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06)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06화(506/524)
Episode 506
“아쉽지만, 무리네.”
“뭐라고요?”
마왕의 선전포고가 제국에 전달된지 몇주 뒤.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한껏 피폐해진 얼굴로 통신을 하고 있던 세레나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난다.
“어쩔수가 없네. 우리의 코도 석자인 상황인지라.”
“지금 맹약을 정면으로 무시하시겠다는건가요?”
그녀의 통화 상대는, 바로 서대륙 군주들의 대표.
“1000년이나 된 거미줄 쳐진 맹약 하나만을 믿고 그렇게나 많은 지원병을 보낼 순 없네.”
“세계의 존망이 걸린 문제입니다!!”
“제국의 존망이겠지.”
고저없는 목소리로 응하는 그에게, 세레나가 이를 갈며 따지고 든다.
“제국이 무너지면, 당신들은 무사할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다네.”
“뭐라고요?”
“제국의 무리한 요구에 맞춰 병력들을 차출하고 대규모 원정단을 꾸려 대륙을 횡단하는 것 보다는, 자네들이 항전할동안 모두가 뭉쳐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는것이 더 승산이 높겠지.”
“그게 무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차없이 날아드는 대표의 선고.
“그것이 서대륙 군주들의 합의된 의견일세.”
“…하.”
“너무 상심 말게. 지금까지 제국이 우릴 무시했듯이, 우리도 제국을 무시할 뿐이니.”
순간적으로 감정이 실린것을 인지한건지, 잠시 말을 끊은 대표가 다시금 평탄한 어조로 말을 맺는다.
“그럼, 수고하시게나.”
“잠깐…!”
그리고 그 직후, 뚝 끊켜버린 연결.
“…바보같은 녀석들!”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서있던 세레나가 바닥에 수정구슬을 던지며 그리 소리치자, 부하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우리 다음엔 자신들의 차례라는걸, 정말 모르는거야!?”
“세레나 님…”
“…대체, 대체 어쩌다가.”
그런 부하들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힘없이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숙이는 세레나.
“일이 이렇게 된거지…”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절망적인 목소리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용사님…”
그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리는 세레나.
“대체 어디에 계신건가요…..”
몇번이나 용사에게 쓴 그녀의 도움요청이, 책상에 널부러져 있었다.
.
“하아…”
자신의 방에서 프레이의 일기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클라나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 용사님이 사라지셨다.
– 대체 왜? 어째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인거야?
– 저희를 구해주시겠다 약속하셨잖아요, 용사님…
프레이와 헤어지기 전에, 사정사정 해서 받아낸 그의 일기장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페이지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타나지 않을만도 하죠.”
방금 생겨난 세레나의 글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멍한 표정으로 그리 중얼거리른 클라나.
“지금 용사는, 변방에 유폐되어 있으니.”
만약 용사가 다시 나타나주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제국민들이 들었다면, 기함을 했을 만한 발언이였다.
– 스륵, 슥…
한숨을 내쉬며 페이지를 덮어버린 클라나가, 천천히 일기장을 넘긴다.
“……..”
일기장의 페이지가 한장, 또 한장 넘어갈때마다 점점 더 찌푸려지는 그녀의 얼굴.
“…으.”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때 까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린다.
“당신이 제게 일기장을 준 이유는, 더 이상 일기장의 마지막 내용이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였겠죠.”
테이프로 어설프게 붙어있는 마지막 페이지의 내용은, 여전히 눈물로 젖어있었다.
“…바보같은 프레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아예 일기장을 덮어버리고는, 창밖을 바라보는 클라나.
“이런 결말, 전 용납할 수 없어요.”
야속하게도 밝게 빛나는 태양빛이 충혈된 그녀의 눈을 비추자,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가 이내 책상에 널부러진 문헌들에 집중한다.
“제가 반드시, 당신을…..”
“황녀님!!”
그렇게, 오늘 하루도 프레이를 구하기 위해 분주히 고대마법을 조사해보려던 클라나였지만.
“…뭐죠?”
“크,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나요.”
그런 그녀의 방문을 다급히 열고 들어온 메이드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채 보고를 해 온다.
“마, 마왕군이 국경선을 방금 넘었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태연하게 있으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흐아.”
그럼에도 클라나가 태연하게 문서들을 들여보고만 있자, 발을 동동 구르며 말을 쏟아내려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메이드.
“…지금 들어온 첩보인데, 타국에 보낸 지원요청이 전부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황제와 그 가족들은 어제 황궁을 빠져나가 타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쯧.”
“황녀님, 황녀님도 빨리 제국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황제가 궁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에 클라나가 차갑게 식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메이드가 다급히 짐을 꾸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지금 제국에 남은 유일한 황족은 황녀님밖에 없다고요. 분명히 안으로든 밖으로든 표적이 될…”
“좋습니다, 가죠.”
“네, 네에! 짐은 이미 다 꾸려놓았습니다! 그, 그럼 어디로 갈까요? 서대륙? 아니, 차라리 동대륙으로 가는건…”
그러던 그녀가, 발걸음을 옮긴 클라나의 뒤에 따라붙으며 바삐 행선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지만.
“황궁으로 갑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바로 마차를…… 네?”
돌아온 클라나의 답변에, 이내 말문을 잃고 말았다.
“저는 황궁으로 갈겁니다.”
“화, 황녀님?”
“제국에 남은 마지막 황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때군요.”
그렇게 말하고는, 멍하니 자리에 멈춰선 메이드를 뒤로하고 방 밖으로 나서는 그녀였다.
.
“힘든 시기에도 한데 모여주신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로부터 몇시간 뒤.
“그럼 경들은, 현재 상황을 보고하도록하세요.”
지휘실의 상석에 앉은 클라나가, 자리에 모인 신하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린다.
“전투 상황에 대해 보고합니다.”
그러자,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누군가.
“현재까지의 전투현황은, 정말이지 처참한 수준입니다.”
마탑주의 제자로서 명성을 날리던 화염의 마녀, 이리나가 팔에 붕대를 감은채 보고를 시작한다.
“국경선이 돌파되기 전까지, 몇번이나 마왕군과의 충돌이 있었지만… 그들의 진격속도를 늦출 수 없었습니다.”
“시간조차 끌지 못했다는 건가요.”
“마왕군의 선두에 서있는 마왕의 힘은, 그정도로 압도적이였습니다.”
클라나의 질문에, 눈을 질끈 감으며 분노로 몸을 떠는 이리나.
“그녀의 손짓 한번에 병력의 반이 갈려져 나갔고, 그 다음 손짓에 나머지 반이 갈려나갔습니다.”
“……..”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었던건, 자폭을 각오한 동귀어진 마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붕대를 살짝 들어올리자, 끔찍한 상태가 된 팔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팔과 전투능력 일부를 상실했지만, 다행히도 마왕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마왕군이 국경지대에서 진을 친것도 그 때문이겠군요.”
“네, 물론 힘을 전부 회복하면 다시금 물밀듯이 들이닥칠 테지만요.”
그녀의 팔에 시선을 빼앗긴 신하들이, 이리나의 절망적인 예언에 고개를 푹 숙이며 서로의 시선을 피한다.
“우선, 최소한의 시간은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애써 긍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이리나.
“…그저, 그뿐이지만.”
비록 들릴락 말락한 조그마한 목소리였으나,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자는 꽤 많았다.
“다음은, 현재 제국의 식량과 복지에 대한 보고입니다.”
덕분에 어색한 적막이 회의장에 흐를 무렵,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페를로체
“…사실, 보고 할 것도 없지만요.”
그렇게 중얼거린 페를로체가, 클라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몇시간 전, 교황이 주교들과 함께 제국을 벗어났습니다.”
“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오는군.”
“저와 함께 남아 결사행전을 택한 교인들 또한 어느정도 있으나, 과거에 비한다면 비교할 수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한숨을 내쉰 페를로체의 손이, 혹사로 인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부상당한 병사들을 저희들의 힘만으로 치료해내는것도, 이젠 한계가 있습니다.”
“…….”
“지원이 오거나 이 전쟁을 끝날만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이상, 사망자는 더욱더 늘어날겁니다.”
짧지만 상당히 임팩트 넘치는 보고를 끝마치고, 자리에 털썩 앉은 페를로체.
“지원 병력의 상황에 대해, 보고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일어난 이는, 다름아닌 머리가 산발이 되어있는 세레나였다.
“제국 각지에 있던 영주들과 군벌들이, 한사코 병력 지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바짝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입술에 침조차 축이지 못한채로, 세레나의 보고가 시작된다.
“사유는 여러가지입니다… 개혁에 대한 반발, 황녀님의 지휘에 대한 당위성과 정통성에 대한 반발, 승산이 없는 전투라 판단, 혹은 이미 마왕군의 편에 붙은 자들까지…”
보고를 하던 세레나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비틀거린다.
“세레나 경?”
“…죄송합니다.”
늘 자신감에 차있던 당찬 개혁가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모두가, 거짓말처럼 저희에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대신에, 처음으로 인생에서 뼈저리게 실패를 경험한 한풀 꺾인 소녀가 그 자리에 서있었다.
“…감히 첨언을 하자면.”
그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레나 씨…?”
“마왕군에겐 그 어떠한 전략도, 전술도 먹히지 않습니다. 그 어떤 작전을 시도해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전부 무용지물이 될 뿐이였습니다.”
하나둘씩 고개를 떨구거나, 한이 서린 탄식을 흘리기 시작한 신하들.
“하, 하지만… 그 말은…”
“오해하지 마시지요. 포기하자는게 아닙니다.”
“그렇다면요?”
“…제가 황궁에 남겠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세레나가 최후의 계책을 짜내던 바로 그 순간.
“황녀님만 살아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시간을 벌테니, 당신들은 황녀님을 데리고…”
– 쾅…!!!
“…..!?!?”
난데없이 활짝 열린 회의실의 문.
“그, 급보입니다!”
다급히 안쪽으로 뛰어들어와 무릎을 꿇은 전령이, 창백한 표정으로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하, 한명의 귀족이 황실의 지원 요청에 응했습니다!”
“뭐라고요?”
“최소 수천의 사병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속보입니다!!”
일개 귀족이 어디서 튀어나온건지도 모를 수천의 사병을 끌고 오고 있다는,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소식.
“그, 그 귀족이… 대체 누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푸라기라도 짚는 심정으로 그 귀족의 정체를 물은 세레나는.
“그, 그것이…”
“어서 말해보세요. 대체 어떤 이가…?”
파발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듣고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프, 프레이.”
“네?”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 공작 대행입니다.”
그리고 시작된, 기나긴 정적.
“황실의 구조신호에, 오직 그만이 응하여… 가문의 기사들, 사용인들, 그리고 사병 전원을 이끌고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아?”
그 정적속에서 울려퍼진 파발의 목소리를 들은 세레나가, 얼빠진 신음소리를 내고.
“정말이지, 바보같은 남자.”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클라나가, 눈을 질끈 감은채 그리 중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