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Heroines are Trying to Kill Me RAW novel - Chapter (76)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76화(76/524)
Episode 76
“세레나님,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절대 도착하고 싶지 않던, 모든것을 확신하게 될 장소에.
“따라오지도 마세요. 저 혼자 갈거에요.”
“그럼, 짐을…”
“됐어요. 짐도 그냥 놔두세요.”
“네?”
전회차에서도, 이번회차에서도 저를 충직하게 따라준 메이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네요. 하긴, 저라도 짐을 그냥 마차에 두라면 저럴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의 제겐 아무 의미없는 물건들이랍니다.
“여, 연기가…”
“…….”
절 이상하게 쳐다보던 메이드가 저 멀리서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를 가리키며 뭐라 말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메이드를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답니다.
‘…여긴, 늘 정겹네요.’
스타라이트 저택이 있는 곳으로 한참을 걷던 저는, 주변의 풍경을 보고 잠시 멈추어섰습니다.
‘원래 여기에만 오면 마음이 안정됐었는데…’
이곳은 끔찍한 학대와 훈련으로 가득차 있던 저의 유년기 시절을 버티게 해주던, 유일하게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장소였어요.
저와 프레이는, 저택으로 향하는 이 오솔길에서 줄곧 숨바꼭질을 하곤 했죠.
“세레나… 어디가써…?”
“후후… 글쎄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떠보니, 어린 프레이와 제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네요.
“못찾겠어… 빨리 나와…”
저택으로 향하는 오솔길에 나있던 나무위에 숨은 저를 한참동안이나 발견하지 못하자, 꼬마 프레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했어요.
“전 빨리 포기하는 남자가 싫어요.”
그러자 어린 제가 눈웃음을 치며 알밉게 이야기하네요.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왜 눈웃음을 치는건지. 저도 저때는 꽤 어렸군요.
“…헉.”
하지만, 어린 프레이는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입을 떡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눈빛이 떨리는걸 보니 꽤나 불안해 하는 것 같네요.
“바, 반드시 찾을테니까 거기 가만히 있어? 알겠지?”
“네에, 꼭 찾아주세요. 만약 오늘 내로 못 찾으시면, 전 영원히 사라지니까요.”
저런, 장난이 너무 심해요.
“안되는데… 사라지면 안되는데에…흐잉…”
그것 봐요, 프레이가 울먹이기 시작했잖아요. 놀려도 적당히 놀려야 더 오래 놀 수 있…
“…세레나님? 빨리 안 가보시고 뭐하세요?”
“아.”
뒤에서 메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눈앞에 있던 어린 프레이와 제가 사라졌어요.
“…하아.”
역시나 기억 재현은 꽤나 힘드네요.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깨져버려요.
‘저 나무, 아직도 있네요.’
그래도, 꽤 즐거운 추억을 끄집어 낼 수 있었어요. 저 당시 프레이는 해가 질때까지 절 못찾았었죠.
덕분에, 그날 프레이는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았었답니다.
“…미안해요, 프레이.”
그 일은 아직까지도 상당히 미안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때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답니다.
물론 프레이를 골려주고 반응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최대한 오랫동안 그에게 발견되지 않고 싶었거든요.
왜냐면, 그에게 발견되면 놀이는 끝나고…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되니까요.
그러면, 끔찍한 시간이 반복되는거죠.
“꾸우우…”
“…아.”
잠시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라 움찔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제 올빼미가 날아오네요.
“용케도 절 찾으셨네요. 혹시, 편지는…”
“꾸우우…! 꾸우…!”
“…아야.”
어렸을때부터 저와 함께해주었던 친구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데, 갑자기 녀석이 절 쪼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아프다고요.”
지금까지 반항은커녕 제 명령을 어긴 적 조차 없었던 아이가, 필사적으로 제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얼굴을 가린 손에서 피가 흐르네요.
“꾸우…”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표정을 굳히며 앞으로 걸어가자, 녀석은 아예 바닥에 드리누워 버렸습니다.
“…마차로 가 있으세요.”
그런 올빼미를 가만히 쳐다보던 저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는 녀석을 뛰어넘었어요.
“…후우.”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질 않는걸 보니, 마차로 간 것 같네요. 아니면 계속 바닥에 누워있던가요.
뒤를 돌아보면 둘중에 뭐가 맞는지 알 수 있겠지만,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거랍니다.
뒤를 돌아보면, 분명 마음이 약해질 거니까요.
“입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네요.”
그렇게 묵묵히 앞으로, 또 앞으로 걷던 저는 드디어 스타라이트 공작가 저택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프레이와 처음 만났었죠.”
문라이트 가문의 비밀 당주이자 전 당주였던 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때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당신은 처음 만나는 약혼자를 보기가 부끄러웠는지 어머니의 뒤에 숨어있다가, 호기심에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빼꼼 얼굴을 내미셨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당신에게 별 기대를 안 했었어요.
순수했던 당신과 달리, 제국의 어두운 곳에 발을 담구고 있던 저는 약혼의 목적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세레나! 놀자!”
“…전 노는법을 몰라요.”
“그러지 말구! 평소에 하던걸 하면서 놀면 되잖아!”
“그렇단…말이죠?”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질투심이었어요.
어둠에 찌든 저와는 다르게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항상 행복해 보이는 당신이 그저 미웠어요.
“이, 이게 뭐야…?”
“공작가의 업무 서류에요. 전 이걸 정리하면서 놀아요.”
“이거는…?”
“방어 마법진 심화 과정이요. 전 이걸 공부하면서 노는게 제일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아무죄도 없는 당신에게 심통을 부렸죠.
세상에, 어떤 아이가 그런걸로 소꿉놀이를 하겠나요?
“세레나! 이것봐! 나 다했어!”
“…하?”
그런데 당신을 만난지 몇달이 지나자, 당신은 제 소꿉놀이를 빙자한 패악질에 적응을 하시기 시작했어요.
아니, 적응을 한 정도가 아니라 극복 했다고 봐야겠죠. 제 수준 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훌륭하게 과제들을 완수했으니까요.
그때 저는, 당신도 저처럼 천재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당신이 절 유일한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이게… 이게 다 뭐야?”
“아, 들켰다. 히히…”
하지만 어느날 우연히 들어가게된 당신의 공부방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종이들을 발견했을때, 전 그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너… 대체 왜…”
“이걸 모르면… 너랑 못 놀잖아?”
산더미같이 쌓여있전 종이에는, 지금까지 제가 낸 어려운 과제들을 연습한 흔적이 빼곡히 적혀져 있었어요.
당신은, 저와 놀기 위해 몇달동안 통째로 관련 지식을 암기했던거에요.
“…그때 당신에게서 멀어져야 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저택에 거의 다 도착해 가네요.
하지만, 그럴수록 절대로 맞이하고 싶지 않던 결말 또한 가까워지고 있어요.
아무리 편지를 계속 써 보내도 돌아오지 않는 당신의 답장.
절 필사적으로 막으려던 올빼미.
아니, 애초에 눈앞에 보이는… 매캐한 연기의 기둥만 봐도 유추할 수 있는 결말이 말이에요.
“…아.”
스타라이트 저택의 마당에 들어서니, 다양한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어요.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반, 울고 있는 사람이 반이에요.
그런 광경을 잠시 쳐다보던 저는, 당신과 뛰어놀던 잔디밭에 발을 내디뎠답니다.
“세, 세레나님…”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절 발견하고는 창백하게 질린채 입을 열었어요.
“저, 저는… 그러니까…”
누군가 했더니, 아리스로군요. 그녀는 비밀 당주가 부리던 정보원이였죠.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걸 보니,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되신 것 같아요.
하긴, 이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상황 파악을 하긴 힘들겠죠.
아, 저기 너무나도 상황파악을 잘 하신 분이 하나 보이네요.
자기 팔을 돌로 마구 긁고 있어요.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라고… 내 불행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니, 프레이가 편지로 말했던 루루라는 분이시네요. 불행의 낙인이 찍힌 불쌍한 분이라고 했죠.
보아하건데, 이 일이 전부 자신 때문에 생긴 일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팔 아래가 피웅덩이로 물들어있는걸 보면, 죄책감이 꽤나 크신것 같네요.
“”………..””
평민분들은 전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아마, 프레이가 봤으면 기겁을 하며 그러지 말라고 했겠죠.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져요.
이런, 계속 프레이에 대해 생각하니 저도 마음이 울적해지네요. 아무래도 빨리 지나쳐야 할 것 같아요.
“마당이, 울음으로 가득 찼네요…”
하지만 걸음을 옮기고, 또 옮길수록 제 마음은 더 울적해져만 갔어요.
편지를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는 이솔렛 교수님, 고개를 숙인채 짙은 흑마력을 뭉개뭉개 피워내고 있는 카니아, 그리고 그 옆에서 성력을 내뿜으며 태양신을 저주하고 있는 페를로체.
거의 반 실성상태로 웃고 있는 이리나와 그런 그녀를 껴안은채 울고있는 아리안느.
그리고, 마당에 주저앉은채 편지를 들고 멍한 표정을 짓고있는 황녀.
‘…정말이지, 난잡하네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난잡한 거랍니다.
그러니, 이 난잡한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해야겠어요.
“여기… 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저는 땅바닥에 떨어져있던 봉투를 뒤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
제게 남겨진 편지를 찾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왜냐면 봉투에 남은 편지는 단 하나였고, 그 편지의 겉면에는 다음과 같은 메세지가 적혀져 있었거든요.
– 내 첫사랑에게.
“…프레이.”
감정이 이성을 이기는건, 프레이가 앞에 있을때 빼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어느새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걸 보면 말이죠.
– 우선, 경고할게. 반역을 일으킬 생각은 그만 둬.
“…푸흐.”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첫문장을 읽은 저는, 프레이의 실없는 농담에 피식 웃고 말았답니다.
하여간, 진지한 분위기를 애써 무마하려는 그 습관은 여전하네요.
– 본론으로 들어갈게. 게임오버가 된 이상, 어떻게든 뒷 수습을 해야겠지. 난 지금부터 네게 그나마 가장 최선인 루트들을 알려줄거야.
“…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내용을 읽은 저는, 짧게 탄식을 흘렸습니다.
프레이는 세상이 밉지도 않은가봐요. 이 정떨어지는 세상을 위해 대응책도 다 남겨주고.
‘…그래봤자, 소용 없는데.’
– …그렇게 하면 최소한 3대까지는 모두가 살 수 있어. 이 방법이 내키지 않는다면, 제국을 탈출해 서대륙으로 가. 네 재능이라면 거기서 어떻게든…
“역시 형편없네요.”
그렇게 생각하며 프레이가 남긴 방법들은 하나같이 형편없었어요. 끽해야 생명을 잠시 연장시킬 뿐일, 현실도피에 불과했죠.
– 만약, 이 모든 방법들이 내키지 않는다면… 아리아의 편지를 읽어줘. 그게 마지막 희망이니.
한참동안 그런 쓸데없는 작전들을 읽어내려가던 저는, 마지막 문구를 보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답니다.
왜냐면, 저 문구가 지시하는 바는 제가 여기로 오며 내린 최종 결론과 일치했거든요.
– Ps. 아리아에게 편지를 읽어주더라도… 네가 생각하는 그 작전은 쓰지마. 명령이야.
“역시… 당신은 천재였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무심코 편지의 추신사항을 본 저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답니다.
남에게 기억을 읽힌건 처음이었거든요. 제 약혼자는 역시 천재였어요.
“미안해요 프레이…”
하지만, 역시나 저보단 조금 아래였어요.
“…절대복종마법은, 이미 풀린걸요.”
그렇게 말하며 저는 애써 눈길을 주지 않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답니다.
“…윽.”
그러자, 걸레짝이 되어버린 프레이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어요.
“으, 으으…”
제가 시체를 본 순간 황녀가 움찔거리며 팔을 들어올리는걸 보면, 역시나 그녀가 확인사살을 한 것 같네요.
“………..”
게다가 그 사실을 아는건, 보아하건데 이솔렛 교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페를로체씨는 아까부터 계속 상태가 이상하니 제외하죠.
– 빠드득!
“…으극.”
아, 이가 깨져버렸어요.
분명히 속으로는 침착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이를 갈고 있었나봐요.
덕분에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깨진 이에서는 쓰라린 통증이 밀려들어오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쓸때가 아니에요.
이 난잡한 상황을 속히 끝내야죠.
“…아리아 씨.”
“네, 네에?”
“편지를 읽어드릴게요. 줘 보세요.”
그런 생각을 하며 저는, 아리아 씨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 여기요…”
그러자 눈이 팅팅 불어터져 있던 아리아 씨가, 떨리는 손으로 제게 편지를 내밀었어요.
“아니, 그거 말고… 이상한 문자로 되어있는 편지요.”
“…아.”
그 말이 끝나자 아리아씨는 주머니에 고히 접어두었던 편지를 꺼내 저에게 건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아. 네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단다.”
마침내 한글로 써져있던 편지를 받은 저는, 그 내용을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도피자로서 살아가거나, 수호자로서 살아가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가 말이다.”
프레이가 아리아에 씨에게 남긴 편지에는, 역력하게 고민한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행여나 네가 예언서를 찾아낼까봐, 나와 아버지는 네게 이 문자를 가르치지 않았지.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수 없을 것 같구나.”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제겐 보이거든요. 한 글자, 한 글자를 몇분간이나 눌러담으며 이 편지를 남길지 말지 고민한 흔적이 말이죠.
“…전대 용사님이 남기신 말에 따르면, [외전 소설] 이라는게 존재한다. 널 위해 풀어서 설명하자면… 실제로 일어날지 확신이 서있지 않은 가상의 시나리오라고 알아두거라.”
하지만, 결국 그는 이 편지를 남겼습니다. 아마 그도 고통스러웠을테죠. 자신의 숙명을 누군가가 이어받는다는 것은.
“아무튼 그 불확실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내가 죽을시 지하실의 숨겨진 공간에 있는 용사의 무구를 착용할 수 있는건 이 세상에서 너 한명밖에 없다더구나.”
그 말을 들은 아리아씨가 울음을 멈추고 멍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네게는 ‘용사의 힘’도, ‘시스템’도 없기에… 그걸 착용할 수 있을 때 쯤이면 전 대륙이 불타고 있겠지.”
“아, 아아…”
“하지만, 만약 전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한다면… 그리고 네가 ‘수호자’로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어떻게든 선행을 극대화 시킨다면… 어쩌면 대륙이 반쯤 불타는 걸로 끝날지도 모르겠구나.”
거기까지 말하고 저는 한차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이 다음에 있는 내용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었거든요.
“물론 그 길을 선택하면 무척이나 힘든 길이 열릴거다. 비록 나처럼 악행은 저지르지 않아도 되겠지만… 도중에 죽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으며 정신은 항상 피폐해질거고, 허울뿐인 명예밖에 얻지 못할거야.”
“…으읏.”
“그리고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멸망만을 막을 뿐. 세계가 재건되려면 몇백년은 걸리겠지. 심지어, 내가 지금 말한 모든것들은 불확실한 미래란다. ‘블랙테일 판타지 2’의 스토리가 아닌, 외전 소설의 스토리니까 말이야.”
그쯤되자 저는 프레이가 왜 이렇게 절망적인 내용을 써둔지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굳이 그 길을 선택할거니?”
“나, 나는…”
“…명심해. 그 누구의 의지도 아닌. 네 의지로, 네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동생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에요.
“오빠아아아아아… 흐아아아…”
제 말을 다들은 아리아씨는, 편지를 끌어안고 서럽게 우시기 시작했어요.
네, 정확히 내용을 알아들으신것 같으니… 이제 모든걸 끝낼 때가 찾아왔군요.
“아, 아아…”
저는, 서럽게 울고 있는 아리아씨를 뒤로하고 창백하게 질린채 바닥에 엎드려 있던 황녀에게 향했습니다.
“자,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클라나 님.”
“제가 잘못했어요… 흐극… 제가 잘못…”
그녀의 황금색으로 빛나던 눈은 붉게 충혈되있고,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던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잔뜩 구겨진 편지를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꼭 쥐고 계신걸 보니, 이미 그 편지에서 모든 진실을 읽으셨나봐요.
“…시체를, 저렇게 해집어놓을 것까진 없었잖아요.”
그런 그녀에게 모진말을 하지 않으려던 저지만, 어째서인지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굳이 확인 사살까지 하실 필요는.”
그러자, 클라나씨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주변에 계신 분들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됐어요. 이제와서 따져봤자 뭐하겠나요.”
제 눈앞에 있는 클라나 씨는, 프레이를 죽게만든 계기를 제공하고 시체를 훼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프레이를 죽게 만든건 전회차에 프레이가 그녀의 심장을 찔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시체를 훼손한 것 역시 전회차에서 프레이가 보인 행동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아으윽…!”
“…황녀님?”
갑자기 클라나 씨가 머리를 부여잡고는 신음을 흘리시기 시작했습니다.
“뭐, 뭐야… 이 기억은?”
“아아…아.”
“프레이…….”
그와 동시에 뒤에서도 소리가 들려오기에,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꽤 많은 분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있네요.
평민 학생들과 카니아씨, 이리나씨와 저를 제외한 모두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요.
“이, 이 기억은 뭐야…”
그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는데, 클라나 씨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럴수가… 그럼, 그때 날 구하느라 프레이는…”
“…기억이 돌아오셨나봐요?”
“세, 세레나…”
그제야 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어요.
기억상실의 주체가 사라지니, 모두의 기억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는 걸.
이미 기억을 되찾은 카니아씨와 이리나씨, 그리고 저를 빼고 말이죠.
“……..하하, 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클라나 씨의 눈이 죽어버렸어요.
그 모습이 마치 생기 없는 인형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살짝 소름이 끼치네요.
“클라나 씨. 정신차려 보세요. 클라나 씨.”
그런 클라나 씨를 흔들어봤지만, 황녀는 그저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을 흘리며 웃음을 흘릴 뿐이였어요.
아무래도, 황녀님이 망가져버린 것 같네요.
“”……..””
그리고 그건, 뒤에 있던 다른 모두도 마찬가지네요.
안 그래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었는데, 프레이와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완전히 망가져버렸어요.
“클라나 님.”
그 광경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던 저는, 한숨을 내쉬며 황녀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끝마치기 위해서 말이죠.
“저기 이솔렛 교수를 보세요. 조용히 자신의 검을 쓰다듬고 있어요.”
“…아?”
“아까까지 멍한 표정만 짓고 있는 분이, 미소까지 지으며 프레이에게 선물 받았던 검을 쓰다듬고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제가 싸늘하게 말하자, 망가져있던 클라나씨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곧, 저 칼로 자신의 배를 쑤실거란 뜻이죠.”
“아아…”
그런 그녀에게 가차없이 말을 전하자, 죽어있던 클라나씨의 눈에 다시 공포감이 깃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충격요법이 먹힌 것 같네요.
“저기 카니아를 보세요. 검은색 기운이 그녀를 집어삼키기 직전이에요. 그 옆에는 손톱이 다 까질때까지 바닥을 긁고 있는 페를로체와 실성해버린 이리나도 있고요.”
“그, 그만…”
“아리아 씨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떠올린 후 눈이 죽어버렸어요. 그것 뿐만 아니라 마나까지 역류하네요. 저대로 냅두면 얼마 못가서…”
“그만…해주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그녀를 자극하고 또 자극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클라나 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 몰라요…”
“왜 모르시죠? 당신은 모두를 이끌 지도자잖아요.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전… 지도자의 자격이 없어요…”
그러자, 클라나씨는 어두운 눈빛을 띤채 중얼거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냥… 죽고 싶어요. 이대로 죽어서 사라지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안돼요.”
저는… 그런 클라나 씨에게, 그리고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선언했습니다.
“클라나 씨가, 그리고 여러분들이 여기서 무너지시면, 제 작전이 쓸모없어져요. 그러니… 다시 일어나세요.”
“자, 작전이요…?”
그렇게 말한 저는, 주머니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들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희망은 있어요. 자세한건 아리아 씨에게 들으세요. 결정은 그분이 하실거니.”
“세레나 씨…?”
“그럼, 여러분께 제 마지막 책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저는,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의 뚜껑을 따고는 안에 있던 액체를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
그리고, 잠시 적막이 흘렀어요.
‘프레이, 미안해요…’
그 적막속에서, 전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방법밖에 없는걸요.’
최근에, 비밀리에 입수한 문라이트 가문의 기밀 문서를 읽다가… 충격적인 기억을 하나 떠올렸었어요.
그때서야 저는, 왜 당신을 그렇게나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됐는지, 그리고 왜 끝까지 당신을 포기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죠.
저는, 당신에게 평생을 바쳐도 못 갚을 빚을 졌답니다.
당신은, 아마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시점에서 수명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계셨을거에요.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카니아에게 생명력을 계속해서 나누어준 결과라고 치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깎여버린데다가, 애초에 어떻게 ‘정확히 10년’인걸 아시던 걸까요?
정답은, 당신의 조작된 기억에 있어요.
네, 당신이 ‘첫번째 악행’으로 기억하시는… 제 종속의 저주와 관련된 기억이죠.
“커흑!!”
“세, 세레나 씨!?”
아, 슬슬 효과가 나타나는군요.
당신은 늘 이렇게 피를 토하고 사셨던 건가요? 세상에나, 정말 끔찍하셨겠어요.
“세레나…? 너… 지금 무슨 짓을 한거야?”
“하아… 하아아…”
“…온 몸에 떠오른 그 마법진은 뭐고?”
잠시 바닥에 주저앉은 저를, 클라나 씨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극독을 먹었어요. 마법진은 제게 걸린 저주고요.”
“…….뭐?”
“제 저주를 막아주시던 프레이씨가 죽는 바람에, 약화되있던 제 저주가 다시 활성화되는거에요. 이대로 몇분만 지나면 전 ‘비밀당주’의 꼭두각시가 될거고요. 그래서, 자살을 하는 거랍니다.”
그런 클라나 씨에게 속사포로 말을 해주니, 계속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프레이가 네 저주를 막아? 비밀당주? 네가… 네가 죽는다고?”
“네… 제가 세워둔 마지막 책략을 성공시키려면… 이 수밖에 없어요.”
“그게… 그게 무슨 소리야!!”
이윽고 클라나씨는,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제게 달려들었습니다.
“주, 죽지마… 죽지말아줘…”
“케흑…으으…”
“너, 너도 나때문에 죽는거야? 내가… 내가 프레이를 그렇게 만들어서… 너도 나 때문에…”
“…클라나 씨, 그리고 다른 모두들. 지금부터 제말 잘 들으세요.”
패닉에 빠진 클라나씨의 말을 끊은 저는, 꺼져가는 의식을 겨우 붙잡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프레이의 죽음과… 제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세요…”
“아, 안돼… 안돼안돼… 안돼…!”
“저희 둘의 죽음을… 마음에 묻고 이정표로 삼으며… 앞으로 나아가세요. 포기하지 마시고요. 알겠죠?”
“안돼애애애애애애애!!!”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인 것 같네요. 너무 힘들어요.
“…하나만,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런, 검은 고양이가 제게 질문을 던져왔어요. 어쩔수 없죠. 저분에게는 미운정이 들었던지라.
“왜…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겁니까? 대체 이 희망이 없어진 세계가… 뭐가 그리 좋다고요?”
꽤나 귀여운 질문을 던져오셨군요. 그 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프레이가 지키고 싶어하던 세상이잖아요.”
아, 방금 한 말이 유언이 될 것 같아요.
이런, 어쩌죠?
제가 원하던 유언은, 프레이의 옆에 묻어달라는 거였…….
.
“세, 세레나?”
클라나의 품에 안긴채 입에서 잔뜩 피를 토하던 세레나가 축 늘어지자, 어쩔줄을 몰라하던 클라나가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이지? 이거… 이거 다 네가 짠 책략이지? 그치…?”
그런 클라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세레나가 남긴 마지막 말의 깊이를 깨닫고 무겁게 침묵하고 있었다.
“세레나… 세레… 으으…”
그렇게 한참을 횡설수설하던 클라나는, 이내 세레나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내가… 내가 세레나를… 프레이를… 으으…”
“클라나 황녀 전하!! 긴급 소식입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으아?”
그렇게 한참을 부비적대며 눈물을 흘리던 클라나는, 갑자기 프레이의 마당에 전령이 들이닥치자 깜짝 놀라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 어, 어라?”
그런 그녀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전령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는 굳어버렸다.
“…어,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우선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자.”
그렇게 한참을 멍을 때리던 전령은, 이내 지금이 긴급상황임을 깨닫고 재빨리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와 황후 전하, 그리고 1황자님과 1,2황녀님이 방금 살해당하셨습니다.”
“…….네?”
그 말을 들은 클라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전령은 표정을 굳히며 답했다.
“이제 당신이 이 제국의 황제라는 뜻입니다.”
“…….아.”
그 충격적인 소식에 클라나를 비롯한 모두가 당황해 하고 있는데, 전령이 한층 더 어두어진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리고, 마왕이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
그 말을 들은 클라나와 모두가 얼어붙었고, 그 순간부터 갑자기 시간이 가속되기 시작했다.
해가 계속 떴다 지고, 달이 나왔다 들어가고. 사람들이 빠른속도로 이리저리 지나다닌다.
“하아…..”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영혼 상태의 프레이는,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최악이야.”
시련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