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19)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19화(519/524)
Episode 519
“으, 으으… 으아아….!!”
한때 외신이라 불렸던, 거대한 의지의 찌꺼기가 가녀린 소녀의 모습으로 변한채 불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
처음 지옥에 도착했을때 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끝이 아니다’라던가,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거다’ 라는 말들을 늘어놓던 그녀였지만.
영혼이 타오르는 고통에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바, 바깥의… 의지는… 아직…”
– 화르륵…!
“…그, 그만해애.”
그 전에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던간에, 인간이 되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밧줄마냥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불꽃들과, 살갖을 파고드는 수많은 칼날들에게 영원히 고통받을 수 밖에.
한때 전 차원을 위기로 몰아가던 존재의 처참하고도 비참한 말로였다.
“이, 이거 놔…! 내, 내가 누군지 알고…!”
“아파요… 제발 꺼내주세요…”
“으, 으으…”
그리고 최근 지옥에는, 외신과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프레이와 페를로체가 벌이던 끝없는 회귀가 끝남으로서, 휴면상태에 들어갔던 지옥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문제될것은 없었다.
원래는 본래 담당이였던 마신이 손을 때는 바람에, 그저 영혼을 용암에 담궈버리는 기초적인 형벌만 유지하며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지만.
고문과 저주에 있어서는 최고의 전문가인 카니아가 마신이 된 이후로, 기존보다 몇배는 더 철저하게 관리되기 시작한 지옥은.
지난 몇년간 쌓인 악한 영혼들을, 철저히 짓밟아줄 준비가 끝나있었기 때문이였다.
세계가 복구되며 자연스럽게 지옥으로 끌려온 리파엘.
그녀의 어머니인 르미에르와, 전 황제 라이칸, 황자였던 킬리언.
그 밖에 숙청당한 수많은 제국의 부패귀족들과, 프레이에게 목숨을 잃은 악인들이, 여러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심판의 장소.
그것이 현 지옥의 모습이였다.
“……..”
그리고, 그 장소의 맨 끝자락.
잔인하고 끔찍한 지옥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소문이 나 있는 ‘어둠의 문’ 앞에.
무릎을 꿇은채,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자가 있었다.
그녀는 다름아닌, 마탑주.
손에 들린 일기장의 첫페이지부터 이어지기 시작한 이야기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생한 연극마냥 재생되고 있었다.
.
그녀가 아직 ‘코메른 필리어드’라는 이름으로, 그와 동시에 사악한 마녀라는 멸칭으로 불리우던 시절.
“마마마마, 마녀…”
“흐음.”
자신의 영역인 잿빛의 숲에서 칩입자들을 사냥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코메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꼬마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니.”
“으, 으으…”
그녀의 영역에, 웬 꼬질꼬질한 꼬마 소년이 들어와 있었다.
녀석의 주장은, 너무나 배가 고팠던 나머지 아무도 없는 숲에서 열매를 따고 있었다는 것이였지만.
코메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거짓말은 나쁜거란다.”
“그, 그치만…..”
“특히, 내 앞에서 하는 거짓말은 말이야.”
어린아이를 삶아 먹는 마녀가 있다는 소문이 도는. 마을 사람들이라면 쳐다보는 것 조차 두려워 하는 자신의 영역에, 성인 남자도 아닌 꼬마아이가 열매를 따려고 들어왔을 리가 없었다.
물론 이 꼬마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긴 했다.
그녀의 영역에 대규모 출입 금지 마법이 전개되어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누가 보낸거지?’
“…딸꾹.”
“대답하지 않을거니?”
코메른이 싸늘한 목소리로 추궁을 하자, 식은땀을 흘리던 소년이 눈을 질끈 감는다.
– 파지지직…!!!
그리고 그 순간,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일그러지기 시작한 소년 주변의 공간.
“…재밌네.”
그 이상현상을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던 코메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준의 마법이라니.”
지금 녀석이 자신도 모르게 실행하고 있는 마법은, 다름아닌 순간이동.
아니, 그것보다 더 상위 차원의 마법이였다.
순간이동은 그저 정해진 좌표로 몸을 이동시킬 뿐이지만, 소년이 행하고 있는 것은 공간 자체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사실 결과는 별 차이가 없지만.
그 정확성과 기교는, 이미 마법에 대해서는 대적할 적수가 없던 코메른이 보기에도 훌륭한 것이였다.
“어딜 가니.”
“어, 어어?”
재밌는것을 보여준 대가로 그냥 보내줄까도 생각해봤지만, 어느새 꼬마에게 흥미가 생긴 그녀가 손을 뻗어 소년의 마법에 간섭을 한다.
“어째서…?”
생애 처음으로 마법에 실패한 소년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넌 갇힌거란다.”
“…..!”
소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
– 우물우물…
“…….”
식탁에 앉아 있는 소년이 허겁지겁 음식을 입안에 집어넣는다.
“흡… 켁켁…”
‘바보같네.’
그러다가 목이 막혀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코메른이, 녀석에게 물이든 컵을 건내며 조용히 속으로 생각을 시작한다.
‘…한번 키워볼까.’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집 앞마당에 나타난, 신기한 능력을 가진 거지 소년.
무료해진 일상에 나타난 새로운 장난감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암살자는 아닌 것 같고.’
자신의 능력으로 이리저리 노숙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이곳까지 도달했다는 소년의 설명은, 한번 믿어볼만은 했다.
녀석의 신발에 붙어있는 다양한 지방의 흙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쓸 수 있었다는 능력도 흥미로워.’
그리고 그녀가 몇번이나 소년의 도주 시도를 차단하며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매우 희귀한 케이스로 발견되는 ‘의문의 잠재력’의 소유자라는 것이였다.
보통 꼬마아이들로부터 나타나는, 개화시 어떠한 재능에 통달한 자가 될 수 있는 특이 체질.
먼 미래에 나타날 그녀의 마지막 제자.
글레어가 가지고 있던 특성이기도 한 그 희귀한 능력을 처음 마주한 코메른의 눈이, 어느새 탐구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역시, 키우는게 좋겠어.’
애초에 호기심과 탐구욕을 빼면 시체였던 그녀였기에, 코메른은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꼬마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행크.”
“……!”
“행크 다이머.”
이윽고 녀석의 이름을 말하자, 귀신에 홀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꼬마.
“그,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거죠?”
“나는 모든걸 다 알 수 있단다.”
어떠한 존재의 ‘진명’을 알아내는 마법은, 그녀가 즐겨쓰는 마법중 하나였다.
보통의 경우에는 대악마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대마법이였지만, 눈앞에 있는 꼬마의 기를 누를때도 유용했다.
“아, 아아…”
아니나 다를까, 꼬마의 표정에 두려움이 새겨진다.
그녀가 예상했던것보다 몇배는 더.
이름에 뭔가 트라우마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니야.”
“흐음?”
“그,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그것이 사실이였는지, 꼬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건 옛날에 버린 이름이라고!”
“그러니.”
“그래! 내, 내 진짜 이름은…!”
그리고 이내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가 주장하는 자신의 이름이라 주장하는 것은.
“풉.”
꽤나 웃겼다.
이름이 우스꽝스럽다거나 촌스러운건 아니였다.
그저, 자신의 진짜 이름이랍시고 가짜 이름을 대는것이 우스울 뿐이였다.
“거짓말을 참 좋아하는 꼬맹이구나.”
“으, 으읏.”
만약 그가 자신이 내뱉은 이름을 진짜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진명을 탐지하는 마법이, 그것을 반영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란다.”
“네, 네에?”
조용히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린 나는,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기도 모르게 다시 존댓말을 쓴 소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에 갇힌 이상, 넌 내 소유물에 불과하거든.”
“…히익.”
“앞으로 내 눈에 잘 들어야 할꺼야.”
그제야 자신이 아주 나쁜 마녀에게 잡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녀석이, 울먹거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널 잡아먹어버릴테니.”
“…..!”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시니, 소년이 잔뜩 몸을 움츠러트리며 벌벌 떨기 시작한다.
“후후.”
이번에 흥미를 붙인 장난감은 과연 언제쯤 질리게 될지 궁금해 하며,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리는 코메른이였다.
.
“그래서, 언제 잡아먹으실 겁니까?”
“…시끄럽다.”
그날 내가 내린 결정은, 인생 최고의 오판이였다.
“살을 찌운답시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대접해 주실때는 언제고, 요즘은 연락조차 뜸하시네요.”
“………..”
그 꼬마아이가, 이렇게나 건방지게 자랄줄은.
“아무튼 잡아먹으실 거면 말씀해주시죠, 목욕이라도 해두게.”
“시끄럽데도.”
그리고 내게 마법을 배운지 10년만에 날 능가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서 황궁으로 꺼지거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느냐.”
“어차피 공간이동을 하면 그만입니다. 시간은 충분하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허, 참.”
그리고 질렸다는 명목으로 녀석을 집에서 내쫒으니, 불과 몇년뒤에 제국을 침략한 용을 물리친 영웅이자 선망받는 대마법사가 될 줄은.
그런 위대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꼬박꼬박 저녁을 먹으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제발 나가거라.”
“싫습니다.”
“오랜만에 실력을 겨루어볼테냐?”
“그건 사양하죠, 그땐 진짜로 죽는줄 알았으니.”
“그럼, 뭘 해야 나가줄테냐.”
“그냥 조금만 더 잡담이나 나눠주시죠. 저나 스승님이나, 남들에게 어려운 존재가 된 이상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건 매한가지 아닙니까.”
“누가 네 스승이냐.”
“하하.”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치는 녀석을 조용히 노려보던 나는.
“…그러고보니, 궁금한게 하나 있긴 하구나.”
“스승님이 말입니까? 그것 참 놀라운… 아윽.”
“한시라도 입을 놀리지 않으면 입에 쥐가 나는 저주라도 걸려있는게냐.”
“그럴지도요?”
“말을 말자. 아무튼…”
이왕 이렇게 된거 늘 궁금했던것을 물어보기로 마음먹은채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지금 네가 사용하는 이름은 무어냐?”
“………”
그러자, 나불대던 그의 입이 급격히 닫힌다.
“어째서 넌, 진짜 이름을 버린거지?”
사실, 그러한 질문을 한 이유는 내 타고난 궁금증도 있었지만.
녀석과 멀어지기 위함도 있었다.
“말해주지 않을거면 앞으로 찾아오지 말거라. 난 세상에서 비밀이 제일 싫으니.”
무려 10여년간 숨겨오던 비밀이다.
아무리 녀석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하겠지.
한가로운 시간을 방해하는 불청객을 내쫒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화제였다.
“다이머 후작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증발해버린, 비운의 가문.”
“..뭐?”
“…전, 그 가문의 마지막 후예였습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건만.
“어느날 저택에 침투한, 복면을 입은 자들이 집안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했죠. 당시 꼬마였던 저는 아무것도 못한채 숨어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녀석은, 이번에도 내 예상을 빗나갔다.
“하나둘씩 생존자가 사라져가고, 결국 피묻은 손이 숨어있던 제 옷장의 손잡이에 닿은 순간.”
“……..”
“어느새 전 저택의 마당에서 뒹굴고 있더군요.”
평소의 순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녀석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금껏 녀석에게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눈빛이였다.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거든요. 제발 이 곳에서 탈출하게 해달라고.”
“그런…”
“스승님이 말하신 잠재력이, 그 순간을 계기로 각성했던거겠죠. 아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그런 나를 보던 녀석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날 이후로, 이곳저곳을 숨어다니며 저는 다짐했습니다. 이름을 숨긴채, 어떻게든 그날의 일의 진상을 알아내겠다고.”
“…그랬던 거였군.”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가명은, 그런 연유에서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잠깐, 내 일기장은 왜…”
그렇게 말한 녀석은, 갑자기 책상에 있던 내 일기장을 집어들더니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혹시 알아보시려나요.”
“…이건?”
“제가 즐겨쓰는 비밀 암호로 적은 제 본명입니다. 제 가명은, 이 암호를 적당히 섞어 발음한거죠.”
“………”
이윽고 녀석이 내민 일기장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녀석의 진지한 목소리가 날아든다.
“…가명을 쓰더라도,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수첩에, 정확히는 녀석이 적은 문자에 쏠려있었다.
녀석이 어떻게 이 문자를 알고 있는걸까.
이 문자는, 몇백년 전에 소실된 고대 마족 언어일지언데.
아직까지 이 문자를 쓰는 이는, 옛날에 알고 지내던 선셋 가문의 가주밖에 보지 못했다.
“제 가문에서 교육받은 암호였습니다. 어릴때 동생과 이걸로 자주 비밀 편지를 주고받고는 했죠.”
이해할 수 없는 의문에 궁금증이 생겨 녀석에게 질문을 던져보니, 돌아온 답은 그러했다.
이로서 어떻게 녀석이 이 문자를 알고 있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의문은 존재했다.
다이머 후작가는 대체 왜 이 문자를 계승하고 있던 걸까?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아, 저기.”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질병인 미칠듯한 호기심 덕분에 또다시 질문은 던져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벌써?”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공교롭게도 정보원에게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드물게 아쉬움을 표하며 물었지만, 녀석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진상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조사를 해왔던게냐?”
“당신이 절 강하게 만들어준 이후부터, 쭉.”
실로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그를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그럼…”
때문에 어째서인지 들기 시작한 외로움을 억누르며, 현관으로 향하기 시작한 녀석에게 손을 흔들던 나는.
“……..!”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느새 내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하하, 스승님도 방심을 하시는군요. 그걸 눈치채지 못하시다니.”
“이게 무어냐…?”
녀석이 내가 이야기에 빠져든 틈을 타 공간이동 마법으로 끼워둔게 분명한 반지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는, 이내 녀석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고.
“뻔하지 않습니까?”
녀석은 참으로 뻔뻔하게도 답했다.
“청혼 반지입니다.”
“…….!?”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던 제 비밀을 들으셨으니, 책임을 지셔야죠.”
잠시 정지된 뇌가 삐그덕거리며 굴러가기 시작할 때 쯔음에, 내가 얼빠진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너, 너… 내가 몇살인지는 알고 있더냐?”
내 인생에서 가장 바보같은 말이였을 것이다.
“에, 엘프 여왕이 내 오랜 벗이다. 그런데도…”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윽고 다시 날아든 녀석의 뻔뻔한 답에, 멍한 표정을 짓던 나는
“당신에게 길러진 쥐뿔도 없던 꼬맹이는,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군요.”
“………..”
“뭐,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잡아먹으시던가요.”
그렇게 말하며 저택을 나서는 녀석을, 그저 조용히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일을 보고 돌아올때까지, 둘중에 하나는 골라 두시죠.”
그때 녀석을 잡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녀석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돌아 오지 않았으니까.
[제국 마탑 붕괴! 사상자 수백명 예상… 충격] [현재 유력 용의자는…]“…허?”
며칠 뒤에 신문에 대문짝하게 실린 녀석의 사진 아래에 쓰여진 문구가, 그 사실을 내게 알렸다.
.
“…오랜만이군요, 스승님.”
“……..”
그로부터 몇년 뒤.
“드디어 절 잡아먹으러 오신 겁니까?”
“…닥치거라.”
이번에는 제국 수도에 나타난 녀석을, 나는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였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는게냐.”
그날 이후로, 별안간 폭주해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한 녀석을 제국은 감당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잿빛의 숲에 은거하고 있던 나에게까지 토벌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이제와서 오명을 벗을 생각은 없었다.
어렸을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제어하지 못하고 몇번 사고를 일으킨 결과, 능력을 제어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을 때는 이미 모두가 날 마녀라 손가락 질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칭호에 익숙해질만큼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내 첫 제자를, 그를 손가락질 하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분명 무언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이러는 데에는, 전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 파지직…!
“…윽.”
그렇게 생각했건만.
“옛 정을 봐서 처음은 빗맞혔습니다만.”
녀석이 날린 공격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발견한 나는.
“이래서 진작에 정을 때려 했는데.”
조용히 내가 만들어낸 과오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몸 성히 이곳을 빠져나가진 못할거다.”
.
“쿨럭, 쿨럭…..”
“확실히 몸이 성하진 않군요. 이거, 꽤나 치명상입니다.”
전력을 쏟아부었건만, 나는 결국 녀석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으윽…”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는, 처음 나를 꺾었을 때보다 몇배는 더 강해져 있었다.
“…대체, 왜.”
녀석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모든것이 끝났음을 직감한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녀석의 다리를 잡고 질문을 던졌다.
“왜 이런짓을 한 것이냐…”
“……..”
내 손에 그때까지 끼워져 있던, 녀석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 가문을 멸문한 범인을 찾아서입니다.”
꺼져가는 눈빛으로 그 빛을 눈에 담고 있으니, 녀석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무슨…”
“제 가문을 비밀리에 학살한 이들은, 다름아닌 제국이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황망하게 그를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제 가문에는, 사실 마족의 피가 흐르고 있더군요. 아니,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가문 전체가 잠재적 반마족이였습니다.”
“……….”
“하지만, 단연컨데 제국을 적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제국에 복수의 칼날을 겨누려 한 것은 오래전의 선조들이였을 뿐이고, 제 대에서는 자신들이 반마족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증오와 분노였다.
녀석의 눈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생소한 감정이였다.
“하지만 우연을 계기로 그 사실을 알게 된 황실은, 조금의 위험요소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설마…”
“그날 문라이트 가문의 암살부대가 움직인 것은, 다름아닌 비밀리에 이루어진 황실의 명령 때문이였습니다.”
그날, 그리고 지난 몇년간 그가 알아낸 진실들은, 참으로 참혹한 것이였다.
“저는 제국을 엎을 것입니다. 당신도 아실겁니다. 지난 몇백년간, 제국이 빠르게 부패하고 있다는 것을.”
녀석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저와 같은 존재들을 다시 불러모을 겁니다. 곧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실 마왕을 위해, 이 증오스러운 제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행크…”
그렇게 말하며 나의 손을 뿌리친 녀석은, 손을 하늘 위로 높게 치켜들기 시작하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젠장.”
대체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진의 모습이 심상치 않은것을 보아하니.
저대로 내버려 두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것이 분명했다.
“팔자에도 없는 영웅 노릇을 하게 되었구나.”
조용히 손에 마나를 끌어 모으며, 사방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던 제국민들을 둘러보던 나는.
– 파지직…!
한때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내 마당을 기어다니던 꼬맹이에게,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아마 남은 힘을 전부 쓰면 공멸 정도는, 최소한 저 마법을 막을 수는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녀석의 심장에 손을 뻗었고.
– 쿠과과과광…!
이내, 빛이 우리 둘을 감쌌다.
.
“헉… 헉…”
“…………”
사방을 가득 메운 빛이 사라지고, 꺼졌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공격의 결과를 확인하던 나는, 이내 얼빠진 목소리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끄으….으…”
“무, 무슨…?”
녀석이, 심장이 꿰뚫린채 쓰러져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녀석은 내 공격에 대비를 하고도 남을 만큼 체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내 공격을 무방비하게 허용해버리고 말았다.
“무슨 짓이냐, 이게.”
당장에라도 꺼질것 같은 정신을 억지로 붙잡은 나는, 녀석의 멱살을 붙잡은채 질문을 던졌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인게야…!”
“하하, 하…”
그러자 녀석의 얼굴에 떠오르기 시작한.
너무나 그리웠던, 그 건방진 표정.
“마법을 완성시켰습니다.”
“……..!”
그 말에 다급히 하늘을 올려다 본 나는, 이내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저건…..”
나조차도 감히 구조가 이해가 가지 않는 대규모의 고대마법이, 상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1000년전의 마왕이 고안했던, 인과율 조작 마법입니다. 원래는 용사에게 쓰일 예정이였지만, 보기좋게 실패하는 바람에 이렇게 저희 둘에게 쓰여지게 되는군요.”
“……..”
“지난 몇년간 바쁘게 돌아다니며 찾아낸 보람이 있었습니다. 일회용만 아니였다면, 곧 나타날 2대 용사에게도 써보았을 텐데…”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녀석이,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흘린다.
“뭐, 그래봤자 실패했겠죠? 용사에겐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하니…”
저 마법진이 발동된 이상, 녀석의 승리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녀석의 표정에 떠오른 이 건방진 표정은 무엇일까.
“지난 몇년간, 복수를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참으로 유감스러운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해답은, 이윽고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믿을 수 없는 발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국이 당신의 토벌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제국이… 나를…”
“아마, 반기를 든 저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내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 것은, 그 시점이였다.
“너, 너어…”
“하지만 이걸로 모두가 알테죠. 당신은 저의 적이라는 것을.”
“해, 행크.”
“저를 물리친 유일한 존재인 당신을… 이젠 제국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제야 녀석의 의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 슬슬 이별입니다. 스승님…”
“아, 안돼. 기다려.”
“저희들의 관계에 대한 모든 정보는, 오늘부로 세상에서 사라질 겁니다.”
“기다려!!”
“물론, 당신과 저의 기억에서도.”
뒤늦게 상공의 마법진에 간섭해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나, 나도 마왕군에 가담하마! 그러니…”
“아쉽지만, 저희는 마족만 받아서 말입니다…”
“행크, 이러지 말거라. 제발…”
나는, 어느새 눈에서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닦아내며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다.
“잡아먹던가, 결혼하던가. 두,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
“이런 건, 선택한 적이 없단 말이다…!”
어느새 빛을 발하기 시작한 마법진 아래에서, 나는 녀석을 품에 안은채 한참을 울부짖었고.
“이곳을 떠나… 부디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난, 나는 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뒤집혔다.
세상이 두려워 하던 내가 제국의 존경받는 영웅이자 대마법사가 된 것은.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 내 첫번째 사랑을 되찾기 위해, 마나 소모가 극심한 젊음의 유지마저 포기한채 오직 힘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날 이후의 일이였다.
.
“…하.”
눈을 번쩍 뜬 마탑주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본다.
“…….”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지옥의 풍경이, 그녀의 뒤에 펼쳐져 있었다.
“그래.”
잠시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던 마탑주가, 이내 초연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그렇게 된 거였구나.”
손에 들려있던 일기장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채였지만.
잊고 있던 모든 기억이, 이미 마탑주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나 되찾고 싶던 ‘그’의 얼굴도, 이름도, 관련된 모든 진실도 말이다.
“그렇게 된 거였어…”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만나러 가는 대신 앞에 있는 ‘어둠의 문’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지옥의 맨 끝으로 걸어들어가 속죄하는 대신,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
프레이와 했던 계약을 이행할 때였다.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다만.”
– 끼이익…
“내겐 그럴 자격이 없지.”
천천히 어둠의 문을 연 마탑주가, 그 안으로 발을 내딛은 순간.
– 샤아아…
이내 그녀의 사방을 감싼, 칠흑같은 어둠.
“…으음.”
지옥의 끝자락에서 그녀를 반긴것은, 그야말로 완전한 어둠.
그 어떤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의 공간이였다.
“가장 무섭다고 불릴만 하군.”
일반적인 악인의 영혼은, 종신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끝없이 고통받으며 정화되어 지상으로 돌려보내진다.
하지만 이 공간은, 그저 영혼이 완전히 정화될 때 까지 공허에 방치할 뿐이였다.
당연하게도 강제로 영혼에 고통을 주며 정화를 하는것보다, 배의 배로 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
“윽…”
벌써부터 공허가 가져오는 무력감과 공포감에 짓눌리기 시작한 마탑주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행크…”
그러던 그녀가.
“…아니.”
평생을 그리워하던 이름을, 두려움에 가득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려던 그 순간.
“제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
그녀의 옆에서 울려퍼진, 너무나도 듣고 싶던 목소리.
“너, 너…!”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마탑주의 눈에, 어느샌가 그녀의 옆에 서있던 한 남자가 들어온다.
“네가 어떻게 여길…”
“당신이 여기에 올거란 소식을 듣고, 미리 와 있었습니다.”
“…뭐?”
“프레이 씨가 귀뜸해주시더군요. 마침 저도 속죄를 할게 참 많아서 말입니다. 지옥에 보내달라 요청했습니다.”
여전히 뻔뻔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의 말을 들은 마탑주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자.
“그건 그렇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지는 그.
“혹시 잡아먹으실겁니까?”
그 말을 들은 코메른이, 실소를 터트리며 답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것 같구나, 멍청한 녀석아.”
“다행이군요. 이제야 다시 만났는데, 잡아먹히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껴안는 두 영혼.
“너무 기쁜 동시에 너무 슬퍼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청혼은 성공했는데 결혼식을 올릴수가 없으니까요. 제 소원이였는데 말입니다.”
어느새 마탑주의 손에 다시 나타난 반지가, 그런 그들의 사이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여간, 입만 살아서는.”
“하하하…”
가장 잔인하면서도 관대한 형벌을 맞이한 두 영혼의 이야기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
한편 그 시각, 원래대로 돌아온 세계의 제국.
“…속죄를 완전히 끝내면, 역시 풀어줘야겠지.”
“프레이, 부르셨나요?”
싸늘하게 식은 마탑주와 리파엘의 시체가 들것에 실려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프레이의 옆에, 로즈윈이 다가선다.
“로즈윈,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그러자 고개를 돌린 프레이가, 품에서 마탑주의 낡은 일기장을 꺼내 펼치더니 이내 한 단어를 가리킨다.
[hank dimer]“이건 어떻게 읽는거야?”
“아, 이거요?”
약간은 서툴게 쓰여진 그 문자는, 로즈윈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였다.
“행크 다이머라고 발음하는 거랍니다!”
때문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한 로즈윈.
“그래? 그럼…”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프레이가 가볍게 종이를 두드리자, 별안간 그 이름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한다.
“이건 어떻게 읽는거야?”
이윽고 종이에 나타난 이름을 가리킨 프레이가 질문을 던지자, 헤실헤실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길을 받던 로즈윈이 다시한번 종이를 바라보았고.
“이건…”
아까와는 달리 펜으로 뭔가를 끄적여가며 고민을 하던 그녀가, 이내 새롭게 나타난 이름 옆에 발음을 적어 프레이에게 건낸다.
“음.”
“그런데, 갑자기 이런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그 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프레이에게 로즈윈이 질문을 던지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 프레이.
“그냥, 확인할게 있어서.”
“그런가요?”
“아무튼 완전 잘했어, 로즈윈.”
“…후훗. 이런건 기본이거든요.”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로즈윈이, 프레이에게 칭찬을 받고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데, 뭔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긴 로즈윈.
“뭐, 칭찬을 받았으니 아무래도 좋지만요!”
“…아하하.”
하지만 결국 떠올려내지 못하고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말투로 종이를 뒤로 던져버린 그녀가 이내 프레이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demirkhan(드미르칸)]그들의 뒤에서 팔랑이던 종이가, 익숙한 이름을 품은채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있었다.
외전 – 마무리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