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10)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10화(510/524)
Episode 510
– 널… 널 다시 보고 싶어… 프레이…
“…아무래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흐릿하게 떠오른 화면에 비친, 무릎을 꿇은 세레나를 바라보던 마탑주가 입을 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나저나, 신들도 참 악취미로군. 저때는 바깥의 존재가 개입하지도 않았는데도, 저런 운명을 예정해두었다니.”
“…한낱 폐기된 가능성일 뿐이야.”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남았지.”
글레어의 형상을 한 세상의 규칙이 그리 말해보았지만, 마탑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갈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구현되어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그렇게 말한 그녀가, 눈을 빛내며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간다.
“저 세상에서, 비록 마왕은 죽었지만 용사인 프레이 또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지.”
그런 마탑주의 뒤에 있던 거대한 화면이, 비석조차 세워지지 못한채 전장에 묻힌 프레이의 무덤을 비춘다.
“또한, 그의 약혼녀는 이성을 잃었고.”
이윽고 그 화면이, 프레이의 편지를 든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세레나를 비추고.
“황녀는, 빛을 잃었다.”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채 침대에 죽은듯이 누워있는 클라나를 비춘다.
“그 밖에 일어난 비극의 수는, 셀수 없이 많아.”
그 직후, 프레이의 곁에 묻히지도 못한채 불태워지는 카니아의 시신과 사용인들.
그리고 신문을 든채 오열하고 있는 아리아의 모습이 화면에 떠오를 무렵.
“이로서 내기는 끝난 것 같군.”
자신의 안에 신격이 차오르는것을 느낀 마탑주가, 눈앞의 화면에 손가락을 튕긴다.
“약속을 지킬때다, 세계의 규칙이여.”
그 직후 순식간에 눈앞에서 지워지는 세계를 보며, 자신에게 세상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은 마탑주.
“더 이상 내 계획에 간섭하지…”
– 파지직…!
“…..!?”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였으나, 어째서인지 마탑주가 나아갈 수 있는 거리는 글레어가 있는 곳에서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너무 성급하네.”
“…무엇이 말이냐.”
그제야 자신이 얻은 권한이, 세계를 장악하기에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치켜든 마탑주.
“이야기가 행복으로 끝나면 너의 승리, 비극으로 끝나면 나의 승리. 그런 간단한 내기였을텐데.”
“아무래도 네가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구나.”
싸늘한 표정의 마탑주를 달래듯이 웃어보인 세상의 규칙이, 조용히 손을 허공에 휘젓는다.
– 스르륵…
“아직 두개의 세상이 더 남았는걸.”
그러자, 그녀들의 앞에 떠오른 두개의 형상.
“네가 정녕 완전해지고 싶다면, 두번의 내기에서 더 이겨야 한단다.”
“…범차원적인 존재 치고는 너무 치사한데.”
“세상을 지키는 것에, 치사함을 따질 이유는 없지.”
“…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두개가 더 남았다는 사실에, 마탑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쉰다.
“어차피, 모두 비극으로 끝나게 될 이야기들이 아닌가.”
그리고는,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 그녀.
“그렇기에 폐기된 운명들이고. 그 운명을 바꾸는건 불가능하지. 내가 그걸 모를줄 아는 것이냐?”
“………”
“패배가 확정됐음에도, 이렇게 시간을 끄는 이유가 뭐지?”
매섭게 날아든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세상의 규칙이 조용히 침묵을 유지한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마탑주가, 이내 냉소를 입에 띄우며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다.
“…그래봤자 달라지는건 없을테니.”
방금 막 재생되기 시작한 두번째 이야기가, 그녀의 눈동자에 담기고 있었다.
“……….”
그녀가 지웠다고 생각한 첫번째 세상이, 실은 아주 작아진채 남아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채로.
.
떠오른 해도, 달도, 심지어는 별조차 없어.
그 누구도 정확한 시간대를 알 수 없던 어느날.
“…으음.”
천천히 자신의 의자에서 일어난 루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심장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잠시 졸았나 보군.”
오랜만에 든 단잠에서, 그녀는 어째서인지 용사에게 심장이 꿰뚫리는 꿈을 꾼 참이였다.
“……….”
평소라면 그저 시시한 악몽이라고 여기며 금방 잊었겠지만, 오늘은 왠지 느낌이 조금 달랐다.
마치, 방금 전까지 실제로 전장에서 있었던 것 같은 사실적인 감각.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등에 칼을 박아 넣은 뒤, 용사의 검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을때의 그 선명한 고통.
“신기하군.”
인생을 살며 ‘고통’이라는것을 느껴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던 루비였다.
그런 그녀가, 다른 상황도 아니고 ‘꿈’에서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고통을 느끼다니.
“녀석이 최후의 수작질을 부리는건가?”
순간 살짝 의심이 드는 눈빛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루비가, 이내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어느새 창밖으로 향한 그녀의 시선속에, 빨갛게 불타오르는 제국의 수도가 담긴다.
“…이미 모든것이 끝났으니.”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방금전의 경험을 그저 우연의 일치로 간주하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그녀.
“그럼, 오늘도 녀석이나 보러 가볼까나.”
문을 열고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한 그녀의 뒤에 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폐허가 된 황좌였다.
.
“음흠흠~♪”
금이 간 복도를 걸어가고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불러진다.
생각해보니 이 복도에서, 참으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었지.
– 황녀님!! 제 뒤로!!
– 젠장…! 탈출 마법은 아직이냐!!
황좌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나를 막아서던 병사들의 겁에질린 표정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전부 쓸데없는 짓이였지만.”
처참하게 무너진 황궁의 내부와, 여전히 피범벅이 되어있는 복도를 보면 알다시피, 황실군은 나의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졌다.
사실 너무나도 뻔한 결과였다.
오합지졸인 황실군이 나의 정예부대를 이겨낼 리도 없었고.
애초에 나를 막을 수 있는 강자 또한, 세상에 없었으니.
‘그 녀석’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도, 그 녀석 때문에 조금은 즐거웠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였던 용사.
그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녀석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동안 한번도 입어보지 않은 치명상을 입었다.
“쿨럭… 재밌구나…!”
“어, 어째서… 죽지 않는거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 파지지지직…!
“…으헉.”
용사는 결국 나를 꺾는데 실패했다.
그는 강했지만, 나를 물리칠 만한 ‘결정적인 힘’을 손에 넣지 못했다.
“어째… 서…..”
“황녀를 좀 더 돌보았어야지.”
“……!”
약혼식날, 선라이즈 제국의 황녀가 폭주해 피의 군주로 각성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
이미 모든것이 끝난 지금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좋은 냄새야.”
바깥에서 풍겨져오는 코를 찌를듯한 탄내가 창문을 통해 복도 안으로 스며들어오고, 그 향기로운 냄새에 내가 절로 미소를 지을 무렵.
“후후.”
어느새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어서 네게, 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건.”
온갖 마법과 주문이 점철되어있는 철문.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이 아름다운 공간에.
오늘을 위해 그동안 만나지 않고 있던 ‘그’가 머물고 있다.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
그 어떤 악의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던, 별의 용사.
순수한 선, 절대적인 정의.
그 어떤 추악한 것에도 물들지 않은, 아름다운 존재.
– 끼이익…
지난 1년간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자, 쇠사슬에 묶인채 벽에 메달려 있는 그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마, 마왕.”
고결하고 아름답던 모습은, 지난 일년간 빛 한점 못본채 방치된 탓인지 이리저리 꺾이고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마왕!!!”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 아름다운 눈빛만큼은 그대로였다.
“용사.”
“으아아아아아!!”
그래서 정말 다행이였다.
혹시나 어둠속에서 빛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 예상대로, 그는 나를 노려보며 최후의 빛을 불태우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그런 그를 집어삼키는 순간은 얼마나 황홀할까?
“죽여버릴거야!!!”
“후후후…”
죽을 만큼 행복하겠지, 아마.
.
– 터벅, 터벅…
“끄아아아아아아!!!”
방안으로 들어선 루비가 자신에게 걸어오자, 프레이가 괴성을 울부짖으며 날뛰기 시작한다.
“널, 널 반드시 내가…!!!”
– 꽈드득…!
“…커흑!?”
하지만 그런 그의 복부에 날아든, 루비의 주먹.
“욱…”
순간적으로 숨을 멈춘채 창백하게 질려있던 프레이가, 이내 입에서 피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얼마나.”
그런 프레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입가를 닦아주던 루비에게, 이내 증오스럽다누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프레이.
“얼마나 시간이 지난거지.”
“…글쎄.”
“말 해!!!”
그렇게 소리친 그가 다시 몸을 마구 비틀며 고함을 치자, 그런 프레이를 빤히 바라보던 루비가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인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프레이.”
“…흐윽!?”
“이미 모든게 끝났는걸.”
그와 동시에, 그의 입가에 남은 피를 혀로 핥아 훔치기 시작한 루비.
“…천만에. 아직 끝이 아니야.”
혐오와 역겨움에 가득찬 눈빛으로 자신의 볼을 핥는 루비를 바라보던 프레이가, 이를 악물며 이야기를 꺼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이면…”
“고대의 힘을 손에 넣은 황녀가, 날 죽이러 올거라고?”
“……!”
하지만 자신의 말을 가로챈 루비가 환한 미소를 짓자, 말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프레이.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단호한 목소리로 속삭인 루비가, 품에서 피에 젖어있는 익숙한 모양의 수정구를 꺼내든 직후.
“………아.”
그의 맞은편에 있던 벽에, 참혹한 장면이 떠오른다.
“황녀는 이미 내 손으로 죽였거든. 그녀의 심장은 제물로 바쳤고.”
“………”
“역시 황녀의 심장이더라. 몇초도 안되서 온 제국이 불타더라니까?”
심장이 도려내진채 참혹하게 죽어있는 황녀.
마지막까지 프레이가 갇힌 황실에 침입하려다가, 결국 폭주한채 어둠속으로 끌려가버리는 카니아.
끝까지 저항하다가 루비의 손에 순식간에 터져버리는 이리나.
밧줄에 목이 걸린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기도를 올리다가, 순식간에 올라간 밧줄에 메달려 몇분이고 발버둥을 치다 늘어지는 페를로체.
그리고.
“세, 세레나!”
“아윽.”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의 몸을 날려 프레이에게 향하던 저주를 막은, 세레나의 마지막 모습까지.
“조, 조작이야. 이, 이게 현실일리가…”
“다른 누구도 아닌, 황녀가 쓰던 기록구잖아?”
“아…..”
“그 어떤 조작도 막는 신비가 담긴 황실의 비보. 나라고 예외는 아니지.”
그 직후 나오기 시작한 온 제국이 화염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던 프레이가, 멍한 눈빛으로 루비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거 아니?”
그런 프레이에게 한발자국 다가서서, 그를 조용히 끌어안은 루비.
“방금 나, 내 부하들을 전부 죽이고 왔어.”
“…설마.”
그녀의 입에서.
“이쯤 되면 너도 알겠지.”
“안돼.”
프레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결말이, 현실이 된채로 튀어나온다.
“지금 이 세계에 남아있는 ‘생명체’는…”
“…그, 그만.”
“우리 둘밖에 없어.”
결의에 가득차있던 프레이의 눈이, 빠르게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지성체야.”
“그만…..”
“사랑해, 용사.”
그런 그의 입술에, 마치 소녀처럼 수줍게 입맞춤을 한 루비.
“이 아름다운 낙원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자.”
“거짓말이야… 전부… 거짓말……”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영원히.”
어느새 반응마저 사라진채 축 늘어진 프레이의 손을 잡은 루비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는다.
– 지끈…!
“……!?”
단 한번도 인생에서 겪어본적 없던 두통과 함께, 루비의 머릿속에 이상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어라?”
바로 그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