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0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05)화(105/162)
<105화>
“공작과 무슨 일 있었나?”
탄이 옆에 앉아 있는 셀로니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아뇨. 그냥 오랜만에 부녀끼리 대화한 거예요.”
셀로니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미소 지었다. 아마 아버지와의 대화의 여파가 표정에 남아 있던 모양이었다.
“날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아닌가?”
“네? 그걸 어떻게…….”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탄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픽 웃었다.
사냥제 때 그녀가 제게 영광을 선물했으니 갤로웨이도 저와 그녀의 사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아마 그것 때문에 오늘 셀로니아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거겠지.
탄은 갤로웨이가 자신이 셀로니아와 함께하는 것을 꺼려 할 거라는 점을 보지 않아도 잘 알았다.
셀로니아가 기력을 소진하여 쓰러졌던 날, 그녀를 안고 움직이려던 그를 가로막은 갤로웨이가 딸을 내놓으라는 듯 말했었다.
“귀공, 수고했소. 고맙네. 이제부터 우리가 하겠네.”
그 명령에는 명백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물론 그때는 보잘것없는 밤의 야수였고 지금은 대공이 되었지만 셀로니아의 반응을 보니 아직도 저를 탐탁지 않아 하는 모양이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제가 상처받을까 우려하시는 거예요.”
“그래. 공작이 추진한다던 자선 사업은 어찌 되어 가지?”
탄은 전에 갤로웨이가 자신에게 부탁했던 일이 떠올라 질문했다.
그때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했으니 도움을 주면 조금이라도 저에 대한 마음이 달라질까 해서.
물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으나 갤로웨이에게는 달랐다. 그는 셀로니아의 아버지였으니까.
게다가 셀로니아도 갤로웨이의 말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좋아하니까. 누가 뭐라 해도 떳떳하게 곁에 있고 싶었으니까.
탄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나 셀로니아로 인해 마왕의 본성이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더욱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녀로 인해 인간적인 마음도 동시에 알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 그거요. 폐하의 승인을 받아 매입한 부지에 임시 건물을 올리고 있다 하시더라고요.”
“임시 건물?”
“네. 이제 곧 겨울이니 우선 임시로 판자촌 사람들의 거처를 그쪽으로 옮기고 정식으로 건물이 들어서면 그때 살아갈 터전을 제공할 생각이신 것 같아요.”
셀로니아는 저택을 오며 가며 들은 소식을 탄에게 얘기해 주었다.
판자촌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고아들과 너무 가난하여 묵을 곳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빈민들이 정착하는 곳이었다.
그런 취약 계층에게 아버지는 보다 나은 생활 터전을 제공하기 위한 자선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이미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부지는 황성과 거리가 있는 인적이 드문 마을 옆에 있는 숲이었다.
이번 자선 사업은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확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신념을 실현한 셈이었다.
“아마 운영은 귀족들한테 기부를 받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선 돈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기부.”
탄은 기부라는 말에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매끈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판자촌 사람들의 이주를 돕는 것과 동시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기부를 하면 아무래도 갤로웨이의 마음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으니까.
“후후후.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셔요!”
그때 마차 안에서 딱 붙어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던 엘라가 입을 열었다.
이제는 익숙한지 셀로니아와 탄이 손을 잡고 있어도 엘라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곧 황녀 전하 생신 연회인데 두 분께서 함께 참석하시겠네요?”
“아…….”
그 말에 셀로니아는 잊고 있던 황녀의 존재가 떠올랐다.
엘라의 말대로 사냥제가 끝나고 나면 바로 얼마 뒤 황녀의 생일이 있었다.
황제가 워낙 황녀를 어여뻐한다는 것은 제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황궁에서 열리는 황녀의 생일 연회는 언제나 황태자 생일 연회 못지않게 크고 성대했다.
“골치 아프게 됐네.”
셀로니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분명 황녀도 사냥제에서 자신이 탄에게 영광을 바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잠시 황녀가 탄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도 선택은 변함없었겠지만.
“네가 그 여자를 신경 쓸 필요 없다. 해코지하려 든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탄이 맞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절대 이 손을 놓을 리도, 놓게 만들 일도 만들지 않겠다는 듯.
“제가 순순히 당할 리 없죠. 진짜 잘난 남자 덕에 바람 잘 날이 없네요.”
셀로니아는 탄의 표정에 픽 웃으며 농담과 진담을 섞어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누가 할 소리.”
탄이 피식 웃음 지으며 셀로니아와 다정히 눈을 맞춘 채 삐져나온 잔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엘라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여전히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가씨의 행복한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으니까.
끼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판자촌에 도착한 마차가 멈춰 섰다.
셀로니아는 챙겨 온 로브와 후드를 뒤집어쓰고 탄과 엘라와 같이 마차에서 내려 익숙한 판자촌 안으로 들어섰다.
“셀리…….”
“셀로니아 님.”
그러자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건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셀로니아는 초겨울의 바람을 맞으며 펄럭이는 후드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왔네.”
어제 전해 준 대로 맥라이언이 후드와 망토를 쓴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옆의 레예프와 함께.
“먼저 가 있을래요? 잠깐만 얘기하고 갈게요. 엘라 너도.”
셀로니아는 탄과 엘라에게 부탁했다.
탄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다리를 움직였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인적이 없는 판자촌 거리에 후드를 뒤집어쓴 세 사람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셀리…… 어제는 내가 실수했다…….”
그녀의 앞에 선 맥라이언이 차마 눈을 마주치진 못하고 신발만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 만취하여 기억이 다 나진 않았으나 레예프에게 이미 모든 것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다 듣고 나니 어찌나 창피하던지……. 드래곤의 고결함과 위엄이 땅바닥에 추락한 행태였다.
“그리고?”
“…….”
“더 할 말 없어?”
셀로니아는 시들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맥라이언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는 신발을 꼼질거릴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 더 없으면 그만 가. 내 시간 뺏지 말고.”
셀로니아는 차가워진 눈으로 그를 흘겨보며 발걸음을 움직였다.
“내가……!”
그러자 다급해진 맥라이언이 번쩍 고개를 들어 셀로니아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불안정한 그의 금안은 온갖 감정이 깃든 채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멈춰 선 셀로니아는 짝다리를 짚은 채 그를 마주 보았다.
“내가 뭐.”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사냥제 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이 결국은 맥라이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그날 사과를 하지 못한 건……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랐기 때문이야. 사과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시간이 걸렸지만 너에게 미안하지 않은 게 아니다. 미안해, 미안해, 셀리. 내가 잘못했어…….”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눈시울이 붉어진 맥라이언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셀로니아는 그에게 붙잡힌 옷소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옷소매를 꽉 잡고 있는 그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과를 처음 해 본다는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토벌 때도 그가 누구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용서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 일정 부분은 나도 이해해. 어쩔 수 없었다는 네 말도 이해해.”
“그럼 나 용서해 주는 거야?”
울상이던 맥라이언이 확 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글쎄. 지금 와서 내 용서가 무슨 소용인가 싶어. 내가 용서해도 우리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잖아.”
그러나 셀로니아는 단호했다. 진심 어린 사과를 들어 줄 의향이 있다고 했지, 관계를 전처럼 회복시키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세, 셀리. 난 다시 네 곁에 있고 싶다…….”
맥라이언이 절박한 표정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셀로니아는 그가 처음으로 사귄 인간 친구이자 처음으로 좋아한 여자였다.
다시 찾게 된 진짜 감정은 전보다 더 애틋하고 깊어져 있었다. 아마도 그레이스를 두둔하면서 셀로니아에게 수없이 주었던 상처 때문이리라.
심지어 그는 그레이스의 드레스까지 셀로니아에게 부탁하지 않았던가.
그것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할 수만 있다면 헛짓을 당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
셀로니아는 지금 눈앞에 있는 맥라이언의 모습이 그에게 심장을 받았던 그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셀리, 나는 여전히 너를…….”
“그만.”
하지만 그뿐이었다. 셀로니아는 그의 고백을 미연에 차단했다.
아닌 건 아니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젠 그의 마음을 들어 줄 친구 사이도 아니었기에.
“그나저나 왜 못 알아차린 건데? 그레이스가 쓴 게 흑마법인 것 같은데 드래곤은 흑마법과 상극이라고 했잖아.”
“그건…… 심장이 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그 술수는 이미 선대 때 사라진 거라…….”
그 생각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하는지 맥라이언이 분노가 들어찬 표정을 와락 구겼다.
그러니까 흑마법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어서 감지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마물의 기운은 토벌 때 알게 되었기에 감지할 수 있었던 거고.
“하.”
셀로니아는 기가 막혔다. 이게 맥라이언이 말하던 용한 드래곤의 모습인가? 너무 허술하고 같잖잖아.
하지만 반대로 그레이스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드래곤인 맥라이언을 상대로 흑마법을 사용한 게 아닐까, 하고 강력한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용케도 안 찾아갔네? 바로 그레이스한테 달려가서 따져 물을 줄 알았더니?”
“제가 말렸습니다.”
셀로니아의 물음에 곁에서 조용히 병풍처럼 서 있던 레예프가 말했다.
“레예프가요?”
“예.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셀로니아 님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제가 말렸습니다.”
그녀는 이어진 레예프의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 그레이스를 감시하려고 뒤늦게 사냥제 관람에 참석했던 레예프가 잔뜩 화가 난 채로 달려오는 맥라이언을 발견했다.
레예프는 딱 봐도 술수가 풀린 것 같은 맥라이언을 알아보고 지금 이렇게 나서 봤자 일을 그르치는 행동일 뿐이며, 저에게 하등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며 이야기했다.
셀로니아 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충고까지 건넸다고.
“…….”
모든 얘기를 들은 셀로니아는 어이가 없어 입이 벌어졌다.
곁을 내어줄 생각조차 없었는데 자기들끼리 쿵짝거리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다.
어쩐지. 왜 만취한 맥라이언 곁에 레예프가 있나 했더니 이런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셀리, 네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 레예프처럼 연기를 하라고 하면 할게.”
이때다 싶었는지 맥라이언이 나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간절한 표정이었다.
“필요 없는데. 짐처럼 불필요할 뿐이야.”
“…….”
싸늘한 눈동자와 함께 뱉어진 셀로니아의 말에 맥라이언은 순간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건 아직 술수가 풀리지 않았을 때 그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돌려 받으니 어마어마한 상처였다.
심지어 위대한 드래곤인 그는 누군가에게 필요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생애 처음이었다.