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2)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2화(52/524)
Episode 52
“여, 여기 말이에요… 왜 이렇게 변한거죠?”
“…글쎄.”
“글쎄라니요! 이곳에 대한 비밀을 안다고 한건 당신이잖아요!”
내 앞에서 앞장서가던 페를로체가 바들바들 떨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태양신 교단의 성녀인데다가 더 무서운 것도 전회차에서 경험해 봤을텐데, 그녀는 아직도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물론, 어두운 곳을 싫어하는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페를로체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그, 그런데 당신… 길은 아시는건가요?”
“…아니까, 앞으로 가기나 해.”
물론 페를로체의 목숨이 달린것 치고는 그녀를 맨 앞에 세운채 걸어가고 있기는 하다.
덕분에 상당히 졸렬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몸상태가 완전히 망가져 있는 내가 앞서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약해진 나보다는, ‘태양신의 가호’가 있는 페를로체가 앞서가는게 오히려 우리의 안전에 더 유리할테니 말이다.
“앗…! 길이 두개로 갈렸어요…!”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길이 두개로 갈렸다. 그걸 보아하니 역시나 이 미로는 아주 전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한쪽은 정답, 다른 한쪽은 오답이거나 함정이라는 낡아빠진 클리셰 말이다.
“프, 프레이! 어느쪽으로 가야하죠?”
“음…”
스택이 하나라도 적었으면 페를로체의 시선을 잠시 돌리고 갈림길 두개에 참격을 날려 확인해봤겠지만, 지금 내 몸상태로는 무리다.
그러니, 차선책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너, 내 뒤로와.”
“네?”
“잠시 뒤쪽을 경계하고 있어.”
갈림길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페를로체를 잡아끌어 뒤로보낸 나는, 그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뒤쪽을 쳐다보기 시작한걸 확인한 후 별의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흐읍…”
그렇게 한참동안 별의 마나를 앞쪽으로 전개해보니, 왼쪽의 입구에서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른쪽이야.”
그 이질감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눈을 날카롭게 뜨며 오른쪽을 가리켰는데, 갑자기 왼쪽 통로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나는 재빨리 페를로체를 데리고 오른쪽 통로로 뛰어들려고 했지만… 아까까지 뒤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던 그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페를로체!?”
“네?”
당황한 내가 큰 소리로 외쳐보니, 놀랍게도 왼쪽 통로에서 그녀의 대답이 돌아왔다.
기겁을 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 왼쪽 입구로 뛰어들어보니, 온몸이 돌가루로 범벅이 된 페를로체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이런 미로는, 그냥 다 부수고 가면 되는거에요!”
“…하.”
그녀의 앞에는, 빠른 속도로 굴러왔을게 뻔한 돌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대로 앞으로 가.”
괜히 마나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해탈해진 나는, 전략 병기인 페를로체를 앞세워 빠른 속도로 미로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 뚜둑!
“…그런데, 교단의 지하실에 언제 이런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 진 걸까요?”
그렇게 5번째 갈림길을 돌파한 무렵, 난데없이 나타난 언데드 오크의 목을 꺾어 버린 페를로체가 축 늘어진 오크를 든채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틈틈히 만들었겠지.”
“그렇군요… 역시 교단의 부패는 꽤나 오랫동안 지속된 거였어요.”
이윽고 내 답변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성력을 흘려보내 언데드 오크를 정화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2인자의 짓인가.’
물론 페를로체에게 말해준 건 해답이 아니다. 아무리 태양신 교단이라 할 지라도 이런 거대한 지하 공간을 만드는건 무리인데다가 들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니 이러한 일은 필히 마법적 능력이 개입하였을 것이고, ‘메인 퀘스트’ 판정을 받을만한 일이라면 ‘2인자’의 ‘공간 지배 마법’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앗, 이것좀 봐요!”
그러한 추측을 하고 있는데, 앞서가던 페를로체가 우뚝 멈춰서더니 신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앞쪽을 바라보니 계속 이어지던 갈라진 지하실의 벽이 아닌 새하얗고 맨들맨들한 대리석 벽이 사방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붙어있던 태양 모양 장신구에서는 따듯한 빛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건, 설마 태양빛인가?”
“제 몸에 태양빛이 감도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장신구에서 태양빛이 흘러나오는 걸까요?”
그녀의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장신구를 때어내려던 나는, 이런 곳에서 수상한 물건을 만지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걸 떠올리고 갈길을 재촉하려 했으나…
“우와… 신기하다…”
그런 내 판단이 무색하게도 페를로체는 이미 장신구 몇개를 떼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그거…!”
– 철컹!!
“…젠장.”
그런 그녀에게 다급히 장신구를 원래있던 공간에 돌려 놓으라 소리를 치려 했지만, 어디선가 이상한 기계소리가 들려왔다.
“꺅!?”
당황한 나는 페를로체를 감싼채 검을 뽑아들고 잔뜩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 당신… 뭐하세요?”
그러자 멍하니 나를 쳐다보던 페를로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니, 오늘따라 좀 예뻐보여서.”
덕분에 나는 그 즉시 표정을 음흉하게 바꾸며 페를로체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놔요.”
그러자 그녀가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며 날 밀쳤다. 태양신의 가호를 써서 그런지 살짝 밀쳤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지 않았다면 날아갈 뻔 했다.
“…크헉.”
하지만 날라가지만 않았을 뿐이지 꽤나 멀리 밀려나버린 나는, 벽에 거세게 부딪히고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 끼이익…
“…음?”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내가 벽에 부딪힌 곳에 숨겨져있던 문이,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페를로체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향했다.
“…여기,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것 같아요.”
“뭐?”
그런 그녀를 다급히 말리려고 한 나는, 이곳을 본적이 있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그리고, 잠시 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 태초에 태양신, 달의 신, 그리고 별의 신이 있었다.
“이게, 이게 왜 여기있어…?”
여기저기 금이 가고 색이 바랜 석판에, 다음과 같은 ‘한글’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여긴 ‘2인자’가 창조한 공간이었을텐데…? 대체 여기에 왜 선조님의 언어가…”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당황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이내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페를로체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중얼거렸다.
“아! 맞다! 예전에 서대륙에 갔을때 본적이 있어요!”
“…네가 서대륙에 갔었다고?”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페를로체는 이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교단과 함께 순례를 갔었는데요… 태양신 교단의 서대륙 지부에서 이곳과 상당히 비슷한 공간들을 관리하고 있었어요.”
“흐음…”
“왠지 모르게 신기해서 구경을 하려고 다가갔는데… 1급 비밀이기에 저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거 있죠? 성녀인 저도 알 수 없는 비밀이라면 중요한 비밀인게 분명해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반짝이는 성녀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이내 시선을 석판으로 돌려 나머지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 세 신의 가호 아래 한동안 세상은 균형과 평화로 가득했으나, 위기는 예기치 않게 닥쳐왔도다.
“…위기?”
– 어느날, 태양이 반으로 갈라지며…
석판의 내용은 그곳에서 끊켜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뭘 보시는건가요?”
“여기 이상한 문자가 있어서 말이지.”
뒷내용이 없다는것에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페를로체가 손에 들고 있던 햇빛이 새어나오는 장신구를 들어 석판을 비추기 시작했다.
“음… 이게 뭐죠? 이런 문자는 한번도 본적없…”
– 쿠구궁!!!
“꺅!?”
그렇게 햇빛으로 비추어진 문자를 보며 중얼거리던 페를로체는, 갑자기 방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비명을 질렀다.
“…무, 무너져요!”
“젠장.”
이윽고 방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어째서인지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석판을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페를로체와 함께 출구로 몸을 날렸다.
‘…생각치도 못한 실마리를 얻었어.’
이윽고 돌무더기에 파묻힌 방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예언서에는 ‘달의 신’이나 ‘별의 신’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었다. 그런게 있었다면 선조님이 적어 두지 않으셨을리가 없다.
하지만, 방금 내가 본 석판에는 분명히 ‘한글’이 적혀져 있었다.
즉, 예언서와 시스템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은 것이다.
‘아무래도, 서대륙은 무조건 방문해봐야겠네.’
어쩌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기대에 가득찬 나는, 최대한 빨리 서대륙에 방문해봐야겠다고 다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으으… 엉덩이 아파…”
“그거 내놔.”
“아, 안돼요!”
이윽고 자리에 주저앉아 엉덩이를 부여잡고 있던 페를로체를 발견한 나는 그녀가 꼭 쥐고 있던 장신구를 빼앗으려 했지만, 페를로체는 몸을 비틀어 내 손길을 피하고는 말했다.
“왜, 왠지 모르게 따듯한 느낌이라… 마치 어머니 같다고 해야하나?”
고아였던 그녀가 어머니같은 느낌이 난다 말하니 마음이 약해져버린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여기서 평생 갇혀서 나랑 같이 오붓하게 살기 싫으면,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네.”
그러자 페를로체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어지간히도 싫었나보다.
“그럼, 다시 출발하지.”
그런 페를로체를 다시 앞에 세운 나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걸음을 재촉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따라붙은건가?’
아까부터 자꾸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
“우와… 장식품이 많네요? 이렇게나 많으니까 몇개 더 때도 상관 없…”
“어림도 없는 소리.”
길게 이어진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장식품들에서 나오는 태양빛이 계속해서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마다 일정한 세기의 빛을 뿜어내는걸 봐서는 그냥 단순한 장식품은 아닌 것 같지만, 그것까지 생각하기에는 ‘메인 퀘스트’의 해결이 더욱 급했기에 무시하기로 했다.
“앗! 저기서 빛이 세어나오고 있어요!”
“…그래, 그런 것 같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걸으니, 저 멀리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잔뜩 긴장을 한채 다가가보니, 웬 커다란 문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마법적 봉인이 걸려있군.”
가까이 다가가서 손을 가까이 대보니, 상당히 복잡한 형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물론 나는 검사긴 하지만, 옛날에 세레나가 소꿉놀이를 하며 가르쳐준 지식이 있기도 하고 나 역시도 전회차에서 수많은 지식을 쌓아왔기에 이정도는 가뿐하게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최상급 봉인 마법진이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진을 풀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여러가지 복잡한 주문들이 중첩되어있는 봉인 마법진을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페를로체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안 들어가시고 뭐하시나요?”
“…봉인 마법진이야.”
“봉인 마법진이라고요?”
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눈앞에 떠오른 마법진을 가리키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페를로체는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봉인 마법진이면, 해제하면 되잖아요?”
그 모습이 너무나 순수하고 해맑아서 꿀밤을 때리고 싶어졌지만, 눈을 질끈 감으며 겨우 참아낸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마탑 마법사 열명이 달려와도 하루 내로는 해제 못해.”
“왜요?”
“각기 다른 봉인 마법들과 파괴 방지 마법이 중첩되어있거든. 그렇게 섞여 있는 마법들이 서로를 지키는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높은 마법적 센스를 가진 사람이 오랜 시간을 거쳐서 일일히 해주를 해야해.”
“…..???”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페를로체는 손을 턱에 괸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엄청나게 견고하고 빡빡한 자물쇠라, 열쇠를 집어 넣어도 돌리는데 오랜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야.”
“아아…”
결국 페를로체의 눈높이에 맞게 최대한 풀어서 설명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럼, 해결방법은 간단하네요!”
“…뭐?”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던 페를로체는, 별안간 팔짱을 끼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열쇠가 안 먹히면… 자물쇠를 부수면 되죠!”
“………..”
말을 마치고 헤실헤실 웃는 페를로체를 해탈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나는, 별안간 뇌리에 스친 생각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너, ‘태양신의 가호’의 대상으로 ‘마법진’ 지정할 수 있어?”
“제, 제가 태양신의 가호를 가지고 있는건 어떻게 아셨나요!?”
“됐고, 지정할 수 있어? 없어?”
“해본적은 없는데에..”
그렇게 말하며 페를로체가 곤란한 표정을 짓기에, 나는 그녀의 양팔을 잡아 마법진 앞에 세우고는 말했다.
“태양신의 가호를 마법진에 써.”
“…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이거 놔요!”
그러자 신경질을 내며 내 손길을 뿌리친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는 힘차게 주먹을 마법진에 내질렀다.
– 쨍그랑!!!
그러자, 눈앞에서 타오르던 다채로운 색의 봉인마법진이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이라니, 무슨 유리 깨지는 것도 아니고.”
‘태양신의 가호’의 위력을 다시한번 실감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페를로체와 함께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여긴 엄청 넓네요.”
그러자 우리의 시야에는, 웬만한 경기장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 들어왔다.
“당신! 이제 진실을 말하실 때가 왔습니다!”
입을 헤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페를로체는, 별안간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날 노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밖에서 볼때는 조그마한 창고였던 곳이 왜 들어오니 이런 방대한 공간이 되었는지! 그 복잡한 미로들과 악의적인 함정은 뭔지! 그리고 이 넓디 넓은 평지는 대체 뭘 하는…”
“…이런 미친.”
“네, 네에?”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채 천장을 올려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왜 그러시는…!”
그리고 그건 날 따라서 위를 올려다본 페를로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물… 마법진…”
높디 높은 천장에, ‘평민 기숙사 습격 사건’에 쓰인 것보다 몇배는 더 큰 제물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게 왜 저깄죠?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
“빠, 빨리 진실을 말하세요! 프레이!”
그 광경을 목격한 페를로체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채 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글쎄…”
“이이익…!”
물론 나도 아는게 없었기에 잔뜩 굳은 표정으로 얼버무렸더니 이를 악물던 그녀가 별안간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아하! 아까처럼 제 ‘태양신의 가호’로 파괴하면…”
“네 가호는 하나의 개체만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잖아. 그리고 저 마법진은 ‘평민 기숙사 사건’ 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그, 그치만…!”
“게다가, 저 높이 그려져있는 마법진을 어떻게 파괴하게? 네 팔이 늘어나거나 발사되지 않는 한 불가능해.”
“으윽…”
그 말을 듣고 분해하던 페를로체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또 왜 그러는데?”
“뭔가 이상해요.”
그러자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이한 기운과 신성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져요…”
“어디서…?”
“…저희 아래에서요.”
그 말을 듣고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갑자기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쿠구구구궁!!!
“꺄악!”
그 바람에 아까처럼 균형을 잃고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만 페를로체가 울상을 짓던 그때, 그녀의 바로 앞에 있던 땅에서 흰색 창이 솟아올랐다.
“크르르…”
“으오오…”
“이런 미친…”
이윽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언데드들이 완전 무장을 한채 땅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수, 수가 너무 많아… 마치… 그때처럼…”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페를로체의 표정에 공포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태양신의 가호’로 인해 압도적인 무력을 낼 수 있는 페를로체가 저렇게 겁에 질려있는 이유는, 그녀가 가진 가호가 ‘다수의 상대’에게 상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태양신의 가호’는 오직 ‘하나의 상대’만 지정해서 압도적인 무력을 내세울 수 있는 1:1 특화 기술이기에,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덤벼들면 쉽게 무력화 된다.
저번 회차에서 그녀가 마왕군에게 잡힌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왜 그러고 있는거야?”
“그, 그야 위기 상황이잖아요!”
“이게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저들은 ‘언데드’이기 때문이다.
“닥치고 성력이나 뿜어내.”
“…아.”
언데드는 ‘성력’과 ‘불’에 무지막지하게 취약한 존재다. 살짝 닿는 것 만으로도 무력화 될 정도니 말 다했다.
“하늘에 계신 태양신이시여 저희를… 아니, 저를 굽어 살피셔서 당신의 힘을 나누어주소서…”
– 샤아아…!
페를로체가 다급하게 주문을 읊자, 강렬한 성력이 사방으로 발사되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엑!””
그러자 그녀의 성력에 닿은 무수한 언데드들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앗! 저기 출구가 있어요!”
그렇게 언데드들이 제정신을 못차리는 사이에 저 멀리 있던 출구를 발견한 페를로체가 기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지만
– 슈우욱!!
“…흐앗!”
맹렬한 속도로 날아온 화살이 다리에 꽂히는 바람에, 그녀는 다시 바닥에 뒹굴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저걸 못 막다니.”
한편, 어느새 검을 뽑아 그녀에게 쇄도하던 화살 6개를 쳐냈던 나는, 그녀의 다리에 박힌 화살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 어째서…? 어째서 성력을 썼는데 언데드가…?”
“저 녀석들이 교단의 지하에 묻혀있던 ‘성기사’들이라 그래.”
“네?”
대체 누가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속성을 가진 성기사들이 언데드로서 부활했다.
그냥 성력이 잔존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둠의 기운과 완전히 융합한 상태로 말이다.
덕분에 녀석들은 페를로체의 성력을 받고도 무력화되긴 커녕, 오히려 강화되고 만 것 같다.
대체 이런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어떻게 일어난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인 것 같다.
“그나저나, 성력은 충분히 썼어? 페를로체?”
“네, 네에…?”
“방금 그게 너가 오늘 쓸 수 있던 마지막 잔존 성력이었지? 덕분에 지금 넌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거야.”
“그, 그걸 어떻게…”
물론 아까 고아원의 창고에서 나에게 무지막지한 성력을 쏟아붓던 것과 방금 성력을 내뿜을때 느껴진 성력의 세기를 보고 추론한거다.
하지만 내가 지금부터 설마싶은 표정을 지으며 부르르 떨고있는 페를로체에게 할 말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떻게는 어떻게야. 처음부터 계산하고 있었으니까지.”
“…..!”
그 말을 들은 페를로체가 질끈 눈을 감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입꼬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휴전 협정이니 뭐니… 그런걸로 마왕군 소속인 나를 함부로 믿으면 안되지.”
“다, 당신…”
“고맙게 여기지 그래? 태양빛을 받으면 성력이 회복되는 널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곳까지 준비해둔 건데.”
그 말을 들은 페를로체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니 여기서 살아 나가면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될지 상당히 걱정이 되지만… 조만간 완전히 활성화되어 활개를 치게 될 저 언데드들로부터 페를로체를 구하려면 이 수밖에 없다.
“…절 죽이실 건가요?”
“글쎄… 어떻게 할까? 명령받은 대로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릴까?”
어느새 페를로체의 바로 앞에 도착한 나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아니면, 여기서 지내면서 나에게 안길…”
“흐압!!”
하지만 그 순간, 페를로체는 자신의 다리에 박혀있던 화살을 뽑아 나에게 던지고는 전력으로 출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크악!!”
덕분에 옆구리에 상처를 입고 주저앉은 나는, 어느새 출구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 잠시 뒤를 돌아본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장신구에서 나오는거, 정말로 햇빛이였나보네.”
저 장신구에서 나오는 햇빛으로 계속 회복을 한다면, 페를로체는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미소를 지은 나는, 어느새 움찔거리며 날 쳐다보기 시작한 언데드들을 보며 검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이 빌어먹을 곳이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고, 천장에 있는 거대한 마법진이 누굴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서, 이 언데드들을 막으며 최대한 시간을 벌 것이다.
그래야 성력이 다 떨어져 지쳐버린 페를로체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크오오오오!!!”
“설마 저 앞에 함정이 더 있진 않겠지? 페를로체가 잘 빠져나갈 수 있으려나?”
어느새 날 보며 울부짖기 시작한 성기사 언데드들을 보며 검을 바로 잡은 나는, 몸속의 마나를 끌어모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오늘따라 가슴이 몇배는 더 욱신거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