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58)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58화(58/524)
Episode 58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리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 기억은 뭐지…? 왜, 난 지금까지 이걸…”
그런 그녀를 조용히 쳐다보던 카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질문을 던졌다.
“도련님의 위악을 눈치챈 사람은, 역시 이리나씨 당신이었군요?”
그 말에 혼란한 눈빛을 하고 있던 이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양손을 꽉 쥐며 말했다.
“그럼… 프레이는 날 지키려고… 자신의 어머니를…”
“용케도 기억해 내셨군요. 도련님은 그 기억을 떠올려내기 위해 무의식에까지 접근해야 됐었는데 말이죠.”
“아아…”
“도련님과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이 조작되셔서 그런걸까요? 전 이 방에 들어와도 딱히 기억나는게 없었는데 말이죠. 뭐, 진실을 알아서 알게 되셨으니 입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네요.”
카니아가 침착하게 말하자, 이리나는 완전히 영혼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진실따위… 알고싶지 않았어…”
“저도입니다. 지금 당장도 죄책감이 너무 심해서, 도련님께 모든 걸 털어놓고 속죄를 하고 싶으니까요.”
그런 이리나를 보며 맞은편에 앉은 카니아는, 나지막한 목소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일은 모든게 끝나기 전까진 도련님께 알려져서는 안됩니다.”
“그, 그건…”
“도련님께서는 항상 괜찮다고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도 도련님의 정신상태는 한계에 다달아 있습니다. 하루정도 같이 지내보셨다면 잘 아실 테죠.”
그 말에 환상을 보던 프레이의 얼굴을 떠올린 이리나의 표정이 어두어지자, 카니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앞으로 도련님이 겪으실 시련도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제 겨우 첫번째 시련이 끝나가는데… 다음에는 무엇이 찾아올지 솔직히 저도 두렵습니다.”
“…읏.”
이윽고 카니아가 ‘시련’에 대하여 언급하자, 이리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이리나 씨,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
그런 이리나를 물끄럼히 쳐다보던 카니아가 조용히 묻자, 이리나는 기력이 다 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도련님을 너무 원망하지 말아주세요.”
“뭐?”
그런 이리나에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 카니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도련님 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을겁니다. 그러니, 부디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하.”
도와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원망을 하지만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카니아를 쳐다보며, 이리나는 그동안 둘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해 왔는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 네가 아는 모든것을 알려줘.”
“네?”
그리고, 그렇기에 그녀는 드디어 답을 내렸다.
“더욱더 자세한 진실을 알고 싶어.”
진실을 외면하고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고 힘이 될지에 대한 답을 말이다.
“쉽지 않은 길이 될겁니다. 매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워 질 것이고, 가끔은 충동적인 생각도 들거에요.”
“상관없어.”
“정말, 함께하실 각오가 된 건가요?”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카니아는 마지막까지 묻고 또 물었다.
그 무엇보다도 동료가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이 외로운 길을 선택했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은연중에 동질감과 연민이 발현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카니아도,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서 알려주기나 해.”
이미 각오한 눈빛을 하고 있는 이리나가, 절대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을거란 점을 말이다.
“하아…”
이리나의 확답을 들은 카니아는 안도와 체념이 섞인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리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하아… 그래, 이번엔 또 뭐냐.”
아리아를 따라 들어간 방에서 머리를 부여잡다가 쓰러져 보니, 어느새 내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폐쇄되고 어두운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으… 싫다 싫어.”
덕분에 진저리를 치며 바닥에 누운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정신 수양에는 좋다니까.”
옛날에는 이런 공간에만 들어오면 손이 벌벌 떨리고 호흡 곤란이 왔었는데, 하도 시련 때문에 많이 방에 갇히다 보니 그런 증상들이 거의 사라졌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끔찍한 장면들을 보며 정신 수양도 할 수 있었고, 생일 파티도 했었으며, 어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그걸 보면, 시스템의 시련은 역시나 날 더 강하게 할 목적으로…
“프, 프레이…”
“…으윽.”
어떻게든 시스템을 칭찬해 주려고 했는데, 눈 앞에 치명상을 입은 어머니가 나타났다. 역시, 시스템 녀석은 상종을 할 수 없는 새끼임이 틀림없다.
덕분에 살짝 기분이 불쾌해졌으나, 저런 장면을 보여 준다고 해서 내 멘탈을 터지게 할 수 없다. 애초에 저건 그냥 환상일 뿐이 아닌가.
“도와줘… 프레이…”
“우리 어머니는 한번도 도와달라는 말을 하신적이 없어, 바보같은 시스템 녀석아.”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손을 뻗는 환상을 밀쳐내버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대체 누가 눈치챈건지 빨리 알아내야 할텐데…”
아직까지도 다체 누가 나를 눈치챈건지 알아내지 못했기에, 이젠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독심술’ 스킬로 이리나와 클라나가 날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그걸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하아… 독심술 스킬 LV2를 사야되나? 아니, 그것보다는 생명력 회복 스킬이 더 시급한데.”
버는 포인트를 족족 투자시스템에 밀어넣어도 모자랄 판국에, 몇만 포인트나 되는 스킬을 사는건 꽤나 심각한 손해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일장일단이 있으므로 이 부분은 역시 조금 고민을 해봐야…
– 파지지지직!!
“아이, 거참.”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앞에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
이번엔 또 무슨 환상을 보여주나 했더니, 어머니가 무언가를 안고 급히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이젠 하다하다 스토리까지 부여하네.”
어머니의 시체를 던져주면 내가 트라우마 때문에 벌벌 떨거라 생각했던 시스템이,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제대로 각오를 했나보다.
– 파지지직! 파지직!
“크윽.”
온몸에 상처를 입은채 달리던 어머니는, 뒤에서 검은 기운이 날아오자 다급히 별의 마나를 발산하며 몸을 옆으로 던졌다.
“으으…”
그렇게 가까스로 검은 기운을 피한 어머니는, 계속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어… 이렇게 된 이상…”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어머니는, 갑자기 안아들고 있던 것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으음… 엄마?”
“…쉿.”
이윽고 어렸을적의 내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그제야 어머니가 안고 뛰던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프레이, 엄마랑 숨바꼭질 할까요?”
“응! 숨바꼭질 할래!”
어린 내가 해맑게 답하자, 어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엄마가 술래할게.”
“내가 술래 하고 싶은데에?”
“저번에 이미 한번 했잖니.”
그 말을 들은 어린 내가 뾰루퉁한 표정을 짓자, 어머니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앞으로는 술래만 하게 해줄게.”
그제야 내가 웃자, 어머니는 안고있던 날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규칙을 좀 바꿀거야, 프레이.”
“규칙을 바꿔?”
“응, 우리 똑똑한 프레이는 바로 이해할 수 있을거야. 그치?”
내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어머니는 빠르게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기서 100까지 셀테니까, 프레이도 달려가면서 100까지 세는거야. 여기까진 이해했지?”
“당연하지!”
내가 자신만만하게 외치자, 어머니는 어린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100까지 다 세면 더 이상 움직이지 말고 그 주변에 있는 것에 몸을 숨겨야 해. 그리고, 절대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단다.”
“응!”
여전히 해맑게 대답하던 어린 나를 쳐다보던 어머니는, 갑자기 눈을 질끈 감더니 날 끌어안았다.
“엄마, 갑자기 왜 그래?”
그런 행동에 내가 헤실헤실 웃으며 묻자,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 게임은 엄마가 프레이를 발견해서 이렇게 꼭 끌어 안아야지만 끝나는거야. 전부 이해했지?”
“다 이해했어!”
“그래, 저번처럼 나무 막대기로 반항하면 잡아먹어 버릴테니 각오하고?”
“헤헤.”
그말에 멋쩍게 웃은 내가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하자, 잠시 그런 나의 팔을 잡아 멈춘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사랑해요, 우리아들.”
“나두!”
그 말을 끝으로 어린 나를 떠나보낸 어머니는, 손에 별의 마나를 모으더니 지금까지 달려온 쪽의 반대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러니 넌 꼭 살아남으렴.”
그리고 그 다음순간, 내 시야에는 다시 좁고 어두운 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발.”
꽤나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장면을 목격해버린 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봤자, 환상일 뿐이야.”
문득 저번의 꿈에서 봤던 어린 내가 이리나에게 엄마가 꼭꼭 숨어있으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올랐지만,
저게 사실이라면 내 기억이 숨바꼭질을 한 기억으로 조작된 이유가 설명되긴 하지만,
사실 어느정도 진실을 짐작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저건 환상일 뿐이다. 날 고통스럽고 괴롭게 만드려고 시스템이 보여주는 ‘환상’ 말이다.
그러니, 그런 치졸한 목적으로 만든 환상을 봐도 나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다.
그럴 것이다.
“프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변이 갑자기 흐릿해 지더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아, 슬슬 깰 땐가 보네.’
그와 동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자, 슬슬 환상에서 깰 때임을 눈치챈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잘 잤니?”
그러자, 물끄럼히 날 내려다보고 있던 누군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으으… 머리야.”
왠지 모르게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보던 나는, 잠시 머리에 통증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피식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것도 환상인가?”
“그게 무슨 소리니?”
내 말에 누군가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기에, 나는 저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카니아의 옷을 입고 있는 이리나가 있잖아?”
“그렇구나.”
“심지어 너무 꽉 껴서 정장을 풀어 헤치고 있어… 푸흡, 푸흐흐…”
그렇게 한참동안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리나를 가리키며 웃던 나는, 그 옆에 있던 카니아가 이리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까지가 도련님이 지금까지 겪어오신 모든 이야기입니다.”
“아, 아아…”
그 모습에 점점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던 나는, 다급히 책상 앞에 앉아있던 둘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미안해… 프레이.”
이윽고 바로 앞에서 확인한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코는 빨갰으며,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이 내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되기 시작했다.
왠지 익숙했던 피신 공간, 왠지 모르게 평소와는 반응이 달랐던 카니아, 이리나가 어렸을 적에 잡아오던 것들을 잡아왔던 카니아, 그리고 어렸을 적에 이리나와 함께 했던 추억이 가득한 숲까지.
“하, 하하…”
쓸데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 때문에 순식간에 진상을 파악해버린 나는, 이내 헛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하하… 아하하…”
그렇게 한참동안 헛웃음을 흘리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리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2달전에 내 위악을 알아챈게 너였구나?”
“프레이, 내… 내가 잘못… 흐윽…”
하지만, 그녀는 그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
나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려 손을 뻗었지만…
“…어라?”
어째서인지 내 손은 이리나의 어깨를 통과하고 말았다.
“뭐, 뭐야 이게?”
덕분에 잔뜩 당황하며 그녀의 어깨에서 다급히 손을 빼낸 후 다른 손으로 내 손을 어루만져 보니, 아니나 다를까 손들은 맞물리는 대신 서로를 통과해 버렸다.
“…나, 죽었나?”
“글쎄다.”
잠시동안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며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나는, 그때까지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내 말에 대꾸를 하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뭐, 뭐야? 당신은?”
하지만 그 존재는 온 몸이 빛나고 있었기에 누구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고, 그 덕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그 존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잘 보렴.”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카니아가 입을 열었기에,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책상에 앉아있던 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리나 씨, 그래서 정말 그걸 하실 건가요?”
“…그래, 네가 말하는 그 ‘저주’를 피하고 프레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그 방법밖에 없잖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어느새 눈물을 그친 이리나가 각오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카니아는 조심스럽게 손을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흐악…!”
그러자, 방의 위에 있던 거대한 흑마력이 이리나의 몸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리나 씨, 다시 말하지만… 이 방법은 마나탈진으로 인해 말라 비틀어진 마나회로에 억지로 흑마력을 쑤셔넣는것이라, 상당한 고통이…”
“뭐가 어떻게 됐든 프레이가 느낀 고통 보다는 덜할거 아니야.”
“그럼, 조금만 참으세요.”
이윽고 다시한번 이리나에게 경고한 카니아는, 더욱더 빠르게 흑마력을 이리나에게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윽…! 으으…”
“죄송합니다. 제 흑마력을 넣었다면 조금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요.”
“네가 가진 흑마력으로는… 몇년을 모아도 안돼. 저 위에 있는 흑마력 정도는 되야… 성공을… 으극…!”
그렇게 한참동안 흑마력을 흡수하던 이리나는, 결국 책상에 엎어져서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설마… 마나 탈진의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마나회로에 흑마력을 가득 채워서, 시스템을 속이려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그들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왜냐면 저런 짓은 오직 마나 탈진인데다가 마나 운용에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이리나만이 시도 할 수 있는 일인데다가, 자칫하면 일이 크게 잘못 될수도 있다.
만약 저 흑마법 의식이 실패하면, 이리나의 몸에 있는 마나회로가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어 마나 불능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마법사들이 죽음보다도 더 무서워한다는 마나 불능 말이다.
“흐아아아아악!!”
“조금만 더 버티세요, 이리나 씨. 거의 다 됐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있던 이리라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잔뜩 당황한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이내 여전히 서로를 통과하고 있는 양손을 내려다보며 지금은 아무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그 결과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으으으으… 으으…
“괜찮으십니까? 이리나 씨?”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더 흐른 뒤, 이리나에게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카니아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향하며 질문을 던졌다.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러자, 온몸에 있는 마나 회로가 새까맣게 물들어 마치 혈관처럼 온 몸에 드러난 이리나가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답했다.
“…의식 성공입니다.”
그러자 카니아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고는, 이마에 났던 식은땀을 닦으며 답했다.
“그럼 이제 도련님과 아가씨를…”
그렇게 한동안 숨을 돌리던 둘은, 나와 아리아가 누워있던 침대로 눈을 돌렸으나…
– 슈우우우우…
“…어라?”
어째서인지 침대에 계속 누워 있던 나와, 곤히 잠들어 있던 아리아에게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조, 조종이 왜 안되는거지?”
그 광경에 당황한 카니아가 다급히 손을 뻗어봤으나, 어째서인지 흑마력이 조종이 되지 않자 당황한채 침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퍼버버벙!!
“…핫!”
그러나 갑자기 일어난 아리아가 손에서 별의 마나를 뿜어내자, 다급히 뒤로 물러난 카니아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자.
“아가씨?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그런 그녀를 쳐다보던 아리아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 퍼버버버버벙!!
“크헉!!”
이내 무차별적으로 카니아에게 별의 섬광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그 시점에서 모든게 멈추자,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사념이란다.”
“네?”
그러자, 그때까지 내 옆에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리석은 진리를 탐구하다 사고에 휘말려 죽은 두 사람의 사념이 흑마력에 섞여 있다가, 흑마력이 사라지자 그 모습을 드러낸거지.”
“그, 그게…”
“비록 사념이라 할 지라도, 욕망만큼은 없어지지 않았나보구나. 너와 네 동생을 숙주로 삼은 걸 보니 말이다.”
“아…”
그 말에 대충 상황을 파악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전 죽은건가요?”
“아니, 지금은 그저 몸의 주도권을 뺏겼을 뿐이란다.”
“그렇군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린 내가 정지한 순간을 멍하니 바라보자, 내 옆에 있던 존재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포기하고 싶니?”
그 말을 들은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옆을 쳐다보자, 그 존재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네 선택에 달려 있단다.”
“제 선택이요?”
“그래, 그 선택에 따라 모든게 달라질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 존재는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존재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여기서 포기하면요?”
“영원한 안식이란다. 아마, 꽤 기분 좋을거야.”
“그렇군요.”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 존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누구도 널 탓하지 않을거야. 넌 최선을 다했고, 또한 그럴 자격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요?”
하지만 말을 끊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자, 그 존재는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겠지.”
그 말을 듣고 내가 지긋이 눈을 감자, 그 존재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불합리하고, 더 끔찍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고… 이런 선택도 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단다. 그래도…”
“됐고, 안아나 줘요.”
그런 그 존재의 말을 다시 한번 끊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술래좀 해보게요.”
그러자 내 눈앞에서 반짝이던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방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니?”
그리고 이내 사방에 퍼진 반짝거리는 빛과 함께 내 시야에 나타난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질문을 던져왔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답변을 해주기 시작했다.
“천장이 흑마력으로 가득한데 방에 빛이 들어온다는건, 흑마력 위에 그 기운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거고…”
이윽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의 앞에 나타난 나의 어머니를 껴안은 나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맺었다.
“무엇보다, 그렇게나 절 걱정해주시는데 어떻게 못 알아봐요.”
“올곧게 자랐구나.”
그렇게 한참동안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던 나는, 따듯한 온기와 함께 사방에 퍼져있던 빛이 나에게 스며드는걸 느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반드시 살아남을게요.”
그러자 천천히 빛의 조각이 되어 나에게 스며들던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럼, 누구 아들인데.”
그 말을 마친 어머니는 천장에 가득 들어차 있던 별의 마나와 함께 완전히 내 몸에 스며들었고, 그 직후 내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첫번째 시련 조기 종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여…]“지랄.”
그 시스템 창을 바로 눈 앞에서 치워버린 나는, 주변의 장면이 점차 바뀌어가는걸 느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딜 감히 숟가락을 얹으려고.”
.
“도, 도련님! 아가씨!”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는 꽤나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으으…”
“정신 차리세요! 제발요!”
카니아와 이리나가 만신창이가 된 채 반파된 방의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아리아는 흑마력을 잔뜩 뿜으며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으며, 나는 반짝거리는 별의 마나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부탁입니다…! 제발…!”
“카니아.”
나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아리아를 어떻게든 말리려는 카니아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거 알아?”
“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을 맹렬히 공격하던 내가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묻자, 카니아는 당황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난 말이야…”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손을 위로 뻗고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맺었다.
“…옛날부터 한번쯤은 마법을 부려보고 싶었어.”
그리고 그 다음순간,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온 반짝이는 섬광들이 카니아와 이리나를 제외한 모든것을 일순간에 감쌌다.
– 샤아아아…
그러자 방에 퍼져있던 흑마력들이 일순간에 정화되기 시작했고, 카니아와 이리나에게 다가가던 아리아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 슈우욱!
이윽고 아리아의 몸에서 검은 구체가 튀어나와 총알같은 속력으로 나에게 날아오기 시작하자, 나는 왼손에 쥐고있던 검에 별의 마나를 두르고 간단히 구체를 베어버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아직까진 검이 더 몸에 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