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64)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64화(64/524)
Episode 64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늘하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왕군 회의의 시작을 선언하고 있다.
“물론 나는 방금 마왕군에 합류했기 때문에, 회의의 의제나 진행방식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오늘 전반적인 회의의 진행은 드미르칸에게 부탁하겠다.”
이윽고 이어진 내 말이 끝나자,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드미르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맡겨만 주십시오.”
아까와는 다르게 그의 태도가 상당히 공손하다.
“”………..””
그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간부들이 우물쭈물 거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덕분에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 보아도 표정관리가 잘 안된다.
‘일단, 원하던 효과는 나왔네.’
아까전에 드미르칸이 나에게 마왕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을때, 나는 대답을 회피했었다. 즉, 긍정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덕분에 지금 자신들의 앞에 있는 사람이 마왕인지, 아니면 그냥 상당히 강할 뿐인 2인자인지 알 수 없는 간부들은 아마 죽을 맛일 것이다.
만약 내가 마왕이 아닌데도 날 마왕으로서 섬기면 그건 마왕에 대한 불경이고, 내가 마왕인데도 날 마왕으로서 날 섬기지 않으면 그것 또한 불경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한 상황이다.
사실 이왕 날 마왕으로 착각을 했으니 아예 마왕행세를 하면서 마왕군을 거덜내고 싶지만, 드미르칸은 모종의 방법으로 마왕과 연락을 하고 있다.
그러니, 아예 대놓고 마왕 행세를 한다면 얼마 못가 탄로가 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눈치를 주면, 녀석들의 머릿속에서 알아서 시나리오가 만들어 질 것이다.
물론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간부들은 말라 죽어가겠지만, 그게 내 알바는 아니다.
“그럼, 첫번째 안건입니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를 가다듬던 드미르칸이 첫번째 안건을 발표했다.
“최근 세상에 다시 나타난 용사의 행방이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혹시, 간부님들 중에 용사의 행방을 알아내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간부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무도 없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현재 교단과 황실에 잠입해 계신 분들께 묻겠습니다. 용사의 행방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그런 그들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드미르칸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정보 간부의 명찰을 달고 있던 여자가 일어서며 보고를 시작했다.
“태양신 교단은 늘 그랬듯이 무능합니다. 성기사와 수도사들이 매일 수도와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소문을 하고 있긴 하지만… 찾으라는 용사는 안찾고 헌금이나 뜯어내고 있으니까요.”
“뭐, 애초에 교황이 우리편이니 무능할 수밖에 없지.”
그 말을 들은 드미르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역시 교황은 이 시점에 이미 마왕군의 끄나풀이었던 것 같다.
선라이즈 제국 뿐만 아니라 여러 대륙에도 어느정도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최고 규모의 종교집단의 수장이 마왕의 끄나풀이라니, 제국의 미래가 참 밝다.
“하지만, 지금의 교단에는 성녀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현재 그녀는 용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피식 미소를 짓고 있던 드미르칸은, 이내 심각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걸 보면 역시 ‘성녀’라는 존재는 1000년전에 있었던 전설의 1대 성녀 덕분에 마왕군에게는 크나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성녀는 자신이 직접 용사를 찾는 순례를 나선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순백의 성녀’가 순례를 나선다고 해서 효과가 있긴 할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만… 일말의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방해를 하는 중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말을 마친 여자가 다시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그 옆에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실은 꽤나 분전을 하고 있습니다. 황실 기사단 병력의 1/3을 용사 수소문에 쓰고 있는데다가 용사를 찾는 사람에게 거액의 포상금까지 약속하고, 심지어 뒷세계 길드와 접촉까지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 취하고 있죠.”
그 말을 들은 드미르칸,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졌나보군요?”
“마왕이 나타나서 제국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동안 누려왔던 절대 권력이 모두 허사가 될테니까요. 황실은 최소한 자신들의 권력과 관련된 일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 남자의 말에 너무 공감이 갔던 나머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으니, 드미르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뎠다.
“그럼, 위험도는 어떻게 되나요.”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교단보다는 적극적이긴 하나, 무능하건 매한가지니까요. 단, ‘황실 기사단’과 ‘제 3황녀’는 특별히 경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마치고 남자가 자리에 앉자, 드미르칸은 다시 내 눈치를 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어… 혹시, 프레이 님께서 해주실 조언은 없습니까?”
“내 조언?”
갑자기 조언을 구하는 드미르칸을 인상을 찌푸린 채 쳐다보고 있으니, 그가 고개를 조아리며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말입니다, 프레이 님은 ‘용사가문의 후예’ 아니십니까? 그러니… 혹시 ‘용사’에 대한 정보나 예언 같은걸 아시지 않으실까 싶어서…”
그렇게 말하며 드미르칸이 살짝 기대를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기 시작했고, 그건 다른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쎄… 나도 잘…”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용사임을 커밍아웃 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려서 넘어가려 했지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한번 시도나 해보기로 한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용사 가문의 당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문구가 하나 있다.”
“당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문구요?”
그 말을 들은 드미르칸이 눈빛을 빛내기 시작하자, 나는 잘하면 대어를 낚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임시 당주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그 사실을 알게 된건 몇달 전이다.”
“그래서, 그 문구가 대체 뭡니까?”
드미르칸이 날 재촉하자, 나는 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의 끝자락에 앉아있던 남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거기 너, 종이와 펜을 가져와라.”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에 싸늘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대, 대장님. 화내지 마세요.”
“맞아, 여기서 화냈다간 맞아 죽을거라구.”
이윽고 그들의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다급히 그를 말리기 시작하자,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옆억 있던 드미르칸에게 질문을 던졌다.
“…쟤는 누구냐?”
“전투 간부들의 대장입니다. 마왕군의 최고 간부중 한명이자 아까전까진 마왕군의 3인자였죠.”
“아…”
맨 끄트머리에 앉아있길래 말단인줄 알았는데, 무려 전투 간부들의 대장이란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사과를 할까 생각했지만, 마왕군의 2인자가 이제는 4인자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사과를 하는 건 영 모양새가 살지 않았음으로 그냥 이대로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내 말이 안 들리는 건가? 지금 당장 종이와 펜을 가져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마왕과 2인자의 경계선에 서있는 적당한 오만한 말투로 녀석을 독촉하니, 흉터가 가득한 남자가 주먹을 꽉 쥐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종이와 펜을 챙겨 나에게 다가 오기 시작했다.
“싸구려 깃펜이군. 다음부터는 더 좋은걸로 준비해 두도록.”
그런 그에게 종이와 펜을 받아든 나는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드미르칸에게 명령을 내리며 자리로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으득.”
그러자 잠시 이를 갈던 전투 간부장은, 이내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문자를 본 적이 있겠지?”
“이, 이건…!”
그런 그를 애써 무시하고 종이에 글자를 써넣은 나는 그것을 드미르칸에 내밀었고, 그 글귀를 본 드미르칸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1000년전의 용사가 쓰던 문자 아닙니까…?”
“그래, 그 문자로 쓰인 문구가 대대로 우리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의 뜻도 아십니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드미르칸이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나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당연히 알지. 물론, 아주 짧지만 말이다.”
그런 그를 낚을 준비를 끝마친 나는,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년뒤에 세상이 찾아야 할 사람은 여자이며, 고아 출신이다. 그리고…”
“그리고요?”
내가 말끝을 흐리자 드미르칸은 식은땀을 흘리며 날 재촉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아쉽지만 문구는 여기서 끊어져 있어.”
“아…”
그러자 드미르칸이 아쉽다는 듯이 탄식을 흘렸다.
“혹시나 몰라 보험을 걸어두었던 내 선조 탓이지. 하지만, 이 뒤의 내용을 알아낼 방법은 알고 있다.”
“정말입니까!?”
그런 그에게 다시한번 희망적인 말을 하자 드미르칸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계획의 성공을 직감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대륙에 존재하는 ‘용사의 유적’에 있는 모든 글귀들을 알아내오거라. 그것이 이 뒷내용을 밝혀낼 열쇠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조아린 드미르칸은, 그때까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간부들에게 선언했다.
“아무래도, 용사 수색은 우리가 그 어느곳보다 앞서나갈 것 같군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숨을 돌리던 드미르칸은, 책상에 지도를 펼치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했으나…
이제부터 저희는 서대륙에서…”
“잠시만요.”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던, 전형적인 마족의 모습을 띄고 있는 여성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의 말을 끊었다.
“르메르노, 지금은…”
“넌 누구지?”
그런 그녀를 드미르칸이 제지하려 했으나, 난 그런 그의 말을 끊고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는 마왕군의 전략과 전술을 담당하고 있는, 순수 마족 르메르노 입니다.”
“…호오.”
이윽고 그녀의 소개를 들은 나는, 눈을 빛내며 ‘정보 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이름: 르메르노] [능력: 힘 6 / 마력 6 / 지능 9.2 / 정신력 5] [특이사항: 없음] [성향: 책략가] [선함 수치: -80]‘…세레나한테 맨날 깨지던게 얘였구나.’
이윽고 그녀의 정보를 들여다본 나는, 그녀가 전회차에서 세레나와 머리싸움을 벌이던 책략가였음을 떠올려냈다.
‘뭐, 세레나의 상대라기 보다는 놀잇감이었지만.’
물론 말이 머리싸움이였지, 사실상 세레나에게 머리로 폭행을 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예언서’에 적혀있는 선조님의 말로는, ‘제갈 공명’과 ‘사마의’ 라는 사람들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한다.
결국 멸망한 쪽이 세레나가 지휘하던 선라이즈 제국이었다는 것도 완전 판박이라나 뭐라나?
잘은 모르겠지만 선조님이 살던 세계에도 세레나 같은 사람이 있긴 있었나 보다.
“불경스럽게 들릴수도 있겠지먀, 저는 프레이님이 주신 정보를 신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르메르노가 무능한건 아니다. 지금만 봐도 유일하게 내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처참히 패배했던건, 그냥 세레나가 ‘씹 사기캐’라 그런거다.
“왜 내 정보를 신뢰할 수가 없다는 거지?”
덕분에 살짝 곤란함을 느낀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프레이님은 저희에게 저 문자의 해독법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러자 그녀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건 곤란하다. 전대 용사가 남긴 글자는 오직 직계 후손만 해독할 수 있어.”
“어째서죠?”
“가문에 걸려있는 고대마법이다. 문라이트 가의 ‘종속의 저주’나, 선라이즈 가의 ‘맹약’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지.”
비록 예기치 못한 추궁이었으나 침착하게 변명을 하니, 르메르노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서대륙에 있는 유적에 적혀있는 문자를 전부 알아오는 것이 왜 ‘열쇠’가 되는지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건… 너희가 알거 없다. 너희는 그저 ‘군대’의 기본 규칙인 ‘상명하복’에 따라 내가 지시하는 일에만 따르면 된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한번 변명을 하려던 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던 르메르노를 보고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작전을 변경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녀의 노림수였기 때문이다.
일부러 내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묻고 또 물어, 거짓말과 변명을 유도한다.
그리하면 결국 진술에는 허점이 생기게 되고, 그 순간만을 노리던 르메르노는 그 즉시 허점을 파고들어 논리를 깨부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그녀의 계책에 휘말려들지 않으려면 완벽한 알리바이, 또는 강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물론, 임기응변밖에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현재 내 위치에서 나오는 권력을 이용한 강압적인 태도로 그녀를 찍어 누르는게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프레이님의 정보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저희 마왕군은 너무나도 불확실한 정보에 의존해 왔습니다.”
“불확실한 정보?”
“네, 신분도,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마왕님이 내리는 걸로 여겨지는 알수없고 애매모호한 명령들만을 수행해 왔죠. 덕분에, 마왕군의 사기는 점점 더 떨어져가고만 있습니다.”
르메르노의 말에 간부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왕에게 쌓인게 꽤 많았나 보다.
“하지만 프레이님 마저 그런식으로 나오신다, 필연적으로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그건 결국 마왕군을 병들게 할겁니다. 그러니…”
“결국, 프레이님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윽고 그녀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던 드미르칸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왕군의 최고간부이자 2인자인 프레이 님을, 당신은 신뢰할 수 없다는 건가요.”
“…스타라이트 가문은 어둠을 밝히는 용사가문이죠.”
그러자 그녀도 지지않고 말을 덧붙였고, 그렇게 분위기가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가던 순간…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나.”
“네?”
조용히 손을 들어 둘의 대화를 제지한 나는, 르메르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면 되는건가?”
“그렇습니다, 적합한 증거만 있다면… 모두가 만족하겠지요.”
그녀가 답변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간부들이 전부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명백한 의심이 서려 있었다.
‘…잔머리 하나는 잘 굴리네.’
그녀는, 최후의 수단으로 아슬아슬하게 적정선을 지키며 간부들에게 ‘아주 약간의 의심’을 심어놓는 작전을 선택한 것 같다.
이대로 그들을 내버려 둔다면 언젠가는 그 의심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나 결국 날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의심이라는 감정은 끝없이 필수적으로 일어나는, 여타 감정들보다 강력한 감정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부터 의심의 씨앗을 제거할 것이다.
의심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감정을 사용해서 말이다.
“이미 나는 그 증거를 너희에게 보여주고 있다만?”
“그게 무슨 소리죠?”
내 말을 들은 르메르노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마, 내 수상함을 눈치채고 모두에게 의심을 불어넣겠다는 그녀의 계획이 틀어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리라.
물론, 그걸 느꼈다 한들 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드미르칸, 네가 대신 그 이유를 말하거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드미르칸에게 명령을 내렸다.
약삭빠르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마왕’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는 그라면, 내가 말한 ‘증거’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저희가 살아있는것이 그 증거입니다.”
드미르칸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까 나에게 종이와 펜을 건내준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기 너, 직책이 뭐지?”
“…최고 간부중 한명이자, 마왕군 전투 간부의 대장입니다.”
“그래, 그럼 네가 나와 싸운다면… 얼마 정도 버틸 것 같나?”
그 말을 들은 남자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3분에서 5분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까의 전투를 보면, 일합도 못견딜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간부들이 충격이 서린 표정을 짓는걸 여유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지금 검을 한번 휘두르는 걸로 너희들 모두의 목을 벨수도 있다.”
물론, 거짓말이다.
검을 휘둘러서 모두 죽이기 전에, 내 생명력이 전부 바닥날 것이다.
“너희 모두, 그걸 원하고 있는 건가?”
“”……….””
하지만 간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하나같이 겁에 질린 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검을 뽑아서 별의 마나를 두른채 어루만지고 있다는 사실도 한목 했겠지만 말이다.
“너희가 날 의심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다. 하루아침에 2인자의 자리에 사람이… 그것도 용사가문의 후예가 앉게 되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마 너희는, 내가 ‘용사’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을거다.”
물론 녀석들은 나를 용사로 의심하는게 아니라 스파이 정도로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나머지 상황판단 능력을 상실한 녀석들에게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진실로 각인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용사라면, 그저 검을 한번 휘두르는 걸로 너희를 전부 죽여버릴 수 있는데… 왜 그러지 않고 굳이 2인자 노릇이나 하고 있을까?”
그렇게 말하며 모두를 흝어보자, 간부들이 내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쓸데없는 의심은 거두거라. 이렇게 까지 말했는데 잡음이 나온다면, 그때는 나에게 도전하는 걸로 간주하지.”
그런 그들에게 싸늘한 어조로 말을 마치니, 간부들이 전부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읏.”
한편, 그런 간부들 사이에 있던 르메르노는 혼자서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부분의 간부들은 공포를 사용해 억눌러 버렸지만, 역시나 르메르노는 나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뭐, 그래도 쓸만은 하니까 좀 부려먹다가… 수가 틀리면 죽여버리지 뭐.’
그렇게 판단을 마치고 뿌듯한 미소를 짓던 나는, 문득 든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마왕일이 꽤 적성에 맞는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드미르칸이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다음 안건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드미르칸이 모두에게 나누어준 사진을 본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조만간 열릴 이 노예시장에서, 저희는 마왕군을 위한 노예들을 확보할 겁니다.”
‘…어림도 없지.’
아직까지 날 최고간부로 만든 마왕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나 시스템, 변수, 그리고 마왕에게 휘둘리고 있을 생각은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는 마왕군을 알뜰살뜰하게 벗겨먹으면서 그녀가 세운 모종의 계획을 최대한 방해해 나갈 것이다.
겸사겸사, 스트레스도 좀 풀면서 말이다.
.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던 회의가 끝나고, 대부분의 간부들이 회의장을 벗어난 직후.
“…드미르칸 씨. 저와 이야기좀 하죠.”
끝까지 회의장에 남아있던 르메르노가, 역시나 끝까지 남아있던 드미르칸에게 말을 건냈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뚫어져라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드미르칸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프레이는 믿을 수가 없어요. 너무나 숨기는게 많…”
“만약, 정말 만약에… 그가 우리의 마왕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르메르노는 그런 그를 다급히 설득하려 했지만, 드미르칸은 그런 그녀의 말을 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나온 마왕님은 항상 자신의 정체를 숨겨오셨습니다. 외형, 신분은 물론 자신의 목소리 까지 말이죠.”
드미르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마왕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던 르메르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건, 그 분이 프레이 님 정도의 키와 체격을 가졌고… 프레이님과 똑같은 오만하고 거만한 어조를 사용한다는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 말에 인상을 팍 찌푸린 르메르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겨우 그런 빈약한 증거들로 확신을 하시겠다는 건가요? 애초에, 그런건 얼마든지…”
“프레이님은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마검사’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르메르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그분의 검술과 마력은 동시에 최강의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그런 건, ‘마왕’님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번에 마왕님은 당신의 공격을 손가락을 하나 까딱이는 것 만으로도 지웠다고 하셨잖아요.”
이어진 드미르칸의 단언을 들은 르메르노는, 고개를 저으며 반박을 시작했다.
“오늘 프레이가 보여준 무용은 말 그대로 신화적이긴 했지만, 손가락을 하나 까딱이는 것 만으로도 모든 공격을 지워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그 점에 대해서 당신에게 이야기 할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을 다시 한번 끊은 드미르칸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왕님에게는 ‘제약’이 걸려있습니다.’
“제약이요?”
“어떤 제약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왕님이 계속 정체를 숨기시는 것과 용사의 정체를 공유하시지 않는 것,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행동을 보면, 알수 없는 힘이 모종의 ‘제약’을 가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렇게 말한 드미르칸은, 이내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마쳤다.
“그리고… 그건 프레이님도 마찬가지지요.”
“네?”
“당신도 느끼시지 않으셨습니까. 아까 프레이님이 용사의 정체에 대해 말할 때, 우회를 해서 말한 데다가 일부 질문은 회피를 하셨던걸요.”
“…으음.”
그 말을 들은 르메르노는 아까의 기억을 되짚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뭐, 아직까지는 확신을 하긴 이르지만…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그리고 그런 르메르노를 쳐다보던 드미르칸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드디어 마왕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착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