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3)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3화(53/524)
Episode 53
“”크오오오오오!!””
수없이 많은 언데드들이 날 노려보며 울부짖고 있다.
그러자, 언데드들이 가진 특유의 사이한 기운과 그들이 입은 흰색 갑옷에서 풍기는 성스러운 기운이 한데 섞여 날 덮쳐오기 시작했다.
“으윽… 기분나빠…”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이 섞인 기운을 맞고 있자니, 기분이 꽤나 불쾌해졌다.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쁜건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내 상황과 똑같아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악행을 해야만 하는 용사니 말이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기세등등한 언데드들을 둘러보며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녀석들의 전력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무장상태와 체형을 봤을때, 대부분의 언데드들이 잘 훈련된 성기사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곳은 태양신 교단의 성기사들이 죽으면 묻히는 무덤이었던 걸까?
‘…교단의 공동묘지는 지상에 있을텐데.’
하지만 생각해보니 1000년 전부터 명목을 유지해온 교단의 공동묘지가 지상에 떡하니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곳은 대체 뭘 하는 곳이길래 성기사들의 시체가 이렇게나 많은걸까?
– 슈우욱!!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몇몇 언데드들이 나에게 화살을 발사했다.
“크오오오오오오!!!”
체력소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고개를 살짝 까딱거려 피하니, 녀석들이 분했는지 날 노려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성은 별로 없는 것 같네, 다행이야.’
언데드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 유형은 사령술사에 의해 직접 명령을 받으며 움직이는 타입으로, 사령술사의 재량에 따라 강해질수도 약해질수도 있는것이 특징이다.
물론 녀석들이 아까부터 제멋대로 활동하는걸 보면, 이곳에는 사령술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두번째 유형은 자체적으로 높은 지능을 가지고 능률적인 판단을 하는 타입으로, 이 경우 만드는 재료와 시간, 그리고 힘의 소모가 크지만 그만큼 강력한 언데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 무수한 녀석들을 그렇게 만드려면 대마법사 정도는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마법사라면 굳이 그런 함정을 파는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세번째이자 마지막 유형은 상당히 낮은 지성과 높은 본능으로 대상을 노리는 타입으로, 내가 지금 마주한 녀석들이 속해있는 타입이다.
지성이 낮기 때문에 간단한 협동공격이나 작전, 진형같은 것도 세우지 않은 채로 무작정 돌격하지만, 그만큼 끈질기고 잔인하기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유형이다.
“시간을 벌어야 해… 시간을…”
그렇게 상대 측의 전력 파악을 마친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옆으로 옮기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내 목적은 저 녀석들을 몰살 하는게 아니라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래야 페를로체가 이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아까 별의 마나를 쭉 전개해 파악해 본 결과, 저 문을 열고 이 방에서 나가면 지상까지 쭉 이어진 통로가 나온다.
그러니, 성력이 바닥이 나버린 페를로체라 하더라도 장신구에서 나오는 태양빛으로 몸을 회복해가며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충분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깥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바깥에 나가면 태양빛을 받을 수 있을테니, 그 부분은 그녀 스스로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크오오오오!!””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녀석들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으니, 녀석들이 일제히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개미떼들을 보는 것 같아 살짝 질린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혹시나 싶어 주머니에 들어있던 ‘지배의 석’을 두들겨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아파져올때까지 두들겨봐도 언데드들은 여전히 날 노려보며 다가올 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지배의 석’은 죽은 존재인 언데드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다.
“흐아아압!”
결국 주머니에서 손을 뺀 나는 다시 검의 손잡이를 꽉 부여잡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검을 새차게 휘둘렀다.
– 파지이이이잉!
아름답고 반짝이는 별의 마나와 함께 찰나의 섬광이 번쩍이자, 다가오던 언데드 무리의 앞 대열이 맥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크에에엑!!”
물론 언데드인지라 꼬꾸라진 녀석들의 대부분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으나, 그럴줄 알고 다리 쪽을 노리고 휘둘렀기에 무의미한 움직임에 불과하였다.
– 콰직! 콰지직!!
그렇게 다리가 잘린채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던 녀석들은, 뒤에서 다가오는 녀석들에게 짓밟혀 박살이나거나 터지면서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크으으… 젠장…”
그런 녀석들을 통쾌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나는, 가슴에서 칼로 쑤셔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짓을 몇번씩만 더 반복하면 녀석들의 수를 꽤나 줄일 수 있었겠지만, 역시나 패널티 스택 2개와 특수 패널티 스택 1개의 영향력은 꽤나 큰가보다.
“하으아… 흐아…”
주저앉아서 거친 숨을 몰아내쉬던 나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바로 잡았다.
“백병전이라도 벌어야 하나?”
수많은 대군을 홀몸으로 막아섰다는 전설을 가진 바이워크 가의 초대 당주이자 초대 검성의 일화를 떠올리며 잠시 녀석들과 백병전이라도 벌여볼까 생각해봤지만, 곧 그것이 멍청한 생각임을 깨달았다.
만전 상태도 아니고 이렇게 다 죽어가는 상태에서, 하나하나가 태양신 교단의 정예병이었던게 분명한 성기사들에게 둘러싸인채 전투를 벌인다면 결과가 뻔하지 않겠는가.
물론, 언데드들이라 그런지 다가오는 속도와 행동이 무척 굼뜨긴 하지만… 괜히 만용을 부리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자.
“…쯧, 어쩔 수 없나.”
결국 백병전을 포기한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심호흡을 하여 체내에 있는 마나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계산대로라면 비록 체내가 상당히 엉망진창이 되긴 하겠지만, 검격을 한번 정도 더 날리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 파지이이이잉!!
“끄아악!!”
그렇게 녀석들에게 거대한 검기를 날려 다시 한번 수많은 언데드들의 다리를 베어버린 나는, 그 직후 심장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때문에 잠시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으으…”
그렇게 잠시동안 흙먼지가 잔뜩 날릴정도로 구르던 나는, 입에 가득 고인 피를 뱉어내고는 검을 땅으로 찍어 몸을 지탱하며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래도 꽤 많이 줄었네?”
두번밖에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육안으로 보일정도로 언데드들이 많이 줄어있었다.
몇번 더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될 때니 자중하기로 결정한 나는 슬금슬금 페를로체가 뛰어갔던 출구로 향하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저 비좁은 통로에 가서 올라오는 녀석들을 베어내다가, 한계가 찾아왔을때 쯤에 바깥으로 도망쳐야겠어.’
넓은 공간에서의 백병전은 사방에서 포위당해 공격당할 위험이 있으므로 당연히 포기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만약 적들이 밀려오는 방향이 한 방향으로 제한되고, 다수가 아닌 소수의 적들만 상대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바로 통로로 향해 유리한 지점을 차지한다면, 앞에 있는 녀석들을 베어넘기면서 꽤나 오랫동안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통로로 저 많은 녀석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게 되면 아무리 녀석들을 베고 또 베어도 결국 쌓인 시체가 밀리면서 밖으로 쏟아져 나오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반대쪽의 출구는 언데드들 중에서도 비교적 강해 보이는 놈들이 틀어막고 있는데다가 점점 녀석들이 땅에서 솟아나오며 이 방의 공간을 없애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시간을 끌려는 것이지 희생을 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배후에 탈출구는 둔채로 싸워야 한다.
물론 밖으로 쏟아져나올 언데드들이 문제긴 하지만… 최근 수도에 마물이 침투하는 일이 많은지라 황실 기사단이 상시적으로 수도를 경비하고 있다.
그리고 황실의 정예병인 그들은 아무리 신성력이 섞이긴 했어도 태양빛을 그대로 받아 상당히 약해질 예정인 언데드들을 손쉽게 제압해 낼 수 있을것이다.
“크오오오!!!”
“…징글징글 맞은 녀석들.”
그렇게 생각하며 페를로체가 들어갔던 문을 열은 나는, 길다랗게 이어진 복도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문을 걸어잠궜다.
물론 저 문이 버텨줄거라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활짝 열려있는 것 보단 낫지 않겠는가.
– 콰지직!!
“크에에에엑!!”
“하, 젠장.”
그래도 조금은 시간을 벌어보려 한 일인데, 겨우 언데드 한마리에 의하여 문이 맥없이 뜯겨나가 버렸다.
덕분에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짓던 나는, 문을 걸레짝으로 만들고 있던 언데드의 목을 베어 낸 후 마지막으로 녀석들의 정세를 살피기 시작했다.
“…엥?”
그런데 뭔가가 조금 이상하다.
“크륵! 크르륵!”
“키에엑!”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진군해오는 언데드 군단 저 너머로, 반대쪽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거대한 언데드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나누며 무엇인가를 조작하고 있다.
“…뭘 하려는거지?”
그 수상한 행동들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건지 알아보려 잠시 통로를 벗어나려 했으나, 어느새 언데드 군단들이 코앞까지 찾아왔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통로로 들어갔다.
“크에에에!”
“…어딜.”
그렇게 미리 봐두었던 자리에 선 나는, 출구로 들어선 첫번째 녀석의 머리에 검을 박아넣었다.
“”크오오!!””
그러자 대여섯마리의 언데드들이 검이 박힌 녀석을 밀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린데… 힘은 더럽게 쎄네.”
속도는 상당히 느린 녀석들이었지만 힘만큼은 생전 그대로인지 녀석들은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머리에 검이 꽂힌 녀석을 방패삼아 언데드들의 진격을 막던 나는 팔에서 쥐가 나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리고 말았다.
“흐압!!”
그러다가 세명의 언데드가 더 가세하는 바람에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나는, 이를 악물며 방패로 쓰던 언데드의 머리에서 검을 빼낸 뒤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을 마구 난도질 하기 시작했다.
힘 하나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었지만 속도는 상당히 느렸기에 미처 내 공격을 막지 못하고 목이 날아간 언데드들의 몸뚱아리는 점점 쌓여만 갔다.
“크윽.”
하지만 역시나 얼마 못가 나는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통로에 너무 많은 언데드들이 쌓여가며 점점 내가 발을 디디고 있을 공간을 없애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기에 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밀려들어오는 언데드들을 열심히 찌르고, 베고, 난도질했지만, 그것조차 무력화된 언데드들이 쌓여가며 점점 소용이 없어졌다.
우연인지 아니면 갑자기 지능이 올라가기라도 한건지, 언데드들이 잔뜩 쌓여있는 무력화된 몸뚱이들을 밀어올리며 통로를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녀석들도 밖으로 나오기 힘들겠어.”
하지만 그 바람에 언데드들이 지상으로 나오는 것도 꽤나 힘들어졌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황실 기사단에게 뒷일을 맡겨도 되겠다 생각하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시작했다.
‘페를로체는 안전하게 빠져나갔나보네.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최대한 앞에 있는 것들을 베어넘기면서 녀석들의 진군을 늦추다보니 어느새 지상으로 나가는 문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도착했다.
문이 살짝 열려있는걸 보니, 다행히도 페를로체는 무사히 바깥으로 빠져나간 것 같다.
“으랴앗!!”
“끼에에에엑!!”
페를로체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언데드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출구의 바로 앞에서 멈추어서 다시 난도질을 시작했다.
이렇게 입구에 무력화된 녀석들의 몸뚱아리를 최대한 많이 쌓아둔다면, 아무리 힘이 쎈 언데드들이라고 해도 한명씩밖에 빠져나오지 못할것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지상에서도 녀석들을 베어내며 상황을 완전히 정리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내 수명이 남아나지 않을테니 아쉽지만 이렇게 장애물을 만드는데서 그쳐야 할 것 같다.
– 끼이익…
그렇게 한참동안 난도질을 하며 언데드로 만들어진 저지벽을 만들어낸 나는, 아직도 화끈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품에서 검은 로브를 꺼내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하…”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이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침을 꿀꺽 삼켰다.
“…시발.”
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던 모든 일을, 방금 이해해버렸다.
.
프레이가 지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모종의 깨달음을 얻기 몇분 전,
“저대로 가는건가?”
은신 마법 스크롤을 사용하여 마법진이 걸려있던 문 뒤에 숨어있던 이리나 필리어드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언데드 무리를 피해 통로로 향하는 프레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이윽고 프레이가 통로 안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이리나는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프레이는 악행을 한 다음에야 선행을 하는걸까?”
그녀가 프레이의 선행에 대해 확신한 건 두달 전이었다.
‘평민 기숙사 습격사건’ 이후로 뒷조사를 아무리 해도 신분격차와 자금부족으로 별 정보가 모이지 않자, 이리나 필리어드는 결국 ‘잿빛의 숲’으로 향했었다.
그 날의 사건에서 다크골렘이 부서진 이후, 안에 있던 마물들과 위험한 몬스터들이 전부 어디론가 집단이주를 하는 바람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잿빛의 숲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험난한 자연 환경과 마물대신 자리를 차지한 산짐승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리나는 있는 돈 없는 돈을 전부 끌어모아 마법스크롤들을 구입하고, 심지어 아카데미에 휴학계를 낸 후 잿빛의 숲에서 노숙까지 해가며 조사에 몰두하였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그 해답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리나의 집념이 빛을 발한 것이다.
“여, 여긴…!
그렇게 잿빛의 숲을 뒤지고 다닌지 한달만에, 이리나는 결정적인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여느때와 같이 열심히 조사를 하던 중에 갑자기 쏟아져내리기 시작한 폭우를 피하기 위해 눈에 유난히도 띄던 동굴에 들어간 순간, 이곳이 어떤 곳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돌에 끌린 흔적과 피가 있는데다가 리아나가 쓰던 반짝거리는 마나가 느껴져… 그럼 여긴 설마…?”
안대가 씌워진 채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협박을 당할때, 이리나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꿈에 나올정도로 생생하므로, 그녀 자신이 발버둥쳤던 흔적을 알아채는 것 쯤은 식은죽 먹기였다.
게다가 마나탈진이 오는 대신에 성장한 마나감지 능력 덕분에 리아나와 프레이가 쓰던 형태와 동일한 마나를 동굴 깊은곳에서 느끼던 이리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배낭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때 여자의 비명 소리가 났었지. 그러니, 만약 이 안이 노예를 기르던 곳이었다면…’
이윽고 자신의 한달치 식사비까지 포기해가며 산 공격용 스크롤들을 꺼내들고는 조용히 동굴안으로 들어선 이리나는, 곧 자신의 눈앞에 펼쳐질 끔찍한 장면을 예상하며 조용히 심호흡을 했지만…
“…하?”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는 헛숨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성노예들이나 고문 기구대신, 삐쩍 말라버린 몬스터들의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 샤아아…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의 몸 사이사이에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마나가 빛나고 있었다.
“…..!”
그 모습을 아연하게 지켜보던 이리나는, 발치에 무엇인가가 채이자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시체잖아…?”
그곳에는 목이 잘린 여자의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녀는 전대륙에 이름을 떨치던 전투마법사였기에 살짝 표정을 찡그린채 시체 옆에 있던 여자의 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웃고있네.”
반짝거리는 마나 때문인지, 아니면 서늘한 동굴 때문이지 그때까지 비교적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여인은, 목이 잘려 죽은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만약 이 여자가 정말로 프레이의 성노예였고, 도망치다가 죽임을 당한거였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동굴의 입구 있던 마른 핏자국은 시체까지 쭉 이어져 있었고, 시체의 옆에는 대량의 핏자국이 떨어져 있었다.
그걸 봤을때, 날 이곳까지 데려온 동시에 여성의 목숨을 끊은 사람은, 공격을 한 뒤에 토혈을 하는 경향이 있는 리아나… 즉 프레이일 것이다.
“학생! 그 숲은 들어가면 안돼!!”
“괜찮아요, 만반의 준비를 했으니.”
“떽! 저번에 마을 하나가 통째로 저 숲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불탔었어! 마을에 죽은 사람들만 남아있던 걸 보면 산 사람은 전부 마굴로 끌려갔을텐데… 그래도 가고 싶어?”
이윽고 이곳에 들어오기전에 자신을 뜯어 말리던 지역 토박이에게 들었던 안타까운 사건을 떠올린 이리나는, 몬스터들 사이에 섞여있던 사람들의 시체와 여인의 품속에 있던 가족 사진을 발견하고 나서야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성노예를 잡은게 아니라… 여인의 복수를 도와준거였던거야.’
프레이는, 누군가에게 악행을 한 뒤에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저지른다.
그것이 그녀가 한달간의 조사만에 겨우 찾아낸, 프레이의 비밀이었던 것이다.
“방금 전에도 페를로체를 협박해서 일부러 도망치게 한 다음 혼자서 언데드들을 막았으니… 역시 내 확신은 맞아.”
그리고 그 확신은, 프레이가 이번에도 똑같은 행동을 보임으로서 다시 한번 굳혀졌다.
‘그런데, 대체 왜 저러는 걸까?’
그렇게 프레이에 대해 완벽하게 확신하게 된 이리나였지만, 그 이유만큼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물론, 프레이에게 직접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겠으나… 그가 그렇게 수고를 들이며 선행을 숨기는데는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번 회귀를 하면서 변수가 일어나 프레이가 변했든, 아니면 원래부터 그가 그래왔든간에, 그 이유를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그에게 접근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그렇게나 악독했던 프레이였으니 저 착한 행동에도 뭔가 악의가 숨어있을수도 있고, 아니면 착한 행동을 들키면 안되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때가…
– 쿠과광!!
“흐에!?”
그렇게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이리나는,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명을 질렀다.
“그만둬어어어어!!!”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어 보니, 눈이 붉게 충혈된 프레이가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통로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 바람에 통로에 들어가있던 언데드들이 말 그대로 곤죽이 되어 우르르 바깥으로 밀려져 나왔고, 덕분에 프레이 역시 그런 언데드들에게 찔리고 긁혀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거대 언데드들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압!!!”
이윽고 그가 젖먹던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자,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던 두명의 거대 언데드중 한명의 다리가 날아갔다.
“크오오오오오!!”
“으아아아아아!!”
이윽고 눈에서 피를 흘리며 바들바들 떨던 프레이는, 무엇인가를 더더욱 빠르게 조작하기 시작한 언데드의 다리를 검으로 찍고 온 힘을 다해 비틀기 시작했다.
“뭐,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이리나는, 다급히 손에 화염을 모으기 시작했다.
“죽어어어어어!!”
한편 온 힘을 다해 검을 비틀던 프레이는, 기어코 언데드의 다리를 잘라내고 그들이 조작하던 무엇인가를 부숴버렸다.
“제, 젠장…”
그렇게 믿기지 않는 폭발력으로 대량의 언데드와 거대 언데드 두마리를 쓰러트린 그였으나, 아무래도 거기까지인 듯 싶었다.
왜냐하면, 모든 힘을 쏟아부은 그가 힘없이 무릎을 꿇고 자리에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안돼…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절망적인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고, 왠지 모르게 그것에서 불길한 느낌을 느낀 이리나는 결국 손에서 불을 내뿜으며 그 상황에 개입하고 말았다.
– 쿠과광!!
“끼에엑!!”
이리나가 손에서 불을 내뿜자 프레이의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이 불타올랐다.
“누, 누구…”
그러자 손에 든걸 다시 품안에 집어넣으며 힘겹게 질문을 던지던 프레이는, 이리나가 자신을 안아들자 무의식적으로 보호 받는다 생각을 한건지 천천히 눈을 감고는 이내 의식을 잃었다.
– 쿠과과광!
“끄에에에!!”
그런 프레이를 안은채 불을 발사하던 이리나는, 그녀가 일주일간 모아둔 마나가 바닥나기 직전까지 가자 프레이가 뚫어둔 문을 통해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크에에에에!!”
“꺼져!!”
이윽고 뒤에 바짝 따라오기 시작한 언데드들에게 자신이 쓸 수 있는 마지막 파이어볼을 먹인 이리나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주머니에 넣어뒀던 공격용 스크롤을 꺼내며 문을 열었고…
“…하.”
이내 프레이가 갑자기 기를 쓰고 돌아온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 전부를 대피시키세요!! 지금 당장!!!”
“성녀님… 고집은 그만 부리시지요. 자꾸 그러시면…”
“당장 대피시키지 않으면 ‘태양신의 가호’를 사용해서 내가 고아원을 직접 부숴버릴거야!!!”
“태, 태양신의 가호…?”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채 바닥에 쓰러져 헐떡거리면서도 앞에서 자신을 막고 있는 교황과 성기사들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는 페를로체의 너머로,
– 펑! 퍼벙!!
– 뿌우우! 뿌우!
폭죽과 나팔소리와 함께 즐거운 파티가 열리고 있는 태양신 교단의 고아원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천장에 있던 그 마법진이…’
프레이가 아니었다면 일어났을 끔찍한 상황에 잠시 얼어붙은채 식은땀을 흘리던 이리나는, 뒤에서 기척을 느끼고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크에엑!!”
“씨, 씨발!”
이윽고 자신의 바로 뒤까지 다가온 언데드를 목격한 이리나는 다급하게 손에들고 있던 공격용 스크롤을 찢었고,
– 파지지지지직!
“어, 어어!?”
이내 수행평가 사건 때 경험해본적 있는 익숙한 느낌을 받으며 프레이와 함께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짧은 적막이 흘렀다.
“크에에에에에!!”
“뭐, 뭐야!?”
“언데드다! 언데드가 나타났다!!”
제국과 태양신 교단을 발칵 뒤집어놓을 ‘성스러운 언데드 기사 사건’의 서막이 오르기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