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24)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24화(524/524)
Episode 524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아카데미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어느새 졸업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시금 찾아온 평화의 시대.
그 흐름에 탑승한 선라이즈 아카데미는 졸업식을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졸업식 당일날 아카데미의 연회장에는 익숙하거나 반가운 얼굴들을 쉽게 찾아 볼수 있었다.
“설마, 맹약 거부의 대가가 국가 영토 일부의 헌납이었을 줄은…”
“지금이라도 다같이 항의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이대로 서대륙 영토의 4분의 1이 스타라이트 대공국이 되도록 내버려 둘수는 없습니다…”
“…천년만에 역대 최강의 전력을 갖추게 된 제국에게? 허튼 소리 말게나.”
서대륙에서 온 각국의 사절단들은, 최근 강제력을 발휘한 천년 전의 맹약의 여파로 제국의 눈치를 더욱더 볼수밖에 없어졌기에 낯빛들이 하나같이 좋지 않다.
“푸흐흐. 우린 그럴줄 알고 맹약을 지켰지.”
“상당한 수의 물적 지원은 뒤로 하더라도, 제국과 동맹관계가 되었으니 상당한 이득이야.”
물론 눈치 빠르게 제국을 도왔던 몇몇 국가들은, 그들과는 달리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휴… 어르신들, 제발 좀…”
“세계수님이 노하셨단 말입니다! 정령왕들이 체통을 지키기는커녕 애완동물 행세라뇨…”
엘프 왕국의 여왕과 사제들은, 나와 아내들의 어깨에 안락하게 앉은채 축 늘어져 있는 정령들을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꼼지락거리고 있다.
“꾸우우.”
“짹, 째잭.”
“100년? 웃기는 소리 마십쇼. 1년안에 안 돌아오시면 저희도 무력을 쓸 수 밖에…”
“하아악!”
역시 녀석들도 정령은 정령인가보다. 무슨말을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엘프들이랑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걸 보니.
“저… 저 썩을 놈이 우리 미호를 홀렸단 말이다…”
“진정하세요, 어차피 이 세상에 저사람보다 더 좋은 신랑은 없다니까요?”
“아내가!! 여러명이잖냐!! 아내가아!!!”
“그치만 우리 부족도 일부다처제인데요…”
“시끄럽다!!”
그밖에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노려보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 풍성하던 머리가 상당히 많이 벗겨진 여우 마을의 족장.
“”마교 천세! 천천세!!!””
“여러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루비에게 천천세니 뭐니 하며 소란을 피우다가 잠시 쫒겨난 동대륙의 무인들.
“저거… 루루님?”
“에이 설마. 그 무시무시한 분이?”
내 무릎에 얼굴을 뉘인채 곤히 잠들어 있는 루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귀순 마족들.
“신성력 포션 하나씩 받아가세요! 효과 좋아요!”
“어디 아프신 곳 없나요?”
페를로체의 지휘 아래에 권위와 규율보다는 복지와 구호를 우선시하게 된 신 교단.
“…저희는 언제까지 이 하등생물로 폴리모프 하고 있어야 합니까?”
“입 다물거라. 드래곤 로드님의 명령이다.”
얼마전에 제국과 우호 조약을 맺은 드래곤들까지.
정말로 많은 귀빈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지만.
“저, 저기 봐. 프, 프레이 님이야.”
“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
“쉿, 들리겠다.”
어째서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아까부터 전부 내게만 쏠려 있는 것은 기분 탓일까.
“도련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유부남이 되어서도 그리 인기가 많으시니.”
“…쿨럭.”
옆에서 서늘하게 들려오는 카니아의 속삭임을 애써 무시하며 헛기침을 하고 있던 그때,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학생 대표인 프레이 경의 선서가 있겠습니다.”
확성 마도구에 힘을 실어 소리를 외쳐 순식간에 연회장을 조용하게 만든 이솔렛이, 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짓더니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학생 회장직이 공석인 지금 아카데미 졸업 선서를 하게되는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럼 다녀올게.”
“…죄송하지만 도련님은 시녀를 고용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정원이 꽉 찼기에 메이드 역시 고용하지 않으시고요. 네? 하녀요? 하아, 여러분은 귀족 영애분들이 아닙니까…”
그 의무를 소홀히 할 순 없었기에, 나는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카니아에게 막힌 영애들을 뒤로하고 단상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프레이, 잠깐 귀좀.”
“……?”
이윽고 단상 위로 올라서 선서를 하려는데, 다급히 내 귀에 무언가를 속삭여오는 이솔렛.
“이따가 아버지가 무례하게 굴어도, 제발 용서해다오…”
“아.”
“거참, 오지 말라니까…”
그녀의 불안한 눈빛이 향한 곳을 살펴보니, 이솔렛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허허, 이 친구!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먼!”
“이거 놔라, 맛 간 광전사 녀석. 네 녀석이 이런 행동을 하는건 여전히 적응이 안되는군. 소름이 다 끼칠 지경이다.”
“옛날 이야기는 접어두고, 술이나 한잔 같이 하지?”
“…놓으라고.”
저 멀리 연회장의 입구에, 바이워크가의 후작이 아버지에게 헤드락이 걸린채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썩을놈이 내 딸에게서 성을 빼았아 갔단 말이다.”
“성? 얼마나 큰 성을?”
“…그냥 닥쳐라.”
이솔렛은 벌써부터 질색인 표정이지만, 바이워크 후작은 사실 아버지와 맞먹는 딸바보다.
“그뿐만이 아니지… 몇백년만에 겨우 내가 복구해낸 바이워크 가문의 검술이, 이상한 검술과 섞여 엉망이 되지 않았느냐….. 이건 가주로서 도무지 좌시할 수 없는…..”
단지, 타고난 무뚝뚝한 성격 덕분에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을뿐.
“아, 맞다. 너 며칠전에 네 딸… 아니, 우리 며느리한테 졌다며?”
“뭐?”
“스타라이트 가문의 검술에 바이워크 가문의 검술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기술은 좀 어땠는감?”
“………”
“아무리 ‘옛’ 검성의 검술이라도 상대하기 힘들었지?”
– 빠직…!
“왜 그러나? 사돈양반.”
“크아아아악!”
하지만 보라.
어느새 아버지의 도발에 발끈해, 다 큰 어른 두명이 멱살을 잡고 옥신각신 하는 저 모습을.
“…내가 못살아.”
“푸흡, 푸흐흐…”
어릴때 자주 보던 광경인데,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참 새롭다.
만약 저분이 이솔렛 누나가 서브 히로인으로 강등된 이유가 루비와 설정이 상당히 겹쳐서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마 신 교단에서 보호받고 있는 솔라 씨의 목이 위험해 질지도.
역시, 이건 평생동안 비밀로 해야겠다.
“두, 둘 다 그만 하세요.”
“맞아요, 여보도 적당히 좀 놀리시고.”
잠시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타난 아리아와 어머니가 두 사람을 마법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후후.”
그런 어머니의 옆에서, 육체가 회복된 지 얼마 안돼어 휠체어에 탄채 미소를 흘리고 계시는 클라나의 어머니 클로리아.
그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선서.”
비로소 모든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아카데미의 학생 대표이자 이곳에 모인 모두의 대변인으로서, 저는 맹세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지켜낼 것입니다.”
머릿속에 드는 한가지 생각.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 펼쳐질 평화로운 세상을, 모두의 행복을, 한가한 일상을.”
그 생각을 그대로 뱉어낸 나는.
“수백년, 수천년간 대대로 이어질 그 모든 것을.”
우레와 같이 쏟아지기 시작한 박수 세례 속에서 조용히 한 곳을 응시하며 선서를 마쳤다.
“반드시 말입니다.”
지금 막 닫혀있던 연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익숙한 은색 장발의 여인이, 미소를 띤채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
“선서 잘봤어, 우리 용사님~”
“…….”
선서를 마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나의 옆에는, 어느새 그녀가 앉아 있었다.
“아, 이 모습은 좀 어색한가? 옛날 상점 아저씨 모습으로 돌아가?”
“…됐습니다.”
한때 별의 신이자 세계의 주신이였지만, 이젠 그 힘을 잃고 한명의 인간이 된 존재가 말이다.
“제 아내들은 다들 어디 가고 당신이 앉아 있는 겁니까?”
“흐흥, 단 둘만의 시간을 위해 잠시 양해를 좀 구했지.”
그렇게 말한 그녀가 힐끔 옆을 바라보자, 저 멀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히로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본다.
“이런, 경계당하고 있는걸까나. 살짝 속상한걸.”
“당신이라 그러는건 아니니까요.”
“그냥 스텔라 라고 부르렴. 그나저나 슬슬 기척을 좀 지워보도록 할까. 중요한 이야기를 할 참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어보인 스텔라의 요청대로, 나는 손가락을 튕겨 나와 그녀의 존재를 잠시 세상에서 분리했다.
“벌써부터 권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구나. 역시 대단한걸.”
“…찾아오신 용건이 뭡니까?”
“뭐, 전에 말한 대로야.”
그렇게, 나와 그녀 둘만 있는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
“네가 아까 말한 대로, 슬슬 지킬때가 됐어.”
“저번에 한 약속을 말이죠.”
“그래.”
그 이야기의 주제는,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이였다.
“내 뒤를 이어, 차기 별의 신이 되어주렴.”
“………”
그렇게 말한 그녀가, 내게 손을 뻗는다.
“저번에 한 약속대로, 내 안에 남아 있던 신격을 사용해 네 별의 마나를 복구했단다. 사실 복구되는 시간을 가속시킨 것 뿐이지만.”
“그건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자칫하면 일이 어그러질뻔 했으니.”
“이제 내 안에 남아있는 별의 정수를 네게 넘기면, 난 완전한 일반인이 되겠지. 넌 새로운 별의 신이 될테고.”
내 손을 감싼 그녀의 손이 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하자,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이물감.
그녀가 말한 별의 정수가, 내 손바닥에 닿아있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었다면…”
“아뇨, 그럴 일은 없습니다.”
눈을 가늘게 뜬채 질문을 던져오는 스텔라에게,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이미 결정한 일이였으니까.
물론 평화로운 여생을 보낸다는 자질에는 약간 차질이 생기겠지만, 아무래도 좋다.
정말로 어렵게 쟁취해낸 우리 모두의 평화로운 세계. 그 세계를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여생이다.
그렇기에, 나는 별의 신이라는 직책과 의무를 짊어지기로 했다.
“응, 역시 그럴줄 알았어.”
내 확고한 대답을 들은 스텔라 씨가, 싱긋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말야, 사실 고지… 라고 해야되나? 고백해야 할게 몇개 더 있거든.”
“네? 제가 알아야 할게 더 있습니까?”
그런 그녀에게서 신의 정수를 수거하려던 그때,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하기 시작한 그녀.
“음, 그러니까… 그게…”
“뭔데 그럽니까?”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스텔라 씨를 바라보니,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별의 신은, 사실 전 차원의 수호자란다.”
“네?
.
갑작스럽게 폭탄 발언을 꺼낸 스텔라 씨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차원은, 사실 수많은 차원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차원이야. 정확히 말하면, 무한한 차원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곱 차원중 하나지.”
“그럼 스텔라 씨는…”
“그 일곱 차원들의 신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서 ‘질서’를 도맡고 있었단다.”
“…놀랍네요.”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의외로 증거는 있었다.
신격을 가진 존재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시스템, 즉 ‘관리체계’와 자유자재로 연락하거나 일정부분 간섭을 무시하는 점.
그리고, 무수히 많은 차원을 집어삼켜 만전의 상태였던 ‘외신’을 홀로 상대해 그로기 상태로 몰아 넣었던 점.
그 두 사실로 범상치 않은 존재임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설마 전 차원을 관리하는 최고신이였을 줄이야.
“그러니까 네가 별의 신의 자리를 물려 받는다는 건…”
“…전 차원을 관리할 의무가 생긴다는 겁니까?”
“정확히는 불가침 영역인 지구를 제외한 모든 차원의 ‘질서’가 되는거지.”
이제야 스텔라 씨가 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살짝 괘씸해지는데.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마렴. 나도 이번 일로 힘을 전부 잃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단다.”
“………..”
“그리고 전 우주를 뒤져봐도 네가 가장 적임자라 어쩔수가 없어. 애초에 나조차도 이기지 못했던 존재를 쓰러트린 최강자가 너잖니.”
“…우리가 이긴거죠.”
“그래, 너희가 전 차원을 구한거나 매한가지야.”
입을 살짝 삐죽 내밀고 중얼거리니, 머리를 긁적거리던 그녀가 살짝 표정을 굳히며 말한다.
“하지만, 아직 위험이 끝난건 아니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 망할 눈동자는 완전히 물리쳤지만, 녀석이 침입하기 전에 머물던 ‘바깥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야.”
“음…”
“그리고 최근 지옥에 있던 그 녀석을 심문한 결과, ‘바깥세계’ 에는 녀석과 비슷한 개체들이 더 있다는 걸 알아냈지.”
“…..!”
그 말은 들은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 녀석은 우리중 최약체’ 인가?
“안심하렴, 망할 눈동자만큼 강대한 개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게 확인되었으니. 끽해봐야 우리 차원의 기사단장들 보다 약간 더 강한 정도란다.”
“그건 정말로 다행이네요.”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녀석들이 때거지로 몰려와도 지금의 루비나 이리나가 혼자서 전부 정리해낼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차원이 위기에 노출되어있는건 사실이지. 그 예로, 아직도 마물이 사라지지 않았잖니?”
“……..”
“그리고 제 2의 눈동자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몰라.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세상에는, 그리고 차원에는 아직 수호자가 필요하단다.”
살짝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불쌍한 눈빛으로 애원을 시작한 스텔라 씨.
“왜 그렇게 쫄아 계십니까?”
“…응?”
“제가 안한다고 한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손에 힘을 주었고.
– 샤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내 손바닥에 맞닿아 있던 그녀의 정수가 빛을 발하더니 나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 전 차원의 수호자면 최소한 저희를 건드리는 놈들은 없겠네요. 안심입니다.”
“……”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정수가 전부 내 안으로 들어온 순간.
“이런거, 제가 아니면 또 누가 합니까?”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이젠 완전히 인간이 되어버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텔라 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정말, 너답구나 프레이.”
“그렇습니까?”
그녀의 빛나는 은색 눈동자에 순간 눈물이 어른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좋아, 그럼… 이제 난 휴가를 좀 가보실까.”
“네?”
“너무 오랜 세월동안 초월적 존재였더니, 몸도 마음도 전부 걸레짝이 되어버렸거든. 이제 믿을만한 후임도 있겠다, 남은 수명을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데 써야지… 물론 술도 좀 마시고, 후후.”
이내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잔뜩 흥분한 눈빛이 눈길에 들어왔다.
“마치 언제는 초월자가 아니였던 것 처럼 말하십니다?”
“나도 한때는 인간이였단다. 나 뿐만이 아니라 솔라와 루나도 자신들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살짝 궁금해지는데요.”
“나중에 만나면 알려줄게. 너희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될테니.”
그 눈빛과 잔뜩 상기된 말투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그렇군요.”
“그래, 그럼 난 이만……..”
“그럼, 일주일 뒤에 신들의 방에서 봅시다.”
“…응?”
왜냐하면.
“일주일 정도 푹 쉬고, 다시 출근하셔야죠?”
“뭔 소리야?”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쉬게 둘 생각이 없거든.
“스텔라 씨와 루나 씨, 그리고 솔라 씨를 반신으로서 고용할겁니다.”
“뭐…….?”
당장 힘을 조금만 나누어줘도 완벽한 업무수행이 가능한 인재들이 3명이나 있는데 그걸 놓치는건 정말 바보같은 짓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수인계가 10분이 뭡니까? 10분이.”
“그, 그런가? 그치. 기본적인 업무랑 노하우는 알려줘야 하니까… 어… 음……”
“우리 천년만 더 같이 일합시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스텔라 씨의 낯빛이, 내 말을 들은 이후로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노, 농담이지이…?”
“전 차원을 위한 일인데요, 하하.”
“나, 나… 술마실 생각에 잔뜩 들떴었는데… 너, 너어… 진짜 이러는거 아냐… 응?”
뒤늦게 스텔라 씨가 애원을 하기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자, 별의 마나입니다. 나눠드릴게요.”
“야아아아아!”
이미 별의 신은 나였으므로.
“이거 놔아아아아! 내가 얼마나 개같이 일했었는데에에에! 나도 이젠 좀 쉬고 싶단 말…….”
“참고로 일을 잘하시면 근무시간에도 술을 무제한으로 제공해 드릴 겁니다.”
“…뭐부터 배우실건가요, 프레이님?”
이것이 졸업식이 끝난 직후, 용사였던 내가 하루아침에 전 차원적 수호자가 된 자초지종이였다.
.
그로부터 몇달 뒤.
“도련님.”
“여보!”
“…으응?”
신들의 공간에서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던 나는, 뒤에서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또 여기에 계셨던 겁니까?”
“저녁 먹으러 오세요.”
포탈을 열고 나타난 카니아와 세레나의 뒤로, 따끈따끈한 저녁상이 내 군침을 자극하고 있었다.
“먼저 먹고 있어, 나는 볼게 좀 있어서…..”
“도련님이 안 오셨는데 저희가 어떻게 먼저 먹나요.”
“맞아요, 여보. 빨리 오세요.”
하지만 잠시 해야할 일이 있었기에 그녀들을 저택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내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챈 그녀들이 토라진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돌려보내셔도 다시 오면 그만이거든요, 도련님.”
참고로 카니아는 이미 마신인지라 내가 있는 공간에 자유롭게 들락날락 거릴 수 있다.
“맞아요, 밥 먹으실 때 까지 계속 올거에요.”
“프레이, 무엄해요. 감히 제가 오랜만에 저택에 행차했는데.”
그리고 세레나와 클라나는, 차기 달의 신과 태양 신이기에 마찬가지로 이 공간에 올 수 있다.
“프레이, 내가 앞치마를 입은채 여기까지 와야겠느냐?”
“네가 존나 복에 겨웠구나. 마왕과 드래곤이 앞치마를 입은채 열심히 저녁을 만들어도 이틀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니.”
루비와 이리나는, 최근에 자신들이 스스로 벽을 부수고 신격을 깨우쳐 버렸다.
이젠 그녀들이 얼마나 더 강해질까 두려워질 지경이다.
“도시락! 같이 프레이 따먹어요!”
“네가 요새 하도 바쁜것 같길래, 도시락을 만들어 왔다.”
“같이 먹어요 주인님!”
“여, 여기… 내가 소설 쓰던 곳이다. 헤헤…….”
그리고 페를로체와 이솔렛, 루루와 로즈윈에게는 얼마전에 내가 반신의 지위를 부여해 주었기에, 결국 나는 꼼짝없이 모두에게 포위될 수 밖에 없었다.
“용사님 뭐해여?”
“윽.”
내 옆에 옹기종기 앉은채 돗자리를 피고는 도시락을 꺼내들기 시작한 아내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애초에 규격 외인 글레어가 내 어깨에 올라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내 저항을 포기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프레이, 근데 너 요즘 진짜로 뭐해?”
“별의 신으로서의 본격적인 업무는 100년 뒤에나 시작한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맞아, 전부 인수인계 받는 것만 해도 그 정도 소모된다며.”
그러자 내게 쏟아지기 시작한 질문들.
“난, 저걸 보고 있었어.”
그 질문들에 답하는 대신, 나는 조용히 내가 보고 있던 어둠 너머를 가리켜 보았다.
“…….!”
“우와…”
“저건…”
그러자 내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린 히로인들에게서 연이어 터져나오기 시작한 탄성 소리들.
“무척이나 반짝거려요…”
“설마 저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개별 차원인거야?”
“멋지네요…”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들 마냥, 수많은 차원들이 어둠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도련님, 혼자 별구경이라도 하고 계시던 겁니까?”
“하하, 그건 아냐.”
의문에 가득찬 카니아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저은 나는,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별천지로 시선을 옮깃여 답했다.
“그냥, 관찰을 좀 하고 있었어.”
그 말은 사실이였다.
지난 며칠간, 나는 이곳에서 여러 차원들을 ‘별의 주시’로 지켜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전에 얻은 신격과 아리아에게 빌린 고유 능력을 합치니, 마치 눈 앞에서 관찰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관찰을 할 수 있었다.
“얘들아.”
그리고 그 결과, 내가 알아낸 사실은.
“아무래도, 세상에는 생각보다 비극이 많은 것 같아.”
전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곱 차원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차원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였다.
지난 세월동안 외신이 차원들을 한껏 유린하고 다닌 여파는, 그 정도로 심각했다.
“프레이.”
아까처럼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고 있으니, 슬며시 내 옆으로 다가온 세레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여온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모든 차원을 동시에 구원할 수는 없어요.”
“…나도 알아.”
“그러니, 지금은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이 맞다.
내가 별의 신이 된 것은 아직 채 몇달밖에 되지 않았다.
비록 전 차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본격적인 활동을 하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한 지금.
함부로 나서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괜찮아, 무리는 절대 하지 않을테니.”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 스륵…!
“프레이?”
“”……..?””
가만히 서 있던 내가 손을 앞으로 뻗자, 세레나와 히로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 샤아아아…
그런 그녀들의 시선 속에서 손에 신격을 뭉쳐내기 시작한 나는.
“…훨훨 날아가렴.”
이내 형체를 갖추고 모습을 드러낸 은색 새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제 그 어느 차원도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일이 없길 바라며.
우리가 과거에 마주했던 것과 비슷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조용하고 부드럽게, 나의 의지를 담기 시작했다.
“예쁜 새로군요.”
“당신을 닮았어요, 프레이.”
“웬일로 네녀석이 만든 동물이 고양이가 아니로구나?”
그러자 카니아와 세레나가 내 손에 앉아있는 새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한편, 루비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리 물어왔다.
“도움이 절실한 곳에, 이 녀석이 찾아갈거야. 나의 의지를 담은채로.”
“오호.”
“전 차원을 돌아다니며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은, 아무래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새가 더 적합하겠지.”
그런 그녀에게 내 소망을 말하자, 다시금 내게 집중되기 시작한 모두의 시선.
“나중에 너희들도 도와줄거지?”
내가 넌지시 그렇게 묻자, 모두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대답은 뻔하지 않습니까, 도련님.”
은근슬쩍 검은 까마귀를 만들어내고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던 카니아.
“맞아요, 너무 뻔해요.”
아까부터 그저 내 얼굴만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던 세레나.
“안 그래도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심심했는데, 잘됐네.”
자신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오랜만에 호전적인 미소를 짓는 이리나.
“태, 태양신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으니까요…! 저는…!”
황제가 되어 무척이나 위엄있어졌지만,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살짝 구석에 앉아있는 클라나.
“…츄릅.”
어김없이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페를로체.
“별의 신이 된 너와 언제까지나 함께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신격을 손에 넣었을 때부터, 대답은 이미 하나로 정해져있었다.”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본 모습인 마족의 모습을 드러내는 루비.
“비록 수련이 부족하여 벽은 아직 깨트리진 못했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히 대답할 수 있겠군.”
우선은 내게 반신의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언젠가는 신격의 벽을 깨트리겠다고 열의를 불태우고 있는 이솔렛.
“주인님은 누가 뭐래도 주인님이니까요…”
여느때와 같이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루루.
“저, 저도 이제 꽤 쓸만해요! 그러니까…!”
책상 앞에 앉아 신나게 무언가를 두드리다가, 나를 바라보며 어느때보다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 로즈윈.
“용사님… 조아해요…”
그리고, 왜 그러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내 어깨에 올라탄채 잠꼬대를 하는 척 하고 있는 이 꼬맹이까지.
“고마워, 얘들아. 그리고…….”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전해져 온 그녀들의 강력한 마음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응했다.
“사랑해, 모두들.”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은 의지가, 어느새 힘차게 어둠속 빛들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
그건 그렇고,
내가 한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는데.
“자, 그럼 이제 도시락이나 먹죠.”
“저희가 만든 특제 장어 도시락이에요, 어서 드세요 프레이.”
“으, 으응?”
그것은 바로, 세레나와 루비를 제외한 히로인들이 임신을 한지 딱 1년째 되는 오늘만을 잔뜩 벼르고 있었다는 것이였다.
“동대륙에서 굴이란 것도 좀 입수해 왔다. 그쪽 지방 무인들과 미호가 그러던데, 효과가 발군이라더구나.”
“와! 같이 따 먹어요!”
“…얘들아?”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