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17)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17화(517/524)
Episode 517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으득.”
어두운 방,
무릎을 꿇고 있는 적발의 소녀의 눈동자에 자신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여자의 모습이 비친다.
“로즈윈…”
“당신에게 채워진 마나 박탈 수갑 말이죠, 웬만한 마을 크기의 땅을 수십개는 살 수 있을 만한 값어치거든요?”
“지랄마, 이딴게 어떻게…”
“설사 드래곤이라 할 지라도, 풀려면 시간이 걸릴거에요.”
값비싼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채 싸늘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녀의 말대로, 소녀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리나 씨, 쓸데없는 짓은 그만 하시죠.”
“이익…”
“계속 마나를 방출해봤자, 다치는건 당신이라니까요?”
웬만한 구속구는 채 몇분도 안되어 불태워버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리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눈앞의 상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고개를 떨군 이리나가,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린다.
자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저택에 잡입을 했건만.
완전한 판단미스였다.
“”………..””
로즈윈의 옆에 앉아있는 프레이와, 의자 옆에 서있는 카니아.
저들의 강함은, 이리나가 상정했던 것 이상이였다.
“대체, 그 강함은 어떻게 얻은거지.”
“…네?”
하지만, 가장 예상외였던 것은 다름아닌 로즈윈.
망나니 프레이의 단짝. 제국 최고의 악녀라 불리는 그녀의 능력이였다.
“도대체 무엇을 바친거야? 영혼? 수명?”
“어, 음…”
미처 반격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정신을 잃게 한 그녀에게, 이리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뭔진 몰라도, 도를 넘은 사악한 짓이겠지.”
“아, 아닌데… 전 그냥…”
“추악하고 역겨워.”
“…..!”
이리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쓴소리에, 흠칫 놀라며 몸을 파르르 떠는 로즈윈.
하지만 이리나의 눈에는 그것마저 가식으로 보일뿐이였다.
“이제 날 어떻게 할거지? 옆에 있는 집사처럼 세뇌해서 노예로 삼으려고?”
이미 프레이와 로즈윈, 두 악당 콤비가 저지른 악행은 전 제국에 파다하게 알려져 있었다.
프레이가 권력과 부를 앞세워 사람들을 찍어누른다면, 로즈윈은 철저한 계락과 사방에 뻗어져있는 뒷세계의 힘을 움직여 쥐도 새도 모르게 대상을 옥죄인다.
프레이의 행패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예가 되었던가.
로즈윈의 손짓 한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던가.
그런 그들의 악행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것이, 바로 옆에 서있는 카니아를 세뇌한 것이다.
분명 그녀는 타도 프레이 모임에 속해있었거늘.
어느새부터 둘의 악행 전설에, 그녀의 목격담이 항상 붙기 시작했다.
분명, 혼자 무리를 하다가 둘에게 당한 것이리라.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 스륵…
“…읏.”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로즈윈을 노려보던 이리나가, 그녀가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떤다.
‘대체… 이제부터 무슨 짓을 당하는걸까.’
제국 최고의 악녀인 그녀가 직접 나선 이상, 자신의 처분이 그다지 곱게 끝날 것 같진 않았다.
그녀가 친히 고문한 사람들은 반쯤 미쳐버리거나 불구가 되는게 일상이라는 소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노예들이 마음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는 소문도.
사람을 장미꽃으로 만들어 화분에 심는다는 악취미가 있다는 소문도…
“저기, 로즈윈. 언제쯤 끝나?”
“으으… 자,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저와 프레이 님에게 하던 것 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만.”
“그러니까, 기기… 기다려 보시라니까요.”
“……?”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던 이리나가, 앞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대화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인다.
“이, 이게 왜 안되지… 분명 코드가 이게 맞을 텐데…..”
“잘 좀 해보세요.”
“모, 모르겠어요… 애초에 코딩은 벼락치기로 공부한거란 말이에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하지만, 이리나는 그들의 대화를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거지?’
“아까는 잘만 기절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이거랑은 달라요… 그냥 의식을 잃게 하는거랑 백업 파일에 있는 기억을 가지고 오는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
처음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암호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무언가가 미묘하게 달랐다.
“으으… 모르겠어요… 대체 왜 오류가 나는건지…”
“서, 설마.”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로즈윈을 관찰하던 이리나의 표정이 굳는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녀의 능력…”
로즈윈의 눈이 허공에 고정된채 마구 흔들리고 있고, 양 손은 마치 무언가를 두드리듯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세간에 떠도는 로즈윈의 비기.
상대한 자는 단 한명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그 무시무시한 주술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것이 분명했다.
“으음, 이를 어쩌죠. 도련님.”
“…생각해보니, 좋은 수가 하나 있어.”
불안한 눈빛으로 로즈윈을 바라보던 이리나의 시선이, 로즈윈을 바라보며 쑥덕거리기 시작한 카니아와 프레이에게 향한다.
“…예? 무조건 칭찬을 하라니요?”
“세레나한테 들은거야. 그게 바로 로즈윈의 각성 능력이라고.”
“그게 무슨…”
거리가 꽤 있었기에 대체 뭐라 속닥이는건지 알 길은 없었으나, 분명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은 아니리라.
“진심을 담은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맹점이야.”
“…….?”
“그래야 그녀의 본래 실력이, 꽃처럼 피어날 수 있…”
아마, 로즈윈의 주술이 성공하면 자신을 어떻게 구워삶을지 토론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 저기… 지지, 진짜 죄송한데… 조금만 쉬었다 해도 될…”
“응응, 물론이지.”
“자, 여기 앉으시죠.”
“어, 어어…?”
프레이와 카니아를 두려움 반, 의구심 반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던 이리나는, 그 다음에 일어난 상황에 멍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로즈윈. 팔좀 주물러 줄까?”
“어깨가 많이 뭉치신 것 같네요.”
“…으잉?”
갑자기 로즈윈을 의자에 앉힌 프레이와 카니아가, 그녀를 상전 모시듯이 대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기… 화 안내시나요?”
“응?”
“그,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제가 답답하게 굴어서…”
“”………””
의자에 앉아있던 로즈윈이 어쩔줄을 몰라하며 고개를 푹 숙인채 그리 중얼거리자, 프레이와 카니아의 시선이 잠시 맞부딪힌다.
– 스륵…
“……!”
그러더니, 이내 로즈윈의 머리에 손을 올리는 프레이.
“아냐. 넌 놀랄 정도로 잘해주고 있어.”
“제 휘하의 메이드들이 전부 당신 같으면 바랄게 없을 정도랍니다.”
“그, 그치만…”
갑작스럽게 시작된 칭찬 릴레이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로즈윈의 얼굴이, 이내 빨갛게 물든다.
“…저, 정말로?”
그러더니, 이내 수줍게 질문을 던지는 그녀.
“정말로… 잘하고 있나요?”
그런 로즈윈을 바라보던 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와 어깨를 토닥이자, 그녀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에, 에헤헤…”
‘…미친놈들인가?”
처음에는 로즈윈이 이들의 실세인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이리나였지만.
“음흠흠… 그, 그럼… 조금만 더 시도해 볼까요… 어차피 쉬어봤자 달라지는건 없으니…”
“잘한다, 잘한다.”
“정말 최고에요, 로즈윈 씨.”
“후, 후후…”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어처구니 없는 광경에 그저 입을 멍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볍게 2300줄 전으로 가서, 변수 선언부터 싹다 갈아 엎어야…”
떡 벌어진 이리나의 입에서,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이곳이 어디냐 묻는 말이 튀어나온건.
그로부터 불과 채 10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였다.
.
우연을 계기로 제정신이 돌아온 로즈윈의 조력자 시스템에, 글레어의 이름을 빌린 누군가가 몰래 보내준 코딩 기능.
그 코딩 기능을 이용한 이른바 ‘덮어쓰기’ 작전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였다.
“뭐야…? 즈, 즉위식은? 그 노망난 늙은이는?”
“성공이에요!”
“이리나, 정신이 좀 들어?”
프레이와 카니아의 기억을 수복할때까지만 해도, 가물가물해진 코딩 지식 때문에 다소 불안해보였지만.
세레나가 프레이에게 귀뜸했었던 ‘칭찬의 힘’으로, 각성상태에 돌입하는데 성공한 로즈윈.
억눌려 있던 본래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 시리즈 최고의 사기캐릭터에 의해, 주변인들은 성공적으로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다.
“프, 프레이…! 악몽을 꿨어요…!! 제, 제가 썅년이 되어서 당신을 막…!!”
“나, 나는 정실이 되는 꿈을 꿨어… 헤헤…”
“그래서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덕분에 세레나와 클라나, 그리고 페를로체가 합류한 것은, 이리나가 제정신을 찾은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였으며.
“…난 갑자기 존재감이 없어지는 꿈을 꿨다.”
“으르르?”
이솔렛과 루루가 합류한것은, 그로부터 12시간 뒤였고.
“무, 무엇이더냐? 너희들은…”
“아 좀, 가만히 있어봐 언니.”
“맞다, 얘 마왕이였지.”
“로즈윈, 이번에는 진짜 서둘러야 될거 같은데…”
“아아아아알겠어요. 자자자잠시만…”
그 모두가 힘을 합쳐, 잠시 루비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틈에 로즈윈이 그녀의 기억을 되돌려 놓았을 때는.
이틀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였다.
“그래서… 이제 뭘 해야 되는거지?”
“”””…………””””
그렇게, 불타버린 마왕성의 최상층에 나란히 둘러앉게 된 프레이와 히로인들.
“일단 기억은 전부 다 되찾았는데…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더냐?”
“그게… 음…”
“몰라, 우리도.”
“…하아?”
방금 막 정신을 되찾은 루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즈윈을 바라본다.
“어이, 넌 무언가 해결책이 있겠지.”
“자, 잠시만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음, 이번엔 한번 이렇게 코드를 짜보는건 어떨련지요…”
하지만, 로즈윈은 그새 프로그래밍을 어느정도 파악한 세레나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는 중이였다.
“쿨럭…!!!”
“여러분, 도련님이 또 피를 토하셨습니다.”
“아, 이게 아닌가봐요…”
“일단 회복부터 시키죠.”
그녀들이 용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프레이의 ‘패널티’.
다시금 재현되어버린 시스템의 위악자 패널티 덕분에, 무려 8개분의 스택이 동시에 터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있는 둘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과거가 재현된 평행세계 자체가 시련으로 찾아온것 같은데.”
그 짠한 모습과, 멋쩍은 표정으로 피를 토해내고 있는 프레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루비.
“…그렇다면, 시련을 끝내는 법은 정해져 있지 않나.”
그런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루비에게 집중된다.
“프레이가 나를 처치하면…”
“””안돼.”””
이윽고 이어진 그녀의 발언에,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거부의 의사.
“씁.”
“아야.”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다가온 프레이에게 꿀밤을 얻어맞은 루비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널 위해서라면 아직도 몇번이고 더 죽어줄 수 있다만…”
“진짜 혼난다?”
“…미안하다.”
진지한 프레이의 목소리를 듣고는 피식 미소를 지어보인 루비였지만, 그녀의 말은 사실이였다.
그녀가 겪어온 억겁의 죽음들은 모든것이 끝난 이후에도 뇌에 뚜렷히 박혀있었지만, 루비는 그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
자신이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영원히 새겨두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프레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을 던질 용의가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였다.
“”…………””
그리고 그것은, 로즈윈의 덮어쓰기 작전의 부작용으로 지난 회차들의 기억이 잠시 돌아온 다른 모두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참 지극정성이였네요.”
“네?”
“후후… 아니에요.”
거듭된 회차에서도 자신이 언제나 프레이바라기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낸 세레나는, 자신이 꾼 끔찍한 악몽을 가볍게 떨쳐낼 수 있었다.
“도련님이 더욱더 존경스러워지네요.”
“맞아요! 프레이는 대단해요!”
“…페를로체, 너도.”
“네?”
나머지 소녀들은, 잊혀지지 않을만큼 회차를 거듭하고 또 거듭해온 프레이와 페를로체의 고난을 조금이나마 몸소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서 그녀들이 느끼게 된 애정과 우정은.
“여러모로 힘들었겠어요, 페를로체 씨.”
“이리 와 보거라. 내가 안아주마.”
“…으아?”
“프레이, 너도.”
“어, 어어?”
루비가 지우지 않기로 마음먹은 기억처럼.
세레나의 한결같은 순애보처럼.
영원히 그녀들의 안에 남을 것이다.
.
“로즈윈, 지금 상황은 어때?”
“아, 프레이.”
갑작스레 열린 포옹의 시간이 끝나고, 나는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채 로즈윈에게 다가갔다.
이 이상한 평행세계에서 기억을 되찾은 뒤, 로즈윈에게 자초지종은 이미 들은 뒤였다.
시스템과 마탑주의 주도권 싸움이라.
마탑주가 이정도 스케일을 벌인것도 놀랍지만, 세상을 통제할 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정도로 시간을 번 시스템도 대단한 것 같다.
아니, 꼬맹이의 이름을 빌리고 있으니 일단 글레어라고 해야 되려나?
“아마 교착 상태에 빠진 것 같아요.”
“교착 상태?”
“네, 저희가 시련 도중에 기억을 되찾아서… 끝을 보기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해피엔딩도, 배드엔딩도 나오지 않겠군.”
“네, 정확해요.”
머리를 긁적이며 로즈윈의 말을 들어보니, 상황이 꽤나 재밌게 돌아가고 있는것 같다.
더미데이터인지, 방어벽인지 이해하지 못할 용어들이 많긴 하지만, 아예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마탑주는 이 세계를 배드엔딩으로 만들어야 자신의 목적인 ‘시간 돌리기’를 이룰 수 있고, 시스템과 우리는 해피엔딩을 맞이해야 그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럼, 결론적으로는 해피엔딩을 이루어내야 한다는건데…”
“그, 그 방법을 모르겠어요.”
문제는 여기서 야기된다.
세계에 주어진 ‘엔딩’을 보는 법은, 오직 마왕을 죽이는 것 뿐.
하지만 루비의 진실을 모두가 아는 시점에서, 마왕을 죽이는것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즉,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어, 어쩌면 좋죠…?”
“……..”
물론, 표면적으로만.
“해결책은 의외로 쉬워.”
“네?”
나와 모두는 이미 불가능을 가능케 한 전적이 있다.
이미 한번 성공을 했는데, 두번이라고 성공 못할 이유가 있을까.
“이 일의 원흉을 잡으러 가는거지.”
“그, 그렇군요!”
주어진 운명을 뒤집고, 바깥에서 온 우주적 존재를 쓰러트린 우리다.
“글레어와 마탑주가 있는 곳으로, 포탈을 열어.”
“네, 그럼…”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난이도는 조금 더 낮은 일을 하면 될 뿐이다.
“저, 저기.”
“응?”
나의 부탁을 받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채 허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바쁘게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한 로즈윈.
“…역시 저, 참 바보같죠?”
“무슨 소리야?”
그러던 그녀가, 잠시 손을 멈추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물어온다.
“그냥 꽃 한번 받으면 이렇게나 쉽게 풀리는 일이였잖아요.”
“…………”
그 말을 들은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 틀려.”
“네?”
“넌 자물쇠의 역할을 맡았던거야, 로즈윈.”
“……..?”
내 말을 들은 로즈윈이, 맹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코딩인가 뭔가 하는 저 작업은 저렇게 천재적으로 하면서, 이럴때는 참 어수룩해보인다.
뭐, 그것이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꽂히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로즈윈의 능력이자 매력이지만.
홀로 코딩이라는 작업을 마스터한 비결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책에 나온대로 속으로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칭찬한 것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앞으로도 로즈윈이 벽돌과 친구가 되지 않도록 항상 칭찬해줘야지.
“네가 꽃을 받았으면, 필연적으로 루비는 죽었겠지.”
“아…”
“이 세상에서 오직 너만이 그녀를 기억해주고 있었던거야. 그렇기에 넌 너도 모르게 꽃을 받지 않게 된거고.”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사실 확실치는 않은 이야기다.
로즈윈의 무의식이 정말로 꽃을 받는것을 막은 걸지도 모르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의 무의식은, 세레나조차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니.
“헤헤…”
하지만 내 말을 듣고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타자를 치는 로즈윈을 보고 있으니, 어째서인지 정답을 알것만 같다.
“잘한다, 잘한다…”
“흐헤…”
그렇게, 입이 귀에 걸린채 작업에 들어간 로즈윈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으니.
“…아, 그런데요.”
갑자기 내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그녀.
“생각해보니까, 이거 안될 것 같은데…”
“응? 어째서?”
“사실 아까 세레나 씨랑 비슷한 작전을 구상해봤거든요… 그런데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로즈윈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부연 설명을 해온다.
“저 둘이 머물고 있는 곳은 상위차원이거든요… 그, 그런데 거기에는… 말 그대로 상위의 존재만 갈 수 있어서…”
“아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이른바 자격의 문제였다.
“카, 카니아 씨는 아직 신격이 모자라서 못 가시고… 루비 씨는 자격을 스스로 내려둔 상태라…”
“걱정마.”
“…네?”
이런식으로 별의 신의 제안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설마 즉위식 바로 전날에 아무도 모르게 내게 찾아왔단 이유가, 일이 이렇게 흘러갈 것을 예상하고 있어서였나.
에이, 설마.
우연이겠지?
“좌표 설정은 했어? 로즈윈?”
“네, 네에.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신격이 없으면…”
– 파지직…!
“어, 어어?”
조용히 준비를 마친 나는, 로즈윈이 허공에 손을 뻗는 타이밍에 맞추어 실로 오랜만에 별의 마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벼, 별의 마나가…”
“당신? 언제부터 별의 마나가 돌아왔던 거에요?”
그러자, 그 낌새를 눈치채고 반응하기 시작한 그녀들.
“…그럼 이제, 정력 회복마법 안걸어도 돼?”
“츄릅.”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반응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
“기운이 뭔가 다른데…?”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루비와 이리나의 반응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련님?”
“당신, 좀 기운이 달라졌어요.”
“주인님의 몸에 흐르는거… 마나가 아닌것 같은데…?”
‘역시 눈치가 빠르네.’
그리고, 하나둘씩 이상현상을 눈치채기 시작한 히로인들.
하여간 눈치 하나는 다들 빠르다니까.
“얘들아, 나 잠시 다녀올게.”
“네? 어딜…”
모두에게 지긋이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행여나 같이 가자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황급히 로즈윈이 연 포탈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지직… 지지직…
별의 마나.
아니, 이젠 더 이상 별의 마나라고 부를 수 없는 기운이 몸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것을 보아하니, 역시 별의 신의 말이 맞는듯 싶었다.
내 별의 마나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신격 각성의 징조였다니.
혹시 글레어가 시간을 끈 이유가, 내 신격이 깨어나는것을 기다린걸까?
“…음.”
뭐, 아무렴 어떤가.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하며 포탈 안으로 들어서려던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한번 불러볼까.”
그저, 이 기회에 잠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모두의 해피엔딩이라는 인생의 목적을 달성한.
이젠 사랑하는 이들과 한가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그런 주제에 초인의 벽을 넘어 신격마저 각성해버린 나는.
지금, 과연 어떤 존재일까.
“…하하.”
반쯤은 호기심에, 나머지 반은 알 수 없는 확신에 차 실로 오랜만에 시스템을 열어본 나는.
“그럴줄 알았어.”
유쾌한 웃음을 흘리며, 포탈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이름: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 [능력: 힘 측정불가 / 마력 측정불가 / 지능 측정불가 / 정신력 측정불가] [특이사항: 별의 신격 각성중 ] [선함 수치: 측정불가]이름을 제외하면 옛날과 여러모로 달라졌지만.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은 나의 성향이 그런 나의 뒤를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성향: 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