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68)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68화(68/524)
Episode 68
“도련님, 어딜 갔다 오신건가요?”
밤새 세레나와 데이트를 한지라 약간의 피곤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풀리고 정신도 맑아졌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진심에서 우러져나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침 산책.”
“그렇군요, 그러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날 안으로 들이려던 카니아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잔뜩 표정을 굳힌채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말 아침 산책을 하신게 맞습니까?”
“응, 아침 산책이 몸에 좋다고 들어서. 나도 슬슬 건강을 챙겨야지.”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을 보니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헛소리들을 늘여놓고 있으니, 카니아가 나에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산책을 하다 구르셨나 봅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카니아가 그 말을 하며 내 등을 털기 시작했다.
“어… 그만 발을 헛디뎠지 뭐야?”
그제야 나는 세레나와 뒹구느라 옷에 묻은 풀과 흙먼지를 미치 다 털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머쓱한 표정으로 변명을 하니, 카니아가 무엇인가를 내게 내밀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게 뭔가요?”
그녀가 내민것은, 세레나의 연보라색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이건 또 뭐죠?”
“그건 내 동생이 준 손수건…”
“그런데 왜 달의 마나가 새겨져 있는 걸까요?”
“죄송합니다.”
계속되는 카니아의 추궁에 결국 나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잘못한건 없지만 왠지 모르게 해야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손수건에 그려져 있는 은색 고양이가 외로워 보이네요.”
“응?”
그렇게 어떻게 해야 카니아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카니아가 손수건을 물끄럼히 쳐다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카니아가 손수건에 흑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받으세요, 도련님.”
“…이건?”
잠시 후에 그녀가 내민 손수건에는, 원래 있던 은색 고양이 옆에 검은색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에게 짝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카니아는, 그 말을 남기고 공작저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손수건이네.”
아리아의 별의 마나로 그려진 은색 고양이, 카니아의 흑마력으로 그려진 검은 고양이, 그리고 세레나의 달의 마나로 그려진 달까지.
각기 다른 기운을 뿜고있는 손수건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아, 안녕하세요.”
손수건을 고이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공작저의 안으로 들어서니, 소심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
“어, 어제 프레이님이 전담 메이드를 하라고 하셔서…”
“아, 그랬지.”
누군가 했더니 내가 어제 내 전담메이드로 돌린 루루였다.
“저, 저는 이제 뭘하면 될까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그녀는 내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소심하게 물어왔다. 그런 그녀를 잠시 빤히 쳐다보던 나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넌 이제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내가 시키는걸 전부 수행해.”
“아,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자 내 옆에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그렇게 외친 뒤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힐끔 바라보며, 나는 전회차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래, 쟤가 루루였구나…’
예언서에 나와 있는 바에 따르면, 자유도가 굉장히 높은 게임인 ‘블랙테일 판타지 시리즈’에는 메인 히로인들 말고도 각양각색의 서브 히로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지금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는 루루는 그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히로인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블랙테일 판타지 2’에서 공략이 거의 불가능한 히로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사항은 세계를 구하기 위한 위악자 루트를 타고 있는 나에게는 별로 중요한 점이 아니다.
하지만, 공략이 거의 불가능한 이유를 알고 나면 그 누구라도 마음이 찝찝해 질 수밖에 없을것이다.
‘…쟤를 과연 내가 살릴 수 있을까?’
그녀는, 거의 모든 루트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언서에조차 나와있지 않다.
– 아무튼, 도전과제가 존재하는 걸 봐서는 분명히 살릴길은 있어. 프로그램 상에 해주 코드만 더미데이터로 존재하는 세레나의 ‘종속의 저주’와는 달리, 게임 플레이로 어떻게든 살릴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마치 개복치 같은 그녀를 살리는데 성공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지.
그런 루루를 살리기 위하여 선조님이 있던 세계의 수많은 용사들이 ‘도전장’을 던졌었으나, 성공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 …그 아이는 내가 공략하지 못한 유일한 히로인이었어. 아무리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도, 제한된 게임 시스템 때문에 넘을 수 없던 벽이 있었거든.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게임 따위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인 이 세상에서라면, 그녀를 구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선조님의 말대로 지금의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 물론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그녀까지 챙길 필요는 없어.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는거지만, 내가 말하는걸 전부 곧이곧대로 따를 필요도 없고. 지금 그 시간대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건, 내가 아니라 다름아닌 너니.
그리고 내가 원하는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런 해피 엔딩을, 저 아이만 못보고 죽는것은 너무하지 않는가?
– 그러니까, 그녀를 구할지 말지는 그때의 상황을 보고 네가 직접 판단하도록 해.
‘이왕 개판이 된거… 조금 더 어지럽히지 뭐.”
스타라이트 가문은 미처 빛을 받지 못한 자들을 비추어주는 별이다.
그러니 나는, 저 아이를 어떻게든 구해볼 것이다.
– 쨍그랑!!
“…으, 으앗!”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니, 고급 꽃병이 깨져있었다.
“어, 어어 얼마에요?”
“150골드.”
“……아.”
그런 루루에게 무심코 꽃병의 가격을 말해줬더니, 그녀의 눈이 죽어버렸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동기를 하나 제공해버린 것 같다.
.
루루를 대동하고 주방에 들어서 보니, 카니아와 이리나가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카니아? 이리나? 여기서 뭐해?”
“아침식사를 준비 중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니, 카니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을 해왔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을 짓던 나는 다급히 입을 열려다가 그때까지 죽은 눈빛을 하고 있던 루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가서 대기하고 있어.”
“네.”
“어디가지 말고. 문 바로 옆에 붙어있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루루를 주방 밖으로 내보낸 나는, 카니아와 이리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 혼자서 그 많은 식사 준비를 다하려고?”
“괜찮아, 아침식사로는 간단한것만 만들면 되니까.”
“그래도… 음…”
이리나까지 나서서 괜찮다고 말했으나 영 마음이 걸린다. 결국, 한참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이내 소매를 걷어올리고 손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지금 뭐하세요?”
“좀 거들려고.”
그렇게 손운동을 마친 내가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하자, 카니아와 이리나가 날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너… 요리 할 줄은 알아?”
이윽고 내가 식칼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자, 이리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질문을 던져왔다.
“음… 요리라는건 칼로 재료들을 썰고 섞은다음 소스를 넣는 거잖아? 난 칼질에는 자신이 있으니 요리도 꽤…”
“도련님, 그게 그렇게 쉬운게 아닙니다.”
그런 그녀들에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카니아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다다다다다다닥!
“이렇게 하면 되는거 아닌가? 아까부터 계속 당근을 일정한 간격으로 썰고 있던데.”
하지만 내가 옆에 있던 당근 10개를 순식간에 먹기 좋게 썰어내자, 날 막으려던 카니아의 눈빛이 변했다.
“…그거, 다른 식재료도 가능합니까?”
“아다만티움이나 미스릴도 벨수는 있는데.”
이윽고 이어진 카니아의 말에 답변한 나는,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식칼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도마도 자르면 어떡해?”
“아.”
하지만 그 순간 이리나가 너덜너덜해진 도마를 흔들며 태클을 걸어왔다. 덕분에 머쓱해져 머리를 긁고 있으니, 한숨을 내쉬던 카니아가 내 손에 자신의 손을 엎었다.
“우선, 힘 조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으, 으응…”
그렇게 나와 카니아는, 한동안 바짝 달라붙은 채 채소들을 썰어나가기 시작했다.
“…도련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응?”
박자를 맞춰 채소를 썰다보니 어느새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아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있는데, 카니아가 갑자기 질문을 던져왔다.
“두번째 시련은 언제 찾아옵니까?”
“아얏!”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 묵묵히 고기를 썰고 있던 이리나가 비명을 질렀다.
“이리나?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이리나가 붙잡고 있던 손가락에서 피가 솟아나오기에 다급히 다가가보니, 그녀가 창백해진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실수를 한것 뿐이야.”
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며 조용히 입술을 짓씹던 이리나는, 이내 애써 시선을 아래로 돌리며 답했다.
“조심해, 이리나. 이따가 꼭 반창고 붙이고.”
그런 그녀가 약간 신경쓰였지만, 상처는 별로 깊어보이지 않았기에 그러한 말을 남기고 돌아선 나는 카니아에게 아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곧 찾아오겠지?”
“…혹시 정확한 증상과 유지 기간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도 대비가 필요합니다.”
“아냐, 걱정할 필요 없어. 두번째 시련은 진짜 별거 아니니…”
“별게 아닐 리가 없잖아.”
최대한 둘을 안심시키기 위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리나가 칼을 도마위에 탁 내려놓더니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내 말에 끼어들었다.
“알려줘, 네가 이번에 당할 고통은 뭔지.”
“아니, 진짜 별거 아니라니까? 아마 별 문제 없이 몇달 안에 사라질…”
“몇달이나 걸린다고…?”
그런 이리나에게 다급히 변명을 해보았지만, 이리나의 얼굴은 더더욱 창백해질 뿐이었다.
“이리나, 난 괜찮아. 그러니…”
– 똑똑똑!
덕분에 어쩔줄을 몰라하던 나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갑자기 들려온 노크소리 때문에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
“누구신가요?”
이윽고 카니아가 침착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고, 그러자 문 밖에서 꽤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니아님…?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오?”
아리안느의 언니가 당황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오고 있었다.
“…당신이 왜 거깄습니까?”
그런 돌발상황에 카니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아리안느의 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제가 주방 담당인데요. 식재료를 구하러 잠시 출장을 갔었거든요. 그런데, 돌아와보니 왠 학생들이 저택에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 말을 듣고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알아차린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쉰 카니아는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네, 네에? 그러면… 저는…”
“방학 전까지 이 집에서 나가주시면 됩니다. 짐을 싸시고 오늘내로…”
“부, 부탁이에요! 제발 절 남게 해주세요!”
하지만, 상황 설명이 끝나자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리안느의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 여기 아니면 지낼곳이 없어요… 게다가 여기에 아리안느도 있으니 부디 절 이곳에…”
“이곳이 아니면 지낼곳이 없다니요?”
“저, 저희 자매가 사실 집을 뺏겨서요… 그래서 전 스타라이트 가에서 지내고 있고, 아리안느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데… 여기서 내쫒기면…!”
이윽고 그녀의 기구한 사연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요리를 잘하는 아리안느의 언니가 있다면 편하긴 하겠지만… 여긴 위험한데…’
“가사일도 제가 다하고 요리도 제가 다할테니 내쫒지만 말아주세요! 잠은 아리안느와 같이 잘테니…!”
“…어떻게 할까요? 도련님?”
한참동안 눈을 감은채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카니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여오자 천천히 눈을 뜨며 결정을 내렸다.
“…밤에는 아리안느와 같이자고, 평소에도 되도록이면 아리안느의 옆에 붙어있는 조건으로 이곳에서 지내도록 허락해줘. 아리안느의 보호 마법은 최상위 수준이니까 같이 붙어 지내면 별 문제 없을꺼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내 말에 답한 카니아는 문 뒤에 있던 아리안느의 언니에게 결정 사항을 전달했고, 잠시 후 뒤에서는 울먹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녀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아무래도 전문가에게 맡기는게 나을테니까.”
그렇게 요리 문제를 해결한 나는, 주방에 있던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프, 프레이! 잠깐…”
그런 나를 이리나가 다급히 불렀지만, 그때 나는 이미 창문을 넘어간 후였다.
“…거기서 뭐해?”
“흐, 흐익!”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나는, 문득 옆에 루루가 쪼그려 앉아있는 걸 발견하고 질문을 던졌다.
“죄, 죄… 죄송… 히끅.”
“…하아.”
그녀는 어째서인지, 서럽게 울고 있었다.
평소같으면 모진말이나 매도를 하며 위악포인트를 쌓았겠지만, 그랬다가 이 개복치같은 아이가 자살이라도 해버릴까 두려워졌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잠시동안 혀를 찬 다음 마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히윽… 흑…”
“뭐야?
그런데, 그녀가 울먹거리며 내 뒤를 쫒아오기 시작했다.
“저, 전속. 전속 메이드… 히극.”
“후우…”
대체 이 녀석의 문제가 뭔지 관찰하기 위해 전속메이드로 둔건데,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아 보인다.
– 수군수군…
심지어, 마당에 나와있던 평민들이 나와 루루를 보며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녀를 울렸다고 착각중인가 보다.
[이름: 루루] [능력: 힘 1 / 마력 ??? / 지능 5 / 정신력 1] [특이사항: 우울증 / 애정결핍 / 불행의 낙인] [성향: 멘헤라] [선함: 75]‘…이런 미친.’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정보창을 연 나는, 잠시 경악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니까 공략이 힘들지.’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봐온 정보창 중에서 제일 심각한 정보창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숨이 턱턱 막혀오는데, 루루가 창백하게 질린채 내 팔을 잡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진짜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 으븝!”
“…알겠으니까, 떨어져.”
그런 루루를 일단 떨어트려 놓으려고 밀쳤는데, 그녀의 눈이 다시 죽어버렸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그녀가 모든 희망을 잃은 듯한 목소리로 답하자 식겁한 나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알겠으면 가서 내 방이나 청소해.”
“…네?”
“가서 내 방 청소하라고. 전담 메이드면 그건 기본이잖아.”
“네, 넵!”
그러자 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조아리더니 내 방으로 재빨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지.”
독심술 스킬이 간절히 쓰고 싶어졌지만, 새벽에 이미 아리아에게 쓴지라 오늘 내로는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거기 너희들, 여기로 와봐.”
“네, 네에?”
할 수 없이 나는 저 멀리서 수군거리고 있던 녀석들을 불러, 루루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방금 달려간 저 녀석에 대해서 아는걸 다 말해봐.”
“어, 없는데요?”
그런데, 내 질문을 받은 평민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저, 정말이에요! 저희는 아는게 없어요!”
그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녀석들은 다급히 변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저희반에 쟤랑 친한 친구가 없을걸요? 그러니, 누구한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거에요.”
“…왕따인건가?”
“어… 그게, 좀 복잡한데요. 왕따는 왕따인데 자발적 왕따에요.”
“뭐?”
그 말에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프, 프레이! 당신 거기서 뭐하시는 건가요! 또 아무 죄도 없는 평민들을!”
“페를로체, 너 잠깐 이리와봐. 너흰 그만 가보고.”
때마침 가장 만나고 싶었던 인물이 제발로 찾아왔기에, 나는 우물쭈물 거리고 있던 평민들을 쫒아낸 뒤에 페를로체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루루에 대해 아는거 있어?”
“무, 무슨 목적으로 묻는거죠!”
그러자, 페를로체는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내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하긴, 나에게 뒤통수를 맞은게 몇번인데… 아무리 그녀라고 하더라도 슬슬 경계를 할 때가 되긴 했다.
“지휘관으로서 모든 학생들을 파악해야 할꺼 아냐. 시간 없으니까 어서 말하기나 해.”
“아, 그… 그런가요?”
“안 말하면 그냥 클라나한테 투항한다? 빨리 말해. 나도 바쁘니까.”
“으음…”
그래서 평소보다 공을 들여 변명을 하니, 한참을 날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페를로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역시 안되겠어요. 당신은 항상 절 이용만 하죠. 제가 루루씨에 대한걸 알려준다면 당신은 분명히 그걸 나쁜일에…”
“걔 왕따라며? 성녀주제에, 왕따를 그대로 내버려둬도 되는건가?”
“그,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면 뭔데?”
그녀의 경계심이 극에 다달았다는걸 눈치챈 내가 작전을 바꾸고서야 미끼를 문 페를로체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루루씨는 스스로 타인에게 접근하지 않고 있어요.”
“그게 무슨소리야?”
“마음씨 착한 평민분들이 루루씨와 친구가 되려 접근해도… 그 분이 고통받는걸 보다 못한 제가 보듬어드리려 접근해도… 그저 모든걸 밀어내기만 하신다는 거에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애정결핍에다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타인을 밀어낸다고?’
정보창의 정보와 모순되는 그녀의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페를로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러고보니… 저희를 밀어낼 때마다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뭔데?”
“저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테니… 저에게 접근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하신답니다.”
그 말을 마친 페를로체는, 팔짱을 끼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분에게 느껴지는 저주 같은건 없어요. 제가 정화술까지 써봤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정보사항에 있던 ‘불행의 낙인’이 대충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튼, 당신! 루루씨에게 찝쩍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세요! 그분은 제가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놓을…!”
‘저주도 아니고 [낙인]이라… 흥미롭군.’
아무래도, 한동안 그녀를 데리고 다니며 관찰해 봐야 할 것 같다.
.
한편 그 시각, 스타라이트 저택의 사용인 방.
“좋아… 다 썼다.”
펜을 책상에 내려놓은 평민 대표 아리스는, 편지를 정성스럽게 접기 시작했다.
“황녀님이 분명 이때쯤에 올거라고 했는데…”
이윽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창가로 향한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초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푸드득!
“아, 왔다!”
그렇게 한참을 창문에서 서성이던 그녀는, 창밖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자 환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 꾸우우!
어디선가 많이봤던 흰 올빼미가 창가로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