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486)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486화(486/524)
Episode 486
– 터벅, 터벅…
“날씨가 참 맑네요.”
일상적인 말을 해보았지만,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다.
“”………””
내 뒤를 따라오던 소녀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기 때문이였다.
“정원이 관리가 참 잘되어 있네요. 나비들이 날아다니는걸 보니…”
“저기, 프레이.”
그러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화제를 돌리려했지만, 갑자기 자리에서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시.
“아까 그 말의 의미는… 뭐죠?”
“음.”
조용히 주변을 둘러본 나는, 천천히 공원의 벤치에 앉으며 그녀의 질문에 답변했다.
“들으신 대로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고백에 응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난 순간, 순간적으로 차가워지기 시작한 주변의 공기.
“…어째서죠?”
이어진 그녀의 물음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확실하고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
“저는 이미 유부남입니다.”
“……..”
“놀라실테지만, 이미 애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프레이가 조용히 나의 시선을 피한다.
“…그래도 상관없다면요?”
“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오직 그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이시 양, 그게 무슨 소리신지…”
“첩으로 들어갈게요.”
그 집요한 시선을 여전히 피하던 프레이에게 이를 악물며 선언을 하자, 뒤에서 꼬리를 흔들거리고 있던 여우귀가 달린 소녀와 비틀거리고 있는 술에 취한 영애가 날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래도 안되나요?”
“어, 음…”
그리고, 프레이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절로 지어지는 미소.
그러고보니 최근에 미소를 지어본적이 있던가?
아니, 미소는 커녕 표정이 바뀐적도 없었지.
역시, 이 사람만이 유일한 정답이 아닐까?
“아내가… 한명이 아닙니다만.”
“네?”
그런 생각을 하며 프레이를 멀뚱멀뚱히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튀어나온다.
“제 아내가… 지금 8명입니다.”
“풉.”
“그러니 첩으로 들어오시면 정실부인 8명을 상대하게 될텐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푸흐흐흐… 푸흐흐…”
아, 세상에.
이렇게나 경망스럽게 웃어본적이 언제쯤이였는지 이젠 기억도 안나는데.
“하하하하, 하하…!”
“농담이 아닙니다만? 당장 제 집에만 놀러 와보셔도…”
그동안 웃지 않은 만큼, 한꺼번에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하하, 하…”
“……..”
그렇게 한참동안 웃음을 흘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말을 멈춘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프레이.
표정을 보아하니, 화가 난 것 같은데.
“저기.”
“…읏.”
아니나다를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
그래, 결국 마지막 시도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될까.
그냥 모든걸 놓고 포기해버릴까.
“…..?”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프레이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이건…”
그것은 왜인지 모르게 보고 있으면 정겨운, 주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넘치는 낙서들이 가득한 손수건이였다.
“왜 울고 계시는겁니까?”
그 손수건에 시선을 뺏긴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런 나에게 들려오는 프레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괜찮으십니까?”
아, 나 울고 있었구나.
어쩐지 마음이 후련하더라니.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요.”
“그렇다기엔 좀 흘린 눈물이 많으신데…”
애써 변명을 던진 나는, 살짝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프레이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절 어떻게 생각하시죠?”
갑자기 내가 그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진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그러는 당신은, 절 어떻게 생각하시기에?”
그리고 그런 나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 프레이의 의중은 무엇이였을까.
“좋아요, 그럼 제가 먼저 말할게요.”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도무지 마땅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할 수 있는 답변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은…”
하지만.
“………”
“아이시 양?”
그 답변조차 말문이 막힐줄이야.
.
“저기, 왜 말을 하려다 마십니까?”
“……….”
내가 프레이에게 고백을 한 이유는, 사실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실도피.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도, 그에게 공식적으로 청혼을 한 이유도, 전부 도피에 지나지 않았다.
왜 그런 현실도피를 해야만 했는지는, 최근 발행된 신문기사들을 몇개만 들추어보더라도 알 수 있다.
대충 요약하자면, 세상을 파괴하려던 전범에게 여왕의 자격이 있을까? 정도의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그런 공격들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틀린말도 아니니까.
기적적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내 마법으로 인해 서대륙 전체가 얼어붙기 직전까지 갔었다.
아무리 드래곤들과 연합군이 전쟁 이후에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복구를 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당장 왕국 내에서만 해도, 수 틀리면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여자를 왕으로 모셔도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돌아다니고 있고.
국외에서 나의 별명은, 이미 ‘2대 얼음 마녀’로 굳어진 이후다.
그렇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저 무작정 도망쳐서, 언젠가 이와 비슷한 상황에 빠져 고통받고 있었을때 나를 도와주었던.
종국에는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뻔 했던 나를 구원해준 남자에게 가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그걸 원하고 있었는지 조차 의심이 간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프레이는, 물론 여자로서 마음이 끌릴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이지만.
나는 과연, 정말로 그에게 모든걸 포기한채 안기고 싶은게 맞는걸까.
왕위도, 명예도, 자존심도 전부 포기하고?
‘그래, 이제야 알겠어.’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당신은, 그저 도피처였구나.’
나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던 거였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지만 사랑받을 수 없게된 왕국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줬던 당신에게 도망치고 싶던 거였어.
“제 이야기는 아무래도 괜찮잖아요?”
“……..”
“당신은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해주시겠어요?”
그렇게 혼란스럽던 마음을 정리한 나는, 눈을 지긋이 감은채 프레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착한 그가 행여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내 이야기는 하지 않은채.
“제게 있어서 당신은…”
오직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에.
“…친한 친구, 정도일까요.”
“하.”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참으로 당치도 않은 말이였다.
친한 친구라니.
거의 연식도, 인연도 없는 나와 그의 사이에, ‘친한 친구’라는 말은 너무 과분하다.
“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정도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진지한걸 보아하니, 빈말은 아닌것 같고.
하여간, 정말이지 착한 사람이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조금 웃겨서요.”
“같이 장난도 치던 사이인데 말입니다. 친한 친구 정도는 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그리고 매력적이기도 한 사람이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남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노력한 남자에게, 어떻게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군요.”
하지만, 이미 그의 대답으로 인해 이야기는 끝이나게 되었다.
“답변 감사해요.”
‘친한 친구’라는 단어에는, 분명히 선이 그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들이댄다고 해서, 이야기가 바뀌지는 않겠지.
그리고, 나 또한 그럴 마음은 사라졌고.
“그럼 전, 이만…”
“잠시만요.”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채 나의 친한 친구에게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별안간 내 팔에 전해져오는 따듯한 온기.
“제가 할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네?”
프레이가 내 팔을 붙잡은채,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여기서 무너질 사람이 아닙니다.”
“…..”
그런 그의 입에서, 다음 순간 튀어나온 말은.
“제 밑으로 들어올 사람도 아니고요.”
“………”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은 위에서 빛날 사람 같아 보입니다만.”
평생의 삶에서, 한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들어보고 싶던.
“그러니, 주변의 같잖은 방해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아.”
“당신의 가치는, 그런 멍청이들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당신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이 규정하는겁니다.”
그동안 묻어놓았던,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말이였다.
“그냥, 이야기 해주고 싶었습니다.”
“………”
“주제넘은 참견이였다면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의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긁적거리기 시작한 프레이.
“고맙습니다.”
“…..?”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한발자국 다가섰고.
“하읍.”
“……!?”
잠시후, 그의 입술에는 나의 은은한 냉기가 흔적처럼 남게 되었다.
“나중에 봐요, 저의 친구.”
“어, 어어…”
“정상에 도달했을때, 다시 찾아뵐테니까.”
도피처가 인생의 목표가 되는건, 한순간이였다.
.
– 터벅, 터벅…
“저기, 인간? 설마 나는 그냥 유기하는 것인가? 내, 내 여우구슬을 섭취해놓고? 정말로?”
“서, 선생니임… 저, 저도… 저도 그거 할래요…”
다급히 꼬리로 프레이의 허리를 감싼 미호와, 여전히 만취한채 프레이와 팔짱을 끼려 안달이 난 유렐리아.
“…저기.”
그런 그들의 사이에서 말없이 정원을 벗어나는 프레이의 뒷모습을 발그스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이시가.
“이제 그만 나오시죠.”
별안간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올렸고.
“호오.”
그 다음 순간, 정원의 외진곳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내 존재를 알아챈거지.”
“어떻게 알아챘냐고?”
이윽고 호기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까의 풋풋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채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아이시.
“…평생동안 날 괴롭히던 존재의 기척을, 느끼지 못할리가 없잖아.”
그 말과 함께, 아름답던 정원이 매섭게 얼어붙어가기 시작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야?”
“푸흐흐…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