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knae Has to Be an Idol RAW novel - Chapter (105)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05화
“우리, 다 같이 세계관 짤래요?”
“응?”
“세계관?”
“뭐야. 봉태윤 왜 살짝 흥분한 거 같냐?”
내가 이 말을 뱉게 될 줄이야.
진짜 이러는 경우가 자주 있진 않은데,
“세계관 있으면 가사나 곡 쓰는 데 도움될 거 아니에요.”
가슴이 두근거린다.
솔직히 평소보다 조금 흥분 상태다.
아직 모닝 커피도 안 마셨는데.
아침에 먹은 빵에 각성 효과라도 있는 건가.
심장이 빨리 뛴다.
“세계관이라는 거, 꽤 효율적이에요.”
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형들 앞에서 세계관을 왜 짜야 하는지에 대해 열띤 설명회를 시작했다.
“앨범 수록곡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앨범 컨셉 논의할 때 기본적인 가이드 라인이 되어주기도 할 거 아니에요.”
세계관이라는 건 꽤 매력적인 장치다.
내가 설정에 집착하는 설정 광인 같은 거라 그런 게 아니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작업을 할 때, 세계관을 먼저 짜고 들어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세계관이 괜히 아이돌 시장의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게 아니라니까요.”
세계관은 작품의 톤앤 매너를 결정지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며.
전체적인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자.
작품의 끝에, 결국 주인공이 닿아야 할 거대한 진실이기도 하다.
즉 세계관을 짠다는 것은 작품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한단 거다.
다시 말해 세계관이란 선택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작업물을 완성도 있게 뽑아내기 위한 기초 작업에 가까운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선 무조건 해내야 하는 기초 작업이다.
회사원으로 따지자면 사업계획서 첫머리에 들어가는 사업목표와 같은 거고.
대학생에게 따지자면 PPT 1장에 들어가는 목차와 같은 거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세계관이다.
내가 너무 흥분한 걸까.
“……아침에 뭐 잘못 먹었냐?”
도승이 형이 진심으로 의아하단 듯 날 쳐다봤고,
“태윤이 열나?”
운이 형은 걱정된단 듯 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만 혼자 흥분한 거 같아서 이제야 조금 뻘쭘해진다.
“……열 안 나요.”
난 운이 형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이 중요한 작업을 형들이 모른다는 게 조금 서운하긴 하다.
세계관 짜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데.
이 중요한 시기를 놓친다는 게 통탄스러운데……
“세계관 짜자!”
“……!”
연훈이 형이 테이블 위에 펼쳐둔 종이 위에 ‘세계관’이라는 글자를 큼직하게 적었다.
“우리 이거 짜도 좋을 거 같은데? 태윤이 말 들어보니까?”
연훈이 형만 내 설명에 감화된 모양이었다.
“우리가 더쇼케2 출연하고 끝날 게 아니잖아.”
“그렇죠.”
“좀 더 길게, 장기적으로 보자면 세계관 하나쯤 있어도 좋을 거 같아.”
“맞아요.”
“또, 파이널 무대에서 세계관을 살짝 보여주는 듯한 무대를 하면, 나중에 우리가 정식 데뷔할 때 한 번 더 관심을 받을지도 모르고.”
난 살짝 놀란 눈으로 연훈이 형을 바라봤다.
형이랑 이렇게까지 생각이 같아 본 적이 있던가.
내가 세계관에만 너무 몰두해 미처 설명 못 했던 부분을 연훈이 형이 설명해 줬다.
다만 반박도 분명히 들어왔는데,
“세계관에 입각한 노래들 대부분 막 컨셉 과하고 가사도 과한 곡들 아니에요?”
도승이 형은 어쩌면 세계관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나 보다.
그럴 법하다.
세계관이 있는 현 시장의 아이돌 그룹들은 그 세계관에 종종 잡아먹힌 듯한 무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난 그마저도 좋아하긴 하다만.
어쨌든 그런 무대들은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긴 하니까.
다만,
“그렇게 안 하면 되죠.”
“안 할 수 있어?”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 많아요.”
도승이 형이 이게 세계관이 있던 곡이야? 라고 할 만큼 일반적인 가사와 컨셉의 곡들도 많다.
내가 몇 개 추려서 말해주니.
“……신기하네.”
꽤 놀란 눈치였다.
일단 첫 번째 의구심 컷.
두 번째 의구심은,
“근데 이런 건 전문 작가한테 맡겨서 하지 않아? 우리끼리 그냥 스윽 짜도 되는 거야?”
전문성에 대한 부분이다.
실제 한 그룹의 세계관만 전문적으로 짜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큰 기업에서 좋은 연봉 받고 있으므로 우리가 빼올 수 있는 인력도 아니고.
다만,
‘내가 짤 수 있다 말하기도 애매한데.’
난 형들 눈엔 전문성 없는 비전문가로 보일 게 뻔하다.
뭘 어떻게 타개할까 싶은데,
“그러면 태윤이가 한번 짜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파기하든 발전시켜보든 하면 되지 않을까?”
연훈이 형이 또 한 번 지원해 준다.
“태윤이가 가사 잘 쓰잖아. 한번 믿어보자 얘들아~”
난 감격스러운 눈으로 연훈이 형을 바라봤다.
“잘할 수 있겠어?”
도승이 형이 한 번 더 묻는다.
“괜히 연습할 시간 뺏기는 거 아니지?”
운이 형도 걱정되나 보다.
다만,
“할 수 있어요.”
난 담담한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그래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 하고 자신도 있어 하는데 그냥 태윤이 시켜줘요~”
마지막으로 동준이 형까지 날 도와주니,
“오케이. 그럼 세계관 짜고, 무대 어떤 컨셉으로 할지 다 같이 이야기 또 해보자.”
우리 팀 작곡가인 도승이 형이 최종컨펌을 내줬다.
“마감은 언제까지 주면 될까? 우리 곡도 써야 해서 시간을 많이 줄 순 없어. 흐음. 최대한 이번 주 일요일까지는…….”
“내일 아침까지 짤게요.”
“……?”
데드라인을 묻는 질문에 난 자신 있게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라고.
사실 맘만 먹으면 지금 당장 3시간 안에 뽑아낼 자신도 있었다.
내가 무슨 글 쓰는 기계라 그런 거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옮겨 쓰기만 하면 되니까.’
이미 머릿속에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 팀을 위한 세계관이.
사실 회귀하고 정신을 얼추 차린 그 순간부터.
소설가적인 마음가짐으로 러프하게 세계관을 만들어 본 상태였다.
“일단 내일 아침까지 뽑아와 볼게요. 그때 보고 또 이야기 나누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 알겠어.”
“열정이 대단하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시켜줄걸.”
그렇게 세계관에 대한 회의가 일단락되고.
“오늘은 연습 어떻게 할까요?”
“기본적으로 몸 정도 풀까?”
“몸이랑 목 좀 풀고, 아직 세계관이나 가사는 안 나왔지만 곡 분위기 정도만 잡아봅시다~”
오늘 연습에 대한 일정을 짰다.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복으로 갈아입곤 다 같이 아파트 아래에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 * *
더쇼케이스 촬영이 끝난 다음 날.
WD엔터의 윤승연과 이현아에게는 몇 안 되는 휴식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이 휴식시간도 오전까지만 그렇고, 오후가 되면 곧 방영될 더쇼케2 회차 탓에 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하지만,
“커피 한잔할까요, 우리?”
“어! 저 기프티콘 진짜 많아요. 오늘 그냥 그거 다 써버리죠.”
“그럴까요?”
그래도 일주일 중 가장 한가한 시간임은 분명했다.
아침 일찍 출근한 두 사람은 모닝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며 업무에 돌입했다.
사실 업무라 해봐야 전부 세이렌 관련하여 의견 조율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요즘 세이렌이 아이돌 시장 자체에서 화제를 모으다 보니 이런저런 콜라보 요구나 광고 건이 드문드문 잡히는 중이다.
다만 개중 세이렌 이미지에 도움이 될 만한 건은 없다 보니 그걸 정중하게 거절하는 상황이긴 했다.
오히려 계속 거절만 하다 보니 상냥하게 거절하는 스킬이 자꾸만 느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프로 거절러 되겠어요.”
“그니까요.”
“근데 우리 세이렌도 이 정돈데, 진짜 잘나가는 사람들은 메일함이 터지겠는데요?”
“요새 워낙 매체도 다양해지고, 이런저런 자그마한 인터넷 프로그램도 많아지니까. 더 그럴 수 있겠죠.”
“아닌가. 어쩌면 우리 세이렌이 아직 만만해서 더 찔러보는 거려나.”
“아, 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일 자체가 세이렌이다 보니, 윤승연과 이현아의 대화 주제도 세이렌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요즘, 자주 두 사람의 대화 화두로 떠오르는 게 있었는데,
“……근데 이러다 진짜 더쇼케2 우승해 버리지 않을까요?”
과연 우승이 가능한가에 대한 여부였다.
사실 더쇼케2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싶었다.
다른 쟁쟁한 그룹과 회사가 떡 버티고 있는데.
하지만 지금 양상을 보면 우승이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저는 솔직히, 할 거 같아요.”
“그쵸?”
“네. 이게 우리 세이렌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정말 객관적으로. 아아주 객관적으로 봐도.”
“제일 잘생겼잖아요!”
“맞아요.”
“실력도 제일 좋고.”
“사실상 우승 못 할 이유가 없잖아요.”
윤승연과 이현아는 서로의 생각이 같다는 것에 만족스럽단 듯 웃었다.
다만 우승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그렇듯, 뒤에 따라오는 주제가 있었는데,
“승연 씨는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
“현아 씨는요?”
“저는, 퇴사하고 이직 알아봐야죠.”
“저도 뭐……. 제일그룹 합작회사가, 사실 말이 합작회사지 이쪽 인력 이직시켜 줄 리가 없잖아요.”
자신들의 처우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였다.
제일 좋은 건 합작회사로 그대로 이직되는 경우였지만, 그건 사실상 힘들 거고.
그렇다면 WD엔터에 남아 있거나, 퇴사하거나 인데.
세이렌이 없는 한 그녀들이 WD엔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근데 세이렌 나간다고 윤태형이랑 사장님들이 난리 치진 않겠죠?”
“아예 관심도 없는 인간들인데 딴 회사로 데려간다 하면 오히려 좋다 할 수도 있어요.”
“사장님들은 그럴 거 같은데, 윤태형 그 인간도 그럴까요……?”
“흐음…….”
윤태형.
WD엔터의 유일한 팀장급 실무자.
동시에 세이렌을 방치한 월급루팡이기도 한 사람이다.
지금도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출근하지 않았다.
저 사람이 원래 세이렌을 데리고 있던 이유는 사장들에게 월급 받는 이유를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나 당신들 돈 받고 그냥 노는 게 아니라 나름 사업을 굴리면서 일하고 있다- 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수단 말이다.
사장들이야 뭐, 원래가 저작권 부자고, 건물까지 있을 정도의 재력가들이라 그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니 윤태형이 말하면 대충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엔터 사업은 별로 관심도 없고, 그냥 여생 즐기는 데에나 더 관심 있는 인간들이니까.
즉 진짜 빌런은 윤태형인데…….
“세이렌을 놓아주려 할까요? 그러면 다시 연습생들 새로 모아서 다시 팀 짜야 하는데, 그 귀찮은 걸 그 사람이 할 리가 없을 텐데.”
“그렇다고 못 놓아줄 수도 없잖아요. 제일그룹에서 데려가겠다는데.”
“그쵸…….”
제일그룹이라는 대기업이 연예계라는 시장에 주는 영향력은 작지 않다.
저 그룹이 데려가겠다면 그냥 드려야 하는 게 순리다.
그때,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곤,
“뭐야. 왜 벌써 출근들을 하고 있어……. 아침에 피곤하지도 않냐…….”
윤태형이 등장했다.
오전 11시.
평소보다 이른 출근에 윤승연과 이현아가 둘 다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하셨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윤태형은 두 사람의 인사는 듣는 척 마는 척하더니 그대로 사무실 구석 소파에 가서 누웠다.
“나 잘 테니까 사장님 만일 오시는 거 같으면 바로 깨워.”
“……네.”
“……넵.”
이렇게 오늘 하루도 저 인간은 대충 시간이나 죽이다가 가겠구나 싶은데,
“아, 그리고 오늘 오후에 간만에 회의하자.”
“……네?”
저 인간 입에서 회의라는 단어가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윤승연과 이현아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세이렌 얘네……. 너무 컸어. 어떻게 할지, 우리가 어떤 스탠스로 나갈지, 그런 거 좀 잡자고.”
윤태형은 회의 안건을 말해줬고,
“……아.”
“……네.”
윤승연과 이현아의 표정은 썩어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