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7)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7화(57/524)
Episode 57
“오, 오빠?”
멍하니 카니아로 변장한 이리나를 쳐다보던 아리아는, 이내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프레이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카니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런 아리아를 멍한 표정을 바라보던 이리나는, 놀라서 정지해버린 뇌를 다급히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아… 그게 말이죠. 저는 이곳에 도련님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숨겨…?”
“네,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에 신문에 실린 사건말입니다.”
프레이의 수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거짓말을 해버린 이리나는, 아리아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 사건에 도련님이 모종의 관계가 있어서 말이죠. 그래서 은신처중 하나인 이 산에 숨어들었다가… 우연히 이런 동굴을 발견해서 들어온겁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아리아는 잠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리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너에게서 흑마력이 안 느껴지는걸까?”
“그게… 도련님을 사건에서 빼내다가…”
“그럼, 정말 그 사건의 배후가 오빠였던거야?”
이리나가 계속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말하자,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아리아는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국을 발칵 뒤집히게 한 ‘성스러운 언데드기사’ 사건의 배후가 정말로 오빠인거냐고.”
“죄송합니다. 전 아무것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물론 이리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그대로 말했다간 프레이의 수명이 1년 3개월 밖에 남지 않을 것이므로 아리아의 질문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 까드득…
그러자 그런 이리나를 바라보며 이를 갈던 아리아가,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안믿어.”
“네?”
“분명 너도, 오빠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야. 난 알 수 있어.”
“어… 그게…”
“저번에도 말했듯이, 나는 어떻게든 진실을 알아내고야 말거야. 어떻게든…”
그 말에 식겁을 한 이리나가 거짓말에 조금 더 살을 붙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아리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알아내야 하는데, 지치는건 어쩔 수 없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빠를 믿는 것도… 진실을 찾는것도… 솔직히 이제 너무 지쳤어.”
그렇게 말하며 이리나의 앞에 쭈그리고 앉은 아리아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묻기 시작했다.
“카니아, 진실을 알려줘. 네가 아는 모든 진실을. 난 진실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
“아뇨.”
그런 그녀의 시선을 계속해서 피하던 이리나는, 아리아의 말을 끊고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전, 그저 도련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전회차에서 카니아가 자신에게 말했던 대사를 떠올려낸 이리나가 그때의 모습을 최대한 똑같이 흉내를 내자, 아리아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으으… 머리야…”
그렇게 잠시 둘 사이에 긴장감이 돌던 순간, 이리나의 품에 안겨있던 프레이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흡.”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이리나에게 뭔가 말을 하려던 프레이는,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는 아리아를 발견하고는 잠시 얼어붙었다.
– 스윽, 슥.
행여나 프레이가 이 상황을 여전히 환각으로 여길까봐 걱정된 이리나는, 프레이의 등에 다급히 다음과 같은 글자를 손가락으로 쓰기 시작했다.
– 실제상황
이윽고 이리나의 손가락이 멈추자 심호흡을 하던 프레이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서, 여긴 어쩐 일이지? 아리아?”
“그건… 내가 물어야 할 말이야.”
프레이와 아리아의 눈빛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여기 왜 온거야? 프레이?”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넌 조용히 하고 있어봐. 카니아.”
이윽고 아리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이리나가 다급히 대화에 끼어들려 했지만, 아리아는 그런 그녀의 입을 막고 프레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입으로 직접 말해봐. 대체 여기 왜 온건지.”
그러자 잠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카니아로 변신해있는 이리나의 얼굴과 아리아의 표정, 그리고 현재까지의 상황을 파악하던 프레이는 이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도망쳐왔지.”
“…무엇으로부터?”
“글쎄?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왔을까?”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아리아가 분노한 목소리로 프레이를 추궁하자, 손을 쥐락펴락하던 프레이는 갑자기 옆에 있던 이리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흐억…!”
“그런데… 카니아, 방금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라고 한거야?”
“죄, 죄송…!”
“내가 분명히 그 누구한테도 사실을 발설하지 말랬잖아… 이 쓸모없는 년아…”
그러자 그 모습을 아연히 지켜보던 아리아가 다급히 프레이의 팔을 붙잡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그만 둬! 카니아 언니는 아무말도 안했어! 방금 건 내 유도심문…!”
“…뭐? ‘언니’라고?”
그런 아리아의 외침을 들은 프레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천한 년이 왜 네 언니야? 넌 고귀한 스타라이트 가문이지 길거리에서 떠도는 천민이 아니란 말이야.”
“그런 역겨운 말좀 하지…”
“뭐, 하는 짓을 보면 어쩌다가 우리 가문에 섞여들어온 천민이 맞는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한번 마법으로 검사를…”
“말란 말이야아아!!!”
프레이의 발언이 도를 넘자 결국 폭발해버린 아리아는, 손에 별의 마나를 가득 담아 프레이를 밀쳤다.
“…으헉!”
그러자 그때까지 이리나의 목을 조르던 프레이는, 벽에 밀쳐져 부딪히고는 짧은 신음을 내질렀다.
“너, 넌 내 오빠가 아니야! 내 오빠가 아니라고…!”
한편 지금까지 쌓여온 스트레스가 폭발했던 아리아는, 주먹에 잔뜩 별의 마나를 모은채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아리아 님!”
그런 그녀를 본, 사실 프레이가 꽉 쥐는 척만 했기에 전혀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던 이리나는 다급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만두세요! 그러다간…!”
– 콰과광!!!
하지만 아리아는 손에 별의 마나를 모은채 그대로 주먹을 프레이의 얼굴에 내질러 버렸고, 그바람에 돌가루와 먼지가 날리며 둘을 뒤덮자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리나는 이내 다급히 그들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넌 내 오빠가 아니야…”
“콜록! 콜록!!”
이윽고 먼지를 해치고 들어온 이리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눈물을 흘리며 프레이의 얼굴 바로 옆에 있던 벽에 주먹을 꽂은 아리아와, 그 바람에 날린 돌가루와 먼지때문에 기침을 하기 시작한 프레이였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날…”
프레이를 사납게 노려보던 아리아는 피범벅이 되어버린 손을 바들바들 떨며 분노를 가득 담아 말하기 시작했고, 프레이는 왠지 모르게 그런 그녀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지만…
“쿨럭! 쿨럭!!”
“…어라?”
계속해서 기침을 하던 프레이가 각혈을 하는 바람에 아리아의 옷이 피범벅이 되자, 잠시 그들 사이에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크흐으… 아, 아무것도 아냐. 이건 그냥… 쿨럭!!”
“오빠!?”
애써 태연한 얼굴로 아리아에게 답하던 프레이가 다시한번 각혈을 하며 휘청거렸고, 그 광경을 보고 표정을 어둡게 바꾼 아리아는 프레이를 흔들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까 밀쳐서 그런거야? 어디 아파? 아니면, 혹시 그 사건이랑 연관이 되어있는거야?”
“아니… 그게…”
“빨리 말해. 이 각혈은 대체 어쩌다가 나온…!”
프레이가 시선을 피하며 말 끝을 흐리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아리아는 벽에 박힌 주먹을 빼내며 그를 몰아붙였으나,
– 쿠르르릉!!
“뭐, 뭐야?”
“…꺅!?”
갑자기 그들이 기대고 있던 벽이 흔들리더니 무너져내렸고, 그 바람에 균형을 잃은 그들은 동시에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연기를 해도… 역시 본성을 숨길 수는 없구나.’
그런 상황에서 프레이가 무의식적으로 아리아를 감싸 안고 넘어져 충격을 전부 흡수하는 걸 목격한 이리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오, 오빠… 지금…”
“떨어져.”
한편 자신의 위에 올라탄 여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자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밀쳐버린 프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옷을 탈탈 털며 물었다.
“그래서, 넌 여긴 왜 온거지? 아리아?”
“…어머니의 사고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어.”
“뭐?”
“오빠도 알잖아. 어머니가 이 산에서 돌아가신거.”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도달한 이리나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건이 왠지 모르게 수상해서, 아무도 모르게 옛날부터 혼자서 조사하고 있었어.”
“…뭐가 수상하단 거야?”
“뭐가 수상하긴…”
프레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아리아는 그런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때부터였잖아, 오빠가 변한게.”
그 말을 들은 프레이는 잠시 멍하니 아리아를 쳐다보다가, 이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나 때문에 돌아가셨으니 사고가 맞긴하지.”
“아니야, 뭔가 이상해. 오빠도 잘 알잖아. 사고사라기엔 너무 석연치 않은 점들이…”
“하, 어머니를 죽인게 나라고 바락바락 소리지르던 사람은 어디가고… 갑자기 웬 탐정 놀이야?”
아리아는 그 말을 듣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 그때는…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뭐, 사실이긴 하지. 엄마는 내가 죽인거나 다름없어. 그러니 사과할 필욘 없어.”
“그치만…”
“엄마는 나 때문에 죽은거라고!!!”
결국 참다 못해 폭발해버린 프레이는, 거칠게 아리아를 벽으로 몰아붙이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이딴 촌극은 그만…!”
“…여긴 한번도 와본적 없어.”
“뭐?”
“이 공간은 한번도 와본적 없다고.”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서 흑마력이 흘러나오는건 오빠도 알지? 그래서 이곳을 매일 같이 찾아와 조사를 했었지만, 흑마력의 근원지를 찾을 수 없었어.”
“그 말은…”
“그래, 이 통로의 끝에서 흑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어. 그러니 저 끝에 진원지가 있다는 거지.”
그 말에 프레이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자, 아리아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오빠… 부탁이야… 저 끝에 진실이 있을거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저 끝에 있을거라고… 그러니, 그 진실을 찾으면… 오빠도 이제 나쁜짓은 그만둬.”
“그게 무슨 소리야?”
말의 흐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프레이가 되묻자, 아리아는 살짝 기죽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그러니까… 오빠가 변한건 어머니의 죽음이 이유잖아? 그러니… 그 진실을 찾으면 오빠도 원래대로…”
“착각하지마, 아리아.”
그런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린 프레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설사 새로운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내가 변하는 일은 없을거야.”
“왜…? 어째서?”
그러자 아리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을 들은 프레이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답했다.
“이게 내 본성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프레이는 통로 안으로 걷기 시작했고, 한참동안 그런 프레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아리아는 고개를 푹 숙인채 그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정말 사악한 기운이네…’
그 슬픈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던 이리나는, 저 멀리서 밀려온 사악한 흑마력의 흐름을 손으로 흝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리아가 있으니 괜찮겠지?’
모든 마나와 생명체를 어둠으로 침식하는 흑마력의 약점은 ‘빛’이다.
물론, 일반적인 태양빛이나 불빛으로 무력화를 할 수 있는건 아니다. 그랬다면 사람들이 흑마법사를 배척할 필요도, 두려워 할 이유도 없었을테니 말이다.
무시무시한 흑마력에 대항할 수 있는 건 ‘태양의 마나’, ‘달의 마나’, ‘별의 마나’와 같이 빛을 담은 특수한 마나나 성녀나 성기사들이 쓸 수 있는 ‘성력’이 전부다.
그 외에는 사악한 흑마력에 직접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통로 끝에서 풍기고 있는 흑마력의 세기를 봤을때, 일반인들이라면 당연히 도망가는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흑마력에 대항할 수 있는 마나를 가진데다가 전회차에서 ‘별빛의 마법사’라 불렸던 아리아가 있으니… 계속 간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 이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맨 앞에서 앞서가던 프레이가 탄식을 내뱉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앞을 살펴보니, 온 몸에서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데스나이트가 통로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다행히 우릴 보고도 공격을 하진 않네.”
잠시 경계하는 눈빛으로 데스나이트를 살펴보던 프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에 있던 아리아와 이리나에게 말했다.
“선제공격을 하진 않는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하며 프레이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리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데스나이트 정도는 식은죽 먹기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반짝거리는 마나를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하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레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리나의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걱정되십니까?”
“아니, 전혀.”
그런 그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 이리나는, 프레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겨우 데스나이트인데… 아리아가 못 이길리가 없지.”
“그것도 그렇네요.”
하지만 프레이가 자신이 넘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를 하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가 출현할 시 수도가 봉쇄되고 황실 기사단들이 즉시 전신 무장을 한 뒤 출동할 정도로 강한 존재라는 건, 세계관 최강급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는 전혀 실감이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 파바방!!
“그오오!!”
벌써 데스나이트의 왼팔을 날려버린 아리아가, 그만큼 강력한 별의 마법사라는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정도면 같은 나이대의 이리나보다 더 뛰어나지 않았을까?”
“그건 아닌… 그럴수도 있겠군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프레이가 자신을 그녀와 비교하자, 애써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 이리나는 이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해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프레이가 표정을 굳히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실을 확인하는게 두려워서.”
“네?”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리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지만, 프레이는 그저 입을 굳게 닫은채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를 지켜볼 뿐이었다.
– 퍼버벙!!
그렇게 몇분동안 지속되던 전투는, 아리아가 날린 섬광이 데스나이트의 머리에 직격하며 그 승부가 결정되었다.
“가자.”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데스라이트의 몸뚱아리를 잠시 내려다보던 아리아는,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갈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휴우.”
“한숨을 쉬시는걸 보니, 그래도 살짝 걱정하시긴 하셨나보군요?”
“그래, 안 그래도 방금 별의 마나가 바닥나버려서 말이지. 흑마력을 느끼지도, 마나를 쓰지도 못하는데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큰일이잖아?”
이리나의 말에 그렇게 답한 프레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이리나 역시 프레이의 뒤를 따라가려다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기분탓인가?’
왠지 모르게 흑마력이 앞이 아니라 뒤에서 느껴진 것 같았지만, 워낙 찰나의 느낌이었기에 이리나는 착각이겠거니 여기며 어느새 꽤 멀리 앞으로 걸어간 프레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여기야. 이 앞에서 흑마력이 강하게 세어나오고 있어.”
그렇게 한참을 앞으로 걸어가던 프레이와 이리나는, 아리아의 말과 함께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 대체 뭐가 있길래 이러는 거지…?”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문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카니아, 왜 그래?”
이리나가 불안에 떨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프레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속삭였다.
“앞에서 무시무시한 흑마력이 느껴집니다. 이런 거대한 흑마력은… 딱 한번밖에 느껴본적이 없어요.”
“그게 언제인데?”
“전회차에서… 카니, 아니 제가 폭주했을때요.”
“뭐…라고…?”
별의 마나가 바닥이 나는 바람에 흑마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던 프레이는, 그 말에 경악을 하며 말했다.
“말도 안돼, 그 만큼의 흑마력이 분출되고 있다면… 이 산은 진작에 썩어 문드러져야 해.”
그 말을 들은 이리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이는 다급히 앞에서 문을 열려고 손을 뻗던 아리아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아리아! 그 문 열지마!!”
“…어?”
그리고 눈치빠른 아리아는, 그 목소리와 어조에서 옛날에 자신이 위험한 행동을 할때마다 뜯어 말리던 오빠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고 다급히 손을 땠으나…
– 끼이이이익…
“어, 어!? 나 손 안댔는데?”
어째서인지 거대한 문은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당황한 프레이는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이리나는 다급히 팔을 앞으로 뻗으며 공격 태세를 취했으나…
“…뭐야? 아무도 없잖아?”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살짝 어두운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넓은 방이었다.
‘뭐지? 왜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나 거대한 흑마력이…’
프레이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선 이리나는, 그러한 의문을 품으며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긴 흑마법을 연구하던 공간 같은데?”
“흑마법과 관련된 아티팩트들과 자료들이 즐비한걸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이곳이 흑마력을 연구하던 공간임을 추측해 낸 아리아와 이리나는, 문득 뇌리를 스친 의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 아무리 흑마법을 연구하던 공간이라 해도… 이렇게나 높은 흑마력이 느껴지는건 좀 부자연스러운데.”
“맞습니다. 잔존해있는 흑마력이 느껴지는 것이라 치기에는 너무나도 기운이 강합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이 공간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던 그때, 이리나가 의문점을 하나 제시했다.
“잠시만요, 그런데 왜 이 방에 빛이 있는거죠?”
“어? 그러게? 여긴 햇볕 하나 들지 않는 동굴인데.”
아리아가 말을 받고 잠시 침묵에 빠져있던 둘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천장을 올려다보던 아리아는, 좀더 자세히 확인을 하기 위해 섬광 몇개를 하늘 위로 쏘아 올렸고…
“…세상에.”
“말도 안돼.”
이내 둘은 경악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천장이, 온통 흑마력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저게, 저게 가능한 크기야?”
그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아연하게 바라보던 이리나는, 이내 이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으으…”
“도, 도련님?”
그러다가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억 주저앉아있는 프레이를 발견한 이리나는, 다급히 그에게 달려가 묻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나, 여기 와본적 있어…”
“네?”
“기억… 기억이… 숨어야 해… 숨바꼭질이…”
그러자 프레이는 갑자기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다.
“웨어울프… 어머니의 죽음…”
“프레이?”
“카니아의…….”
그렇게 한참동안 알수 없는 말을 늘여놓던 프레이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
“꺅!?”
“…아, 아리아?”
당황한 채 그런 그를 흔들기 시작한 이리나는, 이번에는 뒤에서 비명이 들리자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 슈우우…
“이, 이런 미친!!”
천장에 있던 흑마력이 아리아를 매섭게 덮치고 있었다.
“어, 얼마나 많은거야…!”
당황한 아리아가 손에서 별의 마나를 뿜어 봤으나 압도적인 크기의 흑마력을 전부 몰아내기엔 무리였고, 결국 흑마력에 뒤덮인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더니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누구야! 나와!!”
그 시점부터 이리나는 손에 불을 피워낸 후 바락 바락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나오라고!!”
“…알겠습니다.”
바락바락 소리를 치며 허장성세라도 부려보려던 이리나였지만, 앞에 있던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선 사람을 본 그녀는 힘없이 불을 꺼트린채 멍하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너, 너는…”
“제 행세는 재밌으셨나요.”
그리고 그런 그녀를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카니아는, 사방에 퍼져있던 흑마력들을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너, 너가 어떻게…?”
“이곳은 제가 옛날에 주인님의 무의식에서 모든 진실을 듣고서 찾아낸 곳입니다. 그리고, 원래는 스타라이트 가문의 당주님인 아브라함씨가 관리하던 곳이죠.”
“뭐, 뭐라고…?”
“물론, 그분은 지금 쓰러지셨기에… 지금은 이 공간을 찾아낸 제가 탐지 마법을 걸어두고 침입자를 막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자신의 아래에 쓰러져있던 아리아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던 카니아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리나를 보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항상 아리아씨 한명의 침입만 감지되었는데… 이번에는 두명이나 더 감지되었기에 설마해서 와봤더니, 정답이었군요.”
“어… 기숙사의 위장은?”
“전 대륙에서 가장 똑똑하신 분에게 잠시 대타를 맡겨두었으니, 걱정은 안해도 되겠죠.”
그렇게 말한 카니아가 한숨을 내쉬며 아리아와 프레이를 옆에 있던 침대에 고히 모셔두는 걸 지켜보던 이리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여긴 대체 뭐야?”
그 말을 들은 카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제 부모님이, 도련님의 어머니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웨어울프로 만들어 버린 곳입니다.”
“…뭣!”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리나는, 이내 아까의 프레이 처럼 머리를 부여잡더니 영혼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그럼 설마 그 늑대… 아니, 웨어울프가?”
“하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카니아는, 조용히 머리 위에 만개한 흑마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절대 생기지 않길 바랬던 동료가 하나 더 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