만남마저 잊혀져간다.
‘나는…’
그리고, 그 모든 기억들의 옆에서 활짝 웃고 있던 루비도 불타오르듯이 흩어져간다.
‘루비에요.’
그 파편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던 이유마저 상실해가던 루비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한 생각.
‘당신의 보석…’
그 이후, 빛이 그녀를 감쌌다.
.
“흐음?”
한적한 기운이 맴도는 자신의 마왕성에서 눈을 뜬 루비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
그렇게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에 한동안 인상을 찌푸리던 그녀.
“흐아암…”
그러던 그녀가, 이내 하품을 하더니 옆에 있던 와인잔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린다.
“지루한데, 세상이나 불태워볼까.”
그것이 바로 1회차의 시작.
이제는 존재하지 않게된 0회차를 대신하게 된,
프레이와 페를로체의 리트라이 지점으로 지정되어 있던 최초의 회차였다.
“흐극, 으으… 우으으으으…..”
한편, 그 모습을 차마 눈에 담지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려대던 현실의 프레이.
말없이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던 루비의 눈에도, 이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절대 열리지 않던 펜던트가, 어느새 조용히 열려있었기 때문이었다.
– 스륵, 슥…
“흐아아아아아…..”
펜던트 안에 들어있던 건, 하나의 사진이었다.
로즈윈이 촬영한 프레이와 루비, 그리고 모두의 미소가 만발한 단체사진. 그 사진이 이제는 완전히 빛에 바랜채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미안해애애… 루비이…”
“…울지 말라니까.”
어느새 펜던트애서 새어나온 빛이, 다시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