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73)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73화(73/524)
Episode 73
– 사전 계획대로 저택 곳곳에 불을 지른 뒤, 철수한다. 다시 한번 알린다. 저택에 불을 지른 뒤, 최대한 빠르게 저택을 벗어난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명령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갑자기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아, 안돼! 안된다고!”
그렇게 말한 나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자동진행인가?’
상황에 맞게 행동이라도 해야하는 건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이렇게 되면 굳이 연기를 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 써걱!
“그만둬! 전부 그만두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멍을 때리고 있으니, 나는 어느새 검을 뽑아들고는 눈앞에 보이는 암살자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나가고 있었다.
“…크흑!”
그렇게 한참동안 암살자들을 베고 다니던 나는, 결국 뒤에서 조용히 접근해 오던 암살자에게 기습을 당해 옆구리를 꿰뚫리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아악!!”
‘다행이다. 하나도 아프질 않네.’
다행히 시련으로 인해 재현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통증은 일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옆구리에 칼을 찔린 나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 안돼…”
그렇게 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리고 있자 날 경계하던 암살자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에 던졌고, 그 순간 바닥에 맹렬한 불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화르륵!
이윽고 불길은 저택 구석구석에서 일제히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을 보며 절망에 빠져 있던 내게 암살자가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 파지잉!
“…전부, 전부 살려야 해.”
그런 녀석에게 은빛 레이져를 날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급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아직도 곳곳에 평민들이 있잖아?’
분명 아까전에는 대부분의 평민들을 탈출시켰기에 2층과 지하창고에만 일부의 학생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시련으로 구현된 상황에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축 늘어진 채 저택 안에 쓰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건가.’
“콜록! 콜록!! 크으…”
새삼스럽게 시스템의 인성을 다시한번 최악으로 평가한 나는, 문득 내가 허리를 숙인채 기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아직 할 수 있어… 더한 상황도 겪어 봤었는걸…”
손에 묻어나온 피를 물끄럼히 쳐다보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앞에 있던 학생들을 들어 올리고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극은 시작되었다.
.
“콜록! 콜록!! 으으…”
사방이 연기로 자욱하다.
1000년동안 내려져온 유서깊은 저택을 뒤덮은 달의 마나로 만들어진 독안개와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자욱하게 매우고 있다.
“하으으… 흐으…”
덕분에 탁한 노란색으로 가득차게 된 저택의 바닥을, 한 소녀가 필사적으로 기어가고 있다.
“그쪽이 아니야.”
“…..흡!”
어떻게든 살아나가기 위해서, 비참했던 인생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지 않기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기어가던 소녀는, 누군가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건네오자 화들짝 놀라며 숨을 들이마셨다.
“케흑…! 케흐윽… 커흑…”
그러자 달의 마나와 검은 연기가 섞여서 만들어진 유독가스가 그녀의 코와 목 안으로 들어왔고, 최대한 숨을 참으며 앞으로 기어가던 소녀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사… 사려주에오. 사려주에오.”
그렇게 한참을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소녀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던 남자가 눈앞까지 와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죽기 시어오… 도아주에오… 제바오…”
“하아…”
오장육부를 뒤투는 독한 연기를 들이마셔버렸기에 혀가 딱딱하게 굳어버렸지만, 어떻게 든 살아남고 싶었던 그녀는 눈앞에 있던 남자에게 필사적으로 구조요청을 건냈다.
“가만히 있어. 바둥거리면 들어올리기 힘드니까.”
그러자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 콰지직!
“…..!”
하지만 바로 그때 소녀의 바로 위에 있던 샹들리에에서 불안한 소리가 나더니,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가 얼어붙자, 소녀는 죽음을 직감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국, 모든것이 의미 없었던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와 함께 시장바닥을 전진하며 악착같이 구걸을 하던 나날들.
그러면서 틈틈히 모은 돈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첫번째로 책을 샀던 날.
그리고 사실 그 책의 비용 대부분을 자신의 언니가 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언니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던 일.
그 이후로 죽어라 열심히 공부하여 선라이즈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됐을때, 다시 언니와 포옹을 한채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일까지.
찰나의 순간 주마등처럼 흘러간 소중한 추억들도, 행복했던 기억들도, 전부 부질없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이곳에서 어이없고 비참하게 죽게 될테니.
어렸을땐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는 귀족들에게, 평생을 멸시와 조롱만 당하다가 죽게 될테니 말이다.
‘언니… 미안해…’
마지막으로 최근 수도에 새로 생긴 고아원에 취직을 했다며 좋아하던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던 소녀는,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샹들리에를 보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속을 못지켜서…’
“숙여!!”
“흐익!?”
하지만 놀랍게도 눈앞에 얼어붙어 있던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자포자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소녀를 감싸앉았다.
– 와장창!
“아윽…!”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상들리에가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와 남자가 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한데 섞여 끔찍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어?”
그런 상황을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쳐다보던 소녀는, 문득 자신을 감싸고 있던 남자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괜찮으세…어라?”
심성이 착했던 소녀는 자신의 위에서 떨고 있던 남자에게 손을 짚으며 질문을 던졌다가, 이내 당황한다.
아까까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혀가 말끔하게 풀려있었기 때문이다.
“누, 누구세요? 그리고 이건 대체…”
이윽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반짝거리는 마나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소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나가야 해. 일어나.”
하지만 그런 그녀의 질문은, 차가운 목소리로 답한 남자에 의해 가볍게 묵살되었다.
“그, 그치만… 연기가… 어라?”
“…두번 말하게 만들지 마.”
이윽고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고 일으키자, 소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옥죄어오던 연기의 영향이 사라지고, 개운한 느낌이 몸에 감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 감사합니… 헉!”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이 자신을 구해준 남자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인사를 하려던 소녀는, 비틀거리고 있는 남자를 보고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으으…”
끔찍할 정도로 온 몸이 난도질되어 있는 그의 몸에서는, 쉴새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입고 있던 옷은, 난도질 되어 옷으로서의 기능을 잃은지 오래다.
“저, 저기…”
덕분에 훤히 보이는 그의 맨살은,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의해 입은 화상과 상처로 가득하다.
그 화상과 상처를 뒤덮고 있는 피와 재의 범벅 때문에 그리 티가 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서 움직여야 해… 곧 여긴 무너질거야.”
“그, 그치만… 당신… 움직일수는…”
“난 멀쩡하니까 상관하지 말고, 어서 걸음이나 옮겨.”
그 말을 들은 소녀는, 그제야 자신을 구해준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뭐해? 안갈꺼야?”
“아, 네에…”
옷은 넝마조각이 됐으면서도 쓰고 있던 복면만큼은 사수를 해낸 그에게서, 어째서인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젠장.”
“흐익!”
그렇게 멍하니 복면을 쓴 남자를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천장이 무너져내리며 불이 붙은 나무판자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웅크려.”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라하던 소녀의 발을 걸어 넘어트린 남자는, 남자의 말을 듣고 잔뜩 웅크린 소녀를 감싸 안았다.
– 콰직! 콰지직!!
“크흑!”
그렇게 소녀의 안전을 확보한 남자는, 검을 꺼내들어 그들에게 쇄도하던 나무판자를 쳐내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계속해서 판자를 쳐내던 남자가, 별안간 비명을 지른다.
“끄윽!”
“왜,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비록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소녀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을 읽어낼 수 있었다.
“…..!”
덕분에 안절부절 못하던 소녀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이내 자신을 지켜주던 남자의 다리에 박힌 나무판자 조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어나. 다시 출발해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녀를 데리고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푸하… 푸하아…”
그렇게 한참을 더 걸은 결과 소녀는 그렇게나 고대하던 바깥으로, 그리고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저기… 저기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기에 앞서 폐에 고여있던 노폐물을 토해내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던 그녀는, 어느정도 상태가 나아지자 옆에 있던 남자에게 말을 건냈다.
“고마워요… 정말로 고맙… 어라?”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자, 잠깐만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소녀는, 이내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서려던 남자를 다급하게 막아서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다시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여기서 어떻게 탈출했는데…!”
“…2층에 아직 아이들이 몇명 남았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 아이들을 전부 구하기라도 하실 작정…”
“비켜.”
이윽고 이어진 남자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뜯어말리려던 소녀는, 자신을 거칠게 밀친 남자 때문에 바닥에 쓰러지고는 멍하니 저택안으로 향하는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 아리안느씨? 어디가세요?”
“나도, 저 남자를 도우려고.”
이윽고 보호마법을 둘렀음에도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아리안느가 남자의 뒤를 따르려 하자, 소녀는 다급하게 외쳤다.
“무리하지 마시고, 저 남자분을 꼭 구해주세요! 저분은 제 생명의 은인…”
“저 남자는 너만의 은인이 아니야.”
“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소녀에게, 아리안느는 짧게 말을 덧붙였다.
“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은인이지.”
“…..!”
그제야 소녀는 자신의 뒤에 빼곡하게 모여있던 학생들이, 전부 남자가 향했던 저택의 입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비록 기침을 하고 있거나, 토를 하고 있거나, 화상을 입었거나, 상처를 입었지만, 단 한명의 남자에 의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기 의식을 잃은 내 친구 이리나를 잘 부탁해. 나랑 같이 괴한이랑 싸우다가 기절했거든.”
아리안느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뒤에 있던 소녀에게 자신의 친구를 부탁하고는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사망자는 없어… 그러니… 2층에 있는 사람들만 구하면…’
이윽고 달의 마나와 검은연기가 가득 섞인 유독가스, 그리고 점점 더 거세지는 불을 바라보던 아리안느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그 남자는 누구지?”
이윽고 아까부터 학생들을 구해주던 사람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던 아리안느는,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실력이 상당한 괴한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신들을 구해주던 그의 복면이 괴한의 발악 때문에 잠시 찢어졌던 적이 있었다.
“설마…”
그때 보였던 그의 은색 눈동자는, 아리안느에게도, 그리고 다른 모든 학생들에도 상당히 익숙한 모습이었다.
“…프레이는 아니겠지?”
그렇게 말한 아리안느는, 이내 피식 웃으며 2층으로 향했다.
그 프레이가 평민들을 구한다니, 차라리 세상이 곧 멸망한다는게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
“저…전부 내탓이야… 전부…”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만이라도 데리고 나가주세요. 전 도저히 가망이 없어요.”
“”…….””
복면의 남자와 아리안느는 멍한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앞에는 심각한 자기 혐오에 빠져버린 루루와, 연기를 너무 마셔서 쓰러져있는 여학생, 그리고 나무 기둥에 다리를 깔린 아리스가 총체적 난국을 자아내고 있었다.
“…네가 저 자학이 심한 소녀를 데리고 나가라. 나는 이 두 소녀를 맡지.”
“아, 알겠어.”
잠시 고민을 하던 복면의 남자가 명령을 내리자, 아리안느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때까지 울고 있던 루루를 업고 저택 밖으로 빠져나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리스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기둥에 깔려서 못빠져 나가요. 그러니, 제 옆에 있는 아이라도 데리고 나가주신다면…”
“영차…”
“…저, 저기요?”
하지만 복면의 남자가 그녀의 다리를 깔아 뭉개고 있던 불기둥을 들어 올리려 하자, 아리스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러지 마세요. 저까지 데리고 가신다면 너무 늦어요. 이미 불길이 저 앞까지…”
“입 악물어. 상당히 고통스러울테니까.”
“네? 무슨… 흐악!”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을 끊은 복면의 사내는 기둥을 들어올리더니 저 멀리 던져버렸고, 그 바람에 아리스는 다리에 무시무시한 통증을 느끼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직 메달릴 팔 힘은 남아있지? 내 등에 업혀.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니까.”
그런 그녀를 물끄럼히 쳐다보던 복면의 남자가 나지막히 중얼거리자, 아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답했다.
“아뇨, 전 이곳을 빠져나갈 자격이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이 사단을 만든게 저거든요…”
그렇게 말한 아리스가 한숨을 내쉬자, 잠시 얼어붙었던 복면의 남자는 이내 그를 강제로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저, 저기요! 전 여기서…”
“말해.”
그렇게 말한 복면의 남자가 옆에 쓰러져있던 여학생까지 들어올리고 방을 나서자, 잠시 머뭇거리던 아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전 문라이트 가문의 숨겨진 끄나풀이였어요.”
“오, 저런.”
그 말에 복면의 남자가 혀를 차며 말하자, 아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전문적인 암살자는 아니었고, 정보원일 뿐이었죠.”
“그렇군.”
“당신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구하고 다니시는 걸 보니… 이 정도만 말해도 제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아시겠죠. 그러니, 전 이곳에 두고…”
“…글쎄, 널 버리고 갈지 말지 판단하려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복면을 쓴 남자가 불길을 피해 복도를 계속해서 걸어나가자, 한숨을 내쉰 아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황녀님에게 계속 정보를 전달하며 프레이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비밀당주님은 그런 제가 못미더우셨나봐요.”
“그게 무슨 소리지?”
복면을 쓴 남자가 묻자, 아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제가 정보를 어디론가 빼돌리고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비밀리에 프레이를 죽이라고 직접 명령을 내리셨죠.”
“그런데?”
“실패했어요. 지난 며칠간 프레이가 계속 음식을 엎는 바람에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제 손으로 그를 죽이려고 준비를 하던 오늘, 결국 화가 폭발한 비밀 당주님이 암살대를 파견한거랍니다.”
“…그렇다면, 그건 비밀 당주의 짓이지. 네 짓이 아니라.”
그 말을 듣던 복면의 남자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리스는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아뇨… 제 탓이에요. 일처리를 미숙하게 해서 비밀 당주를 자극하고, 계속해서 암살을 실패한 저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이상하네, 어떻게 정보가 새어나가는걸 눈치챈거지? 세레나가 한 일처리라 완벽했을 텐데…”
“…저기, 그러니 이제 절 내려주세요. 전 여기서 빠져나갈 자격이 없어요.”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혼자서 중얼거리던 복면의 남자는, 아리스가 각오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됐고, 여기서 나가면 자수나 해. 그게 죄를 갚는 일이니.”
“아, 안돼요… 그랬다간 문라이트 가문이… 아.”
복면을 쓴 남자에게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답하던 아리스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는 말을 멈추고 입을 떡 벌리기 시작했다.
“시발.”
그리고 그건, 복면을 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출입구가, 무너진 나무들과 기둥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흐아아아압!!”
– 파지이이이잉!
잠시 말문이 막힌채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는 품에서 검을 뽑아들어 검기를 날렸다.
“뭐, 뭐야!?”
그러자 반짝이는 마나가 유독가스를 가르며 장애물을 부숴버렸고, 그 광경을 아연하게 쳐다보던 아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당신… 뭐야?”
“…알거 없어.”
그러자 복면을 쓴 남자는 짧게 답변을 하고는 천천히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 생명력도 바닥인데… 안에 사람이 더 있거나 하진 않겠지…”
이윽고 기어이 출구로 나와 두 여자를 구해낸 복면의 남자는, 마당에 드리누워 가쁜 숨을 들이내쉬기 시작했다.
“서, 성녀님은요? 성녀님은 어딨죠?”
“…페를로체 씨! 거기 있나요!?”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페를로체를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복면의 남자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저희는 창고에 쓰러져있다가 페를로체 씨에게 성력을 받아 빠져나왔는데요…”
“그런데 지금 페를로체씨가 보이질 않아요! 분명히 곧 따라 갈테니 먼저 가라고 했었는데…”
“씨발!!”
그 말을 들은 복면의 남자는,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리안느! 아리안느는 어딨어!”
“아까 나오시다가 불기둥에 깔리셔서… 보호마법때문에 목숨은 건지셨지만, 워낙 마나 소모가 컸기에 지금은 기절해있으신…”
“…안돼, 네가 죽으면 안된단 말이야. 네가 죽으면 게임 오버라고. 안돼 안돼 안돼.”
그 말에 패닉에 빠져서 중얼거리던 복면의 남자는, 이내 각오한 표정을 짓고는 옆에 있던 학생에게 중얼거렸다.
“내 유서는, 가방 안에 있는 비밀 주머니에 있어.”
“네?”
“그냥, 혹시 모르니까 일단 그렇게만 알아둬.”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복면의 남자는 지옥도가 된 저택으로 뛰어들었다.
“저, 저기요!!”
– 쿠구구구구궁!!
“…아.”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스타라이트 저택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1000년동안 내려져오던 역사가, 덧없이 스러지는 순간이었다.
.
다음날 아침,
“페를로체 씨!!”
유독가스가 전부 제거된 스타라이트 가문의 저택을 누군가가 미친듯이 뒤지고 있었다.
“페를로체 씨! 어디 계신가요!! 페를로체 씨!!”
“황녀님.”
“페를로체!!!”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시지요.”
황실에서 파견된 조사단과 기사단,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피가 날때까지 건물의 잔해를 뒤지던 클라나는, 옆에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해오는 이솔렛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페를로체 씨는, 죽었습니다. 당신의 그 잘난 작전 덕분에.”
“아, 아아…”
그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짓던 클라나는, 그대로 잔해더미에 앉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저, 저는… 저는 그저…”
“…여기에 생명반응이 있습니다!”
“…!”
하지만 마탑에서 파견된 마법사가 다급하게 외치자, 클라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가 잔해를 파해치기 시작했다.
“지하실이에요! 여기라면 분명히!!”
이윽고 지하실의 입구를 발견한 그녀는, 희망에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태양의 마나로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섰다.
“페, 페를로체… 씨!! 살아계셨…”
이윽고 그 안에 멀쩡히 살아있던 페를로체를 발견한 클라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달려갔으나…
“…어?”
“왜… 대체 왜 생명력이 안 불어넣어지는거야… 어째서…”
이내 페를로체가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 이게… 이게 어떻게 된거에요?”
“일어나봐요… 일어나보라고요…”
이윽고 클라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지만, 페를로체는 그런 클라나를 무시한 채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제발요… 프레이…”
프레이 라온 스타라이트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