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18)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18화(518/524)
Episode 518
“코메른 필리어드.”
“너, 너는…”
“당신이 졌습니다.”
“…….”
포탈에서 모습을 드러낸 프레이가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하자, 마탑주의 표정에 체념이 서린다.
“…네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교단놈들의 말뿐만인 신성이 아닌, 고차원적인 무언가가.”
“제대로 보신 것 같네요.”
“시간을 끈 것이, 설마 이것 때문이었나.”
그제야 글레어가 시간을 끈 이유를 깨닫고 한숨을 내쉬는 마탑주였다.
제아무리 위대한 대마법사인 그녀라 할 지라도, 이해범위를 초월한 권능의 작용까지는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분명 세상을 지배하는 신들은 사라졌을 터인데.”
“……..”
“네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라도 할 생각이더냐?”
“지금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아닐텐데요.”
해탈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던 마탑주가, 프레이의 고저없는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떤다.
방금전의 그와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프레이였다.
하지만 지금 포탈을 등진채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색 머리의 소년에게는.
알 수 없는 신비함과 위압감, 심지어는 경외감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으음.”
잔뜩 표정을 구긴 마탑주가,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기 시작한다.
만약 자신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힘을 소비해 대항한다면.
과연 그를 이길 수 있을까?
‘어림도 없겠군.’
도출 된 답은 ‘불가능’이였다.
3번째 세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 권한을 완전히 탈취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저 뒤에서 희미하게 미소를 흘리고 있는 ‘세계의 규칙’을 상대하는 것 만으로도 벅찬 상황인 지금, 이 불완전한 상태로 신격을 각성한 프레이마저 상대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해볼 수 밖에.’
하지만 마탑주는 이판사판이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오직 그를 다시 보겠다는 생각에 늘 불가능에 도전해왔던 자신이 아니던가.
“코메른 씨.”
“………”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모든 힘을 불태우며 마지막 전투를 시작하려던 그녀였지만.
“제안을 하나 하죠.”
“뭐?”
프레이의 침착한 목소리를 듣고는, 힘을 거둔채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모든 힘을 거두고, 세계를 원상복귀 시키십시오. 그런 뒤에는 스스로 지옥으로 향하시는 겁니다.”
“그게 무슨…”
그런 그녀에게 프레이가 건낸것은.
“그 대신,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
그녀에게 있어선,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였다.
“당신이 잊어버린 것을 일깨워 드리겠습니다.”
오래전에 버렸던 마탑주의 이름이 적혀진 낡은 일기장이, 어느새 프레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
“자비를 베푼 이유가, 뭐죠?”
“…네?”
일기장을 건네받은 마탑주가 모습을 감추고, 프레이와 세상의 규칙만이 남게 된 검은 공간.
“당신이 이곳으로 온 시점에서, 마탑주의 패배는 필연적이였는데. 거래를 빙자한 자비를 베푸셨잖아요.”
그 검은 공간에서 조용히 마탑주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프레이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온 세상의 규칙을 바라본다.
“자칫하면 모든것을 무너트릴 수도 있던 존재에요.”
“그렇죠.”
“그런데 왜 그런 선택을 하셨나요?’
그 말에 미소를 머금은 프레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애초에 즉위식 전날에 별의 신이 제게 찾아왔던 순간부터, 세상이 잘못된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신격을 포기할까봐 일부러 이런 상황을 유도하신건 아니신지요?”
“…그건.”
그 말을 듣고는,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프레이를 올려다보는 규칙.
“이번 일 자체는 의도한건 아니였지만, 어쩌다보니 결과가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음.”
“만약 싫으시다면, 회수해 드릴게요. 당신에게는 쉴 자격이 있으니.”
빤히 그녀를 바라보던 프레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한다.
“아뇨, 제겐 이 힘이 필요합니다.”
“…의외네요. 늘 한가로운 삶을 살고 싶다 입에 달고 다니셨으면서.”
“하하.”
멋쩍은 듯이 웃어보인 프레이가, 살짝 복잡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인다.
“제게 지켜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말입니다.”
“……..”
“이 차원의 최고신 정도는 되어야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시선을 조용히 옆으로 돌리며 중얼거리는 규칙.
“…이 차원 뿐만이 아닐텐데.”
“네?”
“아니에요.”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문 규칙을 힐끔 쳐다본 프레이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뭐, 아무튼… 마탑주에게 자비를 배푼건 사실입니다.”
“그렇군요.”
“부분적으로 전지전능해지는 바람에 그녀의 뒷이야기를 엿봤거든요.”
포탈의 바로 앞까지 걸어간 그가, 걸음을 멈춘다.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죠.”
“……..”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대가로 지옥에 갔으니, 적당한 처벌입니다.”
“그런것 치고는, 알게 모르게 해둔 조치가 너무 관대한것 같긴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던 규칙이, 미소를 지으며 내뱉은 말.
“…그것도 어찌보면 또 하나의 벌이니, 이번 한번은 눈감아 드릴게요.”
그 말을 듣고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프레이가, 포탈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라?”
“여기는… 즉위식?”
“아무래도 원래 세계로 돌아온것… 같습니다만.”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카니아의 말대로 어느새 세계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꺄악!?”
“사, 사람이 쓰러졌다…!”
“마, 마탑주님… 그리고… 저 마족은 누구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히로인들의 옆에는, 영혼이 사라진 채 싸늘하게 누워있는 리파엘과 마탑주가 축 늘어진채 쓰러져 있다.
“이거, 수습하려면 진 좀 빠지겠는데.”
반가움 반, 피곤함 반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레이가, 포탈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문득 뒤를 돌아본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글레어의 모습을 한 규칙이,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저, 이래봐도 1회차부터 얼마전까지 늘 당신이랑 붙어다녔거든요.”
“……..”
“가끔 놀러가도 될까요?”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허구한날 패널티 창을 띄워대던 시스템을 잠시 머릿속에 그려본 프레이가, 이내 질겁하며 손사래를 친다.
“제 주변에 질투많은 아내들이 너무 많은지라.”
“…….”
“겨우 정력… 아니, 신격을 되찾아서 평화를 얻었으니 이젠 그걸 지켜내야죠.”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꺼낼 뻔 한 프레이가 말을 마치고 포탈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세계의 규칙은 마지막에 하려던 말을 조용히 삼켰다.
‘죄송하지만…’
지금 자신이 잠시 빌리고 있는, 현 시점의 프레이와 유일하게 맞먹을 수 있는 몸의 주인이.
‘…그건 지킨다고 지킬 수 있는게 아니랍니다.’
성인이 되는 그 순간만을, 조용히 노리고 있다는 것을.
“가호라도 좀 걸어드려야 하나.”
.
– 부글부글…
“……..”
짙은 연기가 사방에 자욱하고, 독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끔찍하군.”
지옥에 막 첫발을 디딘 마탑주가 중얼거린대로, 지옥은 가히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한 곳이였다.
“살려줘…..”
“이제 그만…”
“요, 용서해줘…..”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죄인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듣던 마탑주가, 퀭한 눈으로 걸음을 옮긴다.
– 스륵…
그런 그녀의 손아귀에, 조그마한 일기장이 들려있다.
언뜻 보기에는 작고 평범해보이는 일기장이였으나, 그 안에 걸려있는 용량 확대 마법은 상당히 정교했다.
가히 위대한 대마법사의 일기장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드디어… 그를…”
기억을 잃은 그날, 그녀의 추억이 담긴 일기장의 앞부분은 가루가 되어 소실되었었다.
하지만 프레이가 건내준 일기장은 상한곳 없이 멀쩡했다.
즉, 그녀가 잃어버린 기억 전부가 멀쩡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영혼이 지옥에 떨어졌음에도, 마탑주는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작은 보물을 펼치기 시작했다.
– 라이칸 23년, 5월 7일.
[드디어 적격자를 찾았다.내가 원하는 마법을 충분히 실행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매개채다.]
“허?”
하지만, 그녀는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이 들기 전에 마법을 완성시켜야지.]“이상하군.”
내용 자체에는 이상한 것이 없었다.
페이지에 써진 글자의 필체는 그녀의 것이였으며, 연도를 표기하는 대신 폐기된 황제력을 고집하는 것 역시 그녀의 버릇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에겐 이 일기를 쓴 기억이 있었다.
“…왜 가장 최근 페이지가 나온거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글레어를 찾은 날 썼던 일기라는 것을 떠올려낸 마탑주가, 이내 자신이 일기장의 맨 끝 페이지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분명 자신은 잊혀진 기억이 있을 맨 앞페이지를 펼치려 했건만.
어째서 자신은 맨 뒷페이지를 펼치고 있단 말인가.
– 스륵…
“…….”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다시 맨 앞페이지로 손을 뻗었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불과 몇장 앞의 페이지였다.
– 라이칸 9년, 6월 7일
[잿빛의 숲에서 놀라운 것을 주웠다.]설마 드래곤인가?
믿기지가 않는다. 제국의 드래곤은 전부 전멸했을 터인데.
그렇다면 이 작은 녀석이, 서대륙에서 날아왔단 말인가?]
처음에는 짜증난 기색을 내던 마탑주였지만, 일기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어쩌면, 이녀석을 재료로 하면.]“재료같은 소리하고 있네.”
비행 마물에게 습격이라도 당한건지, 풀이 죽은채 낑낑 거리던 새끼 드래곤.
녀석을 처음 거두었을때는, 그저 그녀가 원하던 궁극의 마법을 성공시킬 재료로 밖에 보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그놈의 정이 문제였다.
– 6월 7일
[오늘은 실험체가 처음으로 옹알이를 했다. 그다지 귀여워 보이진 않는다.]– 6월 12일
[오늘은 실험체가 밥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드래곤 주제에, 굶어 죽고 싶은건가?나는 실험체를 기르는거지, 육아를 하는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험체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강압적인 방식을 쓸 수 밖에.]
– 6월 26일
[오늘은 드디어 실험체가 밥을 먹었다.지난 2주간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봤으나, 이참에 새끼 드래곤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보는것도 좋을 듯 싶었다.
그렇기에 수십에서 수백가지의 대조군을 준비해서 실험해본 결과.
녀석은, 빵과 우유를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드래곤 주제에 별꼴이군.]
어떻게든 정을 붙히지 않으려 노력하던 초반의 모습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을 보던 마탑주가 한숨을 내쉰다.
“그냥 이때 삶아먹던가 했어야 됐는데.”
– 라이칸 11년 3월 7일
[오늘은 실험체가 날 보고 웃었다.아니, 기분탓이겠지.
드래곤이 사람에게 호의를 보일리가.]
– 라이칸 11년 5월 3일
[요즈음 실험체가 계속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몇번 따돌려도 봤지만, 아예 마법까지 써서 날 찾아낸다.
덕분에 매우 귀찮다.]
– 라이칸 11년 9월 27일
[녀석이 자꾸 내 등에 메달린다.덕분에 계속 짜증이 난다.]
어느새 일기장에서 실험체의 호칭이 ‘녀석’이라고 바뀌어 있는 것을 본 마탑주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페이지를 넘긴다.
– 라이칸 12년 11월 4일
[녀석이 날 보고 어머니라고 했다.]평소의 침착한 필체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흔들린 자국이 묻어나있는 페이지가 넘어가고.
– 라이칸 13년 1월 2일
[녀석이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하는데 성공했다.하지만 그 여파로, 드래곤일때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다.
기분이 좋지 않다.
기억을 잃는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 자국이 몇배는 더 늘어난 페이지가 넘어간다.
– 라이칸 13년 6월 1일
[더 이상 정을 붙히기 전에, 녀석을 마탑에서 내보낼 생각이다.어린 소녀지만 피의 반이 드래곤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 라이칸 13년 6월 6일
[그녀를 내보내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자신의 이름을 물어왔다.나도 모르게 그 질문에 때때로 생각해왔던 ‘이리나’라는 이름으로 답해준 것은.
그리고 거기에 언제 버린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나의 성, ‘필리어드’마저 덧붙인 것은.
도대체 왜였을까.
아무래도 내가 점점 미쳐가는것 같은데.
더 미쳐버리기 전에, 그녀와 작별해야겠다.]
그리고, 자국과 글자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갔을 때.
“쯧.”
신경질적으로 일기장을 덮어버린 마탑주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중얼거린다.
“…노망이 났던게지.”
그로부터 불과 몇년뒤의 자신은, 빈털털이로 마탑에 찾아온 이리나를 내치지 못했다.
몇번이나 그녀를 실험체로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마음을 다졌지만, 결국 그녀는 이리나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기어이 마법의 진실을 알아낸 이리나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 때 까지.
“지옥에 떨어질 줄 알았으면, 그냥 재료로 써버릴걸.”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중얼거린 마탑주가, 이내 다시 일기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
하지만, 이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그녀의 표정.
– 리뮤엘 7년 5월 14일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 두명이 요즘 말썽이다.아카데미 교수일도, 그를 되찾을 연구를 진행하는것도 바빠 죽겠는데 말이지.]
그녀의 뇌리에 당장 일기장을 덮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름이 아브라함, 플로리아라고 했나?이대로 내버려둬봤자 결국 내 일이 되겠지.
아무래도, 일이 더 커지기전에 직접 손을 써야 할 것 같다.]
“으, 으으…”
– 리뮤엘 7년 5월 15일
무투가인 주제에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 쪽은 그다지 얻을게 없었지만, 여학생 쪽은 그야말로 기연이였다.
오직 스타라이트 가문에서만 발견된다는, ‘별의 마법사.’
별의 마나를 마법으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극도의 희귀 체질.
심지어 마나의 양을 보건데, 마검사였던 초대 용사를 제외한다면 역대 최강의 마법사가 될 재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일기장을 읽어내려가고 있던 마탑주가, 눈을 질끈 감으며 일기장을 덮으려 했지만.
[역시, 맞지도 않는 교수 노릇을 하길 잘했어.]“…크윽.”
그녀는 어째서인지 일기장을 덮을 수도, 페이지를 넘기는 것을 멈출 수도 없었다.
‘프레이… 그 녀석의 짓인가.’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자신의 실책이 담긴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것 밖에 없었다.
.
– 리뮤엘 11년 5월 15일
[두 년놈들이 결혼을 한댄다.아주 쌍으로 지랄들을 한다.]
– 리뮤엘 13년 5월 19일
[플로리아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덕분에 그녀에게 긴 휴가를 내 줄 수밖에 없었다.]
– 리뮤엘 13년 9월 7일
[플로리아가 내게 태어날 아이의 대모가 되어달라 부탁해왔다.당연하게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건 나 자신이 잘 안다.]
– 리뮤엘 13년 9월 8일
[플로리아가 출산 예정일을 보내왔다.왜 이리 귀찮게 하는건지.
보통 조수가 교수를 이렇게 잘 따르나?]
플로리아를 실험에 이용하겠다는 다짐은, 몆년간 활기찬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한껏 물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연구에 차질이 생긴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였다.
플로리아라는 성공률 높은 매개체에서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마탑주는, 점점 뒷세계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뒷골목의 흉악 범죄자들과 사형수들.
차마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뛰어난 매개채를 사용해 단 한번의 시도로 끝날 예정이였던 어두운 시험은, 어느덧 그녀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 리뮤엘 17년 12월 8일
[더 많은 실험체가 필요해.더 많은 매개체가.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해.]
사실, 그 시점에서 마탑주의 뇌리에서는 어느정도 자기합리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 마법사라면 손을 대어서는 안될 금단의 영역에 손을 뻗쳐 버렸지만.
그래도 자신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오직 흉악범들과 사형수들 뿐이라고.
그저 허울뿐인 변명이였지만, 그런 합리화로 인해 마탑주는 실험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 리뮤엘 18년 2월 3일
[기척도 없이 나의 방에 찾아온 두 흑마법사가, 비밀리에 제안을 해 왔다.내 연구를 조금 공유하는 대가로, 흉악범들과 사형수를 주기적으로 공급해주겠다고.
말이 워낙 가벼워서 그렇지, 내 연구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눈치를 채는데 시간이 그렇게나 오래 걸린 것을 보아하니, 둘다 상당한 실력자 같은데.
유스티아노 가문의 인장을 보여주는것을 보면, 보증도 확실한 것 같고.
아무래도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 리뮤엘 18년 2월 5일
[그들의 요청을 수락했다.됐다, 이거면 된거다.
플로리아를 실험에 이용한다는 생각은, 그만 접도록 하자.
오늘 플로리아가 보여준, 그녀를 쏙 닮은 아들을 본 순간 그렇게 다짐했다.
이름이 프레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질보단 양이다.
매개채를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소모하는 방식도 한번 구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합리화가.
플로리아를 사용하는 대신 범죄자와 사형수의 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뻗쳤을 때는.
이미 모든게 늦은 뒤였다.
[안돼. 안돼안돼안돼안ㄷㅡㅐ] [이건 꿈일꺼야. 꿈이여야만 해. 제발…] [그럴려던게 아니였어. 정말로. 나는 결코-]년도와 날짜조차 적혀있지 않은, 오직 드문드문 미친듯이 휘갈겨진 글자들이 이리저리 산재해 있는 구겨진 페이지들이 나타나자, 마탑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내 연구가 그녀를 죽였다.처음으로 내가 진행하던 실험에 회의감을 들게 만든, 나의 첫 제자.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모두의 빛이 되어주던 그녀가.
내가 알량한 생각으로 제공한 연구 때문에.
딴에 그녀를 위한답시고 내린, 추악한 자기합리와의 산물 때문에.
그런 끔찍한 몰골이 되어 죽었다.
이젠 펜을 들 여력도 남아있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존재인 나를, 내 손으로 없앨 시간이다.]
이윽고 이어지는, 회한이 잔뜩 묻어나있는 페이지에 도달하자 질끈 눈을 감는 그녀.
[…방금 아브라함에게서 연락이 왔다.그가 보내준 마법진은 비록 복잡하고 이해조차 안되지만, 스크롤에 복사하듯이 구현은 해낼 수 있을것 같다.
그것을 그에게 전해주는 것이 내 마지막 역할이겠지.]
그 페이지를 마지막으로 강제력이 풀리자, 눈을 감은 마탑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것이였구나.”
아브라함에게 정체모를 스크롤을 건내준 이후, 가장먼저 그 스크롤로 프레이에게 기억조작을 당한 사람이 바로 마탑주였다.
“프레이, 너는.”
눈을 질끈 감은 마탑주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내가 저지른 짓을 알고도, 날 용서했던 것이더냐.”
그녀가 스크롤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전해준 것은, 다름아닌 모든일의 진상이 담긴 편지였다.
프레이와 아브라함은, 그것을 읽고도 그저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는것에 그쳤단 말인가.
“……..”
차마 뭐라 말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를 악문 마탑주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자신이 되찾고 싶은 그를 위해, 세상을 뒤집어 엎을 각오까지 했던 그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자괴감이 든 적은 없었다.
“…플로리아.”
만약 플로리아가 현재 부활한 상태가 아니였다면, 마탑주는 그 자리에서 일기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미안하구나…”
이런 순간에서도 자기합리화를 하는 자신에게 역함을 느낀 마탑주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으으.”
그녀가 자신의 발로 향하고 있는, 지옥의 최심부.
모든 죄수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가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공간.
어느새 그곳의 입구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속죄는 하마, 반드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탑주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운다.
– 지지직…
아니, 그녀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세운것이 아니였다.
마탑주의 손에 들린 일기장이, 억지로 그녀의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 스륵…
“…이젠, 선택할 자유마저 빼앗긴 건가.”
그리고, 덕분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일기장의 페이지를 잡은 그녀.
“……..!”
초췌한 눈빛을 띄고 있던 마탑주가, 별안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무, 무슨…”
늙고 병든, 노쇠한 자신의 몸이.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무어냐, 이건.”
자신의 몸을 짓누르기 시작한 지옥의 마기 덕분에괴로움 반, 자신의 몸에 일어난 현상 덕분에 어리둥절함 반으로 자신의 몸을 살피던 마탑주.
– 리처드 3년 4월 12일
[오늘은 숲속에서 꼬마아이를 한명 주웠다.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이런일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별일이 다있군.]
그러던 그녀가, 어느새 자신이 일기장의 맨 첫번째 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한다.
[녀석의 이름은, ‘행크 다이머’ 이라고 한다.참으로 촌스러운 이름이네.]
지금으로부터 100년쯤 전의, 자신이 아직 마법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던 시절.
그녀가 존경받는 대마법사가 아닌, 제국에 쫒기는 마녀였을 때의 기억이 마탑주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