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0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02)화(102/162)
<102화>
사냥제 종료를 알리는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마도구 음폭기를 통해 미르나르 숲 곳곳에 울려 퍼졌다.
겨울이 오고 있는 게 부쩍 표가 날 정도로 짧아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하늘을 붉게 수놓을 무렵 사냥에 나섰던 참가자들은 오늘의 성과와 함께 돌아왔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란 말인가?”
“체르빌 공작도 허시브룩 대공도 아니고 정말로…….”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군가 마물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모두는 체르빌 공작 아니면 허시브룩 대공, 그것도 아니면 황태자 셋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들이 우승 후보자였으니까.
예상도 못 한 저 사람이 아니라.
“진짜 베스인 공녀가 잡은 것이 맞는 건가?”
“……그렇다는군.”
셀로니아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죽은 그리핀 뒤에 당당히 서 있었다.
그 옆으로 우승 후보자로 거론된 대공과 황태자가 대조되게 빈손으로 서 있었다.
그나마 이안은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낸 흑곰 사체 앞에 서 있었지만. 다른 때 같았으면 흑곰은 강력한 우승 후보감이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베스인 공녀가 마물을, 그것도 하늘을 날아 공중전을 펼치는 그리핀을 잡았으니까.
“확실하느냐!”
“네, 네! 저희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황제의 살벌한 노기에 잔뜩 움츠러든 근위대 기사 토르가 군기가 바짝 든 경직된 몸으로 대답했다.
“허어…….”
단상 아래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입에서 맥 빠진 침음이 흘러나왔다. 이 상황이 우스워서 한숨만 나왔다.
지극히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할 사냥제에 이런 계략까지 부려 황태자를 우승시키려 하였는데, 황태자는 그것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공녀가 잡아 버린 것이었다.
황제는 어떻게 저 큰 마물을 공녀가 잡았는지 믿기지 않았으나 지금 셀로니아의 몰골을 보면 의심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다치고 구른 모양새가 누가 봐도 그리핀과 맞대결한 행색이었으니까.
게다가 셀로니아가 그리핀을 베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본 목격자도 여럿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더욱이 셀로니아가 아무리 가녀린 여자라고 해도 반년 동안 마물을 상대로 토벌에 나선 사람이 아니던가.
하는 수 없이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던 모든 귀족이 황제를 따라 자리에서 기립했다.
“제45회 사냥제 우승자는 셀로니아 베스인 공녀다.”
이윽고 눈으로 매질을 하듯 황태자를 힘껏 노려보며 황제가 입을 열었다.
“……와아!”
놀라운 결과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다가 한 박자 느리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셀로니아는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덤덤한 표정으로 황제의 치하를 받기 위해 단상 위로 올라갔다.
“멋지군.”
그 모습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탄의 입가가 흡족하다는 듯 호선을 그렸다.
“영애가 잡았다고.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그러나 단 한 사람.
황태자도 가만히 있는 와중에 이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불만을 가지고 탄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네놈이 믿지 않으면 어쩔 거지?”
셀로니아의 우승에 시비를 거는 이안을 보는 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황제 앞이라 날뛸 깡은 없고 그저 목소리를 죽인 채 방방 뛰어 대는 게 꼭 벼룩같이 하찮았다.
“이건 엄연히 편법입니다. 당신이 잡아 놓고 그녀한테 승기를 준 거 아닙니까!”
“헛소리. 기사들이 하는 말 못 들었나? 그녀가 베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적당히 하십시오. 애초에 저 마물을 영애가 벨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안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셀로니아가 사냥제에서 우승하는 건 그의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다.
탄이 자신을 엿 먹이려고 셀로니아를 대리 우승시킨 것이 확실했다.
“네놈도 하는 걸 그녀가 못 할 리 없다. 아아, 아니지. 네놈이 못 하는 걸 그녀는 해낸 거지.”
그 생각이 빤히 읽혀 탄이 이안을 비웃으며 서늘한 눈을 내리깔았다. 특유의 거만한 그의 얼굴이 이안을 짓누르듯 내려다보았다.
감히 누구 앞에서 오만을 떠는 건지. 그녀가 이 세상에서 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한다면 자신이 모든 걸 이루어 줄 것이니.
“다른 이는 다 속아도 나는 못……!”
“베스인 공녀, 사냥제 우승을 축하한다.”
잔뜩 열이 난 이안이 탄에게 바짝 붙어 언성을 높이다 황제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이 자리를 뒤집어엎고 싶었으나 목격자들도 있는 마당에 셀로니아가 우승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긴 쉽지 않았다.
이안은 굴욕과 모멸감에 입술을 짓씹었다. 속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셀로니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황제가 건네는 상패와 꽃다발을 받았다.
손바닥만 한 상패는 순전히 금으로 만들어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만큼 묵직했고, 꽃다발은 한 품에 다 안기도 힘들 만큼 크기가 컸다.
“그래. 그대는 오늘 이 영광을 누구와 함께 나누겠나.”
황제가 내심 기대 어린 눈으로 셀로니아를 바라보았다.
사냥제 우승자는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받은 꽃을 건네는 관례가 있었다.
여자에게 꽃을 받게 된 상황이었으나, 어쨌거나 이 자리에서 셀로니아의 꽃을 받는다면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암묵적인 연인 관계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오늘의 영광을 바칠 사람은.”
셀로니아는 뜸을 들이며 자신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귀족들을 쭉 훑어보곤 단상 아래를 보았다.
이 위를 올라오지도 못한 이안이 자존심이 상해 부들거리고 있는 꼴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처음이었다. 지금껏 당연하게 남주들에게 활약을 양보해 왔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턴 아니었다. 물러서지 않고 모든 영광을 직접 쟁취하여 누릴 테니까.
그녀는 시선을 돌려 한 곳을 바라보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저를 자랑스러워하는 저 표정에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탄 허시브룩 대공님입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탄에게로 향했다.
탄은 단상 위에 서 있는 셀로니아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드높은 단상 위가 그녀랑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와아……!”
그런 두 사람을 본 귀족들이 아주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노을 진 하늘보다 더 짙고 눈부신 그들의 미소는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으니까.
그러나 이 순간 한 여자는 탄과 셀로니아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지들이 나를 능멸해? 제깟 것들이 나를?”
티타니아 황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은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마음이 없다는 거짓말로 나를 깔본 것도 모자라서 감히 내 앞에서 뻔뻔하게……!”
탄에게 꽃다발을 내미는 셀로니아의 행동에 티타니아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대공저에서 대공과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굴더니 뒤에서 호박씨를 까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구원자들에 이어서 이번엔 대공이었다.
“둘 다 가만 안 둬. 죽여 버릴 거야.”
티타니아의 금안이 염화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젠장! 전하께서 우승하는 것이 확실시되었건만!”
황태자에게 금화 스무 개를 걸었던 영식이 돌멩이를 걷어차며 씩씩거리며 나아갔다.
사냥제가 끝이 났다.
오늘 일어난 이변에 대해 할 말이 많은지 자리를 떠나는 귀족들의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특히나 젊은 영애들 사이에선 오늘 일이 연신 화제였다.
“그럼 이제 공녀님과 대공님의 약혼 발표가 나겠죠?”
“빠른 시일 내에 공표하지 않을까요? 공식적으로 영광을 바쳤잖아요. 심지어 대공님 눈이 계속 공녀님에게만 향하고 있었다니까요?”
“그런데요, 영애들. 그거 아셨어요? 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아름다운 남자는 꽃을 들어도 어울린다는 걸요.”
“맞아요! 한 폭의 명화를 보는 듯했다니까요. 호호호!”
아까 셀로니아가 건네었던 꽃다발을 받아 든 탄의 모습을 떠올린 영애들이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소란을 떨며 자리를 떠났다.
“하…….”
그 뒤에 남은 그레이스는 질투에 사로잡혀 두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당연히 이안 아니면 탄이 우승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셀로니아가 우승을 하다니.
심지어 셀로니아에게 꽃다발을 건네받을 때 그녀를 향한 탄의 눈동자는 너무나 다디달아 뭇 영애들의 마음을 녹일 지경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심이라는 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대체 왜……!’
그레이스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모조리 다 빼앗았는데 왜 더 잘난 놈이 나타나서 또다시 그녀의 곁에 붙느냔 말인가.
왜 하필……!
“약혼?”
그레이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어림없는 소리였다.
그 여자가 무엇을 가지든, 어떤 걸 차지하든 모조리 다 빼앗을 거니까. 만약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모두 다 제 것이 될 테니.
“그나저나 맥라이언은 어딜 간 거야?”
표독스러운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천막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분명 시상식이 있기 전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입구로 돌아온 것을 보았는데 그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참가자 석에도 없었다.
심지어 뒤늦게 도착하여 관람석에 함께 앉아 있었던 레예프까지 어딜 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것들이 요즘 왜 이래?”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어디에 갔나. 와서 위로와 수발이나 들 것이지. 도대체가……!
혼자서 씨근덕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굉장히 화가 난 얼굴로 자리를 뜨는 이안이 보였다.
“공작님!”
그레이스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 *
그날 밤.
자정이 되기 두 시간 전,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겠다는 셀로니아의 말에 그녀의 방 근처는 지나다니는 이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방 안에서는.
“하아…… 잠깐, 잠깐만요, 탄.”
갈급하게 구는 탄의 입술을 잠시 떼어 내며 셀로니아가 달뜬 숨을 몰아쉬었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일찍 찾아오겠다던 그의 말에 모두를 물리고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탄이 찾아왔다.
웃으며 그를 맞이하려 했으나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그가 제 허리를 감싸 안더니 입술을 맞대었다.
틈 사이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숨에 속절없이 뒤엉켰던 셀로니아가 잠시 정신을 차린 상황이었다.
그녀의 몸은 아까와 달리 다친 곳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치유술로 상처를 말끔하게 치료했기 때문이었다.
“……왜.”
이미 반쯤 풀린 탄의 눈동자가 셀로니아의 번들거리는 입술을 응시했다. 정염이 드리운 탁한 목소리는 입술을 떼어 낸 그녀를 원망하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고 싶었다. 아니, 항상,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맞댄 채 붙어 있고 싶었다.
특히나 제게 꽃을 내밀던, 꽃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짓던 그녀의 모습에 그는 몇 번이고 제 욕망을 꾸역꾸역 참아 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셀로니아는 베스인 공작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단둘이 더 오래 있고 싶은 마음에 탄이 일찍 찾아온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찾아오고 싶었으나 10시 정도가 되어야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는 그녀의 말에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그리핀은 잘 돌아간 거예요?”
“그래.”
“정말요?”
셀로니아는 대답과 동시에 또다시 입술부터 맞대려는 그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하지만 의도를 잘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욕망을 참지 못하는 건지 탄이 그녀의 손바닥에 입술을 쪽쪽거렸다.
“푸핫! 간지러워요.”
손안을 파고드는 입술의 감촉에 셀로니아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잡은 그리핀은 가짜였다.
진짜 그리핀은 탄이 순간 이동을 시켜 인적이 드문 산에다 옮겼고, 근처에 있던 나무를 그리핀으로 둔갑시킨 것이었다.
말 그대로 둔갑술을 쓴 것인데, 정말 감쪽같았다. 정말이지 그의 힘으론 못 하는 게 없었다.
둔갑술을 부린다 하더라도 어차피 사냥제 때 잡은 사체는 불태워 신께 바친다. 모든 건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 걸리지 않을 테다.
하지만 환영이 아니었기 때문에 둔갑한 그리핀은 정말로 살아 움직였고 셀로니아는 그것을 잡는 데 꽤 애를 먹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리기 전 일부러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베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야만 이견 없이 우승할 수 있을 테니까.
“그놈은 알아서 잘 갔으니 이제 그만 물어라.”
이 와중에 그리핀만을 생각하는 셀로니아를 보며 탄이 마뜩잖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산에 옮겼던 그리핀이 북부로 날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왔다.
북부는 워낙 멀고 가 본 적이 없었기에 그곳까지 한 번에 순간 이동을 시킬 수가 없어 이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작별 인사라도 할……!”
“날 봐, 셀로니아.”
아직도 아쉬워하는 셀로니아를 보며 탄이 진득하게 피어오르는 열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드디어 가지게 된 온전한 둘만의 시간을 더 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나한테만 집중해.”
탄은 집착 어린 눈으로 셀로니아를 지그시 바라보며 잘록한 허리를 껴안고 있던 손을 움직였다.
뜨거운 그의 손이 얇은 슬립 너머로 그녀의 피부를 스치며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