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03)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03화(503/524)
Episode 503
논공행상이 펼쳐진 이후로, 멈춰있던 제국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세레나 님, 좋은 아침입니다.”
“벌써 출근하신 겁니까?”
“오늘 결제하실 서류는…”
정체되어있던 제국에 그러한 느낌이 들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아닌 세레나.
“…흐암.”
최근 잠을 자지 않는 날이 잠을 자는 날 보다 더 많아진 그녀가, 손에 커피를 든채 집무실로 들어선다.
“좀 쉬엄쉬엄 하시죠.”
“그러시다 병듭니다.”
비몽사몽한 표정의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도장과 펜을 드는 모습에, 몇몇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리 말했으나.
“…괜찮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오늘 통과시켜야 할 안건만 5개에요. 이런 때에 설렁설렁 일을 할 수는 없죠.”
“으윽…”
“받아들이세요. 개혁에는 일부의 희생이 필요한 법이니.”
그 말대로, 오랫동안 모두가 염원해오던 제국 개혁을 추진하게 된 대가는 상당히 컸다.
“…세레나님이 아니면 우린 전부 말라 죽겠지.”
“그러게. 잠을 안 자신게 벌써 며칠째인지.”
“저분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도 전부 끝이야…”
개혁의 중심에 있는 세레나의 초월적인 행정력, 그리고 그런 그녀 뒤에 버티고 서있는 용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정도의 진척을 불가능했으리라.
“그러면, 그 보고는… 역시 숨기는게 좋겠지?”
“응응, 우리 선에서 알아서…”
그것을 잘 알고 있던 개혁 담당 부서 인원들은 오늘 아침에 새롭게 도착한, 세레나에게 안좋은 의미로 심한 자극이 될 법한 보고를 숨기기로 마음먹었으나.
“…뭘까요, 그 보고는.”
“”………!!!””
세레나의 귀가 무척이나 밝다는 것을, 그만 간과하고 말았다.
“세, 세레나님. 이건…”
“흐음, 어디 보자.”
눈 깜짝할새에 그들의 뒤에 나타난 세레나가 손에서 보고서를 가로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으득.”
이윽고 낮지만 분명한 이를 가는 소리가 집무실에 울려퍼지자, 숙연해지는 분위기.
“정말이지… 뻔뻔해서 말이 안나오네요.”
그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세레나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 황실 감옥에서 인질극 발생, 주동자는 아이시 윈터 클라우드. 현재 본부와는 연락두절.
“…그냥 좀, 얌전히 죽을것이지.”
그런 그녀의 눈에, 방금 전 도착했던 서신의 내용이 조용히 비치고 있었다.
– 인질이 된 남자는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로 추정됨.
.
“……으음.”
정신이 들자, 입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진다.
‘아직도 목숨이 붙어있는건가.’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다.
클라우드 왕국의 공주이자, 전쟁의 총사령관인 아이시 윈터 클라우드.
그런 나를 제국이 아직까지 목숨을 붙여놓고 있다니.
나 같으면, 내가 잡힌 그날 목을 쳐 후환을 없애버렸을텐데.
– 철커덕…!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나를 속박하고 있던 쇠사슬이 어김없이 날 붙잡는다.
“……”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눈을 떠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둑한 지하실과 단단한 쇠로 되어있는 철창.
이곳에 투옥된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뭐야, 깨어났나.”
어렴풋이 남아있던 시간감각마저 차츰 사라져가는것을 여실히 느끼던 그때,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간수가 눈을 뜬 나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꺼내온다.
“공지할 것이 있다.”
“…공지?”
왠지 모르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철창의 문을 열고 들어온 간수가 내 앞에 식사를 내려놓으며 조소를 입에 띄운다.
“너의 형이 확정되었다. 아마 내일 아침에 집행되겠지.”
아,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간수의 말을 들었을때, 처음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였다.
“교수형인지, 참수형인지는 논의중에 있다만… 마마 공개처형이 될 것이다. 저잣거리의 모두가 네 죽음을 똑똑히 보게 되겠지.”
“곧 죽을 사형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역시 제국은 야만적이네.”
가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리 쏘아붙여 보았지만, 간수의 태도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제국의 전범에게 주는 사적인 형벌쯤으로 생각하라고.”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온 간수가, 이내 품에서 열쇠를 꺼내어 내 오른손의 족쇄를 푼다.
“뭘… 하는거야?”
“관례다. 그 어떤 죄수라도 최후의 식사를 할때만큼은 손의 족쇄를 풀어주지.”
순간적으로 식기로 제공된 나이프로 간수를 찔러볼까 생각 해봤지만, 다시보니 식기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물론 평소처럼 식기는 제공되지 않지만.”
멍하니 형편없는 식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간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긴다.
“그 꼴사나운 모습을 보는게 삶의 낙인 녀석들도 꽤 많지만… 나는 아니라서. 다 먹으면 부르라고.”
“…………”
“최대한 오래먹는게 좋을걸? 인생의 마지막 식사니 말이야.”
간수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보았지만, 남은 팔과 다리에 묶여져있는 쇠사슬이 나를 조여왔다.
– 샤아아…
그나마 자유로워진 오른손에 억지로 마나를 일으켜보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힘없이 떨구고 말았다.
“…정말 끝이구나.”
제국이 내 몸에 달아놓은 억제기 덕분에, 공격마법을 성사시킬 정도의 마나를 모을 수 없었다.
그나마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은 저주.
마법진만 외우고 있다면, 사람의 급소, 이를테면 심장같은 부위에 손을 접촉하는 것 만으로도 공격을 성사시킬수는 있는것이 저주다.
하지만, 철저히 교육받은 간수들이 접근을 허용할 리가 없다.
방금의 그 뺀질거리던 녀석도, 손의 속박을 푼 이후부터는 나와 바로 거리를 두었으니.
“…읏.”
그렇다.
내게 정말로 끝이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솔직히 언젠가는 이 순간이 찾아올거라곤 생각했었다.
제국이 패배한 적장인 나를 가만두지 않으리라는 것도, 전쟁의 책임을 물어 최대한 비참한 최후를 선사하리라는 것도.
전부 예상했던 일이였다.
– 파르르…
그런데, 몸이 왜 이렇게나 떨리는 걸까.
피부는 왜이리 창백해지고, 머릿속은 왜이리 새하얘지는 걸까.
분명 두려움은, 그날 이후로 마음속 깊이 묻었을텐데.
결국 나는, 영원히 패배한 겁쟁이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
“저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거 놓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인채 그러한 생각에 잠식되어가던 나에게, 생각치도 못한 기회가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애초에, 당신은 여기서 이러실 수 있을만한 상황이…”
“이젠 하다하다, 일개 간수조차 내게 기어오르는군.”
“…으윽.”
철창 앞에 멈춰선 한 남자가, 어리바리해보이는 신입 간수의 멱살을 붙잡은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자택에서 지낼동안 사용할 노예를 직접 고를 권한 쯤은, 아직도 남아있단 말이다.”
“그, 그렇지만…”
“난 저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정도 되는 이가 평생 쓸 노예라면, 일국의 공주정도는 되어야겠지.”
“저, 저 여자는 내일 사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함부로 데려갈 수는…”
“비켜.”
“커흑!”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던 귀족 소년이, 그를 말리던 간수를 밀어 넘어트리고 기어이 철창의 문을 비집고 들어온 순간.
“이봐, 너.”
“………..”
나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른손에 다시금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영광인줄 알도록. 일개 공주인 네가 우리 가문의 노예가 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
“가, 가까이 가시면 안됩니다!!!”
이윽고 순식간에 나의 앞으로 다가온 그를, 간수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리려 뛰어들어왔지만.
– 파지지지직…!!!
“안돼!!”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흐억…!”
“아…..”
몸에 남아있던 모든 힘을 끌어모아 그의 심장을 움켜쥔 나는.
“죽고싶지 않으면,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대로 해.”
파르르 떠는 그의 귀에, 싸늘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선 앞장서서 이 방을 나가도록.”
“…하.”
“웃어?”
그때 그가 지은 웃음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었더라면.
정말로 좋았을텐데.
.
“젠장, 정말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지금 우리가 괜히 나섰다가, 프레이의 신변에 해가 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탈옥은,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 프레이 아닙니까! 선배님도 몇달전의 그 재판을 아시잖아요!”
“물론 알지. 뭐가 어찌됐든 그의 최종 형량이 ‘자택 감금형’인 것도, 그의 직위가 여전히 공작이라는 것도, 노예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준 것이 다름아닌 황제였다는 것도.”
“으, 으음…”
내가 인질로 삼은 소년이, 예상외로 신분이 매우 높은 자였기 때문이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우선 상부에 이 사건을 보고하고 후속 명령을 기다릴 수 밖에. 어차피 저 녀석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나저러나, 깨지는건 확정이겠군요.”
“하아, 대체 저 녀석은 왜 우리 감옥에 와서…”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
나 또한 익히 들어본적 있는 이름이였다.
제국을 내부에서 갉아먹는 일등공신을, 적국의 수장으로서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으니까.
“사, 살려줘! 누가 날 구해라!!”
“…시끄러워.”
“흐익…!”
그렇기에 그를 앞세워 포위를 돌파하고 마법진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벽마저 넘어설때까지, 내게 있어서 그는 그저 이용가치가 있는 머저리에 불과했다.
“그, 그치만…!”
“내가 닥치라고 했…”
“…그쪽으로 가면, 탈출 못할텐데.”
그래서였을까.
“…뭐?”
“여기 구조, 너 잘 모르는구나?”
포위를 벗어나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 그가 내게 그렇게 말해왔을때, 온몸에 소름이 돋은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너, 너 뭐야.”
“으극.”
“뭐냐고, 너.”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꽤나 당황했었던 나는, 남은 마나를 짜내어 그의 심장에 박아넣어둔 작은 얼음 단도를 거세게 비틀었다.
“마, 말해. 넌 대체…”
“…일단 진정좀 하지.”
하지만,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을 뿐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그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속삭여왔다.
“뭔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뭐, 뭐가…”
“적국 수장이 탈주를 했는데, 모두의 반응에 여유가 넘치잖아. 안 그래?”
갑작스레 변한 그의 태도와는 다르게, 충분히 의문스러운 상황이였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낡은 지도를 꺼내보인 그.
“이건…”
“이제 그 이유를 알겠어?”
그가 꺼낸 지도에 그려진 것은, 거대한 섬이였다.
“설마, 이 감옥이 있는곳이…?”
“그래, 이 섬이야.”
항해마법이 걸린 배를 타도, 가장 가까운 육지에서 열흘은 항해를 해야하는 거리.
그러한 거리에 고립된 외딴 섬이, 지금 내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였다.
“넌, 감옥에 갇힌게 아니라 이 섬에 갇힌거였어.”
“………”
“아마 내일이면, 대량으로 순간이동을 해온 대마법사들이 널 제압하고 처형대로 끌고 가겠지.”
그의 말에 거짓의 기미는 없었다.
나는, 결국 끝까지 제국에 농락당한 것이였다.
“으득…”
“그, 미안한데… 너무 아픈걸…”
“다, 닥쳐.”
스멀스멀 올라온 분노에, 나도 모르게 단도에 힘을 주니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비틀거리는 프레이.
“너, 넌… 지금 내 인질이라고. 그러니까…”
“그래, 난 지금 네 인질이야.”
그러던 그가, 내말을 듣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 질꺽…
“어, 어어?”
“…그러니까, 정신차리고 잘 잡고 있으라고.”
내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 주륵…
“뭐, 뮌데…”
그의 심장 부근에 박아넣었던 단도가 더더욱 깊숙히 틀어박히고, 마치 동앗줄마냥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내 손이 그의 살에 밀려난다.
“하아, 하아…”
“뭔데 너…”
“정신차리고 더 힘차게 박아넣어.”
그 모습에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입가에서 피를 흘리던 프레이가 핏기 가신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야 저 병사들이 함부로 나서지 못할테니.”
도무지 이해가 안되어 벙찐 표정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입가에 힘겹게 미소를 띄우며 말을 덧붙이는 프레이.
“이제 허장성세도 슬슬 한계잖아. 안 그래?”
“허, 헛소리 하지마…”
나도 모르게 부정해버렸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였다.
얼음뭉치를 최대한 화려하게 띄워 포위망을 돌파한 나였지만, 그것을 앞으로 움직일 힘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 파르르…
사실 지금 나에겐, 이 정체 모를 인질의 심장 부근에 박아넣은 단도를 부여잡고 있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뭐, 그럼 그렇다 치고… 우리 좀 쉴까?”
“…….?”
“저기 저 숲에서.”
손이 마비되어가는 바람에 몇번이고 단도를 놓칠 위기를 넘기고 있던 나에게, 그의 엉뚱한 제안이 날아들어왔다.
“네 단도에 찔린 탓일까, 가슴이 너무 차가워져서 좀 쉬고 싶은데…”
“………..”
그 엉뚱한 제안을 멍하니 듣던 내가, 문득 깨달은 두가지 사실은.
“그, 미안한데… 얼음 단도밖에 없어? 그냥 칼로 찔러주면 안되려나…”
그의 심장에 건 저주가, 어째서인지 예상외로 빠르고 심각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설마?’
내게 심장을 꿰뚫린채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한 그의 등이, 어째서인지 익숙해져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