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00)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00)화(100/162)
<100화>
30분 전.
“……제기랄.”
바닥에 쓰러지고 만 맥라이언이 입안에 고인 핏물을 옆에 퉤하고 뱉어 냈다.
그에겐 지금 심장이 없었다. 드래곤의 심장은 그레이스에게 선물했으니까.
“마물과 손을 잡은 이유가 윽, 이것이냐?”
그는 고통을 삼키며 성난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셀로니아를 노려보았다.
어처구니없게도 두 사람에게 지고 만 것이었다.
“뭔 헛소리야.”
“네 실력을 내가 몰라? 갑자기 이렇게 힘을 쓸 수 있는 건 마물의 기운 때문인 걸 모를 줄, 으윽, 알았나?”
맥라이언은 깨달았다. 그리핀을 향해 달려드는 자신의 검을 셀로니아가 막은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검을 맞대 본 결과 지금의 셀로니아는 그가 알던 셀로니아가 아니었다.
검을 다루는 데 있어 허점은 많았으나 힘이 달랐다. 검끼리 부딪칠 때마다 그의 손이 울릴 정도로 강했다.
심지어 그가 공격 목적으로 뿜어낸 오러까지 검으로 막아 버렸다.
그리고 저놈.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가 드래곤의 힘을 쓸 때마다 무력화시키는 것도 모자라 대지를 뒤흔들 만큼 어마어마한 힘으로 그를 압박했다.
눈 깜빡인 사이에 등 뒤에 있던 놈이 어느새 제 앞에 서서 저를 베어 냈고,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속도를 내며 몰아붙였다.
완벽한 패배였다.
“젠장, 젠장!”
악에 받친 얼굴로 맥라이언이 욕을 내뱉었다.
심장만 있었어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심장만 있었어도 저 두 사람을 단번에……!
“꽤액!”
어느새 터벅터벅 다가온 그리핀이 성질을 부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맥라이언의 몸을 부리로 쪼아 댔다.
이젠 하다 하다 마물까지.
고결한 드래곤의 위신이 땅바닥으로 추락하였다.
무너진 자존심에 맥라이언이 뿌득 이를 갈며 그리핀을 단숨에 죽여 버리기 위해 손안에 기운을 피워 냈다.
그러나 파지직 소리와 함께 주먹 크기 정도로 타오른 기운은 바로 꺼져 버렸다. 모든 기운을 다 소진하고 만 것이었다.
“하, 하하…….”
어처구니가 없어 맥라이언이 들었던 손을 내렸다.
그는 이제 정말 손 하나 까딱할 정도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온갖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특히나 가장 심하게 찢긴 왼쪽 옆구리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건 탄이 낸 상처였다. 셀로니아가 맥라이언의 검에 베인 것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 그의 옆구리를 단번에 찢어 버린 것이었다.
“이제 어쩔 셈이냐. 으윽, 죽이기라도 할 것이냐.”
“…….”
셀로니아는 예상했던 결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도 그다지 좋진 못했다.
전투 도중,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해서 화가 났는지 맥라이언이 폭주를 하듯 사정없이 드래곤의 기운을 뿜어 댔다.
무작위로 땅 곳곳에 솟아오른 그 기운을 피하느라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맥라이언이 휘두른 검에도 베였기에 팔과 다리에 자상이 난 상태였다.
당연히 탄이 자신을 구하려 들려고 했으나 셀로니아는 괜찮다고, 제발 자신을 믿어 달라 말하며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
아마도 맥라이언이 진짜 저를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바람에 예상보다 더 빨리 맥라이언이 쓰러지게 되었다. 제가 다치는 꼴에 눈이 뒤집힌 탄이 맥라이언을 아주 그냥 박살을 내 버렸으니까.
“진짜 죽여 버릴까.”
그녀의 곁에 서 있던 탄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눈으로 맥라이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꿈틀거렸다. 셀로니아만 아니었으면 진심으로 저 자식을 찢어발겼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숨이 붙어 있는 꼴을 보니 검은 욕망이 스멀스멀 발아래서부터 기어올랐다.
과거 기억의 파편이 떠오른 이후부터 탄은 부정적인 감정을 참기가 조금 힘들어졌다.
이따금씩 정신이 혼탁해지는 것이 암흑과도 같은 검은 안개가 그를 집어삼키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자꾸만…….
그때 손안을 따뜻하게 감싸는 온도에 탄이 고개를 내렸다.
“고마워요.”
다정한 셀로니아의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손을 감싸 쥔 하얀 손이 보였다.
탄의 손등 위로 꿈틀거리던 푸른 핏줄이 잦아들고 피어오르던 검은 욕망 또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들어찼던 암흑은 잔재를 남기게 되었다.
“맥라이언.”
아무것도 모르는 셀로니아는 천천히 자세를 낮춰 바닥에 쓰러진 맥라이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혼자서 고상한 척은 다하더니 꼴이 우습네. 이런 간악한 술수조차 못 알아차리고.”
“뭐……?”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현실을 봐.”
이윽고 셀로니아의 손이 그의 가슴 위에 얹어지더니 하얀 빛을 내뿜었다.
맥라이언은 이것을 잘 알았다.
그녀가 종종 자신이나 구원자들을 치유할 때 내뿜는 치유의 빛이었으니까.
저를 이 지경까지 몰아붙여 놓고 치유술을 쓴다고? 감히 인간 따위가 나를 가지고 놀아?
“네가 감히 나를 기만하는……!”
분노한 맥라이언이 살기 어린 금안을 번뜩이며 소리를 쳤으나, 이내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의 정신을 단 하나의 생각으로만 이어지도록 붙잡고 있던 끈이 팽팽하게 늘어나더니 곧이어 탁 하고 풀어졌으니까.
“허, 허억……!”
그러자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숨겨져 있던 기억 속 감정들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순식간에 그를 덮쳐 오기 시작했다.
온몸이 벌벌 떨리고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일방적으로 잘려 나갔던 감정들이 퍼즐처럼 되돌아오고 있었다.
더불어 그날의 기억까지도. 의미 없고 성가신 존재로만 생각했던 셀로니아를 향한 마음이 시작되었던 그날이 말이다.
* * *
토벌에 나선 지 2주째. 그날도 대수롭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크윽…….”
무리에서 혼자 조용히 빠져나온 맥라이언은 신음을 삼키며 나무에 기대었다.
스르륵 풀리는 다리와 함께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지듯 앉았다.
“후우…….”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커다란 손으로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기에 옷감이 찢어진 게 다행히 표가 나진 않았다.
그러니 그 거추장스러운 무리들이 눈치채진 못했을 거다.
드래곤의 자존심이 있지. 절대 이깟 일로 다친 것을 들킬 순 없었다.
방금 전, 걷기도 힘든 늪지를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오우거의 습격이 있었다.
어디서 매복을 하다가 튀어나온 건지 오우거 수십 마리가 그들을 향해 한꺼번에 달려드는 바람에 맥라이언은 가지고 있는 힘을 끌어모아야 했다.
인간들 힘으론 역부족이니 당연하게도 위대한 자신의 힘을 보여 줘야 했으니까.
하지만 수십 마리를 해치우기 위해 무리하게 힘을 사용했고, 그 바람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약해졌다.
그 틈을 노린 것인진 모르겠으나 타이밍 좋게 심장이 약해진 찰나의 순간 오우거의 무식한 손톱에 옆구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왼쪽 옆구리가 사정없이 찢어졌다.
심장이 있는 한 그는 외부 요인에 의해 잘 다치진 않았으나, 심장의 힘을 너무 많이 끌어 쓰면 이렇게 약해진 틈에 다칠 수 있었다.
아무리 초월적인 존재라 한들 심장의 힘이 무한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래도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어차피 오늘 여기서 야숙을 한다 했으니 대충 지혈하고 내버려 두면 알아서 아물 것이다.
맥라이언은 화끈거리다 못해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쳐 둔 푸른 결계와 함께 우중충한 먹구름이 낀 마물 숲의 하늘이 보였다.
“귀찮네.”
고통에 일그러진 미간과 별개로 그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인간들과 함께하는 토벌이라니.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마왕의 결계 때문에 성까지 도착하려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셀로니아, 이안, 그리고 레예프와 함께한지도 벌써 2주째이지만, 여전히 그들이 불편하고 귀찮았다.
고고하고 고결한 드래곤인 자신이 인간과 화합이라니. 황제의 청만 아니었어도 당연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인 그는 이 제국의 평화를 위해 나설 의무가 있었다. 선대들도 그랬으니까.
원래 이 땅을 차지하고 있는 마물들을 몰아내고 인간들이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드래곤의 존재였다.
그때부터 암묵적으로 드래곤은 인간들의 평화를 위해 힘을 써 주었다. 그건 초월적인 힘을 가진 그들이 약하디약한 인간에게 베푸는 오만한 배려이자 동정이었다.
존재로서, 힘으로서 당연히 황제보다 우위에 있는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백성처럼 인간을 두루 보살펴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귀찮고 따분한 드래곤의 일생에 인간들은 꽤 흥미로운 유희거리였으니까.
“맥라이언 님.”
그때였다.
기분까지 우중충해지는 어둑한 하늘을 담고 있던 그의 시야에 순간적으로 하얗고 동그란 얼굴이 들어찬 것은.
“뭐야.”
놀란 맥라이언이 움찔거렸으나 이내 그런 적 없다는 듯 정색하며 셀로니아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토벌대 중에 그가 제일 짐처럼 생각하는 여자였다.
이안과 레예프는 그나마 검을 다루는 실력이 출중하여 꽤나 도움이 되었지만 이 여자는 영 아니었다.
게다가 몸이 얼마나 비실비실한지 그들에게 표를 내진 않았으나, 행군하는 동안 곧 죽을 것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하여간. 성가시고 귀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