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447)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447화(447/524)
Episode 447
[기록 재생 완료……]어두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시스템 창이,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다시보기를 종료합니다.]“………..”
이윽고 시스템이 완전히 종료되자, 방 안에 흐르기 시작한 적막.
– 터벅, 터벅…
그 적막속에서 지금까지 눈 앞에 재생되던 로즈윈의 기록을 멍하니 지켜보던 루나가, 이내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스윽…
이윽고 방의 중앙에 도착하자, 잔뜩 떨리는 손에 달의 마나를 흘려 어둠을 밝히기 시작한 그녀.
“…아.”
그제야 처음 방 안에 들어왔을때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옅은 꽃내음의 정체가 밝혀진다.
“설마…”
방 중앙의 바닥에, 장미꽃의 꽃잎이 잔뜩 쌓여있었다.
옅으면서도 아련한 꽃향기를 풍기며,
꽃으로의 생기를 잃은채 시들어가며 말이다.
“아, 아니… 잠깐만요…”
그 꽃들을 지켜보던 루나가, 다급히 무릎을 꿇으며 손을 뻗는다.
“설마 진짜로?”
이윽고 꽃잎의 무더기에 닿는 그녀의 달빛 손.
– 바스락…
하지만 장미 꽃잎은 그녀의 손에 닿을때마다 그저 힘없이 바스라져 갈 뿐이였다.
“진짜로 그런 일이…?”
손에 두르고 있던 달의 마나를 다급히 거둔 루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듯이, 꽃잎들은 사정없이 바스라지기만 했다.
“………”
결국 꽃잎을 모으는것을 포기한 그녀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이건… 이건 아닌데…”
그리고는, 이내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녀.
“저, 전 이런걸 원한게 아니였어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고.
“당신이 이렇게까지 몰리기를 바란게…”
마지막에는 개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루나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아니였는데…”
로즈윈이 힘든 시간을 보낼때, 그녀를 케어하지 않고 외면했던 자신이 뇌리에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그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였는데.
설마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한 데에는 로즈윈을 외롭게 내버려둔 자신의 탓도 있는게 아닐까?
“……….”
문득 그녀의 방에서 봤던, ‘우울증을 이겨내는 12가지 비법’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런걸 읽을만큼이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걸까.
자신의 안일했던 결정이 이토록 후회스러워 질 줄이야.
“죄송해요, 로즈윈 씨…”
어두운 표정을 짓던 루나가, 자신의 두 손을 꽃무더기 앞으로 뻗고 심란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당신의 입장도 생각했어야 되는건데…”
문득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 그녀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을 시절, 여전히 버릇없었지만 조금씩 자신에게 영향을 받던 로즈윈과 보냈던 나날들이.
같이 소풍도 가보고, 소꿉놀이에도 장단을 맞춰보고, 과외 선생님이 되어보기도 하고.
그녀의 도시락통에 늘 자신이 만든 음식이 담겨있던 그 시절이.
그리고 자신은 반드시 용사님과 결혼할거라던 그녀의 활기차고 기대에 가득찬 목소리가.
– 쿨럭, 쿨럭…
그러다가 갑자기 방금전에 봤던, 죽어가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글을 써내려가던 로즈윈의 모습이.
계속해서 겹쳐 보인다.
“…당신의 도우미로서, 응당 책임을 져야겠죠.”
덕분에 이를 악물며 슬픈 표정을 짓던 루나가, 결심한 듯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샤아아…
그와 동시에 앞으로 쭉 뻗은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달색 빛무리.
“덧없게 저물어버린 노을에게, 다시 빛을…”
오만가지 생각에 잠긴채 그렇게 중얼거린 루나가눈을 지긋이 감고 신격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꽃잎들.
– 파지지직… 파지직…
이윽고 꽃잎들이 한데 뭉치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
그렇게 몇십 분 뒤.
“…하아, 하아.”
온몸에서 진땀을 흘리며 손을 땐 루나가, 이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 이게… 안되는거지?”
그녀의 앞에서, 그저 색과 향기를 다시 되찾았을뿐인 꽃잎들이 조용히 굴러다니고 있었다.
.
“저, 저기.”
잠시 뒤, 제국 뒷골목의 허름한 상점 문앞.
“아직 있지…?”
로브를 뒤집어 쓴 루나가, 다급히 그곳의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언니…?”
루나가 찾아간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의 맏언니이자 이 세계의 창조주인 별의 신.
“급하게 물어볼게 있어서 그러는데… 무, 문좀 열어줄래…?”
태양신인 자신의 둘째 언니는 로즈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여전히 못미덥고.
마신인 이클립스는 신격을 잃었으며, 그녀에게서 신격을 강탈한 카니아 역시 로즈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루나가 조언을 들을 만한 사람은 오직 별의 신인 맏언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 끼이익…
때문에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밖에서 서성이던 그녀가, 문이 열리자마자 다급히 안으로 들어선다.
“응, 왔어?”
“언니…”
자신이 미처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대답을 해버리는 별의 신을 바라보고는 잠시 멈칫하는 루나.
실로 오랜만에, 별의 신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 채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무슨 질문인데?”
“질문좀…”
그 옆에 축 늘어져있는 근육질의 육체를 곁눈질하다 다시 입을 열은 루나가, 다시한번 자신의 말을 가로챈 별의 신을 정색하며 바라본다.
“지금 장난칠 상황이 아니야, 언니…
“…대체 무슨 일인데 늘 기계같은 우리 루나가 그리 동요했을까.”
“로즈윈, 아직 기억하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나의 언니.
“그게 누군데?”
그녀의 반응에 루나가 창백한 표정을 짓는다.
“언니마저… 잊어버린거야?”
분명히 며칠전에 찾아와 로즈윈에 대해서 질문했을때, 언니는 저 이상한 육체에 깃든채 연신 술을 퍼먹기만 했었다.
마치, 대답을 회피하듯이.
“로즈윈이 누굴까? 특이한 이름이라 내가 기억 못할리가 없다만…”
하지만 지금의 언니는, 정말로 모른다는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질문을 바꿀게.”
때문에 한층 더 표정이 창백해진 루나가,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필멸자가 ‘창조’ 행위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줘.”
“루나야, 그건 불가능…”
“그냥 좀 설명해줘.”
“…….”
피식 웃으며 답하려던 별의 신이, 동생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변을 시작한다.
“그 대가로, 모든 시간선에서의 존재가 말소되지?”
“조, 좀더 자세히…”
“말소된 그 시점부터, 과거를 향해 천천히 존재가 지워져나가기 시작해. 마치 시간이 역으로 흐르듯이.”
그렇게 말한 별의 신이, 무언가를 눈치채기라도 한건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보통은 인지할 수도 없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억겁의 시간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면 지워지는게 오래 걸리겠지.”
“………..”
“우리처럼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불멸자였다던가, 아니면… 반복된 회귀에서 계속해서 추억을 쌓았다거나.”
그 말에 루나가 움찔하자, 별의 신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전 세계에서 너만 기억하고 있는걸 보니, 네가 기억하고 있는 분량이 가장 많았나보구나.”
별의 신, 스텔라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무렵, 루나는 이미 정상이 아니였다.
“사사사, 살릴 방법은?”
늘 차갑고 초연해 보이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으며, 무심함으로 일관되있던 감정은 뒤틀리기 일보직전이였다.
“다시 살릴 방법은… 없는거야?”
“……….”
“내, 내가 다시 부활시키려 했는데… 어째서인지 먹히지가 않았어. 시, 신격을 있는대로 전부 퍼부었는데도…”
“루나야.”
“바, 방법이 있는거지? 언니는 창조신이잖아. 언니가 이 세계를 만들었잖아.”
늘 기계같던 동생이 거의 처음으로 보인 동요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 스텔라.
“방법은… 없어.”
“…뭐?”
“이미 그, 혹은 그녀는 시스템의 패널티로 완전히 소멸한 상태니까.”
그 말을 들은 루나가, 다급히 언니에게 다가가며 캐묻는다.
“그, 그치만… 우린 신이잖아?”
“…하아.”
“시, 신격을 포기할게. 신격을 포기하는 대가면 그 어떤거라도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시스템은 우리의 위에 있단다.”
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답하는 그녀.
“그, 그치만… 시스템은 솔라가…”
“걘 그저 관리체계를 시스템의 형식으로 고정했을 뿐이고.”
“그럼…”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단다.”
두번째로 돌아온 확답에, 말문이 막힌채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는 루나.
“아냐… 그럴리가 없어…”
“음…..”
“그럴리가 없다고… 이, 이건 아냐… 이건…”
“네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였나 보구나.”
그 말을 들은 루나가, 옆에 있던 의자에 픽 주저앉으며 입을 연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 소중한 아이였어.”
“………”
“글레어가 열쇠라면, 그 아이는 자물쇠였으니까…”
루나의 창백한 얼굴에서, 이내 눈물이 그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유일하게 0회차를 가장 크게 기억하고 있었어. 때문에 모두의 행복이라는 조건에 루비가 들어올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던거야. 그랬을 뿐이였는데…”
확증은 없었다.
로즈윈의 성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고, 그녀가 무의식적으로라도 0회차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증거가 없는 루나의 추측에 불과했다.
“……깨닫는게 너무 늦어버렸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루나에게는, 그것이 진실이였다.
왠지 모르게 그게 맞을 것만 같다는, 슬픈 확신이 들고 있었다.
“어, 언니. 돌이키고 싶어. 나, 이만 은퇴해도 좋으니까…”
때문에 아예 눈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언니에게 애원을 시작한 루나.
“제발, 그녀를…”
하지만 그녀의 언니는,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휘저을 뿐이였다.
“………잠깐.”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인채 미안함과 슬픔에 잠식되어가던 그녀가, 별안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나.
“그 아이라면…”
이윽고, 무언가에 홀린 표정을 지은채 가게 밖으로 루나가 뛰쳐나가자.
“그 아이라면 해결책이 될지도 몰라…..”
“………”
약간 슬픈 눈초리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조용히 선반 안에서 술병을 꺼내드는 스텔라였다.
.
“헉, 헉…”
가쁜 숨을 몰아내쉬던 루나가 도착한 곳은, 며칠전에 한번 방문했었던 해안가의 저택.
“저, 저기… 어라?”
힘들어 할 틈도 없이 문을 두드리던 그녀가, 이내 멍한 표정을 짓는다.
– 끼익…
“여, 열려있어…?”
문이 열려있다는 사실에 잠시 이상함을 느끼다가, 이내 눈을 부릅뜨며 안으로 뛰어든 루나.
“다, 당신!”
“……?”
이윽고 침대에서 막 몸을 일으킨건지 눈을 비비적 거리고 있던 글레어를 발견한 루나가, 다급히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기, 기억하시죠? 로즈윈 씨를?”
“…누, 누구세요?”
“로즈윈씨를 기억하시는지 못하시는지 말해주세요!”
루나의 간절한 목소리에, 이불을 얼굴까지 올린채 경계하는 표정을 짓던 글레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변을 한다.
“…죄송하지만 모르는 이름인걸요.”
“아.”
그 말을 듣자마자 몸에서 힘이 탁 풀려버린 루나가, 방의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정말… 정말 기억 못하시는건가요…?”
존재의 말소는, 글레어도 예외가 아니였다.
“음, 그게… 그러니까… 설명이라도 해주실래요?”
그런 그녀를 눈을 가늘게 뜬채 살펴보다가, 적의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상냥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글레어.
“인상착의라던가… 외모라던가… 목소리라던가…”
“그, 그건…”
그 말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설명을 시작하려던 루나가, 이내 말문이 막혀버린다.
“…..어?”
로즈윈에 대해 미친듯이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었다.
“왜, 왜 기억이… 안나지?”
인상착의도, 외모도, 목소리도.
“이, 일단은 여잔데… 잠깐, 맞나? 로즈윈이 여자였던가?”
심지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이제는 가물가물 해지기 시작했다.
“저기… 괜찮으세요?”
덕분에 머리를 쥐여잡은채 패닉에 빠져버린 루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손을 뻗는 글레어.
“안돼…”
하지만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하던 루나가, 이내 비틀거리며 방을 빠져나간다.
“안돼!!”
그리고는, 책상에 널부러져 있던 종이에 다급히 글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한 루나.
– 그녀를 잊으면 안돼
“제발, 제발…”
– 나라도 그 아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사라지지 마…”
미친듯이 메모를 해나가던 루나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중얼거린다.
“내가 잘못했어…”
그녀가 적은 로즈윈에 대한 메모의 글귀들이, 가루가 되어 천천히 공중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 까탈스럽지만 귀여웠고, 질투심 많지만 사연도 많던, 세상에서 제일 눈부셨던…..
“미안해애….”
– 너무나 뒤늦게 깨달아버린, 우리의 노을…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속해서 기록을 해나가는 루나였지만, 글귀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증발해나가고 있었다.
“미안하단다…”
덕분에 펜을 놓치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루나가,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채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노을아…..”
그렇게나 짜증나고 지긋지긋하던,
루나를 만성적인 노이로제 상태에 빠지게 만든. 로즈윈과 보냈던 세월들과 추억들.
눈을 감기만 하면 순간순간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방대한 기억들에, 얼마나 질렸었고 얼마나 잊고 싶어 했던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대한 기억들이 거의 사라지고 나서야, 루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널 이렇게 잊고 싶진 않았는데…”
그 오랜 세월동안, 그녀는 로즈윈을 미워한만큼이나 정을 붙어버렸음을.
로즈윈과 함께했던 기억이 하나하나 사라져갈때마다 그녀의 공허함과 후회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칭찬이라도 해줬더라면.”
심지어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된 순간이였기에, 루나의 후회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위로라도…”
그 말을 끝으로, 그녀조차 로즈윈의 존재를 망각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수호신으로서 마지막에 같이 있기라도 해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오직 회한과 슬픔.
그리고 아련한 추억의 흔적만이 남은채.
“홀로 보내서 정말로 미안하단다…”
제국에 새벽이 찾아왔다.
“우리의 노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