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0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04)화(104/162)
<104화>
“아버지.”
“대공을 만나러 가는 것이냐.”
묻는 아버지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하였다.
셀로니아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탄이 공작저 앞에 와 있었으니까.
“잠깐 시간 괜찮으냐.”
“그럼요.”
“차 한잔하자꾸나.”
먼저 뒤돌아선 아버지가 걸음을 움직였다.
“엘라, 탄한테 곧 가겠다고 전해 줘.”
“네. 아가씨.”
셀로니아는 마냥 기다리고 있을 탄에게 사정을 알리기 위해 엘라를 보낸 뒤 아버지를 뒤따랐다.
여전히 화려하고 웅장한 공작저의 응접실에 들어선 셀로니아는 상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 갤로웨이의 옆, 벨벳 소파에 자리했다.
그러나 향긋한 차가 테이블 위에 세팅될 때까지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셀로니아는 그의 입이 먼저 열리기를 기다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버지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기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가 한 김 식은 뒤에야 드디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셀리.”
“네, 아버지.”
셀로니아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못해도 20분이 지났기에 어서 대화를 끝마치고 나가 봐야 했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아비는 그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그자는 탄이었다. 일전에도 한번 탄에 대해 탐탁지 않다는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사냥제 때 영광을 바친 것은 조금 섣불렀던 것 같구나.”
갤로웨이가 굳은 표정으로 셀로니아를 응시하였다.
꾸지람처럼 다가온 아버지의 말에 셀로니아는 치마 위에 올려 둔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렇게까지 반응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그녀는 이미 모든 정체를 알면서도 탄을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그와 끝까지 가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다.
그러니 갤로웨이에게 탄과의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아야 했다. 아버지니까.
“아버지, 대공님과는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어요.”
“셀로니아.”
“그는 제게 큰 힘이 돼요. 누구보다요.”
“하아. 그자가 사생아라서가 아니다.”
단호한 셀로니아의 말에 갤로웨이가 한숨과 함께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네가 그자와 엮이면 부쩍 다치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구나.”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셀로니아는 순간 벙쪘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인지 갤로웨이의 미간에 골이 패어 있었다. 그 안에 녹아 있는 근심과 걱정이 보여 그녀는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걱정할 만했다.
처음 탄과 만났을 때, 들개의 습격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쓴 힘에 날아가 뼈가 부러졌다.
에밀리에게 걸린 술수를 해제한 날에도 탄에게 안겨 저택에 돌아왔고. 사정을 모르는 아버지의 입장으로선 걱정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수상하고 위험한 자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으니 내가 너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단다.”
“오해예요, 아버지. 아버지도 대공님을 겪어 봐서 아시잖아요.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셀로니아는 그 말에는 바로 반박하였다.
탄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탄이 제게 하는 행동을 아버지가 본다면 조금이라도 안심하실 텐데.
“그래. 하지만 셀리, 네가 또 상처받을까 걱정되는구나.”
지금 아버지는 남주들의 배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관계도 결국은 부서져 버렸으니.
“전 괜찮아요.”
“네 엄마도 세상을 떠났는데 너마저 잘못되면 이 아비는…….”
“…….”
“이 아비의 걱정을 이해해 주거라. 그러니 조금 더 생각해 보자꾸나.”
셀로니아는 눈꼬리가 처연하게 축 내려갈 만큼 침울해진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차마 탄과의 관계를 단호하게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불효를 저지른다는 죄악감이 느껴질 것만 같았기에.
아무래도 이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설득해 나가야 할 문제였다.
“알겠어요.”
“그래. 이만 나가 보거라.”
떨어진 축객령에 셀로니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급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참. 셀로니아.”
“네.”
몸을 돌리려는데 다시 이어진 아버지의 목소리에 셀로니아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흐트러짐 없는 기품 있는 자세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넌 나의 보석이란다. 아주 작은 상처도 입어서는 안 된다. 그걸 보는 난 피눈물이 날 테니.”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할 말을 마친 갤로웨이가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뭐지?’
셀로니아는 순간 영문 모를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아버지에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으니까.
자신과 똑 닮은 파란 눈동자가 차가운 기색을 띠어서 그런 걸까? 아님 딸을 보석으로 비유한 저 말 때문인 걸까.
하지만 생각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갤로웨이는 저에게 몸을 아끼라는 걱정 어린 당부를 자주 했었으므로.
“그럴게요. 조심할게요.”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셀로니아는 흔쾌히 대답하며 응접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셀로니아가 나가자 갤로웨이가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 * *
오늘도 역시 세상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레이스는 굳은 표정으로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고 있었다.
에반젤린 백작 영애의 초대를 받아 백작저에서 열리는 티 파티에 참석했다.
당연하게도 레예프와 맥라이언을 동반하여 참석하려고 했다. 늘 그렇듯 그들을 조각품처럼 자랑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둘 다 일이 있다며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어이가 없었으나 우선 티 파티에 참석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신상 보석들로 치장을 하여 혼자서 참석을 했다.
열 명 남짓이 모인 티 파티는 꽤 순조롭게 흘러갔다. 갑자기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불쑥 찾아오기 전까진.
“뭣들 하지? 어서 떠들어 봐!”
앙칼지고 건방진 목소리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영애들이 모두 눈치를 보았다.
“뭐 하냐니까! 내 기분이 가라앉잖아! 다들 죽고 싶은 거야?!”
황녀 티타니아가 폭군이 된 것처럼 날뛰었다.
귀족 영애들의 티타임에 황녀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었다.
황녀는 오늘 티타임을 주최한 에반젤린 백작 영애를 내쫓고 가장 상석에 앉은 채 표독스러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뭐 하나만 걸리면 앞에 있는 영애들의 머리카락을 죄다 쥐어뜯어 놓을 것처럼.
“화, 황녀 전하, 이 휘낭시에 좀 드셔 보시겠어요?”
계속된 역정에 용기를 낸 에반젤린 백작 영애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며 먹음직스러운 디저트를 권했다.
“이딴 싸구려 디저트를 지금 나보고 먹으라고? 너! 지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시끄러워!”
티타니아가 사납게 소리치자 백작 영애의 입이 꾹 다물렸다. 울상이 된 그녀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또르르 흘릴 것만 같았다.
그 바람에 테이블의 분위기는 더더욱 얼어붙었다. 모두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려움에 오들오들 몸을 떨어야만 했다.
황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고 또다시 윽박을 지르고 있었으나, 모두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또 트집을 잡으면서 모욕을 줄 게 뻔했으니까.
“…….”
분위기를 읽은 그레이스도 괜히 황녀에 눈에 띌까 아주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으나 어쩐지 황녀가 애먼 곳에서 뺨을 맞고 와서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 파티에 참여하겠다 찾아왔을 때부터 상당히 분노에 찬 얼굴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여기서 황녀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야. 말 안 해? 감히 황녀의 말을 거역하려 들어?!”
테이블을 뒤집어엎을 것처럼 벌떡 일어서는 황녀의 행동에 모두가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황녀 전하.”
“뭐야!”
“저어…….”
그러나 구세주처럼 다가온 황녀의 시녀가 급한 일이라는 듯 황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들 딱 기다리고 있어.”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지 시녀에게 말을 전해 들은 황녀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영애들을 째려보곤 휙 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가 거친 발걸음으로 유리 정원을 완전히 나가자 잔뜩 굳어 있던 영애들이 참아 온 숨을 토해 냈다.
“하아아…….”
“흐, 흐흑…….”
에반젤린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요, 영애.”
“맞아요. 도대체 황녀 전하는 왜 이러시는 건지…….”
영애들이 나서서 그녀를 위로했다.
그레이스는 이때다 싶어 참아 왔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얼른 몸을 일으켰다.
황녀가 자리에 있을 때 움직이기라도 하면 화살이 날아올 테니 지금이 기회였다.
빠르게 유리 정원을 나가 저택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른 그레이스는 볼일을 마치고 나와 복도를 걸었다. 황녀가 돌아오기 전에 다시 착석해야 했기에 걸음이 빨라졌다.
‘아무래도 이안은 이제 그만 버려야겠어.’
걸으면서 그레이스는 생각했다.
이안의 거만 떠는 행동을 이제 더는 받아 줄 이유가 없다고.
어제도 자신의 부름을 끝까지 무시하고 혼자서 휙 가 버리지 않았나.
더는 이안으로 셀로니아를 자극할 수도 없으니 곁에 둘 이유가 없었다. 부작용이 점점 나타날 것도 그렇고, 이안의 효용 가치는 사라진 것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그레이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나와야 할 유리 정원은 보이질 않고 엉뚱한 곳에 들어서 있었다.
“그냥 죽여 버리라고!”
그때였다.
커다랗게 울리는 목소리에 그레이스가 자신도 모르게 앞에 있는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그건 티타임 내내 들었던 황녀의 고함이었으니까.
뭘 죽이라는 거지?
그레이스는 숨을 죽인 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무도 없는 구석지고 허름한 곳에 황녀와 시녀 그리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복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베스인 공녀를 처리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 황녀의 명에 토를 달아?”
“죄송합니다.”
“아악! 그럼 다른 수를 내! 대공의 마음을 가져올 만한 방법이라도 생각해 내란 말이야!”
황녀의 히스테리에 검은 복면을 쓴 사내가 우선 알겠다며 예의를 갖추더니 순식간에 담을 넘어 사라졌다.
‘황녀가 대공을?’
모든 얘기를 엿들은 그레이스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 황녀가 대공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가 대차게 차였다던 그 소문.
아무래도 어제 사냥제에서 셀로니아가 대공에게 영광을 바쳐 상당히 열이 받은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남의 티 파티에 와서 깽판을 치는 거고.
아아, 안 되지. 그 여자가 죽으면.
“황녀 전하.”
그레이스는 야비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황녀를 향해 다가갔다.
자신은 황녀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좋은 수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