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488)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488화(488/524)
Episode 488
눈앞의 서류에 집중하고 있으니, 창문으로 화창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벌써 아침인가.”
업무에 집중을 하다보니 날이 밝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피곤한 기색을 얼굴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밤새 한숨도 못자버렸으니, 참으로 낭패다.
“클라나 황녀님, 슬슬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그래.”
조금이라도 침대에 누워 눈을 붙여볼까 했지만, 어린 하녀가 들어와 나를 재촉한다.
덕분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려던 계획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평소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조금이라도 잠을 청하는게 가능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다.
왜나하면 오늘은, 바로 나 클라나가 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지켜보고 있을 즉위식에 지각하는 황제라니, 상상하기도 싫다.
– 주륵…
“앗.”
그렇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책상에 어지러져 있던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새하얀 종이 위에 떨어지기 시작한 선혈들.
아무래도 너무 무리를 해 코피가 터진 모양이다.
“괘, 괜찮으십니까!?!?”
멍한 표정을 지으며 코를 잡아 누르고 있으니, 기겁을 하며 내게 달려오는 하녀.
“괜찮답니다. 그리 놀라지 않으셔도 돼요.”
“그, 그치만…! 피, 피가!”
“베이거나 찔린것도 아니고, 그저 코피인걸요.”
“다, 당장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아니, 정말 괜찮다니까요.”
오들오들 떨며 방을 뛰쳐나가려는 시녀가 참으로 귀엽긴 하지만, 코피에 익숙해진 나에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소싯적에는 하루에 2시간씩만 잠을 자며 공부와 전투 훈련을 하는 바람에, 하루에 두번꼴로 코피가 터지던 때도 있었으니까.
“그냥 지혈제나 가져와줘요.”
“저, 정말 그거면 되겠습니까…?”
“네, 어차피 의사가 와도 그걸 처방해줄꺼니까.”
“그, 그럼 최상급 지혈제로 가져오겠습니다아!”
아무튼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니,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답하고는 기어이 방을 튀어나가는 시녀.
황실의 하녀와 시녀 여럿이 갈려나갔음에도 기어이 자리를 보전하는데 성공한 녀석 답다.
듣기로는 프레이의 저택 출신이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생존력이 높은걸까.
“흐암, 그러면…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
그렇게 한쪽 손으로는 코를 잡고 다른 쪽 손으로는 서류를 정리하던 나는, 서류가 얼추 정리되자 굳은 몸을 빳빳히 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 우드득…!
“으윽.”
갑자기 허리를 핀 부작용으로, 그만 책상에 힘없이 엎어지고 말았다.
“…역시, 졸려.”
그리고 책상에 엎어진지 몇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이 날때마다 책상에 엎드려서 졸던 그동안의 버릇이 화근이 된걸까.
이 상태라면 억지로 일어나도 컨디션이 하루종일 최악일 것 같은데.
“5분만 자자… 5분만…..”
이럴때는 어쩔 수 없다.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잠을 청하는 것이 좋다.
“딱 5분만…”
어차피 지금 졸아도, 지혈제를 가지러 간 하녀가 금새 날 깨워줄테니까 상관없겠지.
“……..”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책상에 엎어진채로 눈을 감았다.
‘…아, 코피.’
뒤늦게 코피 때문에 코를 막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지만, 그때는 이미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 무렵이였다.
.
“…클라나 님.”
“으음?”
익숙한 목소리에 조용히 눈을 떠보니, 어김없이 그녀의 지친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반드시 전해드려야 하는 소식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세레나 루나 문라이트.
프레이의 약혼자이자, 그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여자.
그녀가 이곳엔 무슨 일일까. 분명 즉위식때 보기로 했었을텐데.
“마왕군이 수도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습니다.”
“네?”
조용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세레나의 입에서 얼토당토 않은 소리가 튀어나온다.
도대체 마왕군이 왜 수도에 들이닥치긴 왜 들이닥친단 말인가?
설마, 즉위식을 노리고 반란이라도 일으킨건가?
하지만 그럴리가 없다. 마왕군은 분명 루비와 루루에 의해 해산되었으니까.
말이 해산이고 사실상의 숙청이지만.
아무튼 해산 이후, 마왕군에는 일부 착한 마족들과 참작이 가능한 인물들만 남은 상태다.
심지어 현 마왕군의 실질적인 대장인 드미르칸 역시 프레이와 루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보내고 있는 지금, 마왕군이 나쁜 마음을 품었을리는 추호도 없다.
애당초 전력차이를 비교한다면, 수도로 온 것 자체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 방면에서 꼼꼼히 생각을 되짚어 봐도, 그들이 수도로 몰려올 이유는 전무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날에 마왕군이 수도로 들이닥쳤다는 것일까?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중인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세레나가 침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해온다.
“대체 무슨…?”
“황녀님…”
그제야 나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내가 있는 곳이 내 방이 아니였다.
분명히 내 방의 책상에서 잠들었을 터인데, 어째서 지금의 나는 황좌에 앉아있는거지.
아직 즉위식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텐데.
– 철컥, 철컥…
그리고 이제보니, 내가 입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갑옷이였다.
“뭐야?”
게다가 몸에 정체불명의 상처들이 가득하기도 하고.
“”……..””
텅빈 황좌의 방의 양 옆에 서있는 페를로체와 이리나 역시, 온 몸이 상처 투성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지.
“…프레이, 그 개자식만 아니였다면.”
“지금… 뭐라고?”
영문모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을 굴리던 나는, 세레나의 입에서 나온 증오에 가득찬 목소리를 듣고는 눈을 부릅뜨며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 그 인간 쓰레기를 감쌌던 겁니까, 황녀님.”
하지만, 돌아오는건 세레나의 비통한 목소리뿐.
“제가 그를 죽일 수 있게, 진작에 허락해 주셨더라면… 모든걸 뒤바꿀 수 있었습니다.”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세레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흐른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 뿌우우우우…!
섬칫할 정도로 불길한 나팔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고.
“…그래도, 전 끝까지 황녀님의 곁에 있겠습니다.”
“이건…”
그 소리에 이끌려 창 밖을 바라본 나는.
“말도 안돼.”
경악에 가득찬 눈빛으로, 그리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모든게 끝났을텐데…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피로 물들어있는 대지, 얼마전에 본적 있던 꺼지기 직전의 태양, 그 아래에 번쩍이는 갑주와 무기로 치장한 채 황궁으로 진격하고 있는 마왕군.
“그럼, 최후의 결사항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다시 비장해진 세레나의 목소리가 내게 날아들었으나.
“황녀님은, 지금 당장 신속히 황궁을 탈출…..”
“으아?”
그 목소리가 갑자기 잦아듬과 함께, 나의 몸은 갑자기 군형을 잃었고.
“…대체, 이게 다 무슨일이야?”
계속된 상황 변화에 지친 나의 외마디 소리를 마지막으로, 이내 모든것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
“황녀님!!!”
“으븝.”
다시 눈을 뜬 클라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지혈제를 가지러 갔던 하녀.
“주, 죽지 마세요!!!”
“…켁”
자신의 입에 지혈제를 틀어박고 있는 그녀 덕분에, 켁켁 거리며 몸을 바둥거리던 클라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뭐, 뭐하시는건가요!”
“의사!! 의사를 불러요!! 화, 황녀님이…!”
하지만, 그런 그녀는 안중에도 없이 크게 소리를 치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하녀.
“……..”
그런 하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클라나는, 이내 자신의 책상이 피범벅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할말을 잃은채 중얼거렸다.
“…그럴만 했네.”
누가 봐도 암살이라도 당한 모습이였기에, 하녀의 반응을 이해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은 클라나.
“그나저나, 아까 그건… 대체 뭐였지.”
그러던 그녀가, 방금전에 경험한 것을 조용히 곱씹기 시작한다.
“역시 꿈인가.”
그리고 이내, 그것을 꿈이라고 추론하는 그녀.
“꿈치곤 조금 사실적이긴 했지만, 전에도 그런적이 있었으니까…”
프레이의 2번째 시련때 비슷한 악몽을 꿔본적이 있던지라, 방금 전의 경험을 업무 과다로 인한 악몽이라 단정짓는 클라나였다.
“그래도 뭔가 찝찝한데… 음…”
그럼에도 무엇인가 찝찝함이 남아 인상을 찌푸린채 그리 중얼거리는 그녀였으나.
“황녀님!!”
“황녀 전하!!!”
“아.”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수십명의 주치의들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세상에… 피가!”
“즉위식을 중지하고 지금 당장 치료를 해야 합니다!!! 어, 어서 수도의 대성당으로…!”
“…그냥 코피니까, 다들 진정해주면 안될까요?”
이내 그 찝찝함마저도 잊은채 변명을 시작했다.
“근위병! 근위병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황녀 전하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아니, 진정들 하라니까.”
그 잠깐의 해프닝 속에서, 방금전에 경험한 기이한 일의 기억이 점점 클라나의 머릿속에서 흐릿해지고 있었다.
.
한편 그 시각.
– 파지직…!
“좋아. 준비는 완벽하구나.”
즉위식이 열릴 장소의 삼엄한 경비를 어찌된 일인지 너무나도 손쉽게 뚫고 잡입한 마탑주가, 중심부에 스며든 결계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하던 너희들이 듣기에는 청천벽력같은 말이겠지만…”
그런 그녀의 눈이, 칠흑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희들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