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6)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6화(56/524)
Episode 56
“프, 프레이… 정신차려…”
“아, 벌써 가시는 건가요? 그럼… 나중에 뵈요.”
한참동안 자신의 손을 잡고 해맑게 이야기를 하던 프레이를 보다 못한 이리나가 그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자,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음?”
이윽고 잠시 움찔거리던 프레이는, 자신의 앞에 있던 이리나를 발견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카니아… 미안. 시련 때문에 네가 우리 엄마로 보였지 뭐야?”
프레이는 별거 아니라는듯이 피식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이리나는 그런 그를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거참,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오히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서 좋았어. 멘탈도 조금 회복된 것 같고. 첫번째 시련은 나에게 아무 해도 못끼친다고.”
그러자 프레이는 눈 앞에 있는 카니아가 늘 그랬듯이 자신을 과하게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번째 라는건… 정말로 그 해주 방법을 쓴 거구나…’
하지만 그때 이리나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이 프레이를 죽이기 위해 걸었던 저주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리나가 회귀 첫날에 마나 탈진 1년을 대가로 프레이에게 걸었던 ’12시의 저주’는,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저주중 하나다.
저주의 대상이 된 상대방은, 그날 12시부터 시작하여 24시간동안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고통을 느끼다가 죽게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저주의 해주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그 해주 방법은, 24시간 동안 저주로 받는 모든 고통을 맨정신으로 느낀 후 다음날 12시가 찾아오기 1분전에 근처에 있는 시계를 부숴버리는 것이다.
12시의 저주와 동격에 위치하고 있는 다른 무시무시한 저주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쉽고 허탈한 해주 방법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12시의 저주로 24시간 동안 겪게 되는 고통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하루동안 맨정신으로 그것을 버티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헌으로 남은 가장 오래버틴 기록이 6시간에 불과하니 말 다했다.
그리고, 만약에 어찌저찌 버텨내서 시계를 부순다고 하더라도 모든게 끝나는것이 아니다.
시계를 부순 순간, 지금까지 받은 고통을 죽기전까지 천천히 나누어 받게 되니 말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하루종일 받은 고통을 죽기전까지 끊임없이 받는다는 선택보다는, 죽음을 선택하겠지만…
“앞으로 며칠만 버티면 첫번째 시련은 끝날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반드시 죽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 이를테면 마왕에게서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숙명이 있는 사람은 울며 겨자먹기로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니아, 너 오늘 좀 이상해. 정말 괜찮은거 맞아?”
“아,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자신이 건 저주에 대해 생각하던 이리나는, 프레이가 그녀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묻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자, 이거 먹어.”
“…네?”
“얼굴이 창백해보여서 말이야.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네가 쓰러지면 상당히 곤란해서 말이지.”
그러자 그런 그녀를 물끄럼히 쳐다보던 프레이는, 조용히 그녀에게 물고기 꼬치를 내밀었다.
“어차피 난 마왕만 죽이면 상관없으니까 네 건강이 더 중요해, 그러니 사양하지 말고 먹어.”
“……네.”
이리나가 머뭇거리자 프레이는 엄한 표정으로 물고기 꼬치를 흔들며 말했고, 결국 이리나는 떨리는 손으로 꼬치를 잡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어떡하지? 아까본 신문에 따르면… 지금 나는 선라이즈 아카데미의 내 기숙사에 있다는 건데.”
이윽고 이리나가 물고기를 천천히 뜯어먹기 시작하자,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쳐다보던 프레이는 이내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기숙사까지 몰래 돌아가려면 네 은신술이 필요할텐데 말이야… 흑마력이 언제쯤 회복될 것 같아?”
“어… 하루 정도 더 걸릴것 같습니다.”
“음, 그래? 그럼 요양하는 셈 치고 하루만 더 있지 뭐.”
이리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한 프레이는, 침대에 풀썩 누우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카니아, 저번에 내가 명령했던 ‘스크롤 상인’건은 어떻게 됐어?”
“스크롤… 상인 말입니까?”
이리나가 스크롤이라는 말에 반응하여 되묻자, 프레이는 날카로운 눈빛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응, 저번 ‘수행평가 사건’의 실질적 범인인 그 ‘주인장’ 말이야.”
“아, 네… 조사중입니다.”
“반드시 잡도록 해. 왠지 느낌이 이상하거든.”
그 말을 마친 프레이는 콜록 거리며 침대에 누웠고, 그런 그를 쳐다보던 이리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 잠시 바깥에 다녀오겠습니다. 도련님은 부디 이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그래, 늘 고마워 카니아.”
그렇게 프레이와 말을 마친 이리나는 비틀거리며 비밀기지를 빠져나갔다.
“하아…”
이윽고 한참동안 숲을 혼자서 거닐던 이리나는, 강가에 도착하자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나는…”
이내 그녀의 발가를 물고기들이 지나치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며, 이리나는 영혼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모든걸 바로잡고 싶었을 뿐인데…”
처음 회귀를 했을때는 이것이 신이 자신에게 내린 사명인 줄 알았다.
친구를 지키지 못하고, 제국을 지키지 못하고, 마왕을 죽이지 못한 자신을 신이 불쌍히 여겨 다시 내린 사명 말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전회차에서 마왕만큼이나 사악했던 프레이에게 자신이 아는 저주중 가장 끔찍한 저주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프레이가 사실 모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용사였단다.
그리고 그런 그는 내가 건 저주 때문에 살면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느낀걸로 모자라서, 안 그래도 나때문에 짧아진 수명동안 그 고통을 다시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
“하아…”
그런 생각들이 자꾸 떠올라 그녀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기에, 이를 악물며 손톱을 뜯던 그녀는 잠시 흐르는 강물에 얼굴을 담궜다.
“…푸하.”
차가운 강물에 머리를 식혀 냉정함을 되찾을 심산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마음이 냉정해지긴 커녕 오히려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불타오르는 불에 물을 끼얹으면 차가워지는게 아니라 맥없이 꺼져버리는 것과 같이, 어느새 잔뜩 우울해져버린 이리나는 머리에서 물이 뚝뚝 흐르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옛날에… 여기서 프레이랑 놀았었는데…’
생기를 잃어버린 이리나의 눈에 프레이와의 추억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이리나… 왜 내 낚싯대에는 물고기가 안걸려?”
“바보야, 미끼를 안 걸었잖아.”
미끼도 안 끼운채 몇시간동안이나 기대에 가득찬 채 낚시를 하다가, 저녁이 찾아올때까지 물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하자 울먹거리며 자신에게 이유를 물어오던 프레이.
“아푸! 아브븝! 마, 마법은 반칙인데에…!”
물놀이에는 자신이 있다며 호기롭게 덤볐다가 자신의 수속성 마법에 몇번이고 고꾸라져 물을 먹자 분한 표정으로 따지던 프레이.
“우와… 맛있다아… 근데 왜 맛있지?”
“…칭찬이야? 악담이야?”
소금간을 한 생선구이를 한입 베어물고는 눈을 반짝거리며 순수하게 중얼거리던 프레이.
그리고…
“이딴거 이제 안먹는다고… 그러니 너나 실컷 먹어.”
어느날 갑자기 변해버린 그를 억지로 끌고와서 생선 구이를 내밀었을때, 싸늘하게 말하며 생선 구이를 무참히 짓밟던 프레이.
“그때는… 그저 엄마가 죽은 충격으로 잠시 변한건줄 알았지…”
그리고 그저 잠시 충격을 받아서 그런거라고, 언젠가는 다시 웃으며 같이 놀아줄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홀로 생선을 구워먹던 나.
“흐으…”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더더욱 우울해져만 가는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기 위하여, 이리나는 추억이 가득한 강가를 벗어나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발.”
그 어디를 가도 전부 프레이와 함께했던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었기에, 결국 이리나는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이야 프레이의 방에 있던 최고급 변신 포션을 마셔서 변장한 카니아의 모습을 가면으로 삼아 그의 앞에 설 수 있다.
하지만, 조만간 그녀는 프레이의 앞에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서야 할 것이다.
과연 그때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뭐라 말해야 할지… 아니, 애초에 아는척을 하는게 맞긴 한건지…
‘…모르겠어.’
의문이 생기면 무조건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고 살아온 이리나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토를 이행할 수가 없었다.
자기 합리화와 죄책감이 뒤엉켜 생긴 혼란과 혼돈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 그래왔듯이 해답을 찾는 대신 처음으로 판단을 내리는 걸 거부하며 웅크려 앉아있던 이리나는,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뭐지?”
앞의 숲속에서, 이상한 느낌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감지해내지 못할 미약한 양의 마력이었지만, 마나 민감도가 극한까지 올라가 있는 이리나는 꽤나 자세히 그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어둡고 사이한 느낌은… 흑마력인데…”
그렇게 한참동안 그 마력을 느끼던 이리나는, 그것이 흑마력이라는 걸 알아내고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카니아가 온건가?’
아직 프레이나 그의 협력자들과 접촉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이리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이윽고 양 팔을 뻗고 조금 더 자세히 마력의 기운을 느껴보던 이리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카니아가 아닌가?’
흑마법사들이 흑마력을 뿜어낼 때는, 의도하지 않는 이상 사방으로 불규칙적이게 퍼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는 흑마력은, 가늘고 긴… 마치 하나의 흐름처럼 흐르고 있다.
마치, 어디로 안내라도 하듯이 말이다.
“…꿀꺽.”
이리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흑마력이 있는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옛날에 그녀와 프레이가 놀았던 평범한 산의 숲속에서 갑자기 흑마력이 느껴지는것도 수상했지만, 아까 프레이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분명… 수행평가 때의 사건의 실질적인 범인이 스크롤 상인이라고 했었지.’
지금까지는 ‘수행평가 납치 사건’의 범인이 프레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허나 프레이의 진실을 깨닫게 된 이상, 그 또한 무고한 피해자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아리안느가 범인일 리가 없으니… 범인은 마법적 지식이 매우 뛰어난 아리안느와 자신을 속일정도의 스크롤을 만들어낸 스크롤 상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체불명의 상인에게는 어떠한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저번 사건때 최종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선라이즈 아카데미를 반파상태로 몰고 갔던 다크 골렘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곳에 보내진 것도 분명히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후우…”
그렇게 생각을 마친 이리나는, 조용히 흑마력이 풍겨오는 쪽으로 향하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위험해.’
지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심란한 마음을 어떻게든 돌리기 위해서는 무엇인가에 몰두를 하는것이 필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을 감수 할 수는 없다.
만약 이곳에 ‘다크 골렘’과 같은 위험한 존재가 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프레이 마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일단은 후퇴야…’
결국 이리나는 기운을 쫒는것을 포기하고 비밀기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쿠르릉!!
그렇게 비밀기지의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윽.”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현재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울적하던 이리나의 마음은 한층 더 울쩍해지기 시작했다.
“도련님, 무사히 잘 계셨…”
물론 처량하게 그곳에서 비를 맞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다급히 비밀기지 안에 뛰쳐들어온 이리나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얼어붙고 말았다.
“…어디 갔어?”
프레이가 누워있던 침대가 텅 비어있다.
그 광경을 잠시 얼어붙은 채 지켜보고 있던 이리나는, 이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밀 기지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 쿠르릉! 쿠릉!!
“도련님!!”
어느새 폭풍우로 바뀐 날씨 속에서 다급하게 외쳐봤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저 의미 없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프레이!!”
다시 한번 애절하게 프레이의 이름을 외쳐봐도 메아리만이 되돌아오자, 이리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세지는 폭풍우 때문에 시야 확보가 되지 않자, 이리나는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주변에 있을거야…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지금이라면…’
이윽고 그녀의 손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나 탈진을 몇개월간 겪으며, 억지로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 있던 마나를 쥐어짜내는 요령을 파악해 낸 이리나의 꼼수였다.
“으으으…!”
하지만 몸속의 마나회로에 조금씩 섞여있는 마나를 억지로 비틀어 짜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얼마못가 심각한 고통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문제없어… 마나 회로를 불태워먹고 끊어먹은게 몇번이나 되는데… 이정도는…’
물론 전회차에서 툭하면 마나회로를 다쳐오던 이리나였으나, 마나회로를 자의로 쥐어짜는것은 그녀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에 어느새 그녀의 눈은 충혈되고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흐아… 하아…”
그렇게 몇분간 그녀의 몸에 잔존해있던 마나를 전부 한손에 쥐어짜낸 그녀는, 구체 모양 마나를 하늘 위로 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를… 찾아.”
그러자 빙글빙글 돌던 구체가 빛을 흩뿌리며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렸을때 프레이와 하던 숨바꼭질에서 항상 그녀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던, 미래에 색적마법의 혁명을 가져올 정도로 적은 마나로 움직이는 그 불빛을 바라보며, 이리나는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프레이! 거기 있는거야!? 프레이!!”
그렇게 애타게 소리를 지르며 구체가 안내하던 곳으로 뛰어가던 이리나는, 문득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표정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여긴… 아까 내가 있던 곳이잖아?’
아까 그녀가 흑마력을 발견했던 곳에 다시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리나는, 구체가 흑마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 안돼! 안돼!!”
그녀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구체는 흑마력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계속해서 힘차게 날아갔고, 이리나는 공포에 찬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만약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프레이가 습격을 당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환상에 시달리던 프레이가 저곳으로 향했다면…!’
세차게 내리는 폭우때문에 그녀의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축축하게 젖어있었으나, 이리나는 그저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흐악!”
그러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성대하게 흙바닥에 구른 이리나는, 접질린 발을 움켜쥐고 잠시 신음을 흘리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프레이!! 내말 들려!? 프레이!!”
그렇게 다친 발을 질질 끌고 계속해서 프레이의 이름을 외치며 걸음을 옮기던 이리나는, 잔뜩 우거진 나무들을 빠져나오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팔과 다리가 온통 긁힌채 상처가 나 있었고, 접질린 발은 쿡쿡 쑤셔온다.
마나회로를 쥐어짜내서 겨우 모은 마나는, 개량형 색적마법을 쓰느라 겨우 파이어볼을 두발 정도 쓸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런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이리나는 비틀거리며 구체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긴?’
그렇게 접질린 발을 질질 끌며 그녀가 도착한 곳은, 으슥한 곳에 숨겨져있던 동굴의 입구였다.
– 슈우우…
사이한 기운이 가득 풍겨져 나오는, 어두컴컴한 동굴의 입구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리나의 옆으로 구체가 빛을 뿜으며 날아간다.
“…후우.”
그 모습을 보고 각오를 마친 이리나는, 언제든지 파이어볼을 쏠 수 있도록 팔을 앞으로 곧게 뻗은 후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역시 카니아의 기운은 아니야.’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자, 이리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비록 흑마법사이지만 심성은 착하던 카니아가, 이런 사악한 기운을 내뿜어낼리가 없다. 즉, 이 앞에 있는 존재는 카니아가 아닌 사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곳에 숨어있던 흑마법사던 간에, 마물이던 간에… 이 정도로 흉흉한 기운을 내뿜어 낼 정도라면 상당히 강력한 존재일 것이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잠시 그러한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이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문을 떨쳐냈다.
지금 이곳에서 물러났다가는 프레이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이곳에서 탈출 시켜야 한다.
오직, 지금은 그것만을 생각할 뿐이다.
– 샤르르…
그렇게 굳게 다짐하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날아가던 구체가 돌로 된 문 앞에서 녹아내려 사리지는 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앞에 프레이가 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프레이가 있다.
이 문을 열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어떤 상태든지 멀쩡할 리 없는 프레이를 눈앞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 끼이익…
하지만 이대로 문을 영원히 열지 않는다면, 프레이가 어떻게 될 지는 너무나도 뻔한 사실이었기에 이리나는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도련님?”
그러자, 가만히 서있는 프레이의 뒷모습이 그녀는 시야에 들어왔다.
“응, 카니아.”
그리고 잠시뒤, 프레이가 멀쩡한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하자 이리나는 살짝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대체 여기서 뭘하시는…”
“또 내 환상에 개입한거야? 내가 그러지 말라니까.”
“네?”
그러다 프레이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잠시 가슴이 답답해서 비밀 공간의 밖으로 나왔는데… 저번에 내 꿈에 나왔던, 이리나와 함께 웨어 울프에게 쫒겼던 숲이 시련의 환상으로 구현됐지 뭐야? 그런데, 이쪽에서 불길한 흑마력의 기운이 흘러 나오더라고.”
“그, 그렇군요…”
잠시 말을 얼버무리며 프레이에게 들은 말을 정리하던 이리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웨어울프라고요?”
“그래. 넌 잘 모르겠지만, 그때 꿈에서 본 바로는 이리나와 날 쫒던게 웨어울프였거든. 대체 이런 평범한 숲에 왜 웨어울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
그러자 그녀에게 답변을 해주던 프레이는,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더니 균형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도, 도련님?”
“으으… 기억, 기억이…”
당황한 이리나가 몸을 날려 프레이를 붙잡아 봤지만, 신음소리를 내던 프레이는 이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버렸다.
“대, 대체 이게 무슨…”
– 끼이익…
그런 그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던 이리나는, 갑자기 뒤에있던 돌문이 열리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었으나.
“카, 카니아?”
“…..!”
이윽고 뒤에 나타난 사람을 확인한 뒤 얼어붙고 말았다.
“…네가 왜 여깄어?”
프레이의 동생인 아리아 라온 스타라이트가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